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89)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88화(89/266)
88. 승리의 그늘 (5)
[맨스필드 타운, FA컵 4라운드에서 볼턴에게 일격!] [14경기 무패 행진 마감! 맨스필드 FA컵에서 무기력하게 쓰러지다!] [리그 투의 제왕 놀이는 끝, 상위 팀을 만난 맨스필드 힘없이 무너져.] [허무한 패배! 유진의 맨스필드, 리그 원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다.] [무너진 수비 라인, 느슨한 압박, 총체적 난국, 맨스필드 수많은 약점 노출돼.]패배.
뜨겁게 달아오르던 맨스필드에 부어지는 찬물.
거칠 것 없이 내달리던 맨스필드에 잠깐의 브레이크가 걸렸다.
[맨스필드 충격의 패배! 패배 요인, 자체 점검이 필요한 시점.]세상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다. 승리에는 그늘이 있고, 패배에서도 시원하고 달콤한 단물을 얻을 수 있는 법.
역설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흔히 말하는 ‘졌지만 잘 싸웠다.’ 보다는 처참한 패배가 필요했다. 어설픈 매보단 때론 뼈가 시리도록 아픈 체벌이 필요한 것처럼.
무기력한 패배였다.
선수들은 굼뜬 움직임, 패스 미스, 느슨한 압박, 허술한 플레이를 선보인 졸전이었다. 팬들도, 구단도, 선수단들도 적잖이 당황하는 순간.
“감독님,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도리어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알롭이 당황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그래, 맞다. 기분 좋았다.
패배에 매몰되어 답답해하는 건 초짜 때의 모습이다.
패배는 결코 두려운 게 아니다.
나는 답 없는 판타지가 아니다. 리그 전승은 불가하며, 패배는 늘 곁에 함께하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핵심은 하나다.
“패배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가 중요하죠.”
“아, 그래서 패인을 분석해서 지금 정리했습니다. 우선…….”
패배의 원인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다. 무엇이 실점 원인이었고, 어디가 약한 고리였으며, 창끝이 무뎌진 원인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 중, 나는 하나를 원했다.
“코치, 기존에 정해 놨던 내일 휴일은 취소입니다. 선수단 훈련 소집하세요.”
“예? 허허, 가족끼리 스케줄을 정해 놓은 선수들도 있을 텐데…….”
“선수단은 하나의 팀입니다. 모든 선수의 스케줄을 배려해 줘야 합니까.”
계획된 훈련이 아닌, 휴일을 취소하고 훈련 소집.
알롭이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본래라면 선수단의 상당한 불만을 일으킬 것이 자명한 조치였다.
아니 그럴까.
평범한 직장에서도 쉬는 날에 갑자기 튀어나와서 일하라고 하면,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극약 처방이다. 주말에 불러서 일을 시킨다고 해도, 일의 능률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처럼 선수단도 마찬가지다.
하나 지금은 훈련의 능률을 위해서가 아니다.
목적은 따로 있었다.
“훈련 참여 못 할 거 같으면, 저에게 직접 와서 말하라고 하세요.”
그럴 수 있는 선수가 있을 리가 없다.
패배 직후 훈련 소집.
어떤 선수가 불만을 품을 수 있을까.
그래, 바로 명분이다.
작금의 패배로부터 얻을 수 있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가장 강력한 전리품, 명분.
내 손에 명분이 쥐어진 순간, 나는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훈련 세션의 난이도를 좀 높이겠습니다.”
“그러면 선수들의 피로가…….”
“피로가 심해서 펍에서 맥주 한 잔씩 하고 그럽니까? 훈련이 끝나고 휴식이라는 핑계로 술과 파티를 즐깁니까? 마치 우승컵이 클럽하우스에 전시된 것처럼요?”
알렌스키와 알롭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나는 냉소를 지었다.
“훈련에 늦거나 기준에 못 따라오는 선수들은 따로 명단 기록해 놓으세요. 이런 것도 제가 일일이 지시해야 하는 상황이 우스운 일이지만요.”
구단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비단 선수단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다. 내가 쏘아 보낸 화살은 코치진에게도 향했다. 선수들이 저따위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지휘자들인 너희들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느냐, 라는 강력한 질타.
굳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시선, 분위기로 전달할 수 있는 법.
알롭과 막스는 잔뜩 굳어진 얼굴로 선수들을 소집했다.
선수들도 코치진의 딱딱한 분위기를 읽었다.
코치진으로부터 시작된 압박과 긴장감은 순식간에 구단 전체로 퍼졌다.
“프로 선수가 체지방률이 14%? 지금이 시즌 휴식기도 아니고, 몸 관리가 엉망이네요. 12%를 초과하는 선수들은 전부 특훈입니다. 구단 규율에 의거, 벌금도 부여합니다.”
북쪽의 삭풍 같은 차가운 채찍이 선수단을 강타했다.
“SNS에 런던 클럽까지 놀러 간 걸 자랑스럽게 올린 선수도 있네요. 이런, 볼턴 전 패배 이후에 바로 런던 행 티켓을 끊어서? 코치님들, 구단의 기강이 참 단단하니 좋네요. 안 그렇습니까?”
