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060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1060화(1060/1072)
제1060화
“에블린?”
라온이 눈을 부릅뜬 채 에블린의 이름을 외쳤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에블린은 해변에서 백혈교의 하얀 안개를 지우는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이곳까지 지원을 올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못 했기에 머리가 멍해졌다.
“나 잘했지?”
에블린이 자신의 옆으로 내려오며 싱긋 웃었다. 짧은 시간에 말도 안 되는 일을 해준 것과 달리 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이었다.
“이제 괜찮을 거야. 걱정마.”
에블린은 피가 흘러내리는 마르타의 목을 지혈한 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끄으으….”
평소의 마르타라면 몸이 마비된 틈을 타서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겠지만, 지금 그녀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기에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마르타….”
마르타의 눈동자에 차올라 있던 생기와 분노는 공허함과 서글픔이 되어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니, 자신의 속도 무너지는 것 같아서 시선을 돌렸다.
“에블린. 안개는 괜찮은 거야?”
라온이 백혈교 본단 위의 하늘을 보며 에블린에게 손짓했다.
“마나로 결계를 막고 있자니, 팔이 아프더라고. 그래서….”
에블린이 그동안 힘들었다며 오른쪽 어깨를 돌렸다.
“자동으로 안개를 밀어내는 마법을 개발했지.”
그녀는 하얀 안개의 주술을 여러 번 본 보람이 있다며 손을 탁탁 털어냈다.
“만약 마법에 문제가 생겨도 여기서 해결하면 되니까. 괜찮을 거야.”
에블린은 마나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왔다며 자신감 있게 턱을 치켜들었다.
“대단해….”
라온이 에블린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에블린이 여기까지 해줄 줄이야.’
에블리은 어렵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의 마법 실력과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인정하기는 싫다만 저 광녀가 조금 도움이 되는구나….
라스도 에블린의 활약이 놀라운 듯 눈을 끔벅이며 인정해 주었다.
“아쉽지만, 여기서는 마비를 풀기 어렵겠어.”
에블린은 마르타에게 처음 보는 주술이 걸려 있다며 눈매를 찌푸렸다.
“대신….”
그녀가 이를 가는 데니어를 향해 유리병을 들어 올렸다.
“이건 부술 수 있지.”
에블리은 유리병을 땅에 내리칠 것처럼 거칠게 흔들었다. 병 안에 들어 있는 붉은 액체가 파도를 맞은 듯 요동쳤다.
“내놓아라.”
데니어가 이마에 주름을 띄우며 에블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희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처음 보여주었던 냉정함을 잃은 듯 사납게 이를 갈았다. 본래의 계획이 깨진 것에 분노하는 것 같았다.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피인 것 같네.”
에블린이 유리병의 뚜껑에 코를 가져다 대며 픽 웃었다.
“하긴 이런 걸 먹는 건 너희밖에 없으니까.”
그녀는 추하다는 듯 눈썹을 깊게 내렸다.
“내놓으라고 했다.”
데니어가 에블린에게 돌진하려는 듯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너 거기서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라온이 에블린을 보호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설 때 그녀가 자신의 어깨 뒤에서 유리병을 흔들었다.
“이거 부순다?”
에블린은 데니어가 마르타를 인질로 잡았던 모습을 보았는지, 유리병을 부수겠다며 조롱이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으음….”
데니어는 유리병을 잃고 싶지 않은 듯 입술만 깨물 뿐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흐흥!”
에블린이 데니어를 놀리듯 유리병을 허공에 던졌다가 받으려고 할 때였다.
쿠와아아아아앙!
백혈교주가 어마어마한 혈기를 개방하여 오황의 초월자들을 동시에 밀어냈다.
“허억! 허어억….”
전면에서 방어를 도맡았던 라리안은 말할 기운까지 빠진 듯 허리를 굽힌 채 심장이 터질 듯한 숨을 내뱉었다.
“괴물이로구나.”
레크로스는 다시 부상이 도진 듯 입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피를 손등으로 훔치며 헛웃음을 흘렸다.
“백혈교주가 정상이었다면 저는 진즉에 죽었을 거예요.”
아리스는 백혈교주의 부상 덕분에 간신히 싸울 수 있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기세에서 지지 말라고!”
