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045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1045화(1045/1072)
제1045화
“너….”
라온은 다르칸의 얼굴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어떻게 눈이….”
다르칸은 조금 전과 달리 안대에 가려지지 않은 온전한 두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이곳은 나의 심상이다.”
다르칸이 손가락으로 회색의 땅을 가리키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육체가 아닌, 영혼을 비추는 공간이니 이렇게 눈이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심상의 세계….”
라온이 오직 회색의 땅만 보이는 공간을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너 그때의 복수를 하려는 거냐.”
다르칸은 성검련의 성지에서 만났을 때 자신을 시험하다가 라스의 영혼을 건드려서 녀석의 심상의 세계로 끌려간 적이 있었다.
그 일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자신을 본인의 심상으로 끌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다르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말했지 않느냐. 네게 도움을 받은 값을 치르겠다고. 거기다….”
그가 자신을 보며 작은 미소를 그렸다.
“그 일을 왜 복수하겠나. 내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그래. 그 경험 덕분에 나만의 심검을 이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르칸은 오히려 라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다며 웃었다.
“나만의 심검이라는 게 무슨 뜻이지?”
라온이 다르칸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심검은 그저 적의 영혼을 베는 무학이 아니었나?”
“나도 그리 생각했다.”
다르칸이 담담하게 턱을 주억였다.
“네 할애비의 심검이 딱 그 이미지의 궁극점이지. 그가 동시에 여럿을 베려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글렌의 심검은 신화 속에 나오는 즉사의 마법 이상이라며 헛바람을 흘렸다.
“내가 본 심검은 그게 유일했으니, 처음에는 나도 그 길을 따라서 걸었다. 하지만….”
다르칸이 깔끔하게 다듬은 턱을 매만졌다.
“재미가 없어.”
“뭐?”
라온이 손을 내리는 다르칸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재미가 없다는 게 무슨 소리….”
“그 말 그대로다. 심검을 익히는 건 무엇보다도 즐겁지만, 정작 심검을 운용해서 사람의 영혼을 베는 순간은 너무도 찰나이기에 허무하더구나.”
다르칸은 성향에 맞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나는 네 할아버지와 달라. 적을 완벽하게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가 어떤 검술을 어떻게 익혔는지를. 그 검사가 쌓아 올린 검의 끝을 보고 싶은 거다.”
그의 눈동자 위로 붉은 희열이 타올랐다.
“그래서 네 안에 있던 푸른 왕에게 당한 후 나만의 심검을 떠올렸지.”
“설마 이게….”
라온은 이제야 알겠다고 중얼거리며 회색 대지로 시선을 내렸다.
“그래. 내 심검은 적의 영혼을 베는 게 아니라, 적의 영혼을 나의 심상으로 끌어당긴다.”
다르칸은 라스에게 당했던 경험 덕분에 이런 심검을 만들 수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에서 서로의 검과 검을 그리고 영혼과 영혼을 부딪치는 것이지.”
그는 천국과 다를 바가 없다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어때, 행복할 것 같지 않은가?”
“하!”
라온이 티끌 하나 없이 웃고 있는 다르칸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친놈….”
정말 미쳤다는 소리밖에 안 나와.
심검이라 함은 자신의 영혼을 벼려 적의 영혼을 단숨에 갈라버리는 검술의 최종적인 단계다. 글렌도 그러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도 그쪽이었다.
하지만 다르칸은 적을 죽이는 것보다 적의 검술을 더 완벽하게 맛보고, 느끼기 위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심검을 만들어냈다.
어찌 보면 심검이 아니라, 검계현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이 심검이 전부 성공하는 건 아니야.”
다르칸이 콧잔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최소한 초월자급의 영혼을 지녀야만 이 세계로 불러올 수 있지. 그 아랫급의 영혼들은 너무 미약하여 끌고 오기 전에 죽어버리더군.”
그는 그래서 처음부터 자신을 이곳에 부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가늘게 웃었다.
“그렇군….”
라온은 뇌리가 아려오는 것을 느끼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정말 네게 딱 맞는 심검이다.”
라스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미쳤다는 말을 연달아 내뱉었겠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다르칸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헌데 네 심상의 세계는 단출하네. 땅의 색만 특이하고 아무것도 없잖아.”
