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7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74화(75/266)
74. 제2의 데이비드 베컴 (2)
믿는다. 널 믿는다.
할 수 있다. 너는 재능이 차고 넘친다. 찬란한 재능. 그게 너다.
차세대 잉글랜드를 대표할 유망주. 모든 빅클럽이 탐을 냈던 재능이 너다. 할 수 있다. 이겨 낼 수 있다. 매번 부상에서 이겨 냈잖아. 부상을 이겨 내고 뛰어왔잖아. 이번 경기도 마찬가지다…….
‘감독들 지도자 교육을 다 똑같은 데서 받나?’
후반전.
필드에 들어서던 스탠리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미소 같기도, 아니면 이죽거림 같기도 한 그 표정 너머로 침울함과 불안함이 뒤섞였다.
마주쳤던 감독들마다 했던 말이다. 다 비슷비슷했다.
‘레퍼토리가 똑같아.’
그랬다. 자신의 부상을 두고, 어떻게든 이겨 내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부상을 떨치고 경기에 뛰게 만들기 위해서, 의욕을 다지고, 북돋아 주기 위해서.
감독들은 그리 말해왔다.
어릴 때부터 자잘한 부상이 심했다. 끔찍했던 과거는 수년 전, 여기서 정점을 찍었다. 숨이 막혔다. 이 그라운드의 공기, 냄새, 분위기, 쏟아지는 관중의 욕설과 비아냥, 조롱, 하나도 변하지 않은 폭력적인 선수들의 플레이.
똑같다.
그때와 똑같다. 여기서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왔던 그때와 너무도 똑같다.
무릎이 아팠다. 아려왔다. 두 눈이 질끈 감겼다. 뼈가 부러지고 피부를 찢고 밖으로 뚫고 튀어나오는 감각. 뼈가 후덥지근한 공기에 닿는 그 몸서리쳐지는 감각.
‘제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한 발 뛸 때마다, 절그럭, 남아 있는 뼛조각이 근육을 헤집는 기분이다. 안다. 가짜다. 환상통이다. 트라우마다.
‘도망치고 싶다.’
전반전 내내 들었던 생각.
몹시 부끄럽게도, 아니 수치스럽다는 감각도 없을 정도로 스탠리는 내내 공포에 젖었다 아무것도 못 했다.
동료 선수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넘어지고, 아득바득 일어나서 공을 차고, 뺏고 그 치열한 싸움을 멀찍이 지켜봤다. 이 순간, 그는 맨스필드라는 팀에 소속되지 않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이건 교체다. 무조건 후반전 칼같이 교체다. 자기가 감독이라도, 이런 멍청한, 미련한 놈 억지로 안 쓴다. 이 새끼, 겁에 질려서 벌벌 떠는데 당연히 교체다.
그래 왔다. 지금까지 모든 감독이 그랬다. 가장 마음을 두고 열었던 불독 감독마저, 지금 이런 순간에는 안쓰러운 얼굴로 자신을 교체했었다.
그럴 거다.
이번 감독도, 남다르다고, 이상하다고, 그렇지만 대단하다고.
동료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는 이 팀의 감독도. 유진도. 가차 없이 자신을 쫓아내리라. 라커룸에서 자신만 따로 부른 순간, 스탠리는 두 눈을 감으면서 놀랍게도 후련함을 느꼈다. 아, 교체구나.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구나―
―선수가 아닌, 선수를 택한 나를 믿으세요.
감았던 스탠리의 두 눈이 다시 떠졌다.
“이 개자식들! 어깨 위에 있는 게 축구공이 아니라고!”
“압박해!”
치열했다. 후반전 투입된 쓰리 톰은 넘쳐나는 체력으로, 주전 경쟁에 나서는 의욕으로 강한 압박과 엄청난 활동량으로 중원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상대와의 중원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똑같이 맞불을 놓았다.
쓰리 톰의 처절한 보호 아래, 대니 스콧이 공을 잡았다.
차악―
스탠리의 눈이, 뻐엉, 하늘 높이 솟구치는 공을 따라갔다.
―저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이 경험할 무수한 리더 중에 최고입니다.
그것이, 전반전 내내 부상 트라우마에 시달려 아무것도 못 하던 선수에게 하는 말이었다.
처음이라서, 낯설어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모르겠다. 그 말이 머릿속 깊숙이 들어왔다. 믿는다는 것엔 책임이 있어야 한다.
나를 믿으면, 실패했을 때의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진다.
감독은 자신을 믿으라고 했다.
선수 기용에 결국 모두 책임을 질 거라는 말처럼 들렸다.
“막아! 뛰어!”
“역습이다―! 수비 복귀하라고, 이 머저리들아!”
발악과도 같은 스윈던 선수들의 비명.
