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97)
제197화
“곧 시작이니까. 몸을 데우고 있어.”
라온이 검사들에게 몸을 풀라고 지시를 내렸을 때 대련장 반대편에서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검사가 다가왔다.
‘가론 지그하르트.’
이전에 밟아주었던 레이든과 비슷한 외모지만 느껴지는 기파는 전혀 달랐다. 벽을 넘어선 자 특유의 강대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네가 라온인가?”
가론은 숨소리가 들리는 코앞까지 다가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짓눌러버리려는 듯 막대한 기파를 뿜어내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렇습니다.”
라온은 그의 기세를 덤덤하게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리 쉽게 기세를 받을 줄은 몰랐던지 가론의 눈매가 찡그려졌다.
“주먹 한 번으로 우리 부단주를 걸레로 만들었다던데, 그만한 실력이 있어 보이긴 하는군.”
“그는 그리 강하지 않았으니까요.”
“강하지 않았다? 테크리가?”
“예.”
“명성 맛 좀 봤다고 자만이 과하군.”
“자만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도발도, 조롱도 아니다. 정말 솔직한 생각이었다.
“내가 테크리를 부단주로 넣은 건 주먹질이 아니라, 검술 때문이다. 검을 든 녀석은 그때와 차원이 다를 거야.”
“그럼 저와 작은 내기 하나 하시겠습니까?”
“내기?”
“제가 이번에도 그쪽의 부단주를 한 수로 꺾는다면 단주님이 제 상대를 해주시지요.”
라온은 이를 가는 테크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일격으로 끝나면 재미없을 것 같거든요.”
“이 개자식이!”
귀를 열고 있던 테크리가 이를 갈며 다가왔다.
“그때는 검이 없었….”
“지금 단주님과 이야기 중인데 부단주가 욕을 하며 끼어들다니, 금첨단도 서열이 개판이긴 하네요.”
라온의 비웃음에 가론과 테크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죄, 죄송합니다.”
가론의 서늘한 눈빛을 받은 테크리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빨개지도록 주먹을 말아쥐는 걸 보니, 열 좀 받은 것 같았다.
“라온 지그하르트. 이름값 좀 생겼다고 건방이 과한데.”
“그러게요. 이름값 없는 금첨단의 단주님에겐 자극이 좀 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 이 새끼….”
“좀 전에 말한 내기는 왜 답해주지 않으시죠? 부하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후우, 입심이 대단하다더니, 그 말대로네. 도발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가론은 심호흡을 하고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이 정도 도발에 걸릴 리가 없나.’
라온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형이라고 레이든과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른 방법을 사용하려 할 때 가론이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좋다. 한 말이 있으니, 그 도발에 어울려주지. 대신 네가 진다면 너는 활동 중지를 5년으로 하겠다.”
“그거 가지고 되겠습니까.”
라온이 가론을 보며 검집을 툭 쳤다.
“제가 테크리를 일격에 제압하지 못한다면 다시는 검을 잡지 않겠습니다.”
“네놈. 정말 죽고 싶은 거냐.”
두 번째 도발은 참을 수 없었는지, 가론이 살기 짙은 기세를 피워냈다.
쿠구구구!
라온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가론의 강대한 기파를 물길처럼 흘려버렸다.
“나도 그리 어른스러운 놈이 아니야. 지금 여기서 끝을 내줄까?”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오시지요.”
두 사람의 기세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하늘로 솟구치려 할 때 연무장 입구에서 장대한 울림이 일었다.
쿠우웅!
“지그하르트의 진정한 하늘. 글렌 지그하르트 가주께서 입장하십니다!”
목이 터질 듯한 문지기들의 외침에 연무장에 있는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라온은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활짝 열린 입구로 들어오는 글렌을 살폈다.
‘이전보다 더 커졌어….’
3개월 전에 느꼈을 때보다 오늘의 글렌이 더 크고, 웅장해 보인다. 성장할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니,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무력이었다.
글렌은 천검대주와 함께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단상의 옥좌에 올라가 광풍단과 금첨단을 굽어보았다.
-쯥, 본왕이 저곳에 서 있어야 하거늘.
라스는 글렌을 노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넌 내 손목이 어울려.’
-본왕은 위대한 마계의 군주이니라! 언제까지고 이딴 팔찌에서 살 수는 없단 말이다!
‘그냥 살아. 내가 대륙에 있는 음식은 다 먹여줄 테니까.’
-어? 으음… 다, 닥쳐!
