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79)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78화(79/266)
78. 내 팀에 베컴은 없다 (2)
본래 우리 팀 팬들은 순박한 편이었다.
한 경기만 승리해도 그 기쁨으로 주말 내내 맨스필드 시내는 흥겨운 분위기가 가득할 정도였다.
고작 한 경기 승리만으로도 말이다.
그만큼 맨스필드는 패배 의식에 찌들었던 팀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어이가 없어. 정말로. 선수단이 이런데, 우리가 무슨 전승 우승이니, 무패 우승이니 할 수 있나? 알 만한 사람들이 더 유난이라니까. 정말.”
아침의 일상.
토스트와 신문을 들고 릴리의 사무실에 출근해서 담소를 나누는 루틴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간단한 신변잡기, 구단 얘기, 팬들 반응…….
바쁜 와중에도 꼭 필요한 자리였다. 애당초 바쁜 사람이 나뿐만 아니라 릴리도 마찬가지다. 릴리는 다방면에서 일하고 있었다.
본업인 양조장 사업은 물론.
작은 구단이지만 구단의 대소사를 모두 직접 처리하고 발로 뛰고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맨스필드는 서포터즈 조합이 운영하는 축구 클럽이다.
릴리는 구단주임과 동시에 서포터즈 조합의 회장이었다.
곧.
“지금 리그 1위라고, 1위! 그 지독한 박싱데이도 얼마나 훌륭한 성적이야? 스윈던 같은 애들 상대로 이겼고. 그런데 최근 세 경기 좀 힘들었다고…… 진짜, 아주!”
차를 홀짝이던 릴 리가 작은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팬들의 여론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었다.
서포터즈와 구단이 밀착된 상태라 여론 수렴이 쉽다는 장점과 동시에 팬들도 그걸 알아서 은연중에 자주 구단을 압박할 수 있다는 단점.
릴리는 지친 표정을 지었다.
“세 경기 승리가 없다고, 정말 은근히 불만을 드러내는데…… 그럴 거면 그냥 경기장에서 야유를 하던가!”
확실히 릴리의 말대로 리그 초반과 지금의 반응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순박하다면 순진할 정도로 작은 승리에도 세상 모든 걸 얻은 듯 기뻐하던 팬들은 이제 없었다.
더 많은 승리, 연승, 시원한 질주.
“뭐야, 이게. 이제 다들 눈이 높아졌다, 이거지? 이러다가 몇 경기 성적 더 안 나오면 감독이 어떠니, 이런 소리도 나오겠어.”
내가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자, 화를 내던 릴리의 눈썹이 휙 솟구쳤다.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먼저 답했다.
“난 이게 더 좋아.”
“으응?”
릴리가 눈을 끔뻑거렸다.
까탈스러운 팬들이 더 좋다니.
실제로 이런 일은 꽤 많다.
아니, 거의 모든 클럽이 다 그렇지 않을까.
“좋은 감독이 와서 팀을 훌륭하게 만들어내면, 그 감독이 실수를 하거나 성적이 좋아지지 않을 때 예민하게 반응하는 팬들이야 어디에나 있어. 감독 입장에선 억울하지. 내가 해 준 게 얼마인데.”
“그러니까! 유진, 네가 해 준 게 얼마인데!”
릴 리가 미약하게 흥분했다. 아무도 오지 않은 팀에 부임하고, 분데스리가 구단을 저버리고 왔고, 선수단 개혁했고, 리그 1위 달리고 있고…….
가만히 있으면 끝도 없어질 것 같아서 끼어들었다.
“어쨌든 승리를 서서히 당연시한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 팀은 원래 그런 팀이 아니잖아? 반년 전만 해도 감독조차 구하지 못했던 팀인데…….”
릴리는 이성적이고 착한 친구다.
그런 릴리가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어렴풋이 느꼈다.
바로 나.
구단의 프런트든, 회장이든, 이사회든, 그 어디든.
축구 클럽에 대한 여론 압박의 중심에는 무조건 감독이다.
성적이 안 좋으면 감독 탓.