공이 포물선을 그렸다. 아름다운 궤적이다. 공 위로 드리워진 햇빛이 눈을 따갑게 때렸다. 하지만 스탠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감지 않았다. 공을 쫓았다. 공이 떠오른 오스카의 머리에 맞았다.
―저는 스탠리 선수를 계속 기용할 겁니다. 후반전 전술 변화는 스탠리 선수가 핵심입니다. 무얼 믿냐고요?
왜 자신이 후반전 계속 가야 하는지. 교체당하는 게 아니라 전술의 핵심으로 우뚝 서야 하는지, 그 의문을 품은 시선을 비췄을 때.
감독은 말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이 제2의 데이비드 베컴이란 소릴 듣던, 그 찬란한 재능을 품은 유망주라고 생각합니다.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유망주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곧 서른하나.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유망주라니.
어설픈 소리다. 자신을 어떻게든 다뤄 보려는 조악한 속셈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다리에서 느껴지던 그 끔찍한 고통이 사라진 듯했다. 무릎이 꺾이고, 발이 땅을 디디다가 크게 때리며 박차고, 거짓말처럼 공을 향해 달려가는 그 움직임에서.
투웅―!
약속했던 플레이가 나왔다. 다이렉트 패스, 오스카의 헤더, 떨어지는 공, 그리고 스탠리.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짓을 펼치는 스윈던 상대로 짧고 아름다운 패스는 장난감 칼을 휘두른 것과 같다. 묵직한 해머를 단 한 번에 휘두르는 것. 그것이 이 상대를 부수는 방법이다.
―단 한 번에 연결된 다이렉트 패스! 해리 오스카가 떨어뜨린 공을 스탠리가 달려와 잡습니다! 단 두 번의 패스로, 득점 기회를 만들어 내는 맨스필드!
착, 공이 발바닥에 달라붙는 치열한 감각.
이거다. 무릎의 고통 따위가 아니라, 선수로서의 감각.
“……!”
비명, 함성, 야유, 환호.
모든 감정이 지금 스탠리에게 쏟아진다. 적들의 비명과 발악, 아군의 응원과 의지.
이거였다. 자신이 바라고 기다렸던, 그 감각이 되돌아온 찰나.
공간 너머로 스크래치가 강렬한 선수 하나가 저돌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사람을 죽일 듯이, 시퍼렇게 노려보면서.
사라진다. 공을 잡는 그 감각이 사라지고, 끔찍한 고통이 끈적하게 다시금 달라붙는다.
‘그놈이다.’
로드릭스.
자기 무릎을 아작내고도 고작 4경기 출장 금지 징계만 받고 푹 쉬다가 복귀했던 그 자식. 그 쓰레기가 오고 있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경기장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다. 몸이 굳었다. 또 볼 것이다. 저 수많은 사람의 시야에 또 같은 그림이 나올 것이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공을 뺏기고 자신은 고통에 울부짖는 그 모습이…….
저 관중들의 눈에 똑똑히 보이겠지. 온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다. 로드릭스는 그 짧은 시간 만에 정면으로 도달했다. 함성과 야유, 귀가 먹먹하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세상이 아득하니 멀어지는 감각.
“망할.”
지독한 트라우마. 공포가 뇌리를 감싸는 그 기분.
술에 취한 듯,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눈앞이 가물거리는 순간.
“오, 밤비, 내 아가!”
귓가를 파고드는 부드러운 브라우니 같은 목소리.
그 순간, 아득해지던 시야가 맑아졌다. 자신을 향한 경기장의 모든 시선. 그중에서도 단 한 명이 거짓말처럼 줄로 쭈욱, 당기듯 확대되어 시야에 잡혔다. 백발이 성성하고, 벌떡 일어나서 아이처럼 순박하게 웃으며 방방 뛰고 박수를 치는.
“할머니?”
* * *
“그렇다면 잘못 오신 거예요. 우리 할머닌, 경기장을 무서워해요.”
“압니다.”
“안다고요? 지금 우리 할머니가…….”
“스탠리 선수의 끔찍한 부상을, 할머니가 경기장에서 직접 보셨죠.”
“……!”
“예, 그때 그 경기장, 그때 그 팀, 그때 그 선수와 경기를 치릅니다.”
“그럼!”
“그리고 전 스탠리 선수가 트라우마를 겪든, 공포를 느끼든, 질질 짜고 울부짖든, 그 경기에 집어넣을 겁니다.”
“!”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여성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스탠리의 콧대와 눈망울이 똑같다 싶을 정도로 닮았다. 스탠리의 눈을 보는 듯했다. 감독에게 존중이 가득했던 스태린의 눈과 달리, 여자의 동공에는 혐오감까지 가득했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경기가 그 경기였어요. 그때 할머니가 받으신 충격이, 어떤지, 아시기나 하세요? 그 충격으로 쓰러지시고, 치매증상이 찾아왔다구요. 네?”
