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08)
제408화
“으아아아아악!”
“벨리센!”
“주, 죽였어! 벨리센의 목을 갈라서 죽였다고!”
“미, 미쳤어….”
아리안 가문의 전 간부들은 목이 떨어져 나간 채 쓰러진 재정관의 시체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이, 이게 무슨….”
위겐 아리안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어떻게 이런 지독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지독해?”
라온이 위겐 아리안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지독한 건 위기에 처한 가문을 버리고, 도망친 네놈들이다.”
그는 비명과 비난을 내뱉는 전 간부들을 무시한 채 군수담당관의 앞에 섰다.
“네 죄를 말하라.”
“나, 나는….”
군수담당관은 감정이 비치지 않는 라온의 눈동자를 보며 턱을 부르르 떨었다.
‘빌어야 해!’
이 남자는 웬디와 다르다.
어리다고 만만하게 보았다간 재정관처럼 목이 날아가게 될 것이다.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머리를 숙여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군수담당관이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였다. 어떠한 핑계도 대지 않고 그저 잘못했다고만 외쳤다.
“무엇이?”
라온의 음성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말에 현혹되지 않고, 문제의 중심을 꿰뚫었다.
“무엇이 죄송하지?”
“가, 가문이 전쟁 중인데, 도망을 쳐, 쳤습니다.”
군수담당관은 간부 중 누구도 하지 못한 진실을 내뱉었다.
“잘 아는군.”
살짝 누그러진 듯한 라온의 목소리에 희망을 가지고 고개를 들었다.
‘기회야.’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서 살아남아야 했다.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가문을 위해 분골쇄신할 테니 한 번만 기회를….”
“그 기회는 이미 지나갔다.”
“자, 잠깐만. 전 가문의 비밀을… 커흑!”
군수담당관은 눈앞에 빛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들어 올리던 손을 내렸다.
‘뭐지?’
힘이 안 들어가는데 더럽게 아픈….
그는 목에 그어진 붉은 선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죽음을 믿을 수 없는 듯 눈을 부릅뜬 채 옆에 있는 다른 간부를 올려다보았다.
“끄헉!”
“으아아아아아악!”
“또, 또야! 또 죽였어!”
아리안 간부들은 군수담당관이 흘린 피에서 도망치듯 알현실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건 사, 살육이다! 항복한 우리에게 왜 이러는 것이냐!”
위겐 아리안은 간부들의 가장 뒤에 숨은 채 악을 질렀다.
“아무리 네가 지그하르트에서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해도 이건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다!”
“월권이라는 건가?”
“그렇다! 우리는 아직 이 가문의 간부다! 네놈이 뭐길래 우리를 죽인단 말이냐!”
“네 이야기는 두 가지가 틀렸다.”
라온이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첫째, 나는 지그하르트에서만 이곳에 대한 통제권을 넘겨받은 게 아니다.”
그 말을 하며 뒤에 있는 웬디를 가리켰다.
“난 아리안 가문의 현 가주. 웬디 아리안에게 전쟁의 총사령관직을 위임받았다. 그리고 난 아직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았어.”
사기의 구체를 태우자마자 쓰러졌기 때문에 전쟁의 끝을 고하지 못했다. 아직 아리안 가문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즉,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총사령관의 권한으로 너희들을 즉결 처분할 수 있다.”
“아….”
“즈, 즉결처분….”
즉결처분이라는 말에 간부들이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두 번째.”
라온은 검지를 접고 중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너희는 간부가 아니라. 범죄자다. 가문을 팔아먹던 도둑놈이자, 전쟁 중인 가문을 버리고 도망친 탈영병이지.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즉참이 가능하다.”
지금 이곳에 잡혀온 간부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구제할 가치가 없다.
전쟁 중에 돌이라도 날랐다면 용서했을 수도 있지만, 저들은 인질을 잡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 쓰레기들이다.
아리안 가문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라도 저들을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답을 해줬으니, 계속하도록 하지.”
라온이 제천검을 세우며 간부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동자에 깃든 살의에 간부들의 안색이 노랗게 질렸다.
