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66)
제466화
희극제의 눈동자가 망치로 짓누른 듯 일그러진다. 떨리는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지며 낮은 음성을 흘러나왔다.
“그걸 어떻….”
그녀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입을 다물었지만, 라온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사실이었군요.”
라온이 차가운 미소를 그리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됐어.’
말이 다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대답으로는 충분했다. 희극제가 드래곤의 투구를 쓴 자와 만났다는 증언은 사실이었다.
‘망나니짓의 효과인가.’
희극제의 굳건하던 정신이 잠시나마 무너진 것을 보니, 그녀가 알현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신경을 건드린 보람이 있었다.
“말씀해주시죠. 에덴과 무슨 관계입니까.”
라온의 물음에 반응하는 건 희극제가 아니라, 간부들이었다.
쿠구구구구!
전주와 대주들이 소리 없이 발검하며 희극제를 둘러쌌다. 그들은 대화를 하지 않았음에도 검진 같은 기류를 일으켜 그녀를 압박했다.
“에덴의 귀신이었나?”
“움직이지 마시오.”
“뒤가 구린 주제에 겁대가리도 없이 여길 찾아와?”
카룬, 데니어, 발데르. 세 명의 전주는 오싹하리만큼 날카로운 기세를 일으키며 희극제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카룬과 발데르는 방해만 되는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약간이나마 믿음직스러웠다.
저들 역시 다른 무엇보다도 가문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오오오오!
대주들 역시 전주를 보조하듯 길목을 막은 채 희극제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쿠구구구!
희극제는 전주와 대주들의 기세를 한 몸에 받고 있음에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그녀의 발밑에서부터 해일처럼 위압적인 기파가 솟아올랐다.
“오늘 밑천이 제대로 털리는군.”
희극제가 입매를 말아 올렸다. 해탈한 표정. 이 짧은 순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다잡은 것 같았다.
“말을 잘 고르시오.”
글렌의 서늘한 음성에 희극제의 시선이 단상으로 향했다.
“에덴과 관계가 있다면 보내 줄 수 없으니까.”
“으음….”
그녀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긴장이 차올랐다.
“싸울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희극제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툭 떨어졌다.
“인정하겠습니다. 전 드래곤의 투구를 쓴 남자와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담담하게 눈을 내리감았다.
“다만 관계 따위는 없습니다. 그는 정보를 사기 위해서 백경을 찾은 손님이었으니까요.”
“손님?”
“이곳에 계신 분들이라면 알고 계시겠지만, 백경은 무력과 정보를 모두 거래합니다.”
간부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그 점은 알고 있던 것 같았다.
“그자는 정보를 사기 위해서 저를 직접 찾아왔고, 저는 그에게 정보를 팔았습니다. 상인과 손님. 딱 그 관계일 뿐입니다.”
희극제는 정보 거래를 한 이후로 그 남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소매를 잡았다.
“그 투구의 생김새는?”
글렌이 입술을 떼며 섬뜩한 눈빛을 흘렸다.
“음….”
희극제는 글렌의 질문을 들으며 짧은 신음을 흘렸다.
“역시 가주님께서는 천마에 대해 알고 계시는군요.”
그녀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
“천마가 뭐지?”
“으음….”
대주들은 천마에 대해 알지 못하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
하지만 세 명의 전주는 천마에 대해 알고 있는지 더욱 매서운 기운을 일으키며 희극제를 압박했다.
“천마….”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희극제의 말이 이어졌다.
“에덴의 목적은 환원. 그들은 구시대로 돌아가기를 원하죠. 그게 어떤 시기인지 아십니까?”
희극제가 라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어딘가 어긋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인간과 몬스터가 끝없는 전쟁을 벌이던 지옥. 마룡이 세계를 먹어 치우려 하던 때입니다. 이곳 지그하르트의 초대 가주가 이름을 알린 시기이기도 하지요.”
“마룡….”
라온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들어본 적 있어,’
동족조차 잡아먹었다던 최악이자, 최강이라 불리는 마룡이 인간계를 지워버리려 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마족까지 판을 쳐서 그 시절이 인간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것 같다.
“에덴의 진정한 목적은 그 마룡의 부활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일부는 알고 계실 테고, 일부는 앞으로 알게 되겠죠.”
희극제가 그리 싸지 않은 정보라고 말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에덴에서는 그 마룡의 투구를 쓴 자를 천마라 부릅니다. 언젠가 마룡이 되어 하늘을 어둠으로 물들이기를 기원하지요. 단 한 번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지만 가주님이라면 아시겠죠?”
그녀가 글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랬군.’
라온이 희극제의 말을 들으며 입술을 떨었다.
‘에덴의 두 번째 수장이 천마였어.’
에덴에 타천 말고 다른 수장이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그자의 정체가 바로 천마인 것 같았다.
