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54)
제454화
라온이 혈운겸과 백랑도를 고문하고 있는 심문실 위층. 창고로 사용되는 낡은 방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머리를 말끔하게 넘긴 글렌이 들어섰다.
“오셨군요.”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로엔이 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글렌은 로엔의 앞에 있는 소파에 등을 묻으며 손가락으로 아래층을 가리켰다.
“으음….”
로엔이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시선을 내렸다.
“아무래도 저와 가주님이 큰 착각을 한 듯 합니다.”
그는 밑층에 있는 라온의 기척을 살피며 눈썹을 떨었다.
“착각?”
“예. 저희는 라온 도련님이 심문을 제대로 못 할 거라 판단했지 않습니까?”
“그랬지.”
글렌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문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심문이라는 건 무력과 정신력이 강하다고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문 상대에게 평생 원망 당하고, 저주받더라도 상관없다는 독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라온은 아직 어리다. 그 정도의 독심이 만들어질 만한 일을 겪지도 않았으니, 제대로 된 심문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저희의 착각이었습니다.”
로엔이 떨떠름한 눈동자로 글렌을 바라보았다.
“라온 도련님은 무력과 정신력만이 아니라, 이미 독심까지 완성되어 계십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나서도 도련님보다 잘할 거라는 생각이 안 드는군요.”
“그게 정말인가? 대체 뭘 했기에….”
글렌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소파에서 등을 뗐다.
“가만히 계셨습니다.”
“무슨…?”
“심문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심문 상대에게 이쪽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거죠. 정보를 간절하게 원하는 걸 티 내게 되면 적에게 상황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 알고 있네.”
“라온 도련님은 아예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시작부터 본인이 절대적 위치에 섰다는 것을 드러내셨죠. 어제부터….”
로엔은 글렌에게 라온이 무엇을 했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럼 고문법만 써버린 후에 지금까지 저렇게 방치하는 중이라고?”
“예. 솔직히 저도 저런 식의 심문은 못 할 듯합니다.”
혈운겸과 백랑도의 입을 열 자신은 있지만, 지금의 라온처럼 여유롭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질문을 하지 않고 고문만 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 상대에게 아예 관심을 주지 않기에 먹힐 수밖에 없는 공포스러운 고문법이었다.
“허….”
글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리며 눈을 내리감았다. 직접 라온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로엔은 그런 글렌을 보며 오른손으로 왼팔의 소매를 쓸어내렸다.
‘기분이 묘하시겠지.’
글렌은 라온이 아직 세상의 어둠에 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런 독기가 생겼을 줄은 몰랐을 테니,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음….”
글렌이 천천히 눈을 뜨며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라온은 책을 읽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것도 가주님이 넘겨주신 그 무학서를 읽고 있죠.”
“미친 녀석이로군.”
그는 웬만해서는 보여주지 않는 시원한 미소를 흘렸다.
“가주님?”
“아무래도 그 게으름뱅이 녀석이 나보다 라온을 더 잘 보고 있었던 것 같구나.”
글렌이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상과 달리 라온의 독기를 보고 더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가주전에서는 아이언드에게 이용당한 검사들을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면서 나서주었고, 적이 있는 이곳에서는 악마도 두려움에 떨 만한 고문을 하고 있지 않느냐.”
글렌은 알현실에서 보았던 라온과 이곳 심문실에서의 라온이 극과 극으로 다른 것을 말하며 턱수염을 매만졌다.
“아군에게는 뚫리지 않으면서도 따스한 갑주가 되어주고, 적에게는 심장을 뚫을 차가운 칼날이 되어야 하는 게 가주의 역할이지. 난 그걸 이루지 못했지만, 저 아이는 할 수 있을 듯 싶군.”
그는 라온이 좋은 가주가 될 것 같다며 들떠 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로엔이 글렌의 미소를 보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
‘이젠 정말 진심이신 건가.’
글렌이 라온을 가주로 생각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대로 손주 콩깍지가 씌인 것 같았다.
‘아니, 콩깍지라고는 볼 수 없지.’
내 생각도 비슷하니까.
자신 역시 라온이 가주가 된다면 지그하르트가 더 높은 곳에 올라갈 것 같았기에 콩깍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음.”
글렌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제 시작인가 보군.”
“예. 끌어내는 시간도 딱 적당하군요.”
조금만 더 끌었다면 백랑도와 혈운겸이 폐인이 되거나 죽었을 테고, 조금 빨리 끝냈으면 기가 안 죽었을 것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적절한 순간이었다.
