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98)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93화(98/266)
93. 재능의 잔혹 (5)
사실상 결승전을 앞두고 바짝 굳은 긴장감만 가득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후련함일지도 모를 웃음이 선수단 사이에 공유했다.
정말로 우승컵이 코앞에 있다는 현실.
풀어지거나 해이해지는 건 아니었다. 긴장으로 너무 단단하면, 도리어 깨지기 쉽다. 유진은 알렌스키와 알롭을 이용해 선수단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조절했다. 살벌했던 기강 잡기를 멈추고, 긴장감을 서서히 풀어 줬다.
유진은 능수능란하게 선수단 사이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온전히 선수단의 모든 걸 장악한 감독의 권위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진의 능수능란함에도 불구하고 웃음기가 싹 사라진 선수가 한 명 있었다.
“훅, 후욱, 훅.”
“…….”
젠킨슨은 멈추지 않고 훈련에 임하는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시뻘게진 얼굴과 흠뻑 젖은 트레이닝복이 그의 노력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해 줄 수 있었다.
원래부터 제임스가 성실했음은 안다. 훈련 때만큼은 악바리처럼 독기에 찬 것도 잘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더 심했다.
정확히는.
‘감독과 면담한 이후.’
뜬금없이 제임스에게 선발을 예고하고, 감독실에 불려 가 개인 면담을 했다.
그 이후 제임스는 마치 머릿속 어디 하나가 고장 난 것처럼 훈련에 매진했다. 훈련이 무조건 좋은 건만은 아니다. 과도함은 부족함보다 못한 법이다. 그리고 지금 제임스는 과도했다.
‘위험하다.’
불현듯 젠킨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줄기의 불안.
‘아직 제임스는 어려.’
어린 선수다.
그저 열심히, 성실히, 죽을힘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꼼수 따위는 모르는 저 답답함은 가만두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련할 정도로 성실함은 도리어 선수에게 독이 된다.
저렇게 훈련해 봤자 근육이 녹을 뿐이다. 고작 다음 한 경기를 위해서, 저런다고? 앞으로의 축구 인생은 신경도 쓰지 않고?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어.’
대체 왜.
고작 한 경기일 터인데.
물론 한 경기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코치진도, 선수단도 모두 그 경기 하나를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가 본 제임스는 어렸고,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 저렇게까지 조급해할 이유는 하등 없었다.
한데 그걸 알면서도 코치진은 가만히 있었다. 젠킨슨이 미간을 좁혔다.
막스는 그렇다 쳐도, 알롭과 알렌스키까지.
특히 선수의 체력 문제와 몸 상태엔 기이할 정도로 예민한 알렌스키까지 지켜만 보고 있다는 것이.
‘코치진으로부터 무언가 전달받고, 그에 따른 훈련이라는 건데.’
순간 망설였지만 젠킨슨은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되겠다.’
주장으로서 막아야 한다.
젠킨슨이 제임스를 부르며 멈추려는 순간.
“가만두세요, 캡틴.”
“……감독님.”
젠킨슨은 저를 무심히 쳐다보는 유진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쟤, 저거 놔두면 안 됩니다.”
“놔두지 않으면요. 무얼 하시게요.”
“그야 정확하고 필요한 훈련 루틴을…….”
“그걸로 만족 못 하니까요.”
“……!”
젠킨슨의 동공이 흔들렸다. 유진이 팔짱을 풀어서 한 걸음 다가왔다.
“제가 저 훈련 지시한 것 같습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감독님은, 감독님이 짜놓은 판을 벗어나는 거 싫어하잖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순간 젠킨슨이 멈칫했다. 찰나의 정적. 잠깐 생각을 끝낸 젠킨슨의 눈이 커졌다.
“이것도, 감독님의 판이군요. 지금도요.”