“천마가 쓴 드래곤의 투구는 붉은 비늘에 흑색의 뿔, 흰자와 검은자가 반전된 마안이죠. 하지만….”
희극제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제게 찾아온 드래곤의 투구를 쓴 자는 그와 달랐습니다. 은색 비늘에, 뿔은 푸른빛을 띠었죠. 외관 역시 그간 알려진 마룡의 특징과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본인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산 정보는?”
글렌은 희극제의 의중을 알아보려는 듯 말없이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오늘 한심한 모습을 보였지만, 전 정보상입니다. 손님이 사간 정보를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희극제가 허리를 곱게 폈다. 그녀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당당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하나, 확실하게 말씀드리자면 그가 사간 정보는 육황오마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희극제는 지그하르트에 피해가 갈 정보는 절대 아니라고 장담했다.
‘저 여자….’
라온은 희극제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생각 이상으로 대단해.’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하는 게 놀라웠다. 그녀에 대한 위험도를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걸 믿어야 하는 이유는?”
글렌은 냉랭한 위엄이 깃든 적안으로 희극제를 굽어보았다.
“없습니다. 다만 저와 백경의 이름을 걸고 거짓이 아니라, 맹세하겠습니다.”
희극제가 품에서 하얀 패를 꺼냈다. 둥글게 깎인 백결철 위에 바다와 하늘을 노닌다는 영물 백경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훗날 제 말이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그 패를 가지고 오셔서 제 목을 쳐도 좋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한 소리가 아니라며 눈매를 좁혔다.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라온은 희극제가 내민 패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 될까.’
만약 글렌에게 천마 외에 다른 드래곤의 투구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희극제는 이곳을 무사히 떠날 수 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글렌과의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뭐가 됐든 지금 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흑탑에 잡혀 있던 사람들이 백경의 악행에 대한 소문을 풀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희극제가 부상을 당하거나 죽는다면 기껏 짠 계획이 무너진다.
그녀를 공격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우우웅.
각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희극제의 손에 들려 있던 백경의 패가 둥실 떠올라 글렌의 손아귀에 잡혔다.
“받아들이도록 하지. 다만….”
글렌의 손에 들려 있던 패가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백결철로 만든 물건이 저렇게 녹아버리다니, 인간의 무력이 아니었다.
“그 말이 거짓이라면 이따위 패와 상관없이 내가 직접 백경의 이름을 지워주겠다.”
“…명심하겠습니다.”
희극제는 글렌의 위압에 질렸는지 턱을 끄덕이며 어깨를 떨었다.
“음….”
라온이 글렌의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며 손등을 매만졌다.
‘그럼 천마라는 놈 말고 또 다른 드래곤의 투구가 있다는 건가?’
은색에 푸른 뿔. 꼭 어디서 본 것 같은 색의 조합이었다.
머릿속으로 그 투구를 떠올리고 있을 때 글렌이 손을 저었다.
“거두어라.”
그의 지시를 들은 전주와 대주들이 검을 거두고 물러났다.
“후….”
희극제가 옅은 숨을 내쉬며 소매를 털었다. 의복의 등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보니, 그녀도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럼 가시죠.”
로엔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희극제에게 다가가서 미소를 지었다.
“광풍부대주.”
희극제는 로엔을 따라가지 않고, 라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당했군요. 완패에요.”
말라버린 듯한 눈동자에 잔불 같은 열기가 타올랐다.
“꼭 다시 봤으면 좋겠군요.”
“전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요?”
라온은 관심없다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잠시만요.”
희극제가 미간을 구기며 가려고 할 때 손가락을 펼쳤다.
“가주전을 나가셔서 우측 건물에 들리는게 좋을 겁니다.”
“우측 건물?”
“네. 새 신발 신고 가셔야죠. 거기 가서 신발 달라고 하면 줄 거예요.”
방실 웃으며 희극제의 신발을 가리켰다. 지금까지의 삶에 의하면 한번 건드렸으면 끝까지 가는 게 옳은 방법이었다.
뿌득.
희극제는 간신히 내려누른 감정이 다시 솟구치는지 붉어진 얼굴로 이를 갈다가 알현실을 떠났다.
쿵.
철문이 닫히며 웅장한 소리가 났음에도 알현실 내부는 고요했다.
“음….”
“어….”
전주와 대주들은 라온이 희극제를 이 정도로 압도할 줄은 몰랐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으음….”
“어떻게 잘 끝난 것 같군.”
“그, 그렇죠.”
“잘 끝났네요.”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는데.”
간부 모두는 희극제가 굴복한 결과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발데르조차 미소를 짓고 있을 정도였다.
라온은 놀라움과 대견함이 깃든 시선을 받으며 라스를 보았다.
입 다물고 있어 줘서 고맙다고 말하려 하는데, 녀석은 등을 돌린 채 손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너 뭐하냐?’
