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74)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73화(74/266)
73. 제2의 데이비드 베컴 (1)
원정경기는 선수단과 축구 클럽에게만 부담을 주지 않는다.
팬들에게도 적잖은 부담이 된다.
티켓 값, 교통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
맨스필드는 홈에서는 극강이지만 원정에선 다소 아쉽다. 지금까지의 모든 패배와 무승부의 숫자는 적기야 하지만, 전부 원정에서 나온 결과다.
힘겹게 시간 내고 돈 내고 원정 갔다가 패배한 경기를 보고 돌아온다면?
시간, 돈, 그리고 패배. 원정 응원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도 맨스필드의 원정길에는 늘 적지 않은 팬들이 대동했다.
“자자! 45분 남았다고요! 한 골 먹혔지만, 역전해 본 적 많잖아요? 목소리 내야 해요! 응원 목소리가 잦아들어선 안 된다고요!”
소수의 원정 팬. 그 사이를 누비면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젊은 남자의 말에 팬들은 호응했다.
연령층이 높은 맨스필드의 팬들은 오랫동안 축구를 봐 온 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대단했지만, 다소 구식인 면모가 없잖아 존재했다.
응원이 통일되지 않고 중구난방이었다. 한쪽에선 상대 팀 야유하고, 한쪽에선 응원하는 진귀한 광경이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맨스필드의 서포팅에 개혁을 일으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 어린 대학생, 프레디였다.
개막전 경기에서 처음으로 맨스필드에 빠지게 된 그는, 어느새 늙어 버린 맨스필드 팬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비리비리한 체구지만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늙은 올드팬들의 감상은 어떠할까.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지.”
“거, 젊은 친구가 열정적이고 좋구만. 여긴 다 쭈글탱이들밖에 없었는데.”
“팀도 유진 감독이 싹 다 갈아 치우고 변화시키고 있는데, 팬들도 그래야지 않겠나?”
“저 친구, 응원 잘하는 데 방해는 못할망정, 도와주지 못해서야 쓰나!”
믿고 따른다기보단 기특하다는 감정에 가깝지만 아무렴 어떨까. 올드팬들의 지지 덕분에 프레디는 차근차근 응원 방식의 개혁을 이뤄내고 있었다.
유명한 빅클럽의 서포팅 영상을 찾아보면서 체계적으로, 나름의 최선을 찾아가며 프레디는 확실하게 서포팅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좋아요, 목소리 조금 만 더 크게!”
원정 팬들의 구성에 맞게 응원을 주도하던 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을 향했다.
아무리 연령대가 높다지만,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와 그녀를 간호하듯 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원정 응원은 대개 가는 사람만 계속 가기에, 리그 절반이 된 시점 어느 정도 프레디의 눈에 익었다.
하나 저 둘은 아니었다. 그야 오늘 처음 경기장에 온 사람들이니까.
심지어 가장 경기장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있다. 보통 응원을 주도하는 사람의 자리다. 선수들이 고개를 돌리면 가장 잘 보이는 자리. 그래서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팬이 있어야 한다. 너흴 지켜보고 있고, 소리치고 있고, 바라보고 있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알면서도 프레디는 그 자리를 양보했다.
‘감독님 부탁이니까.’
솔직히 말해 놀랐다.
팀의 감독, 유진을 만날 줄은 몰랐다. 그 자리에서 저들과 함께 응원해 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응원은 엄연히 서포터의 역할. 감독이 팬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는 없는 법이다. 감독이 못하면 그 감독을 쫓아내는 것도 팬들이니까.
적당한 거리감. 팬과 감독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하나 프레디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누구 부탁인가. 이 맨스필드를 이렇게까지 조직해낸 명장이요, 프레디가 맨스필드에 빠지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줬던 멋진 경기력의 근원이지 않은가.
‘승리를 위해서라면, 맨스필드를 위해서라면 남들이 뭐라 하든 다하는 사람이잖아? 이것도 분명 그런 종류일 거야.’
