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98)
제198화
“으음….”
천검대주 셰릴은 글렌의 옆에 서서 가는 신음을 흘렸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게 정말 현실인지 의심스럽군요.”
대련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전승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지금까지 30승 0패. 금첨단이 아니라, 광풍단의 승점이다. 광풍단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30번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그것도 전부 압승이었어.’
한 단계 이상의 실력 차이가 나는 것처럼 광풍단은 금첨단을 압도했다. 대련이 일격에 끝나는 경우도 흔했고, 억눌린 분노를 푸는 것처럼 금첨단을 두들겨 패는 경우도 많았다.
‘수준 차이는 크지 않은데….’
광풍단은 금첨단의 무학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적의 공격은 차단하고, 역으로 빈틈만을 노리는 실전의 무학. 3달 동안 무슨 짓을 했기에 저런 능력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
“계속 대련만 했다더구나.”
글렌이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떼며 말을 이었다.
“3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급소와 빈틈만을 노리는 대련을 했다고 한다.”
“급소와 빈틈만을 노리는 대련….”
“익숙해질만 하면 다른 약점과 빈틈을 노려서 광풍단 아이들은 낮에는 얻어맞고, 밤에는 살기 위해 무학을 익혔다고 하더군.”
“하….”
셰릴이 살짝 턱을 떨었다.
“그건 거의 지옥이지 않습니까.”
약점을 막으면 또 새로운 약점을 찌르고 그걸 막으면 또 새로운 빈틈을 공략하다니, 평범한 인간이 생각할 법한 훈련이 아니다.
“그래. 일반적인 사람은 시키기도, 받기도 힘들지. 다만 라온과 광풍단은 그걸 해냈고, 지금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글렌이 막 시작하는 31번째 대결을 가리켰다.
“으아아아아! 뒈져!”
크레인이라는 이름의 장발 검사가 금첨단 검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너희들 때문에 3달 동안 지옥에 있었다고!”
그는 금첨단 검사가 일으키는 검기의 파도를 가볍게 튕겨내고, 미친 듯이 검을 내리쳤다.
“계획을 짜도 깨부수고! 또 깨부수고! 또 또 깨부수는 악마 때문에 진짜 죽을 뻔했단 말이다!”
“끄윽, 나, 나는 아무것도 안 했….”
“몰라! 그냥 뒈져!”
크레인이 악을 내지르며 검을 내리쳤다. 그의 칼날은 금첨단 검사의 약점을 제대로 찔렀다.
“꺼헉!”
“어딜 기절해! 일어나! 덤비라고! 급소만 하루종일 맞는 아픔을 느껴봐!”
금첨단 검사는 일격에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지만, 크레인은 분이 안 풀리는 듯 쓰러진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너희들도 악마에게 시달려야 해! 나만 당할 순 없어!””
“그, 그만!”
“이미 끝났네!”
사회자와 심판이 팔과 다리를 잡고 나서야 크레인을 말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다. 광풍단 검사들은 자존감이 바닥을 친 것처럼 얼 타다가 본인들의 실력이 올라갔다는 것을 깨닫고, 쌓인 울분을 풀듯 3명당 1명꼴로 저런 발작을 일으켰다.
“으음….”
셰릴은 그다음으로 올라오는 사람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마르타 지그하르트. 본래부터 성격이 난폭한 아이라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 가질 않았다.
“시합 시작.”
사회자가 시합 시작이라고 외치자마자 마르타가 땅을 박찼다.
“씨발! 씨이이발!”
그녀는 인간의 언어를 잊은 듯 욕만 내뱉으며 금첨단 조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인간을 벗어난 건 언어 능력만이 아닌 모양이다. 막대한 힘으로 금첨단 조장의 검격을 완전히 깨부숴 버렸다.
쿠구구구!
마르타는 터져나가는 대련장의 돌을 짓밟으며 나아가 금첨단 조장의 급소 12곳을 동시에 가격했다.
“끄허허헉!”
금첨단 조장은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허공에서 얻어맞는 묘기를 선보인 뒤에 땅에 머리를 박았다.
“씨발!”