-필기하고 있느니라.
그 말대로 라스는 동그란 손바닥에 글을 쓰고 있었다.
‘무슨 필기?’
-네놈이 다른 인간을 농락하는 방식이니라. 본왕이 인정할 정도로 미친 효과였지. 신.발.을.가.져.가.라.
녀석은 조금 전에 자신이 희극제에게 했던 말을 되뇌며 한 글자씩 쓰고 있었다.
-빠알리 와라아. 무조건 빨리 오라고 하면 열이 받는다.
‘그게 아닌데….’
상황에 맞게 써야 상대를 먹이는 거지 그냥 쓰면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이었다.
‘그 말은 그런 식으로 쓰는 게 아니라….’
-시끄럽다. 공부 중이니라. 본왕도 네놈처럼 인간의 탈을 벗을 것이니라!
라스는 공부 중이니까 말 걸지 말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넌 원래 인간이 아니잖아.’
라온이 고개를 저을 때 옆으로 리메르가 달라 붙었다.
“너 정말 뭐냐? 대체 어디서 그런 짓을 배운 거야?”
“어디서 배우긴요. 못난 어른이 바로 옆에 있는데.”
손가락으로 리메르를 가리켰다.
“나? 나도 너 정도로 미친 짓은 안 해! 넌 그냥 개망나니였잖아!”
“아뇨. 딱 대주님만큼만 했습니다.”
라온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흠, 뭐가 됐든 상관없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리메르가 피식 웃으며 글렌에게 손을 흔들었다.
“가주님!”
그는 희극제가 놓고 간 재물의 산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저기서 라온 덕분에 얻은 추가분은 라온이 가져가야 하는 거 맞죠?”
그 말을 들은 글렌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대주님. 전….”
라온이 그럴 필요 없다고 손을 저으려 할 때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 * *
아리엘이 로엔을 따라 가주전을 나가자, 백랑도와 혈운겸을 비롯한 수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행색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늙은 사자처럼 눈빛이 죽어 있었다.
‘망할 놈들….’
한심하게도 라온에게 정보를 풀었던 백랑도와 혈운겸의 머리통을 깨고 싶었지만,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회, 회주님.”
“죄송합니다!”
백랑도와 혈운겸은 아리엘의 섬뜩한 눈동자를 보고 먼저 죽여달라며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라. 여기서 할 말들이 아니니까.”
“어?”
아리엘이 손을 저으며 모두를 일으켜 세울 때 백랑도가 입을 떡 벌렸다.
“회주님. 입가에 피가….”
그 말을 들으며 입술을 매만졌다. 핏물이 흘러나와 입가를 적시고 있었다.
‘입에서 나온 피가 아니야.’
내상.
정신적 충격이 큰 상태에서 실제 기세에 노출되다 보니 얻은 내상이었다. 라온 때문에 얻은 상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심하지는 않더라도 잠시 정양을 해야 하는 상처였기에 짜증이 돋았다.
아리엘이 혈운겸과 백랑도에게 손짓을 했다.
“따라와라. 바로 돌아가야 하니까. 너희는 그냥 다 모른다고 해.”
라온이 내보낸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대화를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지그하르트로 정문으로 향하는데, 들어올 때 보았던 검사들이 그대로 서 있었고, 그 뒤에 무학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들까지 있었다.
“인질을 구하지 않다니 무슨 생각이야!”
“그 정도면 오마와 다를 것도 없잖아!”
“신주오령은 무슨 신주오마라고 해!”
“희극제? 영웅? 개소리였잖아!”
검사들 뒤에 있는 지그하르트의 주민들은 벌써부터 희극제와 백경의 소문을 듣고 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희극제는 입술을 씹으며 빠른 걸음으로 정문으로 향했다.
“벌써 가시는 거요?”
문 앞에 서 있던 외총관 일리운이 처음 보았을 때와는 천지 차이로 밝아진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렇습니다. 문을 열어주시죠.”
“얼마든지요.”
그가 시원함이 가득 어린 얼굴로 손을 흔들자, 천천히 정문이 열렸다.
“후우….”
희극제가 한숨을 내쉬며 문을 나가자마자, 이곳까지 따라왔던 추종자들이 달려와 앞을 막았다.
“희극제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마인에게 잡혀 있던 사람들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니요!”
“거짓말이죠!”
그녀의 행보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제발 아니라고 해달라며 손을 모았다. 이들만이 아니라, 뒤에 있던 지그하르트의 주민들까지 나와 비난을 해대기 시작했다.
“편안한 여정 되십쇼.”
건들거리는 음성에 뒤를 돌아보자, 성벽에 올라간 일리운이 히죽거리고 있었다.
“크윽….”
희극제는 울대를 뚫고 올라오려는 핏물을 억지로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이번만은 당해주마. 하지만 다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