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31)
제231화
“우와아아악!”
리메르는 본인도 모르게 괴성을 질렀다.
“이겼어! 라온이 이겼다고!”
그는 라온의 앞에 쌓인 3,000개의 금화를 보며 꽉 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야이 자식들아! 우리 라온이! 내 제자가 해냈다고!”
리메르는 처음 만난 구경꾼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원을 그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라온! 라온! 라온!”
“라온! 라온! 라온!”
그가 계속 라온을 호명하자, 도박장에 있는 구경꾼들도 라온의 이름을 외쳤다.
“흐으으!”
리메르는 반쯤은 울고, 반쯤은 웃는 얼굴로 헛바람을 흘렸다.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발라버리다니!’
도괴에게 수없이 많은 도전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는데, 라온은 도괴의 술수를 모조리 파악한 뒤 역으로 그에게 사기를 쳐 버렸다. 그 대범함에 혀가 내둘러졌다.
“이거 잘하면….”
리메르가 입맛을 다셨다.
‘다시 부자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조금 전 카운터에서 라온과 도괴 중 누가 이길지를 걸고 판이 벌어졌는데, 숨기고 있던 돈과 도리안에게 빌린 금화를 모조리 라온의 승리에, 그것도 세 가지 내기를 전부 이긴다에 걸었다. 이대로만 흘러가면 다시 부자가 될 것이다.
“라온! 이겨라! 지그하르트 광풍단의 힘을 보여줘! 난 널 믿는다아아아!”
리메르는 목에서 피가 터질 정도로 라온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 * *
“음….”
라온은 거렁뱅이도 피해갈 꼴을 한 리메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광풍단의 힘은 몰라도, 광풍단의 초라함은 잘 보여주고 계시네요.’
지그하르트 무력 단체의 수장이 저런 거지꼴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걸 보면 난 사람은 난 사람이었다.
‘모양새를 보니 나한테 돈을 건 모양이네.’
응원하는 리메르의 눈동자에 욕망이 가득 차 있다. 어딘가에 숨겨둔 돈을 자신의 승리에 건 게 분명했다.
“내가 내뱉은 말에 그대로 당할 줄은 몰랐군.”
도괴가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린다. 도박꾼답게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지만,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카드 뭉치는 어느새 가루가 되어 있었다. 참기 힘들 정도로 속이 뒤집힌 게 분명했다.
라온은 흩날리는 카드 조각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눈에 거슬렸는데 알아서 구겨주는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손가락에 카드를 끼고 흔드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스스로 뭉갠 걸 보니 속이 시원해졌다.
-흥! 잘난 척 하지마라!
라스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전부 본왕이 저 오우거 같은 놈의 패를 알려주었기 때문이잖느냐!
‘당연히 알고 있지.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사줘야 잘 사줄까 고민하고 있었어.’
주목을 못 받아서 심통 난 듯한 라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저, 정말이냐? 그렇다면 본왕이 무언가 더 해줄 일은 없더냐? 말만 하거라!
라스는 얼마든지 주문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은 그런 라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낌없이 주는 라스야.
아이스크림 네 박스로 마왕을 부릴 수 있다니, 가격 대 성능비가 미치도록 뛰어나다. 대륙 전체를 뒤져도 이런 가성비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괜찮아.’
카드 대결은 끝난 듯싶으니까.
도괴는 바보가 아니다. 이쪽이 속임수를 쓴다는 걸 알아차렸으니, 더 이상 포커를 칠 일은 없다.
“내 말에 그대로 당하다니, 이런 굴욕은 처음이다.”
도괴가 즐겁다는 듯 씩 웃었다. 짜증이 가득 차올랐으면서도 표현은 극히 적다. 타고난 도박꾼다운 자세였다.
“카드는 이쯤하고 결정을 내리지.”
“결정?”
“그래. 내가 널 인정하는 결정.”
“이미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괴의 테이블에 남은 금화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당연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아니지.”
도괴가 손뼉을 치자, 구경꾼들이 갈라지고 딜러들이 나와서 테이블 위에 금화를 쏟아부었다. 자신이 딴 금화 3,000개와 엇비슷한 양이었다.
“금화 3,000개다. 이걸로 너와 나의 도박을 마무리 짓도록 하지.”
“카드는 아니겠죠?”
“물론. 무슨 수를 쓰는지 모르는 사기꾼의 덫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사기꾼의 덫이 아니라, 정의죠.”
“끄윽….”
본인이 한 말이 있기에 도괴의 표정은 아주 잠시 썩은 음식을 씹은 듯 구겨졌다.
“방법은 간단하다.”
도괴가 앞에 있던 회색 컵을 들었다. 안에 담겨 있던 술을 바닥에 부어버리고 테이블 위에 내리쳤다.
