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92)
제492화
광풍대는 라온의 집합 명령을 듣고, 숙소 연무장 앞에 모여 있었다.
“우리 부대주는 왜 이런 시간까지 집합을 시키는 거야.”
크레인이 발로 흙바닥을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으으….”
도리안은 대꾸 없이 배 주머니를 문지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넌 왜 그러냐?”
“나 희극제한테 죽는 거 아닐까?”
그는 결투장 위에서 희극제를 농락한 것 때문에 불안하다며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어차피 부대주님이 한 거 다 알아. 너한테는 신경도 안 쓸걸.”
크레인은 걱정하지 말라며 도리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문제는 지금 집합이지. 그 인간이 왜 모이라고 한 걸까.”
“진짜 모를 사람이야.”
“강해질수록 미쳐가는 무학을 익힌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어. 아니, 그게 아니면 지금의 경지가 말이 안 돼!”
“으, 집중력 강화 훈련 너무 싫어!”
광풍대 검사들은 라온이 강해질수록 패악도 심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우리를 제일 생각해주는 건 그놈이잖아.”
버렌이 검사들의 앞으로 나오며 옅게 웃었다.
“라온이 아니었다면 너희나 나나 몇 단계는 밑에 있었을 거다.”
“그건 당연히 알고 있죠.”
“그 정도가 아니라, 전 부대주님이 아니었으면 여기 없었을 거예요.”
“나도 광혈귀한테 찢겨서 죽었겠지….”
“목숨을 걸고 보답해야 할 은인은 맞는데, 집중력 강화 훈련은 좀….”
검사들은 라온의 마음은 알지만, 집중력 강화 훈련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앞으로 벌어질 일에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킬 때 숙소 정문이 열리고 라온이 들어왔다.
“뭘 그리 긴장하고 있어.”
라온은 평온한 걸음으로 다가와서 버렌의 앞에 섰다.
“네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버렌이 뒤에 선 광풍대를 돌아보고서 콧잔등을 긁적였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대련장에서 내가 싸우는 건 제대로 봤어?”
“전부 봤다.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지. 다만….”
그가 입맛을 쩝 다시며 재차 입을 뗐다.
“봤는데도 네가 뭘 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이상하게 기억은 생생하다만.”
버렌은 급이 너무 높은 결투라서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라온이 버렌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기억에 남아 있다면 언젠가 네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신주오령의 제자들을 상대할 때 일부러 버렌의 장기인 쾌검과 정검 위주로 싸워서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자 했다.
오늘의 기억은 버렌이 마스터의 벽을 넘을 때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사소한 거라도 좋아. 오늘 네가 깨달은 바를 보여봐.”
라온이 서늘한 미소를 흘리며 제천검을 뽑았다.
“어? 지금?”
“결투장에 오르지 못한 분을 여기서 풀어보라고.”
그 말을 하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마크 괴튼 경은 다음이니까.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마크 괴튼은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미소를 지었다.
“허….”
버렌이 검병에 손을 올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여튼.’
너무 착하다니까.
매번 죽인다고 말하지만, 실제 하는 짓은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요즘 보면 리메르만이 아니라, 라온도 스승 같았다.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어이.”
라온이 광풍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눈매를 찡그리며 검을 땅에 박아넣었다.
“너희는 왜 거기서 가만히 있냐?”
“예에?”
도리안이 배 주머니를 쓰다듬다 말고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가만히 있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너희 다 졌잖아. 패한 놈들이 왜 거기서 멍하니 서 있냐고.”
“어….”
“입 벌리고 있을 시간에 검술 10번은 반복했겠네. 시간 죽일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검술 100번 반복해.”
그 말에 광풍대의 입이 정말 찢어질 정도로 열렸다.
“자, 잠깐! 100번이면 오늘 못 자요!”
“맞아! 벌써 달이 떴는데!”
“거기다 결투 때문에 지쳐서….”
“하든가. 여기에 묻히든가.”
라온은 땅에 박아둔 제천검을 톡톡 치며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버렌이 광풍대를 보며 으르렁대는 라온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나쁜 건지 착한 건지….’
