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76)
제476화
라온은 엔시아의 주황색 눈동자가 번쩍인 순간 그녀가 가장 먼저 꺼낼 말을 확신했다.
‘분명 존잘이라고 하겠….’
“개존잘!”
틀렸다. 존잘 앞에 개가 붙었다. 예상 밖이었다.
-어억….
라스도 당황한 듯 격한 신음을 뱉었다.
-저거 뒤지기 직전에도 얼굴을 따지던 미친 여자 아니더냐!
‘맞아.’
라스의 말대로 엔시아는 곧 죽을 상태에서도 얼굴로 치료사를 골랐다. 마왕의 감탄을 받을 만한 기인이었다.
“라온니이이이이임!”
엔시아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는데,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산가족 상봉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보고 싶었어요! 진짜로!”
그녀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은 채 입술을 꾹 깨물었다. 표정을 보니, 그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 오랜만입니다. 엔시아 님.”
라온은 말을 더듬으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예?”
“어떻게 거기서 더 잘생겨질 수가 있죠?”
엔시아가 라온이 물러난 만큼 그에게 다가갔다.
“이미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더 위로 올라가시다뇨!”
그녀의 큼지막한 눈망울이 달빛을 받아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정변도 정변 나름이지! 왜 세상을 혼자 사시는 거예요!”
엔시아는 이렇게 훌륭한 얼굴이 될 줄은 몰랐다며 라온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친하게 지낸 루난이 뒤에 있음에도 쳐다도 보지 않았다.
“저기 엔시아 님?”
“대체 뭘 드시길래. 볼 때마다 잘생겨지는 거예요? 진짜 미치겠네!”
“음….”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미치겠는 건 난데.’
멀린은 혼자 있을 때 오기라도 하지, 엔시아는 옆에 사람이 있든 말든 존잘을 외쳐대서 민망해 죽을 것 같았다.
희극제나, 데루스처럼 시꺼먼 속을 숨기고 있다면 비웃으며 밀어내겠지만, 엔시아는 어떠한 속내 없이 진심 어린 호의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에, 엔시아 님?”
“제가 마음의 준비를 했어요. 오랫동안 못 봤으니까. 조금 더 잘생겨지실 줄은 알았는데, 지금 라온 님의 얼굴은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도 안 돼요!”
엔시아는 진심으로 감탄한 듯 볼을 붉게 물들었다.
“일단 진정하시고….”
“어떻게 진정해요!”
그녀는 이 얼굴을 보고 진정하면 그게 인간이냐며 고개를 저었다.
“우와아아.”
“존잘이래.”
“오, 우리 부대주 존잘!”
“개존잘!”
광풍단 검사들이 히죽거리며 엔시아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라온이 눈매를 찡그렸지만, 검사들은 시선만 피할 뿐 입으로 계속 존잘을 외쳐댔다.
-크흥!
라스가 길게 콧김을 뿜었다.
-이놈들에게 본왕의 본체를 보여주고 싶으니라! 그러면 존잘의 칭호는 네놈이 아니라, 본왕의 것이 되었을 텐데!
녀석은 본체를 가져올 수 없어서 아쉽다며 인상을 구겼다.
‘너 가져.’
난 필요 없어.
라스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존잘의 칭호가 부러운 듯 손을 비볐다. 제발 좀 가져가 주었으면 좋겠다.
“전에 봤을 때는 꽃다운 미소년이었는데, 오늘 보니까 야성미가 아주….”
“제발 그만!”
“안 되겠어요. 못 참겠어.”
엔시아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크기의 네모난 물건을 꺼냈다.
중앙에 검은빛을 띈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거울처럼 얼굴이 비쳤다.
‘아티팩트인가?’
처음 보는 물건이지만, 내부에서 마나석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녀가 만든 아티팩트인 것 같았다.
“그건 뭐죠?”
“라온 님을 생각하면서 만든 아티팩트에요.”
“예?”
그 말을 듣자마자, 등골 사이로 오싹한 소름이 지나갔다.
“그대로 계세요.”
엔시아가 네모난 아티팩트를 얼굴로 들어 올린 후 한쪽 눈을 감았다.
달칵!
그녀가 아티팩트 윗부분에 볼록 솟은 버튼을 누르자,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친 듯한 소리가 울렸다.
‘뭐지?’
뭔지 몰라서 멍하니 서 있을 때 엔시아가 들고 있는 아티팩트 위로 하얀 종이가 올라왔다.
“어?”
라온이 그 종이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저건 뭐야….’
종이에 연한 빛이 일렁이더니,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새겨졌다.
실력 좋은 화가도 이런 식으로 똑같이 그리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 이게 뭐….”
