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108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1108화(1108/1124)
제1108화
쿠구구구구!
라온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마나의 소나기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저건 공격이 아니야.’
리메르가 세이피아에 끌고 왔던 악의는 세계수에 의해서 모두 정화되었다.
저건 말 그대로 순수한 마나의 덩어리였기에 몸으로 받아들여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네놈의 말대로이니라.
라스가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에 거대한 악의가 정화되었기에 마나가 굉장히 짙지만, 네놈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없느니라. 다만….
‘그래. 나는 괜찮지만, 스테린 님이나, 시얀 님은 위험할 수 있어.’
스테린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죽을 정도로 몸과 정신이 약해진 상태였고, 시얀은 연주에 지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은 괜찮아도 저 두 사람은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두 분은 피하세….”
라온이 가루누아의 바람을 일으켜 스테린과 시얀을 밀어내려다가 멈춰 섰다.
‘잠깐. 아까 분명 그 바보 엘프의 얼굴이 보였지.’
붉은 바람과 안개가 지워지는 순간 영체 상태인 리메르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5 연무장에서 자신에게 장난칠 때처럼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거야. 그건 아마….’
스테린 님을 회복시키고, 시얀 님을 진정한 수호자로 만드는 거겠지.
리메르는 해랑이를 통해서 스테린의 수명을 늘리고, 시얀을 모두에게 인정받는 수호자로 만들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그 목표를 위해서 일부러 정화된 마나를 떨어뜨린 것 같았다.
“괜찮다….”
스테린이 입술을 꾹 내리누르며 의자에 기대놓은 활을 잡았다. 그는 활을 지팡이 삼아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망할 손주 녀석의 선물은 받아야지.”
스테린도 리메르의 뜻을 알아차린 듯 허리를 곧게 편 채 쏟아지는 마나의 덩어리에 몸을 맡겼다.
“저, 저도 오빠를, 그리고….”
시얀이 괜찮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 님을 믿어요.”
그녀는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마나의 소나기 속으로 들어갔다.
“어쩔 수 없군.”
라온이 살짝 눈매를 찌푸리며 스테린, 시얀과 함께 마나의 폭풍 속으로 들어갔다.
파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마나의 덩어리들은 예상과 달리 자신의 육체를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투욱.
발이 다시 땅에 닿는 것을 느끼며 눈을 뜨자, 자신은 세이피아가 아닌 처음 보는 숲속에 서 있었다.
‘아니야. 여기는….’
별관 뒤편의 숲이야.
리메르 그리고 글렌과 함께 자주 왔었던 북망산의 초입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
가을의 태양이 은은한 열기를 내리쬐고, 대지는 부드럽고 따끈해서 잠이 잘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다만 이곳은 현실이 아니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던 라스가 보이지 않았고, 이동하는 느낌도 없이 새로운 장소에 온 것을 보면 이건 현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심상의 세계였다.
‘스승님의 심상이겠지.’
숲 전체에서 리메르 특유의 시원한 향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의 심상의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게 확실했다.
‘본래 스승님의 심상은 이런 형태가 아니었을 텐데.’
진혼검에 들어가고, 마르타의 복수를 이뤄주며 리메르의 영혼에도 평화로운 변화가 일어난 모양이다.
‘시얀 님과 스테린 님은 어디에… 음?’
라온이 두 사람을 찾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우우우욱!
스테린은 숲 밖의 공터에서 활을 들어 올린 채 눈을 내리감고 있었다.
“스테린 님?”
스테린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눈도 뜨지 않았다.
투우욱.
스테린은 서 있는 것도 힘든 듯 바람에 날리는 종이처럼 몸을 휘청거렸지만, 쓰러지지 않고 활을 꼭 잡고 있었다.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
무언가에 집중하는 상태였기에 스테린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럼 시얀 님은 어디에 있지?’
라온이 다시 등을 돌려서 눈앞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아아아아아.
숲 안쪽에서 청아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서 달려 가보자, 시얀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채 세계수의 호흡이 어려 있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가지각색의 정령들이 모여들었는데,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시얀 님의 목소리에 이끌린 건가?’
시얀은 자신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지만,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시얀이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노래를 부르자, 귀를 그대로 녹여버리는 듯한 유려한 음색이 피어났다.
정령들은 시얀의 노래를 따라 춤을 추며 본인이 지닌 정령력을 나눠주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아!
시얀의 몸에 정령의 기운이 스며들며 그녀의 정신과 육체가 한층 더 성장하는 게 느껴졌다.
