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52)
제352화
도리안이 세피아 상회의 여러 상가 중에서 가장 큰 건물을 가리켰다.
“여기가 세피아 상회의 총단이에요.”
라온이 그 손을 따라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지그하르트 본관 크기만 한데.’
세피아 상회의 총단은 지그하르트 본관과 비슷할 정도로 높게 솟구쳐 있었다.
옆으로 1.5배가량 넓었기에 실제로는 더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뭔가 딱딱해 보이느니라.
라스가 세피아 상회의 총단을 쭉 훑어내리고서 눈매를 찡그렸다.
‘그렇게 보이긴 하네.’
라스의 말대로 세피아 상회 총단 건물은 사각으로 단단하게 각이 져 있었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며, 창문이 따박따박 붙어 있어서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라온은 총단의 문 앞에 선 뒤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로베르트 가문의 영역에 갔을 때와 달리 완벽하게 변장하지는 않았지만, 머리 색과 눈 색을 바꾸고, 도리안보다 낮은 수준의 무력만 드러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듣기로는 도리안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으니, 얕게 위장해도 정체를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들어가자.”
“넵….”
도리안은 대답과 달리 문을 열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았다. 아직도 마음을 잡지 못한 것 같았다.
-왜 저러는 것이냐.
‘오랜만에 돌아가는 집이잖아. 멋지게 들어가고 싶겠지.’
라온은 팔짱을 낀 채로 도리안이 스스로 움직이길 기다렸다.
“후우우….”
도리안이 결정을 내린 듯 숨을 고르고. 문으로 다가갔다.
터억!
문고리를 잡으려고 할 때 먼저 문이 밖으로 열리고 사람이 나왔다.
“어욱!”
그는 문에 얻어맞는 건 피했지만, 균형이 어그러지는 꼴사나운 모습은 피하지 못했다.
다만 도리안다운 모습이라 폼 잡는 것보다 더 잘 어울렸다.
“똥폼 잡지 말라네.”
라온은 피식 웃으며 열린 문을 가리켰다.
“가자.”
“아, 예….”
뒷머리를 긁적이는 도리안을 따라 총단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게 보였다.
총단 직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상인이나, 무인, 용병,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서 오세요. 세피아 상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층 중앙 로비에 있던 직원이 곱게 웃으며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녀는 변장하지 않은 도리안을 알아보지 못하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 음.”
도리안은 눈동자를 살짝 내려서 바닥을 보며 목소리를 떨었다.
“상회주님을 뵈러왔어요.”
“약속이 되어 있으신가요?”
“그건 아닌데, 상회주님이 부르셔서….”
“네?”
“제가 여기 상회주님 아들이라서요.”
“…예?”
직원의 눈이 밖으로 툭 튀어나올 정도로 벌어졌다.
“그게 대체… 아!”
그녀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멍하니 도리안을 바라보다가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 설마 도리안 님?”
“맞아요.”
“아, 죄송합니다. 오신다고 전해 들은 게 없어서요.”
직원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라온은 직원의 표정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확실히 입지가 좁군.’
먼저 찾아오라고 해놓고, 아무런 말도 전해놓지 않은 걸 보니, 도리안의 입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은 모양이다.
“상회주님께 연락을 넣겠습니다. 이쪽에서 기다려주세요.”
직원은 로비 우측에 있는 대기실로 안내를 해주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허유….”
도리안은 대기실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널 알아보지도 못하네.”
라온이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직원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저 직원분은 제가 나가고 들어온 것 같아요. 못 알아보는 게 당연….”
“그게 아니라, 상회에서 널 부른 거잖아. 로비에 있는 직원이면 언질 정도는 해놨어야지.”
“음, 그 정도는 예상했어서요….”
도리안은 괜찮다고 말하며 배 주머니를 쓰다듬었다. 원래도 소심한 녀석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완전 쭈구리가 되어 안쓰러웠다.
“아, 뭔가 좀 드실래요?”
도리안이 배 주머니에서 컵과 분홍색 찻잎, 주전자 그리고 감자 과자를 꺼냈다.
그는 물이 저절로 끓어오르는 주전자로 차를 타서 건네주었다.
“하여튼.”
라온은 피식 웃으며 차를 받아서 마셨다. 시작부터 중간까지는 씁쓸하지만, 끝맛이 아주 살짝 달았다.
-쓰느니라! 먹지 마라!