“…….”
“그런데 그 경기장에 다시 와 달라고요? 그리고 그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내 동생을 기어코 그 경기장에서 뛰게 할 거라고요?”
“…….”
“그걸 와서 지켜보라니, 이건 정말…….”
대답 대신 나는 가만히 바지 밑단을 올렸다. 품이 넉넉한 바지라 무릎까지 올리는 데 문제없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는지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잃었다.
동공이 흔들렸다. 차가운 눈빛이 순간 흐려졌다.
무릎을 종으로 가로지른 듯한 실선. 마치 쪼개진 무릎을 바느질로 기운 듯한 그 흔적.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저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내 찬란했던 십 대를 보냈던 축구를 떠났습니다.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죠.”
침묵이 인다.
그녀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상관없다. 나는 그저 내 할 말만 하면 됐다.
“하지만 스탠리는 일어났습니다. 그건 숫제 기적과도 같아요. 압니다. 트라우마. 사람들이 흔히 저를 독설가, 냉혈한이라고도 합니다. 독재자처럼 무자비하다고도 하죠. 예. 나름 의지력은 갖췄습니다. 그런데요, 그런 저도 이겨 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입을 달싹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문장이 정제되지 않은 듯 끝내 말하지 못했다.
“나는 스탠리를 존경합니다. 아니, 부러워합니다. 끔찍한 부상에도 이겨 내고 선수로서 복귀했죠. 나처럼 겁쟁이처럼 도망치지 않았으니까. 그 용기, 그 모든 걸 갖췄는데, 찬사받아야 마땅한 의지력인데, 기어코 선수로서 포기하지 않는 대단한 자세인데도, 스스로를 겁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일까.
강철같은 의지로 복귀했으면서, 마지막 트라우마 앞에서 왜 끙끙 앓는 것일까.
“두려움을 이겨 내게 해 주는 건, 가족이죠. 그런데, 그 가족이 지금 같이 정면으로 싸우기는커녕, 외면하고 도망치고 있어요.”
“…….”
“경기장 티켓입니다.”
성인, 티켓 두 장.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전부였다.
* * *
―잉글랜드 최고의 유망주 50인! 그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브랜들리 스탠리!
―빠른 스피드, 정교한 킥, 제2의 데이비드 베컴!
―스탠리의 친할머니, “내 손주는 내가 어릴 적 봤던 베컴과 똑 닮았어!”
―17세의 스탠리, 잉글랜드 U-20 대표팀 선발!
찬란했었다.
그의 과거는.
할머니는 자신이 어릴 적 그토록 쫓아다니고 좋아했다던, 데이비드 베컴을 자신의 손주에게 붙여 준 뉴스 기사를 보고 아이처럼 웃어댔다.
그 웃음이 좋았다.
오직 헌신과 사랑으로만 키워 주신 그분의 입가에 핀 웃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축구뿐이라는 걸 그 웃음을 보고 알았다.
―자잘한 부상에 시달리는 스탠리, 연령대 대표팀 연이은 낙마.
―계속된 부상 악령, 스탠리 아스날 유스팀 방출, 챔피언십 허더즈필드 이적.
―시즌 11경기 289분 출전, 먹튀 논란 스탠리? 또 방출당하나?
―잊혀진 유망주의 좌절, 부상은 천재를 시기한다.
순식간이었다.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다. 재능을 품었던 선수가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은 축구계에서 흔하디 흔한 일이다. 틀에박힌 것처럼 늘상 벌어진다.
무수히 많았던 제2의 메시, 제2의 호날두가 다 사라진 이유와 같다. 제2의 데이비드 베컴, 스탠리도 마찬가지였다. 자랑스러운 칭호가 아니다. 차라리 조롱에 가까운 부름이다.
단 한 명만이, 끝까지 그 부름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베컴도 부상당하고 좌절한 적 있을 거야. 그때와 똑같은 거지, 뭐!”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할머니께선, 스탠리를 끊임없이 북돋아 줬었다.
때문일까.
―잊혀진 유망주, 스탠리. 포레스트 그린 이적!
―부활의 신호탄? 스탠리 8경기 4골 2도움 활약!
―리그 원을 뒤흔드는 스탠리의 전력 질주, 늦게 피어난 꽃이 될까.
―제2의 데이비드 베컴, 리그 원에서 부활하다.
할머니의 바람과 응원에 보답하고 싶어서 스탠리는 뛰었다.
그토록 괴롭혔던 부상 악령도 마치 떠난 듯, 세상이 아름답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경기는 이겼고, 매 경기 활약했으며, 스탠리의 플레이는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그날.
그 끔찍했던 부상을 당하기 전까진.
