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8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84화(85/266)
84. 승리의 그늘 (1)
“스탠리, 제 사무실로 와요.”
“……네.”
훈련을 시작하기 전.
알렌스키의 지시에 따라 스트레칭을 하던 스탠리는 유진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당황했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정작 스탠리는 침착을 되찾았지만, 주위에서 수군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스탠리, 무슨 잘못한 거야?”
“진실의 방으로 가는군.”
“차라리 주급 정지를 받는 게 낫지.”
“어후. 나는 감독님하고 일대일 면담 시간이 가장 힘들어. 딱히 혼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감독이 선수와 면담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주제는 다양하다. 최근 성적, 경기에서의 플레이, 훈련 방식, 때론 유대감을 갖기 위한 신변잡기 따위.
선수단 사이에서 감독과의 면담은 은근히 피하고 싶은 부류였다.
아직도 선수들은 팀의 핵심 에이스였던 헤럴드가 일대일 면담 후 팀에서 쫓겨난 기억이 생생했다. 물론 면담 자리에서 늘 싫은 소리만 듣진 않긴 한다. 하지만 그 자리. 저 감독과 일대일로 앉아서 1m의 간격을 두고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은 묘한 압박감을 준다.
“어후. 저번에 내 안사람 임신한 거 축하한다는 말 하려고 부르셨는데, 쉽지 않더라. 때론 감독님이 나보다 어리다는 걸 잊어버린다니까.”
감독은 특별히 질책하거나 험한 말로 나무라지 않는다. 신사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점잖다. 그래, 그 점잖음. 그 담담함. 소리 없는 카리스마는 선수들의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이젠 선수들도 팀의 성적을 비롯해 맨스필드의 전부가 감독의 마술과도 같은 지휘력 때문임은 절실히 체감했다. 선수들의 인정을 끌어낸 순간, 감독의 권위는 끝도 없이 올라간다. 어디 그뿐일까. 코치진도 감독에게 절대적으로 협력, 아니 거의 복종하는 모양새니까. 권위를 가진 감독에게 기를 펴는 선수란 있기 힘든 법이다.
‘음, 이번엔 뭐지.’
선수들 전부 한 번씩은 감독과 면담을 가진 적은 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끝난 사람도 있는가 하면, 한 시간 넘게 시달리는 경우도 제법. 젠킨슨이나 오스카가 그랬다. 그나마 둘은 감독에게 나름 할 말은 하는 담대한 배짱이라서 버텼지, 스탠리는 한 시간 가까이 한 방에서 얘기를 나눈다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별일 없을 거야. 따로 불러서 칭찬하는 거겠지.”
오스카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포지션 변경 그렇게 완벽하게 적응했는데, 당연한 거 아냐?”
“칭찬은 몰라도 포지션 변경 관련한 얘기긴 하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잘못한 게 없다. 도리어 최근 경기 성적은 좋기만 하고, 훈련에도 성실했고. 내심 잘못한 일 없으니 당당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무실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는 순간.
‘빌어먹을, 진실의 방.’
선수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하는 감독실의 별명이 절실히 이해됐다.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질책하거나 나무라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요.”
“아, 예.”
“커피?”
“물 마시겠습니다.”
“운동 전 카페인은 퍼포먼스를 향상시키죠.”
“아, 커피, 마시겠습니다.”
스탠리는 로봇처럼 반응했다. 유진이 피식 웃었다.
“많이는 말고요. 많이 마시면 탈수나 근육 떨림 같은 부작용도 있으니까요.”
“네, 네.”
스탠리도 본래라면 제법 배짱 두둑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윙백 플레이, 적응 잘하신 듯합니다.”
“……감독님 덕분입니다.”
바로 포지션 변경.
본인조차도 의심했던, 팀 전부가 만류했던 그 결정.
스탠리는 유진에게 단호하게 거부했던 몇 주 전이 떠올라 눈꼬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제 덕분은요. 스탠리의 재능을 이제야 발견한 건데요.”
오로지 선수에게 공로를 돌리는 말이지만, 스탠리는 말 한마디에 헬렐레하는 유소년 선수가 아니다. 그도 프로판의 쓴맛, 매운맛 다 본 선수였다.
스탠리는 솔직히 말해서 소름이 돋았다.
선수 본인도 모르던 재능.
30살이 다되도록, 필드에서 수백 경기를 뛰면서도 알지 못했던 사실을.
‘대체 어떻게?’
이 젊은 감독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었을까. 여러 감독도, 코치도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권유하지 않은 포지션 변경. 유진은 자신을 본지 고작 반년 만에 마치 모든 걸 파악한 것처럼 행동했다.
‘반년, 아니야.’
스탠리는 유진의 눈을 봤다.
‘어쩌면…….’