마르타는 끝까지 욕만 하고서 대련장을 내려갔다. 숫제 짐승 같은 모양새였다.
다행히 그다음 차례인 루난은 빠르고 조용하게 조장을 기절시켰지만, 가장 통증이 심한 얼굴의 급소를 쳤다. 저 아이도 나름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았다.
34번째로 나온 라온은 금첨단 부단주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낸 뒤 일격에 기절시켜버렸다. 단원부터 부단주까지 모두가 상대를 일방적으로 압도하다니, 이런 단체 대결은 처음이었다.
“가주님.”
“음?”
글렌은 라온이 저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 기꺼운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고 있었다.
“광풍단 아이들이 강해진 건 알겠는데….”
셰릴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광풍단원들의 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게 정말 맞는 방향일까요? 꼭 악마에게 사육된 짐승을 보는 듯합니다만.”
“커흠….”
글렌은 헛기침을 하고서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 * *
쿠구구구!
가론의 어깨 위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정말 죽고 싶나?”
그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파를 뿜어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 모가지를 따줘야 속이 시원하겠어?”
“누구 모가지가 따일지는 결과를 봐야 아는 법이지.”
라온이 차게 웃으며 제천검을 휘돌렸다.
“처음 이 대결을 시작할 때 광풍단이 이길 거라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까 너와 나의 대련도 결과는 모르는 일이다?”
“아니, 내가 이기겠지.”
“하! 참아주니까. 이제 말도 놓네?”
“먼저 시비를 걸어온 놈을 좋게 대우해줄 필요는 없잖아?”
가론을 마주 보며 손을 저었다.
“거기다 네 단주 자리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 존대할 이유가 없지.”
“뭐?”
“우리가 이겼을 때의 내기 보상을 아직 안 정했다는 걸 잊었나 보네.”
라온이 사회자 뒤에 있는 34:0이라는 숫자를 가리켰다.
“이미 결과는 나왔어. 너와의 대련이 끝나면 난 금첨단을 해체시킬 거다.”
“그, 금첨단을 해체한다고?”
가론이 손을 바르르 떨었다. 해체는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해체가 그리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가주님이 보고 계시고, 공증인은 천검대주다. 얼마든지 가능하지.”
“아….”
“너희 진무전주가 나서지 않는다면 못 막아. 그리고 진무전주는 나설 생각이 없는 듯한데.”
레이든 때 당했던 게 있기 때문인지 진무전주 발데르는 팔짱을 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네놈이….”
가론이 뿜어내는 기운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해졌다. 숨이 막힐 정도의 압력이 전신을 짓눌렀다.
고오오오!
라온은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가론의 기파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게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야. 여기서 날 죽이지 못한다면 금첨단은 해체다.”
“이 와중에 도발이라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군.”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 짓 못 해먹지.”
광풍단원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들은 너희 때문에 3달간 미쳐 있었다. 이제 그 마지막 대가를 받아낼 때야.”
“아닌데?”
“우리가 미친 건 너 때문에….”
“악마….”
뒤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는 무시했다.
“어쨌든 방심 같은 소리 나오지 않도록 처음부터 전력으로 덤벼.”
라온이 제천검을 쥔 손을 까딱였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방심이니까.”
가론이 이를 갈며 앞에 섰다.
“자, 잠깐만요! 이번 대련은 단주 대결입니다!”
사회자는 강대한 기파 사이에 끼어들며 고개를 흔들었다.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아, 내가 부상이라 라온이 대신하는 거야.”
옆에서 딸기를 집어먹던 리메르가 방긋 웃었다.
“뭐, 그런….”
사회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딜 봐도 멀쩡한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다.
“두 사람이 동의했으니, 그 멍청이는 무시하고 그대로 진행해라.”
글렌은 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사회자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손을 내렸다.
“그럼 두 분 준비해주십시오.”
“전 끝났습니다.”
“빨리 시작해.”
라온과 가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 시합 시작합니다!”
심판이 손을 올리고 물러선 순간 가론의 검 위로 푸른 불꽃이 치솟았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장대한 기운. 마스터의 상징 강기였다.
후우우우웅!
