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072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1072화(1072/1072)
제1072화
“라온! 일어난 거야?”
시아가 봄꽃처럼 환한 웃음을 그리며 라온에게 달려갔다.
“응. 조금 전에.”
라온이 두 팔을 펼친 채 뛰어오른 시아를 조심스럽게 받아주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시아는 많이 걱정했다며 자신을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따스한 체온에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지만, 지금은 먼저 물어봐야 할 말이 있었다.
“누나가 왜 저 사람이 함께 있는 거야?”
라온이 아직 호수 앞에 서 있는 다르칸을 가리켰다.
“나도 잘 몰라. 갑자기 찾아와서 검술 조언을 하는데, 너만큼 쉽게 알려주더라고.”
시아는 다르칸에게 배워서 실력이 늘었다며 고개를 꾸벅였다.
“당연하지! 세상에 나보다 더 많은 검술을 익힌 사람은 없으니까!”
다르칸은 아는 검술이 많은 만큼 잘 가르칠 수밖에 없다며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왜? 나쁜 사람이야?”
시아는 다르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쁜 사람은 아니야. 다만….”
라온이 시아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착한 사람도 아니지.”
다르칸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혼돈이다. 선도, 악도 아닌 자. 그는 검술을 위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친 인간이었다.
“하긴 눈도 잘 보이는데, 불쌍한 척하려고 안대를 쓰고 있는 것 같더라고.”
시아는 다르칸의 눈이 보이는 게 분명하다며 주먹을 흔들었다.
“그, 그건 아니야.”
라온이 찔끔 어깨를 떨었다. 강해지고 싶어서 제 눈을 뽑은 미친 짓을 말해주기는 조금 껄끄러웠다.
“어쨌든 배울 수 있는 건 배우되, 정을 주지는 마. 언제라도 누나한테 검을 들이밀 수 있는 사람이니까.”
다르칸을 조심하라고 말하며 시아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안 그래도 계속 나한테 싸우자고 했어. 내 검이 재밌다고.”
시아는 다르칸이 열 번 넘게 대련 신청을 해왔다며 손가락을 접었다.
“당신 진짜 미쳤어? 누나하고 무슨 대련을 하겠다고!”
라온이 다르칸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 누나를 너무 무시하는구나. 저 아이는 이미 가닥이 잡혀 있어. 이왕 이렇게 된 거 네가 심판을 봐라.”
다르칸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오히려 전투를 주관해 달라며 손을 까딱였다. 진정한 또라이였다.
-어휴! 저럴 줄 알았느니라.
라스는 여전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 싸우자는 말은 무시해. 절대 검을 부딪쳐 주지 마.”
라온은 대련 신청을 계속 무시하라고 말하며 시아에게 고개를 저었다.
“응. 알겠어.”
시아는 자신의 말을 따르겠다며 싱긋 웃었다. 사춘기 때도, 지금도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말을 최우선으로 들어주었다.
“아쉽군. 분명 재밌었을 텐데.”
다르칸은 시아와 싸우지 못한 게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댁만 재밌겠지.”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나는 내가 가르쳤어. 내 부상이 나으면 상대 해줄게.”
라온은 시아 대신 대련을 해주겠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가리켰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다르칸은 재밌겠다며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제 말해봐. 당신이 왜 지그하르트에 있는 거지?”
라온은 가느다란 미소를 그리는 다르칸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이상한 질문을 하는군. 불렀으니까 왔지.”
다르칸은 정식으로 초대를 받았다며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켰다.
“초대를 받았다고?”
“그래. 사실 나도 죽을 뻔했으니까.”
그가 상의를 들어 올려서 가슴과 어깨에 새겨진 새까만 상처를 보여주었다.
“죽음의 기운인가….”
다르칸의 오러와 의념을 뚫어내고, 저런 섬뜩한 검흔을 새긴 것을 보니, 데루스가 사용하는 죽음의 기운이 분명했다.
“맞아. 사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르칸은 사기와 죽음의 기운이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지만, 그 위력은 천지 차이가 난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많이 위험했어. 네 할아버지가 구해주고, 저 집에 사는 거지가 치료해 준 덕분에 간신히 살 수 있었다.”
그는 가슴의 상처를 매만지며 짧게 혀를 찼다.
“그 정도로 위험했다고? 당신이?”
라온이 다시 옷을 내리는 다르칸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데루스가 그렇게 강했나?’
아무리 데루스가 강해졌다고 해도 다르칸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에게는 심검의 영역이 있기에 잘만하면 데루스를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당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저 미친놈….