‘각성!’
라온이 노래를 부르며 변해가는 시얀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 마나의 덩어리들이 시얀 님을 각성시킨 건가?’
아니, 그것만은 아니겠지.
시얀은 자신과 함께 정화의 노래를 준비하며 정신적으로 큰 성장을 이뤄냈다.
언제나 보호를 받던 입장에서 모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평소에 지니고 있던 생각과 마음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에서 대량의 마나가 쏟아졌기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각성이 진행되는 게 분명했다.
‘이쪽도 건드리면 안 되겠네.’
시얀에게 중요한 순간이기에 뒤로 물러서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후우우우웅!
라온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칠 때 공터 쪽에서 둔탁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또 뭐지?’
라온이 눈썹을 내린 채 다시 공터로 나갔다.
“어?”
너무도 당황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우우웅!
스테린이.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노쇠하여 그저 누워만 있던 전대의 수호자가 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물론 빠르거나, 강하지는 않았다. 당장 활을 떨어뜨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느리고 약했지만, 그는 손아귀를 파르르 떨면서도 끝까지 활시위를 당겼다.
‘괜찮으신가?’
스테린은 마지막 불씨를 태우는 것처럼 땀을 줄줄 흘리며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아주었다.
이대로 작별 인사도 없이 그가 떠나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스테린은 절대 죽을 수 없다는 듯 온 정신을 집중하여 활시위를 끝까지 당겼다.
궁수의 가장 기본. 활을 들고, 화살을 걸어서 시위를 당긴 후 표적을 겨눈다.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기본 검술처럼. 스테린은 궁수의 기초적인 자세에 집중했다.
그는 투명한 하늘을 향해 끝까지 당긴 시위를 풀어내고 화살을 쏘아냈다.
라온은 노궁사의 마지막, 혹은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는 순간을 지켜보며 정중한 자세로 두 손을 모았다.
*
*
*
“라, 라온 님!”
도리안은 라온이 마나의 덩어리에 파묻히는 것을 보자마자,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이제 그의 충성심은 두려움보다도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괜찮아.”
마르타가 팔을 들어서 도리안의 돌진을 막았다.
“잘 보면 알겠지만, 다친 곳은 하나도 없어.”
그녀는 라온만이 아니라, 스테린과 시얀도 멀쩡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
도리안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있는 라온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괘, 괜찮은 거 맞아요? 안 움직이시는데….”
그는 라온이 이상하다고 말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강제 각성이네.”
에블린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붉은 입술을 매만졌다.
“강제 각성이요?”
도리안이 목이 꺾일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 찰나의 순간에 대량의 마나와 맞닿을 때 강제적으로 무아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지.”
에블린의 농염한 시선이 라온을 향해 떨어졌다.
“다만 동시에 세 명이 각성에 들어가는 건 나도 처음 봐. 아마도 갓 태어난 듯한 순도 높은 마나가 유성우처럼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그녀는 재밌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스테린과 시얀의 상태를 살폈다.
“조금 질투가 나는데?”
에블린은 시얀의 위아래를 살피며 눈매를 찌푸렸다.
“으….”
도리안은 에블린의 어깨 위에서 피어나는 검은 살의를 느끼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일이잖아요! 그냥 일일 뿐이에요!”
그는 제발 참으라고 말하며 두 팔을 휘저었다.
“뭐, 그게 맞지!”
에블린은 일단 받아들이겠다며 살기가 흐르는 손바닥을 털어냈다.
“각성이라고…?”
마르타가 석상처럼 굳어 있는 시얀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저게 정말 각성이 맞아? 무슨 정령들이….”
시얀 주변으로 온 세상의 정령들이 모여든다. 불, 물, 대지, 바람만이 아니다. 벼락, 바다, 빛, 어둠처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정령들도 그녀를 따르듯 다가오고 있었다.
“스, 스테린 님을 보세요! 저 손!”
도리안이 기겁하며 스테린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찌지지직!
나무껍질처럼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던 스테린의 손등에서 새싹 같은 활력이 돋아나더니, 살이 팽팽하게 펴지며 본래의 혈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미친….”
마르타는 다림질을 하듯 피부가 펴지는 스테린과 온 세상의 정령을 응집시키는 시얀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제 시작이네.”
에블린이 옅은 미소를 그리며 시얀과 스테린 사이에 서 있는 라온을 바라보았다.
“라온. 너는 무엇을 얻어서 올 거야?”