방심하지 않겠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론은 단숨에 공간을 파고 들어와 강기에 휘감긴 검을 내질렀다.
찌지지직!
지독한 살기가 깃든 강기를 마주하고도 라온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라온은 강기가 목젖에 닳으려는 찰나 왼발을 뻗었다. 섬광처럼 뻗어 나가는 첫 번째 걸음. 한층 발전한 태화일보가 달빛처럼 이지러지며 강기를 흘려냈다.
투웅!
이어지는 이보. 극쾌의 걸음이 질풍처럼 쏘아지며 가론의 뒤편에 이르렀다.
치이이잉!
라온은 제천검으로 가론의 목을 겨누었고, 뒤를 보고 있던 가론은 반응하지 못한 채 몸을 떨었다.
“어, 어떻게….”
“벌써 끝났네.”
“바, 방심했다! 아직 나는 제 실력을….”
“방심이라는 단어를 가장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끄윽….”
본인이 한 말이 있에 가론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동생과 다른 척하지만 다를 게 없네.”
라온이 피식 웃으며 제천검을 쥔 주먹으로 가론의 얼굴을 후려쳤다.
뻐어어억!
북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가론이 튕겨 나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퉷….”
가론은 찌그러진 뺨을 부여잡고, 이빨 두 개를 뱉어냈다.
“꽤 단단한데?”
전력으로 쳤는데 이빨 두 개밖에 나가지 않는 걸 보니, 마스터가 되면 맷집도 좋아지나 보다.
“왜 끝을 내지 않은 거지?”
“네 동생에게도 기회를 줬거든. 네게도 한 번은 줘야 공평하겠지.”
“후우, 넌 조금 전에 끝내지 않은 걸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아니, 후회하지 못하겠지. 여기서 뒈질 테니까!”
가론이 입술을 씹으며 검을 세웠다. 조금 전처럼 조급함을 버리고 자세를 낮춘다. 한 수 아래의 상대가 아니라, 동급을 보는 듯한 긴장감이 눈에 어렸다.
“후우….”
라온이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그래. 이거지.’
가론이 풍겨내는 살기에 피부가 떨린다. 어설프게 싸우는 마스터나 방심한 마스터가 아니라, 제힘을 다하는 마스터와 싸워서 이겨야 의미가 있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강함만을 추구하는 그 정신.
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네놈에겐 마의 이름이….
‘다 끝나고 맛난 거 먹을 테니까. 조용.’
-…….
라온은 주절거리는 라스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 제천검을 앞으로 세웠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만화공과 불의 고리를 극성으로 운용하여 육체를 활성화했다. 제천검의 칼날 위로 시뻘건 불꽃이 타오른다. 검사지만 검강과도 엇비슷한 정도의 선명함이었다.
‘놈의 검술을 파훼해야 해.’
가론의 검술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변검과 공간을 집어삼키는 중검이 어우러진 상승의 무학이다. 변화를 꺾고, 무거움을 일그러뜨려야 놈에게 닿을 수 있다.
터어엉!
거친 발소리와 함께 시야에서 가론이 사라졌다. 살을 찢을 듯한 기파가 우측에서 느껴졌다. 상체를 뒤로 젖혔다.
후우우웅!
강기가 이마 바로 위를 스치며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녹아내린다.
쩌어엉!
기습은 끝나지 않았다. 하늘 위에서 찍어 내리는 검격을 광아검으로 쳐냈다.
콰아아아앙!
검과 검. 오러와 오러가 격돌하며 시뻘건 스파크가 연속으로 폭발했다.
‘음….’
라온이 손목의 흔들림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경지는 7사도와 호각.’
가론의 강기는 이전에 싸웠던 7사도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7사도와 달리 전력을 다하고 있었기에 위험도는 그 이상이다. 일검을 부딪쳤을 뿐이데, 호흡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버틸 수 있겠어.’
계속 부딪친다면 결국 내상을 입겠지만, 육체와 무학이 성장했기 때문에 7사도 때보다 훨씬 할만한 상황이었다.
“말했지. 넌 처음에 날 끝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라고.”
가론이 강기가 어린 검을 세우며 눈매를 좁혔다.
