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76)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75화(76/266)
75. 제2의 데이비드 베컴 (3)
삐빅―!
냉탕과 열탕이 교차하는 기분이 이럴까. 호쾌한 동점골에 기립하며 양팔을 번쩍 들었던 맨스필드 팬들은 올린 팔 그대로 머리를 부여잡고 아쉬움의 탄식을 토했다.
“노골이라니!”
“이게 골 취소라고?”
“심판 이 개자식아!”
득점에 주먹을 높이 치켜들던 맨스필드 선수들은 그 주먹으로 심판을 때릴 것처럼 항의했다. 하지만 심판은 꼼짝도 안 했다.
형편없는 경기 진행을 보였지만, 방금 판정은 사실 정당했다.
―맨스필드의 동점골이 무효 처리된 거죠? 아, 심판. 스탠리와 로드릭스 선수 경합 중, 스탠리 선수가 파울을 범했다는 판단이에요.
―맨스필드 팬들 야유를 보냅니다! 반면 홈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면서 손뼉을 치네요! 느린 화면으로 봐 볼까요, 오, 이런, 스터드로 허벅지를 찍었네요! 괜찮을까요, 로드릭스 선수?
―스탠리 선수에게 경고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스탠리 선수…… 아, 골 취소에도,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 가족 같죠?
골 취소가 됐음에도, 골 세레머니를 하듯 원정석으로 향했던 스탠리는 필드에 복귀하지 않았다.
워낙 낮은 담장이라서 몸만 기울이면 선수와 관중이 접촉할 수 있는 구조.
스탠리는 자기보다 작은 할머니를 꼭 안으며 이를 악문 채였다.
“밤비, 우리 밤비, 베컴이야, 베컴―!”
가족을 품에 꼭 안던 스탠리는 입술을 깨물면서 할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할머니, 기억나요?”
“으응?”
“나 프로 데뷔전. 기억나?”
“…….”
어리둥절한, 도리어 애 같은 순박한 웃음만 짓는 그 모습에 스탠리는 쓰게 웃었다.
“기억나게 해 줄게. 똑같이 보여 줄 테니까.”
삐빅, 삑.
더는 경기를 지연하는 걸 봐주지 못하겠다는 듯, 심판의 휘슬이 귀에 틀어박혔다. 스탠리는 자신을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듯이 부족한 힘으로 꼭 쥔 할머니를 간신히 떼어 내며 말했다.
“계속 잊어 버려도 상관없어, 계속 기억나게 해 줄 테니까.”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더는 부상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다친다면, 또 필드에서 쓰러진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기억하고 계셨다. 아주 단편적이지만, 분명하게도.
그래 무슨 상관인가.
―영원토록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세요. 그러면 잊혀질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 담담한 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마치 밥을 어떻게 먹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고민 없는 태도.
―방법은, 선수가 잘 아실 겁니다.
“그래, 잘 알죠, 감독님.”
스탠리가 시퍼런 안광을 토했다.
아득 깨무는 그 이빨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가 파고들었다.
* * *
동점골 취소는 확실히 아쉬웠다. 이쪽으로 돌릴 수 있는 맨스필드의 분위기가 다시 애매해졌으니까. 하지만 선수들의 눈이 반짝였다.
‘통했다.’
‘방금 통했어.’
‘이게 된다고?’
어안이 벙벙한 기색을 애써 감췄다. 다행히도 뚝뚝 흘러내리는 땀과 젖은 머리칼이 표정을 어느 정도 가려줬다. 만일 감추지 못했다면, 상대 팀은 방금 전 플레이가 일종의 운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아니, 뻥축구가 왜 뻥축군데.’
‘이게 통하면 다 하지. 안 그래?’
‘왜 현대 축구의 대세가 세밀한 짧은 패스가 됐는데?’
특히 후반전 대거 투입된 쓰리 톰들은 당혹을 감추기 어려웠다.
사실 교체 투입을 앞두고 기대했다. 유진 감독이 지고 있는 경기를 어떻게 뒤집을 것인지. 어떤 신묘한 전략으로 역전극을 펼칠지. 절묘한 한 수로 상대의 의중을 어떻게 꿰뚫을지.
―그러니까, 결국, 미친 듯이 뛰고 압박해서 뻥축구 하라는 거 아냐?
후반전 전술 변화는 그들에게 당황스러움과 실망감을 안겨줬다.
아무리 설명하고 지침을 분석해도 간단했다.
세 명의 쓰리 톰은 중원에서 상대에게 맞불을 놓는다.
미친 듯이 뛰고 압박하고, 도리어 거칠게 맞대응한다.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을 극한까지 끌어 쓴다. 그리고 공을 뻥 찬다.