“영상 마법 아시죠?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찍는 마법.”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멀린이 본인의 수명을 깎아서 쓰는 걸 보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응용한 사진기라는 아티팩트에요. 그 자리에서 있었던 한순간을 이렇게 남길 수 있죠. 이건 사진이고.”
엔시아가 라온의 모습이 찍혀 있는 종이를 팔랑거리며 흔들었다.
“자자, 이쪽 보세요.”
그녀는 이 예술적인 얼굴은 후대를 위해 기록해야 한다며 연속으로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사진이라는 종이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존잘 라온.”
“풉. 존잘.”
“아티팩트까지 만들어내는 존잘.”
-본왕의 모습도 남겨라! 본왕이야 말로 마계 제일의 미모를 가진….”
루난을 시작으로 놀리듯이 이어지는 존잘의 외침과 엔시아가 들고 있는 사진기의 달칵 소리 그리고 라스의 투덜거림까지 귀를 울리자, 정신이 멍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즐거웠는데.’
희극제에게 실컷 깽판을 치고 와서 속이 시원했는데, 한순간에 가슴이 갑갑해졌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희극제의 마음을 알게 될 줄이야….’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라온 님! 눈 떠요!”
* * *
다음날.
라온은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도리안을 데리고 숙소를 나왔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도리안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물었다.
“우리가 새로운 도시에 들릴 때마다 가는 곳.”
“아!”
그는 단번에 알아들은 듯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도박장이요?”
“맞아. 지금이 딱 제철이니까.”
신주오령은 바레네를 만들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썼을 것이다.
양지의 수익만으로 그 액수를 채우기 힘들기에 이곳에서는 도박장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축제 때문에 대륙의 수많은 사람이 바레네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지금 도박장은 만선 그 이상으로 성황일 게 분명했다.
‘그걸 모두 빨아먹어야지.’
멘탈이 깨진 상태에서 대량의 금화까지 털렸을 때의 희극제가 어떤 표정을 할지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엔시아 님한테서 도망치시려는 거 아니에요?”
도리안이 의심스럽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그것도 있긴 하지.”
라온이 어깨를 축 내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지옥이었어.’
엔시아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세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는데, 전투 이상으로 정신이 피곤했다.
덕분에 정작 해야 할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근데 여기 딜러들 엄청 세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도리안이 옆으로 다가오며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어제 저녁 먹고 좀 돌아다녀 봤는데, 주민분들이 도박장은 가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딜러들 실력이 장난이 아니고, 판돈이 엄청 커서 망하든가 따든가 둘 중 하나래요.”
“모든 도박장이 다 그렇지. 그리고 내가 지는 거 봤어?”
“…그건 못 봤네요.”
“그럼 걱정 붙들어 매고 따라와.”
라온이 손짓을 하고서 백경이 운영한다는 도박장 범고래의 뿔로 향했다.
범고래가 새겨진 하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조명이 혜성처럼 쏟아져 내리고, 좌우로 깔린 장식품들이 찬란한 빛을 발한다.
범고래의 뿔은 희극제의 저택과 달리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했다.
‘어떤 게 진짜 그녀의 성격이려나.’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도박장을 쭉 살펴보았다. 도리안의 말대로 딜러들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났고, 일반적인 도박장보다 판돈이 높은 것 같았다.
이동하는 칩의 양이 정상 범주를 한참 넘어서 있었다.
‘한탕하기 딱 좋은데.’
판돈이 높은 만큼 이곳에서 가져갈 금화의 무게가 무거워질 것 같았다.
-어떤 도박을 할 것이냐?
라스가 머리 위에 드러누운 채 꼬리를 살랑거렸다.
‘판돈이 큰 포커를 해야지.’
-포커? 네놈은 주사위 말고 도박을 못하지 않느냐.
‘괜찮아. 조력자가 있거든.’
-조력자?
라온이 대답없이 테이블을 살피고 있을 때 안쪽에서 익숙한 비명이 들려왔다.
“이건 사기야! 어떻게 로스플이 나오냐고!”
붉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엘프가 경비원들에게 팔이 잡힌 채 질질 끌려 나가고 있었다.
“거기다 여기 판돈 왜 이렇게 높은 거야! 이 사기꾼 새끼들아! 내 제자가 누구인 줄 알아? 말만 하면 당장 쳐들어와서….”
리메르가 식사 시간에 보이지 않아서 어디 갔나 했더니 먼저 와 있었던 것 같다.
라온은 리메르를 못 본 척하면서 조금 전 그가 떨어져 나간 포커 테이블로 들어갔다.
“에휴….”
