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84)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83화(84/266)
83. 포지션 변경 (3)
유진의 확신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영역이었다.
코치진뿐만 아니라 스탠리도 어안이 벙벙했다.
“예, 윙백이요? 제가요?”
스탠리는 당황을 넘어서 불쑥 불쾌함이 떠올랐다.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저는 지금까지 윙어라는 포지션을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2선과 스트라이커 롤을 소화한 적은 종종 있지만요.”
윙백은 태생부터가 수비수의 포지션이다.
스탠리는 솔직히 말해 수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현대축구에서 공격수가 수비를 안 하고, 못한다는 건 결점이긴 했다.
하나 전업 수비수의 수비와는 다르다. 전술적, 전략적인 수비 가담이 어디 수비수들의 진짜 수비하고 똑같은가.
팬들도 안다.
공격수가 수비와 압박을 하다가 실패하면 아쉬워할 뿐에 그친다. 왜? 공격수니까. 도리어 칭찬받는다. 쟨 공격수로 뛰면서도 수비에 저렇게 힘을 쓴다고.
반면 수비수는 다르다. 수비에 실패하는 즉시 온갖 지탄을 받는다. 공격수의 수비 가담은 뚫리면 아쉽지만, 수비수의 수비는 무너지면 실점으로 이어지니까.
“수비 가담에 좀 더 확실히 하라는 지시라면, 이젠 따르겠습니다. 전처럼 캡틴한테 수비 못 한다고 싫은 소리 안 듣게끔…….”
“수비를 못한 겁니까, 안 한 겁니까?”
“……!”
스탠리는 숨이 막혔다.
주위 분위기가 싸늘해지지도 않았다. 언성을 높이지도, 목소리에 힐난의 투를 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한 물음인 것처럼 감정의 색채가 묻어나지 않는다.
한데 어째서일까.
무엇보다도 강한 압박감을 받았다.
“두려워서 안 했던 거잖습니까.”
“…….”
스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불쾌하게 듣지 마세요. 스탠리 선수는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뜁니다.”
“…….”
“남들에게 인정받고, 관심받고, 그걸 원하시는 거죠. 필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필드 위에 있어야만 그리될 수 있으니까.”
정확히는 할머니, 누나, 그리고 가족.
스탠리는 그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자신이 뛰는 모습. 그들의 지지로 자신이 어떤 선수가 됐는지, 팬들의 환호를 받는 대단한 선수가 됐음을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다. 그는 그래서 부상을 두려워한 것이다. 또 한 번 쓰러져서, 영영 재활에 성공 못 하고 사라질까 봐.
스탠리는 그간 감춰 왔던 속내를 꿰뚫어 보자 차라리 속이 후련했다.
늘 부끄러운 마음이었으니까. 저열한 속내니까. 팀의 팬? 동료를 위해서? 그딴 건 없었다. 순전히 화려한 모습, 대단한 선수라고 치켜세워 주는 그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단지 그 명예욕.
“……맞습니다. 감독님 덕분에, 조금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그래서 윙백 포지션 못 뜁니다.”
스탠리는 유일하게 제 속내를 꿰뚫어 보는 투명한 유진의 눈을 보면서 솔직히 드러냈다.
“수비는 물론이고, 그래요, 계산적인 놈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수비수, 주목받습니까? 골 넣는 선수만큼 사람들이 소리치고 환호하고 이름을 연호합니까?”
팀을 위해? 승리를 위해?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몇 번의 슈퍼태클과 슈퍼 세이브, 그럼 화제가 되기야 하죠. 하지만, 결국 기억하는 건 골을 넣는 선숩니다.”
“…….”
“제가 윙어로 뛴 것도, 사람들이 환호해서 그래요. 엄청나게 주목하고, 탄성 터뜨리고, 그리고 골. 스윈던전처럼요.”
‘주목받고 싶다.’
라는 하나의 명제.
팀에 대한 끝 모를 책임감으로 경기마다 불사르는 존 젠킨슨.
비싼 주급을 받는 만큼, 그 값어치에 족하는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 프로라는 논리의 오스카.
그들에 비하면 실로 투명하다 못해 한심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유진은 스탠리의 그런 마음을 결코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것이 스탠리 선수를 이끌었던 거 압니다. 응원해 주는 할머니에게 아낌없이 보여 주고 싶은 마음. 지지해 줬던 만큼 좋은 축구 선수라는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던 이유죠. 부끄러워할 필요 없고, 이해합니다.”
