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061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1061화(1061/1072)
제1061화
치아아아앙!
라온은 마나의 알갱이가 피부에 닿는 게 느껴질 정도로 세밀한 고속의 세계에서 데니어의 심장을 향해 제천검을 내리그었다.
검날에 타오르는 불꽃이 거세게 회전하며 굽이쳐 떨어졌다.
“으음!”
데니어는 이전처럼 여유롭게 피하지 못하고, 몸을 억지로 비틀어서 자신의 검격을 흘려냈다. 그는 자신이 같은 영역에 들어온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받아들이는 게 늦을수록 힘들어질 거야.”
라온이 가느다란 웃음을 흘리며 데니어의 좌측으로 들어가 제천검으로 설풍검결의 은풍회류를 펼치고, 진혼검으로는 염해무결을 일으켰다.
후우우우우욱!
하늘에서는 차디찬 서리의 바람이 떨어지고, 대지에서는 화염의 파도가 솟아올라 데니어를 집어삼켰다.
“네 목을 직접 노려 주마.”
데니어는 도망칠 길이 막힌 것을 느끼고, 오히려 자신을 향해 돌진했다. 판단도 빨랐고, 그 움직임도 쾌속했다.
투우우우웅!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데니어의 검술이 한층 더 가속한다. 지금까지 보여준 게 전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캬아아아아앙!
라온은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데니어의 검을 제천검으로 쳐내며 눈썹을 구겼다.
“속도 하나로는 나를 이길 수 없어.”
데니어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지만, 그의 움직임은 화상처럼 자신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다.
무학과 버릇을 모조리 파악했기에 데니어의 검을 막는 것도, 피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헛소리 마라.”
데니어는 호수처럼 잔잔하던 마음이 깨져나간 듯 이를 갈며 자신의 다리를 노리고 검을 올려 쳤다.
그의 검술은 더 날카롭고 빨라졌지만, 평정심이 무너졌기에 그 투로를 읽는 게 더 쉬워졌다.
캬아아아아아앙!
라온은 제천검으로 염주벽을 펼쳐서 데니어의 검격을 막아낸 후 진혼검을 찔러넣었다.
촤아아아악!
검날에 깃든 원한이 두터운 혈기를 가르고, 데니어의 허리를 베어냈다.
피이이이익!
데니어의 제복과 함께 허리가 갈라지며 하얀 핏물이 치솟았다.
“크윽….”
데니어가 지닌 혈기가 너무도 거대하여 상처가 바로 지워졌지만, 그는 심한 고통과 분노를 느낀 듯 눈매를 깊게 구겼다.
“너도 들었지? 이 검에 깃든 원한은 바다보다도 깊고 짙다고.”
라온이 진혼검에 흐르는 데니어의 백혈을 털어내며 턱을 치켜들었다.
“너희들의 조잡한 혈기 따위에는 절대 지지 않아.”
진혼검의 원한과 함께 백혈교의 모든 것을 불태우겠다고 다짐하며 태화보를 밟았다.
“죽은 자들의 원한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데니어는 절대 죽어주지 않겠다는 듯 묵직하게 땅을 박차며 검을 내질렀다. 그가 쏘아낸 검격이 장창처럼 길게 늘어나 자신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극쾌의 묘리로 검술과 보법을 묶은 건가?’
너무도 빠른 속도의 검술과 보법 때문에 그의 검이 수평선같이 길게 뻗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하나를 배웠군.’
라온은 새로운 검술을 만들 때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심장을 향해 짓쳐 드는 데니어의 검을 보며 서리연을 펼쳤다.
쩌어어어어엉!
하나의 선처럼 이어지는 서리와 은빛의 칼날로 데니어의 검을 쳐내고, 진혼검으로 놈의 어깨를 뜯어내는 반격을 가했다.
“크윽!”
데니어는 살점이 떨어져 나간 어깨를 잡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혼란에 빠진 듯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어떻게 이런….”
“네가 더 빠른데, 밀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미겠지?”
라온은 다 이해한다며 고개를 까닥였다.
“답은 간단해. 내가 네 움직임을 모두 읽고 있으니까.”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인지 자신조차 놀랄 정도의 집중력이 발휘되어 데니어의 검술과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게 되었다.
예검과 쾌검의 묘리도 거의 다 따라잡았기에 이제는 그에게 밀리는 부분이 없었다.