잠시 고민이 되었던지 라스의 대답이 꽤 늦었다. 웃음이 나온다. 역시 이 녀석을 움직이는 건 분노가 아니라, 식탐이었다.
“광풍단주는 어디 갔지?”
“그는….”
“저 여기 있습니다!”
라온이 대답을 할 때 뒤에서 리메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종이를 들고 있었는데, 대충 봐도 도박 용지가 분명해 보였다.
“후우, 시작하라.”
글렌은 리메르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손을 저었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검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부터 광풍단과 금첨단의 단체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선수는 대련장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첨단에서 팔이 길쭉한 검사가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음?”
“우리 1번은 누구야?”
“그러게 아직 안 정했잖아.”
“단주님?”
“나도 몰라.”
검사들이 리메르를 보았지만, 그는 이번 일에 관계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1번은 이미 정해져 있어,”
라온이 다가와 검사 중 가장 끝에 있는 녹색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저, 저요?”
불안함에 배 주머니를 쓱쓱 문지르던 도리안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번 일의 시작이 너였으니, 대련의 시작도 너여야겠지.”
라온이 씩 웃으며 도리안의 어깨를 잡았다.
“가서 3달간의 분노를 터트리고 와.”
* * *
도리안은 앞에 있는 금첨단 검사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
분노야 당연히 있다. 저 앞에 있는 금첨단이 아니라, 라온에 대한 분노가.
금첨단에게 맞은 게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라온에게 얻어맞았기 때문에 이제 저들과 왜 싸우는지조차 잊어버린 상태였다.
‘강해 보이는데.’
상대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느껴지는 기파와 인상만 봐도 보통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무력 수준을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라온이 왜 자신을 첫 번째로 내보낸 건지 모르겠다.
‘지면 안 되는데….’
이런 단체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봉이다. 선봉이 잘해주어야 그 뒤가 잘 이어지는 법인데, 상대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대련자는 앞으로.”
사회자의 부름에 도리안이 한숨을 푹푹 내쉬고 앞으로 다가갔다.
“각자 이름을 밝히도록.”
“도리안입니다.”
“벨킬이다.”
“욱!”
도리안이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이름도 무서워….’
얼굴만 세 보이는 게 아니라, 이름도 세 보인다. 이 대련장에서 당장 내려가고 싶었다.
‘난 강해졌는지도 모르겠는데….’
세 달 동안 정말 죽을 고생을 했지만, 자신이 강해졌나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애매하다.
아무리 무학을 익히고, 방어와 반격을 궁리해도 라온의 검은 귀신처럼 빈틈을 찔러왔으니, 자신감이 생길 수가 없었다.
“대련 시작!”
아직 마음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는데, 대련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아래로 내려가기 무섭게 벨킬이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양떼구름 같은 곡선으로 꼬이며 떨어져 내렸다. 화려하면서도 어지러운 검술이었다.
“히익…어?”
기겁하며 물러서던 도리안이 눈을 부릅떴다.
‘뭐, 뭐지?’
벨킬의 다채로운 변검의 흐름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검이 어디를 노리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부 생생하게 보였다.
‘놀리는 건가?’
조롱한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보법을 밟았지만, 벨킬의 검은 조금의 차이도 없이 예상한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눈썰미가 제법이구나.”
벨킬이 이죽거리며 다시 돌진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야!”
그가 기합을 지르며 검을 찔러왔다. 순식간에 세 개로 변한 검극이 가슴과 손목, 머리를 노려왔다.
‘이것도 다 보여.’
분명 처음 보는 검술이건만 그 흐름과 방향이 모조리 읽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피했지만, 이번에도 궤도는 예상과 일치했다.
“쥐새끼 같은 녀석!”
벨킬이 좀 더 빠르고 변화를 담아 검술을 운용했지만 별다를 게 없다. 그의 모든 움직임과 빈틈이 그대로 보였다.
“흐읍!”
도리안은 새로 익힌 창림보를 밟아 벨킬의 검을 회피한 뒤 텅 빈 허리를 후려갈겼다.
뻐어어어억!
시원한 타격음이 터지며 벨킬이 비명을 지르고 연무장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꾸어어억….”
급소를 맞은 벨킬은 허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다가 기절했다.
‘저긴 아프지.’
라온에게 수없이 맞아봤기에 급소마다 어떤 통증과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었다. 저곳을 제대로 맞으면 숨을 쉬지 못하다가 기절하게 된다.
‘그래서 이게 대체 뭐지.’
내가 왜 이긴 거냐고.