“글쎄요. 가끔 제가 사람들을 조종할 줄 아는 최면술이라도 쓸 줄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임스를 선발로 쓰겠다는 거, 압니다. 선수단에 공유했잖아요. 전술 지침 알려주면서요. 그에 맞게 훈련하고 있고. 그런데, 지금 저 가혹한 훈련이 필요한 겁니까? 막아야 하지 않겠어요? 저러다가 경기 뛰기도 전에 쓰러져요.”
“제임스가 왜 저리 훈련하겠습니까.”
“그건…….”
“예, 주전에서 밀렸다는 사실 때문이죠.”
“…….”
“그리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요. 불쌍하다고, 어리다고, 안타깝다고 주전으로 내세울 수 없는 거죠.”
젠킨슨이 입술을 깨물었다. 유진이 담담히 말했다.
“여긴 한 경기 뛰었으면 쉬고, 쉬었으면 다음 경기 골고루 출전하면서 기량을 끌어올리는 유스팀이 아닙니다. 어린 선수를 키워 주고 성장케 하는, 그런 따뜻한 유스팀이 아니에요.”
“…….”
“여긴 프로 무대입니다.”
“…….”
“젠킨슨 선수는, 제임스를 프로 선수가 아니라 유스 선수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순간 젠킨슨의 말문이 턱 막혔다. 유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프로에서 함께 스무 경기가 넘게 뛰어 놓곤, 유스 선수 취급이라.”
“아니, 나는 그런 적이…….”
“정말로요?”
“…….”
제임스는 입술을 깨물면서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유진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비웃음 같기도, 어쩌면 자신의 속내를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듯한 웃음 같기도 했다.
“예, 젠킨슨 선수도 알고 있는 겁니다.”
“…….”
“제임스가 재능 없다는 거요.”
젠킨슨은 정말 비겁하게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 * *
젠킨슨은 생각보다 표정이 다채로웠다.
아니, 원래 저게 젠킨슨의 본모습 중 하나다. 쉽사리 감정에 취하던 젊을 적 그의 얼굴이 기억에 생생하다. 주장을 달고, 결혼이 그를 믿음직한 기둥으로 바꿔 놨을 뿐이지.
“여긴 성인팀입니다. 성적을 내야 하는 냉혹한 프로 판이죠. 그리고 제임스는, 그 프로 판에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 제임스를, 끌고 온 건 감독님이죠.”
젠킨슨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캡틴은 처음부터 진즉 나랑 같은 생각이었어요.”
“……!”
“프로 선수의 자격이 안 됐다는 것. 준비되지 않은 상태. 그래요. 실력이 안 됩니다. 제임스는요.”
젠킨슨은 한동안 아무 말 않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아, 전반기 때 뼈저리게 느꼈죠. 한참 부족합니다. 수비력, 정말 부족해요.”
비단 젠킨슨의 고해성사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숫자로도 처참했으니까.
“하지만, 그 제임스를 콜업한 건 감독님이잖습니까.”
“…….”
“유스팀을 치워 버리면서도, 제임스만큼은요. 감독님은 제임스에게 뭔가를 본 거 아닙니까?”
젠킨슨의 눈이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잠시 그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약간은 의외라서.
희미한 빛에 어린 건 바로 신뢰였다. 감독을 향한 선수의 신뢰.
의외다 싶었지만, 일견 이해가 갔다.
스탠리의 포지션 변경 이후로 선수들이 내 선구안에 어떤 신뢰를 보내오는지.
비단 스탠리 건만이 아니었다. 그전부터 충분히 쌓여 온 믿음의 토대였다.
나는 쓰게 웃었다.
내 선구안이란 것도, 선수를 보는 눈이라고 감탄하는 여러 사례도, 선수의 숨겨진 재능을 발굴하는 감독의 능력이란 것도.
굳이 따지면 회귀의 이점일 뿐.
나는 선수단 관리와 구단 운영에 장점이 있는 감독일 뿐이다.
하니 젠킨슨의 질문.
