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58)
제258화
라온은 로엔그린의 연구실에서 난동부리는 라스를 한참 동안 달랬다. 오죽했으면 도리안이 귀신님이 폭주하셨냐며 책상 밑으로 숨을 정도였다.
‘이제 진정이 좀 됐어?’
-시끄럽느니라.
라스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욕을 뱉지는 않았다. 돌아가서 새우 피자와 파인애플 피자를 동시에 먹게 해준다는 게 통한 것 같았다.
라온은 피식 웃고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를 다시 불러왔다.
‘수속성 친화력은 저항력과는 다른 개념이겠네.’
이번에 얻은 친화력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저항력과 달리 공격에 특화된 능력 같았다.
-그 이름대로이니라.
라스는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수속성 저항력이 외부에서 널 공격하는 냉기를 막는 특성이라면, 수속성 친화력은 네 내부에 있는 냉기를 강화시킨다.
‘강화?’
-그렇느니라. 냉기의 위력, 운용 속도, 범위, 강도 모든 게 이전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아….
녀석은 말을 하다 말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생각하니까. 또 열 받느니라! 못 참겠다!
라스의 두 번째 발작이 시작됐지만, 다행히 첫 번째보다는 자제가 빨랐다.
-흐으! 흐으!
“음….”
라온은 달리기를 하고 온 것처럼 숨을 몰아쉬는 라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한동안 이쪽 이야기는 안 해야겠네.’
메시지를 보여줄 때마다 발작이 시작될 거 같아서 몸을 돌리고 혼자서 살폈다.
‘로엔그린의 지식이라….’
두 번째 메시지인 글래시아의 지식은 로엔그린이 냉기를 운용하고 연구했던 지식이었다.
‘전부 다 기억나진 않네.’
기본적인 부분은 떠오르지만, 상세한 이론들은 머리에 안개라도 낀 듯 희미했다. 갑작스럽게 다른 사람의 지식을 내려받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이론도 떠오르겠지만, 지금 새겨진 지식과 이론만으로도 글래시아의 강도와 위력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리연과 청우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에 미소가 지어졌다.
‘능력치도 올랐었지.’
마지막으로 능력치가 올라간 메시지를 보았다. 로엔그린은 가지고 있던 기운을 모두 남기고 갔는지 능력치가 6포인트나 올라갔다. 그에겐 정말 감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수확은 당연히 인공단전과 영류환이다.
리메르가 지금의 단전을 깨고, 인공단전을 사용할지 아니면 영류환으로 마나회로만 회복시킬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예전 그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단주님을 위해서 온 건데 내가 챙기는 게 더 많네.’
라온이 진혼검을 두드리며 빙긋 웃었다. 진혼검이 혈기를 정화한 후 받아야 할 능력치가 로엔그린에게 얻은 것보다 적을 리가 없었기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젠장….
라스도 그걸 느꼈는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근데 너는 왜 그렇게 이름을 기억 못 하냐.’
-무슨 말이냐.
‘멀린 보고 왜 밀대니, 멀대니 하는 건데.’
-흥. 본왕이 그런 잡것의 이름을 왜 기억해야 하느냐.
‘진짜 멀린은 아니지만, 나랑 있을 때 멀린의 가면을 쓴 마녀와도 만났었잖아.’
하분 성에서 한 번 그리고 성자를 구할 때 두 번 에덴의 멀린 가면을 마주했었다.
-본왕은 진짜도 안 봤는데, 그걸 어찌 알겠느냐.
‘실제로 한 번도 안 봤다고? 로엔그린 님이 싸우는데도?’
-그런 하등한 것을 상대하는 걸 봐서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그저 피어나는 분노만 즐기면 그만이니라.
‘흐음….’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그럴 녀석이 아닌데.’
오늘 로엔그린을 보내는 걸 보고 확신했다. 라스는 한번 내 사람이라고 정하면 끝까지 살피고 보호한다. 그런 라스가 허접하다고 전투를 안 볼 리가 없었다.
‘아! 설마….’
긴장한 학부모라도 되는 건가?
수련생 시절에 가족이 참관한 시험을 치를 때 자신의 자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꼭 감거나, 나가서 기도만 올리는 부모들이 있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자식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하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라스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혹시 말이야.’
-음?
‘너 로엔그린 님이 싸우는 거 봤다간 긴장해서 죽을까 봐 안 본 거야? 그래서 이름도 기억 못 하고….’
-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라스의 쫑긋 세운 머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딴 놈이 뭐가 신경 쓰인다고 못 본단 말이냐! 그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니라!
‘헤에….’