체임버는 멀쩡한 상태였다면 본인이 일대일로 백혈교주를 잡을 수 있었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힘들 텐데도 가장 큰 목소리로 모두를 격려해주었다.
“흥분을 가라앉혀라!”
백혈교주가 짐승 같은 눈빛을 한 13사도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되자, 평소와 달리 냉정하게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사마의 수장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침착함이었다.
“언제나 방해를 해대는 저 망할 것은 내가 처리하마.”
백혈교주의 섬뜩한 눈동자가 에블린을 향해 돌아갔다. 그녀는 살기 짙은 의념을 일으켜 마라혈식관음을 움직였다. 장창과 단도를 든 혈신의 손이 벼락처럼 뻗어나갔다.
쩌어어어어어어엉!
라온은 제천검과 진혼검을 세워서 에블린을 찢어발기려는 마라혈식관음의 무기들을 막아냈다.
‘더럽게 묵직해.’
두 겹의 염주벽을 세웠음에도 팔이 빠지고, 허리가 부서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무기에 깃든 무학도, 그 위에서 타오르는 혈기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확실히 위협적인 공격이지만….’
라온이 만화공의 불꽃과 글래시아의 서리로 마라혈식관음의 무기들을 밀어내며 입맛을 다셨다.
‘힘이 빠지고 있는 건 확실해.’
백혈교주가 전력을 다해서 공격을 해왔다면 자신은 죽거나, 큰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내상을 입기 전처럼 속이 흔들리기만 한 것을 보니, 그녀의 힘이 빠지고 있는 건 분명했다.
“아직 멀었다!”
백혈교주는 자신과 에블린을 동시에 죽이겠다는 듯 마라혈식관음의 손을 모조리 움직였다.
쿠구구구구구!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무기와 손들이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아직 힘이 넘치는 모양이로군.”
“오징어도 아니고, 왜 이렇게 질겨!”
레크로스와 라리안은 심한 내상을 입은 듯 피를 토하면서도 백혈교주의 앞으로 달려가 마라혈식관음의 공세를 막아냈다.
“우리는 안 보이나 보지?”
“애들 노리지 말고, 어른들끼리 놀자고!”
아리스와 체임버는 레크로스와 라리안의 보호를 받으며 차원 마법과 공간검을 운용하여 백혈교주의 양쪽 어깨를 길게 베어냈다.
“좀 꺼지란 말이다!”
백혈교주가 괴성을 지르며 혈기로 이루어진 광휘를 일으켰고, 오황의 초월자들은 온 힘을 짜내서 그 빛을 막는 벽을 세웠다.
쿠와아아아아앙!
강대한 힘을 담아낸 두 빛이 격돌하며 지축이 뒤틀린 듯 백혈교 본단이 바다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내 생각을 해주는 건 라온 밖에 없다니까.”
에블린은 백혈교주와 오황의 초월자들이 싸우는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 자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뒤로 물러나 있어.”
“아니, 괜찮아.”
그녀가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에는 방심해서 그래. 뒤에서 보조할게.”
에블린은 이제 장난을 치지 않겠다는 듯 데니어에게 강탈한 유리병을 땅에 던져서 깨버렸다.
캬아아아앙!
깨진 유리 조각 사이로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는 비명을 지르듯 징그럽게 꿈틀거리다가 연기가 되어 사그라들었다.
“크으….”
데니어는 붉은 액체가 사라진 땅을 보며 바드득 이를 갈았다.
당장이라도 에블린을 죽이고 싶지만, 흥분을 가라앉히라는 백혈교주의 조언 때문에 어떻게든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것 같았다.
“참을 필요 없어. 내가 갈 테니까.”
라온이 데니어를 향해 돌진하여 만화공 극점을 찔러넣었다.
투웅!
데니어는 뒤로 보법을 밟아서 극점을 피해낸 후 발끝이 땅에 닿는 순간 그 탄력을 이용하여 역으로 쇄도해 왔다. 그 움직임을 느낀 순간 그의 검은 이미 자신의 목에 다가와 있었다.
‘데니어가 나보다 빠른 건 맞아. 하지만….’
검술은 내가 더 위야.
검사의 싸움은 속도와 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비슷한 경지라면 누가 더 많은 경험을 치르고, 많은 고난을 이겨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치아아아앙!
