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45)
제345화
라온은 붉은 파도를 일으키고도 검을 멈추지 않았다. 공명하는 고리를 통해 고조된 정신으로 선조가 남긴 검흔을 따라 장대한 그림을 그렸다.
그 붓이 향하는 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 파도가 쌓이고 쌓여 세상을 집어삼킬 대해를 이루었다.
쩌어어어억!
염해무결이 일으킨 거대한 적해가 마티오의 흑산을 짓뭉갰다.
쿠구구구구구!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마티오의 기운이 녹아내린다. 내리찍던 강기도, 자폭을 위해 응집시키던 기운도 사그라들었다.
“아아….”
절망하는 마티오의 신음과 함께 그의 오른팔이 뜯겨나갔다.
“흐으윽!”
마티오가 힘겨운 걸음으로 물러나며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바, 방금 그 검술은 뭐야.’
불꽃으로 일으킨 파도가 자신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검에 깃든 강기만이 아니라, 심장에 모으던 기운마저 휩쓸려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검술… 뭔가….’
라온이 펼쳐낸 검술은 어딘지 로베르트 가문의 검술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꼭 가주의 그것처럼.
다만 검술에 대해 생각할 틈은 없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린 적해처럼 시뻘건 눈동자를 빛내는 라온이 코앞에 서 있었으니까.
‘으으….’
붉은 눈을 마주한 순간 숨이 막혀온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한참 동안 잊고 있던 살고 싶다는 공포가 되살아났다.
꾸욱.
코시니는 겁에 질린 마티오를 보며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저놈 괴물이야.’
마스터가 아니라 그랜드 마스터라고 해도 정신 마법을 아예 무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약간의 충격이나, 반응은 있어야 하건만 저놈은 말 그대로 정신 조작 마법을 무효화시켰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 글렀어….’
마티오의 생명을 걸고 쏟아낸 검격도, 정신 조작 마법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스파이더 메모리도 통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젠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죽을… 음.’
코시니가 라온을 보며 혀를 살짝 돌렸다.
‘저놈… 나한테 관심이 없어.’
라온은 자신보다 마티오에게 당한 게 훨씬 많으니 온 정신이 그에게 쏠려 있는 것 같았다.
‘기회야.’
마티오에게 시선이 향한 지금이 저 괴물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코시니가 조심스럽게 마나를 운용했다. 일단 이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서 던전 위 바다로 좌표를 설정하고 천천히 마나를 배치했다.
우우우웅.
배열한 마나를 운용하여 이동 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 어깨에서 극심한 고통이 일어났다.
“크윽!”
고개를 내려보니, 기이한 요기를 뿜어내는 단검이 어깨 아래에 박혀 있었다.
“미친….”
온몸에 돋아오르는 소름을 느끼며 시선을 올렸다. 섬뜩한 붉은 눈이 자신을 굽어보고 있었다.
‘괘, 괜찮아.’
라온이 눈치를 챘지만, 상관없다. 이동 마법의 마나 배열은 이미 끝났으니까.
“늦었어!”
코시니가 뒤로 물러나며 텔레포트를 발동시켰다.
“이제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데루스 님이… 어?”
저주를 퍼부음과 동시에 이 공간에서 사라져야 하건만 배열된 마나들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서, 설마….”
코시니가 턱을 파르르 떨며 어깨에 박힌 단검을 보았다. 이 단검에서 피어난 요기가 마법의 발동 자체를 막고 있었다.
“그거 뽑으면 죽는다.”
“아….”
경련하는 손으로 단검을 잡으려 할 때 라온의 섬뜩한 음성이 들려왔다. 등골을 적시는 공포에 손이 저절로 내려갔다.
“코시니! 빨리 가라! 그분께 전해!”
마티오가 하나 남은 팔과 다리로 라온을 붙잡으며 괴성을 질렀다.
“으윽!”
코시니가 이를 악물며 어깨에 박힌 단검을 뽑았다. 요기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우우우웅!
고속으로 영창을 마치고 다시 텔레포트를 사용하려고 할 때 세상이 기울어졌다.
‘아….’
마나를 움직이기는커녕, 말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에 전해진 작은 충격과 함께 보이는 건 기울어지는 자신의 몸과 왼팔마저 잃고 울부짖는 마티오 그리고 라온의 붉은 눈동자였다.
‘내가 죽은 건가.’
죽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저 붉은 눈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다행….
* * *
라온은 피에 젖은 진혼검의 칼날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말 그대로 마법사의 천적이로군.’
진혼검의 마법 요혈은 자신과 떨어져 있어도 발동한다. 마법사에게 진혼검을 박아버리는 순간 전투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코시니가 당황하지 않았거나, 그녀 이상의 고위 마법사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도와줘서 고맙다.’
라온은 진혼검을 쓰다듬어 준 뒤에 다시 허리에 찼다.
