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001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1001화(1001/1002)
제1001화
후우우우욱!
날개가 찢어지다 못해서 걸레처럼 흐르는 블루 드래곤이 힘겹게 바다를 나아갔다.
“미안해요. 삼촌….”
에블린은 전신에서 핏물을 흘리며 하나만 남은 손으로 록타의 비늘을 매만졌다.
[말하지 마십시오!]록타는 떨리는 손으로 에블린의 육체에 마나를 밀어 넣었지만, 들어가지는 않고 빠져나가기만 했다.
“늦었어요.”
에블린은 이미 다 끝났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 왔는데, 마지막에….”
마지막에 셀라를 보고 손을 멈췄던 일이 떠올라 스스로에게도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에블린이 셀라를 안아주었던 손을 보며 웃었다.
“그 안에 엄마의 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행복했어요. 저는 엄마를 안아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셀라가 자신을 안아준 적은 많았다. 그녀는 죽기 전에도 자신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해주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먼저 셀라를 안은 적은 없었다. 마지막이라도 엄마의 손을 잡고 안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록타는 그저 서글프기만 한 듯 말없이 그르렁거리기만 했다.
“그동안 억지를 부려서 죄송해요.”
[말하지 말고 힘을 아끼란 말이다!]록타는 에블린의 온기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처음으로 말을 놓은 채 소리를 질렀다.
“정말 고마웠어요. 삼촌.”
에블린은 힘이 빠진 손으로 록타를 만지며 뚝 끊어질 것처럼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기, 기다려라!]“시르켄 왕국의 마지막 왕족으로서 명한다. 지금 이 시간부터 기사 록타 데포르트를 해방한다.”
[에블린!]록타가 날아가는 것도 멈춘 채 에블린을 바라보았다.
“삼촌. 저와 엄마 대신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미안해…”
에블린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내리감고 손을 떨궜다. 그녀의 육체에서 생기와 열기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록타는 자신을 쥐고 있던 손을 축 늘어뜨린 에블린을 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아아아아악!]홀로 남은 드래고니안의 슬픔을 느끼듯 바다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높고 깊은 파도가 솟아올랐다
*
*
*
스으으으.
록타는 얼음기둥을 손등으로 쓸어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 행복하라고? 그럴 수는 없구나.”
얼음기둥 속에 갇혀 있는 에블린을 보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에블린은 자신을 해방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부상 때문에 자신의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고, 외로움을 타는 아이를 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록타가 멍하니 에블린의 시체를 보며 한숨을 내쉴 때였다.
트드득.
자신이 머무는 동굴의 입구에서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
록타는 소리를 내지 않고, 벽에 기대놓은 검을 쥐었다. 누가 오든 베어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눈앞으로 등불처럼 작은 불꽃이 떠올랐다.
“여기에 있었군.”
불꽃의 뒤에서 회색 수염을 늘어뜨린 마법사가 걸어 나왔다.
“비른?”
지난 전쟁에서 마법사들을 통솔했던 고위 마법사 비른이었다.
“어떻게 여길….”
“자네의 흔적을 쫓아왔네. 참 멀리도 갔군.”
비른은 이곳까지 오느라 힘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블린은 결국 죽었나.”
그는 얼음에 갇혀 있는 에블린을 보며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살아 남았다면 대륙의 마법 역사가 바뀌었을 텐데.”
비른은 에블린의 재능은 그 누구보다도 특별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네. 그 날의 일은….”
록타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어쩔 수 없었겠지.”
비른이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우리의 목표는 이뤘네. 결국 로세르 왕국은 사라졌으니까.”
그는 본인은 만족했다며 피식 웃었다.
“하긴 자네는 이후의 재물이나, 지위가 아니라 로세르에 대한 복수만을 생각했으니까.”
록타는 그럴 것 같았다고 말하며 검을 내려놓았다.
“그래. 그래서 온 것이네. 마지막 매듭을 풀어야 하니.”
비른이 록타에게서 시선을 돌려 에블린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록타가 눈매를 찌푸렸다.
“이대로 놔두면 저 아이는 악령이 될 것일세.”
“아, 악령?”
“원하던 목적을 다 이루지 못하고, 현세에 미련도 남았지 않나.”
비른이 에블린을 얼리고 있는 얼음을 매만지며 혀를 찼다.
“거기다 이렇게 얼음에 가둬두었으니 더더욱.”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록타가 방법을 알려달라며 비른의 손을 잡았다.
“화장을 하든, 땅에 묻든 해야겠지. 물론 그 전에 의식을 좀 치러야겠지만.”
