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511)
제511화
라스가 백혈교주를 향해 손을 뻗으려고 할 때 리메르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크윽….”
리메르는 초월자들의 기파 사이에 끼어 어마어마한 압력에 짓눌리고 있음에도 무릎을 굽히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소.”
그는 입술에서 가는 핏줄기를 흘리면서 당당히 라스의 앞에 섰다.
“귀때기.”
“귀, 귀때기?”
“말해보라.”
라스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고스를 죽일 때….”
“오르고스?”
“당신이 조잡한 마기의 주인이라고 한 자요. 혹시 그를 죽일 때 어린 인간을 하나 보지 못했소? 머리카락은 금발이고, 눈동자는 붉은색인데.”
리메르는 귀때기라는 말에 당황하면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라온의 인상착의에 대해 말했다.
“장검과 단검 두 자루를 가지고 있었고, 옷은 검은색이다.”
셰릴이 리메르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의 부담을 덜어주며 추가로 무기까지 설명해주었다.
두 사람은 마왕의 손을 빌려야 할 정도로 다급한 표정이었다.
-음….
라온은 리메르와 셰릴의 절박한 눈빛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난 살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저 둘을 위해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라스.
‘알고 있느니라.’
라스가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시선을 돌려 리메르와 셰릴의 눈을 마주했다.
“본왕은 그 버러지 같은 마기를 가진 놈만 처리했다. 결계 안에 다른 인간들이 있었지만, 딱히 건드리진 않았느니라.”
녀석은 두 사람에게 비키라고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차원의 틈 속에 빠졌을 수도 있고, 어딘가로 튕겨 나갔을 수도 있겠지.”
-잘했어.
라스는 최선의 연기를 해주었다. 초월자들도 무시하는 마왕이 고작 마스터인 인간에게 관심을 준다는 게 이상한 일이니까.
“음, 고맙소.”
리메르와 셰릴은 라스에게 고개를 까딱이고서 물러섰다.
“이상한데.”
하지만 집창광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라온의 냄새가 풍겨.”
멀린은 하도 변신을 해대서 이제 개코가 되었는지 라스의 주변을 맴돌며 계속 코를 킁킁거렸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후각으로 추적하는 것 같았다.
“분명 근처에 있을 거 같은데에에에….”
“으음.”
라스는 붉어졌다 파래지는 멀린의 안구를 보고서 손끝을 떨었다. 여전히 멀린의 집착에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았다.
-라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아, 알고 있느니라.’
라스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백혈교주에게 눈동자를 돌렸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냐.”
“…….”
백혈교주는 대답 없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아귀 위로 투명한 기운이 차올랐다.
아름다운 물방울 같은 모습이지만, 저 안에는 지금까지와 격이 다른 혈기가 응집되어 있었다. 주변으로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타올랐다.
“흐음.”
성검련주는 앞에 나서지 않고, 오히려 한발 물러섰다.
강대한 기파를 가라앉히며 구경꾼처럼 흥미로운 미소를 그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고오오오!
라스는 손가락으로 서리의 기운을 뿌렸다. 마법진처럼 기하학적인 궤적을 그린 냉기가 바닥에 내려서며 은은한 빛을 일으켰다.
저벅.
라스가 그 빛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백혈교주와 성검련주를 앞에 두고서도 위엄을 잃지 않았다.
얼마든지 덤비라는 듯 양손을 내리고 턱을 치켜들었다. 왕의 위엄을 보여준다더니, 그것만큼은 제대로였다.
오히려 라스의 뒤에 있는 라온이 상황을 살피며 마른침을 삼켰다.
-하나라도 얻어야 해.
백혈교주의 기파는 이전보다 더 강해졌고, 성검련주는 글렌에게 맞먹는다는 검의 초고수다.
라스가 밀린다고 해도 엇비슷한 접전이 이루어질 테니, 최소한 하나는 배우고 돌아가야 했다.
“남의 땅에 와서 건방지기 짝이 없군.”
백혈교주가 입매를 비틀며 손을 어깨너비로 벌렸다. 응집되던 혈기가 하나의 칼날을 형성하며 어검처럼 떠올랐다.
“쓸데없이 입만 주절거리는군.”
라스가 고요하게 손을 털었다. 그의 의념이 바람에 깃들며 주변에 있던 리메르와 셰릴, 멀린을 비롯한 무인들이 뒤로 밀려났다.
가벼운 손짓으로 그랜드 마스터와 초월자들을 물러나게 만드는 고절한 수법이었다.
“허….”
“그저 힘만이 아니었나?”
“이게 마왕….”
희극제와 귀살창, 악검후는 라스의 기운을 느끼고서 눈매를 찡그렸다.
“본좌의 뺨을 친 값은 비싸다. 죽여주마!”
사검마는 두 번이나 얻어 맞은 뺨의 대가를 갚겠다며 서늘한 눈동자를 굴렸다.