“이 컵 안에 주사위 3개를 넣겠다.”
그가 손을 뻗자 우측에 있던 딜러가 하얀 주사위 세 개를 컵 안에 담았다.
트드드득!
도괴는 바텐더처럼 컵을 흔든 뒤에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가 컵을 들어 올리자 각기 다른 주사위 눈 3, 5, 6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컵 안에 든 주사위의 숫자를 맞추는 주사위 게임. 간단하면서 직관적이라 난 이 도박을 가장 좋아한다.”
이 주사위 도박은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도박으로 카멜룬 지하 도박장에서 했던 게임 중 하나였다.
“답을 맞히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보자고.”
도괴는 끝까지 가보자며 금화 3000개를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넣었다.
‘주사위라.’
주사위가 3개니, 나오는 숫자는 3에서부터 18이다. 단번에 맞추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두 번째 기회는 없다. 분명 첫 번째에 끝나게 될 것이다.
‘라스.’
-없다.
라스가 컵과 주사위를 쭉 살펴본 뒤 팔목으로 돌아왔다.
-컵과 주사위 모두 평범한 것들이니라.
녀석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술로 승부를 보겠다는 거로군.’
사기를 칠 수도 없고, 이쪽의 방법을 알지도 못하니, 본인의 기술로 끝을 보겠다는 것 같았다.
“이야아아!”
“끝은 역시 주사위지!”
“간단하면서도 피 말리게 하잖아.”
“기대되네. 설화검협의 도박 실력이 주사위에도 통할지.”
“저걸 받을까?”
“받겠지. 안 받으면 삼약이 안 되잖아.”
사람들은 당연히 도박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며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냈다.
“좋습니다. 그럼 저도 제안을 하나 하죠.”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금화의 산 너머에 있는 도괴를 보았다.
“제안?”
“게임은 그쪽이 골랐으니, 먼저 숫자를 부르고, 컵을 열 권리는 제게 주십시오. 가능하겠습니까?”
이 두 가지 제안은 상대의 술수를 막을 수 있는 몇 없는 방법이었다.
“오! 좋네”
“이것도 받아야지.”
“그래. 설화검협이 주사위 게임에 동의했으니까. 저 정도 요구는 당연해.”
“그러네. 주사위를 흔드는 건 도괴 님이잖아.”
구경꾼들은 이번에는 라온의 편을 들며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다만 네가 가진 아티팩트를 전부 빼놓고 하도록.”
“그러죠.”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끼고 있던 장비와 아티팩트를 모두 도리안에게 넘겼다. 이번에 얻은 금화 3,000개를 앞으로 밀어 넣자, 테이블 전체가 금색 물결로 가득 찼다. 이곳저곳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섞도록 하지.”
도괴가 테이블 위에 주사위 세 개를 따로 떨어뜨려 놓은 뒤 컵을 흔들며 하나씩 안으로 주워 삼켰다.
주사위의 모서리가 컵에 부딪히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합주처럼 웅장하게 울리다가 도괴가 손을 놓은 순간 뚝 멈췄다.
“네 말대로 먼저 말해라.”
그는 이제 네 차례라는 듯 컵에서 아예 손을 뗐다.
“알겠습니다.”
라온은 옅게 숨을 내쉬고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제 다시 본왕의 차례로구나.
라스가 맡겨만 달라는 듯 매처럼 비상할 자세를 취했다.
‘아니, 이번엔 내 차례야.’
-뭐? 네놈이 어떻게 저걸 보겠다는 것이냐!
녀석은 이전처럼 소리의 차이를 들을 시간도 없지 않았냐고 물었다.
‘대신에 너한테 얻은 게 있잖아.’
-얻어? 무슨 소리를…아!
라스가 입을 떡 벌렸다.
-서, 설마….
‘그래. 분노의 마안.’
라온이 눈으로 욕을 하는 라스를 보며 영혼 깊숙하게 가라앉은 분노를 끌어 올렸다.
‘나도 투시 정도는 가능하거든.’
포커는 긴 시간 동안 진행하기에 분노의 마안을 유지할 수 없지만, 이 주사위 게임은 한 판으로 끝나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저 컵 안의 주사위는 평범한 상태가 아닐 거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음?”
도괴가 이상함을 느낀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정확한 느낌을 잡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역시 못 느끼는군.’
그는 그저 화를 내는 듯한 감정만 느끼는 듯했다. 안도감을 느끼며 분노를 이끌어 눈에 담았다. 안구가 터질듯한 압박감을 참으며 컵에 시선을 집중했다.
고오오오.
쇠로 만든 컵 내부가 활짝 열리고 그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후.’
라온이 헛바람을 흘렸다.
‘꽤 머리를 썼군.’