“……조치하겠습니다.”
선수들의 해이한 분위기와 느슨해진 기강.
끝없는 연승과 무패 행진으로 만들어졌던 들뜬 분위기는 순식간에 깊은 호수의 얼음처럼 처박혔다.
순식간에 전격적으로 이뤄지는 무수한 징계와 격해지는 훈련에 선수들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체지방률 높고, 훈련 세션 못 따라오고, 시즌 막바지라고 지쳤다는 건 핑계에 불과합니다. 지쳤다면 말 들어줘야죠. 몸이 휴식기에 돌입했다는데, 예, 그래 드려야죠. 다음 선발에서 제외합니다.”
“그, 그러면 백업 선수로 선발을 내세워야 하는데, 그건!”
막스가 가장 먼저 반발했지만 나는 무심히 그를 노려봤다.
“백업 선수의 의미가 뭡니까. 막스, 아니, 수석 코치.”
“……주전 선수의 대체입니다.”
“예. 주전 선수의 부상, 경고 누적으로 인한 징계, 여러 문제 등으로 경기 출전이 어려울 때를 대비한 엄연한 선수단의 귀한 자원입니다. 필요할 때 기용 안 하면, 백업이 무슨 의밉니까?”
“그, 부상도 아니고, 경고 기록도 깨끗한 선수들입니다. 승리를 위해선 베스트 일레븐을 구성해야…….”
“그 베스트 일레븐이 패배했습니다.”
“……!”
“볼턴전 패배는 오롯이 감독 탓입니다. 부정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습니다. 감독의 선수단 구성이 실패한 것이고, 제 지시가 통하지 않은 거죠. 예, 그래섭니다.”
굳어버린 코치진, 그리고 저 너머에 있을 선수들을 향해 나는 흔들림 없는 어조로 말했다.
“패배에서 배워야 하죠. 감독으로서 보는 패인 중 하나입니다. 몇몇 주전 선수들의 자격이 되지 않으면, 그 자리를 다른 선수가 차지한다. 프로 선수의 숙명. 예, 주전 경쟁입니다.”
“…….”
전반기였다면 불가했을 조치.
빈약한 선수단 뎁스로는 이 같은 강수를 쓸 순 없었다.
그러나 겨울 이적 시장, 쓰리-톰을 비롯해 여섯 명의 선수를 보강해서 우리 팀 뎁스는 다른 팀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는 상황이 됐다.
주전과 비주전의 경쟁.
필연적으로 경쟁은 발전을 불러온다.
고여있는 선수단 사이에 지독한 위기감과 압박, 긴장감이 파고들었다.
“절대적인 주전은 없습니다. 볼턴 전 수비진에서 실수를 벌인 스탠리는 다음 경기 제외입니다.”
“!”
“그, 그 실수는 정말 운이 좋지 않아서……!”
“스탠리가 빠지면 수비진은 오히려 더 어려워집니다!”
나는 코치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탠리에게 직접 말했다.
“……알겠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스탠리의 얼굴에 희미한 불만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괜찮다. 저 정도의 선수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승부욕에서 튀어나오는 거니까. 한 경기 징계성으로 빼겠다는데, 거기서 화도 내지 못하는 무기력한 선수는 승부욕이 없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스탠리는 똑똑한 선수다. 내 지시가 비단 자신에 대한 징계가 아닌, 팀 전체를 향한 목소리임을 알았다. 그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니, 더 나아가서 평소보다도 격렬하게 훈련에 임했다.
“맙소사…… 스탠리까지 제외라니.”
“스탠리 바로 훈련장 간 것 봐. 억울해서라도 다음 경기서 증명하겠다는 걸까.”
“이거 참, 나도 몸 좀 가만둘 수 없겠는데.”
그 모습에서 선수들도 서서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선발 제외라는 강수까지 던진 이상, 이건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바람임을 알았으니까.
그렇다고 섣불리 반발하기 어려웠다. 모든 것은 명분이다. 저들의 징계와 비판은 연승과 무패 행진이라는 이유로 묻혀두고, 봐줬던 무수한 근거로 이뤄졌으니까.
선수단은 순식간에 재정비에 들어갔다. 스탠리라는 최근 핵심마저 제외했으니 선수들은 긴장된 얼굴로 이를 악물고 훈련에 참여했다.
“제임스, 스탠리 자리에 다음 경기 들어갑니다. 준비하세요.”
“네, 네!”
그간 선발에 밀렸던 제임스는 이전에 본 적도 없던 강렬한 의지를 불태우며 훈련에 임했다. 팀 제일 막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자 선수단 중 누구도 해이한 모습을 보이기 어려웠다.
한겨울임에도 훈련장은 격한 열기로 땀내가 진동했다.
* * *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 것 같은데. 유진.”
“기다렸지.”
막스의 말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해. 선수단을 지휘할 땐, 명분을 바탕에 둬야 해.”
“명분이라……. 사실 이전부터 충분하지 않았어? 체지방률 높은 선수들, 클럽에 놀러 가던 놈들, 다 이긴 것처럼 조금씩 설렁설렁 뛰는 듯한 움직임. 그때마다 징계를 할 수 있지 않았나?”