“오, 오지 마!”
“저기 가!”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비, 빌어먹을….”
간부들은 벌레들처럼 구석에 쭈그러진 채 가장 덩치가 작은 간부를 희생양처럼 앞으로 내던졌다.
저들끼리도 단합하지 못하고 희생양을 고르는 꼴에 비웃음이 나왔다.
“사, 살려주십시오. 저는 그저 저들을 따랐을….”
그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손목에 힘을 주었다. 낫처럼 휘어진 제천검이 간부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아….”
그는 목에서 흐르는 피를 억지로 막으려다가 뒤로 넘어갔다.
라온은 그 뒤로도 간부 여섯의 목을 베고 나서야 제천검을 밑으로 내렸다.
‘으음….’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일어나자마자, 검을 휘둘렀더니, 손끝이 살짝 저렸다.
-그러게 왜 까부는 것이냐.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쯧쯧 찼다.
-저런 버러지들은 나중에 처리해도 될 텐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가문의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놈들이니까.’
저들은 오랜 세월동안 이 가문을 지배하고 있던 이들이다.
외부인이 자신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혀를 놀리며 웬디와 새로운 간부들에게 마수를 뻗었을 테니, 지금 모조리 베어놔야 한다.
“후우….”
라온이 한 몸이 된 것처럼 구석에 뭉쳐 있는 간부들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제 남은 건 위겐과 그의 형제자매. 즉, 웬디의 가족들이었다.
“웬디 님.”
바로 검을 휘두르지 않고, 뒤를 돌아 웬디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지 않다고 해도 벨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드실 테니, 나가 계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이곳에서 지켜보겠습니다.”
웬디 아리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안구에 눈동자 대신 묵직한 바위가 박혀 있는 듯했다.
‘무슨 일이 있었지?’
이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웬디의 어깨 위로 무언가를 초월한 듯한 의지가 피어나는 듯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라온이 마지막으로 물으며 입술을 가늘게 씹었다.
‘가족인데.’
자신에게는 남이자 죄인이지만, 웬디에게 이들은 가족이다. 이곳에서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것이 신경 쓰였다.
“괜찮습니다. 가주로서 죄인들의 끝을 지켜보겠습니다.”
웬디는 남을 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으로 간부들을 굽어보았다.
“웨, 웬디야! 네가 어릴 때 이 삼촌이 업어주지 않았느냐!”
가장 앞에 있던 염소수염의 총관이 웬디에게 손짓했다.
“마, 마지막 기회를 다오! 한 번만 용서해준다면….”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건 당신입니다.”
웬디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탈영자에게 주어질 건 칼날뿐입니다.”
그는 이제 해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졌군.
‘그래. 무언가가 변했어.’
웬디 아리안의 내부가 확연하게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아직은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정확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닐 거야.’
사람의 성격이 3일 만에 변하는 건 불가능하다. 간신히 참고 있을 테니,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그녀를 위한 일이었다.
촤아아악!
라온이 위로 든 제천검을 내리쳤다. 망설임 없이 떨어진 검이 총관의 목을 갈랐다.
붉은 피가 흘러내려 구석에 처박힌 간부들의 발을 적셨다.
“웨, 웬디야!”
“네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우리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구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부추기다니! 이 악귀 같은 년!”
간부들이 웬디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웬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라온은 욕을 한 사람들부터 하나씩 목을 떨어뜨렸다.
후우우욱.
어느새 제천검 위로 더운 피가 뚝뚝 흘러내렸고, 남은 사람은 위겐 아리안 한 명뿐이었다.
“웨, 웬디야!”
위겐 아리안은 떨리는 손과 발로 기어서 웬디에게 다가갔다.
“미, 미안하다! 지금까지 내가 다 잘못했어! 제발 살려다오!”
그는 웬디의 발목을 붙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부짖었다. 이런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평생 감옥에 있어도 상관없다! 제, 제발 살려만 다오!”
“어렸을 때 제게 사준 사탕 기억하시나요?”
