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017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1017화(1017/1042)
제1017화
후우우우욱!
라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화했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얼음 동굴에 들어온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허?”
“따르거나, 죽거나? 아무리 지그하르트라고 해도 말이 너무 심하잖아!”
“말조심하십시오! 사마도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명성에 미치기라도 했나? 제정신이 아니로군.”
악검후의 뒤에 서 있던 무검각의 검사들이 입술을 씹으며 매서운 기세를 일으켰다.
“꼬우면 진작 결정을 했어야지.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잖아.”
“협박이라뇨. 선택권을 주었는데, 어떻게 협박이 되는 겁니까.”
“참 못났어….”
마르타, 버렌, 루난은 상황 파악을 하라며 비웃음을 흘렸다.
파지지지직!
광풍전과 무검각 간부들이 오러를 일으키며 대치하자, 하얀 원탁 위로 푸른 스파크가 솟아나 회의장이 천장과 벽을 새까맣게 지져버렸다.
“그만.”
악검후가 손을 들어 올려서 그녀의 뒤에 있던 검사들을 막았다.
“조용히.”
라온도 살짝 턱을 돌려서 그랜드 마스터의 기파를 개방하려는 버렌과 마르타, 루난을 자제시켰다.
“….”
희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뒤에 있던 백경의 무인들 역시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너 말이 좀 세다?”
악검후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서늘한 눈동자를 띄웠다.
“조금 전에 했던 말 진심이야?”
그녀는 타천의 이야기에 당황할 때와 다르게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화를 내도 제대로 다 듣고 나서 결정하겠다는 것 같았다. 초월자다운 마음가짐이었다.
“진심이겠죠. 이런 자리에서 떠보는 수를 던질 사람이 아니에요.”
희극제가 손가락으로 찻잔의 손잡이를 매만지며 연한 미소를 그렸다. 그녀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예. 진심입니다.”
라온이 악검후의 냉랭한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지?
악검후는 그런 말이 나온 이유를 말하라는 듯 턱을 틀었다.
“저희 오황. 특히 지그하르트는 신주오령에 많은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라온이 희극제와 악검후의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며 원탁에 손을 얹었다.
“무슨 기회?”
“당신들은 신주오령이라는 이름 하에 다섯 개의 세력이 묶여 있습니다.”
라온이 회의장의 벽에서 펄럭이는 신주오령의 깃발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하나의 깃발을 공유한다는 의미는 한 단체의 문제를 다른 네 단체에서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인다고 봐야겠죠.”
“맞아. 그런 의미야.”
악검후는 머뭇거림 없이 자신의 말을 인정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해도, 숨기려는 건 없어 보였다.
“사검마는 본인의 악행을 지우기 위해서 저를 죽이려 들었고, 귀살창 역시 친구를 보호하려고 했던 저에게 먼저 공격을 해왔습니다.”
라온은 사검마와 귀살창의 피를 적셨던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본래라면 저와 지그하르트는 사검마와 귀살창이 속해있는 신주오령에 그 책임을 묻고 따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분을 공론화하지 않고….”
“그건 아니야.”
악검후가 라온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둘은 이미 신주오령을 나갔어. 이 녀석이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설득을 했지만, 들어먹지를 않고 떠났다고!”
그녀는 희극제를 이 녀석이라 부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두 사람의 관계는 평범한 동맹 이상인 것 같았다.
“사검마는 우리에게 말도 없이 떠났다가 너한테 죽었고, 귀살창은 흑탑이 무너진 후에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며 신주오령을 나갔지. 둘 다 그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힘으로라도 막고 오황에 갔어야 했는데.”
악검후는 사검마와 귀살창을 막지 못한 게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라온이 미간을 찌푸린 악검후를 보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악검후는 이전에도 오황을 선택하고 싶어 했지.’
다른 사람과 달리 악검후는 처음부터 사마를 증오하고, 오황만을 선택하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다만 그녀에게 호감이 있어도 이번 사건을 넘어갈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아뇨.”
라온이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신주오령은 사흑련과 마창회의 이탈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습니다. 해적왕 역시 마찬가지죠.”
“그게 무슨….”
악검후는 처음 듣는다는 듯 눈썹을 구기며 희극제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야?”
“….”
희극제는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내리감았다.