“하나 같이 겁이 많군. 너희가 오지 않는다면….”
라스가 멀린 때문에 떨리던 손가락에 힘을 주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본왕이 가도록 하마.”
그 말과 함께 라스의 몸이 빛으로 화했다. 육체가 현현하는 건 사검마의 앞.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손을 뻗었다.
치이이이잉!
마계의 냉기가 타오르는 수도가 사검마의 목을 노렸다.
“크윽!”
하지만 사검마는 오르고스보다 윗급에 오른 초월자였다.
라스의 공격에 반응하여 바로 검막을 일으켰다. 시꺼멓게 타오른 불꽃이 라스의 수도와 맞부딪쳤다.
쩌저저저적!
라스의 수도를 휘감은 서리의 안개가 사검마의 기운을 통째로 얼려버리고, 칼날까지 파고들었다.
“이게 무슨!”
사검마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서며 검극에 맺힌 흑화를 뿌렸다. 검은 불꽃이 소용돌이치며 라스를 가두듯 모여들었다.
“꺼지거라.”
라스가 사방에서 쇄도해오는 검은 화염을 향해 명령하듯 외쳤다.
쿠구구구구!
마왕의 의념을 담은 목소리가 실체를 갖춘 채 현신한다. 사검마가 일으켰던 불길이 라스의 옷자락 하나 태우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마, 말도 안 돼….”
사검마는 오르고스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으며 턱을 떨었다.
“믿을 수 없다!”
그는 눈동자에 두려움과 불신을 두른 채 검으로 하늘을 찔렀다.
칼날에서 타오른 흑화가 라스를 가두며 수백 줄기의 열선을 일으켰다. 불길 하나하나가 초상승의 무위를 담고 있는 검격이었다.
“조잡하군.”
라스가 비웃음을 그리며 파리를 쫓듯 손을 휘저었다. 손등에서 피어난 서리의 파동이 잎사귀에 맺힌 이슬처럼 반원으로 퍼지며 사검마의 불길을 모조리 얼려버렸다.
푸른 얼음 속에 갇힌 검은 불꽃은 아름다움과 함께 오싹함을 드러냈다.
쿠구구구구!
얼어붙은 불꽃들이 조각나서 무너지고, 사검마의 표정 역시 그에 못지않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터어엉!
라스는 하얀 냉기가 바닥에서부터 피어오를 때 보법을 밟았다. 사검마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후 거칠게 손을 뻗어 놈의 팔을 잡았다.
뿌드드드득!
사검마의 팔이 통째로 뽑혀 나오며 허공에 붉은 피가 뿌려졌다.
“끄아아아아악!”
“본왕 앞에서 방심이라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라스는 사검마의 팔을 바닥에 버리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하….
라온이 헛바람을 흘렸다.
-이게 진짜 냉기를 쓰는 법인가.
불꽃을 얼린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라스는 그걸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녀석이 왜 매번 이미지와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고, 적은 사검마 혼자가 아니었다.
후우우웅!
백혈교주는 냉기가 시선을 가린 틈을 놓치지 않고, 라스의 간격에 침투하여 혈기의 검을 쏘아냈다.
그녀의 입술이 빠르게 달싹이자, 칼날이 수천 개로 번지며 라스의 주변을 휘감았다.
치이이이잉!
사검마의 검식과는 격이 다른 힘. 혈기의 칼날은 라스의 냉기마저 뚫어버리고, 내부를 헤집었다. 진짜 초월자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무학과 주술이었다.
우우우웅!
백혈교주가 다시 고속의 진언을 읊자, 하늘을 노니던 혈기의 칼날들이 라스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차를 노리듯 피할 공간 자체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제법이로구나.”
라스가 짓쳐드는 투명한 칼날을 보며 오연한 미소를 그렸다.
“허나….”
녀석의 손이 구슬을 만지듯이 허공을 쓸어내리는 순간 서리의 조각들이 기지개를 피듯 응집되었다.
냉기의 칼날들은 백혈교주가 운용한 혈기의 칼날과 똑같은 변화와 환상을 일으키며 격랑처럼 솟구쳤다.
캬갸갸갸갸걍!
냉기와 혈기가 정면에서 맞부딪치며 무시무시한 굉음이 밤하늘을 울렸다.
“큭….”
백혈교주는 혹한을 두른 서리의 기운이 눈매를 찡그렸지만, 라스는 아직 여유를 잃지 않은 눈동자로 그녀를 살피며 왼발로 땅을 밀어냈다.
공간이 가로로 접히며 그의 손아귀 앞으로 백혈교주의 당황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기생충.”
라스가 백혈교주의 흑단 같은 머리채를 잡으려고 할 때였다. 우측 사각에서 섬뜩한 기운이 드러났다.
‘이제야 왔군.’