그게 전부였다. 소위 뻥축구였던 셈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다만 그들이 당황한 건, 다른 선수들은 마치 그 계책이 절묘한 한 수라도 되는 것처럼 귀를 기울였다는 사실. 단 조금의 이견도 내비치지 않는 철두철미한 믿음.
어째서일까. 고작 뻥축구를 지시하는 건데.
“너희 셋은 오늘 내가 키우는 맹견이야!”
대니 스콧이 선언했다.
쓰리 톰은 기분이 묘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연장자이기도 했을뿐더러 팀에서 가장 화려한 커리어, 타고난 실력과 줄줄 흐르는 오만함은 왠지 모르게 그에게 권위를 가져다줬다.
“들어오는 놈들, 위협하고, 달려들고, 물어뜯어야 해.”
쓰리 톰은 그 말을 철저하게 따랐다.
대니 스콧은 한 번 더 되새겨 준 것에 불과하다.
이미 하프 타임 때 감독이 했던 지침이었으니까.
세 명은 거침없이 중원에서 싸웠다. 쓰리 톰 중 가장 장신, 톰 뉴톤은 본래 포지션이 센터백이지만 3선인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할 줄 알았다.
톰 뉴톤은 상대 선수가 거칠게 어깨를 들이미는 순간 깨달았다.
뒤에 공을 몰고 오는 선수를 위해 공간을 만들겠다는 판단.
그 의도를 읽었는데, 그대로 내버려둬야 할 필요는 없다.
톰 뉴톤은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빠악, 타격음과 함께 상대가 짐짓 비명을 내질렀다. 반칙이지 않냐는 억울함이 표정에서 묻어났지만.
톰 뉴톤은 히죽 웃었다.
‘너희들만 거친 플레이할 줄 알아?’
다 안다. 프로 선수라면 거칠고 폭력적인 플레이 다 할 줄 안다.
안 하는 이유? 경고와 퇴장이 두려워서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 안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비단 그뿐만 아니었다.
“막아! 달려들어!”
“태클해! 공 못 뺏을 거면 몸이라도 던져!”
“물어!”
“물긴 뭘 물어!”
거칠 것 없던 스윈던의 플레이에 금이 갔다. 톰 뉴톤을 비롯한 쓰리 톰이 맹견처럼 날뛰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훌륭한 태클 실력을 갖추진 못해 공을 뺏진 못했지만, 상대를 아프게 하는 법은 알았다.
세 명의 미드필더가 중원에서 몸을 날리며 좁은 중앙으로 공간을 제한했다. 좁은 공간에서 여섯, 일곱 명이 부딪쳤다. 심지어 그 전부가 서로 죽일 듯이 태클하고 몸을 부딪칠 정도로.
협소한 공간에서 공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테크니션이 몇이나 있겠는가. 혼란과 폭력, 땀과 비명, 그 사이에서 공은 주인이 수도 없이 바뀌며 발과 발을 오갔다.
그리고 어느 발에 도착한 순간.
차악―!
공은 거짓말처럼 주인 없이 떠돌지 않았다. 드디어 정착한 것처럼, 발끝에 붙어 멀어지지도, 떨어지지도 않았다. 대니 스콧은 공이 발에 붙은 것 같은 묘기를 부렸다.
툭, 툭!
스윈던의 터프한 박투박 미드필더(Box to Box) 고메즈는 눈에 불을 켰다.
―대니 스콧만 공 못 잡게 해!
스윈던의 유일한 전술 지침이자 이번 경기의 핵심. 썩 괜찮은 태클과 강인한 근육을 가진 그는 전반전 대여섯 번씩이나 대니 스콧을 잔디와 키스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그리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가 대니 스콧의 앞을 막으려는 순간.
“물어! 물어뜯어!”
“월―월, 월!”
“미, 미친놈들. 왜 진짜 개처럼 짖어!”
대니 스콧의 맹견 삼인방, 쓰리 톰이 얽혀 들어왔다.
퍼억! 빠악!
한 명은 무릎을 들어 엉덩이와 골반을. 한 명은 어깨를 낮게 부딪치다가 위로 훅!
“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애석하게도 그 정도로 심판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름 명심판일지도 모른다. 전반전 스윈던의 폭력을 용납했던 심판은, 맨스필드의 폭력도 막지 않았다.
―반칙? 반칙은 선수에게 하는 거지, 못난 놈들에게 하는 건 계도이자 교육입니다.
―경고요? 까짓것 받으세요.
―퇴장? 상대방 한 명 이상 때려눕혔다면 괜찮습니다. 제가 허락합니다. 퇴장당해도, 이번 경기는 구단 자체 징계는 없습니다.