선수들이 부진하면 감독 탓.
어쩔 수 없다. 축구는 감독놀음이라는 말이 종종 통용될 정도로 감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여튼 가장 많은 비난의 화살과 비판, 압박을 버텨야 하는 건 감독인 나다.
릴리는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구단주로서, 그리고 나의 강력한 지지자로서 이 상황에 조금은 걱정하고 있다. 지금이야 가벼운 불만 정도다.
하지만 정말 어느 순간, 나 역시 슬럼프를 겪는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면, 막말로 해리 오스카, 대니 스콧, 스탠리, 제임스, 젠킨슨 이 선수들이 동시에 부상당하고 시즌 아웃당하면 나라고 별수 있겠나.
그런 억울한 상황이 온다면, 팬들의 압박은 지금보다 더 거세질 것.
릴리는 그 점을 우려했다. 순박하기 짝이 없는, 늘 봐 왔던 맨스필드 팬들의 변화에 조금은 충격받은 것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심각하게 상황을 여기는 릴리의 모습에 나는 가볍게 농담처럼 말했다.
“릴리. 좀 실망인데.”
“뭐어?”
릴 리가 당황했다. 허둥지둥하는 동공이 살짝 웃겼다.
“승리를 당연시하는 팀. 경기장에 가는 그날은 즐거운 결과를 받아들여야 마땅한 팀. 매 주말 승리를 기대하며 펍과 거실 티비에 분분히 보여 친구랑 가족끼리 함께 즐길 수 있는 팀.”
“……!”
“우리 맨스필드는 그렇게 변하고 있는 거야.”
“당연한…… 변화라는 거야?”
“그래. 언젠가 찾아올 변화였어. 당연히 올 변화지. 약팀의 팬에서, 강팀의 팬으로 변모하는 과정.”
“…….”
“단점도 많겠지. 당장 뭐, 한 경기 졌다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빅클럽들만 봐도. 근데 좋은 점이 더 많아.”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팬.
“경기에 질 것 같으면 충성 팬들이 아닌 이상 경기장을 찾기 어렵지.”
“……!”
“혹시나 질까 봐. 겨우 시간 내서 경기장 찾아갔는데, 경기에 지고 주말 내내 기분이 나빠질까 봐. 구단 굿즈? 유니폼? 질 팀인데 돈 아깝게 그걸 왜?”
릴리의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
그녀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최근 구단 좌석 점유율만 봐도 70%는 넘겨. 80% 넘게 찬 적도 있고. 저번 FA컵은 거의 만석이었어.”
“지갑을 여는데 망설임이 없어지고, 원정에 동행하는 팬들도 많아지지. 그들 한 명, 한 명의 충성심이 더 강해지는 거야.”
“!”
“그래, 릴리. 맨스필드는 강팀이야.”
릴리의 표정이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변했다.
일그러지는 것 같기도, 즐거워하는 것도, 또는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왜 울먹여?”
“아냐, 크흥.”
코를 먹는 모습에 손수건을 건넸다.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그간 설움이 있었던 것일까. 릴리는 충혈된 눈을 손수건으로 콕콕 찍었다.
“크흥, 내가 어릴 때, 아빠 따라 경기장 찾아갈 때부터. 너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거 구경할 때부터. 이 팀은 강팀일 때가 없었어.”
맨스필드는 최대 챔피언십까지 진출했던 팀이다.
과거, 어느 구단주가 나름 의욕적으로 투자를 한 결과.
하지만 그 어느 순간에도 맨스필드는 강팀이라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건 당시 유소년으로 훈련받던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물론 아직 우리는 갈 곳이 많지만…….”
“변하지 않을 거야. 리그 원으로 올라가서도, 챔피언십, 프리미어리그까지 가서도. 우리는 늘 도전자고, 남들이 보기엔 언더독이겠지만.”
“…….”
“우리 팀 팬들이 강팀으로 여기면, 강팀인 거야.”
가볍게 웃어 줬다.
팀은 변했다. 선수단의 구성, 구조, 개혁, 그런 것이 아니라.