‘아마 명경지수가 발동되고 있기 때문이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긴장하여 실수하고, 몸이 굳지만, 자신은 명경지수라는 특성 덕분에 위험한 상황일수록 오히려 더 침착하고,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데니어는 본인의 모든 것이 읽혔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 턱을 떨었다.
-배신자지만, 저 절망스러운 마음은 이해가 되는구나.
라스는 데니어가 느낄 감정을 알 것 같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네놈은 진정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녀석은 조금이지만, 무력으로도 인정할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끝을….”
데니어에게 제천검을 내리치려다가 우측에서 들린 강렬한 파공음에 시선을 돌렸다.
쿠구구구구!
땅에 다리를 박은 채 백혈교주의 혈기에 맞서는 오황의 초월자들이 보였다.
“버텨! 죽어도 버텨라!”
“아, 알고 있어요….”
레크로스는 검은 핏물이 흐르는 입을 꽉 닫은 채 검을 휘둘렀고, 라리안은 방구석 마법사로 돌아간 듯 핏물에 젖은 손을 바들바들 떨며 여섯 자루만 남은 단검으로 마나의 벽을 세웠다.
“하아아….”
“조금만 더 해보자….”
아리스는 힘이 다 빠진 손으로 공간을 베어냈고, 체임버는 내상이 다시 도진 듯 안구에서 피를 흘리며 마법 술식을 맺었다.
두 사람도 이제는 공격을 하지 못하고, 회피와 방어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휴! 다 죽어가네! 다 죽어가!”
에블린은 수십 개의 마법진을 시간차로 발동시켜 오황의 초월자들을 향해 떨어지는 마라혈식관음의 무기들을 비틀었다. 그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미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의미 없는 반항이다!”
백혈교주가 합장하며 입술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주술을 영창했다.
그녀의 발을 딛고 있는 대지가 용암처럼 끓어오르더니, 하늘에 닿을 듯이 거대한 피의 해일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구!
오황의 초월자들을 향해 천천히 기울어지는 파도를 보자, 세계가 멸망하는 순간을 직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싹한 소름이 돋아 올랐다.
“물놀이를 좋아하는구나!”
“이 정도 파도는 타 줘야지!”
레크로스와 체임버는 얼마든지 오라는 듯 떨리는 손을 들어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쏟아냈다.
아리스와 라리안도 그 두 사람의 옆에 서서 공간검과 혈기를 지우는 마법을 펼쳐냈다.
“남자를 잘 만나서 내가 제일 바쁘네!”
에블린은 마나를 넓게 펼쳐내서 혈기의 파도 자체를 막아낼 수 있는 마법의 벽을 세웠다.
다만 백혈교주의 혈기가 너무도 강했기에 그녀가 만들어낸 벽은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수십 줄기의 균열이 돋아났다.
콰과과과과!
오황의 초월자들은 실오라기처럼 얇은 숨을 내쉬며 간신히 버텼지만,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더 보여줄 게 없다면….”
라온이 입술을 꾹 내리누르며 다시 데니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만 끝내도록 하지.”
각성을 이룬 쾌검의 묘리를 이용하여 태화보를 밟았다. 물러나는 데니어에게 따라붙어서 제천검을 그어 내리고, 진혼검을 내뻗었다.
캬아아아아앙!
데니어는 사선으로 검을 내리쳐 제천검을 막아냈지만, 진혼검을 피하지 못하고 가슴을 찔린 채 바닥을 굴렀다.
“끄으윽!”
그는 좌측으로 물러나며 혈기로 어깨와 가슴의 상처를 회복시켰다.
화아아아악!
라온은 도망치는 데 집중하는 데니어를 향해 화령을 펼쳐냈다.
빨갛게 달아오른 검날 위로 불꽃의 정원이 피어나 수천의 꽃잎들을 흩뿌렸다.
허공에서 춤을 추는 불꽃의 조각들은 화염 폭풍이 되어 데니어를 휘감았다.
“칫!”
데니어는 불꽃 폭풍을 막아내기 위해서 혈기를 개방하여 장포처럼 전신에 둘렀다.
촤아아아아악!
라온은 데니어의 걸음이 멈춰진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가 제천검으로 그의 등을 길게 베어냈다. 갈라진 상처에서 끈적한 핏물이 쏟아졌다.
“끄으으윽!”
