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33)
제433화
라온은 각자 오른쪽 담과 왼쪽 담을 넘어온 글렌과 렉타르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두 사람도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건지, 아니면 똑같은 순간에 나와서 비슷한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어색하게 서 있는 글렌과 렉타르를 불렀지만, 두 사람은 이쪽을 보지도 않았다.
글렌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렉타르를 노려보았고, 렉타르는 미간을 구긴 채 글렌의 눈을 마주했다.
“가주님. 렉타르 님!”
라온이 크게 이름을 부르자, 두 사람이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음, 네가 새벽 수련을 나간다고 해서 찾아왔다. 어떤 수련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우리가 약속한 것도 있잖느냐.”
렉타르가 먼저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어제 말했던 대로 검술 수련을 도와주기 위해서 왔다며 진중한 눈빛을 일으켰다.
“그러셨군요.”
라온이 렉타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말씀을 하셨지.’
그는 별관으로 가는 길에 앞으로도 검술을 봐주고 싶다고 말했고, 숙소를 안내해줄 때도 새벽 수련을 하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등장이었다.
“가주님.”
라온이 그럴만하다고 중얼거리며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주님께서는 갑자기 왜 오신 건지….”
렉타르와 달리 글렌이 이곳에 온 이유는 전혀 알 수가 없었기에 조금 불안해졌다.
“크흠.”
글렌이 헛기침하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당황이 비치던 눈빛이 북풍을 쐰 듯 얼어붙었다.
“어제 말했지 않느냐. 네게 줄 부상은 따로 있다고.”
“아….”
“무학서 대신 내가 직접 검술을 가르칠 것이다.”
그는 금패에 어울리는 부상은 무학서 따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검술이라고 말하며 오늘부터 자신이 직접 가르침을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어….”
라온이 글렌과 렉타르를 번갈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뭐지?’
꿈인가?
대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검사 두 사람이 동시에 찾아와서 검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니, 현실 같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두 분 모두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시려고 이 새벽에 5연무장에 찾아오셨다는 거죠?”
“그래.”
“그렇다.”
렉타르와 글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두 사람은 정작 가르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 보며 매서운 눈빛을 쏘아냈다.
‘쌀쌀해.’
조금 전까지 검을 휘둘러서 열기가 올라와야 하건만, 글렌과 렉타르가 일으키는 냉랭한 분위기에 북해에 들어간 듯 전신에 냉기가 차올랐다.
라온이 스파크가 튀는 듯한 허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글렌과 렉타르가 한 명씩 와주었다면 기연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이 한 번에 오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세 사람의 침묵이 잠시 이어진 후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글렌이었다.
“렉타르 공.”
글렌이 뒷짐을 진 채로 턱을 들어 올렸다.
“저 아이는 지그하르트의 검사요. 내가 직접 가르치는 게 맞는 것 같소.”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위에 있는 가문의 가주와 가솔의 위치를 재확인시키며 입매를 무겁게 내렸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렉타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물러날 줄 알았지만, 그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만 라온은 저와 선약을 했습니다. 바로 어제. 한동안 검술 훈련을 도와주기로 했었죠. 이 새벽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을 도와주기로 한 건 맞지만, 새벽 훈련은 아니었다. 그는 하지도 않았던 말까지 덧붙이며 이쪽이 먼저라고 단언했다.
“라온의 스승인 광검에게도 허락을 받았으니, 이럴 때는 선약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으음….”
렉타르는 당황한 와중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본인이 먼저인 이유를 읊었다.
광검이라는 이명이 나왔을 때 글렌의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게 보였다.
“선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라온은 지그하르트의 가솔이오. 우선시 되어야 할 건 가문의 일 아니겠소.”
글렌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입술을 가늘게 씹었다.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 지금 라온은 휴가를 받지 않았습니까.”
렉타르 역시 밀리지 않고, 끝까지 할 말을 쏘아붙였다.
두 사람은 서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채 지금 당장 라온을 가르치겠다고 서늘한 안광을 내뿜었다.
“…끝이 안 나는군.”
“그렇네요. 이리되면….”
글렌과 렉타르는 담담하지만 서늘한 논쟁을 하다가 동시에 라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라온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군요.”