라스가 다르칸을 보며 눈썹을 깊게 내렸다.
-약해졌느니라.
‘약해졌다고?’
-그렇느니라. 저 육체의 상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정신과 영혼에 큰 충격을 입었느니라.
‘그러고 보니….’
라온이 라스를 따라 다르칸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다르칸의 영혼의 격이 작아졌어.’
다르칸은 거지 짓을 할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본인의 기파를 대놓고 드러냈다.
누구에게나 강함을 표출하는 사람이기에 지금 그의 영혼이 전보다 작아진 게 확연히 느껴졌다.
“눈치챈 모양이로구나.”
다르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대로 나는 약해졌다. 데루스의 함정에 빠져서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거든.”
“아주 큰 실수?”
“사실 함정이나, 실수라기보다는 운이 좋지 않았지.”
“심검에 관한 일인가?”
“정확하다.”
그가 정답이라며 손가락을 튕겼다.
“데루스는 분명 강했지만, 당시의 내 무력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다만 놈과 제대로 붙어보기 위해서 심검을 운용한 순간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르칸의 안색이 하얗게 굳어졌다.
“데루스의 영혼은 하나가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혼 아래에는 그 크기를 짐작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영혼이….”
다르칸은 심검의 영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 후 글렌 지그하르트가 오지 않았다면 나도, 그 근육 늙은이도 모두 죽었을 것이다.”
다르칸은 글렌 덕분에 살았다며 짤막한 숨을 내뱉었다.
페드릭을 거지로 표현하고, 오그람은 근육 늙은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검사가 아닌 사람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림자 같은 것들이 결합 된 거대한 영혼이라….”
라온이 다르칸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데루스가 숨기고 있던 영혼을 떠올렸다.
심상의 세계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크기에 수천 개의 눈이 깜박이는 영혼의 거대한 결집체.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냐?
‘아니, 나도 몰라.’
데루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영혼 속에서 다른 거대한 영혼이 존재한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그림자 같은 영혼이라고 했지?’
데루스와 그림자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데루스는 중요한 암살자 단체의 이름을 그림자라 칭할 정도로 그림자라는 이름을 선호한다.
영혼조차 그림자처럼 새까맣게 일렁였다고 하니,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너무 깊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데루스의 영혼에 관한 단서가 너무 적기에 일단은 현재의 정보만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심검으로 만든 심상이 무너져서 당신이 약해진 거로군.”
라온이 이제 알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단전이 거의 깨질 정도의 충격을 입었으니, 약해질 수밖에 없지.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다르칸이 손가락을 들어 본인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데루스는 타인의 힘을 강탈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뭐?”
라온이 다르칸의 굳은 표정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무력의 강탈?’
데루스에게 여러 능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싸우면서 타인의 힘을 강탈하는 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놈이 왜 그렇게 빠르게 성장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잠깐만….”
라온이 다르칸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심검으로 만든 심상의 세계에서 놈에게 당했다는 건….”
“그래.”
다르칸이 맞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내 심검을 가져갔다. 전부 훔친 건 아니지만, 분명 심검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다음에 만날 데루스는 심검을 사용할 수도 있다며 눈썹을 구겼다.
“그 거대한 영혼으로 심검을 만들면 그 누구도 버틸 수 없겠지.”
다르칸은 글렌도 힘들 수 있다며 입매를 비틀었다.
“물론 나는 아니지만!”
그는 지금도 데루스를 이길 자신이 있다는 듯 주먹을 말아쥐었다.
“내 이야기는 다 했으니….”
다르칸이 입맛을 다시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이제 한 판 붙어보자!”
그는 당장 싸우자며 검을 뽑았다.
-저거 그냥 멍멍이 아니냐?
라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개가 뼈다귀를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것처럼, 저놈은 검만 보면 발정이 나는 게 분명 하느니라.
녀석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라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 아직 안 나았다니까.”
라온이 아직 상처도 남아 있고, 체력과 정신력도 멀쩡하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기다리지. 한 5분이면 되나?”
“…….”
5분이란다. 아무래도 저 인간의 시간 감각은 일반적인 인간과 다른 것 같았다.
“데루스가 심검을 가져간 것에 대해 가주님도 알고 계시겠지?”
라온은 검을 잡았다가 놓기를 반복하는 다르칸을 보며 턱을 까딱였다.
“모를걸?”
다르칸이 당연히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 왜?”
“안 물어봤으니까.”
그는 안 물어봐서 안 가르쳐주었다며 손을 내렸다.
타아악!
라온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저 인간은 정말….’
상종이 안 되는 미친놈이야!