“그 이유는 듣지 않아도 뻔합니다. 신주오령의 권위와 힘이 떨어졌다는 것을 외부에 들키고 싶지 않아서죠.”
라온이 눈을 감고 있는 희극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주오령은 육황오마에 휘말리지 않고, 그 중심에서 여러 이득을 챙기기 위해 설립된 동맹입니다. 헌데 그중 셋이 이탈을 했다? 그것도 전쟁 중에? 오황과 사마 입장에서는 딱 먹기 좋게 차려진 음식이 될 뿐입니다.”
희극제의 생각을 모두 읽고 있기에 당황한 악검후를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솔직히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 저도 희극제님과 비슷한 선택을 했을 테니까요. 다만….”
라온은 다시 눈을 뜬 희극제를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그런 선택을 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져야하는 게 옳습니다. 저와 지그하르트 입장에서는 신주오령의 소속인 사검마와 귀살창에게 공격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으음….”
악검후는 이제야 자신의 말이 이해된다는 듯 입술을 깊게 깨물었다.
“그, 그런!”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한 일이 아니잖아….”
“이런 건 말을 했어야 했는데….
무검각의 검사들은 억울하다는 듯 말아쥔 주먹을 떨었다.
“입 다물어.”
악검후는 손을 내려서 무검각 검사들이 말하는 것 자체를 막았다.
“….”
희극제는 모든 사실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어 있는 찻잔만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라온이 정면에 앉아 있는 희극제를 바라보았다.
“사검마의 일을 겪어놓고, 귀살창이 나갔을 때 왜 외부에 공표를 하지 않았죠? 사검마에 이어서 귀살창까지 사고를 치면 그 피해가 신주오령에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을 당신이 모를 수가 없지 않습니까.”
자신이 아는 희극제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사람이다. 사검마의 일을 통해 한 번 데였을 텐데, 왜 같은 실수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말해봐.”
악검후도 같은 생각을 한 듯 희극제를 향해 턱을 까딱였다.
“맞아요.”
희극제가 직접 찻잔에 붉은 홍차를 부으며 눈썹을 내렸다.
“예전의 저라면 사검마가 꺾인 이후 바로 귀살창과 마창회의 이탈을 공표했을 거예요.”
그녀는 라온의 말이 맞다는 듯 가늘게 웃으며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그럼 왜 그 일을 하지 않았죠?”
라온이 희극제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렇게까지 신주오령을 유지해서 이득을 얻고 싶었습니까?”
“….”
희극제는 답을 하지 않고, 얕게 출렁이는 찻잔만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오면서 저분께 당신의 일화를 들었습니다.”
라온이 희극제의 뒤편에 서 있는 메케인을 가리켰다.
“오마의 습격 이후 개인 자금을 풀어서 주민들의 집과 터전을 먼저 챙겨주었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아는 당신이라면 외부의 눈과 소문을 신경 쓰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조금은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애정도 있었을 겁니다.”
회의장의 창밖으로 비치는 활력 넘치는 도시를 굽어보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번 일 때문에 당신이 직접 가꾼 이 도시가 지그하르트에 의해 피바다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힘도 명분도 다 저희에게 있으니, 누구도 따질 수도 없었을 거예요.”
라온이 최악의 미래를 가정하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당신이 소중이 여긴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한 겁니까.”
이제는 답을 이야기하라고 말하며 턱을 까딱였다.
“솔직히 말해봐.”
악검후가 손바닥을 내려 원탁을 후려쳤다.
“너 무슨 생각이었어!”
그녀는 제대로 말해달라며 어금니를 씹었다.
“후우….”
희극제가 담배연기를 뱉어내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타천. 그래. 결국 그렇게 되는군요.”
그녀가 힘이 빠진 웃음을 그리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알겠어요. 이번에는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희극제는 숨기지 않겠다고 말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천기를 읽을 수 있어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백의를 걷고, 허벅지에 매여 있는 책을 원탁 위에 올려놓았다.
“천기란 바꿀 수 없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미래에요. 저는 이 일월성서를 이용해서 조금이나마 미래를 읽을 수 있죠.”
희극제가 일월성서라는 책을 펼쳐서 뒤로 넘겼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저는 제대로 된 미래를 볼 수 없게 되었어요.”
그녀는 스스로에게 향하는 비웃음을 흘렸다.