처음 봤을 그 순간부터.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이 팀에 라이트백이라곤 제임스밖에 없잖아?’
백업 선수도 없다. 선수라곤 정말 단 한 명. 유스에서 콜업한 제임스. 같은 라인에서 윙어와 풀백으로 뛰니까 스탠리도 제임스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다.
어리고, 경험 부족하고, 특출난 재능도 아니며, 그저 빠른 발 하나로 제법 눈에 띄는.
사실 그 빠른 발조차 동료 선수들, 젠킨슨의 헌신적인 수비, 대니 스콧의 정확한 패스, 오스카의 수비수들을 끌어내는 위협 덕에 발휘할 수 있던 능력에 불과했다.
만일 이 팀에서 제임스가 빠진다면, 그는 발만 빠른 수비 못하는 수비수일 뿐이다.
‘감독이 몰랐을까?’
30살까지 몰랐던 재능을 파악한 이 감독이? 선수들의 이상한 움직임이나 근육통 따위를 뛰는 것만 봐도, 사소한 습관조차 콕콕 집어 대는 매의 눈을 지닌 이 사람이?
빈약한 그 자리에 선수를 영입하지 않고 제임스로 버텼다. 때때로 제임스가 못 뛸 땐 다른 선수로 커버하면서까지. 아무리 맨스필드가 돈이 없어도, 당장 겨울 이적 시장에 영입한 쓰리-톰 같은 자원을 얼마든지 골라내고 데리고 올 역량을 갖췄다.
그런데도 라이트백의 자리가 최우선 영입 대상은 아니라는 점.
스탠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결론은 둘이다.
‘제임스가 나처럼 선수도 모르는, 코치와 동료도 모르는 분야의 재능을 갖췄거나.’
스탠리는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시며 유진을 바라봤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커피 향을 가볍게 즐기는 여유로운 태도.
그 유진 특유의 자세와 표정에 스탠리는 나직이 탄식했다.
“혹시, 기다리신 겁니까?”
뜬금없는 물음.
커피잔을 입에 댄 유진의 눈썹이 호선을 그렸다. 스탠리는 하, 헛웃음을 켰다.
“제가 더 이상 선수와의 경합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쓸 때까지? 더는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마음을 먹을 순간까지?”
“이래서 좋습니다. 베테랑은.”
“……!”
“말하지 않아도, 눈치가 빠르거든요.”
이래서다.
스탠리는 이래서 더는 유진에게 기를 펼 수 없었다. 포지션 변경을 거부하던 때처럼 단호하게 말할 수 없었다.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고, 근엄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오직 상황, 사건, 분위기.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이용해 끝내 선수를 장악하는 솜씨.
스탠리는 희미하게 떨었다.
‘무슨, 감독 경력 20년 차도 아니고.’
이게, 1년 차 감독이라니.
그러면.
‘이 감독이 10년 차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본인을 영입하던 순간부터, 유진은 윙백으로 쓰려고 했고, 이 상황이 만들어질 때까지 모든 걸 기다리고, 꾸며 낸 것이다.
스탠리는 이제 숫제 희미한 두려움까지 느꼈다.
“포지션 변경에 잘 적응하고 있어서 저도 몹시 기쁩니다. 모컴전까지 4연승이고, 스탠리 선수의 수비력 덕분에 전에 없던 네 경기 클린시트니까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래서요. 오퍼가 왔습니다.”
“……?”
순간 스탠리가 긴장했다.
평범한 대화로 이어지던 흐름에서 훅 들어오는 날카로운 화제.
전신의 근육이 콱, 조여지는 듯했다. 이래서 진실의 방, 감독실이었다.
“오퍼라면……?”
“리그 원에서 두 팀, 리그 투에서 네 팀입니다. 스탠리 선수를 영입하고 싶어 합니다.”
“……!”
“이적료는 최대 20만 유로. 리그 투에서 보기 힘든 금액이죠.”
“저 맨스필드에 온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선수 안 팝니다.”
“…….”
“실망하셨나요? 리그 원 팀은 아무래도 지금 주급보다 적어도 세네 배는 더 줄 텐데.”
리그 원팀이 특별히 더 재정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유진이 스탠리를 데리고 올 때 크게 후려친 탓.
한마디로 지금 스탠리의 주급은 그의 활약에 비해 저조한 수준이었다.
스탠리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금 저한테 중요한 건 주급이 아니니까요.”
“필드에서 뛰는 것.”
“예. 제 능력을 확신하고, 정확한 지시와 지침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치게끔 필드에서 뛰게 할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합니다.”
“그럼 맨스필드에 있어야겠군요.”
스탠리는 순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본인이 자신이 한 말에 딱 맞는 감독임을 조금의 의심도 없는 담담한 태도라니.
이러니, 어찌 이 감독을 떠나겠는가.