“대단하군.”
“예. 정말이지….”
글렌과 로엔은 라온이 정보를 끌어내는 것을 확인하고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유롭게 라온의 심문을 즐기던 두 사람은 백랑도의 입에서 나온 정보를 듣자마자 우뚝 멈춰 섰다.
“요, 용. 아니, 드래곤의 가면이라면 설마….”
로엔은 턱을 떨며 드물게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천마인가.”
글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은 이전에 보았던 그놈일 수도 있겠지. 둘 중 누가 되었든….”
그가 살짝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눈매를 찌푸렸다.
“진정한 난세가 시작될 듯하군.”
* * *
라온은 백랑도를 노려보며 재차 물었다.
“드래곤 맞아? 드레이크가 아니라?”
“그림자 때문에 형태만 보았지만, 드래곤이 마, 맞다.”
백랑도는 드레이크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나왔다며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
에덴에 관한 정보는 상당히 많이 모았지만, 드래곤의 투구를 쓴 무인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에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엔?”
“다른 육황오마와 만나는 건 보지 못했다. 그 드래곤의 투구를 쓴 자도 밤에 우연히 보았을 뿐이라….”
“투구의 색은? 정말 드래곤의 투구라면 색이 있을 텐데?”
“마, 말했잖나. 그림자 때문에 형태만 보였다고.”
백랑도는 색까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손가락을 떨었다.
쯧.
라온이 짧게 혀를 찼다. 드래곤의 투구를 쓴 자에 대해 들어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좋은 정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럼 다음 질문이다. 다른 신주오령과….”
저녁이 될 때까지 백랑도와 혈운겸을 잡고 질문을 던졌지만, 두 사람은 딱히 아는 게 없었다.
백경의 정보는 수장인 희극제가 독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로군.”
라온은 지쳐서 숨을 헐떡거리는 백랑도와 혈운겸을 기절시킨 뒤 심문실을 나왔다.
-이제 돌아가는 것이냐?
라스가 백랑도나 혈운겸보다 더 힘 빠진 눈동자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 제발 좀 가자. 허공에 구슬 아이스크림이 떠다니고 있느니라!
녀석은 헛것이 보인다며 약속 좀 지키라고 소리를 질렀다.
‘맛은 골랐어?’
-그, 그건 아직이니라….
‘어휴.’
-일단 매장에 가면 고를 수 있느니라! 가기나 좀 하라고!
‘보고부터 하고.’
-그놈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느니라!
라스는 글렌과 로엔이 이미 다 들었다고 말하며 바로 매장에 가자고 손짓했다.
‘두 분이 오셨던 건가?’
글렌과 로엔 둘 다 자신보다 경지가 높기에 몰래 왔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보고는 해야 해.’
라온은 고개를 젓고서 지하 감옥을 나왔다. 간수들에게 백랑도와 혈운겸을 부탁하고 알현실로 향했다.
라스의 말대로인지 로엔이 바로 문을 열어주어서 빠르게 글렌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가주님을….”
“인사는 되었다.”
글렌은 가손을 젓고서 보고부터 하라고 지시했다.
“일단 백경과 흑탑은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라온은 백랑도와 혈운겸에게 얻어낸 정보들을 모두 보고했다.
글렌과 로엔 둘 다 그리 놀리지 않았지만, 드래곤의 투구에 대해 말할 때는 허공에 추를 매단 듯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혹시 드래곤의 투구를 쓴 자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지금은 모르겠군.”
글렌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는 드래곤의 투구를 쓴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 가보도록.”
“고생하셨습니다.”
로엔이 나머지는 가주전에서 알아서 할 테니, 가서 쉬라고 말해주었다.
“예. 그럼.”
라온이 글렌에게 고개를 숙인 후 알현실을 나왔다.
-드디어 끝났구나!
라스는 별관이 아니라, 구슬 아이스크림 매장으로 가자며 어깨를 마구 두드렸다.
‘흐음….’
라온이 입맛을 다시며 하늘을 보았다. 지금이라면 딱 문 닫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겠어.’
제 입으로 한 약속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끼야오!
라스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허공에 도톰한 주먹을 후렸다.
라온이 피식 웃으며 본관을 나섰다. 정원을 지나서 상가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돌릴 때 어둑한 나무뿌리 아래서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음?”
고개를 돌리니, 눈처럼 하얀 털을 입은 족제비가 두 발로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과, 광녀!
라스가 족제비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었다.