컵 안의 주사위 세 개는 탑처럼 쌓인 상태였고, 가장 위에 있는 주사위의 눈인 1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탑으로 쌓인 주사위의 위치는 굉장히 불안정했다. 가장 위의 주사위가 컵의 벽면에 닿아 있어서 똑바로 연다면 떨어져 탑이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내가 주사위의 눈을 파악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2중으로 함정을 팠군.’
주사위로 탑을 쌓아서 나올 수 없는 1이라는 숫자를 만든 게 첫 번째 함정이었고, 혹시 1을 예측하더라도 컵을 열 때 주사위를 무너뜨려 새로운 숫자를 만드는 게 두 번째 함정이었다.
도괴는 주사위가 떨어진다면 그 떨어진 수치도 알 수 있도록 주사위의 각도를 조절했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손놀림이었다.
‘물론 의미는 없지만.’
라온이 옅게 웃었다. 분노의 마안을 통해 그의 술수를 모두 파악했기에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덫이었다. 저 안을 직접 살피길 잘했다.
“아직도 시간을 줘야 하나?”
“저는 1로 하겠습니다.”
라온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1을 불렀다.
“1? 왜 1을 불러? 최소가 3이잖아.”
“그러게? 갑자기 왜 미친 짓을 하지?”
“주사위가 탑이 되면 1이 될 수 있잖아!”
“그게 돼? 불가능한 일이잖아!”
“도괴의 주사위 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저 인간이 보통 도박꾼이냐?”
구경꾼들은 어떻게 될지를 궁금해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흐음.”
도괴가 컵을 보며 턱을 긁적인다. 답을 말했음에도 표정 변화가 없다니 역시나 강심장이다. 그는 눈을 내리감았다가 뜬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12로 하겠네.”
그는 계산을 끝낸 뒤에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어떤 술수도 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럼 열겠습니다.”
라온이 컵 위로 손을 가져갔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 도박장의 모든 시선이 자신의 손을 따라간다는 게 느껴졌다.
티익.
컵을 살짝 왼쪽으로 기울이며 들어 올렸다. 우측에 닿아 있던 주사위를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으윽!”
도괴의 당황한 신음 소리와 함께 쇠로 만든 동굴이 열리고 주사위의 눈이 드러난다. 세 개의 주사위가 사각의 탑이 되어 하늘을 향해 단 하나의 눈을 깜박였다.
“우와아아아아아!”
“1이다! 진짜 1을 맞췄어!”
“미쳤다! 미쳤어!”
“이게 도박이지!”
“크으으! 1로 금화 6,000개를 따가는구나!”
“도괴가 여기서 모은 돈이 모조리 빨렸어!”
구경꾼들은 본인이 이긴 듯 환호를 터트렸다. 약자인 라온이 도괴라는 도박의 절대자를 꺾은 것에 열광하는 것이다.
타악.
라온이 슬쩍 주사위를 밀어 평범하게 컵을 열었다면 나왔을 숫자를 만들었다. 첫 번째 주사위와 두 번째 주사위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12라는 숫자를 만들었다. 역시 도괴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표정 좋군.’
번쩍이는 금화와 반대로 도괴의 얼굴은 똥 씹은 듯 구겨져 있었다. 두 가지 술수를 모두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후우….”
도괴의 얼굴이 점차 붉어진다. 도박이 끝났으니, 이젠 참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알았느냐.”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왜 이 도박을 제안했을지. 무엇을 노리고 있을지.”
라온은 테이블에 가득 찬 금화를 손으로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제게 굴욕을 당하셨으니, 그걸 되돌려주고 싶을 것이고, 혹시나 하는 대비도 하셨을 테니, 주사위의 눈은 평범하게 생각하기 힘든 1,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로 주사위를 컵 벽에 닿게 만들거라 생각했습니다.”
전부 분노의 마안 덕분에 알았지만 끼워 맞추는 건 쉬웠다. 도괴의 안색이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와아아….”
“저기서 수 싸움이 일어난 거야?”
“둘 다 미친 게 분명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세상에나.”
라온의 설명을 들은 도박꾼들의 눈에서 혼이 반쯤 빠져나갔다.
“그, 그걸 예상했다고?”
도괴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예. 당신의 도박 실력을 믿은 거죠.”
라온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네놈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는 거로군.”
“운이 좋았습니다.”
“크아아아아아아!”
도괴가 등을 뒤로 젖힌 채 괴성을 질렀다. 큰 체구에서 터져 나온 포효에 도박장 전체가 뒤흔들렸다.
“후우….”
깊은숨을 뱉으며 고개를 내린 도괴의 얼굴은 시원해 보였다.