“그래서 제임스도 콜업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스탠리의 재능을 찾아냈듯이, 제임스의 숨겨진 재능까지도…….”
“전 재능 못 찾습니다.”
답할 수가 없었다.
“네?”
“매사 부정적인 단면. 단점과 약점을 찾는 데 능할 뿐이죠. 그리고 제임스는, 예, 투성이에요. 단점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온갖 안 좋은 습관이란 습관은 다 가진.”
젠킨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면 왜……?”
“유일하니까.”
“!”
“라이트백으로 콜업할 수 있는 포지션. 유일했습니다. 제임스가.”
“…….”
“백업 선수.”
“…….”
“예,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스탠리가 저 자리에 서기까지, 그 자리를 지켜 줄.”
“백업…… 선수로요?”
젠킨슨이 흘긋 제임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깊게 숨을 내뱉으며 두 눈을 감고 비볐다. 그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 애당초, 주전이 아니었군요.”
“예.”
“제임스는 자신의 자리를 뺏겼다고 생각해서 뛰고 있습니다. 훈련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조차…….”
“자만이죠.”
내 무심한 단답에 젠킨슨이 형형한 눈빛을 드러냈다.
“주전 자리, 아니, 그 백업 자리조차 차지할 재능이 없다, 보시는 겁니까?”
“적어도 제 눈에는요.”
“냉혹하시네요. 너무도요.”
나는 쓰게 웃었다.
“유스 아카데미를 제 손으로 해체했습니다. 제가 거기 출신인 건 아시죠?”
“……!”
“제가 10년간 동고동락했던 곳을 내 손으로 무너뜨린 사람입니다. 이제 와서 냉혹하다고 하는 말, 너무 상투적이에요. 캡틴.”
젠킨슨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를 표정이었다. 침묵 속에서 나 혼자 말을 이었다.
“나는 프로 감독이니까요. 맥 해럴드를 오자마자 방출시켰던 사람이 저였음을, 잊지 마세요.”
“그러면, 너무 잔인하십니다.”
젠킨슨의 언성이 서서히 높아졌다. 슬쩍 보니 제임스가 이쪽을 흘긋 훔쳐보는 게 보였다.
“저 훈련이 의미 없다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주전은커녕 백업도 차지 못할 거라면, 그렇다면, 그걸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건.”
“훈련까지 막는 거야말로 더 잔인한 일입니다.”
“……!”
“자신이 할 수 있는, 이 답답한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제임스에겐 훈련뿐이에요. 그저 성실함과 노력,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
“그 마지막 수단까지 막으면, 간절한 마음을 풀어낼 출구까지 막아 낸다면, 제임스는 스스로 쓰러질 겁니다. 무너질 거라고요.”
젠킨슨은 한동안 침묵하다 힘겹게 말했다.
“왜 그리 제임스에게 부정적이시죠? 전반기, 저 정도 성적이면 충분히 잘했잖아요.”
“스탠리를 제칠 정도는 아니죠.”
“그거야 당연히…… 하아, 하지만 재능을 개화시켜 줄 순 있잖아요. 성장시켜 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노력으로요. 저 지독한 노력으로 말입니다.”
나는 말없이 젠킨슨의 눈을 바라봤다. 어째서일까. 고작 후배 선수 한 명일 텐데. 그 선수를 위해서 왜 이리 마음을 이토록 쓰는 것일까. 유스 선수라서? 그래서 정을 준다고? 그럴 리가. 옛날엔 안 그랬잖아?
나는 무심히 답했다.
“정말로요?”
“…….”
“그리 생각하세요? 없는 재능을 노력만으로, 이 프로에서, 이 성인 무대에서, 할 수 있다고?”
젠킨슨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듯했던 그는 일순 확 식어 버린 듯 눈빛이 가라앉았다. 끓기 직전의 물의 거품이 확 가라앉은 것처럼 담담한 눈으로 불쑥 물었다.
