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65)
제165화
라온은 고개를 들어 단상을 보았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처럼 올라간 수장들의 손. 단상 위에 있는 모두가 손을 들어 올렸다.
마스터 이상의 경지에 오른 가문의 강자들이 자신을 원하여 동시에 손을 올리는 장면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고, 오싹할 정도의 희열을 전해주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데니어는 어느 정도 예측했지만, 카룬이나 발데르까지 손을 들어 올릴 줄은 몰랐다. 다만 놀란 건 자신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연무장에 일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이곳이 있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광경에 당황하여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전부라고…?
“대주와 단주 모두가 손을 들었어!”
“이거 오늘 처음 아니야?”
“오늘이 아니라, 현 가주님 이후에 처음이라고!”
“서, 선택식을 계속 봐왔지만 모든 수장이 손을 들어 올린 건 한 번도 없었어….”
“그 전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검사들이 라온과 대주들을 번갈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전설? 맞네. 이거 그 전설이잖아!”
“가주의 전설이 드디어….”
“그럼 저 녀석이 가주가 된다고? 직계도 아닌 방계인데?”
“사실 피는 직계잖아.”
“저 녀석이 가주….”
“그게 무슨 전설이야! 미신이지!”
소수의 검사들이 대주들의 손을 보며 전설이라고 중얼거리자, 곧 연무장 전체에서 가주의 전설이라는 단어가 들끓었다.
‘전설?’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전설이라고 하니, 얼마 전에 주디엘이 말해주었던 미신이 생각났다.
단상 위에 있는 모든 수장이 손을 들어 올리면 그 검사는 반드시 가주가 된다는 전설. 현 가주인 글렌 역시 선택식에서 모두의 손을 들어 올리게 만들었다고 했었다.
‘그런 게 의미가 있나.’
그건 현실이 아니라, 미신일 뿐이다. 거기다 가주에는 별 관심 없다. 실비아를 직계로 올리고, 데루스에게 복수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라온은 시선을 돌려 중앙에 있는 글렌을 보았다. 평소와 같이 아무 반응도 없는 냉막한 인상이지만, 이상하게 따스하게 보였다. 꼭 대견하다고 칭찬을 하는 것처럼.
‘음….’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그런 느낌이 씻은 듯 사라졌다. 자신의 착각이었나보다.
‘그럼 그렇지.’
라온은 피식 웃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룬이나, 직계들은 당황스러운 듯 들어 올린 손을 파르르 떨며 리메르를 보고 있었다.
‘도박쟁이 교관님이 무언가를 했나 보네.’
정말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걸 보니, 리메르가 직계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이런 상황을 만든 것 같았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저런 놈이 왜 맨날 도박에서 졌다고 울고 오는 것이냐.
라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나도 모르겠어.’
도박에 질 구석이 안 보이는데, 매일 같이 잃고 오는 것을 보면 좋아는 하지만 체질이 아닌 것 같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느냐. 전설? 어차피 미신일 뿐이다.”
“그래. 그따위 미신을 누가 믿는다고!”
카룬과 발데르는 가주의 전설은 미신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리메르에게 눈을 부라렸다.
“미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많겠죠.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두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박혔습니다.”
리메르는 손을 쭉 펼쳐서 관객석 전체를 가리켰다.
“라온이 정말 전설의 인물이고, 훗날 가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거 하나만으로 오늘 일은 충분합니다. 뭐, 손해 본 것도 없고.”
“크윽!”
“리메르….”
“네놈은 곱게 죽지 못할 거다. 내가 그리 만들 것이야.”
그가 여유롭게 웃자, 카룬과 발데르 그리고 직계 라인의 수장들이 이를 바득 갈았다.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어이 사회자 양반! 이제 진행 좀 하지? 팔 아프다고!”
“아, 예!”
입에서 침을 흘리고 있던 사회자가 본인의 뺨을 두들기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 라온 지그하르트는 원하는 단체를 선택해주십시오!”
사회자는 본인도 모르게 처음으로 신입 검사에게 존댓말을 했다.
“흐음….”
라온은 왼쪽 끝에 있는 라테인부터 우측 끝에 있는 리메르까지 단상 위에 있는 수장들을 차례로 살폈다.