라온은 그저 회색의 땅만 보이는 세계를 훑으며 눈썹을 내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다르칸이 잘못 보고 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네가 밟고 있는 건 땅이 아니라, 검이다.”
“거, 검이라고?”
라온이 다시 회색 땅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따라오도록.”
다르칸은 직접 보여주겠다는 듯 손가락을 까딱이고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으음….”
라온이 짧게 입맛을 다신 후 다르칸의 뒤를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
“이쯤이면 되었겠군. 아래를 보아라.”
다르칸은 한참 동안 하늘로 올라간 후 아래를 보라며 손을 내렸다.
그의 말을 따라 시선을 내리자, 땅으로만 보였던 대지가 거대한 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미친….”
라온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을 터트렸다.
‘정말 검이었다고?’
다르칸의 말대로 자신이 밟고 있던 것은 땅이 아니라, 날카롭게 벼린 거대한 검이었다. 왜 바닥이 회색이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건 검에 미친 정도가 아닌데?’
타인의 심상에 들어간 적이 몇 번 있지만, 이 정도로 하나만 생각하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인간이 아니라, 짐승을 보는 기분이었다.
“너….”
라온이 헛바람을 흘리며 다르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검이 좋나?”
자신도 검에 미쳤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다르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니, 이런 질문이 필요 없지.’
다르칸은 대륙에서 손에 꼽힐 강자임에도 검술의 경지를 높이기 위해 자신에게 뺨을 맞아가며 거지 짓을 배우던 사람이다.
심검으로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검술을 보기 위한 능력을 만든 것을 보면 자신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검에 미친 게 분명했다.
“그래. 내 관심과 흥미는 모두 검이다.”
다르칸은 취미도, 특기도 검술이라며 입술을 비틀었다.
“내 손으로 궁극의 검을 펼칠 수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
그는 직접 벼린 거대한 검을 보며 평온한 미소를 흘렸다.
‘검에 미쳤다는 말로도 부족해. 다만….’
라온이 열기를 두른 다르칸의 눈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생각해보면 나도 비슷하긴 하네.’
다르칸이 거대한 검 하나로 심상의 세계를 만들었다면 자신은 수많은 검과 검술로 심상의 세계를 채웠다. 결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이상은 비슷했다.
‘데루스 로베르트에게 복수를 한다는 목표가 아니었다면 나도 다르칸처럼 궁극의 검이 목표였을지도.’
검을 수련하면서 힘들고 지루하기보다는 오히려 재미있고 행복했었기에, 지금 다르칸의 감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자신에게는 두 번 죽어서도 이뤄야 할 일이 있기에 뒤로 미뤘지만,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면 다르칸처럼 오직 검만을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네 심상은 전부 다 보았으니, 이제 시작하지.”
라온이 다르칸을 보며 제천검에 손을 얹었다.
“네게는 긴말할 필요가 없으니, 참으로 마음에 든다.”
다르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이 세계에서 나가게 될 때까지 나와 검술을 겨루는 것이다.”
그는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냐는 듯 손을 흔들었다.
“좋네.”
라온이 웃으며 허리춤에서 제천검을 뽑아 들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가진 검술은 모두 펼쳐봐야지.”
“너라면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르칸이 허공에서 흑검을 소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지.”
다르칸의 음성이 가라앉으며 그의 기세가. 아니, 영혼의 격이 무서울 정도로 급격하게 불어난다.
쿠구구구구구!
거대한 심상의 세계를 뒤흔드는 압도적인 기파. 자신과 거지에 대해 토론하던 바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뼈와 살을 떨리게 만드는 흑야검신 다르칸이 자신의 눈앞에 강림했다.
“먼저 가마.”
다르칸은 오른손으로 흑검을 말아쥐며 섬찟한 미소를 그렸다. 선배로서의 양보를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어조였지만, 그에게는 너무도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후우우욱.
다르칸은 처음부터 진심으로 싸우려는 듯 허공을 박차고 사라졌다. 다시 그의 기척이 느껴지는 건 자신의 우측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라온은 우측에서 튀어나온 다르칸의 검을 발검술로 쳐내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한껏 즐겨보도록 하지.”