*
*
*
라온은 날이 밝자마자, 별관을 나섰다.
“같이 가지!”
다르칸은 재밌을 것 같다며 자신을 따라서 함께 가주전의 알현실로 들어갔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한판 할까?”
자신의 정중한 인사와 달리 다르칸은 바로 싸우자며 턱을 까딱였다.
다만 그는 자신이나, 시아에게 대련을 신청할 때와 달리 진심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사양하지.”
글렌은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일어나거라.”
그가 일어나라고 하자, 자연스럽게 무릎이 펴지고, 허리가 올라갔다. 오러의 운용이 하늘에 닿아 있었다.
“큰 부상은 없어 보이는구나.”
글렌은 찾아가지 못해 걱정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영감탱이는 거짓말도 기똥차게 치는구나!
라스가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매일 찾아와서 광녀와 교대근무를 해놓고, 못 봤다니! 구라도 적당히 쳐야지!
녀석은 에블린에 맞먹는 집착이라며 미간을 구겼다.
“가주님께서 걱정해주신 덕분입니다.”
옆에 다르칸이 있었기에 할아버지가 아니라, 가주라 칭하며 허리를 굽혔다.
“크흠! 커허험!”
글렌은 그 말만으로도 만족한 듯 말아 올린 입술을 가늘게 떨었다.
“감기 걸렸어? 왜 이렇게 헛기침을 하지?”
다르칸이 글렌을 보며 눈썹을 내렸다.
“그냥 가래 뱉고 와!”
그는 지금까지 누구도 지적하지 못한 부분을 대놓고 꺼냈다.
“…아니다.”
글렌은 민망한 듯 눈동자를 홱 돌렸다.
“그래. 기절해 있었으니, 그간의 일이 궁금하겠지.”
그는 분위기를 돌리려는 듯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예. 다르칸에게 데루스에 관한 부분은 들었지만, 다른 쪽은 아직 모릅니다.”
라온이 경청하겠다고 말하며 손을 내렸다.
“음? 내가 분명 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글렌이 다르칸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내가 네 말을 들을 필요는 없잖아. 검술이라면 또 모르지만.”
다르칸은 왜 말을 들어야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아아….”
글렌은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만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처음부터 설명하마. 네가 기절한 후….”
그는 자신이 기절한 후에 일어났던 일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제이나 왕녀 덕분에 야수연맹에 가서 다르칸과 오그람을 구할 수 있었다.”
“제이나 왕녀가 거기까지….”
라온은 처음 만났을 때의 제이나와 이번 전쟁에서 보았던 제이나의 눈빛을 번갈아 떠올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많이 변하기는 했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속담이 있지만, 제이나나 카룬을 보면 그 말도 무조건 맞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라온이 글렌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데루스 로베르트는 얼마나 강했습니까?”
“천마와 나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글렌은 지금의 다르칸은 데루스를 막을 수 없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걱정할 필요는 없어.”
다르칸이 피식 웃으며 글렌을 바라보았다.
“내 힘을 먹은 데루스도 네 할아버지가 그냥 후려 패더라고! 멋진 검이었지!”
그는 본인이 대신
글렌의 검을 받아보고 싶었다며 황홀한 눈빛을 드러냈다. 정말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나도 이길 수 있다. 싸움은 무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다르칸은 정말 자신이 있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음, 가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라온이 글렌을 보며 입술을 깊게 씹었다.
“말해 보거라.”
“데루스가 다르칸의 심상을 먹으며 심검의 영역에 도달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다르칸에게 들은 이야기를 글렌에게 전해주었다.
“그렇군.”
다만 글렌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데루스가 다르칸의 힘을 강탈했고, 그게 심검으로 만든 심상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글렌이 손가락을 들어 다르칸을 가리켰다.
“저놈이 찾아와서 직접 말했다. 심검을 익힌 데루스와도 싸워보고 싶다고 주절거리더군.”
“예?”
라온이 다르칸을 돌아보며 눈을 부릅떴다.
“말 안 했다며!”
“거짓말이지.”
다르칸은 키득거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상단전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이전보다 더 미쳐버린 것 같았다.
“검과 검술이 아니면 내 말을 믿지 말라고.”
그는 본인을 믿지 말라는 말을 대놓고 꺼냈다.
“검술에 관한 일이잖아!”
“…….”
다르칸은 거기에는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미친놈이다.
“데루스가 숨겨 놓은 거대한 영혼으로 심검을 사용하는 게 걱정되겠지.”
글렌은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르칸의 말대로 그런 거대한 영혼으로 심검을 만든다면 누구도 막을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그가 옥좌에서 일어나 단상의 끝에 섰다. 창밖에서 내려오는 햇볕이 금빛 망토처럼 휘날렸다.