“저는 감독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좋네요. 사실 흔들리지도 않았습니다.”
“……?”
“고작 20만 유로라니. 말도 안 되는 짓이죠.”
스탠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맨스필드 재정에서 20만 유로라면 상당한 금액이다. 리그 투에서 20만 유로라는 이적료는 보기 드물 정도기도 했고.
“스탠리 선수의 가치, 선수의 재능을 아무도 파악하지 못한 거죠.”
“제 가치…… 제 재능이라.”
모두가 그저 엄청난 스피드, 강력한 킥, 매서운 공격력을 말했지만.
돌이켜 보면 유진 말대로 평범했다. 챔피언십에 자신과 같은 킥, 속도를 갖춘 윙어는 넘쳐났다. 그래, 그저 그런 선수요, 재능에 불과했다.
하면 유진은.
“제 재능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뭐, 아시다시피 수비력입니다. 따로 배우지도 않았고 전문적으로 훈련하지도 않았지만, 순전히 감각과 본능만으로 그 정도 태클과 패스 차단을 이뤄내는 건, 실로 재능이죠. 하지만.”
“…….”
“진짜 재능은, 그 의지요.”
“……!”
“신기합니다. 포레스트로부터 선수의 과거 부상 이력을 받아 살폈습니다.”
순간 스탠리의 동공이 흔들렸다.
“끔찍한 부상이었죠. 압니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
“그 부상을 이겨내고, 끝끝내 필드에 복귀한 의지. 그게 정말로, 존경스러워요. 선수.”
유진은 스탠리의 무릎을 바라봤다. 스탠리는 그 순간 확인했다. 유진이 제 무릎을 번갈아 스치듯이 보는 것을. 유진이 쓴웃음을 피어올랐다.
문득, 유진은 물었다.
“어떻게 이겨내신 겁니까?”
“……할머니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요. 감독님이 짐작하신 대로.”
“단지, 그 마음이.”
“네.”
“그렇군요.”
유진이 입을 닫는 순간, 짧은 공백이 생겼다. 그 공백에서 스탠리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잠깐의 면담으로 감독과 선수, 그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서일까.
“감독님은 부상 때문에 그만두신 겁니까.”
선수 출신에게 물어보기엔 정말로 예민한 질문.
스탠리는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에 도리어 본인이 더 당황했다.
내뱉은 말을 어떻게든 수습하고자 스탠리가 무어라 주워섬기려던 찰나. 유진이 답했다.
“네. 그래섭니다. 제가 스탠리 선수가 대단하다고 느낀 이유가.”
그저 짧은 대답.
“……유감이에요, 감독님.”
유진이 피식 웃었다.
“아뇨, 감사한 거죠.”
“네?”
“부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쓸데없는, 가능성도 없는, 단 한 톨의 희망 따위에 매몰되어서 무너졌을 테니까요.”
“……?”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스탠리의 두 눈을 피한 채, 유진은 창밖을 바라봤다.
녹색 잔디의 훈련장. 그리고 그 너머, 유소년 선수들이 사용하는 건물.
“재능. 참 그래요. 재능은 잔혹하고, 그런 재능이 있는지 의심하며 싸우는 것조차 잔인하죠.”
스탠리는 더는 묻지 못했다.
어째서일지, 늘 강인해 보였던, 카리스마와 권위로 공고한 성을 쌓아 올렸던 감독이 쓸쓸해 보였다.
* * *
재능은 잔혹하다.
이 말을 유진에게 들은 것도 아니지만, 제임스는 머릿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촤아아아악!
“빌어먹을!”
“또야?”
“대체 언제 여기까지 수비 복귀해서 태클인데!”
한겨울의 벤치는 차갑구나, 엉덩이로 전해지는 차가움을 느끼며 제임스는 씁쓸한 눈으로 필드를 바라봤다.
스탠리의 엄청난 태클로 공을 빼앗기고 분통을 터뜨리는 상대편.
스탠리의 머리를 부여잡고 잘했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젠킨슨.
제임스는 입안이 바짝 메말랐다. 자신이 어리다는 건 알지만, 11살부터 뛰어 온 라이트백이란 포지션. 코치님들에게 하나하나 동작을 배우고 하루가 멀다고 훈련하며 갈고 닦았던 태클.
‘재능은…….’
제임스가 씁쓸한 눈에 그를 담았다.
포지션 전환한 지 한 달 만에 그 자리를 확고하게 차지한 스탠리를.
‘잔혹한 거구나.’
제임스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그는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유진의 시선.
마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투명한 눈동자.
“감독님…….”
“스탠리 선수, 몸 푸세요. 후반전 지나고 들어갈 겁니다.”
“……!”
제임스는 이를 악물었다.
재능이 잔혹하다 한들.
‘선발 자리.’
포기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