스포츠의 근본.
팬부터.
맨스필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고, 멋지게 변하고 있었다.
겸손하지 않겠다. 내 덕이다. 내 영향력이다. 그러니.
“나는 이 압박감을 즐길 거야.”
“괜찮겠어?”
살짝 이슬이 어려 더 반짝이는 눈에 걱정이 비친다.
릴리가 보기엔 아직도 나는, 경력 적은 초짜 감독일까.
“압박감은 매너리즘이라는 강팀의 가장 큰 적을 막을 수 있는 전가의 보도거든.”
그래 세 경기 무승.
압박감보단, 자존심이 먼저 꿈틀거렸다.
* * *
맨스필드의 3경기 무승은 생각보다 맨스필드 팬들만 관심을 가지는 성적이 아니었다.
리그 투에서 맨스필드는 도깨비팀을 넘어서 언더독의 반란, 그 이상이었다.
그저 전반기 반짝하는 성적이라고 아무도 치부하지 못했다.
전반기가 지났다는 말은, 리그 투에서 모두 맨스필드와 한 번씩 싸워 봤다는 뜻.
그들 중 맨스필드에게 승리를 거두고, 무승부를 기록한 팀은 분명 존재했다.
하나 그들조차 꺼림칙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만은 없었다.
“우리가 이기기야 이겼는데…….”
“상대에 결장자가 좀 있었지.”
“운이 따라 준 거도 있고, 상대 팀 골키퍼가 잘 못 막더라고.”
“우리 팀 키퍼는 오스카의 슈팅을 다섯 번 연속 다 막아 냈거든.”
“솔직히 말하면 이겼지만…… 그래, 이긴 기분이 별로 안 드는군.”
누군가의 솔직한 푸념은 누구도 듣지 못하는 혼잣말이지만, 사실 모두 공감하는 머릿속에 떠오른 감상이었다. 이겼지만, 시원하게 이기지 못했다.
치열하게 싸우고 간신히 운이 따라 이겼다―라는 것이 보통의 감상이었다.
즉, 리그 투의 그 어떤 팀도 맨스필드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두 직접 겪어 봤다.
그런 팀들에게 맨스필드의 세 경기 무승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스윈던전이 결정타였나?”
“솔직히 말하면, 저 빈약하고 고령화된 선수단으로 부상자를 최소화해서 운용하는 건 운이 따라 준 거지.”
“23경기나 치렀어. 그간 쌓이고 누적된 피로나 자잘한 부상이 스윈던에서 터진 거지.”
“저 맨스필드도 선수들 지친 게 꽤 보이더군.”
“물론 맨스필드가 망했단 소린 아니지. 저기 감독이 얼마나 여우 같은데?”
“유진 감독이라면, 크흠, 어떻게든 역경을 이겨 내기야 하겠지.”
유진의 맨스필드라면 이 역경과 고난도 이겨 낼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맨스필드, 그리고 지휘관인 유진을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고 인정하게 된 리그 투 축구인들의 반응이었다.
다만 그 기간이 문제였다.
유진은 이 역경은 이겨낼 것이다, 실력이 있으니까.
다만 얼마나 빨리 이겨내는지가 쟁점이었다.
‘한번 연승을 달리면 끝도 없이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처럼.’
‘한번 가라앉으면 쉽게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게 축구지.’
‘무승 기록, 어쩌면 더 길어질지도 몰라.’
비단 맨스필드 팬뿐만 아니라 리그 투 축구인들의 관심과 시선이 다음 경기에 쏠렸다.
24라운드, 리그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돌아온 반즐리전.
유진에게 기자회견에서 ‘애송이’라고 시비를 걸었다가 개막전 최대 이변이라며 굴욕을 당했던 반즐리 감독은, 애송이라고 부르짖었던 믹스트존에 다시 섰다.
그리고.
“맨스필드는 리그 최강입니다. 그리고 무승을 끊기 위해 전력을 다해 오겠죠. 지금 반즐리는, 리그 투에서 가장 어려운 경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반즐리 감독은 공포에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