유진의 맨스필드 부임 6개월.
감독에 대한 믿음은, 선수단뿐만 아니라 관중석까지 전염시키고 있었다.
* * *
―공을 잡은 해리 오스카!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패스받았습니다! 수비수 달려듭니다! 하지만 오스카, 득점 1위답게 망설이지 않아요! 바로 때립니다!
―아아! 골키퍼의 선방! 막혔습니다! 골키퍼가 안전하게 공을 품에 안습니다!
―오스카, 오늘 잘 안 풀리죠? 기회가 이전처럼 많이 찾아오지 않는 느낌이에요!
“압도적인 골 폭격을 하는 해리 오스카가 가장 위험하지만…….”
다니엘 헌트는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애당초 기회가 안 가면 무서울 게 있나?”
흘깃, 전광판을 바라보는 다니엘 헌트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스윈던 타운 1 : 0 맨스필드 타운]이제 3년 차에 접어드는 다니엘 헌트는 꽤 유능한 감독이었다.
구상대로 진행된 전반전에 다니엘 헌트는 고무됐다.
‘후반전의 변화, 크게 변수는 아니군.’
그는 슬쩍 상대 팀 벤치를 바라봤다.
무심한 얼굴의 상대 팀 감독 유진은 여전했다. 몇몇 선수 교체. 공격 숫자를 줄이고 중원 강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변화가 주를 이뤘다.
‘흐음. 그간 보여 준 경기에 비해 기책은 아닌데.’
기자회견에서 그를 깔아뭉갰지만, 내심 다니엘 헌트는 인정했다. 유진의 능수능란한 지휘와 전술 대응은 복기하는 입장에서도 소름이 오슬오슬 돋을 정도라고. 하나 아무리 뛰어나도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한시켜 버리면 무섭지 않다.
다니엘 헌트는 담담한 유진을 주의하여 살피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이적 시장에서 보여 준 모습은 대단해. 인정하지. 저 파산 위기의 구단을 가지고 데리고 온 준척급 선수가 몇이야?’
수비진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해리 오스카의 폭발력.
이따금 등골이 서늘해지는 크로스를 올리는 스탠리의 킥.
그리고.
‘대니 스콧, 저 선수를 어떻게 데려온 거야?’
다니엘 헌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작년에 아쉽게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해서 승격에 실패한 뒤, 다니엘 헌트는 그야말로 절치부심했다.
젊은 나이, 짧은 경력, 스타 플레이어였다는 높은 명성.
얕잡아 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다니엘 헌트는 타고난 노력파였다.
선수로서 롱런했던 이유도 압도적인 재능이라기보단,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격 덕분이다.
감독이 된 이후에도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충분한 성과를 올리는데 가장 큰 무기가 됐다.
“모든 경기를 다 봤어. 결국 대니 스콧의 클래스가 결정짓고 있어. 맨스필드란 팀은!”
대니 스콧의 클래스는 리그 투에서 볼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다.
다니엘 헌트는 솔직히 인정했다.
대니 스콧을 영입한 유진의 수완은 확실히 대단하다고.
“하지만, 감독직이 그렇게 만만한 건 아니지.”
다니엘 헌트가 입꼬리를 올렸다.
리그 투에서 가장 화제의 팀은 맨스필드였다. 그리고 가장 언론의 주목을 받는 감독도 바로 유진이었다.
“초짜 감독은 이래저래 시선이 많이 끌리는 법이지.”
그도 몇 번 겪어 본 경험이다. 감독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을 때, 온갖 소음에 시달렸다. 특히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다니엘 헌트는 더욱 그랬다. 한 경기라도 패배하노라면, 온갖 언론에서 떠들어 대기 바빴다. 선수와 감독은 다른 거라고. 비판이 아닌 날 선 험담을 쏟아내기도 했다.
다니엘 헌트는 그 온갖 선입견에서도 꿋꿋이 감독직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지금, 어느 팀도 무시 못 할 팀을 만들어 냈고, 훌륭한 성적을 이뤄 내고 있다.