비른은 그 일을 본인이 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네. 저 아이에게 이 이상의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
록타는 이미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진 듯 입술을 떨었다.
“물론이네.”
비른은 전우의 일은 자신의 일이라고 말하며 록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다만 의식에 필요한 물건들이 있으니, 자네가 좀 구해오게나. 나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군.”
그는 록타에게 필요한 물건의 목록과 돈을 건네주었다.
“바람도 쐬고, 정신도 차리고 오게.”
“아, 알겠네!”
록타는 부탁한다고 말하고서 동굴을 뛰쳐나갔다.
“결국 이렇게 다시 보는군요.”
비른은 갑자기 존댓말을 하며 멀린을 가두고 있는 시체에 손을 얹었다.
얼음기둥에 비친 그의 모습은 회색 수염을 늘어뜨린 마법사가 아니라, 기이할 정도로 잘생긴 금안의 남성. 현인이었다.
우우우우웅!
현인의 손아귀에 검은 구멍이 떠오르자, 에블린의 가슴에 있던 무언가가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흐음, 여기서 더 쓸 수도 있겠는데.”
현인은 눈을 내리감은 멀린을 보며 사이한 미소를 그렸다.
투우웅!
그 순간 시간이 멈추고, 모든 것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라온은 얼음기둥에 비쳐 있는 현인의 얼굴을 보며 픽 웃었다.
“그래. 그렇게 된 건가.”
현인은 비른으로 위장하여 이곳에 찾아와서 멀린의 시체에서 무언가를 빼낸 것 같았다.
‘기억도 조작한 것 같고.’
멀린 정도 되는 사람이 타천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타천은 멀린의 영혼을 조작하여 힘을 빼내고, 기억을 조작한 게 분명했다.
“멀린의 사정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 한 종족의 삶이 저놈의 손바닥에서 농락당했구나.
라스는 이전처럼 강렬한 분노를 터트리지 않고, 서늘한 살의를 피워냈다.
-인과율의 결과를 받더라도 직접 죽이고 싶구나.
녀석은 진심으로 분노한 듯 뻘개지는 눈동자로 타천을 노려보았다.
“미안하지만….”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놈은 멀린의 먹이야.”
현인을 죽이는 건. 아니, 타천을 죽이는 건 멀린이 깨어나서 직접 해야 할 일이었다.
“후우.”
라온이 씁쓸한 눈으로 기둥에 갇혀 있는 멀린을 지켜보고 있을 때 이 마지막 장면을 그리고 있는 회색빛 나비들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며 새로운 장소를 보여주었다.
“여기는….”
다시 보니 새로운 곳이 아니다. 처음 멀린의 기억에서 보았던 파라의 마을이었다.
-광녀가 살던 곳이로구나. 다만….
라스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곳은 그 기억과 다르니라. 광녀의 진짜 심상의 세계이니라.
‘그렇게 보이네.’
검과 검술만으로 채워져 있었던 자신의 심상의 세계처럼 멀린의 심상의 세계는 이 마을이 전부인 것 같았다.
‘물론 문제가 있지만….’
라온은 허공이 쪼개져 있는 마나의 고리들을 보며 눈썹을 내렸다.
‘완전히 망가졌어.’
저 고리는 자신의 심상에 있는 불의 고리처럼 멀린의 심장을 휘도는 마력의 서클이다.
현실의 멀린이 지니고 있던 마나 서클이 모두 깨졌기에 이곳에서도 붕괴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하아….”
라온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마을로 들어갔다.
‘일단 멀린을 만나보자.’
멀린을 살리는 게 먼저였기에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라온은 마을로 들어가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뭐야 이건….”
가지각색의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벽을 채우고 있는 것은 자신을 그린 그림이었다.
“어억….”
라온은 그 자리에서 멈춘 채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 있는 집의 벽에도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벽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광녀가 불쌍하기는 한데….
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친년은 맞느니라.
‘…….’
반박할 수가 없었다.
‘미치겠네.’
라온은 힘이 다 빠진 숨을 내뱉으며 계속해서 마을로 들어갔다.
-헌데 벽에 박힌 네놈의 얼굴 말이다.
라스가 벽을 채운 그림들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단순히 너를 그린 게 아니니라.
‘그러면?
-광녀와 함께 있을 때의 네놈을 그린 것이니라.
녀석은 단순히 자신의 얼굴을 그린 게 아니라, 함께 있던 시절의 자신을 그렸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라온이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자세히 살폈다.
‘다 기억이 나는 장소야.’