-끄으으으….
라스가 바득바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그러다 이빨 나간다.’
-닥치거라!
녀석이 빽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음….’
라스가 이 상황을 물어보는 것 같아서 느릿하게 호흡을 조절했다.
‘어떻게 속이지?’
중요한 내용은 오러 메시지로 전했지만, 흥분해서 보여주어선 안 될 것들도 드러냈다. 솔직히 말해 답이 없었다.
‘그니까 이게….’
-왜 또 무아지경에 들어갔냐고!
‘아?’
다만 라스가 묻는 건 이 기묘한 상황이 아니라, 연속으로 무아지경에 들어간 부분이었다.
-무아지경이 무슨 동네 식당이냐? 배고프면 들어가서 처먹고 나오게?
라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을 뱉어냈다.
-본왕은 삶이 지루할 정도로 오래 살았지만, 무아지경을 하루에 두 번 들어간 미친놈은 처음이니라! 무아지경이 네 안방이냐고!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마티오의 자폭을 막아내기 위해 집중력이 극한에 올라 있을 때 염해무결의 흔적을 보았기 때문에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었다.
실력이 아니라, 정말 운이었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네놈만 보면 열이 뻗치느니라! 아주 돌아버리겠어!
‘이게 열등감인가?’
-무슨 열등감! 네놈을 보면 신도 꿀밤을 때릴 것이니라!
‘에휴.’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마티오에게 다가갔다.
“끄으으윽!”
그는 양팔을 모두 잃은 채 두꺼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마티오.”
라온이 무릎으로 앉아서 마티오와 시선을 마주쳤다.
[아프냐?]
“너….”
[나도 아팠어.]
라스가 어느 정도 눈치를 챘겠지만, 혹시 모르기에 이번에도 오러 메시지를 보냈다.
[손톱과 발톱 밑을 바늘로 찌를 때도, 칼로 온몸의 급소를 헤집을 때도, 맹수에게 물어뜯길 때도 그리고 유일한 친구가 죽었을 때도… 아팠다.]
라온이 마티오의 검을 쥐고 그의 허벅지를 찔렀다. 온몸이 마비될 정도의 고통을 주는 급소였다.
“흐억….”
마티오가 숨이 넘어가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떨궜다.
푸욱!
두 번째로 정강이 뒤편을 찔렀다. 개미가 온몸을 물어뜯는 듯한 통증을 일으키는 급소였다.
“끄아아아악!”
마티오가 애벌레처럼 발버둥 치며 찢어지는 비명을 터트렸다.
“걱정 마.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으아아아악!”
라온은 가면을 쓴 듯한 무표정으로 마티오의 급소를 가격했다. 그의 비명이 고요한 던전을 가득 울렸다.
“이런 게 재밌나?”
“으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짓을 하고 너는 웃고 있었지. 즐거웠나?”
오러 메시지로 보내야 할 말이 흥분하여 입으로 튀어나왔다. 아니, 이곳에 온 이후로 계속 흥분한 상태였다.
다만 라스에게 들켜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20년을 기다린 복수를 그저 목을 베는 허무함으로 달랠 수는 없었으니까.
“그, 그만….”
“네게 죽은 아이들도 살려달라고, 그만해달라고 수없이 말했지. 넌 그걸 한 번이라도 들어주었던가?”
전생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고문을 당하다가 죽은 아이들, 들개에게 물려 죽은 아이들, 간부들의 놀잇감이 되어 죽은 아이들 그리고 가장 친한 이들에게 죽어간 아이들까지.
눈조차 감지 못한 어린 얼굴들이 떠오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으어억….”
마티오의 숨이 끊어질 것처럼 흔들렸다. 원기를 소모했고, 고문까지 받았으니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마음 놔. 넌 죽지 않을 테니까.”
라온이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운용했다. 놈의 좌측 마나 회로에는 글래시아를, 우측 마나 회로에는 만화공을 밀어 넣었다.
우우우웅!
두 기운이 놈의 찢어진 명치에서 경합하며 강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끄아아아아악!”
마티오의 입에서 지금까지 중 가장 큰 비명이 폭발했다. 정신적인 충격과 육체적인 고통이 어우러진 놈의 눈동자가 마름모꼴로 찌그러졌다.
“데루스가 노리고 있는 건 뭐지?”
“으으으….”
마티오는 이 와중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나 광신도다운 모습이었다.
“강도를 조금 더 올려보지.”
라온이 차게 웃으며 글래시아와 만화공의 기운을 증폭시켰다.
“아어어억….”
마티오의 눈동자가 훼까닥 돌아갔다. 그의 사지가 오징어처럼 구부러졌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 고통을 참아왔다. 인간이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니까 좀 참아봐.”