* * *
달빛이 뒤늦게 찾아온 구름 사이로 숨었지만, 지그하르트의 숙소는 여전히 환한 빛을 밝히고 있었다.
라온은 어둑해진 밤하늘을 올려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흐아압!”
마크 괴튼이 거친 기합을 내지르며 쇄도해왔다. 바람을 타고 밀고 들어오는 그의 도격에 강대한 강기가 휘몰아친다. 주변의 공기가 모조리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쿠웅!
라온이 왼쪽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대퇴근을 증폭시켜 바닥을 밀며 제천검을 그어 내렸다.
육체와 오러의 완벽에 가까운 조화가 단순한 검격을 절대의 무학으로 탈바꿈시켰다.
쩌어어어엉!
검과 도가 맞부딪치며 천둥이 우는 듯한 굉음을 터트렸다.
마크 괴튼은 제천검에 실린 거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연무장 바닥에 두꺼운 선을 새기며 뒤로 밀려났다.
“아직입니다!”
마크 괴튼이 이를 악문 채 땅을 박찼다.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그의 도가 공간을 비틀며 떨어져 내린다.
도격이 좌우로 갈라지며 속도와 힘을 증폭시키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줄기의 벼락을 연상케 했다.
“나쁘지 않네요.”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밑바닥에서부터 제천검을 그어 올렸다.
검극에 흐르는 서리의 꽃봉오리가 개화하며 초승달을 닮은 구붓한 섬광을 쏘아냈다.
쩌어어어억!
마크 괴튼의 도격이 서리연 앞에 무너지고, 냉기에 노출된 흑색의 제복이 말라붙은 낙엽처럼 바스러졌다.
“후욱.”
그는 충격이 심한지 거센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졌습니다.”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는 마크 괴튼의 표정은 밝았다 아무런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라온은 무력만큼이나 달라진 마크 괴튼의 눈을 보며 작은 웃음을 흘렸다.
‘중급의 벽을 넘어설 날도 멀지 않았군.’
저주처럼 마크 괴튼의 앞을 가로막았던 벽이 깨부술 수 있을 정도로 얇고 가늘어졌다.
작은 계기 하나만 있다면 벽을 허물고, 마스터 중급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기다려지네.’
십수 년 넘게 마스터 하급에 멈춰 있던 마크 괴튼이 새로운 경지에 올랐을 때 어떤 얼굴을 할지가 기대되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라온이 마크 괴튼에게 결투의 예를 취한 후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렌이 주저앉은 채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있었다.
“너는?”
“나도 이만하면 됐다. 다 풀었어.”
버렌도 충분하다고 말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자정이 넘을 때까지 대련을 해주어서 오늘 결투를 못한 한을 모두 푼 것 같았다.
“도련님! 저랑도 대련해주세요!”
유아가 안쪽으로 달려오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 그럼 저도!”
율리우스가 눈치를 보며 유아의 옆에 붙었다.
라온이 허리를 숙여서 두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유아는 지금 대련에서 본 게 있어?”
“음, 검이 너무 빨라서 보지는 못했고, 들었어요.”
유아가 턱에 손가락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다고?”
“네. 도련님은 마크 괴튼 아저씨의 호흡이 무너질 때마다 검을 내리치셨잖아요. 아니, 호흡을 무너뜨리신 건가?”
그녀는 어쨌든 호흡이 끊어지는 게 계속해서 들려왔다며 눈을 꿈벅였다.
“허….”
라온이 담담한 유아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역시 유아의 재능은 이쪽인가.’
유아는 무학 자체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진정한 자질은 목소리와 청각인 것 같았다. 상대의 호흡을 무너뜨리는 것을 들었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율리우스.”
“예!”
율리우스가 허리를 쭉 펴며 차려자세를 취했다.
“너는 무얼 봤지?”
“저, 저는….”
그는 유아의 눈치를 힐끔 보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대주님이 3조장님과 마크 경과 비슷한 방식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습니다.”
“비슷한 느낌?”
“예. 같은 검술 묘리를 사용해서 지도 대련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
라온은 긴장한 듯 어깨를 떠는 율리우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도 눈이 좋아졌군.’