“뭘 두려워하시는 거죠?”
피식, 실소가 새어 나왔다.
“나는, 제임스를 싫어하지 않아요. 도리어 좋아합니다. 그래서요. 거짓된 희망을 주고, 거기에 인생을 바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그게 어린 선수를 이끄는, 지도자의 의무입니다.”
젠킨슨은 한참 내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말씀하시는 투가, 마치 과거의 누군가를 말하는 것 같군요.”
“…….”
젠킨슨은 한참 내 눈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거짓말 마요, 감독님.”
젠킨슨은 웃었다. 하나 웃음 너머로, 두 눈은 깊은 호수만큼 가라앉았다. 얼어붙은 호수처럼 시리도록 차가운 빛을 흩뿌렸다.
“나는 알아, 유진.”
“…….”
“이제 좀 기억이 나네. 당신이 콜업돼서 선수단에 들어왔을 때, 말이야.”
나를 객관적으로, 삼자의 시선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때때론 안타깝다.
젠킨슨의 표정과 눈을 보건대, 나는 아마도 흔들렸을 거다. 분명히도.
“주전은커녕, 백업도 안 된다고, 가차 없이 재능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이번 시즌 가장 중요한 경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주목받을 수 있는 빅경기. 그 경기에 제임스를 선발로 내세웠어, 당신은.”
젠킨슨의 눈은 형형했다. 점점 밝다 못해 나를 잡아먹을 듯이 커졌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조금은 장난스럽고, 조금은 거친, 과거 내가 어릴 적 봤던 그 위압감.
“그게 뭔지 나는 안다고. 당신, 제임스에게 실낱같은 희망, 가지고 있는 거잖아.”
“…….”
“1군 무대로 콜업돼서, 아무 것도 못 하고, 무엇도 보여 주지 못하고, 부상을 당한 채 사라진. 평범에도 미치지 못하는 재능을 가졌던, 당신과는 다르게 말이야.”
젠킨슨의 두 눈이 나를 바라봤다. 아니,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기억납니까? 제가 콜업됐던 순간이요.”
“하, 하하. 기억나죠. 이제야 좀 기억이 나. 13년 전이기도 했고, 내가 주장도 아니었을 때니까. 매년 유스 선수들이 올라오니 기억 못 할 줄 알았는데, 이젠 좀 기억나네요. 그 동양인 선수. 순식간에 팀에서 사라진.”
“…….”
“아무 것도 못 하고 사라졌던 자신처럼 될까 봐. 제임스에게 기회를 주는 거잖아? 유소년에서 콜업돼서 아무 것도 못 한 자신과 달리. 제임스는 그렇지 않게끔, 대리 만족하는 거잖아? 아닙니까, 감독님?”
젠킨슨은 확신하듯 말했다. 재능이 없는 제임스에게 내 과거를 투영해서, 그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숨겨진 욕망이라는 그 질문은.
“틀렸습니다.”
“…….”
“내 과거를 투영해서 제임스가 나와는 달리,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같은 음험한 욕망 따위 아닙니다. 나는 감독이고, 승리를 위해서 움직이고 일합니다.”
“…….”
“하지만 정조차 없는 냉혈한은 아닙니다. 차갑더라도, 냉정은 무정과 다르니까요. 그래섭니다. 그냥, 동정이에요.”
“……동정?”
“어릴 적 모든 것을 다 바친 자신의 축구가, 선수의 인생이, 허망하게 끝나서 모조리 기억도 하기 싫은 끔찍한 것이 되는 걸 막아 주고 싶습니다. 관중으로 가득 찬, 가장 중요한 경기의 필드에서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뛰는 것.”
“…….”
“그게 내가 제임스에게 줄 수 있는, 전반기 우리 팀을 위해 헌신한 제임스에게 안겨 줄 동정입니다.”
“…….”
순간 젠킨슨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임스는, 아마 이번 시즌이 마지막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