“사, 사탕?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은 장난칠 때가 아니라, 어떻게든 저 괴물을 설득….”
웬디는 무릎 꿇고 비는 위겐을 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내가 지금까지 당신의 밑에서 버틴 이유는….’
막대사탕 때문이었지.
어린 시절. 위겐이 사주었던 막대사탕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따뜻했던 손과 막대사탕의 달달함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밑에서 복종하는 삶을 만들었다.
위겐이 직접 준 선물은 그 막대사탕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물어보았지만, 예상대로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 사탕은 모두 녹았어.’
이번 전쟁을 치르며 위겐이 주었던 막대사탕은 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녹아내렸다. 더 이상 그에게 미련 따위는 없었다.
웬디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쪽을 보는 라온의 시선에서 가족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신뢰가 다가왔다.
그를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다짐이 떠오르며 짓눌린 심장에 거세게 뛰었다.
“아버지.”
웬디가 무릎을 굽혀서 위겐과 시선을 마주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이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그, 그럼….”
“죗값을 치르고 나면 태상가주의 자리를 드려서 조언을 구하려고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죄를 저지르셨습니다.”
그녀의 눈동자 위로 북해의 바람처럼 서늘한 기운이 차올랐다.
“가주가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인질을 잡은 채 가문을 버리고 도망치다니, 대륙 역사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웬디가 차갑게 굳은 안색으로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
그녀의 말에 위겐이 고개를 들었다. 죽은 듯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에 희망이 돋아났다.
“고, 고맙다! 정말 고마워! 평생 가문에 봉사하면서….”
“큰 착각을 하셨군요.”
“뭐?”
“당신의 추함을. 이 가문의 더러움을 역사에 남길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겁니다.”
웬디는 잘못 이해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라온 님. 죄송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위겐에게 다가갔다.
“자, 잠깐! 나는 이 가문의 가주….”
웬디가 힘들지 않도록 위겐의 말과 목을 동시에 베었다.
“어흑….”
위겐은 때 묻은 손톱으로 갈라진 목을 긁으며 쓰러졌다.
“후….”
라온은 제천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숨을 골랐다.
웬디 아리안은 죽은 이들을 한 명 씩 살피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라온 님.”
이쪽을 보는 그녀의 뺨을 타고 가느다란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탕 하나만 사주시겠어요?”
* * *
자그마한 창문 하나 없는 어둑한 방.
중앙에 놓여 있는 백골에서 피어나는 푸른 불꽃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암실에서 근육과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뿌드드드득!
한 시간가량 들리던 괴기스러운 소리가 멈추고, 백골의 아래에서 아크 리치의 가면을 쓴 망혼귀가 일어섰다.
다만 그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피부처럼 두르고 있던 죽음의 기운은 모두 사라졌고, 로브는 다 찢어졌으며, 가면의 이마 부근에 큼지막한 흠집이 새겨져 있었다.
“빌어먹을!”
망혼귀가 땅을 내리치며 악을 질렀다.
“라온 지그하트르! 이 버러지가 감히!”
다 되었다.
천 년 동안 사기를 끌어모은 보옥이 완성되었으니, 라온 지그하르트와 놈이 부른 지원군을 모두 죽일 자신이 있었다.
리메르가 끼어들었지만 헬 필그림을 상대하느라 힘이 빠졌으니 놈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 잡았다고 생각한 라온 지그하르트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졌다.
‘쥐새끼 같은 놈!’
라온 지그하르트는 일부러 힘을 숨겨서 사기의 막을 부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은 뒤 신성력이 깃든 비도로 보옥과 자신의 핵을 동시에 깨부쉈다.
신성력 때문에 부활까지 늦어져서 3일이 지나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거기다 놈은 죽지도 않았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라온은 그 거대한 사기의 폭발에서 살아남았다. 더럽게 운 좋은 놈이었다.
‘죽인다. 어떻게 해서든 죽일 거야.’
지금까지는 귀찮은 방해꾼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아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수를 이용해서라도 철저하게 놈을 죽일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아크 리치 가면의 특성 덕분에 부활은 했지만, 가장 뛰어난 육체와 보옥을 잃었으니, 다시 힘을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대륙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놈을 죽일 것이다.