도리안은 쓰러뜨린 벨킬이 아니라, 라온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당신 진짜 뭐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 *
라온은 어리둥절하는 도리안을 보며 피식 웃었다.
‘당황스럽겠지.’
지금까지 본인의 실력이 정체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다가 훨씬 강하다고 생각되는 금첨단 검사를 일격에 쓰러뜨렸으니, 경악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광풍단원들은 본인들의 무력이 정체되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들은 3개월 동안 정말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버틴 이들에게 금첨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게 무슨….”
가론도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는지 눈을 부릅떴다. 1번으로 보낸 벨킬이 조장 바로 아랫급이었기에 놀람이 더욱 큰 것 같았다.
“처, 첫 번째 대결. 광풍단의 승리!”
멍하니 서 있던 사회자가 정신을 차리고 광풍단 쪽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이거 짠 거 아니야?”
“저렇게 쉽게 진다고?”
“우와아아아아아!”
“광풍단! 광풍단!”
관중들의 반응은 각기 응원하는 단체에 따라 정반대로 달라졌다.
금첨단의 승리를 점쳤던 사람들은 머리를 부여잡았고, 광풍단을 응원하던 사람은 목이 터져라 환호를 질렀다.
“운일 뿐이다. 오긴. 네가 나가라!”
가론은 억지로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금첨단의 2번 조장을 내보냈다. 두 번째 대결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겠다는 의지 같았다.
“버렌. 네 차례다. 무조건 이길 수 있으니까. 몸에 검을 맡겨.”
“음, 알겠습니다.”
버렌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오긴 페테르요.”
“버렌 지그하르트입니다.”
“대련 시작!”
두 사람이 결투 전의 인사를 마치고 한 발씩 물러났을 때 사회자가 시작을 알렸다.
후우우웅!
오긴은 시작부터 기세를 잡으려는 듯 긴 팔을 이용한 변검으로 버렌의 공간을 압박해왔다.
“흠?”
버렌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오긴의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려냈다.
“어디 이것도 막아봐라!”
오긴이 오러를 꽃잎처럼 펼쳐내며 공간을 장악했지만, 버렌은 파리를 쫓듯 가볍게 휘두른 검으로 다가오는 검격을 모조리 차단했다.
“무, 무슨….”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내 차례지?”
버렌이 땅을 박찼다. 당황하는 오긴의 공간으로 뛰어들어 검을 내질렀다. 바람이 깃든 오러가 변검이 이뤄내는 궤적을 뜯어버리고 오긴의 명치를 후려쳤다.
뻐어억!
힘 조절을 하지 않은 검면에 얻어맞은 오긴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넘어갔다.
“아….”
“이게 뭐냐?”
“또 일격? 오긴은 조장이잖아!”
“세상에….”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아닌 법. 조장마저도 일격에 쓰러뜨린 광풍단의 무력에 구경꾼들이 입을 떡 벌렸다.
버렌은 연무장에서 내려오자마자 라온에게 달려갔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뭐가?”
“왜 저놈의 공격이 다 보이는 거냐고!”
그는 오긴의 검술 변화와 흐름이 모조리 보였다고 말하며 턱을 떨었다.
“저도요. 저도 상대의 검이 전부 보였어요!”
도리안은 아직도 믿기 힘든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처음에 말했잖아. 내 체계적인 훈련을 따라오면 이기게 해주겠다고.”
“그 얻어맞기만 했던 훈련이 정말 효과가 있다고?”
“체, 체계적? 내가 아는 체계는 대체….”
“어….”
버렌과 도리안만이 아니라, 다른 검사들도 반쯤 풀린 눈으로 라온을 괴물처럼 쳐다보았다.
“그만 놀라고 다음 시합이나 준비해.”
라온은 넋이 나간 광풍단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련장을 가리켰다.
“아직 33승 남았으니까. 가서 승점을 따와.”
단 하나도 빠짐없이.
* * *
뻐어어억!
북을 치는 듯한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금첨단 3조 조장이 바닥을 뒹굴었다.
대련장 위에 있던 루난은 잠에서 깬 듯한 맹한 눈동자로 기절한 상대를 바라보다가 광풍단 쪽으로 돌아갔다.
이걸로 33승 0패. 광풍단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대련 형식의 결투라서 망정이지, 평범한 대결이었다면 이미 상황이 끝났을 것이다.
“대체 뭐야….”
가론이 점수판을 보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33대0. 그것도 자신들이 0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게 뭐냐고! 너희 짰지! 짜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어!”
