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81)
제381화
대결이 시작하기 10분 전.
라온은 광풍단 본진에 꽂혀 있는 노란색 깃발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옛날 생각나네.’
이 깃발을 보고 있으니, 훈련생 시절에 6연무장의 훈련생들과 단체전을 벌였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저 귀때기가 하루 전에 알려줬지 않느냐.
라스가 어린아이처럼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랬지. 그랬는데….’
인상을 찌푸리며 리메르를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본인도 참가하면서 왜 하루 전에 알려주냐고.’
그때야 훈련생끼리 붙으니 재미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해도 이번에는 본인도 참가하면서 하루 전에 말했다는 점이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으하함.”
리메르는 늦잠을 자서 붕 뜬 머리를 쓸어내리며 하품을 했다. 눈을 마주치자 씩 웃으며 턱을 모로 틀었다.
“왜? 잘생긴 엘프 처음 봐?”
“…아닙니다.”
라온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광풍단에게 손짓했다.
“집합.”
광풍단은 눈동자에 옅은 광기를 두른 채 깃발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일단 시가지 진형은 전부 파악했어. 밑에 지도를 그릴 테니….”
파악한 지형을 바탕으로 계획을 짜려고 할 때 갑자기 대지가 크게 흔들리며 시가지 훈련장의 벽과 건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정한 전투를 위해서 시가지 훈련장을 변형하겠습니다.]
시가지 전체를 들썩이는 먼지와 거대한 마나의 요동침 위로 심판 해리슨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부터 광풍단과 철전대의 시가지 전투를 시작합니다!]
30초 뒤에 들린 해리슨의 음성과 함께 마구잡이로 움직이던 벽과 건물들이 쿵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아까 거기서 또 위치를 바꾼 거야?”
버렌은 아직 먼지가 가라앉지 않은 훈련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진다더니, 이런 생각은 못 했나 보네?”
마르타가 라온을 올려보며 히죽 웃었다.
“지형 파악 다시 해야겠는데?”
“아니, 괜찮아.”
라온이 바닥에 지도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형이 바뀌는 상황도 생각해뒀으니까.”
“그걸 생각했다고?”
버렌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지형이 한 번 더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훈련장 내부의 장치들이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후 건물과 벽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예상해 두었다.
철전대도 지금 변형된 지형은 다 알지 못할 테니, 설화의 감각을 개방해서 지형을 파악한다면 이전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 될 것이다.
“흥!”
마르타가 인상을 찡그리며 뒤를 돌았다.
“재미없어.”
“넌 대체 누구 편이냐.”
라온이 헛웃음을 흘리며 설화의 감각을 전력으로 개방했다. 피부가 끝없이 늘어나는 듯한 감각과 함께 주변의 모든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라온.”
가까운 곳부터 천천히 시가지 지형을 파악하고 있을 때 리메르가 손을 들어 올렸다.
“나 정찰 좀 하고 올게.”
“예? 정찰이요?”
라온이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이 인간이 정찰 같은 걸 할 리가 없는데….’
귀찮다고 뒤에서 낮잠이나 자면 모를까. 먼저 정찰을 나간다고 하다니, 등골이 서늘했다.
“아닙니다. 제가 다녀올게요. 대장이 정찰을 나가는 경우는 없잖아요.”
“나 몰라? 솔선수범하면 바로 이 리메르 님이라고!”
“그 솔선수범은 철전대 부대주 두 명을 맡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는 두 명의 부대주를 상대해야 하기에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
“걱정 말고, 곧 대주가 될 이 몸을 기다리고 있으리고.”
리메르는 힘찬 손짓을 한 뒤 벽이 무너진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잠깐만….”
“금방 돌아올게.”
리메르는 말릴 새도 없이 녹색 바람이 되어 동쪽으로 달려갔다.
“단주님이 웬일이시지? 대결을 늦게 말해줘서 미안해하시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냐. 그냥 약 잘못 먹은 거야.”
버렌이 헛바람을 흘리고, 마르타는 코웃음을 쳤다.
“아픈가 봐.”