아이언드나, 세레나처럼 자신을 절실히 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 생각하는 중립적인 대주들도 있었으며, 리메르의 계략에 넘어가 어색하게 손을 들고 있는 직계들도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그리고 조금 전의 여유는 어디 간 채 양손을 꼭 모아서 제발 오라고 고사를 지내는 리메르도 있었다.
“흐음….”
라온은 일부러 리메르를 보지 않고 아이언드와 세레나, 라테인이 있는 좌측을 보며 고민하듯 턱을 긁적였다.
“허억!”
리메르가 자신의 시선을 돌리려는 듯 비명을 질렀지만,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라, 라온!]
입맛을 다시며 선택을 하려는 척하자 리메르에게서 오러 메시지가 날아왔다. 옆에 있는 대주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려고 기척을 죽여서 속삭이는 듯한 음성이었다.
[야 임마! 광풍단으로 와야지! 어딜 보는 거야!]
그의 음성에서 절실할 정도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여긴 너희들을 위해서 만든 곳이라니까! 실적과 무력을 동시에 쌓을 수 있도록 계속 움직일 거라고!]
꽤 매혹적인 이야기였지만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수석으로서 이끌던 친구들도 대부분 여기 있잖아. 오면 바로 부단주부터 시작이야! 네가 하고 싶다는 거 다 하게 해줄게! 다른 곳은 볼 필요 없어! 명예와 영광이 바로 네 앞에 있다!]
리메르가 평소와 달리 속사포처럼 말을 늘어놓았다. 불안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지금이 바로 모두를 농락한 낚시꾼을 다시 낚을 때였다.
[교관님.]
라온이 글래시아를 이용하여 리메르에게 오러 메시지를 보냈다. 오히려 리메르보다도 더 은밀하게 목소리가 전해졌다.
[어, 그래! 우리 라온! 이제야 내 말이 귀에 들어오는구나!] [저를 걸고 도박하셨죠?] […….]
강물처럼 이어지던 리메르의 말이 처음으로 뚝 끊겼다.
[그,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도박에….] [다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씀하시지 않으면 백련대로 갈 겁니다.] [해, 했다. 했어! 미안하다….] [한 건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걸 전부 가져가시지는 않겠죠?” […….]
그의 말이 두 번째로 끊겼다.
[그게… 이 단체를 운영한다는 건 돈을 좀 써야 하잖아. 거기다 우리는 시작이라서 돈 들어갈 데가 많….] [가주님이 그런 쪽으로는 칼 같으셔서 충분한 자금을 주셨을 텐데요. 제가 한 번 여쭤볼까요?] [아니! 아니야! 절대 아니다!]
리메르가 고개를 맹렬하게 저었다. 저 모습을 보니 그 자금의 일부도 도박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
“라온 지그하르트. 고민이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선택할 시간이다.”
사회자가 재촉하듯 손을 올렸다.
“하나, 둘….”
그가 숫자를 세자 불안했는지 리메르의 목소리가 커졌다.
[라, 라온!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 [딴 돈의 절반만 주시죠.] [저, 절반이나 주면 내가 먹을 게 별로….] [그럼 다 놓치시는 거죠. 전 세레나 대주가 있는 공검단으로 가겠습니다.]
“셋….”
솔직히 아직 가주에는 욕심이 없어서 큰 의미는 없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인마! 전설이라고! 전설…!] [전설은 전설이고, 계산은 계산이죠.]
“넷….”
라온은 사회자가 넷이라는 숫자를 부를 때 완전히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알겠다! 절반! 절반을 주마! 이 지독한 자식!] [콜.]
“다서….”
“결정했습니다.”
라온은 단상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뒤 리메르를 보았다.
“전 광풍단에 들어가겠습니다.”
“광풍단! 단상의 모두 수장들에게 선택을 받은 라온 지그하르트의 소속은 광풍단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모두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와아아아아!”
“라온!”
“도련님!”
가장 먼저 환호가 나온 건 별관 식구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들은 전설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무사히 선택식이 끝난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안 오는 줄 알고 식겁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너만 믿을게!”
함께 광풍단에 들어간 검사들도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어깨를 두드렸다.