율리우스의 말이 맞다. 조금 전 대련에서 버렌과 마크 괴튼을 그저 몰아붙인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검술 묘리를 보여줘서 조금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녀석은 그걸 놓치지 않고 제대로 보았던 모양이다.
‘이쪽도 기대되는데.’
유아와 율리우스 둘 다 무학만이 아니라, 각자의 재능을 키우며 성장하고 있기에 미래가 더욱 기대되었다.
왜 에덴이 기를 쓰고 데리고 가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광풍대는 앞으로 더 강해지겠어.’
마크 괴튼, 유아, 율리우스만이 아니라, 기존의 검사들로 매일같이 발전하고 있다.
광풍대의 명성이 더 높게 솟구칠 날이 기다려졌다.
“둘 다 잘했어. 다만 대련은 너희가 조금 더 크고 하자.”
라온이 웃으며 율리우스와 유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
“예!”
두 아이는 칭찬을 받았기 때문인지 헤죽 웃으며 물러섰다.
“그만.”
라온이 유아와 율리우스의 뒤편에 있는 광풍대에게 손짓을 했다.
“흐어어억!”
“아욱!”
“주, 죽겠다아….”
지금까지 전력을 다해서 같은 검술을 연달아 펼치던 광풍대 검사들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연무장으로 모여들었다.
“너희는 뭘 봤지?”
“엥?”
“보, 보다니요?”
크레인과 도리안이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검사들도 질문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라온이 유아와 율리우스를 가리키며 눈매를 찌푸렸다.
“유아와 율리우스처럼 나와 버렌, 마크 경의 대련을 보면서 뭘 느꼈냐고.”
“우리가 그걸 어떻게 봐요!”
“그래! 전력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걸 볼 정신이 어디 있냐고!”
광풍대 검사들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본 부대주는 너희에게 실망했다.”
라온이 광풍대의 앞에 서서 짧게 혀를 찼다.
“성장하고픈 의지가 있다면 검을 휘두르면서도 이 대련에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내 말이 틀린가? 의지만 있다면 안 되는 게 없다.”
“윽….”
“이익!”
광풍대 검사들은 바로 오늘 라온이 마스터 최상급 세 사람을 홀로 이기는 것을 보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인정하는 게 편해.”
크레인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능하신 부대주님의 말이 맞습…커헉!”
라온은 조롱하듯 외치던 크레인을 걷어차고 다시 광풍대를 보았다.
“죄송합니다!”
“저, 저도 제대로 못 봐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놓치지 않겠습니다!”
크레인이 얻어맞는 것을 본 광풍대 검사들이 즉시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인정했으니, 지금부터 임시로 집중력 강화 훈련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라온은 너희들이 흔쾌히 받아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 이게 이렇게?”
“…악마를 보았다.”
“아니지. 마왕을 본 거지….”
광풍대 검사들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턱을 떨었다.
“심술 부리는 것도 존잘이야….”
엔시아는 라온이 뭘 해도 상관없다는 듯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진기의 버튼을 누르며 헤헤 웃었다.
“음….”
라온이 사진기 소리를 들으며 뺨을 긁적였다.
“엔시아 님은 숙소에 안 가십니까?”
“밤새 사진을 찍을 기회인데, 가긴 어딜 가요!”
엔시아는 A급 사진을 대량으로 찍을 기회는 많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훈련 준비를 하고 있어.”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엔시아의 옆에 누워 있는 루난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여전히 고로롱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루난.”
“…….”
“루난?”
“…….”
루난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듯 반응이 없었다.
“아까 아이스크림 사왔는데.”
그 말을 하자마자, 루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
손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본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속였어….”
루난은 드물게도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쭉 내밀었다. 그러고는 생각이 난 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마르타는?”
일어나자마자, 마르타를 챙기다니 예전의 루난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반응이었다.
“아직 잔다. 깨달음을 정리하는 중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응.”
루난은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봐준다.”
라온이 루난의 이마를 탁 치며 들어가서 자라고 손을 흔들었다.
“자, 이제….”
-아이스크림!
머리 위에서 자고 있던 라스가 벌떡 일어나서 퉁퉁한 뱃살을 흔들었다.