루난은 맹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꿈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전 재산을 우리에게 걸었을 수도 있지.”
“아, 그게 맞네! 도박이야!”
다른 광풍단원들도 평소와 다른 리메르의 모습에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았지만, 좋은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귀때기가 사고를 칠 느낌이구나.
‘나도 느끼고 있어.’
저 인간 없어지면 안 되는데.
리메르가 두 명의 부대주를 상대하지 않는다면 모든 상황이 꼬인다. 쫓아가고 싶지만 이미 벌어진 일 지금은 빠르게 계획을 세우는 게 맞았다.
라온은 설화의 감각을 바탕으로 파악한 시가지의 지형을 바닥에 그렸다.
“다 모여.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한다. 우측의 길이 가장 크니까. 1조가….”
다시 광풍단을 불러서 지형과 작전을 설명하는 중에 해리슨이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 설마….’
[철전대 부대주 오레스 전투 불능!]
심장이 거칠게 뛰는 불안함과는 달리 철전대의 2번 부대주인 오레스가 탈락했다는 소식이었다.
“오오! 이거 뭐야!”
“단주님이다!”
“단주님이 드디어 일을 하시는 건가?”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이야아아아!”
“리메르! 리메르! 리메르!”
광풍단원들은 리메르의 활약에 눈동자에 맺힌 광기가 사라질 정도로 환호를 질렀다.
-허? 귀때기가 일을 해?
“부대주를 쓰러뜨렸다고? 단주님이?”
라온과 라스가 당황하여 헛바람을 흘렸지만, 아직 해리슨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광풍단주 리메르 전투 불가!]
“…….”
그 음성이 들리자마자 웃고 있던 검사들이 입을 동시에 다물었다.
라온. 아니 광풍단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망할 엘프 일부러 기권했어….
* * *
철전대주 트레빈 지그하르트는 무너진 벽 앞에 주저앉은 리메르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뭐가?”
리메르는 티 타임이라도 즐기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왜 오레스를 기절시키자마자 기권했냐는 말이다!”
저놈은 정찰을 나가 있던 오레스의 뒤를 쳐서 기절시킨 후에 이쪽으로 와서 바로 기권했다.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게 허무해질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쳤거든.”
리메르가 한숨을 푹 내쉬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늙어가지고 뼈마디가 쑤셔서 오래 못 싸워.”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트레빈이 입술을 꾹 씹었다.
‘이전과는 무언가가 달랐어.’
리메르가 오레스를 칠 때 운용했던 기운은 바람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흉폭한 기운이 그의 검에 실려 있었다.
“무엇을 노리는 거냐.”
“내가 노리는 건 돈뿐인데?”
“헛소리 작작해!”
“정말이야. 너희는 나 신경 쓰지 말고, 계획대로 움직이면 돼. 빨리 가서 당황한 광풍단을 깨부수라고.”
리메르는 지금 바로 돌진하라며 손을 휘저었다.
“후우….”
트레빈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대체 뭐지?’
광풍단의 움직임에 대비하기 위해서 수많은 계획을 짜왔지만, 이런 상황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리메르가 대체 뭘 위해서 기권을 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뭐해! 빨리 가서 광풍단 잡으라니까!”
리메르는 이러다 늦는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으음….”
트레빈은 버둥거리는 리메르를 보며 어금니를 지그시 씹었다.
상황이 파악되질 않으니, 어떠한 지시도 내릴 수가 없었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었다.
“대, 대주님. 저자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사기꾼이라 불리는 남자이니, 무슨 속셈이 있을 게 분명합니다!”
“원래부터 거짓말 하나는 잘 치지 않았습니까.”
철전대 검사들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하다며 리메르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아, 답답하네! 그런 거 없다니까! 지금 너희들이 쳐들어가면 유리하다고!”
리메르는 본인의 가슴을 두드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리메르 님. 탈락자가 이렇게 떠드시면 안 됩니다.”
부심 중 한 명이 다가와서 리메르의 입을 막았다.