데니어가 탁한 신음을 질렀다. 그가 몸으로 화령을 뚫고 나가려고 할 때 천 개가 넘는 불꽃의 조각들을 동시에 폭발시켰다.
쿠와아아아앙!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지며 땅이 뒤흔들리고, 하늘에 시꺼먼 연기가 솟아올랐다. 백혈교 본단이 한층 더 바다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욱!
데니어는 등의 상처를 재생시키며 우측으로 도망쳤다. 백혼주의 약효가 많이 줄어든 듯 상처 회복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검사가 아니라, 도둑이었나? 도망 하나는 잘 치는군.”
라온이 창궁검과 천뢰공을 펼쳐서 데니어의 퇴로를 막고, 그의 머리 위로 붉은 벼락 같은 검격을 내리꽂았다.
쿠와아아아아앙!
데니어의 허리와 허벅지의 살점이 으깨진 채 뜯겨나가며 뼈가 보일 정도의 상처가 드러났다.
“끄아아아악!”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기어코 상처를 회복하며 다시 도망쳤다.
“한계로군.”
데니어는 혈기가 바닥난 듯 움직임이 느려졌고, 코와 입에서 하얀 피를 뿜어냈다. 백혈교주가 말했던 육체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시간 끌지 말고, 죽….”
라온이 이기어검으로 데니어의 목을 베어내려고 할 때였다.
쿠와아아아아앙!
백혈교주에게서 어마어마한 혈기가 폭발하더니, 오황의 초월자들과 에블린이 모조리 땅에 처박혔다.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지.”
그녀는 지금 끝을 내겠다는 듯 본신의 혈기와 마라혈식관음의 무기를 동시에 뿜어냈다.
쿠와아아아아아!
너무도 거대한 기운에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한 격렬한 진동이 일어났다.
“젠장….”
라온은 데니어를 공격하던 것을 포기하고, 몸을 돌려서 오황의 초월자들에게 달려갔다.
‘저건 저 다섯으로 막을 수 없어.’
평소의 라리안과 체임버, 레크로스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 저 셋은 데니어 이상으로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에블린 역시 초월자들을 보조하느라, 지쳐 있기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라, 라온!”
“위험하다!”
체임버와 레크로스가 본인들의 뒤로 오라며 빠르게 손짓했다.
“나 도와주러 온 거야? 역시!”
에블린은 반대로 기다리고 있었다며 싱긋 웃었다.
“제가 앞에서 막을 테니, 도와주세요!”
라온은 혼자 해결하겠다고 하지 않고, 도와달라 외치며 모두의 앞에 섰다.
땅을 부수며 밀려오는 백혈교주와 마라혈식관음의 혈기를 향해 위력이 가장 강한 염룡결과 중천포를 동시에 쏘아냈다.
쿠와아아아아앙!
제천검과 진혼검의 검극에서 화룡의 숨결과 청색의 섬광이 뻗어 나가 백혈교주의 혈기와 정면에서 맞부딪쳤다.
오러와 혈기가 거세게 경합하며 세상을 찢어발기는 듯한 검은 균열이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졌다.
‘팔이 빠질 것 같아….’
라온이 이가 부서질 정도로 턱에 힘을 주었다. 고작 1초가 지났을 뿐인데, 뼈와 근육이 으스러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내장이 쪼그라들며 입에서 피 분수가 뿜어졌다.
‘이걸 어떻게… 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 뒤에서 뿜어져 나온 오황의 초월자들의 마법과 오러가 함께 혈기를 밀어내주었다. 간신히 숨이 쉬어졌다.
‘계속 막을 수는 없어. 공격을 해야 해.’
이기어검으로 목륜검을 띄운 후 거칠게 밀려드는 혈기를 향해 소슬바람을 운용했다.
후우우우웅!
녹색의 바람이 깃든 목륜검은 공간을 뚫어내고 나아가 백혈교주의 목 앞에서 튀어나왔다.
“흥!”
백혈교주는 두 번 당하지 않겠다는 듯 훌쩍 물러났지만, 극쾌의 묘리를 조화시킨 소슬바람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붙어 목 끝을 베고 지나갔다.
파아아아악!
백혈교주의 목이 삼 분지일 가량 찢어지며 투명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집중력이 깨진 덕분에 자신을 지워버리려던 혈기도 가라앉았다.
“크윽….”