-아이스크림은 어디에 있느냐!
‘…….’
* * *
신주오령의 도시, 바레네의 중심에 솟아오른 첨탑.
밤의 그림자에 숨은 셰릴이 희극제의 저택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희극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희극제는 지그하르트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라온에게 망신을 당해왔다.
그녀가 얻고자 했던 명성은 모두 라온의 손에 떨어졌고, 신주오령에 남은 것은 조롱과 무관심뿐이었다.
다만 계획이 모조리 망가졌고, 그 일을 저지른 당사자가 명명백백했음에도 그녀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폭발할 줄 알았는데….’
라온이 신주오령의 제자들을 모조리 깨부수고, 우승하여 영약까지 챙겼을 때 희극제의 인내심이 바닥을 칠 거라 예상했다.
아무리 그녀가 초월에 닿았다고 해도 한참 어린 라온에게 그 정도로 당했으면 정신에 금이 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라온과 가까운 위치에서 튀어나갈 준비까지 했었다.
‘하지만 참았지. 아니, 오히려 사검마를 말렸어.’
희극제는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긴 했지만, 끝까지 인내하며 발작을 일으키려던 사검마를 말리기까지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지그하르트에 찾아왔을 때부터 그녀가 원하던 건 육황급의 명성이었다. 그 계획들이 모조리 망가졌는데 대체 뭘 기다리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노리는 게 있을 텐데.’
정말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은 이상 이 정도로 인내할 리가 없다.
무언가 원하는 게 있을 게 확실한데, 그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번 축제가 끝나도 예의주시해야겠어.’
그저 강하기만 한 자는 무섭지 않지만, 강하면서도 그걸 이용하지 않는 자는 무서운 법이다. 희극제라는 여자의 위험도를 한참 더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셰릴은 지그하르트로 보낼 보고서를 바람에 흘려보내면서도 희극제의 저택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후, 이만 돌아가….’
그녀가 숙소로 돌아가려 할 때 지그하르트의 저택 옆에 있는 수풀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출 때 수풀 속에서 어린 캥거루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하….”
셰릴이 허리를 펴며 헛웃음을 흘렸다.
“캥거루라니.”
* * *
아리엘이 집무실에 돌아와 소파에 눕듯이 등을 기댔다. 한참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낮은 한숨을 뱉었다.
“그놈과 관계되면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예상한 대로 일이 진행된다 싶으면 갑자기 라온이 튀어나와서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그놈 때문에 입은 손해가 천문학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체한 것처럼 속이 갑갑해.’
기다리고 있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날에도 라온이 방해를 해온다면 많은 것이 무너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아리엘이 결심을 한 듯 장포를 걷어 올렸다. 허벅지에 끼워둔 책자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렸다. 책의 표지에는 태양과 달이 그려져 있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을 발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어.’
그날 문제가 생긴다면 지금까지의 손해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큰 사고가 터질 것이다. 라온이 어디서 어떻게 끼어들지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천기를 읽어보아야 할 것 같았다.
아리엘이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책자를 펼쳤다. 노랫말 같은 글귀들이 적혀 있는 페이지를 넘겨 텅 비어 있는 백지에서 손을 멈췄다.
“후….”
차분히 호흡을 고르며 손가락을 이빨로 씹었다. 짧게 갈라진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하얀 페이지에 떨어졌다.
뚜욱.
설원처럼 새하얗던 페이지가 호수가 된 듯 얕은 파동이 일어난다. 핏방울이 백지를 천천히 물들이기 시작했다.
아리엘이 눈을 내리감고, 상단전을 개방했다. 하늘과 인간을 잇는다는 마나회로 백회가 열리며 세계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졌다.
태양과 달. 그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인간들을 무시하고, 오직 라온 지그하르트만을 그리며 상단전의 박동을 가속 시켰다.
격을 드러낸 영혼과 점차 어둡게 물들어가는 책자가 공명하며 백지를 메운 핏물이 스스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리엘이 심상에서 그렸던 라온 지그하르트를 지우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시선을 내려 책자를 확인한 그녀의 눈동자가 파랑을 맞은 듯 출렁였다.
“뭐야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