“그건 근거지. 명분은 아냐.”
“…….”
“연승을 달리고 있는데, 도시 전체가 무패 행진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있는데, 이 와중에 선수를 골라서 비판하는 건 역효과일 뿐이야.”
불만이 필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설령 합당한 근거로 이뤄진 징계여도 말이다. 자만하지 말라는 당연한 말조차 내심 말은 않지만 속으로 불만을 가득 품는다. 괘씸하다고 툴툴댈 수야 없다. 사람 심리란 게 그러니까.
“여긴 4부 리그야. 프리미어 리그만큼의 프로 의식? 스스로 자제하고, 비판을 받아들일 성숙한 마음가짐? 기대키 어렵지.”
FA컵의 패배로 나는 선수단을 점검한다는 명분을 쥘 수 있었다.
어느 막 나가는 선수더라도 패배 후에 이뤄지는 비판에 대놓고 머리를 들기란 어렵다.
“만일 반발하는 선수가 있었으면?”
“오히려 좋지. 필요 없는 싹을 잘라 낼 수 있으니까. 자길 잘라 달라고 광고하는데, 기특하기도 하지.”
막스가 질린 낯을 보였다. 선수를 향해 칼을 휘두르겠다는 냉혹한 말에 그는 침음을 흘렸다.
살벌한 칼날이 선수단을 휩쓸었다.
조금의 사감도 섞지 않고 담담한 눈과 객관적인 근거의 비판으로 선수들 하나, 하나 점검했다. 여기에 감정이 섞이면 안 된다. 선수들은 예민해서, 눈치 빠르게 알아차리곤 한다.
기분 나쁘지 않은 비판, 싫은 소리.
쉽지 않지만 적어도 수없이 감독해 오고, 자신이 세상 최고인 줄 아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다뤄본 나에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돌아가는 상황에 막스가 혀를 내두르다 못해 경악했다.
“허…… 무슨 패배 한 번으로. 이러려고 일부러 진 거야?”
“그럴 리가.”
아무리 내가 FA컵을 지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부러 패배하는 감독은 아니다.
그 패배는 총체적인 문제가 쌓이고 쌓여 터진 결과였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패배는 결국 언젠가 들이닥칠 수 있는 현실이야. 막스. 중요한 건 그 현실에서, 내 앞에 불쑥 다가온 사건과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이용할 수 있냐는 거지.”
모든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한다.
패배도 마찬가지다.
선수단의 휩쓴 칼날은 기대만큼의 결과를 가져왔다.
* * *
―해리 오스카, 오스카, 오스카! 맙소사! 경기 시작한 지 3분 만에, 오스카의 환상적인, 아름다운, 황홀한, 기가 막히는, 믿기지 않는, 대단한 골, 골, 골, 골! 리그 38라운드, 시작하자마자 오스카의 엄청난 득점포가 터집니다!
“허, 미쳤군.”
포레스트 그린의 클럽하우스.
수상할 정도로 맨스필드의 성적에 관심을 가지는 데일 스틸 단장은 중계되는 화면을 보다가 탄식을 터뜨렸다.
“FA컵에서 좀 무기력하게 지길래, 기세가 한풀 꺾였나 했는데…….”
데일 스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포레스트는 충분히 잘해 주고 있다. 승점 차이도 기어코 8점까지 줄여 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크다.
“41라운드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둬도 승점 차가 큰데.”
한 번쯤, 맨스필드가 꺾여 줘야 한다.
그래서 이번 경기를 기대했다.
38라운드 상대, 체스터필드는 제법 날카로운 공격력을 소유한 팀이니까.
더구나 맨스필드는 직전 경기에 무기력하게 무너진 모습을 노출했다. 그 정도면 기세가 한풀 꺾일 타이밍이었다. 오랫동안 축구계에 종사해 온 데일 스틸은, 축구팀마다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이 꺾일 때가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강팀이 왜 괜히 강팀이겠는가.
연승과 무패 행진이 익숙해서, 그 상황에서도 자만하지 않는 정신력을 갖췄기에 그렇다.
하나 약팀의 연승 행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지고, 순위가 내려가는 이유도 명백하다. 겪어보지 않은 것. 차오르는 자만심은 내 안의 독이 되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분명 그러할 터인데.”
어째서일지, 저 팀엔 자만이 보이지 않는다.
일전까지 보였다. 하지만 FA컵 패배 이후, 다시 시즌 초반, 악과 독기로 달려들던 그 맨스필드가 돌아온 듯했다. 데일 스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작 한 경기로, 완전히 재정비했다고?”
데일 스틸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스카도, 스탠리도 내주지 않았어야 했는데. 결사반대했어야 했는데…….”
중계 속.
시원한 선제 득점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필드를 바라보는 유진의 얼굴이 잡혔다.
“아니, 선수를 안 보냈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야.”
축구계 종사 24년.
데일 스틸은 특유의 감을 느꼈다.
“저 팀은, 저 감독 덕분에 저 자리에 있는 거니까.”
맨스필드의 핵심은 오스카도, 스탠리도, 대니 스콧도 아닌.
유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