라온이 진혼검의 날을 눕혀서 목을 찔러 들어오는 데니어의 검을 흘려냈다. 그의 검은 자신의 목 대신 땅을 후려쳤다.
촤아아아악!
데니어의 가슴을 향해 회천을 그어 내리는데, 그는 엄지발가락 하나로 땅을 밀어내서 자신의 검격 범위 밖으로 도망쳤다.
피이이익!
하지만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듯 데니어의 가슴 위로 검게 그을린 검흔이 떠오르고 피가 터져 나왔다.
“으음….”
데니어는 본인이 베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가슴의 상처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네놈은 나보다 빠를 수 없다.”
그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눈매를 구기며 더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네 속도는 인정하마. 대신….”
라온이 청화의 심안을 극성으로 운용하며 데니어의 검이 날아드는 투로를 향해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이 전쟁은 우리가 가져가겠다.”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심장을 향해 파고드는 데니어의 검을 쳐낼 때였다.
쿠와아아아아앙!
백혈교주의 혈기와 오황의 초월자들의 마법과 오러가 폭발하며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커흑….”
백혈교주도 이제는 힘이 다한 듯 투명한 피를 토하며 손끝을 떨었다. 처음으로 그녀가 손해를 본 것 같았다.
마라혈식관음도 유지하기 힘든지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하아아….”
“더럽게 힘드네.”
라리안과 레크로스는 정말 죽겠다는 듯 창백해진 얼굴로 무릎을 잡고 허리를 굽혔다.
“그래도 끝이 보이는 것 같지?”
“그래요. 이제는 상처 재생도 안 하고 있어요.”
라리안과 체임버는 상처를 회복시키지 않고, 방치하는 백혈교주를 보며 떨리는 입술을 말아 올렸다.
파아아아악!
13사도 역시 라온의 사나운 공세에 밀려 가슴을 베인 채로 백혈교주의 옆으로 물러났다. 그는 라온을 이길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는 듯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빌어먹을….”
백혈교주는 본인과 데니어가 이렇게 밀릴 줄은 생각하지 못한 듯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쩔 수 없구나.”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이 계곡의 물살처럼 비틀어지며 백색 차원이 열렸다.
타아아악.
백혈교주는 차원 속에 손을 넣어서 비어 있는 유리병 두 개를 꺼냈다. 아니, 비어 있는 게 아니다. 유리병 안에는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받아라.”
그녀는 유리병 하나를 옆에 있는 데니어에게 던져주었다.
“네가 가지고 있던 적혈주보다 효과가 좋은 백혼주다. 다만 한계 시간을 넘긴다면 그 육체를 버린다고 생각해야 한다.”
백혈교주는 그 정도로 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데니어는 그저 따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백혼주가 담긴 병을 잡았다.
“마, 막아!”
“뭔지 모르지만 당장 막아!”
레크로스와 체임버는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듯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백혈교주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라온 역시 보법을 밟고 나아가 백혼주를 마시려는 데니어를 향해 극쾌의 서리연을 펼쳤다.
“꺼져라!”
백혈교주는 방해하지 말라고 외치며 마라혈식관음의 무기에 깃든 혈기를 폭발시켜 자신과 오황의 초월자들이 다가올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공세를 펼쳐냈다.
“뚫어!”
“빌어먹을!”
라온과 레크로스, 아리스가 앞장 서서 검격을 쏟아내고, 체임버와 라리안이 마법으로 그 뒤를 받쳐주었지만, 백혈교주의 거대한 혈기를 단숨에 지워낼 수는 없었다.
캬아아아앙!
포기하지 않고, 검과 마법을 밀어붙여서 간신히 혈기를 지워냈을 때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우우욱!
하얀 안개를 밀어내고 시선을 올리자, 입가에 하얀 물방울이 맺힌 백혈교주와 13사도가 보였다.
두 사람은 유리병에 든 액체를 다 마시고도 만족하지 못한 듯 혀를 내밀어 입가에 묻은 물기를 핥았다.
“하아아아….”
백혈교주의 육체가 새겨졌던 상처들이 하얀 기류를 뿜어내며 재생된다. 주술을 운용하는 게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혈기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쿠구구구구구!
사라져 가던 마라혈식관음도 그녀에게 혈기를 받은 듯 이전보다 더 찬란하고 장대한 휘광을 일으키며 눈동자에서 시뻘건 핏물을 떨어뜨렸다. 그 기괴한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후우.”