“그게 맞겠지.”
상대를 노리던 매서운 두 쌍의 눈동자가 동시에 라온을 향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으냐.”
“으음….”
라온은 글렌과 렉타르의 눈동자에서 번쩍이는 스파크를 마주하며 손목을 꽉 부여잡았다.
‘압박이 장난이 아니야.’
자그마한 오러나, 기세를 일으키지 않음에도 두 사람이 일으키는 압력이 무시무시했다. 그저 눈빛만으로 심장이 깨져나갈 것만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한다.’
천금을 주어도 얻을 수 없는 무학들이기에 글렌과 렉타르의 가르침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뇌리가 떨리는 것 같지만,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다만 지금 상황을 보면 무슨 짓을 해도 한 사람을 받으면, 한 사람은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자칫하면 두 사람이 싸워서 이 연무장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윽….”
라온이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자, 두 사람이 일으키는 존재감이 점차 두꺼워졌다.
-음냐. 배가 부르느니라. 나눠 먹겠느니라.
얼음 꽃팔찌에서 입만 튀어나온 라스가 갑자기 잠꼬대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면서 먹는 꿈을 꾸는 듯싶었다.
‘진짜 이놈은 도움이 안 되는….’
손가락으로 라스의 입을 튕기려다가 멈췄다.
‘나눠 먹는다고?’
그래. 지금 한 번에 먹을 필요는 없지.
생각을 달리하니, 두 사람이 가르치겠다고 경쟁을 하는 지금이 오히려 황금 같은 기회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제가 렉타르 님과 함께 수련하겠다고 한 것도 맞고, 가주님께서 부상을 주겠다고 하신 것도 맞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두 사람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하죠.”
“음?”
“이렇게?”
두 사람은 의외의 대답이었던지 상체를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제가 자신 있다고 여기는 검술은 강검, 중검, 쾌검이고, 반대로 아직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검술은 변검, 환검, 유검, 절검, 연검, 폭검입니다.”
라온은 의문을 담은 두 사람의 눈을 보며 아직 모자란 검술의 묘리들을 하나씩 읊었다.
“각자 세 개씩 골라서 제게 수련을 시켜주신 후에 누가 더 잘 가르쳤는지 확인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
“응?”
두 사람은 대놓고 가르침 대결을 벌이게 할 줄은 몰랐는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하.”
글렌이 라온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요 녀석 봐라?’
렉타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떠나서 라온이 이 상황을 어떻게 넘길지 궁금했는데, 아예 싸우라고 판을 깔 줄은 몰랐다.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발칙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알면서도 피할 수 없게 만들어진 판이라 넘어가 줄 수밖에 없었다.
“흐음….”
렉타르도 라온의 담담한 눈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에드가. 네 아들답지 않구나.’
그저 곧기만 했던 아들과 달리 손주는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북멸왕이라 불리는 글렌도 이 상황을 어쩌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난 네 아들이 더 마음에 든다.’
손주의 계책에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아예 퐁당 빠져 주기로 마음먹었다.
라온은 당황하다가 불이 붙듯 뜨거워지는 글렌과 렉타르의 눈동자를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게 정답일 거야.’
이유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경쟁하고 있으니, 아예 불싸움을 하도록 판을 벌여 주는 게 옳았다.
아마 자신의 방식이 발칙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련 경지는 내가 조절하면 되니까.’
두 사람이 모두 삐지지 않도록 수련의 발전 정도를 조절하면 저 둘 모두에게 계속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마르지 않는 검술 샘물이나 다름없었다.
“싫으세요? 싫으신 분이 있다면 그분은 제외하고….”
“아니다!”
“할 것이다!”
라온이 싫으면 가라고 중얼거리자, 글렌과 렉타르가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변검, 유검, 연검을 알려주마!”
“그럼 제가 환검, 절검, 폭검을 맡겠습니다.”
글렌과 렉타르는 순식간에 서로 가르칠 검술까지 정했다.
“좋습니다.”