그런 그의 눈에 유진은 퍽 운이 좋아 보였다.
‘흥, 뭐? 리그 투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젊은 감독이라고?’
날 선 비난 따위는 없었다. 도리어 신임 감독의 놀라운 성과를 주목하면서 띄워 주는 논조가 가득했다. 리그 투의 과르디올라니―같은 낯 뜨거운 찬양에 다니엘 헌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껏해야 좋은 선수 영입한 게 전부다. 그 실력은 인정하지. 근데, 감독이 경기를 잘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단단히 준비했다. 상대의 손발을 완전히 묶어 둔다는 건 자만이고 허풍에 불과하다. 그저 상대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자신이 추론할 수 있는 부분으로 제한시키는 것.
다니엘 헌트는 대니 스콧을 핵심으로 봤다.
“그런데, 패스의 중심이 있다는 건, 그 중심만 지워 버리면 된다는 거거든?”
다니엘 헌트는 현역 선수 시절에 수비형 미드필더의 포지션이었다.
패스 줄기를 읽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선수 시절의 그의 장기는 감독이 된 이후에도 빛을 잃지 않았다.
“대니 스콧을 막으면, 승세를 가져올 수 있어.”
평범하게는 못 막는다. 하지만 스윈던은 막을 수 있다. 거친 색채.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은퇴를 번복한 노장에겐 부상의 위험만큼 두려운 게 있을까. 감독도 마찬가지. 저런 노장이 한번 다치면 복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커녕, 복귀 여부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리라.
‘그래서 후반전 들어서는 뺄 줄 알았는데.’
선택지는 두 개였다.
하나는 대니 스콧을 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니 스콧을 보호하는 것.’
다니엘 헌트는 선택지를 두 개로 좁히고, 강제했다. 그리고 유진은 후자를 택했다.
‘미드필더를 넣고, 양쪽 윙어도 중앙으로 모이고, 대니 스콧을 보호하고 패스를 살려 보겠다――. 그래, 여기까지 예측했다.’
다니엘 헌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예측대로 움직여 준다면야,
하나 그때였다. 다니엘 헌트는 유진이 제3의 선택지를 골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이렉트 패스?”
다니엘 헌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압박을 줄이고 롱볼에 집중하겠다?”
다니엘 헌트는 코웃음을 쳤다.
“하. 롱볼 축구가 쉬운 줄 아나?”
현대 축구는 세밀한 패스워크를 베이스로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킥 앤 러시로 대표되는 잉글랜드 축구는 올드하다 못해 그저 과거의 편린에 불과해진 시대다. 강한 압박을 이겨 내기 위해선 짧은 패스워크가 필수였고, 촘촘하고 강인한 상대의 수비를 뚫기 위해서도 공간을 파고드는 패스 줄기와 연계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롱볼 축구가 아예 자취를 감춘 건 아니다.
아직도 빅리그에선 롱볼을 베이스로 구사하는 전술가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래, 빅리그다. 빅리그.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전술가들이나 제대로 구현하고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게 롱볼인데, 그저 무작정 찬다고 롱볼이 되는 줄 알아?”
다니엘 헌트는 생각했다. 상대는, 역시 경험이 미숙하다고. 재능은 있지만, 결국 경험이란 건 무시할 수도, 재능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스윈던의 강한 압박과 거친 태클을 피해 한 박자 빠르게, 멀리 무작정 쏘아 보내는 롱패스.
뻐엉―!
온갖 태클과 압박 속에서 마치 걷어 내듯이 뻥 차올린 공.
그 공이 센터서클을 넘어 단숨에 어태킹 서드, 스윈던의 페널티 박스 인근에 단 한 번으로 떨어지는 순간.
거짓말처럼 해리 오스카가 공이 떨어지는 위치로 뛰고 있었다.
마치 자를 댄 듯 깔끔한 연결.
“……롱볼이… 된다?”