백혈교주가 목의 상처를 지우며 바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버러지가!”
그녀는 진심으로 분노한 듯 이마 위로 나무껍질 같은 주름을 만들었다.
“허억. 허억….”
라온이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다시 목륜검을 움직였다.
‘지금 데니어를 죽여놓아야 해.’
오황의 수장들이 버텨준 덕분에 백혈교주도 처음 백혼주를 마셨을 때처럼 무적의 혈기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여기서 데니어까지 끼어들며 상황이 망가지기에 그부터 처리해야 했다.
‘놈은 어디에… 어?’
라온이 데니어를 찾아 시선을 돌리다가 헛바람을 삼켰다.
‘저게 무슨!’
데니어는 멀리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무너진 건물 옆에 무릎을 꿇은 채 땅에 고여 있는 피를 두 손으로 퍼서 마시고 있었다.
‘저 피 웅덩이는….’
저 바닥에 고여 있는 피는 레크로스의 등에서 쏟아졌던 대량의 핏물이 작은 웅덩이를 이룬 것이다. 데니어는 흙먼지와 레크로스의 피를 미친 듯이 흡입했다.
아니, 레크로스의 피만이 아니다. 데니어는 자신과 다른 오황의 수장들이 흘린 피를 흙먼지와 함께 목구멍에 쑤셔 넣고 있었다. 저건 힘을 얻어서 강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절실한 행위였다.
‘미친….’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삶에 대한 데니어의 광적인 집착에 맨발로 얼음을 밟고 있는 듯한 서늘한 감각이 등골을 스쳤다.
-저, 저놈이 저런 성격이었나?
라스 역시 데니어 같지 않다며 눈썹을 내렸다.
‘죽여야 해!’
머릿속에서 위험하다는 경종이 울렸다.
데니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이기어검으로 목륜검을 날렸다.
“크으으!”
하지만 그는 바닥을 구르면서까지 이기어검을 피한 후 다른 땅에 있는 피도 혀로 핥아 마셨다.
“그래. 그렇게라도 살아남아라.”
백혈교주는 잘하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마라혈식관음이 들고 있는 무기들에 혈기를 담은 채 내리쳐왔다.
쿠구구구구구!
라온은 창궁천뢰와 무금향을 펼쳐내서 백혈교주의 공세를 막아냈다.
찌지지직!
뒤에서 오황의 수장들이 받쳐주고, 에블린이 방어 마법을 펼쳐주고 있음에도 자신의 발이 땅에 박히기 시작했다.
‘버텨야 해!’
육체와 정신이 무너지기 직전이었지만, 데니어 덕분에 무력과 영혼이 성장하여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성장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백혈교주의 첫 번째 공격에 붉은 핏덩이가 되어 터져나갔을 것이다.
‘데니어를 노릴 틈이 없군.’
데니어를 확실히 처리하고 싶었지만, 백혈교주가 틈을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눈앞의 괴물에게만 집중해야 했다.
‘곧 백혈교주도 약해질 거야.’
데니어가 힘을 잃었듯이 백혈교주 역시 백혼주의 반동을 받게 될 것이다. 영혼을 모조리 쏟아내더라도 그때까지는 버텨야 했다.
“크으….”
다만 데니어와 달리 백혈교주의 무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의 공격을 막을 때마다 살점이 뜯겨나가고, 내상이 깊어졌다.
자신도 다른 오황의 수장들처럼 입에서 새까맣게 죽은 핏물이 튀어나왔다.
“바퀴벌레처럼 잘도 버티는구나!”
백혈교주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짜증이 난 듯 이마 위로 힘줄이 돋아났다.
“좋다. 아껴도 의미가 없으니, 확실하게 밟아주마!”
그녀가 손을 모으며 고속으로 주술을 읊조리자, 하얀 혈기가 화염구처럼 아지랑이를 일으키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혈기의 구체는 새로운 태양이 될 것처럼 끝도 없이 부풀며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쿠구구구구!
마라혈식관음도 백혈교주의 분노를 이어받은 듯 눈에서 흐르던 붉은 피를 하얀 핏물로 바꾸며 수십 개의 무기를 동시에 세웠다.
각기 다른 각도로 굽어진 팔과 무기에서 영혼을 옥죄이는 듯한 강대한 기파가 뻗어 나왔다.
우우우우우웅!