라온은 서로를 향한 경쟁심이 불붙은 두 사람을 보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지금 전 휴가 중이고 선약을 검귀 님과 먼저 했으니 점심 전까지는 검귀 님께 가르침을 받고, 오후부터는 가주님께 검술 지도를 받겠습니다.”
아직 성격이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은 검귀와 먼저 수련을 하고, 논공행상이 확실하여 무조건 부상을 줄 글렌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게 지금 자신이 생각한 두 사람의 검술을 모두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후후!”
“으음….”
검귀는 이겼다는 듯 턱을 치켜들었고, 글렌은 인상을 구기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승자와 패자가 나뉜 표정. 다만 글렌도 그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지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그럼 가주님께서는 점심 이후에 오시지요. 지금부터는 제 시간입니다.”
검귀도 하루종일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운지 인상을 찌푸렸지만, 일단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12시에 오겠소.”
글렌이 이를 가는 듯한 거친 음성을 뱉었다.
“12시? 그건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점심이 12시인 건 당연하지 않소?”
“저희는 항상 2시까지 수련을 해왔습니다.”
“이쪽은 무조건 12시에 점심을 먹소.”
“그럼 점심시간을 따로 주셔야….”
글렌과 렉타르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을 가지고 싸우는 북멸왕과 검귀를 보자, 다시 한번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라온은 진지하게 한 시간으로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며 본인의 뺨을 때렸다.
‘꿈이 아니야.’
그럼 진짜 뭔데….
* * *
결국 12시를 말하던 글렌과 2시를 말하던 렉타르는 오후 1시로 합의를 하고 나서야 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군.”
렉타르가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바로 시작하자꾸나. 너무 늦었어.”
“예.”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차분해진 렉타르를 보자, 조금 전의 일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변검, 유검, 연검, 환검, 절검에 폭검까지. 너는 다른 이들보다도 더 높은 만검을 쌓고 싶은 모양이구나.”
렉타르가 느릿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정말 원하는 길이 무엇이냐.”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검사가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 리메르와 실비아에게 선언했던 말을 그대로 꺼냈다. 그 마음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군. 그래서 만검인가….”
렉타르가 옅게 웃으며 뒷짐 진 손을 풀었다.
“일단 광아검에 환검의 묘리만을 담아서 펼쳐보아라.”
“알겠습니다.”
라온은 정중하게 예를 취하고서 제천검을 뽑았다. 본래 광아검에 담겨 있는 사나움과 빠름, 강렬함을 죽이고 오직 환상만을 담았다.
제천검이 유리창을 스치는 햇살처럼 번지며 열 개가 넘는 칼날을 만들어 떨어져 내렸다.
속도, 위력, 매서움이 죽었지만, 검으로 꽃을 피우는 듯한 환상이 이어졌다.
라온은 그렇게 환상이 깃든 광아검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낸 뒤 제천검을 내렸다.
“광아검에 환검만을 담은 건 처음이냐?”
검귀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눈동자를 올렸다.
“예.”
“대단하군.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구나.”
그는 광아검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환검술을 목격한 것 같다며 멋진 변화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너보다 하수는 물론이고, 동수의 무인도 막기 어려운 검술이다. 하지만 너는 더 위를 보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라온은 당연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 일단 첫 초식부터 시작하지. 네 검이 화려하기는 했지만, 진검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환검에서 중요한 점은 많은 환상이 아니라 하나의 환상도 진짜처럼 만드는 것이다.”
렉타르는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어떨 때 검이 흔들렸는지를 하나씩 자세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역시 대단하셔.’
한 번 본 것만으로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강화해야 하는지 파악하다니, 괜히 검귀가 아니었다.
“틀린 답을 발견했으니, 이제 정답을 맞출 때지. 조금 전 내가 말한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다시 광아검을 펼쳐보아라.”
“예.”
라온은 렉타르의 진심 어린 조언들을 떠올리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한동안 즐겁겠는데.’
* * *
글렌은 북망산 언덕에 서서 5연무장을 내려다보았다.
“젠장.”
그는 드물게도 육성으로 욕설을 뱉으며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일이 이렇게 되다니….’
라온과 렉타르가 더 친해지기 전에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저쪽의 움직임도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내 생각을 알고 있었던 건가.’