*
*
*
쩌어어어엉!
라온은 다르칸과 정면에서 검을 부딪치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몇 시간이. 아니,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시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다르칸과 검을 겨뤘기에 이곳에 온 지 얼마나 지났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영혼도 지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
이 세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다 되었는지 시야가 흔들리고, 영혼으로 이루어진 육체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르칸이 힘을 조절하며 싸워주었는데도 이 정도이니, 제대로 겨뤘다면 진즉에 끝이 났을 것 같았다.
“한계에 달한 모양이로군.”
다르칸이 검을 내리며 혀를 찼다.
“하긴 지칠 만도 하지. 이 세계에서 너만큼 오래 버틴 놈은 없었으니까.”
그는 지금까지 이 세계에 머문 게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며 탄성을 흘렸다.
“신기한 일이야. 20살을 넘긴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애송이가 어떻게 무력보다도 더 거대한 영혼을 지닐 수가 있는 거지?”
다르칸은 자신의 무력보다도 영혼의 격이 경악스럽다며 헛바람을 흘렸다.
“너는 앞으로 검술보다 그 영혼을 다듬는 게 더 좋을….”
“어이.”
라온이 짤막한 숨을 내뱉고서 다르칸을 불렀다.
“당신의 말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작 수다로 마무리할 건 아니지?”
다르칸에게 제천검을 들어 올리며 턱을 까딱였다.
“나는 아직 마지막 검이 남았다.”
이곳에서 다르칸과 결투를 하며 익혔던 모든 검술을 펼쳤지만, 마지막 하나의 검술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걸 쏟아내고 나서야 자신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하! 크하하하하하!”
다르칸이 이마를 부여잡은 채 이 공간이 흔들릴 정도의 광소를 터트렸다.
“나보다 더 검에 미친 놈이 있었구나!”
그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기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와라.”
다르칸은 모든 것을 받아주겠다는 듯 두 팔을 벌렸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라온은 두 손으로 제천검을 말아쥐며 입술을 씹었다.
“이번에는 다를 테니까.”
눈앞에 보이는 검신 위로 지금까지 자신이 익혀왔던 검술과 그 검술들을 익히며 느꼈던 감정들을 쏟아냈다.
검계현신 개벽.
은빛 검신 위로 찬란한 금색 휘광이 피어난다.
검계의 빛은 회색으로 가득한 다르칸의 심상의 세계를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듯 장대하게 뻗어나갔다.
“기대 이상이로구나!”
다르칸은 흥분한 듯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받아주지!”
그는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라온의 검계를 향해 흑검을 내리찍었다. 평생 오직 한 길만을 걸어온 검사의 욕망과 의지가 검은 불꽃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쿠와아아아아앙!
금빛 섬광과 흑색 광휘가 부딪치며 검만으로 이루어진 다르칸의 심상의 세계가 수천 갈래로 깨져나간다.
찌지지지직!
영혼이 비틀리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뜨자,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는 다르칸이 보였다.
“크흑!”
라온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건물 잔해가 굴러다니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돌아온 건가?’
자신은 다르칸의 심상의 세계에서 충격을 받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라온!”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렉타르가 자신에게 달려와 부축을 해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네놈. 어디에 다녀온 것이냐!
라스가 자신의 어깨를 후려쳤다.
-네놈의 영혼이 1분가량 이 세계에서 사라졌었느니라!
녀석은 조금만 더 늦었다면 본인이 자신의 몸을 먹었을 거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르칸의 심상의 세계에 들어갔다 왔습니다.”
-심상?
“시, 심상의 세계라고?”
“사실….”
라온은 렉타르와 라스에게 다르칸의 심상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허어….”
렉타르가 그런 것은 생각도 못 했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미친… 정말 미쳤다는 말밖에는 안 나오느니라!
라스는 본인 때문에 다르칸의 심검이 바뀌었다는 것을 듣고 어이가 없다며 숨을 헐떡였다.
-네놈이랑 딱 맞는 미친놈이 드디어 나타났구나!
녀석은 자신과 다르칸이 동급이라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멋진 검이었다.”