도리안이 금화 200개를 환전해온 칩들을 테이블 위에 쏟아부었다.
“오오….”
“오빠. 얼굴 값 좀 하네.”
“조금 전에 끌려 나간 쪼잔한 엘프랑은 딴판이야.”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도박꾼들이 벌게진 눈빛으로 침을 흘렸다.
‘역시 알아보지 못하는군.’
백검룡이라 불리는 검사가 대낮부터 도박장에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도박꾼들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라온이 테이블 위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잡소리는 됐으니, 시작하시죠.”
“성격도 시원하네. 내 타입이야.”
“하긴. 말은 돈이 해주는 거지.”
도박꾼들도 고개를 끄덕이자, 딜러가 카드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라온은 도박꾼들이 카드를 살필 때 손짓을 해서 직원을 불렀다.
“단 음식 당기는데 주문할 수 있습니까?”
“원하시는 건 전부 가져다 드릴 수 있습니다.”
직원은 칩의 양을 보고서 말만 하라는 듯 허리를 굽혔다.
“추천하는 건?”
“저희 파티쉐가 자랑하는 케이크 파르페가 있습니다.”
“그럼 그걸로 하나만.”
“알겠습니다.”
직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그란 형태의 케이크 위에 아이스크림과 과일이 올라간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
초코 시럽과 딸기 시럽이 번갈아서 뿌려져 있어 저절로 침이 고이게 만드는 모양새였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케이크 파르페를 받아서 테이블 바로 앞에 올려놓았다.
-네, 네놈이 웬일이냐? 이런 걸 다 시키고?
라스가 케이크 파르페를 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붉은 혓바닥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빠, 빨리 먹어라! 다 식느니라!
라온은 라스에게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카드를 뒤집었다.
“트리플.”
“젊은 오빠. 오자마자 패가 괜찮네. 하지만….”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성이 카드를 뒤집자 플러시가 나왔다.
“미안해서 어쩌나.”
그녀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테이블의 칩을 챙겨갔다.
라온은 여성에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케이크 파르페에 꽂힌 긴 스푼을 매만졌다.
-뭐, 뭐 하는 것이냐! 녹는다고! 아이스크림이랑 케이크가 뒤섞이고 있잖느냐!
‘이제 네 차례야. 조력자.’
-어엉?
라스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 설마….
‘한 번 해봤잖아.’
옅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의 카드를 가리켰다.
‘보고 와줘.’
-이노오오옴! 본왕은 마계의 군주이이니라! 명예를 걸고 그딴 더러운 짓거리는 절대 하지 않느니라!
‘오늘 저녁에는 네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랍스터 버터구이랑 족발 튀김을 먹을 생각인데….’
-누구부터 볼까?
라스는 눈에 보이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매번 느끼지만, 참으로 값싼 마왕의 명예였다.
-빨리 말하거라!
* * *
아리엘이 이마를 짚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머리가 아프군.’
어제 라온의 망나니 짓거리에 당한 여파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제대로 당했어.’
라온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못 알아듣는 척하며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 신경을 살살 긁는데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악몽을 꾼 게 얼마 만인지.’
정신적 충격이 컸던지 어제는 드물게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까지 꾸었다. 경지를 이룬 이후 처음으로 꾼 악몽이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어.’
이제 라온 지그하르트가 어떤 인간인지 대략 알게 되었으니까.
더 많은 정보를 모아서 라온이라는 놈의 그림을 완성시켜야 하겠지만, 선화는 대충 그려진 것 같았다.
‘이젠 쉽지 않을 거다.’
라온에게 더이상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때 메케인이 다급하게 달려 들어왔다.
“주군!”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설마 또 그놈이 온 건 아니겠죠?”
“그건 아닙니다. 다만…”
“그럼 천천히 말해요. 그 외에 신경 쓸 일은 없으니까.”
아리엘이 고개를 젓고서 식은 차를 들이켰다.
“라, 라온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와 관련된 일입니다.”
“관련된 일?”
그녀가 쥐고 있던 찻잔이 바르르 떨렸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범고래의 뿔에 가서 도, 돈을 따갔다고 합니다.”
“돈? 얼마나?”
“그, 금화 1,500개가 넘는다고….”
그 말에 아리엘이 들고 있던 찻잔 속 차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증발되기 시작했다.
캬아앙!
결국 찻잔이 깨지고, 아리엘의 눈동자가 희번득 비틀어졌다.
“이 미친 새끼가 진짜! 그놈 지금 어디에 있어!”
“다른 도박장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 개망나니 놈이 기어코!”
아리엘이 악을 지르려 할 때 집무실 문이 거세게 열렸다. 바다색 머리칼이 난잡하게 솟아오른 사나운 인상의 중년인이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린 놈에게 발렸다고 해서 와봤는데, 진짜였나?”