혈기로 타오르는 백색의 태양과 달인의 경지에 오른 듯이 현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수십 개의 무기들의 조화는 그 누가 와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웅장한 기세를 펼쳐냈다.
“하!”
체임버가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떨어뜨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도 저런 힘을 숨기고 있었나….”
레크로스는 저건 힘들어 보인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직 연구할 게 많은데, 바다 정령도 있고….”
라리안은 이제 죽음이 보이는 듯 못 다한 실험에 대해 중얼거렸다.
“젠장! 조금 더 검을 갈고 닦았어야 했어!”
아리스는 더 열심히 수련하지 못한게 아깝다며 어금니를 씹었다.
“라온과 내가 겪었던 고난에 비하면 가볍네.”
에블린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며 싱긋 웃었다.
“아직 안 끝났어요.”
라온이 진혼검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천천히 떨어지는 혈기의 태양으로 걸어갔다.
‘아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어.’
지금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신과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이 죽게 될 것이다. 최후로 남겨둔 검계를 써야 했다.
쿠우웅!
대지를 부술 듯이 진각을 밟으며 원한의 불꽃을 일으키는 진혼검을 내질렀다.
검계현신.
개벽.
진혼검의 붉은 칼날 위로 금색 광휘가 끝도 없이 솟아오른다.
그 찬란한 빛은 추악한 혈기는 밤을 밀어내고 아침을 여는 태양처럼, 추악한 혈기를 지우고 따스하면서도 장대한 기운을 뿜어냈다.
“애송이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
체임버가 피를 토하며 차원의 마법을 운용했고, 레크로스는 말할 힘조차 아끼며 묵빛으로 타오르는 검을 내리그었다.
“흐으읍….”
“크아아아아아!”
라리안이 반으로 부러진 지팡이와 단검에 남아 있는 마나를 모조리 담아서 던져버렸고, 아리스는 영혼을 쏟아내는 듯한 기합을 내지르며 공간검을 꽂아 넣었다.
“역시 남자를 너무 잘 만났어!”
에블린은 지루할 틈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마라혈식관음의 무기에 못지않은 마법 폭격을 쏟아냈다.
쿠와아아아아앙!
백혈교주의 전력과 라온, 에블린 그리고 오황의 수장들의 전력이 부딪치면서 터져 나온 웅대한 충격파에 하늘에 새까만 구멍이 뚫리고, 백혈교 본단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졌다.
쿠구구구구구!
오러와 혈기가 경합하며 천지로 퍼져나갔던 회색 연기가 가라앉고 전장의 모습이 드러난다.
“커헉!”
라온은 무릎을 꿇은 채 죽은 피를 토했고, 오황의 초월자들은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으며, 에블린 역시 뒤로 넘어간 채 아주 가느다란 호흡만 이어갔다.
“이제야 끝났구나.”
백혈교주가 사이한 웃음을 그리며 손을 뻗었다.
“네놈의 명줄은 내가 직접… 커헉!”
그녀가 라온을 향해 혈기를 뿜어내려다가 하얀 피를 토하며 허리를 굽혔다.
“이, 이게….”
백혈교주의 오공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그녀의 팔과 다리가 약에 취한 듯 떨리기 시작했다.
‘하, 한계! 한계가 왔어!’
라온이 흔들리는 백혈교주를 보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결국 백혈교주에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그것도 데니어보다 훨씬 강한 수준으로 보였다.
“데, 데니어!”
백혈교주가 연달아 피를 내뱉으며 힘겹게 데니어를 불렀다.
“그걸 가져와! 당장!”
그녀는 무언가를 가져오라며 거칠게 손을 휘저었다.
“알겠습니다….”
데니어는 입에 묻은 피와 흙을 닦아내고서 뒤로 돌았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서 눈치를 보는 발데르에게 튀어 나갔다.
“꺼, 꺼져!”
발데르가 마르타를 뒤로 던지며 전력을 다해서 연검을 펼쳤지만, 데니어는 빠른 보법으로 연검을 흘린 후 발데르의 복부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커헉….”
발데르가 복부에서 피를 뿜어내며 뒤로 넘어갔다.
치아아아아앙!
데니어가 땅에 떨어진 마르타를 잡으려고 할 때 성벽의 전쟁을 끝내고 들어온 광풍전의 검사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못 가….”
“개진!”
루난과 버렌은 절대로 마르타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광풍전의 검사들과 함께 검진을 펼쳤다.