다르칸이 만족스러웠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운 건 그 검이 완성되기 전에 보았다는 거겠지.”
그는 개벽이 완성된 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 짧게 입맛을 다셨다.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네 마지막 검에는 심검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심검까지 조화시킨다면 또 다른 검이 될 것이다.”
다르칸은 개벽을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조언을 해주며 손을 까딱였다.
“심검….”
라온이 다르칸의 미소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확실히 그럴 여유가 없었어.’
아직 자신의 힘만으로는 심검을 이루지 못하기에 개벽에 심검의 흐름을 넣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 부분을 개선 시킨다면 다르칸의 말대로 또 다른 개벽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조언은 고맙다. 다만….”
라온이 다르칸에게 턱을 까딱였다.
“개벽에는 끝이 없어. 완성보다도 더 높게 올라갈 검이니까.”
“완성보다 더 높게 올라갈 검이라….”
다르칸이 마지막에 보았던 개벽을 떠올린 듯 흥겨운 미소를 그렸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허나 틀린 말은 아니야.”
그는 그날이 기대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에게 가르침을 내린다고 하더니, 당신이 더 즐긴 것 같은데?”
“그럴지도.”
다르칸은 창피하지도 않은 듯 픽 웃었다.
“대신 다른 약속은 확실히 지켜주지.”
그가 자신을 보며 턱을 까딱였다.
“데루스 로베르트. 그놈은 내가 막아주마.”
다르칸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데루스의 검술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믿도록 하겠다.”
라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투명한 구술 하나를 꺼내서 다르칸에게 던져주었다.
“계획이 잡히면 그걸로 연락을 할 테니, 몸에 지니고 있어.”
“뭐, 이곳을 떠나야 하니, 필요하기는 하겠군”
다르칸은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며 품에 구슬을 넣었다.
“떠난다고?”
“그래. 네 덕분에 거지로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제 다른 길을 찾아봐야지.”
그는 깨달음을 얻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다음은 무얼 하려고?”
“글쎄? 왕도 되어보았고, 거지도 되었으니, 이제 평범한 가정이나 꾸려볼까?”
다르칸은 주변에 있는 집들을 보며 가는 웃음을 흘렸다.
“네 할아버지가 지금 같은 경지에 오른 이유 중 하나는 너 때문인 것 같거든.”
그는 그걸 위해서 가정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며 손을 저었다.
“할 거면 제대로 하고, 말 거면 말아라.”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정이라는 건 너 혼자 이루는 게 아니야. 타인에게 진심이 될 수 없다면 어설픈 거지 행세를 할 때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거니까.”
가정을 이룰 거라면 책임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하며 눈썹을 내렸다.
“알고 있다. 네게 배웠으니까.”
다르칸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는 잘 있으라는 듯 손을 흔들고서 어둑한 골목으로 사라졌다.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은 흑야검신이라는 이명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물론 여전히 넝마를 걸친 거지 행색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잘 끝난 것 같구나.”
렉타르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사실 설득만 성공해도 큰 이득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이득까지 얻었어요.”
라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득?”
“네. 말씀드렸듯이 다르칸의 심상의 세계에 끌려간 덕분에 검술이 많이 늘었거든요.”
다르칸은 본인이 즐겁기 위해서 자신을 심상의 세계로 불러들였지만, 자신 역시 최상위 초월자와 검을 나누며 만검의 경지를 높일 수 있었다.
-흥. 그래봐야 큰 의미는 없지. 깨달음도 아니고, 특성을 얻은 것도 아닌….
라스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을 때였다.
[하늘에 닿은 강자와 영혼의 경합을 벌였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0포인트 상승합니다.] [영혼의 격이 크게 상승합니다.] [만검의 경지가 대폭 상승합니다.] [특성 <심검(령)의 등급이 상승합니다.]라스를 비웃듯이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이 쭈르르 올라왔다.
-어? 어어! 이, 이게 갑자기 왜….
라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메시지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역시 아낌없이 주는 라스라니까.’
라온이 라스의 떨리는 입을 바라보며 웃었다.
‘네 입이 내 복이야. 고맙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니라고!
다르칸과의 새로운 인연을 기념하듯 왕도의 뒷골목에서 라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