-안 돼! 안 된다고! 오늘은 제발!
* * *
“으하함!”
큼지막한 방 전체에 깔려있는 이불과 빨래 더미 속에서 리메르가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벌써 아침인가?”
그는 달빛이 내려오는 창문을 보며 아침이라는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라온이 아이언드를 조졌다던데, 나도 한 번 가봐야….”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겠죠.”
문밖에서 들린 버렌의 목소리에 리메르의 고개가 돌아갔다.
“버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버렌은 리메르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왜 다들 내 대답은 안 듣고 일단 들어오고 보는 건… 엉?”
리메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방에 들어온 건 버렌만이 아니었다. 루난과 마르타도 함께 있었다.
“너희가 웬일로?”
그들이 찾아온 건 예전에 병문안 온 이후로 처음이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온 대신에 보고하러 온 거야?”
“그건 아닙니다.”
버렌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강하게 만들어줘요.”
루난이 리메르의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꾸벅했다.
“응? 나한테 한 소리야?”
리메르는 갑작스러운 일에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을 껌벅거렸다.
“그럼 여기에 대주 빼고 누가 있는데요.”
마르타가 팔짱을 낀 채로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너희 수련 열심히 하잖아. 그거면 됐지. 뭘 더 강해지려고….”
“라온의 등이 안 보여.”
루난이 리메르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입을 내밀었다.
“라온?”
리메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잖아. 너희도 팔두마차지만, 걔는 십육두. 아니 서른두마차라고. 말 30마리가 끌고 가는데 어떻게 잡아.”
그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희에겐 너희의….”
“길이 있다.”
마르타가 리메르의 말을 끊으며 눈매를 찡그렸다.
“알고 있는 말이에요.”
“근데 왜?”
“이 잠탱이가 말했잖아요. 잡는 게 아니라, 등 자체가 안 보인다고.”
그녀가 쭈그려 앉은 루난을 가리켰다.
“그놈을 따라잡을 생각 따위는 한참 전에 버렸습니다. 저희는 그저 그 괴물 녀석의 등을 놓치지 않고 싶을 뿐입니다.”
버렌이 부탁한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으음, 검계현신에 관한 거지? 내가 귀찮아서 그러는 건 아니고….”
리메르가 빨래 더미에 등을 기대며 눈을 내리감았다.
“너희는 아직 마스터도 안 됐잖아. 지금은 일단 마스터가 되기 위한 검술과 오러 훈련부터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건 하고 왔습니다.”
“했어.”
“했다고!”
세 사람의 외침에 슬쩍 눈을 떴다. 지금 보니 버렌, 마르타, 루난의 훈련복은 모두 엉망이었다. 하루종일 수련을 하고 온 것 같았다.
“그럼 정규 훈련을 하고 나한테 추가로 검계에 관한 훈련까지 받겠다?”
“예.”
“그래요.”
“응.”
버렌, 마르타, 루난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쯥.
리메르가 뻗친 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다셨다.
‘시간이 좀 애매한데.’
바람만이 아니라, 벼락의 기운까지 끌어모으는 중이라 시간이 부족했지만 세 사람의 진지한 눈동자를 마주하자, 거절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예전 자신의 밑에 있던 녀석들이 떠올라 조금 그리운 생각도 들었다.
“좋아.”
리메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꽤 힘들 거야. 지금까지의 수련과는 다를 테니까. 그럼 바로 첫 번째 수련을 시작하지.”
리메르가 손가락을 휘휘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과 달리 그의 눈동자에 뇌전처럼 번쩍이는 듯한 위엄이 차올랐다.
“음….”
버렌과 루난, 마르타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리메르를 바라보았다.
“지금 가서 맥주랑 안주를 사서….”
“하….”
“야! 죽여! 내가 저 인간을. 아니, 저 엘프를 믿은 게 잘못이지!”
“흐아암.”
마르타가 리메르를 밟기 시작하고, 버렌이 그녀를 말렸으며 루난은 하품을 했다.
“아, 일단 배부터 채우자고! 북망산도 식후경!”
* * *
라온은 족제비. 아니, 멀린을 따라 정원의 구석으로 향했다.
하늘이 어둑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족제비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까딱했다. 매번 보지만 신기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멀린의 앞에 주저앉았다.
“뭐가?”
멀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족제비의 모습이었기에 솔직히 조금 귀엽긴 했다.
“왜 백련대를 건드린 거냐고.”
“걔들이 먼저 널 건드렸잖아.”