“소속이 정해진 신입 검사들은 단상을 향해 검례를 취해주십시오!”
라온과 신입 검사들이 검을 뽑았다. 태양 빛을 받은 칼날을 가슴으로 끌어당겨 검례를 취했다.
검날 사이로 글렌과 눈이 마주쳤다. 재밌다는 듯 그의 입가가 아주 살짝 올라가 있었다.
‘저 사람이 웃는다고?’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역시나 그의 표정은 처음 본 냉막함 그대로였다. 오늘 왜 자꾸 헛것을 보는 건지 모르겠다.
“이것으로 오늘 선택식을 마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리온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5 연무장의 동료들을 살폈다.
대부분 기뻐했지만, 그중 한 명. 버렌은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음….’
다시 단상 위를 보았다. 버렌의 아비인 카룬은 실망한 아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과 리메르만을 노려보며 눈을 부라렸다. 아들에게 시련을 주려는 게 아니라, 정말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기에 버렌을 거절한 것이다.
‘차라리 잘 됐어.’
훗날 카룬을 믿다가 배신을 당하느니, 지금 그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일어서는 게 훨씬 나았다.
라온은 버렌이 주었던 고급스러운 금빛 수실을 쓸어내리고서 뒤를 돌았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버렌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마주하고 나지막하게 입을 뗐다.
“기다리고 있겠다. 네 목표로서.”
* * *
가주전 알현실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글렌은 즐거운 듯 입매를 살짝 올리고 있었고, 리메르는 똥 씹은 표정으로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재밌더구나.”
글렌이 턱을 살짝 올리며 더 짙은 미소를 그렸다.
“단상 위의 수장들을 조롱하던 네가 라온에게는 역으로 농락을 당하다니. 웃음을 참기 어려웠어.”
그는 라온과 리메르의 오러 메시지를 들은 듯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이 은혜도 모르고….”
“예전부터 느꼈지만, 그 아이는 가주가 되고 싶은 욕심이 없다.”
“예? 그럴 수가 있나?”
“그래. 전혀라고 느껴질 정도로 가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지. 있는 거라고는 실비아를 직계로 올리겠다는 목표뿐이다.”
글렌이 기껍다는 듯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실비아를 직계로 올리겠다고 선언했던 라온의 당당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만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런 착한 녀석이 나한테는 왜 그런답니까?”
“본인을 이용해서 도박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절반만 가져가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진짜 눈치 더럽게 빠르다니까요. 도박한 걸 어떻게 알았지?”
“똥파리가 똥을 그냥 지나가겠느냐. 내 눈에도 뻔히 보인다.”
“또, 똥파리라뇨! 이 광풍단의 단주님을 너무 우습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광풍단의 단주님이 바람처럼 얻어터지면 재미있겠군.”
“아닙니다. 저 똥파리 맞습니다!”
글렌의 손이 올라가자마자 리메르가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고 파리처럼 손을 비볐다.
“근데… 버렌은 어떻게 할까요?”
리메르의 눈동자가 진흙에 박힌 듯 어둑한 빛으로 가라앉았다. 버렌은 건방지지만 소중한 제자다. 홀로 소속을 정하지 못한 그 아이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카룬을 필요 이상으로 조롱한 이유도 버렌의 축 내려간 어깨 때문이었다.
“무력과 정신력에 인성까지 성장했는데, 카룬이 아예 받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마에 미쳐있던 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속 좁은 녀석이 되었지. 다만 검사를 선택하는 건 수장 고유 권한이다. 그건 나라도 통제할 수 없어.”
맞는 말이다. 아무리 가주라고 해도 수장이 받기 싫어하는 검사를 억지로 넣을 수는 없다. 설사 넣는다고 해도 버렌만 더 초라해지게 될 거다.
“그러면….”
“네가 버렌을 데려가라. 변화한 그 아이의 성격이라면 광풍단에서도 잘 지낼 수 있겠지.”
“제가 그런데 보모는 아니라서….”
“쓰읍.”
“옙! 버렌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렌이 혀를 차는 소리를 내자마자, 리메르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라온을 가주로 만들겠다는 건 진심이었던 모양이구나.”