“심검은 영혼이 크다고 무조건 강해지는 무학이 아니다. 수만 번의 망치질을 통해 명검을 만들 듯 심검을 벼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혼을 두드리는 고뇌의 시간이 필요하다.”
글렌은 조급해할 필요 손을 내렸다.
“데루스 본인의 영혼이 아닌, 다른 영혼을 심검으로 벼리려면 길고도 긴 시간이 필요할 테니, 놈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는 오히려 놈의 성장시간이 늦어질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네 영혼을 담은 심검을 세우는 데만 집중해라. 날카롭게 벼려진 명검 한 자루가 수백의 대검을 꿰뚫는 법이니까.”
글렌의 말을 듣자, 어깨를 옥죄이는 듯했던 데루스의 그림자가 단숨에 지워지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자신에게 집중하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의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힘든 시간이 많았을 텐데, 잘 버텨주어서 고맙다.”
글렌은 자신 덕분에 이번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며 진중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곧 정식으로 논공행상을 진행할 테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업적에 걸맞은 상이 내려올 거라며 갓 잡은 생선처럼 입꼬리를 튕겼다. 정말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다만 저 혼자 이룬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 덕분입니다.”
라온은 옆에 있는 다르칸부터 시작해서 이번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 부상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른 사람을 떠올리니, 심각한 상처를 입었던 오황의 초월자들이 생각났다.
“다행히 전쟁 이후에 죽은 사람은 없다. 다르칸만이 아니라, 오그람도 멀쩡하게 살아 있지. 다만….”
글렌이 시선을 내린 채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레크로스의 상태는 좋지 않다.”
그가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검을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더군.”
“아….”
백혈교 본단에는 넝마의 성자 페드릭과 성녀 올가가 있었다. 두 사람의 힘으로도 회복을 시키지 못했다는 건 정말 위중하다는 뜻이었다.
“그렇군요….”
라온이 입술을 깊게 깨물었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머리가 어지럽군.
레크로스는 데니어의 검에 심장에 베였음에도 끝까지 남아서 백혈교주를 막아냈다.
육체와 정신력을 넘어 생명력을 걸고 싸웠기에 깨어난다고 해도 묵검존으로서의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백혈교주를 잡기는 했지만, 손해가 크네.’
레크로스는 생명이 위험하고, 체임버와 라리안, 아리스는 전투가 힘든 상태다.
오그람도 힘은 회복했지만, 부상을 당해서 바로 싸울 수 없었다.
‘거기다….’
옆으로 시선을 돌려서 다르칸을 바라보았다.
‘데루스를 막을 패로 쓸 수 있는 다르칸도 무너졌어.’
다르칸은 상단전에 큰 충격을 받았기에 오랜 기간 요양해야 한다.
오황 연합의 인명 피해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고수들의 부상이 심각한 게 뼈아팠다.
-그래도 이제 딱 두 놈만 남지 않았느냐!
라스는 에덴과 데루스만 죽이면 끝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에덴은 그렇다 치고, 데루스에게는 아직 큰 힘이 남아 있잖아.’
-큰 힘? 아!
라스가 이제 생각이 났다는 듯 눈동자에 시퍼런 냉기를 일으켰다.
-망할 천족 놈들!
‘그냥 천족도 아니고, 대천사지.’
우리엘 이후로 대천사들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을 보면 백혈교주와 타천이 죽었음에도 초월자의 숫자는 여전히 자신들이 밀릴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이….’
라온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계획을 시작해야겠네.’
-그 계획? 무슨 계획을 말하는 것이냐?
라스가 궁금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글쎄?’
라온이 궁금해하는 라스를 보며 짙은 서늘한 웃음을 흘렸다.
-왜, 왜 본왕을 보고 웃는 것이냐? 기분이 더러우니라!
‘너를 보면 웃음이 나와서.’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라스를 향해 더 짙은 미소를 그려주었다.
-왜 웃냐고! 말을 하거라!
라스는 자신의 미소에 불길함을 느낀 듯 꼬리를 파르르 떨며 뒤로 물러났다.
‘후후.’
-무서우니까 그만 웃으라고! 본왕을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후후후.’
라온은 눈은 그대로 둔 채 입술만 비틀어 올리는 섬찟한 웃음을 만들었다.
-과, 광녀고, 검에 미친 놈이고 다 범부였느니라!
라스가 숨을 헐떡이며 악을 질렀다.
-네놈이 전 차원에서 제일가는 또라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