“이게 검강과 검사의 차이다. 네놈은 날 이길 수 없어.”
폭발하듯 부푼 허벅지로 바닥을 터트리며 돌진해왔다.
“이제 방심할 일은 없으니까!”
“상관없어.”
라온이 차게 웃으며 태화보를 밟았다. 공간을 찢을 듯 짓쳐 드는 가론의 강기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내며 그의 얼굴에 광아검을 후려쳤다.
“그런 네놈을 꺾어야 의미가 있으니까.”
원하는 건 익스퍼트로서 마스터를 꺾었다는 확실한 증거. 그게 이 대결을 하는 이유였다.
“이놈!”
가론이 내지른 검을 회수하여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쩌어어엉!
타이밍이 늦었기 때문일까. 강기와 부딪쳤음에도 충격이 덜했다.
‘그렇다는 건….’
이쪽의 페이스대로 움직인다면 강기에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놈이!”
가론이 단숨에 이쪽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검을 내리쳐왔다. 여섯 개로 늘어난 듯한 검이 강기의 비를 뿌렸다.
쿠구구구구!
막대한 중압에 어깨가 짓눌리고, 다리가 삐걱인다. 움직임을 억제하는 듯한 검압이었다.
‘우충검.’
가론이 익혔다는 우충검의 묘리가 분명했다.
터엉!
라온이 태화일보를 밟았다. 공간을 가로질러 가론의 뒤에 이르렀다. 그의 심장을 향해 만화공 회천을 뿌렸다.
화아아아!
톱날처럼 회전하는 화염의 칼날이 쏘아진 순간 가론의 검이 번쩍였다. 강기로 이루어진 막에 회천이 녹아내린다. 추잡한 성격과 달리 무학만큼은 제대로 쌓았다.
“쥐새끼처럼 빠른 건 인정한다만 네 검은 내게 통하지 않아!”
“그걸 뚫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거다.”
이쪽이 가론보다 뛰어난 건 보법. 태화보를 최대한 이용해서 검을 박아넣어야 한다.
쿠웅!
태화이보를 밟았다. 한순간 시야가 좁아졌다가 펼쳐지며 가론의 눈이 보였다.
“무슨!”
놀라는 놈의 어깨를 향해 광아검을 찔렀다. 제천검이 두꺼운 기운을 덮고 있는 가론의 방어를 뚫고, 그의 어깨를 베었다.
“크윽!”
가론이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피륙의 상처일 뿐이지만 당황한 듯 검을 세우며 뒤로 물러섰다.
라온의 두 눈이 번쩍였다. 나아가지 않고, 물러섰다면 공세를 이어나갈 기회였다. 헛점이 생겨난 가론의 허리를 향해 광아검을 연달아 터트렸다.
쾅! 콰앙! 콰아앙!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폭격이 터진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폭발한 경파에 실린 강기의 조각들에 살과 제복이 뜯겨나갔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익!”
“후욱!”
가론은 이번에도 물러났고, 라온은 이번에도 나아갔다.
찌지지직!
강기에도 밀려나지 않는 라온의 광기 어린 눈빛에 가론의 눈동자가 파도를 맞은 듯 흔들렸다.
“어, 어떻게 검사 따위로!”
“강기라고 무적은 아니야.”
라온이 옅게 웃었다. 강기는 분명 강력한 무학이지만 무적은 아니다. 연성검술을 연속으로 그어 가론의 공세를 흘리고, 광아검을 박아넣었다.
‘물론 충격이 없는 건 아니지만.’
벌써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인간의 격을 벗어난 육체와 기술로도 강기의 위력을 완벽하게 줄이는 건 무리였다.
“후우욱!”
힘들어도 티를 내서는 안 된다. 혀를 씹으며 가론을 밀어붙였다.
“끄윽!”
가론의 흔들림이 더 격해진다. 본인이 밀리는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넌 너보다 강한 사람과 싸워본 적 없지?”
“뭐?”
“냄새가 난다.”
라온의 눈동자가 만화공의 색과 같은 빛으로 번쩍였다.