지금 마티오가 겪는 고통은 혹한의 저주가 사라질 때까지 자신이 매일 같이 겪었던 통증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 나는 원기를 모두 사용했다. 이제 죽….”
“말했잖아. 넌 죽지 않는다고.”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두 종류의 오러가 네 몸에서 경합하며 가짜 생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기운이 다 빠질 때까지 넌 절대 죽지 않는다.”
“아….”
“한 마디로 평생 그 고통을 느껴야 할 수도 있다는 거지.”
“으으억!”
당연히 거짓말이다. 잠시 생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제, 제기랄….”
다만 마티오에게는 통한 것 같았다. 놈이 표정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마지막으로 묻지 데루스가 노리는 건 뭐지?”
“…….”
“말 안 해도 좋아. 내가 이곳을 나갈 때까지 그러고 있어.”
“대, 대륙에 공포를 푸는 것이다….”
그대로 떠나려고 할 때 마티오가 목을 들어 올렸다.
“공포? 전쟁인가?”
“…그렇다.”
마티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루스에게 모든 것을 바친 광신도의 정신을 꺾은 것에 오싹할 정도의 희열이 찾아왔다.
“육황과 오마겠군.”
“그, 그것도 맞다.”
“어떻게 전쟁을 일으킨다는 거지?”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오마와 육황 모두 잃을 게 많기에 쉽사리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싸움을 일으킨다는 건지 모르겠다.
“네, 네놈과 같다.”
“…설마 직계들의 납치인가?”
마티오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만으로도 답이 되었다.
“그렇군.”
라온이 차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더러운 놈이야.”
“너, 너는 결국 그분께 죽게 될….”
마티오는 그 말을 끝으로 숨이 끊어졌다. 원기를 쓴 놈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용한 일이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그래도 할 건 다 했군.’
마티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혀서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고통을 주며 죽였고, 데루스의 계획에 대한 힌트도 얻었다. 최고의 복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온은 죽은 마티오의 심장에 검을 박아넣고 눈을 내리감았다.
‘모두 평안하게 잠드시길.’
지금까지 마티오의 손에서 죽어간 영혼들이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며 기도를 했다.
“후우….”
한숨을 내쉬고 뒤를 돌았다.
-…….
라스가 팔짱을 낀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설명해야 할 때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환생을 그대로 밝히는 건 무리다. 조금이라도 가짜 이유를 끼워 넣어야 했다.
‘음식으로 유혹하는 게 좋겠지.’
라온이 입맛을 다시며 라스에게 다가갔다.
“라스. 이번 일은….”
-라온 지그하르트.
이름을 부르는 라스의 음성이 평소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본왕은 바보가 아니니라.
“음….”
예상했던 대로 라스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다만 네 빚쟁이도 아니지.
“뭐?”
-네놈의 사정을 전부 들을 자격은 없단 말이다.
라스가 팔짱을 풀며 눈을 내리감았다.
-솔직하게 말하지. 본왕은 이미 우연히 네놈의 꿈을 보았다. 보육원에 있던 어린 인간들을 구할 때였지.
당시에 입을 다물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꿈에서 9호와 생사결을 벌였던 장면을 보았던 것 같다.
-본왕과 네놈은 사이가 좋든 나쁘든, 피차 서로를 속이기 힘든 관계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밝히라는 것도 무리지. 그러니 기다리겠다.
라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네놈에게 준비가 된다면 말을 해주거라. 본왕은 그때까지 잊고 있겠느니라.
“허….”
라온이 입을 떡 벌리며 라스를 바라보았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당당한 모습. 처음으로 녀석이 마왕처럼. 진짜 군주처럼 보였다.
“…너 멋있네.”
어떻게든 속이려 했던 자신과 전혀 달랐기에 라스가 멋지게 보였다.
-본왕은 원래부터 멋지고, 아름다웠느니라. 인간 따위가 날 함부로 평가하지 마라.
녀석은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려는지 등을 돌린 채로 손을 저었다.
“여기서 나가는 대로 네가 먹고 싶은 음식 다 먹어줄게.”
진심이었다. 라스에게 고맙고, 미안하여 녀석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싶었다.
-…….
라스는 등을 돌리지 않았다. 음식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널 다시 봤… 어?”
라온이 웃음을 흘리며 라스에게 다가가다가 우뚝 멈춰 섰다.
-일단 피자는 무조건 들어가고, 지난번에 양갈비 괜찮았지. 아, 여긴 남해이니 랍스타와 생선구이도 좋겠느니라. 입가심할 과일 주스도 있어야 하고….
라스는 손바닥에 먹어야 할 음식 목록을 적어놓고 있었다. 5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
달라졌나 했더니 역시나.
왕의 위엄을 보였어도 저 식탐만큼은 고칠 수 없나 보다.
라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바닥을 내려보았다. 소음과 진동에 짜증이 차오른 영물의 살기를 느끼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이제 하나 남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