라스는 맛 없다며 혀를 쭉 내밀었다.
‘애들 입맛이네.’
라스의 말을 무시하고 차를 홀짝였다.
그렇게 차를 마시고, 마시며, 또 마셔서 2시간이 보냈음에도 방에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온은 다 식어버린 찻잔을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네.’
-도대체 왜 안 부르는 것이냐!
라스가 허공을 향해 동그란 주먹을 내질렀다.
-부잣집이라서 대접을 받을 줄 알았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왜 기분이 평소보다 좋나 했더니, 이곳에서 고급 요리를 먹을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정말 대단한 마왕님이었다.
“하하.”
도리안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죄송해요. 워낙에 바쁘신 분이라서요.”
“그렇겠지. 5대 상회주를 보려면 몇 달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할 테니까. 다만….”
라온이 식은 찻잔을 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불편한 기운과 함께 피어난 열기에 내부의 차가 용암처럼 들끓었다.
“약속이 있어도 9년. 아니, 거의 10년 만에 찾아온 아들부터 봐야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음….”
“그리고 늦는다면 그 직원이라도 다시 찾아와서 말을 해줬겠지.”
세피아 상회주가 대기하라고 지시를 했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 중간에 누가 끼어든 게 분명했다.
‘뻔해.’
도리안의 형제들이겠지.
좁아진 도리안의 입자와 달리 그의 형제들은 9년 동안 더 큰 입지를 쌓았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형제가 셋이라고 했던가?”
“아, 네.”
불안한 듯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너무 안 오네요. 제가 다시 나갔다가 올게요.”
도리안이 다시 말을 해보겠다며 문고리를 잡았다.
“됐어.”
라온이 손을 저었다.
“네?”
“다시 불러도 너희 아버지에게 연락은 안 올 거야. 기다리고 오면 이 일의 주동자가 오겠지.”
여유롭게 다리를 꼰 채 다시 데워진 차를 마셨다.
“으음….”
도리안도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듯 자리에 앉아서 감자 과자를 씹었다.
-그 맛대가리 없는 차만 마시지 말고, 저 녀석이 주는 과자도 먹어라! 배가 고프느니라!
‘건강에 안 좋아.’
라온이 과자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과자 하나 가지고 무슨!
‘고작 과자 하나의 탁기가 전투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잖아.’
-이 약해 빠진 놈이….
‘약하니까 더더욱 먹으면 안 되겠네.’
-끄아아아악!
라스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악을 질렀다.
-말만 더럽게 잘하는니라! 아주 얄미워 뒤지겠느니라!
‘칭찬 고마워.’
-칭찬 아니느니라!
라스의 비명을 들으며 2시간 정도를 더 보내자, 문 앞에 큼지막한 인기척이 일었다.
터억!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녹색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정리한 세련된 인상의 여성이 들어왔다. 체구가 커서 문이 꽉 차 보였다.
“어….”
도리안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팔렌 누나?”
팔렌이라 불린 여성은 도리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먼저 라온을 보았다. 그의 복장이 허름한 것을 보고,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라온이 팔렌의 반응을 보며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우습게 보이고 있네.’
낡은 복장과 지저분한 인상을 보고 도리안의 하인이나,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원하던 반응이라 고마울 뿐이다.
“누나? 누가 네 누나지?”
팔렌이라 불린 여성이 도리안에게 고개를 돌리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나이 먹고서도 아직 주제 파악을 못 한 거야?”
“아….”
가족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차가운 음성에 도리안의 어깨가 떨렸다.
“꼴을 보니 생각 없이 사는 건 여전한가 보네.”
팔렌은 도리안을 훑어내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동안 뭐 하고 살았길래 아직도 머리가 안 찼지?”
“으응?”
“그 코딱지만 한 주머니를 가지고 9년 동안 뭘 하고 다녔냐고.”
조롱만 들어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녀는 정말 도리안이 어디서 무얼 했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라온은 팔렌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훈련생 시절 버렌만도 못 하네.’
외부인인 자신이 있음에도 도리안에게 악의를 보내며 조롱하고, 나름 후계자 후보인 도리안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것을 보니, 신경 쓸 필요 없는 하수였다.
“아, 저는….”
도리안이 입술을 떨며 대답하려고 할 때 다시 문이 열렸다. 눈매가 매서운 인상 차가운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지그하르트에 들어가서 검을 수련했다더군.”