“약자만 상대해 온 겁쟁이의 냄새가.”
“닥쳐!”
가론이 악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강기가 빗물처럼 번져가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모조리 차단했다. 막대한 기운이 사위에서 몸을 짓눌러왔다.
으득!
라온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손에 쥔 제천검이 우아하게 회전하며 장대한 선을 그렸다.
만화공 십화.
화령.
은빛 궤적에서 솟아난 꽃봉오리들이 개화하며 대련장을 붉은 꽃잎으로 물들였다.
콰아아아아!
화염의 꽃잎과 공간을 먹어 치우던 강기가 맞부딪치며 거대한 화염의 폭풍을 일으켰다.
찌지지직!
라온은 진탕되는 속을 부여잡고, 만화공을 극성으로 운용했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이 강기를 뒤덮으며 나아간다. 힘은 밀리지만 기세는 밀리지 않았다.
화아아아!
가론을 밀어붙이며 손목을 틀었다. 극쾌를 담은 서리연의 검세가 가론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얕지만 가볍게 볼 수 없는 검흔. 그 갈라진 상처 위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가론은 흘러내리는 핏물을 손으로 움켜쥐며 이를 갈았다. 놈의 눈동자가 귀신처럼 번들거렸다.
“흔적도 없이 찢어 죽여주마!”
가론이 눈에 보일 정도의 오러를 끌어 올리며 발을 굴렀다. 터져나가는 대지의 조각들 사이로 가론의 강기가 휘몰아쳤다.
“죽어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어 검을 내리친다. 휘어지는 강기의 칼날이 순간 열 개로 늘어나고, 사지에 강대한 부하가 걸린다.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압력. 우충검의 진짜 힘인 것 같았다.
‘맞붙으면 안 돼.’
라온이 태화일보와 이보를 연속으로 밟아 가론의 공간에서 멀어졌다. 지금 수없이 떨어지는 검격을 흘리는 건 무리다. 피하면서 기회를 엿봐야 한다.
“어딜!”
하지만 가론 역시 마스터에 오른 무인. 극한의 반응으로 쫓아와 검을 내리쳐왔다.
후우웅!
흔들리는 칼날이 가슴 부위를 가르고 지나갔다. 제복이 갈라지며 가슴에서 핏물이 치솟았다.
찌지직!
벼락처럼 솟구치는 강기의 칼날이 목을 노려왔다.
쩌어어엉!
라온은 땅을 밀어내듯 보법을 밟고 뒤로 물러섰다. 가론의 칼이 땅을 친 순간 다시 앞으로 내달려 광아검을 후려쳤다.
쩡! 쩌어엉! 쩌정!
라온은 가론의 강기를 검술 묘리와 근력, 보법으로 상쇄하며 끊임없이 불의 고리를 휘돌렸다.
‘이길 방법은 이것뿐이야.’
전력을 다한 가론의 강기를 뚫고 상처를 입히는 건 무리다. 저 강기의 막을 뚫고 들어가서 염룡결이나, 서리연을 박아넣어야 승산이 있다.
그러니 저 최상급 검술인 우충검의 흐름과 호흡을 파악해야 했다.
후우웅!
라온은 태화보를 극성으로 밟으며 몰아치는 검격들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냈다.
한 번의 실수 혹은 한 번의 판단 착오에 팔다리가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돌진한다.
강기가 뺨을 스쳐서 피가 터지고, 제복이 조각나 타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발을 구른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어린 건 우충검의 궤적과 호흡뿐이었다.
‘우측.’
우측에서 떨어진 가론의 검이 어깨를 살짝 스쳤다.
‘이번에는 아래.’
아래에서 불꽃처럼 솟구친 강기가 정강이를 갈랐다.
‘얕지만 보여.’
우충검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백향검과 광풍단원들의 수많은 무학들이 뇌리와 심장에 쌓였기 때문일까. 가론이 이를 악물고 쏟아내는 검술의 호흡과 흐름이 천천히 눈에 익어가기 시작했다.
‘왼쪽.’
왼쪽 가슴을 노리고 수평으로 검격이 쏟아진다. 칼날은 세 개지만 진짜는 하나다.