과민반응을 보니 확실하다. 요 녀석은 가슴이 떨려서 부하의 싸움을 보지 못한 게 분명했다.
-아니라고!
‘그래. 그래.’
-야 인마! 아니야! 진짜 아니야!
라온이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라스나 로엔그린이나 부러울 정도로 서로를 잘 만난 것 같았다.
“이제 귀신님은 가신 거죠?”
라스가 빽 소리칠 때 도리안이 다가왔다.
“어떻게 알았어.”
“공기라고 해야 하나? 이 공간이 따스하면서도 서늘해졌거든요.”
“따스하면서도 서늘해?”
“말이 이상하다는 건 저도 아는데, 온도 자체는 올라갔는데, 뭐랄까 쓸쓸한 느낌이에요.”
잠깐이나마 함께 했기 때문인지 도리안은 로엔그린이 떠난 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 좋은 곳으로 가셨어.”
“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도리안은 드디어 백목 책상을 배 주머니에 집어넣고 로엔그린의 백골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어떻게 할래. 유골이라도 챙겨서….’
-됐느니라.
라스가 손을 저었다.
-본래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는 집돌이였느니라. 이곳에 있는 게 편하겠지.
‘역시 잘 보고 있었네.’
-그, 그게 아니라고!
‘알겠어.’
라온이 옅게 웃고서 로엔그린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그럼 나머지도 정리하자.”
라온이 손뼉을 치고 도리안을 돌아보았다.
“도리안. 여기 있는 책이랑 물건들 전부 쓸어 담아!”
“저, 전부요?”
“그래.”
“아싸!”
도리안이 펄쩍 뛰고서 책장에 있는 책들을 배 주머니에 쏟아부었다. 최근 보았던 얼굴 중 가장 밝다. 역시 보급관다운 성격이었다.
-그, 그걸 왜 네놈이 가져가! 로엔옐로의 것이니라!
‘로엔그린 님도 우리가 쓰는 걸 좋아하실 거야. 아까 허락도 받았잖아.’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유물을 모두 챙긴다고 말했을 때도 로엔그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대답은 안 했잖느냐! 빨리 저 망아지 녀석을 멈추어라!
이건 심술이다. 라스도 로엔그린이라면 가져가라고 했으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럼 방법이 있지.’
-바, 방법?
‘잠시만.’
라온이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았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알겠습니다.’
-뭐, 뭐냐? 방금 뭘 한 것이야.
라스는 불안함에 눈동자를 떨었다.
‘당사자와 잘 해결했어.’
-해결? 당사자와?
‘응. 로엔그린 님이 가져가라고 하시네.’
-무, 무슨 미친 소리를….
‘방금 기도해서 물어봤거든.’
라온이 하늘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이 마귀 새끼야!
* * *
찌이이잉!
은은한 어둠이 일렁이는 공간이 열리고, 하체는 산양, 상체는 기사의 갑주를 두르고, 염소의 투구를 쓴 악양귀가 들어왔다.
등에 메고 있는 시꺼먼 대검에서 누군가의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악양귀가 검은 통로 안쪽으로 걸어가려고 할 때 좌측 공간이 열리고 새하얀 손이 튀어나왔다.
“오랜만이야.”
손 다음에 드러나는 건 길쭉하고, 곰보가 피어난 코다. 노파 그것도 추한 노파의 가면을 쓴 멀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그러네요. 그 숲 이후에 처음이죠? 이름이 뭐였더라….”
악양귀가 팔짱을 낀 채로 피식 웃었다.
“계속 호출했는데 왜 이제야 온 거지?”
멀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어조 사이로 오싹한 냉기가 흘러내렸다.
“당연히 바빠서죠. 전 인계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왔다 갔다 해야 하잖아요. 좀 봐주세요.”
악양귀가 두 손을 모으며 투구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멀린의 노파 가면이 악양귀의 앞으로 훅 떠올랐다.
“거기서 왜 라온을 놔준 거지?”
“놔주다니요?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악양귀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절 높게 보시는 건 감사하지만 그곳엔 성자도 있었다구요. 둘이 덤비면 위험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내기를 한 겁니다.”
“져? 네가?”
멀린이 차게 코웃음을 쳤다.
“라온이 마스터에 오르고, 성자가 제 몸이었다고 해도 네 검을 버티지 못해. 일검으로 벨 수도, 사로잡을 수도 있으면서 왜 놔둔 거지?”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제 임무는 길막이었잖아요. 목숨을 걸고 길을 막아줬는데, 이런 식으로 몰아가시면 섭섭합니다.”