“이 어벙한 놈들아! 당장 가라고! 가서 그 자식들을 패란 말이다! 조심성을 가질 때가 아니… 읍읍!”
그는 부심에게 끌려가는 마지막까지 광풍단에게 달려가라고 외쳤다.
“크윽….”
트레빈은 질질 끌려가는 리메르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모르겠어.’
보면 볼수록 저 미친 엘프의 언행이 이해되질 않는다. 철전대 검사들도 불안해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함정이 분명한데….’
광풍단은 그저 무식하게 힘만 믿고 설치는 곳이 아니다. 특별한 계획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대, 대주님? 한 번 돌진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1번 부대주 카망이 다가와 한번 가보자고 말문을 텄다.
“안 돼. 분명 속셈이 있을 거다. 일단 정찰부터 시작해.”
트베린은 전원 공격이 아니라, 소수의 정찰을 지시했다.
‘내가 당하거나, 깃발만 빼앗기지 않으면 돼.’
그 둘만 피한다면 절대 지지는 않는다.
“각 조의 정찰대는 내가 정해주는 방향으로 나뉘어서….”
검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이마 위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빌어먹을….’
보이지 않는 늪지에 빠지는 기분이야.
* * *
아디스 세피아가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턱을 떨었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왜 갑자기 광풍단주가 기권을….”
리메르가 철전대의 간부로 보이는 검사를 쓰러뜨려서 환호를 질렀는데, 그는 도망치거나 싸우지 않고 바로 손을 들어 기권이라고 외쳤다. 지쳐 보이지도 않는데 왜 전투를 포기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후….”
글렌은 손바닥에 하얗게 변할정도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아무래도 저 엘프가 더 이상 살기 싫은 것 같소.”
“아….”
그의 건조한 목소리에 아디스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 그래도 지그하르트의 광검이라 불리던 명검사인데 무슨 생각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놈도 머리가 있으니, 당연히 생각이 있겠지. 하지만….”
글렌이 시선을 돌려 아디스를 바라보았다. 붉은 동공에서 타오르는 듯한 분노가 느껴졌다.
“저런 방식은 매를 벌 뿐이오. 그것도 뒤지도록 아픈 매를.”
그는 당장 뛰쳐나가 리메르를 후려 패고 싶은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 그렇군요.”
아디스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망원경을 들어 철전대가 있는 곳을 살폈다.
그들은 리메르가 기권을 했음에도 바로 움직이지 않고 소수의 정찰대를 보내서 상황만 파악했다.
“음? 철전대는 왜 움직이지 않는 겁니까? 지금 간다면 승기를 굳힐 수 있을 텐데.”
글렌은 철전대주 트레빈을 내려보며 짧게 혀를 찼다.
“생각이 많기 때문이오.”
“생각이라면….”
“철전대주는 어려서부터 조심성이 많고, 생각을 깊게 하는 아이였소. 지금 리메르가 벌인 기행에 놀라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소.”
“아, 그러면 아무 생각없이 간 광검 때문에….”
아디스가 이제 알겠다는 듯 손뼉을 쳤다.
“맞소. 철전대주가 미리 짜두었던 계획에 이런 상황은 없었을 테니, 당황해서 일단 정보부터 모으려는 것이오.”
글렌이 손톱을 깨무는 트레빈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단점을 아직 고치지 못했군.’
트레빈은 뛰어난 실력과 집중력 그리고 인내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처럼 과한 조심성이 오히려 단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 일도 리메르가 리메르 했구나 하면서 대담하게 돌진했다면 큰 우위를 가진 상태에서 전투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글렌의 시선이 광풍단이 있는 서쪽 지형으로 돌아갔다.
“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기회가 생긴 듯 하오.”
* * *
-크헤헤헤헤!
라스가 둥그런 팔을 버둥거리며 폭소를 터트렸다.
-일부러 기권하다니, 그 귀때기는 언제나 미쳐 있구나!
녀석은 이래서 가끔은 리메르가 마음에 든다고 떠들어댔다.
‘시끄러워.’