그녀는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 까만 눈동자를 깜박였다.
“후….”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쌌다.
‘진짜였나.’
멀린이 백련대를 습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혹시나 했던 예상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이유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꽃잎을 딴 건?”
“죽인다와 놔둔다로 꽃잎 점을 봤는데, 2대2가 나왔어. 죽인다만 나왔으면 전부 죽였을 텐데. 미안해.”
멀린은 아쉽다는 듯 자그마한 앞발로 수염을 비볐다.
“그래도 시원했지?”
“음….”
라온이 가주전을 돌아보며 입맛을 다셨다.
‘시원하기는 했지.’
당황하기는 했지만, 얻어터진 아이언드를 보았을 때 기분이 좋았던 건 사실이었다.
특히 죄 없는 백련대 검사들이 죽지 않아서 마음도 편했다.
“그놈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건드리지 마.”
“응. 그럴 거 같아서 놔뒀어!”
멀린은 나 잘했지라고 말하며 머리를 앞으로 기울였다.
쓰다듬어 달라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무시했다.
“후….”
성격이 너무 밝아서 적응이 안 된다. 저 족제비가 에덴에서도 상대하기 껄끄럽다는 멀린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검둥이 두 마리랑 미꾸라지도 잡다니,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다 기뻐.”
멀린이 헤헤 웃었다. 검둥이는 마륜과 빙향이고, 미꾸라지는 백랑도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광풍대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멀린의 가면을 보다가 백랑도가 용의 가면에 대해 말했던 게 생각났다.
“혹시 드래곤의 가면을 만든 적 있어?”
멀린은 이전에 드레이크의 가면을 만들었다, 드래곤의 가면에 대해서도 알지 모른다.
“드레이크 말고 드래곤?”
“그래.”
“…그걸 어디서 들었어?”
멀린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아이처럼 밝던 그녀의 눈동자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늘한 빛을 띠었다.
“백경의 수장인 희극제와 함께 있는 모습을 봤다던데.”
“음….”
멀린은 말없이 눈매를 찌푸렸다.
“그는 아닐 텐데….”
“멀린?”
“이건 확실해지면 말해줄게. 좀 알아봐야겠어.”
“정말이야?”
“내가 너한테 거짓말하는 거 봤어?”
생각해보니, 그녀가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납치할 때도 납치한다고 말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이 아이는….”
라온은 멀린의 작별 인사를 들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얼마든지 와라. 이번에는 다 준비했으니까.’
멀린이 아이언드를 후려 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지금 같은 상황을 예측했었다.
아공간 주머니에 채식부터 육식에 썩은 고기까지 동물들에게 먹일 먹이를 모두 준비해두었다.
“털을 빗어 달래. 먹이는 충분하다던데?”
“어? 자, 잠깐! 털? 언제까지 해야 하는데!”
“당연히 이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지. 반짝반짝하게 해줘.”
멀린이 안녕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자, 족제비가 움찔 어깨를 떨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뀨.”
족제비는 제대로 빗어보라는 듯 발목을 툭툭 두드린 뒤 수풀 위에 드러누웠다.
“…….”
라온은 길쭉하게 늘어져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족제비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멍청이….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스크림은 대체 언제 먹을 건데!
* * *
라온은 저녁에서 늦은 밤이 되도록 족제비의 털을 빗어주고 방으로 돌아왔다.
“후우….”
수련할 때나, 심문할 때보다 더 지쳐서 서 있을 힘도 없었다. 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족제비 털을 빗겨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족제비는 작지만, 털에 굉장히 까다로워서 예전에 악어 등을 긁어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피곤했다.
-어이.
라스가 눈동자에 푸른 불꽃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일은 무조건이니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구슬 아이스크림 매장으로 가야 하느니라!
‘알겠다. 알겠어.’
-그럼 빨리 자라. 그래야 빨리 일어나서 아이스크림을 먹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이제 다른 일을 만들면 안 되느니라! 본왕과의 약속이 가장 먼저니라! 2세트인 거 알지?
‘알겠다고…음?’
귀찮아져서 손을 휘휘 저을 때 창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은은한 달빛이 내려오는 창문 위로 얼음장을 두른 듯한 글렌의 붉은 눈동자가 비쳤다.
“가주님?”
-아, 진짜 미치겠네….
라온이 글렌을 보며 입을 떡 벌렸고, 라스는 본인의 볼을 잡아서 늘리며 악을 질렀다.
-세상이 본왕을 억지로 까고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