그는 도리안 대신 팔렌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지그하르트?”
“그것도 요즘 가장 유명한 광풍단 소속이지.”
“디알룬 형….”
도리안이 디알룬이라 부른 남자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음….”
디알룬이라 불린 남자는 라온을 보고서 살짝 고개를 꾸벅였다.
라온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주 인사를 했다.
‘팔렌이라는 멍청이와 달리….’
이쪽은 위험하군.
광풍단이 유명한 건 사실이지만, 자신과 조장 세 명을 제외하면 개개인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도리안이 어디에 갔는지, 어떤 소속인지 알고 있는 것을 보니,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광풍단?”
팔렌이 도리안을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백검룡의 광풍단?”
크게 놀라는 것을 보니, 예상대로 자신의 이명은 세피아 상회에서도 크게 퍼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디알룬이 도리안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흥! 그래봐야 유명한 건 라온 지그하르트뿐이잖아.”
팔렌은 아무 의미도 없다며 눈을 흘겼다.
“이 녀석이야 거기서도 들러리나 하고 있겠지.”
“으음….”
도리안은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무엇보다도 큰 보물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검술을 수련했다니, 예나 지금이나 머저리 같은 건 여전하네.”
팔렌이 도리안을 보며 진한 비웃음을 흘렸다.
“검술은 선택받은 자만이 하는 거야. 네 상사인 라온 지그하르트처럼. 역시 너한테는 후계자 후보 자리도 아까워.”
“…….”
도리안의 턱이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내려갔다.
라온은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 않은 채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익숙한 분위기네.’
판별식과 예비 훈련생 시절부터 시작된 지그하르트의 차별 어린 시선과 분위기가 이 방에도 가득 차 있었다.
들었던 대로 지그하르트에서 차별받던 자신과 세피아 상회에서 차별받던 도리안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이걸 깨는 방법은 간단하지.’
시비를 걸어오게 만들어서 부수면 되니까.
무가가 아니라, 상가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압도적인 힘으로 저쪽의 술수를 모조리 깨버리면 기세도, 명분도 가져올 수 있게 된다.
‘도리안에게는 조금 과할 수도 있지만….’
그의 미래에는 도움이 되겠지.
“도리안.”
라온이 마음을 정하고 도리안을 불렀다. 도리안만이 아니라, 팔렌과 디알룬의 시선이 동시에 이쪽으로 쏘아졌다.
“이분들이 네가 가볍게 꺾어서 상회의 거름으로 삼겠다고 했던 형제분들이야?”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어억!”
그 말에 도리안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가볍게 꺾어?”
“상회의 거름으로 삼는다고?”
시종일관 사나웠던 팔렌만이 아니라, 디알룬의 눈빛에서도 서늘한 빛이 돋아났다.
“뭐, 뭐, 뭐….”
도리안은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한 채 턱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갈라진 눈빛으로 난 그런 말 안 했어! 를 외치고 있었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 제대로 소개도 못 했군요.”
디알룬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디알룬 세피아라고 합니다. 도리안의 형이죠.”
“제덴이라고 합니다.”
라온은 실제로 광풍 3조에 속한 제덴의 이름을 말하며 그 손을 잡았다.
“아, 들어본 적 있습니다. 광풍 3조 소속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역시 보통이 아니네.
제덴이라는 인물이 광풍단에 있다는 걸 알 정도라면 꽤 상세하게 정보를 모았던 것 같다. 제덴과 같은 적발을 하고 와서 다행이었다.
“실례했군요. 광풍단의 검사님.”
팔렌이 인상을 찌푸린 채 디알룬 옆으로 다가와 아주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그런데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이 조금 걸리는군요. 도리안이 우리를 꺾는다고 했다구요?”
“네. 형제들을 모두 누르고 이 상회를 먹겠다고 말했었죠.”
라온이 웃으며 대답하자, 분위기가 한층 더 싸늘하게 식었다.
“어어어어….”
도리안은 신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너 이 자식. 주제도 모르고….”
팔렌이 도리안에게 다가가려 할 때 두꺼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집사복을 입은 은발의 노인이 들어왔다.
“도리안 도련님. 상회주님께서 찾으십니다.”
그의 말에 도리안에게 다가가던 팔렌과 디알룬이 멈춰섰다.
“어, 어떻게!”
팔렌이 노집사를 돌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여자가 끊은 건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녀가 도리안이 왔다는 연락을 끊었는데, 상회주가 알아서 부른 것 같다.