렉타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라온에 관한 애정과 집착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어제 부상이 바뀐 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바로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게 분명했다.
‘여우 같은 늙은이야.’
괜히 검귀라는 이명을 얻은 건 아닌지 움직임과 생각이 모두 빨랐다.
‘더 마음에 안 드는 건….’
제대로 가르친다는 거야.
조금만 어긋나거나, 이상한 짓을 하면 바로 쫓아가서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검귀는 뭐라고 할 수 없게 성심성의껏 라온을 가르치고 있었다.
“후우….”
글렌이 입술을 꾹 깨물며 매서운 눈빛을 일으켰다.
‘할아버지? 절대 그 꼴은 못 본다.’
리메르가 했던 저쪽이 진짜 할아버지 같았다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솔직히 말해서 어제는 라온이 자신을 두고 렉타르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악몽까지 꿨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늘 일이 끝나면 다시 가서 리메르를 조금 더 패야 할 것 같았다. 속이 거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글렌은 불안한 듯 시계의 초침을 세며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 질 수 없어.’
내 손자는 내가 키운다.
* * *
“후우….”
라온이 제천검을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힘드네.’
렉타르의 가르침은 여전히 자세했지만, 글렌에 대한 경쟁심 때문에 이전보다 몇 배나 거칠게 수련을 몰아붙였다.
부족한 부분을 숨도 쉬지 못하고 연습하고 있다 보니, 몸과 정신에 여유가 없었다.
이런 강행군은 오랜만이라 반가우면서도 피로감이 들었다.
‘가주님 수업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점심 이후 글렌의 수업이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 함께 들었다.
-점심을 먹으면 다 회복될 것이니라.
뒤늦게 일어나서 상황을 파악한 라스가 허약한 생각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파인애플 소녀가 단단히 준비했을 텐데, 벌써 기대가 되느니라!
녀석은 한 상 가득한 점심을 떠올렸는지 크게 입맛을 다셨다.
‘그럴까?’
난 아니라고 보는데.
등골이 서늘한 게 라스의 바람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지만,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일단 입을 다물었다.
“아직 모자라다. 지금의 너라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알겠습니다.”
라온이 렉타르의 조언을 따라 환상이 깃든 광아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 뒤편에서 어마어마하게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아….”
돌아보니 글렌이 귀신처럼 시뻘건 눈동자를 빛내며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끄응, 아직 시간이 남았다. 계속해.”
렉타르는 아직은 점심시간이 아니라며 계속 검을 휘두르라 지시했다.
“네.”
라온은 식은땀을 훔치며 조언을 들었던 대로 광아검을 펼쳐냈다. 환상의 개수는 줄었지만 진검과 같은 현실감이 느껴지는 검들이 춤을 추듯 출렁였다.
“거기까지.”
마지막 초식을 끝내고 두 번째로 검을 펼치려고 할 때 글렌이 손을 들어 올렸다.
“1시다.”
“음….”
렉타르는 시간을 확인하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다만 이전에 약속한 게 있기에 반박하지 못하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가주. 1시가 맞지만 라온은 저와 함께 식사를….”
“그럴 필요 없소.”
글렌이 고개를 저으며 품에서 종이에 포장되어 있는 무언가를 꺼내 라온에게 던졌다.
“어….”
라온은 글렌이 던진 물건을 받았다. 왠지 익숙한 촉각이었다.
-이, 이 냄새는….
라스는 종이에 포장된 물건을 보고 불안한 듯 입술을 떨었다.
“설마….”
라온이 콧잔등을 찡그리며 포장을 뜯었다. 예상대로였다. 심심하면 먹었던 나딘 빵이 들어 있었다.
“식사를 할 틈은 없다. 지금부터 진짜 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마.”
그는 무인에게 밥 먹는 시간은 사치라며 빨리 검을 들으라 손짓했다.
-이 영감탱이가!
라스가 빽 소리를 지르며 글렌에게 달려들었다.
-고무빵을 먹이려 들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당장 덤벼라!
녀석은 일대일로 뜨자며 주먹을 마구 휘저었다.
라온은 그나마 따끈한 나딘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해지는 건 좋은데….’
나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