악양귀가 고개를 삐딱하게 돌렸다. 여전히 미소를 짓지만, 그에게서도 무거운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도 그 아이에게서 무언가를 본 모양이구나.”
멀린이 가면의 턱 부분을 들어 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렇겠지. 특별한 아이니까.”
“…….”
악양귀는 대답하지 않고 멀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네 덕분에 나도 제대로 준비하기로 결정했어.”
“준비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멀린이 로브의 속에서 육각형 상자를 꺼냈다. 영약이 들어있는 목갑처럼 생겼지만, 겉에는 기이한 뿔 문양이 가득 차 있었고, 검은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허….”
지금까지 웃음을 잃지 않던 악양귀가 헛바람을 흘렸다.
“그거 일회용 유물 아닙니까?”
“맞아.”
“설마 그걸 라온에게 쓰려고?”
“물론.”
멀린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라온에서 무얼 봤기에 영귀옥까지 사용하려는 겁니까?”
“역시 네가 본 것과 내가 본 건 다르네.”
“예?”
“나도 처음에는 우리 대업에 큰 도움이 될 아이로만 여겼어. 내게 상처를 줄 정도의 아이이니 꼭 갖고 싶었지.”
그녀는 가면 속 얼굴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하지만 나도 잘못 보고 있었어. 라온은 진짜야. 이곳에 있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지.”
멀린이 손을 쫙 펼쳐서 에덴 본부 전체를 가리켰다.
“그 정도까지….”
“넌 모를 거야. 그 아이에게 깃든 힘이 어떤 것인지.”
그녀가 본인의 목을 꽉 부여잡았다. 스스로 숨통을 막으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빼곤 그 누구도….
* * *
비연회주 채드는 다급한 걸음으로 가주전 복도를 뛰었다. 평소 그의 성격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지만 일이 급박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쿵쿵.
알현실 앞에 선 그는 빨리 문을 열라는 듯 주먹으로 노크를 했다. 바닥이 울릴 정도의 소리가 다 퍼지기 전에 로엔이 문을 열어주었다.
“비연회주님?”
“급한 일입니다. 가주님께서는….”
“계십니다. 들어오시지요.”
로엔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비연회주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단상 위 옥좌에 앉은 글렌 지그하르트는 무료한 눈빛으로 가주전을. 아니, 세계를 굽어보고 있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비연회주가 입술을 떨며 무릎을 꿇었다. 강대한 기세. 비연회를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글렌이라는 남자의 앞에 설 때마다 심장이 떨렸다.
“무슨 일이지?”
그는 로엔과의 대화를 들은 듯 바로 본론을 꺼내라 말했다.
“가젤 강에서 광풍단과 남북맹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충돌?”
“지부에서 광풍 3조장 버렌의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남북맹주의 제자 틸러와의 충돌입니다.”
비연회주가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왔다.
“그곳에 있던 청루족은 사실….”
그는 버렌에게 듣고, 직접 정리한 서류를 통해 도란 마을과 가젤 강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리메르의 부상 정도는?”
“전투로 인한 부상은 경미하지만, 무리해서 힘을 끌어 올린 반동으로 단전과 마나회로에 큰 충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수명이 줄었고, 다시 오러를 운용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비연회주는 본인이 죄를 지은 듯 입술을 깨물었다.
“리메르. 그 멍청한 녀석은 하여튼….”
글렌이 인상을 찡그렸다.
“남북맹주도 아니고, 부왕의 삼합을 받고 쓰러졌다니, 여전히 허약하네요.”
기둥에 등을 기대로 있던 천검대주가 혀를 찼다.
“어….”
비연회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지?’
최측근인 리메르가 크게 다쳤음에도 글렌과 셰릴 그리고 로엔은 별 반응이 없었다. 걱정은커녕 오히려 놀리는 듯한 말투였다.
“버렌은 지부에 있나?”
“예.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광풍단주를 구할 영약을 요청했습니다. 혹시 지급하기 힘들면….”
비연회주가 품에서 금색의 패를 꺼냈다.
“이 금패를 사용해서라도 단전이나 마나회로를 회복시킬 영약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금패는?”
“광풍 부단주 라온 지그하르트의 것입니다. 전송으로 보내왔죠.”
그가 금패를 꾹 잡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단주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바로 금패를 내놓는 결단이라니, 라온 부단주는 진정 협이라는 이명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봤습니다.”
전송기로 금패를 보내왔을 땐 솔직히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흐흠….”
글렌은 금패가 라온의 것이라고 하자 입을 손으로 감췄다. 눈매가 살짝 둥그러지는 걸 보니 억지로 웃음을 참는 표정 같았다.