“물론이죠. 오늘 일로 가문 검사들의 머리에 라온이 가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작게나마 박혔을 겁니다. 이건 훗날 그 어떤 지위나, 실적보다 큰 힘이 되어 줄 겁니다.”
“그렇겠지. 다만 그만큼 많은 견제를 받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글렌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역시 라온처럼 모든 수장의 선택을 받았고, 그 이후로 시작된 수많은 견제 때문에 목숨이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걸 이겨내지 못한다면 가주가 될 자격이 없겠죠. 그리고….”
리메르의 눈빛이 기대감의 불꽃으로 번쩍였다.
“그 아이는 위기를 이겨내는 데 도가 튼 녀석입니다. 절대 우리를 실망시킬 일은 없을 겁니다.”
“흠, 그거야 보면 알겠지.”
글렌의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그 음성에는 리메르에 못지않을 정도의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박장에 가겠군. 거기서 돈을 받자마자 카지노로 갈 테고.”
“그, 그럴 리가요. 선택식 준비를 하느라, 피곤해서 좀 쉴 생각입니다.”
리메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이고 뒤를 돌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손이 다 귀신이네. 귀신이야.’
* * *
라온은 선택식이 끝난 후 별관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그하르트 남부의 번화가로 향했다. 낡았지만 가장 큰 주점에 자리를 잡고, 딱 일반인 수준으로 기척을 죽였다.
“그 소식 들었나? 라온 지그하르트가 선택식에서 전설을 재현했다는 거?”
“들은 게 아니라, 직접 봤지! 라온을 데려가려고 모든 수장들이 손을 들어 올린 모습은 장관이었네.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
“크으, 나도 봤어야 했는데!”
“그럼 이제 라온이 다음 대 가주가 되는 건가?”
“그건 그냥 전설일 뿐이잖아. 실제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
“하긴 지금 가주 후보들이랑 나이 차이가 좀 나긴 하니까.”
“그래도 가능성은 차고 넘치잖냐. 17살에 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른 지그하르트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곧 마스터에 오를 거라는 소문도 있으니, 그 전설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어. 방계에서 나오는 지그하르트의 가주라. 난 마음에 들어!”
이 주점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기대감을 가지는 건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꽤 즐거웠다.
“그런데 도박은 어떻게 됐지? 라온이 광풍단으로 가는 걸 맞춘 사람이 있나?”
“광풍단은 아닌데, 제3의 단체에 간다고 건 사람이 하나 있지.”
“그게 누군데?”
“가끔 와서 돈 잃던 중년인인데, 이번에 초대박을 쳤더라고. 배당이 장난이 아니야.”
라온은 도박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잘못 안 거 아니냐? 그 귀때기는 빨간 머리잖아.
‘리메르 교관이 이번 내기의 관련자인데, 본모습으로 왔을 리가 없잖아. 변장한 거야.’
리메르는 이번 도박의 당사자라고도 할 수 있는 단주다. 그런 그가 직접 도박에 참여한다면 여기저기서 불평이 나올 테니, 분명 변장하고 왔을 것이다.
-눈치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구나.
‘리메르 교관을 하루 이틀 본 게 아니니까.’
라온은 피식 웃으며 리메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30분 정도 시간을 죽이고 있자, 주점 안쪽 문이 열리고, 큼지막한 주머니를 짊어진 청발의 중년인이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축하한다!”
“대체 얼마나 딴 거야!”
“난 언제 저렇게 벌어보냐? 진짜 부럽네.”
“잘 먹고 잘살아라!”
주점 사람들은 청발의 중년인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환호를 해주었다.
“기분이다! 오늘 술값은 전부 내가 낸다!”
그 중년인은 그 환호에 보답하듯 주점 카운터에 금화를 쌓아두고 밖으로 나갔다.
“이야아아아아!”
“돈 쓸 줄 아는 사람이네!”
“또 오라고!”
“다음에도 부탁한다!”
지그하르트 내부이고, 치안이 워낙에 좋아서 그런지 그의 돈을 노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공짜 술과 안주에 즐거워하기만 했다.
딱 한 사람만 제외하고.
라온은 옅게 웃으며 중년인의 뒤를 따라 나갔다.
“흐흥!”
푸른 머리칼의 중년인은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번화가의 중심으로 향했다. 방향을 보니, 카지노에 가는 것 같았다.