쓰리 톰은 아직 이 팀에 대해 다 파악하진 못했지만.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게 축구지.’
늘 부족한 패스 실력에 자격지심을 느꼈던 셋은.
패스보단 태클, 태클보단 터프함을 주문하는 유진 감독이 마음에 쏙 들었다.
뻐엉―!
대니 스콧의 맹견, 쓰리 톰이 적들을 무자비하게 물어뜯는 순간.
공간을 만들어 낸 대니 스콧은 한번 전방을 바라보고, 망설임 없이 공을 차올렸다.
소위 ‘패스를 뿌렸다―’라는 표현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시원한 롱 패스.
패스의 끝에서 해리 오스카가 뛰어올랐고.
“빌어먹을, 또!”
“막아! 똑같은 짓거리에 당하지 마!”
후반전, 취소된 골 장면과 똑같은 장면이 리플레이 되듯 재생되었다.
하나 그때와 다르다는 점은.
“마, 막아!”
“Hooooooooooooow―!”
폭발적인 스피드, 쭉쭉 뻗어가는 드리블, 그리고 완벽한 킥의 소유자.
“브랜들리―스탠리!”
스탠리가 과거의 재능을 화려하게 꽃피우기 시작했다.
늦게 핀 꽃의 꽃잎이.
골문을 들어가는 공 위에 살포시 가라앉았다.
* * *
삼연벙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내가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도피성 휴식을 취하러 한국에서 지냈을 때 들었던 말인데―
대충 말하면, 똑같은 전략에 똑같이 당하면 분노가 더 크게 치솟는다는 말이다.
“저놈들, 저놈들 반칙하잖소! 심―판!”
자기네가 반칙할 땐 능청을 떨던 다니엘 헌트는 다급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대기심에게 항의하다 못해, 이쪽을 바라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소리쳤다.
“지금 저 플레이, 그쪽이 지시한 거지? 어?”
나 참.
축구판의 내로남불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니까. 뻔뻔한 모습에 내 뒤에 있던 알롭이 헛웃음을 켜며 한 발짝 다가왔다. 그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혹시 집에 개 키우십니까?”
“……뭐라구요?”
뜬금없는 말일까. 넥타이를 거칠게 풀던 손이 우뚝 멈췄다.
잘생긴 얼굴이다. 스타 플레이어의 기준에 외모 점수가 있다면 고득점을 받을 만한 얼굴엔 미약한 흥분과 분노 따위가 뒤섞였다. 그러나 그 너머에, 아주 희미한 불안함이 보였다.
동점.
적의 지휘관은 불안해하고 있다.
씩,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걸 조롱이나 비웃음으로 받아들였는지 다니엘 헌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입을 열어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그의 호흡을 끊고 불쑥 말했다.
“개는 말입니다.”
“……갑자기 무슨 개 같은 얘기를”
“공 하나만 던져 주면 하루 종일도 뜁니다. 체력이 닿는 한 말이죠.”
그러면서 필드를 바라봤다.
거칠게, 저돌적으로, 공을 노리는지 선수의 발목을 노리는지.
폭력과 거친 플레이 가운데에서 뛰는 스윈던의 선수들.
다니엘 헌트의 얼굴이 굴욕감으로 일그러졌다.
“지금 내 선수들이 개라는 겁니까? 어?”
“그런데 막상 그토록 원하던 공을 차지하면요, 그걸로 뭘 할지를 몰라서 주인에게 물어서 그대로 돌려줍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다가오는 다니엘을, 코치와 심판이 끼어들어 말렸다.
“예, 당신들입니다. 어디 개처럼 죽어라 뛰어 보세요. 결국 공은 우리가 가지고 있을 테니까.”
“당신, 너……!”
삐빅, 삑삑―!
대기심이 달려와 사이를 가로질렀다. 씩씩거리는 다니엘이 죽일 듯이 노려보는 시선이 등판에 꽂혔다. 뭐 어쩌겠는가. 뛰어들면 감독도 퇴장인데.
알롭 코치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름 신사로 유명하신데―”
내가 평소 하지 않던 도발에 우리 코치들도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처럼 뛰지 않는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허허.”
알롭이 흘깃, 내 눈치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형편없는 심판의 경기 진행, 욕설과 조롱만 쏟아내는 홈 관중, 동업자 의식이라곤 쓰레기통에 처박은 듯한 스윈던의 플레이.
“누가 봐도 개판이지 않나요?”
“화나셨군요, 감독님.”
“……그렇겠죠. 전 저런 축구로 선수를 다치게 하는 선수나, 코치나 좋아하지 않거든요.”
나는 어쩐지, 아려오는 듯한 애꿎은 무릎을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