“흐읍!”
데니어는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새도 없이 광풍전을 향해 돌진했다.
“쳐라!”
버렌의 격한 외침에 검사들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진 듯 강대하면서도 빠른 검격들이 쏟아졌다.
“크으으윽!”
데니어는 몸으로 칼을 받으며 마르타를 향해 쇄도했다. 그는 이상하게도 검사들을 공격하지 않고, 그저 피하며 달려가기만 했다.
“못가!”
“안 돼!”
“여기까지다!”
버렌, 루난, 마크 괴튼이 데니어의 앞에 서서 각자의 절기를 펼쳐냈다.
“꺼져라….”
데니어가 처음으로 검을 휘둘렀다. 빠르면서도 날카롭게 갈린 그의 검격에 광풍전의 간부 세 명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
데니어는 방해하는 검사들을 모두 쳐낸 후 마르타의 앞에 섰다.
“아, 안 돼….”
루난은 절대 못 보낸다는 듯 바닥을 기어가 데니어의 발목을 잡았다.
뻐어어어억!
데니어는 발끝으로 루난을 걷어찬 후 마르타를 안아 들었다.
“너…. 너도 내가 죽일 거야!”
마르타는 루난이 피를 흘리며 손을 뻗는 모습을 보며, 더는 참을 수 없는 듯 데니어에게 죽이겠다고 외쳤다.
“그럴 수 있다면….”
데니어는 마르타의 원망 어린 눈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백혈교주를 향해 돌아갔다.
‘막아야 해….’
라온이 피가 흐르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백혈교주는 망가진 육체 대신 마르타의 육체로 갈아타려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하지만, 너무 무리를 하며 검계를 사용했기에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잘했다….”
백혈교주가 마르타를 데려온 데니어에게 손을 내렸다.
“이제 내 앞을 지켜라. 대부분의 공격은 마라혈식관음이 막아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녀는 목숨을 바쳐서 본인을 지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릴 테니,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하시는 게….”
데니어는 이곳은 위험하다며 눈동자를 돌렸다.
“이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영혼에 관한 깨달음을 얻었다. 완벽하게 각성하지는 않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야.”
백혈교주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마르타의 몸을 강탈할 수 있다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끄으으윽!”
라온이 텅 비어버린 듯한 몸에 억지로 힘을 주며 일어섰다.
우우우우우웅!
흔들리는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마왕들의 권능을 모조리 끌어왔다.
‘싸워야 해.’
육체와 정신이 한계에 도달했기에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 밀려왔지만, 아스카라의 투기와 불굴의 의지를 일으켜서 버텨냈다.
“마르타를 내놔!”
마르타를 구하기 위해서 백혈교주에게 달려드는데, 마라혈식관음이 자신을 향해 검과 도끼를 내리쳐왔다.
쿠우우웅!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겠지만, 자신 육체와 정신은 한계에 도달해 있기에 막는 것이 전부였다.
“오냐! 들어와! 네년의 영혼 따위는 내가 집어삼켜 줄 테니까!”
마르타는 얼마든지 해보라며 백혈교주의 검은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그럴 일은 없다.”
백혈교주가 본인의 손가락에 상처를 낸 후 마르타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
“내 피를 마시는 순간 네 영혼은 깨어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테니까.”
그녀는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하며 마르타의 목구멍으로 본인의 피를 밀어 넣었다.
“아아악….”
마르타가 혀를 움직여서 거부하려고 했지만, 백혈교주의 피가 목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동자가 죽은 사람처럼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마르타!”
라온이 마라혈식관음의 무기들을 쳐낸 후 진혼검을 역수로 잡아서 자신의 복부를 겨눴다.
-라온!
‘그래. 이제는 어쩔 수 없어.’
마왕강림을 쓰기 위해서 진혼검을 배에 꽂아 넣으려고 할 때였다.
“…….”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던 데니어가 뒤를 돌아서 백혈교주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이제 그만하시죠.”
데니어는 담담하게 읊조리며 백혈교주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퍼어어어어억!
백혈교주는 마르타와 혼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데니어의 검에 가슴이 꿰뚫렸다.
“네, 네가 왜….”
백혈교주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피를 토하며 떨리는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우리는….”
데니어가 죽은 눈을 한 마르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흐릿한 미소를 그렸다.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괴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