우우웅.
라온은 오러의 밀도를 조절하여 기척을 바꾸는 암살자의 기술을 사용한 채로 그를 따라갔다. 한참을 쫓자 추적이 귀찮은 듯 중년인이 걸음을 멈췄다.
“요즘도 멍청한 도적이 있네. 귀찮으니 빨리 덤… 허억!”
중년인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라온이 머리에 쓰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왜 그리 놀라십니까?”
“아, 아니….”
“절 아시나 봅니다.”
“모르는데?”
중년인은 휘파람을 불며 눈동자를 돌렸다. 전혀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저러니 도박에서 잃기만 하지….
“장난은 이쯤 하시죠. 교관님. 아니, 단주님.”
“크으, 너 대체 어떻게 안 거냐. 아니, 무슨 수로 쫓아온 거야!”
중년인이 이를 갈며 얼굴에 손을 올렸다. 평범한 중년인의 얼굴이 사라지고, 경악이 가득 담긴 리메르의 얼굴이 드러났다.
“전에 한 번 말씀해주셨지 않습니까. 여기서 이런 내기 도박을 하고 노신다고.”
라온이 멀어진 주점을 가리켰다. 예전 6 연무장 수련생들과 밥을 먹을 때 리메르가 저곳에서 가끔 내기 도박을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문에서부터 추적하면 걸릴 게 뻔하니까.”
“젠장! 내 망할 주둥이가!”
리메르가 악을 지르며 본인의 입술을 후려쳤다.
-귀때기. 본왕은 이해하느니라. 이 자식 한 번 들으면 잊어먹질 않느니라. 괴물이다. 괴물!
라스가 공감한다는 듯 자신을 보며 이를 갈았다.
“벼, 변장은 어떻게 안 거냐. 무슨 개코라도 돼?”
“뻔하죠. 내기에서 새로운 단체에 걸 건 사람은 단주님 뿐이니까요. 그리고….”
라온이 리메르의 단전을 가리켰다.
“단주님의 내부에서 움직이는 경쾌한 바람 같은 기질은 속이지 못해요.”
“그, 그걸 느낀다고? 다른 마스터라도 알아차리기 힘들 텐데?”
리메르는 말도 안 된다며 눈을 부릅떴다.
“제가 감각이 좋지 않습니까.”
“젠장, 그놈의 초감각!”
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악을 질렀다.
“다 알겠는데, 여긴 왜 온 거야. 내가 반을 주겠다고 했잖아.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되잖냐!”
“저거.”
라온이 리메르가 가려던 카지노를 가리켰다.
“저기 가서 불려서 주겠다고 헛생각을 하실까 봐. 찾아왔습니다.”
“누, 누가 그런 미친 생각을 하겠어!”
리메르가 평소와 달리 어색하게 껄껄 웃었다.
‘저 귀신 같은 놈!’
할아버지고 손주고 사람 심리를 읽는데 도가 텄다. 저 조손들 때문에 머리털이 다 빠질 것 같았다.
“여기서 주시죠. 절반.”
“그, 내가 따서 주면 2배가 4배가 되고, 4배가 8배가 되는 마법이….”
“절반. 지금.”
“크윽….”
리메르는 눈물을 꾹 삼키고서 보자기에 있든 금화의 절반을 넘겨주었다.
“이건 제가 가질 게 아니라, 광풍단의 공금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여기에 단주님의 돈만 들어간 게 아닌 것 같으니까요.”
라온이 금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금화 개수를 보니, 단을 준비하기 위한 자금도 들어간 것 같았다. 리메르에게 전부 맡겼다간 오늘 모조리 사라졌을 것이다.
“허허….”
리메르는 다 포기한 듯 풀린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무력만 잘난 줄 알았는데, 심계와 깐깐하기는 글렌보다 더했다.
“내, 내가 부단주를 잘 뽑기는 했나 봐. 마음이 아주 든든하네!”
“허튼짓하지 않으시도록 앞으로도 단주님을 잘 모시겠습니다.”
서늘하게 웃는 라온의 모습을 보자, 등줄기로 소름이 돋아 올랐다.
‘이거 내가 내 무덤을 판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