그는 악을 내지르며 사회자와 심판의 멱살을 쥐었다.
“저 새끼들이랑 붙어먹고 이 지랄을 하는 거잖아!”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결과만 보고….”
“닥쳐! 이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네 눈깔은 옹이구멍… 헉!”
가론이 심판과 사회자를 죽일 듯 살기를 뿜어낼 때 단상 위에서 어마어마한 기파가 터져 나왔다.
쿠구구구!
이 연무장. 아니, 지그하르트 전체를 압박하는 듯한 기세를 퍼뜨린 건 당연히 글렌 지그하르트였다.
쿠구구구구!
지루한 듯 눈을 감고 있던 글렌이 인상을 찌푸리며 가론을 내려보았다.
“무얼 하는 것이냐.”
“하, 할아버지! 이건 말이 안 되는….”
“지금 이곳은 사적인 자리가 아니다. 호칭을 똑바로 하도록.”
그는 가론의 부름을 마다하고 더 차가운 눈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오늘 대결에 부정은 없었다. 부족한 건 사회자의 눈이 아니라, 너희의 실력이다.”
글렌이 사회자를 보며 계속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 예! 다, 다음 검사는 대련장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사회자는 정신을 다잡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단주님.”
이제 유일하게 남은 테크리가 가론에게 다가갔다.
“저희라도 이겨야 합니다. 저희 둘이 라온과 리메르를 이긴다면 금첨단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음….”
가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단원들은 교체하면 그만이다. 자신과 테크리가 이기기만 한다면 새로운 금첨단을 만들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거다.
가론은 웃기게도 그동안 무시하고, 조롱하고, 협박까지 했던 테크리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테크리가 긴 장검을 말아쥐고 연무장 위로 올라갔다.
“당신과 또 붙을 줄은 몰랐는데.”
라온은 테크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겁을 먹고 빠질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이 자리까지 나온 걸 보면 정신력이 강한 무인이었다.
“건방진 놈! 나를 걸고 내기를 해? 그것도 일격에 쓰러뜨리겠다는 내기를?”
테크리의 눈동자가 귀기 어린 듯 번들거렸다.
“내가 네놈에게 허무하게 당한 건 인정하지만, 검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 말대로 주디엘의 자료에도 테크리는 장검을 기가 막히게 쓰는 검사라고 적혀 있었다.
“네놈이 다시는 검을 잡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마!”
“글쎄. 과연 누가 못 잡을까.”
라온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제천검을 뽑았다.
“대결 시작!”
사회자가 손을 올리고 빠지자마자, 테크리가 달려든다. 긴 장검을 단검처럼 경쾌하게 다루며 머리와 목, 손목을 동시에 노려왔다.
치이이잉!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검술, 힘과 속도, 변화가 모두 어우러진 상급 무학이었다.
하지만.
‘다 보여.’
3달간 수련생들이 익히고 있는 무학과 백향검을 잘게 뜯어서 소화 시킨 자신에게 테크리의 검은 아이들의 칼싸움처럼 너무도 단순하게 보였다.
속도, 흐름, 호흡, 궤적 모든 것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확실히 알았다.
강해진 건 광풍단만이 아니다.
매일매일 그들을 패며. 아니, 그들의 약점을 공략하고,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힘쓰는 동안 자신의 무력도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흐아아아압!”
테크리가 보법을 밟아 다가온 뒤 장검을 내리쳤다. 긴 칼날에 어린 오러가 덩굴처럼 꼬이며 라온의 전신을 휘감으려 들었다.
‘빈틈 투성이로군.’
테크리의 비장의 검술 중 하나인지 확실히 강맹한 화려한 변화와 힘을 갖춘 초식이지만 그 흐름과 호흡이 모두 느껴지는 라온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치이이이잉!
라온은 제천검을 들어 테크리가 펼친 검술의 빈틈을 찔렀다.
콰아아앙!
만화공의 오러가 깃든 칼날이 막대한 불꽃을 폭발시키며 테크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끄윽….”
테크리는 떨리는 목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단 일격. 라온은 자신했던 대로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테크리를 쓰러뜨렸다.
“이 무슨….”
가론은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뜬 채 입술을 떨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광경에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작은 내기는 제 승리로 끝났습니다.”
“너….”
“올라오시죠.”
라온의 붉은 눈이 열화처럼 타오른다. 더할 나위 없이 오만한 표정으로 가론을 굽어보았다.
“계급장 떼고 붙어봅시다.”
이 자리에서 새로운 신화를 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