멀린과의 첫 만남부터 그녀가 동물의 모습으로 튀어나와 자신을 놀라게 했던 수많은 장면들, 그리고 지그하르트에서 함께 지내던 시절까지. 모든 장면에 자신과 멀린이 함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멀린은….’
라온은 눈을 내리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함께하며 이 마을에서 살던 시절을 떠올렸던 것 같아.’
특히 별관에서 시녀복을 입고 지내던 시간이 즐거운 듯 그 때의 그림이 정말 많았다.
미쳤다고 생각했던 마법사는 생각보다 여리고, 정이 많으며,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았다.
저벅.
라온은 깊은숨을 내뱉으며 다시 발을 움직였다.
‘저곳인가?’
과거에서 본 멀린과 셀라의 집이 보인다. 집 주변에는 블루드래곤이 이곳을 지키듯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록타였다.
쿠구구구구.
록타는 자신과 잠시 눈인사를 한 후 꼬리를 들어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고맙다.”
라온은 록타에게 고개를 숙인 후 멀린의 집으로 들어갔다.
멀린의 집은 겨울의 지그하르트보다도 냉랭하고, 서늘했다. 온몸이 떨리고,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였다.
멀린은 거실 중앙에 앉아서 도화지를 놓아둔 캔버스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발밑에는 그리다가 만 듯한 그림들이 수없이 떨어져 있었다.
“안 돼….”
멀린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생각이 안 나….”
그녀는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그리던 그림을 사정없이 구겨서 바닥으로 던졌다.
스으으.
라온은 멀린의 뒤로 다가가 지금 떨어진 그림을 펼쳤다.
멀린이 그린 그림에는 금발적안의 여자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얼굴은 어딘가가 무너져 있었다.
‘설마….’
라온이 눈매를 좁히며 다른 그림들을 펼쳤다. 역시나 금발적안의 여자가 그려져 있었지만, 이목구비가 비어 있었다.
‘이제 알겠군.’
라온이 입술을 깊게 깨물었다.
‘멀린은 셀라를 그리려고 했던 거야.’
셀라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그림을 그리고자 했지만, 타천의 기억 조작 때문에 본인이 누구를 그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모두 잊어버린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라온이 짧은 숨을 내쉬고서 새로 도화지를 꺼내 온 멀린의 뒤로 다가갔다. 떨리는 그녀의 손을 감싸서 잡아주었다.
“아….”
멀린은 자신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라온?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너는 이곳에 있어서 안 되는….”
“내가 본 네 어머니는….”
라온이 옅게 웃으며 멀린의 손을 이끌었다.
“태양처럼 환한 금발을 곱게 묶으셨고, 눈동자는 모닥불을 보는 듯 따스한 붉은 빛을 지니고 계셨어. 콧대는 칼등처럼 높았지. 시원시원 분위기를 지닌 아름다운 분이셨어.”
자신이 보았던 셀라를 떠올리며 멀린의 손으로 그녀의 어머니를 그리도록 만들었다.
“너희 어머니는 너를 끝까지 사랑했고, 너 역시 그 사람을 마지막까지 사랑했어. 내가 본 것은….”
그동안 보았던 것 그리고 느꼈던 것들을 멀린에게 말해주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모두 이야기해야 했기에 긴 시간이 지나갔지만, 그 쓸쓸하고 서글픈 이야기와 달리 도화기에 그려지는 셀라의 입가에는 딸을 환영하는 듯한 다정한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이게….”
멀린이 손에 쥐고 있던 붓을 떨어뜨리며 입술을 뗐다.
“우리 엄마야?”
“그래.”
라온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셀라를 그림으로 마주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
멀린의 깊은 탄성과 함께 냉기만 가득했던 집안으로 은은한 햇볕이 들어오고, 난로에서 연한 불길이 피어난다.
따스하면서도 부드러웠던 공기. 셀라와 멀린이 함께 살았던 다정한 집의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후우우우욱!
멀린의 집에서 피어나는 청아한 빛을 따라 부서지고, 무너졌던 멀린의 마나 흐름이 새롭게 이어진다.
하지만 그 흐름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그녀의 본질. 파라가 지녀야 할 근본적인 마나의 파동이었다.
우우우우웅!
여덟, 아홉 그리고 열.
열 번째 서클이 하늘 높게 솟아오르며 멀린의 전신으로 연한 보랏빛 광채가 솟아올랐다.
“다….”
멀린은 심장에서 휘도는 열 개의 고리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다 생각났어.”
그녀는 이제야 모든 것이 기억났다며 청초한 자주색 눈동자에서 투명한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럼 나가자.”
라온이 그림을 소중하게 품에 안은 멀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에블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