“…….”
프로 선수가 뛰는 이유가 어디 프로 의식이요, 팀에 대한 책임감과 충성심만 있을까.
각양각색의 개성을 지닌 선수를 수도 없이 봐 온 유진에게 스탠리가 축구를 하는 이유가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포지션 변경, 하지 않겠습니다.”
스탠리는 단호한 거부에 유진이 어찌 반응할지, 조금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저, 스윈던전에서 정말 느꼈거든요. 해트트릭도 했고, 옛날 폼을 되찾을 수 있겠구나. 라고요.”
순간 유진이 정색했다.
그 모습에 스탠리가 흠칫했다. 유진은 늘 담담한 표정이라 큰 변화가 없지만, 정색하는 순간 두 눈에 빛이 사라진다. 무광(無光)의 동공이 저를 향하는 순간 스탠리의 전신이 긴장감으로 콱 조여졌다.
“고작 옛날 폼이요?”
“네?”
“프리미어리그는 데뷔도 하지 못하고, 챔피언십에서도 그저 그런 활약을 펼쳤던 ‘옛날 폼’이 고작 스탠리 선수의 희망입니까?”
“……!”
“기껏 부상 트라우마에서 조금 벗어났더니, 생각하는 게 고작 그 정도입니까?”
“감독님.”
“예, 맞습니다. 현재 포지션으로 뛰면 옛날 폼 찾습니다. 고작 챔피언십의 그저 그런 평범한 윙어 말입니다.”
스탠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저 속에서 분노가 솟구쳤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최상의 폼을 자랑하던 때에도 그는 내로라하는 유망주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기대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으니까.
“그래섭니다. 제가 포지션 변경을 말하는 이유는.”
“……마치 제가 윙백으로 뛰면,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예. 고작 옛날 폼에 만족하면서 충분히 잘했다고 자기만족하는 그저 그런, 무수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망주 출신의 선수 말고요.”
“……!”
“리버풀, 아스날을 무너뜨리는 일등 공신. 잉글랜드 국가대표 상비군 윙백. 예. 그리될 겁니다.”
스탠리는 말문이 막혔다. 평소 신뢰감 있는 표정과 어투로 선수들을 대하는 유진임을 알지만, 스탠리는 어쩐지 지금은 다르다고 느꼈다.
‘왜…… 100% 확신하지?’
한 톨의 의심도 없는 확신.
마치 그런 미래를 보고 온 사람에게서 볼 수나 있는 확신이었다.
스탠리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제가 수비를 배운 적도 없는 걸 알면서, 정식 수비수로 뛰어 본 적도 없는 걸 아실 텐데, 무얼 보고…….”
그리 대단한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유진의 담담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제가 했던 말씀 기억하십니까.”
“……스윈던전, 하프 타임.”
순간 스탠리의 눈과 귀가 그때로 돌아갔다.
“내가 아니라, 감독님을 믿으라고…….”
“아직도 제가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합니까?”
힐난이 섞인 듯한 말이었지만, 정작 말투는 담담했다.
“저를 믿으세요, 선수. 선수는 그 누구보다도 수비를 잘할 겁니다. 어쩌면 젠킨슨 선수보다도 더요.”
“……!”
“공수 양면을 주름잡는 윙백.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두 분야에서 팬들의 마음을 훔치는 선수. 스탠리. 바로 당신이 될 겁니다.”
* * *
그 말이 스탠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 것은 분명했다.
홀린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으니까.
하나 뒤늦게 찬물을 부은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이 나이에, 수비 훈련을 해 봤자 얼마나 는다고? 대체 뭘 보고 내가 수비를 잘한다고 생각한 거냐고.’
평소 스탠리가 수비에 힘쓰는 선수였으면 모를까.
수비 가담도 않는 자신을 보고 어떻게 수비를 잘한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탠리 본인은 물론이고, 팀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촤아아아악!
종아리, 무릎, 허벅지, 등까지 죽 스쳐 가는 잔디의 부드러운 감촉.
스탠리는 그 감촉보다도, 발끝에 툭 걸리는 공의 감각을 느끼며 발목을 유연하게 돌렸다. 투웅, 공이 빠져나가지 않고 발등 위로 살짝 얹히면서 멈춘다.
“맙소사!”
“미친!”