라온이 시끄럽게 구는 라스를 밀어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바보 단주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뻔히 보이네.’
리메르는 철전대 2번 부대주 오레스를 쓰러뜨리고 돌아올 수 있었으면서 일부러 기권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를 고생시키기 위해서겠지.’
그는 아주 힘겹게 이길 상황을 만들어서 신나게 밟혔던 일을 복수하려는 게 분명했다.
‘확실히 이대로 싸웠으면 우리가 이겼겠지.’
내가 트레빈 지그하르트를 상대하는 것만 빼면 전부 쉬운 일이었을 테니까.
계획대로 리메르가 2명의 부대주를 맡고, 사운환을 먹고, 반쯤 정신을 놓은 광풍단이 철전대를 쓰러뜨린다면 어렵지 않게 이번 전투를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리메르가 부대주 한 명만을 처리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만약 지금 당장 철전대가 달려온다면 수적인 우위와 고수의 차이로 엄청나게 힘든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할 거냐?”
버렌이 한숨을 푹 내쉬며 다가왔다.
“뭘 어떻게 해! 그 인간 빼고, 우리끼리 싸워서 조져야지!”
대답은 마르타가 대신해주었다.
“가자.”
루난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로 검을 뽑았다.
“마, 망했다! 진짜 망했어! 우리는 안 될 거야!”
-인간들의 절망을 보는 건 언제나 재미있군.
도리안은 머리를 감싸쥔 채 주저앉았고, 라스는 그 옆에서 히죽거렸다.
“다들 가만히 좀 있어봐.”
라온은 도리안과 라스의 머리에 딱밤을 날리고서 앞으로 걸어갔다. 오러 소모가 막심할 정도로 설화의 감각을 넓혀서 동쪽 진형을 살폈다.
‘안 오는 건가?’
리메르라는 큰 산이 사라졌으니, 철전대 검사들이 전력으로 달려올 줄 알았건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여. 근데….’
너무 적은데?
철전대는 세 방향에서 3명씩. 그것도 굉장히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정찰?’
정찰이 아니고서는 검사들이 저렇게 천천히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라온은 검사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왜 바로 돌진하지 않고 정찰병을… 아!’
저들이 왜 정찰을 보냈을지와 트레빈의 성격을 생각하다보니, 머릿속에서 안개가 걷혔다.
‘철전대도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거야.’
갑자기 상대측의 대장이 나타나서 부대주 하나를 잡고 기권을 한다면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다. 특히 트레빈 지그하르트는 조심성이 높은 인물이다 보니, 더욱 당황하여 본대를 움직이지 않고 정찰대를 움직인 게 분명했다.
‘날 아주 높게 생각해주고 있군.’
트레빈은 조심성 많은 성격답게 라온 지그하르트의 이름값을 굉장히 높게 쳐주고 있었다.
‘이용할 구석은 충분해.’
라온이 손짓을 하여 광풍단을 모은 뒤 지금 알아차린 상황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그, 그게 그렇게 된다고?”
“망할 단주의 미친짓이 계획이 되다니….”
“그럼 우리가 돌진하면 돼?”
버렌이 헛웃음을 흘렸고, 마르타는 시원하다는 듯 웃었으면, 루난은 빨리 싸운 뒤에 돌아가고 싶은지 검을 만지작 거렸다.
“맞아.”
라온이 루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역으로 저들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야.”
트레빈의 예측을 깨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저들은 당황하여 이번에도 가만히 있을 게 확실했다.
“내가 비도로 기습해서 1번 부대주 카망을 처리할 게. 그 이후에는 처음 계획대로 조끼리 상대를….”
“잠깐.”
마르타가 손을 올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드물게도 침착함이 어려있었다.
“그 부대주, 내가 상대해보면 안 돼?”
“무리야.”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마르타의 재능은 인정하는 바지만, 지금 수준으로 벽을 넘은 마스터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 한 일이다.
“그럼 나까지 하면?”
“나도 할래.”
버렌과 루난도 한 발씩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것들아! 너희가 왜 껴!”
“너 혼자서는 무리라잖아.”