“흐음.”
“후후.”
셰릴과 로엔은 그런 글렌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글렌 님이 정말 웃는 건가?
지그하르트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글렌 지그하르트가 웃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런 일로 웃는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금패는 되었다.”
글렌이 손가락을 튕기자, 공간이 십자로 갈라졌다. 금색 불길로 가득한 차원에서 사각형 목갑 하나가 튀어나왔다.
“셰티의 눈물이다. 손상 입은 마나회로를 안정시키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지. 그것과 금패를 다시 전송해주도록.”
그의 손짓에 목갑이 천천히 떠올라 비연회주의 손에 떨어졌다.
“아, 광풍단주의 부상 말고도 심각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심각한 일?”
“예.”
비연회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일 두 가지를 한 번에 말하면 중점이 나뉠까 봐 일부러 하나를 말하지 않았다.
“일이 다 끝났을 때 악운의 부왕이….”
그는 라온과 부왕이 3년 후 생사결을 벌이기로 한 것을 말해주었다.
“제 생각에는 남북맹주와 회담을… 억!”
비연회주가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멈췄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단상 위에서 세상을 짓누를 무시무시한 기파가 터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비연회주.”
“예에….”
전력을 다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남북맹의 위치는 파악했나?”
“대, 대략적인 위치는 알아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계속 진행해서 확실히 알아내도록. 천검대주.”
글렌이 눈매를 좁히고 고개를 돌렸다.
“남북맹 칠 수 있나?”
“물론입니다.”
셰릴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 리메르를 비웃던 눈에 열화와 같은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비루한 도적놈들 따위 모조리 찢어버리겠습니다.”
“남북맹주는 내가 처리하지. 부하 관리를 못 했으니 손부터 잘라야겠어.”
“그럼 전 부왕의 모가지를 베겠습니다. 감히 노리지 말아야 할 걸 노렸으니까요.”
글렌과 셰릴이 마주 웃으며 당장 남북맹에 쳐들어갈 것처럼 맹렬한 살의를 일으켰다.
쿠구구구!
두 사람에게서 치솟은 강대한 기파에 알현실 천장과 바닥에 진동이 일었다.
‘이, 이 사람을 대체 왜 이래!’
비연회주가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전쟁이라고! 전쟁!’
놀이가 아니란 말이야!
그것도 어설픈 세력이 아니라, 산과 강에서는 가장 강하다는 오마 남북맹이다. 지그하르트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갑자기 남북맹의 본부에서 전쟁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미, 미친 건가?’
부왕을 못 잡는다고 비웃음을 당한 광풍단주와 정반대의 상황. 쓰러진 리메르가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따질 정도의 차별이었다.
“자, 잠깐 조금만 생각을….”
“두 분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일단 진정하시지요.”
말리려고 할 때 로엔이 먼저 앞으로 나왔다.
“마, 맞습니다. 침착하셔야 합니다.”
비연회주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야.’
유일하게 냉정한 로엔의 의견에 붙어서 두 사람을 말려야 했다.
“제가 알기로 라온 도련님은 매번 위기를 극복하고 강해지셨습니다. 3년이라는 기간이 걸려 있으니, 이번에도 분명 큰 성장을 이뤄내실 겁니다.”
“으응?”
비연회주가 로엔에게 고개를 돌리며 눈을 부릅떴다.
‘이, 이 사람도?’
로엔은 전쟁을 말리려는 게 아니라, 라온의 성장을 생각하며 일단 놔두자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왕은 그랜드 마스터에요. 지금까지의 위기랑은 격이 다릅니다. 라온이 3년 안에 그랜드 마스터에 닿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셰릴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리 생각하지만 3년간 많은 발전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 안 되면….”
비연회주는 주먹을 꽉 쥔 채로 로엔의 입을 바라보았다. 전쟁은 안 된다는 말이 나오길 바랐지만, 그의 말은 상상을 초월했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부왕 정도야 뭐, 하룻밤이면.”
그는 그리 말하며 본인의 목을 긋는 손짓을 했다.
“예? 부왕은 제가 죽이고 싶은데요?”
“허허, 암살이 더 빠르고 간편하죠. 천검대주께서는 그 이후를 맡아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긴 부왕을 죽이고 남북맹을 치면 손해가 확 줄긴 하겠네요. 그럼 제가 선봉에 서죠.”
셰릴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글렌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뭐….”
비연회주는 서늘한 웃음을 흘리는 글렌과 셰릴, 로엔을 보며 턱을 달달 떨었다.
‘이, 이 사람들 왜 이래!’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