분분히 터져 나오는 신음과 경악.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선은 분분했다. 스탠리는 절실히 느꼈다. 역습 찬스가 허망하게 무위로 돌아간 모컴 선수들의 경악, 신음, 그리고 분노.
“그거지! 빌어먹을, 존나게 잘했어! 스탠리!”
완벽한 태클로 위기를 벗어난 골키퍼의 환한 웃음과 젠킨슨의 포효.
그리고.
“스―탠리! 스―탠리! 그는 빠르지, 그는 민첩하지, 오오, 그가 공을 빼앗네, 그가 골을 넣었네!”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
자신만을 향하는 응원가.
―벌써 팀 내 최다, 아니 양 팀 통틀어 최다 태클과 가장 높은 태클 성공률을 자랑하는 스탠리! 어디 그뿐입니까. 오스카의 골을 도운 어시스트까지!
스탠리는 후욱, 입에서 튀어나오는 단내를 삼키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알겠다.
‘스탠리 선수는 지금까지 몰랐을 뿐이지, 수비를 잘합니다.’
“나, 수비 잘하는구나.”
30살.
프로 데뷔 11년 만에 그는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찾았다.
* * *
[맨스필드, 3대 0으로 모컴 격파! 파죽의 4연승!] [‘우승 후보’ 맨스필드, 4경기 연속 클린시트 기록. 전반기와 확연하게 달라진 맨스필드의 수비진.] [경기 최다 태클, 태클 성공률 1위, 브랜들리 스탠리의 압도적인 활약. 모컴을 막고, 무너뜨리다.] [1어시스트까지 기록한 스탠리, 공수 양면 통틀어 최고의 활약을 펼쳐] [성공적인 포지션 변경, ‘윙백’ 스탠리는 새로운 선수 영입과도 같다. 맨스필드, 스탠리의 포지션 변경으로 1위 자리 수성!] [맨스필드 스탠리, “포지션 변경은 오로지 유진 감독님의 권유. 내 숨겨진 재능과 기술을 발견하신 감독님께 무한한 감사. 어떤 포지션이든, 감독님의 지시라면 따를 것.”]* * *
“도대체 스탠리가 어떻게 수비를 잘할 거라고 확신했어?”
단둘이 있자, 막스는 경어를 집어던지고 급하게 물었다.
“오오!”
“뭐야, 태클을 왜 이리 잘해?”
훈련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경악.
심지어 스탠리의 수비 능력을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던 젠킨슨도 눈을 부릅뜨고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우리 팀에 수비 전담 코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구한테도 배운 것도 아닌데. 저건 그냥…….”
막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스탠리의 깔끔한 태클이 오스카의 드리블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오스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스탠리를 쳐다봤다. 리그 투의 어지간한 수비수들은 막지 못하는 오스카의 공을 태클 한 번에 차단하는 솜씨.
물론 훈련이라서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걸 고려해도.
“너 뭐야, 언제부터 수비수였어?”
오스카의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한마디는, 훈련장의 전부가 공감했다.
가르친 것도 없지만, 스탠리는 거짓말처럼 드디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화려한 수비 실력을 뽐냈다. 본능이었다. 기술보다는 감각. 논리와 이성보단 본능.
“원래 수비수로 뛰어야 했던 선수야. 감각으로 아는 거지. 훈련받지 않은 수준인데도 저 정도야. 그런데 윙어로 뛰었던 건.”
빠른 발을 이용해 화려한 공격을 펼치는 모습.
남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하고 싶어 하는 명예욕.
그리고 가족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하는 단 하나의 마음.
주목받는 공격수만 생각했기에, 애당초 수비수라는 포지션을 스탠리는 생각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재능을 넌 어떻게 알았냐고.”
어떻게 알긴.
미래엔 윙백으로 FA컵에서 아스날하고 리버풀을 격파하는 선봉장이었으니까 내 기억에 남았지.
그 설명을 해 줄 수 없으니, 나는 그저 팔짱을 꼈다. 충분한 대답이 아니었을 텐데도, 막스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이내 수긍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라면, 너라면 알 수도 있겠지.”
비단 막스뿐만 아니었다.
스탠리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낸 일을, 구단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경악, 감탄, 놀라움.
그리고.
“감독님이라면 뭐.”
납득.
다들 비슷한 눈으로 흘끔흘끔 나를 쳐다봤다.
하나 그 시선 속에서 단 하나.
“…….”
딱딱하게 굳어있는 시선.
제임스가 씁쓸한 얼굴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