“맞아. 마르타 약해.”
“닥쳐!”
라온은 서로 으르렁거리는 세 사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는데?’
하나나 둘은 무리지만 셋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실전이 아니라, 대련이니 어찌보면 기회이기도 했다.
“가자.”
라온이 날이 갈리지 않은 비도를 꺼내며 미소를 지었다.
“단순무식한 게 제일이라는 걸 보여주자고.”
* * *
동쪽 철전대 진형.
정찰 나갔던 검사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대, 대주님!”
“광풍단이 오고 있습니다. 그, 그런데….”
검사들은 뒤를 돌아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놈들은 어떠한 진형도 없이 쥐떼처럼 마구잡이로 달려오는 중입니다.”
“나도….”
트레빈 지그하르트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넓게 퍼뜨린 기감을 통해서 어떠한 규칙이나 질서없이 짐승처럼 돌진해오는 광풍단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라온 지그하르트.’
불안한 건 그것만이 아니다. 광풍단 검사들의 기척 속에서 라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놈은 따로 움직이는 게 분명했다.
“어, 어떻게 할까요?”
“방비를 굳혀.”
트레빈은 탁한 숨을 뱉으며 언제라도 검진을 일으킬 수 있도록 준비를 단단히 해두라고 말했다.
‘놈들이 이길 구석을 모두 막아야 해.’
라온이 노릴 만한 건 두 가지. 진의 중심에 있는 깃발과 트레빈 자신이다. 그 둘만 제대로 보호한다면 놈들이 어떤 상황을 일으켜도 절대 지지 않는다.
“옵니다!”
1번 부대주 카망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미친 듯이 달려오는 광풍단이 보였다. 놈들은 눈동자에 샛노란 광기를 두른 채 말 그대로 광견처럼 달려왔다.
“정말 광풍이 아니라, 광견이로군.”
트레빈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개진!”
“개진!”
그의 외침을 따라 철전대가 진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검사들의 오러가 진의 중심에 모여드는 그 찰나의 순간 벽 뒤편의 어둠 속에서 뻘겋게 달아오른 비도가 번쩍였다.
“이럴 줄 알았다!”
트레빈이 비도를 던지는 라온을 보며 두 눈을 빛냈다.
‘평범한 비도가 아니야!’
비도는 빠르고 은밀할 뿐만 아니라, 내부에 어마어마한 힘이 담겨있었다.
‘놈이 진짜 노리는 건 내가 아니었어.’
그는 심장과 목을 향해 쇄도하는 비도가 아니라, 1번 부대주 카망에게 시선을 돌렸다.
“카망! 심장과 목이다! 절기를 사용해서 막아라!”
“알겠습니다!”
카망은 트레빈의 명령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짓쳐드는 비도를 향해 가장 강한 초식을 쏟아부었다.
콰아아아앙!
비도에 담긴 막강한 기운에 카망의 다리가 발목까지 땅에 박혔지만, 제대로 된 방비 덕분에 그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됐어!’
트레빈은 카망의 안전을 확인한 뒤 피부에 닿을 정도로 다가온 비도를 쳐냈다. 미리 주의를 기울인 덕분에 비도에 실린 기운을 어렵지 않게 흘려낼 수 있었다.
“다시 진법을 운용….”
“크헉!”
“커윽!”
“아아악!”
그가 다시 지시를 내리려고 할 때 철전대 안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세 조장이 급소를 부여잡은 채 쓰러져 있었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오싹한 음성과 함께 라온 지그하르트가 검을 내리쳐왔다.
콰아아아아앙!
검극에 어려 있던 맹렬한 화염의 구체가 대지를 짓누르며 흑철검진의 완성을 막아섰다.
“너무 생각이 많으면 독이 되는 법이지. 가끔은 단순 무식한 게 정답이야.”
라온은 트레빈과 검을 맞댄 채로 서늘한 미소를 흘렸다.
“광견단.”
주인의 부름을 들은 광풍단원들의 눈동자에 사나운 광기가 도드라졌다.
“모조리 물어뜯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