늘 경기장에 찾아오셨던 할머니가, 뼈가 툭 튀어나오며 자지러지는 자신을 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경기가 할머니가 직접 보시는 마지막 경기였고, 거짓말처럼 치매 판정받아 요양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 세상의 모든 불행이 인생에 들이닥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경기장을 찾는 할머니를 보지 못했다.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하고 복귀한 뒤에도 할머니는 이제 어느덧 자신을 기억조차 잘하지 못했다.
경기장 한 켠에서 늘 응원하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
어떻게든 경기장에 돌아오려고 필사적이었던 그 노력이 마디 물거품처럼 사라진 듯했다.
잊혀지기 싫었다.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부상이 무서웠다. 한 번 더 쓰러진다면. 그리고 뛰지 못하게 된다면. 할머니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세상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부상을 당하는 게 두려운 겁니까 아니면 필드 위에 서지 못하는 게 무서운 겁니까.
감독은, 그런 자신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 쿡 찔렀다.
―그도 아니면 팬들이, 당신의 이름을 찾지 않을 그 순간이 올까, 두려워하는 겁니까?
칼날로 속을 후벼 파듯, 아팠다.
―그러면 영원토록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세요.
영원토록 기억에 남는다고? 무수히 쏟아지는 재능과 천재 선수들이 있는데도?
―방법은, 아실 겁니다.
그 확신 어린 눈빛.
설명도, 조언도 필요 없으리라는 담담한 눈.
“밤비, 우리 아가―!”
그랬다. 저 함성과 야유에서도, 거짓말처럼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처럼.
치매를 앓는 할머니는.
“베컴! 내 손주가 베컴이야!”
기억한다. 자신의 별명, 자신의 플레이, 그리고 그분의 자랑스러운 손주이자 뛰어난 재능을 품은 선수라는 사실을.
그 순간, 발바닥의 감각이 돌아왔다.
투웅―!
매끄러운 표면이, 두꺼운 스터드에 가로막혔는데도 그 질감이 느껴진다.
후욱, 달려오는 로드릭스의 거친 숨결이 고막을 파고든다.
투웅, 툭!
“Yeeeeeaaaaaaaaaa―!”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공이 발끝에 붙은 듯, 아름다운 드리블. 그러면서도 쭉쭉 뻗어나가는 전진. 로드릭스는 정면으로 달려오는 스탠리의 모습에 잠시 당혹해하다가도, 기이한 눈빛을 보내면서 마주 달렸다.
스탠리도 달렸다. 공간은 넓다. 그리고 그 공간에 사람 한 명뿐이다. 도망칠 이유도, 피할 이유도, 멀뚱히 서서 다른 곳에 패스할 이유도 없다.
지금 이 공간.
‘내 공간이다.’
득점 기회.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명백한 득점 찬스.
화려한 드리블도, 페인트도, 개인기도, 속임수도 없다.
오로지 명백한 직선.
그가 가장 잘하는, 스탠리의 직선 드리블이 페널티 박스에 도달하는 찰나.
로드릭스가 몸을 날리며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
소리는 들리지 않으나, 경악과 분노로 범벅되는 선수들의 표정이 느껴진다.
치켜든 발. 햇빛을 만나 섬뜩하게 반짝이는 스터드의 날.
스탠리는 이를 악물었다. 똑같은 놈. 레퍼토리도 변하지 않는 놈. 반칙도 공부해야지, 여전한 놈. 한번 당한 그 반칙, 똑같이 당할 것 같더냐.
스탠리의 눈에 불이 타올랐다.
화르륵, 그 불길이 전신을 휘감은 듯 근육이 팽배해졌다.
투웅, 툭. 일순 대각선으로 빠져나가는 공. 터질 듯 부푼 허벅지 근육이 과거, 그가 장기로 삼았던 폭발적인 스피드를 지금 일깨웠다.
“비켜.”
나직한 속삭임. 그리고 일시에 터져 나오는 감정.
태클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스피드로 대각선으로 빠지며 피하고, 동시에 그의 왼발이 땅을 딛으며 찍어 눌렀다.
“커허어억!”
끔찍한 비명. 고통에 입을 쩍 벌리며 올려다보는 그 눈을 내려다보며, 스탠리는 허벅지를 지그시 밟고 난 뒤에 계속해서 뛰었다.
페널티 박스 왼쪽, 허벅지를 밟은 왼쪽 발로 다시 땅을 딛고, 당황하는 골키퍼의 우측 틈을 정확히 노리는 레이저 같은 직선 슛.
뻐엉―!
공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그물을 찢어 버릴 듯 골문에 박혔다.
슈팅을 차고,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는지 보지도 않은 채, 스탠리는 뛰었다.
“밤비! 내 아가!”
할머니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