“그날?”
악검후가 그게 언제냐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당신.”
희극제가 손가락을 들어서 라온을 가리켰다.
“라온 지그하르트의 천기를 읽은 이후로는 대부분의 미래가 흐릿해졌어요.”
그녀가 책을 들어서 끝에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었다. 찢어진 페이지에 피를 부은 듯한 붉은 선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꼭 책 자체가 절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내 천기라고?”
라온이 책에 그려진 섬뜩한 무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사실 천기를 읽고 지그하르트에 찾아갔어요. 하지만 제가 보았던 미래가 전부 당신에 의해서 깨지더군요. 그래서 이곳으로 돌아와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고자 했죠. 하지만 그 결과가 이거에요.”
그녀는 다시 일월성서의 찢어진 장을 보며주며 탁한 숨을 내쉬었다.
“이 이후에는 제가 무얼 볼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겠더군요. 신기하게도 당신이 찾던 영혼석은 알 수 있었지만. 어쨌든 저는 이득을 얻기 위해서 머뭇거린 게 아니라….”
희극제가 라온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무슨 선택을 해야 신주오령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르기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겁니다.”
그녀는 자신의 천기를 읽은 이후 머리가 굳어졌다며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천기를 읽는다는 그 능력 자체가 제게 족쇄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희극제는 미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에 무슨 선택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며 탁한 웃음을 흘렸다.
“타천 역시 본인이 죽지 않는다는 천기를 읽고 당신에게 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죽음이었죠.”
그녀는 타천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확실해졌어요. 당신에게는 천기를. 아니,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어요.”
희극제는 이제는 흐릿하기만 한 천기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며 한참 동안 참고 있던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그랬군. 그래서….”
악검후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희극제에게 모든 업무를 맡겨두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 생각한 것처럼 두 사람은 동맹보다 더 가까운 관계인 게 분명했다.
‘또 운명인가.’
라온은 얼마 전에 얻었던 칭호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자>를 떠올리며 눈을 내리감았다.
‘운명을 바꾸든, 아예 새로운 운명을 만들든 상관없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돼.
천기니, 미래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떠올리며 다시 눈을 떴다.
“당신의 사정은 알았지만, 나는 천기를 읽지 못하고, 믿지도 않으니 딱히 공감이 가지는 않습니다.”
라온이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사검마의 일을 신주오령에 따지지 않고, 기다린 이유는 당신이 영혼석에 관련된 정보를 주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귀살창의 일까지 벌어졌으니, 그 약발도 떨어졌습니다. 이제는 선택해 주시죠.”
오황의 길을 따라갈지 아니면 이곳에서 죽을지를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후우….”
희극제가 이마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숙였다.
“당신을 만나니 어지러웠던 머리가 시원하게 풀리는군요.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결정할 수 있겠어요.”
그녀가 라온의 눈을 보며 가늘게 웃었다.
“저와 신주오령은 오황을….”
“잠깐.”
희극제가 선택을 하려고 할 때 악검후가 몸을 일으켰다.
“나는 아직 반대야.”
악검후는 본인은 지금 선택하지 않겠다며 눈썹을 내렸다.
“네? 당신은 이전부터 오황과 함께 하기를 바라셨잖아요.”
희극제는 왜 갑자기 그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녀석이 잘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사검마와 귀살창이 우리 소속인 상태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도 전부 이해했어.”
악검후는 라온과 오황이 따질 자격이 있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어. 나는 무식한 무인이니까.”
악검후가 원탁 위에 기대놓은 검을 잡았다.
“너와 직접 검을 부딪쳐보고 결정하고 싶다.”
그녀는 본인을 이긴다면 따르겠다며 턱을 치켜들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라온이 피식 웃으며 원탁에서 일어났다.
‘이 사람과는 싸울 가치가 있지.’
글렌이 경고처럼 했던 말이 있기에 희극제는 몰라도 악검후와는 자신이 먼저 부딪쳐보고 싶었다.
“대신….”
라온이 악검후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보며 고아하게 턱을 내렸다.
“전력으로 오십시오. 무엇 하나 숨기지 말고.”
“그러다가….”
악검후는 정말 숨기고 있는 게 있는 듯 칼날처럼 벼린 서늘한 눈빛을 띄웠다.
“너 죽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