중년인은 아리엘의 상태를 훑어보고서 비웃음을 흘렸다.
“천하의 희극제가 비명을 지르게 만들다니, 갑자기 그 어린놈이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데?”
“귀살창!”
“아아, 갈게. 들어보니 이제 돈까지 털렸다던데….”
귀살창이라 불린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돈 필요하면 말만 해. 좋은 구경을 했으니까. 이자는 싸게 해줄게.”
그는 손을 젓고서 집무실을 떠났다.
“메케인!”
희극제가 입술을 깨물며 메케인을 보았다.
“라온이 갔다던 다른 도박장이 어디지?”
“서녘의 양입니다.”
“서녘의 양.”
서녘의 양은 조금 전에 나간 귀살창이 소유한 도박장이었다.
“너도 한 번 털려봐.”
희극제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그려졌다.
“나만 당할 수는 없지.”
* * *
드드드득!
라온은 테이블 위에 깔린 금색 칩을 두 손으로 끌어모아서 가져왔다. 큼지막한 승리가 이어지며 그의 우측에는 칩의 산이 쌓이게 되었다.
“으음….”
“어떻게 큰판마다 다 딸 수가 있지?”
“마, 말이 안 돼….”
“저거 다 얼마야? 금화 천 개는 넘어 보이는데?”
딜러는 넘치는 칩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고, 테이블에 함께 앉은 도박꾼들은 입술을 깨물었으며, 수많은 구경꾼들도 마른침을 삼켰다.
“으어어어….”
도리안이 넘쳐나는 칩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라온을 따라 많은 도박장에 다녀봤지만, 이 정도 규모의 판은 처음이라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떨렸다.
라온은 여유롭게 칩을 굴리며 연한 미소를 지었다.
‘쉽네.’
라스가 옆에서 상대의 패를 알려주다 보니, 해답지를 들고 도박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돈을 따는 게 누워서 쿠키를 먹는 것보다도 간단했다.
오전에는 백경의 도박장인 범고래의 뿔에서 금화 1,500개를 털었고, 지금은 귀살창이 운영한다는 도박장에서 금화 1,700개 이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상부상조지만.’
피식 웃으며 테이블 좌측에 놓아둔 빨간색 마카롱을 한입에 삼켰다.
촉촉한 머랭 쿠키가 딸기 크림에 녹으며 입안에 작은 폭죽을 터트렸다.
-크으으으!
라스가 주먹을 말아 쥔 채 깊은 신음을 흘렸다.
-여기 간식들 하나하나가 모두 끝내주느니라!
도박을 하면서 꾸준히 간식을 먹어준 덕분에 라스의 입에도 미소가 끊어지질 않았다.
“패, 패를 돌리겠습니다.”
다섯 번째로 바뀐 딜러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패를 돌리고 있을 때 우측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고개를 돌리니, 어떻게 알고 왔는지 엔시아가 어제 보여준 아티팩트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미쳤어! 도박하는 모습도 존잘이야!”
엔시아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티팩트의 버튼을 연타했다. 초고수의 주먹질을 보는 듯했다.
“저기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조용히 해요!”
도박장 경호원이 엔시아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녀가 주머니에서 금화를 던지자 아무 말도 못 했다.
“후우….”
라온이 이마를 짚었다.
‘적당히 하고 나가야겠군.’
돈도 딸 만큼 땄으니, 이 도박장의 주인인 귀살창도 꽤나 화가 돋았을 것이다.
이 판을 마지막으로 하고 일어나기 위해서 카드를 잡으려 할 때 위쪽에서 은밀한 시선이 느껴졌다.
‘언제부터 있었지?’
도박장을 지키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절대 일으킬 수 없는 기운에 소름이 돋았다. 바로 등을 돌렸다.
도박장 천장의 샹들리에 위.
푸른빛 머리칼이 야성적으로 펼쳐진 중년인이 다리를 꼰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거 설마….’
중년인의 사나운 외모를 보자마자, 암시장에서 받았던 정보가 떠올랐다. 신주오령의 수장 중 하나인 귀살창이었다.
“허? 이걸 알아채?”
귀살창이 씩 웃으며 샹들리에서 뛰어내렸다.
쿠우우우웅!
그가 착지한 충격에 도박장 전체가 뒤흔들렸다. 소리 없이 내려설 수 있는 경지면서 일부러 굉음을 울린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
귀살창이 펼쳐내는 존재감에 테이블 주변에 몰려 있던 도박꾼들이 다리를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네가 라온 지그하르트인가?”
라온이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