“기필코 죽여주마.”
“꼴이 좋네.”
라온을 죽이겠다고 다짐할 때 방 전체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모를 수가 없는 미친년. 멀린의 음성이었다.
“멀린? 네가 왜 이 방에 있는 것이냐!”
망혼귀가 소리를 지르며 돌아보았지만, 멀린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있어! 당장 나와라!”
그가 탐색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육체에 남은 사기가 부족하여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미칠 거면 제대로 미치라고!”
망혼귀가 멀린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벽에 손을 얹고 얼마 없는 사기를 내뿜었다.
“음?”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굳어 있었다.
“이게 대체….”
망혼귀가 턱을 덜덜 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둠에 적응하고 나서야 방 위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이곳은 부활을 지정한 방이 아니라, 뒤편이 어두운 반투명한 어항 같은 곳이었다.
‘어항?’
설마 금장의 어항?
금장의 어항은 원하는 대상을 어항 안에 가둘 수 있는 아티팩트. 능력만 보면 절대적이지만, 가두기 위해서는 이틀 이상의 시간을 어항 안에서 보내야 하기에 거의 의미 없는 도구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죽은 뒤 바로 부활의 방으로 보내져서 작은 뼈 상태로 삼 일을 보냈다. 즉, 금장의 어항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멀린! 이 정신 나간 년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당장 나와!”
망혼귀가 악을 지르자, 반대편 벽이 샘물처럼 출렁이며 노파의 가면을 쓴 멀린이 걸어 나왔다.
“넌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어.”
멀린이 이쪽을 보며 서늘한 안광을 드러냈다.
“해서는 안 될 짓? 그게 무슨 말이냐!”
“라온이 피를 흘리고 쓰러졌잖아.”
“뭐?”
“그이가 6일 동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싸우기만 했으니, 너는 평생 이곳에서 썩어야지.”
그녀는 당연한 대가라며 섬뜩한 웃음을 그렸다.
“타천께서 이대로 넘어갈 거라 생각하는 거냐!”
“널 죽이지만 않는다면 그는 모를 거야. 진짜 나는 다른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니까.”
멀린은 이 육체는 분신일 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평소 네 성격이라면 힘을 회복할 때까지 타천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 그도 의심하지 않겠지.”
그녀가 쓰고 있는 노파 가면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모습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들켜도 상관없고.”
“뭐?”
“이제 내 길은 환원을 향하지 않으니까.”
멀린은 그 말을 남기고, 거품이 되어 어항 속에서 사라졌다. 분신이라고 했으니, 본체로 돌아간 것 같았다.
뿌드득.
망혼귀가 이를 악물었다.
“돌았군. 제대로 돌았어.”
환원이라 함은 에덴의 궁극적인 목표. 그것조차 관심 없다는 것은 라온. 그 어린놈에게 완전히 빠졌다는 뜻이다.
‘그래도 괜찮아.’
그 미친년이 지켜보지만 않는다면 이곳을 벗어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어항을 깨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멀린. 네 눈앞에서 라온을 죽여주마.”
어항 속은 마나가 굉장히 옅었지만, 아예 모을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억지로 마나를 끌어모으려는데, 목 뒤가 따끔하며 꼭 누가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오싹한 소름이 돋아 올랐다.
‘뭐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고오오오.
검게 물든 하늘. 그 위에 시뻘건 십자가가 박힌 안구가 꿈틀거렸다. 멀린이다. 그녀는 떠난 게 아니라, 외부에서 어항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살의로 가득 차오른 눈동자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꽉 조여들었다.
“누굴 죽인다고?”
안구 밑. 붉은 입술이 달싹이며 섬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누굴 죽인다고?”
귓속을 칼로 헤집는 듯한 목소리에 귀를 막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끊어지질 않았다.
“으아아아아악! 그만!”
망혼귀가 목을 찢을 듯 비명을 지르고 나서야 멀린의 목소리가 멈췄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지켜볼 거야.”
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