13사도 역시 자신에게 당했던 검흔들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워버렸다. 그의 전신에서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장대한 혈기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살을 짓이기는 듯한 날카로운 기파에 제천검과 진혼검을 쥐고 있는 손끝이 떨려왔다.
“빌어먹을!”
라리안은 생기를 되찾은 백혈교주와 마라혈식관음을 보며 다 끝났다는 듯 지팡이를 든 손을 내렸다.
“이건 확실히 힘이 빠질 수밖에 없군….”
레크로스 국왕 역시 저런 영약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계, 계속 해봐요!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요!”
아리스는 포기하지 말자고 외치며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래, 끝까지 해봐야지.”
체임버는 끝까지 싸우자고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공허하게 가라앉았다.
“그 말씀대로입니다.”
라온이 짧은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끝이 다가왔어요.”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혈기를 뿜어내는 백혈교주와 데니어를 보며 담담하게 눈을 내리감았다가 떴다.
“조, 조카? 정말 끝나는 거 맞아?”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발데르가 정신이 괜찮냐는 듯 관자놀이에 올린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라온….”
오황의 초월자들 역시 자신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듯 눈썹을 내렸다.
“백혈교주는 데니어에게 하얀 피를 넘겨주며 육체를 버릴 각오를 하라고 말했어요. 그 뜻은 반동이 엄청난 영약. 아니, 독약이라는 의미죠.”
저런 혈기를 불러올 수 있는 영약에 아무런 반동도 없다면 놈들은 진즉에 저 피를 먹고 자신들을 학살했을 것이다.
위기의 상황이 되어서야 꺼낸 것을 보면 복용한 본인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물건이 분명했다.
“확실히….”
“그게 맞아.”
체임버와 라리안이 자신을 보며 손뼉을 쳤다. 두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속 싸우면 답이 나온다는 거지?”
“죽어서도 버텨보마.”
아리스와 레크로스도 다시 싸워보자며 힘을 주어 검을 들어 올렸다.
“정답이다.”
백혈교주가 픽 웃으며 턱을 까딱였다.
“정말이지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구나.”
그녀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콧잔등을 구겼다.
“웬일로 순순히 인정을 하는 거지?”
라온이 사이비 교주답지 않다고 말하며 비웃음을 흘렸다.
“네놈들을 확실히 죽일 자신이 있으니까.”
백혈교주는 알아도 소용이 없을 거라며 두 손을 펼쳤다.
“물론 너는 저 아이가 처리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죽일 사람은 데니어라며 눈동자를 돌렸다.
“에블린.”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서 오황의 초월자들을 가리켰다.
“저분들을 도와줘.”
“너는?”
에블린은 자신이 더 걱정된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나는 괜찮아. 혼자서 이길 수 있어.”
에블린이 도와준다면 데니어를 더 쉽게 이길 수 있겠지만, 지금은 백혈교주를 먼저 막아야 했다.
초월자 다섯이라면 이길 수는 없어도 시간을 끌 수는 있을 것이다.
“…알겠어.”
에블린은 자신을 믿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서 마르타를 발데르에게 넘긴 후 체임버의 뒤편에 섰다.
“이제는 정말 벌레 정도로만 보이는구나!”
백혈교주가 비웃음을 흘리며 합장을 하자, 마라혈식관음이 살아 있는 인간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이며 손에 든 무기들을 휘둘렀다.
무기들의 위력과 속도는 배 이상 강해졌고, 초월의 무인들이 합공하듯 유려한 무학의 묘리를 담은 채 떨어져 내렸다.
쿠와아아아아앙!
체임버와 아리스가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에 집중했다.
에블린이 초월의 마법진으로 지원하고, 라리안과 레크로스가 동시에 방어의 진을 펼쳤음에도 백혈교주의 공세를 다 막아내지 못하고, 모두가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이제 네 차례다.”
데니어는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거세게 땅을 박찼다. 청화의 심안으로도 그의 잔상조차 보이지 않고, 감각에만 그 움직임이 간신히 느껴졌다.
치아아아앙!
라온은 목을 향해 꺾여서 들어오는 데니어의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쳐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간신히… 음!’