“내 돈과 멘탈을 이 정도로 털어버린 건 네놈이 처음이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큰 손을 펼쳐 테이블 위에 쌓인 금화의 바다를 가리켰다.
“가져가라. 네겐 자격이 있어.”
도괴는 인정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금화의 산을 훑어내렸다.
‘금화 6000개라….’
사치를 부려도 평생 다 쓰기 힘든 금액이다. 앞으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일단 별관부터 확장해야겠네.’
라온은 처음으로 돈을 쓸 곳을 정하고서 옆을 보았다.
“도리안.”
“예? 아, 예!”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도리안이 다급하게 다가와 테이블 위의 금화를 배 주머니에 쏟아부었다.
“나, 나도 도와줄게!”
리메르가 냉큼 다가와 금화를 들었다. 반은 도리안의 주머니에, 반은 그의 바지로 들어갔지만, 나중에 회수하면 되니 일단 참았다.
“삼약의 첫 번째 대결은 설화검협의 승리네.”
“도괴 님이 도박에 지는 거 정말 오랜만에 봐. 10년도 더 된 거 같은데.”
“오늘 진짜 삼약이 깨지는 거 아니야?”
“절대 아니지. 술이 남았잖아. 난 저 인간이 취한 걸 본 적이 없어.”
“도박 때도 그 이야기를 했잖아. 누가 이길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지.”
구경꾼들은 두 번째 대결을 기대하며 입맛을 다셨다.
콰아앙!
생각하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도괴가 텅 비어버린 테이블을 걷어찼다. 큼지막한 테이블이 천장을 부수고 날아갔다. 시원하다고 했지만, 단단히 열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두 번째 대결을 시작하지. 백룡을 가져와라!”
도괴의 손짓에 도박장 안쪽에서 원형 테이블과 거대한 항아리가 나왔다. 항아리에는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화이트 드래곤이라는 이름의 술이다.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 날 정도로 시원하지.”
“음….”
라온이 항아리 속에서 찰랑거리는 투명한 술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지독한 걸 가져왔군.’
바다는 어두울수록 깊고, 술은 맑을수록 독하다는 말이 있듯 투명한 화이트 드래곤은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지독한 술이다.
술이 아니라 독이라고 불리는 저걸 가져온 걸 보니 더럽게 지기 싫은 듯싶다.
“오러를 사용한다든가 아티팩트로 취기를 가시게 하면 패배다.”
“알고 있습니다.”
“대답 하나는 마음에 든다니까.”
도괴는 큼지막한 바가지로 항아리에서 술을 가득 펐다.
“안주는 곧 나올 거다. 첫 잔을 시작하지!”
그는 거리낌 없이 바가지에 든 화이트 드래곤을 그대로 입에 가져다 부었다.
“크아아아!”
저 독한 걸 그대로 삼키고서 이를 드러내고 웃는 걸 보니 소름이 돋아올랐다.
“후….”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불의 고리를 휘돌렸다. 심장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바가지로 술을 퍼서 천천히 삼켰다.
“크으….”
입안과 목구멍으로 불덩이가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다. 맛은 전혀 없고 오직 고통과 주향만이 가득했다.
단번에 너무 강한 술이 들어와 머리가 아찔했지만, 불의 고리가 공명하며 순식간에 주독을 녹여버렸다.
‘예상대로야.’
이러면 충분히 견디지.
불의 고리는 술기운을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목과 입의 통증마저 가라앉혔다. 불의 고리 성취를 올리는 수련을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퍼억.
라온은 먼저 두 번째 바가지를 푼 뒤에 마주 앉은 도괴를 보았다. 이렇게 멀쩡할 줄은 몰랐던지 그의 눈동자가 항아리에 담긴 술처럼 크게 출렁였다.
“저, 정말 괜찮은 거냐?”
“나쁘지 않네요.”
바가지 안에 든 화이트 드래곤을 모조리 마신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도괴 님의 차례입니다.”
라온은 씩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크으으….”
도괴가 인상을 찡그리고서 바가지를 들었다.
“좋다! 오늘 너와 나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이 자리는 끝나지 않는다!”
그는 그 말을 뱉으며 바가지에 든 술을 입에 들이부었다.
라온은 부르르 떨리는 도괴의 목울대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쓰러질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어.’
취기가 아예 없는 자신과 달리 도괴에겐 조금씩 취기와 고통이 쌓인다. 처음부터 끝이 보이는 싸움이었다.
다만 쓰러질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끄에에에엑! 맛없어! 독해! 아프니느라!
라스가 목을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이딴 걸 왜 처먹는 것이냐! 혀가 타는 것 같느니라!
자신과 미각을 공유하는 녀석은 죽겠다며 바닥을 굴렀다.
‘미안….’
끝나면 먹고 싶다는 거 다 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