*
*
*
스테린이 처음 활시위를 당겨서 화살을 쏘아낼 때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조금씩 빨라지더니, 두 번째에는 오십 분. 세 번째에는 사십 분. 그리고 네 번째에는 이십 분이 걸렸다.
파아아아아!
화살 역시 처음에는 제대로 날아가지 못하고 땅에 꼬꾸라졌지만, 점차 발전하여 이제는 하늘을 찢어발길 것처럼 강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것만이 아니다. 스테린 본인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주름 때문에 늘어졌던 피부가 불에 닿은 것처럼 탄력과 생기가 피어났고, 실처럼 얇고 가늘었던 머리카락이 빠지고 새로운 모발이 자라났다.
회광반조가 아닌, 반로환동.
전대의 수호자는 깨달음이 부족하지 않았다.
체력과 마나가 부족했던 그에게 리메르가 가져온 순도 높은 마나가 흡수되며 멈췄던 각성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파아아아앙!
힘없이 가라앉았던 스테린의 화살이 매섭게 뻗어 나가며 공간을 뚫어낼 듯한 충격파를 터트렸다.
후우우우우웅!
스테린은 이제 화살을 쏘아내는데, 찰나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고, 그 화살에는 힘과 활력이 넘쳐흘렀다.
파아아아앙!
결국 스테린은 자신이 처음 세이피아에 왔을 때보다 더 젊어진 채 화살을 쏘아냈다.
그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오러가 모두 회복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쿠우우우웅!
스테린은 삼십 분 만에 본인이 익히고 있는 궁술을 모두 펼쳐낸 후 활과 화살을 대지에 박아넣었다.
그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가며 오래된 별빛처럼 고아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
스테린은 자신에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녹색의 바람이 되어 심상의 세계를 떠났다.
“이런 각성을 보게 될 줄이야. 새로운 영역을 깨닫는 기분인데.”
라온은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고서 시얀이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아아아아.
시얀은 여전히 두 손을 모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다만 이제 그녀의 주변에는 정령이 아니라, 정령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의 기운들이 은하수처럼 휘돌고 있었다.
손가락을 따갑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자연의 기운들을 아주 천천히 회전하며 시얀의 전신 모공으로 스며들었다.
우우우우웅!
시얀의 새하얀 피부 위로 별자리 같은 빛들이 피어나더니, 그녀가 지니고 있었던 정령력이 이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짙어졌다.
투욱.
시얀이 모으고 있던 두 손을 내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신비로운 금빛 눈동자가 자신을 빨아들일 것처럼 출렁였다.
“…….”
시얀 역시 스테린처럼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투명한 물이 되어 심상의 세계를 빠져나갔다.
그녀가 떠난 숲은 빛을 잃은 것처럼 고즈넉한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두 사람 다 각성에 성공했군.”
라온은 시얀이 노래를 불렀던 숲과 스테린이 궁술을 펼쳤던 공터를 돌아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이렇게 간단하게 각성을 이루다니. 아니, 그건 아니었지.’
스테린은 각성을 이룰 깨달음을 만들어 놓았지만, 마지막 순간 육체와 마나의 부족으로 실패를 한 것 같았다. 그 대안이 될 마나의 덩어리들이 쏟아지며 놓쳤던 각성의 끈을 다시 잡은 것이다.
반면 시얀은 육체와 마나는 충만했지만, 여린 마음과 정신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깨달음을 이번 수련을 통해서 얻게 된 게 분명했다.
‘스승님은 이걸 어떻게 아신 거지?’
해랑이의 말을 들어보면 리메르는 일부러 악의를 지닌 채 이곳에 왔다.
즉 스테린과 시얀의 각성을 노렸다는 건데, 대체 무엇을 보고 그것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별난 엘프라니까.’
라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때 연녹색 바람이 어깨너머로 다가왔다.
“스승님?”
바람에서 리메르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장난스러운 기질이 느껴졌다.
진혼검에 남아 있던 악의가 정화되었기에 본래의 분위기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다만 그는 엘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람으로만 존재했다.
“설마….”
라온은 점점 더 연해지는 듯한 리메르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서 스테린 님과 시얀 님을 각성시킨 거였어요?”
후우욱.
리메르는 그에 대한 답을 하듯 자신의 앞머리를 살짝 들어 올려주었다. 맞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리메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전처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
땅을 보며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리메르가 정말 사라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스승님.”
라온이 자세를 바로 한 채 청아함과 익살스러움을 동시에 지닌 녹색의 바람을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말씀드리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