다니엘 헌트의 입가에 걸렸던 비웃음이 사라졌다.
* * *
“쓰리 톰이 잘해 줘야겠는데.”
막스의 말대로 전술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새로 영입한 세 명의 쓰리 톰은 후반전에 모두 대거 투입됐다.
수비수인 톰 뉴톤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한 라인 앞선 위치에 들어갔다. 심지어 공격수인 톰 도허티도 단단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미드필더로 투입됐다.
4-4-1-1의 포메이션.
좌우 미드필더도 중원에서 볼 경합에 참여하게끔 조정했다.
“전반 쉬었고, 의욕 넘치고, 그간 리그 치르면서 지친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지친 기색은 없고, 걱정스러운 건 도리어 경기 감각인데…….”
“의욕이 넘치니까. 경기 감각 문제는 상관없어. 이런 경기라면.”
“거친 경기라면 말이지?”
“경기 감각 부족으로 몸이 다소 굼뜨거나, 무리하게 공을 잡으려고 태클한다거나, 그렇게 카드가 나올 수도 있는 위험이 있지. 뭐, 오늘 주심이 카드를 집에 두고 와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막스가 피식 웃었다.
핵심은 저 셋이 아니다. 저 셋은 새로 쓰는 유려한 문장이었다.
아름답고 잘 쓰인 문장이든, 마침표가 표기되지 않으면 오탈자가 되는 법.
“스탠리가 잘해 줄까?”
마침표에게 가해지는 부담과 압력은 본인이 가장 잘 알 터.
“지금 핵심은 스탠리야. 전반전 같은 모습을 보여 주면, 이 전술은 말짱 꽝이야.”
막스는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고 손톱을 씹었다.
스탠리 본인도 그 사실을 알 것이다. 명석한 선수니까. 자신의 활약에 따라 이 경기의 승패가 갈린다는 걸 알겠지. 전반전에 그 끔찍한 경기력을 보여 준 선수를 교체하기는커녕, 중한 역할을 맡겼다.
만일 실패한다면, 이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물론 나나, 팀에겐 패배 한 경기겠지.
승점 3점을 잃는 것이지만, 몇 번 겪어본 패배,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하나 스탠리에겐 다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이 전술의 핵심에 녹아들지 못한다면, 그리고 패배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봐도, 팬들이 봐도, 패인은 하나로 귀결될 거야.”
안 그래도 팬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스탠리다.
잦은 부상과 간헐적인 경기 출전. 팬들이 좋아할 수가 없다.
후반전, 내가 준비한 변화는 명확하다.
팬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간결하다.
이긴다면 누구 덕분에 이겼는지, 패배한다면 누구 때문에 졌는지.
전부가 한눈에 보일 수밖에 없는 단순한 색채.
“알렌스키 코치의 말도 이해가 가. 전반전 저런 모습을 보여 준 선수를 보호해 주지 못할망정, 마치 이건…….”
“등 떠민 거지.”
“……스탠리, 여기서 한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어져.”
필드를 바라봤다. 머뭇거리는 스탠리가 시야에 잡혔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내가 데리고 온 건 프로 선수지, 케어가 필요한 아이가 아냐.”
“…….”
대니 스콧이 힘겹게 쏘아 보낸 롱패스가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수비진에서 상대 진영, 가장 위협적인 장소로 쏘아 보내는 환상적인 다이렉트 패스.
“선수에게 필요한 건 감독이야. 징징대는 걸 받아 주는 보모가 아니지.”
그 패스가 붕 뛰어오른 해리 오스카의 머리에 맞고 떨어지는 순간.
스탠리가 그 앞에 있었다.
나는 나직이 말했다.
“나는 선수를 데리고 온 거야. 애새끼가 아니고.”
“……!”
“그러니까 증명해야지. 내 밑에 있고 싶다면. 판도 깔아줬으니까.”
선수를 생각하는 덕장, 선수를 위하는 명장―
유감스럽게도, 나는.
“난 인내심이 대단하지 않아, 막스.”
착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