다행히 막았다고 생각할 때 데니어가 물러나며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버렸다. 혈기의 검에 찔린 다리에서 핏물이 튀어 올랐다.
“느리구나.”
데니어는 한심하다는 듯 눈매를 좁히며 다시 돌진해왔다. 빛보다 빠르게 날아든 그의 검이 심장을 향해 떨어졌다.
캬아아아아앙!
제천검을 들어서 방어한 후 진혼검으로 반격하려고 했지만, 데니어는 이미 자신의 뒤편으로 빠져 있었다.
치아아아아앙!
데니어가 자신의 등을 향해 검을 내리꽂으려고 할 때 이기어검으로 목륜검을 띄워서 무금향을 운용했다.
우우우웅!
불꽃에 휘감긴 적색의 보자기가 하얀 혈기를 집어삼킨 채 녹아내렸다.
투우웅!
데니어는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실망하지 않고, 또 한 번 발을 굴러서 자신의 좌측으로 이동해 허리를 벤 후 사라졌다.
“가죽만 벗겨서 옷이라고 만들려고? 날 죽이고 싶다면 확실하게 들어와!”
라온은 위험한 상황임에도 물러나거나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 데니어를 상대했다.
그가 이전보다 더 빠르고 강해졌기에 방어하고 있음에도 전신에 상처가 늘어났지만, 절대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 투지도 결국은 피에 잠기게 될 것이다.”
데니어는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움직이며 자신의 전신을 휩쓸었다.
눈 밑이 깊게 파이고, 심장 옆의 가슴이 뜯겨나갔으며, 종아리의 살점이 잘려 나갔다.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었지만, 불의 고리와 청화의 심안으로 데니어의 움직임만을 쫓았다.
‘어떻게 저리 빠를 수 있지?’
태화보는 글렌이 말년에 만들어낸 최상승의 보법이다. 데니어가 익힌 보법이 아무리 대단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을 텐데, 이 정도로 속도의 차이가 벌어진 건 이상한 일이다.
‘생각해보자….’
라온은 자신을 찢어발기는 데니어의 움직임 장면 단위로 나눠서 뇌리에 박아 넣었다. 그의 움직임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며 자신의 움직임과 비교되기 시작했다.
‘호흡, 발목의 기울기, 발을 내딛는 정도, 상체의 균형 그리고 검술과의 조화까지.’
쾌검의 묘리 말고도, 작은 차이 하나하나가 자신과 데니어의 속도 격차를 만들고 있었다.
‘해보자.’
라온이 데니어의 움직임을 보고 느낀 것을 육체에 담으며 태화보를 밟았다.
쿠우우웅!
분노와 오러를 동시에 터트리며 땅을 내딛는 순간 탁 트인 바다를 본 듯 상단전이 개방되며 새로운 속도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후우우우웅!
소리보다 빠른 음속의 세계. 데니어가 들어가 있는 극한의 영역 속을 파고들었다.
“이게 무슨!”
데니어는 자신의 성장에 경악한 듯 눈을 부릅뜬 채 한층 더 빨라진 속도의 검을 찔러넣었다.
캬아아아앙!
같은 세계에 들어온 이상 데니어의 검은 자신보다 아주 조금 빠른 검일 뿐이었다. 진혼검을 역수로 들어서 데니어의 검을 쳐냈다.
“이런 세계가 있었군.”
원래는 최대한 빨리 데니어를 죽인 후 백혈교주와의 싸움에 가담하려고 했다.
하지만 놈들이 하얀 피를 마시며 빨리 끝낸다는 계획이 무너졌다.
지금 가장 빠른 길은. 아니, 이 전쟁을 이길 수 잇는 유일한 길은 데니어의 능력을 흡수하고 배워서 자신이 더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더 나아가야 해.’
자신의 검이 무게를 잃은 듯 빨리지고, 자신의 육체가 날개를 단 듯 나아간다.
어린 시절부터 끝없이 단련하여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던 쾌검과 예검이 낡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진화를 이륙하고 있었다.
쾌검과 예검만이 아니라, 나무와 꽃이 상생하듯 만검 자체가 더 넓고 높게 피어나고 있었다.
“네게 배운 것들로….”
라온은 결국 데니어와 같은 속도로 검을 맞대며 붉은 뇌광이 타오르는 눈동자를 세웠다.
“네 주인을 베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