“아, 네에….”
도리안은 두 형제를 보며 마른침을 삼키고 노집사가 있는 문으로 걸어갔다. 형제들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그의 어깨가 사정없이 떨렸다.
고오오오.
팔렌과 디알룬은 그런 도리안의 뒤통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좋네.’
라온은 빙굴에 들어온 듯 점점 더 차갑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이게 형제지.’
-…….
라스는 라온을 보며 동그란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너 진짜 인간 맞냐?
* * *
라온은 노집사를 따라 상단주가 있는 총단의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도리안이 낮은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구요!”
“안 했나?”
“비슷한 말도 안 했어요! 그 눈 보셨잖아요! 저 이제 어떻게 해요! 내 인생 망했어!”
도리안은 형제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거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다리가 무거운지 계단도 느리게 올랐다.
“둘째 형이랑 셋째 누나 맞지?”
“네에….”
“둘째 형은 몰라도 누나 쪽은 별 느낌 없던데?”
“네?”
“무서워 할 필요 없다고. 전에도 말해지만 이곳을 떠날 때의 너와 지금의 넌 다른 사람이야.”
라온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도리안을 가리켰다.
“달라졌으면 행동도 다르게, 대우도 다르게 받아야지.”
“으음….”
“위축될 필요 없어. 네 뒤에는 나와 광풍단이 있다.”
그 말을 해주고 먼저 계단을 올랐다.
“…네.”
도리안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라온의 등을 바라보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 뒤를 따라붙었다.
라온은 도리안의 떨림이 조금 가라앉은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10년 만에 만나는 아버지에게 보여줄 만한 얼굴이 됐네.’
-설마 그걸 위해서 저 녀석의 형제들을 자극한 것이냐?
라스는 의외라는 듯 눈매를 찡그렸다.
‘아니.’
-그럼?
‘재밌을 거 같아서.’
-넌 진짜 제정신이 아니니라.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라스의 안색이 노랗게 질렸다.
라온이 피식 웃으며 최상층에서 걸음을 멈춘 노집사의 뒤편에 섰다.
“이곳이 상회주님의 집무실입니다. 준비되시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는 냉정할 정도로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 뒤 문에서 비켜섰다.
“준비됐습니다.”
도리안이 주먹을 말아쥐며 대답하고,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집사가 노크를 두 번 하고서 집무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기름칠을 잘 했는지 조금의 삐걱임도 없이 문이 부드럽게 열린다.
묵직한 느낌을 주는 갈색 카펫과 어두운 원목으로 만든 가구들 사이로 회색 책상이 놓여있다.
그 뒤에서 외눈 안경을 착용한 노인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초록색 머리카락에 눈매는 둥글었지만, 풍겨오는 인상과 기세가 말할 수 없이 차가우면서도 딱딱했다. 도리안이 떠오르는 외모였지만,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상회주의 시선이 먼저 도리안에게 향한다. 찰나의 순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굳은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며 도리안의 전신을 훑어내렸다.
‘다르군.’
먼저 손님의 상태를 확인하던 팔렌이나, 디알룬과는 달리 아들부터 확인하는 게 확연히 달랐다.
‘그런데 저 눈빛.’
어디서 본 눈빛 같은데….
기억속을 뒤질 때 상회주의 눈빛이 다시 굳어지며 자신에게 향했다. 속을 파고드는 듯한 냉정한 시선이었다.
“상회주님을 뵙습니다!”
도리안이 고개를 숙이며 큰 소리를 질렀다. 라온은 말은 하지 않고 도리안을 따라 허리를 굽혔다.
“일어나라.”
상회주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짓을 했다.
“네.”
도리안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긴장했기에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라온이 다시 허리를 들었을 때도 상회주의 시선은 돌아가지 않고 그를 향해 있었다.
“저는….”
“이렇게 백검룡을 뵙게 되어 영광이오.”
이름을 밝히려고 할 때 상회주에게서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음….”
꼭꼭 감추지는 않았다고 해도 한 번에 알아차리다니….
로베르트 영지에 갈 때처럼 키와 피부까지 속이지 않았다고 해도 바로 파악당할 줄은 몰랐다.
형제들과 달리 이쪽은 장난이 아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라고 합니다.”
라온은 상회주의 가라앉은 눈을 마주하며 옅은 미소를 흘렸다.
‘심심하지는 않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