쩌어어엉!
자세를 낮추고, 제천검을 모로 세워서 강기를 밀어냈다.
‘다시 왼쪽 하단.’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강맹한 기운이 왼쪽 허벅지를 찔러왔다.
터어엉!
발을 빼고 앞으로 나아갔다. 제천검에 어린 화염이 거칠게 회전하며 가론의 강기의 막을 밀어냈다.
‘익숙해지고 있어.’
가론의 검술이 눈에 익으며 근접 거리에서도 놈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울린다.’
심장의 고동에 반응하듯 머릿속에서 셀수 없이 많은 무학들이 풀려나온다. 그동안 보고, 느끼고, 파훼했던 초식과 구결들이 제멋대로 놀며 가론의 검을 낱낱이 분해했다.
후우웅!
머리를 찌르다가 심장을 노리는 칼날도, 열 개로 늘어나서 찌르는 강기도, 몸을 난도질하려는 듯한 초식도 하나의 상처도 없이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부족해.’
태화보의 신묘한 움직임으로 가론의 공격을 피하고는 있지만, 아직 모자르다는 느낌이 든다. 가슴이 회피함과 동시에 손을 뻗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 되는데 왜?’
아직 가론의 강기를 뚫을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불의 고리는 더 나아가라 말하고 있었다. 검을 지르라 외치고 있었다.
“뒈져!”
가론이 수직으로 검을 떨어뜨린다. 변화를 줄이고 무게를 담은 무시무시한 중압이 떨어져 내렸다.
‘어디 한 번….’
라온은 불의 고리를 믿고 태화육보를 밟았다. 가장 부드러운 걸음을 걸으며 연성검술을 펼쳤다.
쿠구구구구!
다리에서부터 올라선 굳건함과 손목의 유연함이 백색 칼날에 이어진다. 제천검의 비틈림이 맹렬한 빛을 뿜어내는 강기를 완벽하게 흘리고, 가론의 허리에 섬전 같은 반격을 가했다.
푸카아악!
가론은 신음을 흘리며 물러나 허리를 부여잡았다. 놈의 손을 뚫고 빨간 핏물이 쏟아졌다.
꿀꺽.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태화보?’
불의 고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태화보와 검술을 조화시켜서 흘리니 충격이 전과 비할 수 없이 줄어들었다.
“크아아아아!”
가론이 이를 악물었다. 검을 하늘로 세운 뒤에 가지고 있던 모든 기운을 폭발시켰다. 하늘까지 치솟은 강기의 칼날이 수십 개로 늘어나며 대련장을 뒤덮었다.
‘이게 대중우.’
우충검의 최종 절기. 강기로 온 공간을 휘감아 움직임을 억제시킨 뒤 적을 난도질하는 잔인한 초식이었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강기의 벽이 밀려온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투웅!
어떻게 막아야 할까. 고민할 때 불의 고리가 공명하는 심장이 말한다.
지금은 나아갈 때라고.
라온은 스스로가 쌓아온 무학을 믿고 제천검을 고쳐 잡았다.
고오오오오!
극한의 집중상태에서 허공에서 흩날리는 마나의 알갱이가 눈에 비쳤다.
그 안에 어린 건 3달 전 밤의 글렌이다.
[태화보는 나에게 맞게 만들었다. 너는 나의 태화보를 익히되, 너만의 태화보를 완성해보도록 해라.]
스쳐 지나가던 그 말이 뇌리에 벼락을 일으켰다.
‘나만의 태화보.’
이제 알겠어.
저 말은 새로운 태화보를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나의 검술에 맞는 태화보를 조화시켜 검술의 위력을 극대화 시키라는 뜻이었다.
콰아앙!
라온이 진각을 밟았다. 태화오보. 창칼처럼 날카로운 기세의 걸음을 걸으며 제천검을 뒤로 젖혔다.
쿠구구구!
단전에 남은 만화공의 기운을 모조리 폭발시켰다. 은백색 칼날 위로 태양의 광채가 어린 불꽃이 치솟았다.
만화공 십화.
염룡결.
화룡의 포효가 푸른 해일의 중심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