전투에 빠질 것처럼 물러나 있던 성검련주가 폭발 속에서 검을 찔러온 것이다.
쩌저저저적!
뒤를 볼 여유가 없었다. 빠르게 의념을 일으켰다. 의지와 마기가 동조하며 바닥에서 거대한 냉기의 벽이 차올라 성검련주의 검격을 막아냈다.
캬아앙!
하지만 성검련주의 검은 오직 예기만을 두른 듯 설벽을 가르고, 두 번째 검격을 쏘아냈다.
라스가 양쪽으로 손을 뻗었다. 좌수로는 당기는 힘을 우수로는 밀어내는 힘을 마기에 얹었다.
냉기의 파도가 번져가며 백혈교주의 몸이 끌려오고, 성검련주의 검격은 다가오지 못하고 밀려났다.
“어딜!”
백혈교주는 잘 되었다는 듯 혈기가 깃든 손을 뻗어왔다. 냉랭한 혈기가 일렁거리는 손아귀가 라스의 가슴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치이이익!
라스의 손이 초승달의 외면을 따라 올라갔다. 백혈교주의 공세를 부드럽게 흘리고, 그녀의 육체와 영혼에 냉기의 쇠사슬을 입혔다.
반대로 성검련주의 검격을 짓눌러 바닥을 치게 만들었다.
쩌저저적!
두 초월자의 공세를 막아내고, 역습까지 가하는 전율적인 무력. 하지만 백혈교주와 성검련주 역시 평범한 초월자들이 아니었다.
치이이익!
백혈교주는 전신에 혈기의 불꽃을 일으켜 냉기의 쇠사슬을 끊어 버렸고, 성검련주는 라스의 냉기가 미치지 않는 방위로 이동하여 하얀 서리가 낀 흑검을 휘돌렸다.
라스는 성검련주에 대한 경계를 풀지않은 채 방어를 굳히려는 백혈교주의 간격으로 들어섰다.
“치잇!”
백혈교주는 그 짧은 순간에 호흡을 되찾고 발을 뻗어왔다. 숨을 들이마시기도 전에 가슴까지 파고드는 극한의 각법이었다.
빠드드득!
라스가 손아귀에 반투명한 냉기를 일으키며 백혈교주의 정강이를 잡았다. 혈기와 냉기가 맞부딪치며 강렬한 스파크가 터졌다.
치이이잉!
초월자의 살점마저 삼키는 강렬한 스파크 속에서 라스의 손이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백혈교주의 목을 잡으려고 할 때 성검련주가 기다렸다는 듯 검을 찔러왔다.
우우우우웅!
라스가 백혈교주의 다리를 놓고 왼손을 위로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며 구슬을 담는 듯한 모습을 그렸다. 손아귀에서 차오른 시퍼런 냉기가 공간을 비틀었다.
쩌저저저적!
공간이 망가지며 라스의 심장을 향하던 성검련주의 검이 허공을 찌르고, 백혈교주의 권격이 땅을 쳤다.
라스는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백혈교주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빠아아아악!
백혈교주는 그 사이에도 혈기의 방패를 만들었지만, 라스는 상관없다는 듯 주먹을 뻗어 그녀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허어?”
성검련주는 검이 비틀어졌던 공간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마왕이라는 칭호를 가질만 한 실력이로군.”
그는 냉기가 차오른 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빌어먹을 마물 놈이!”
백혈교주가 하얀 피가 흘러내린 입술을 훔치며 이를 바득 갈았다.
우우우웅!
그녀가 분노를 담은 채 두 손을 모았다.
피에 젖은 대지에서 새하얗게 물든 해일이 솟아올랐다. 별빛을 담으려는 듯 하늘 끝까지 솟구친 해일이 라스를 향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무학과 주술의 조화.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었다.
“갈라져라.”
라스의 하늘색 눈동자가 상서로운 빛을 뿌렸다. 웅대한 혈기의 파도 앞에서 뒷짐을 진 채로 뇌까렸다.
쿠우웅!
마왕의 음성이 다시 한번 세계를 울리자, 백혈교주가 만들어낸 혈기의 파도가 갈라졌다. 목소리에 의념을 담는 신비의 기예. 언령이었다.
쩌저저적!
라스를 스치지도 못한 혈기의 파도는 뒤에 있던 숲을 완전히 녹여버린 채 가라앉았다.
“이, 이게….”
백혈교주는 이런 상황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 눈을 부릅떴다.
-아까도 이랬는데….
라온은 라스의 말에 갈라졌던 파도와 불꽃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언령이라는 것이니라.’
라스는 속으로 조금 전에 무엇을 했는지를 말해주었다.
-언령?
‘전에 한 번 말해줬을 텐데, 목소리에 의념을 담아 현실에 그 뜻을 이루는 것이니라.’
-용언 마법 같은 건가?
‘도마뱀 놈들은 본능적으로 하지만 다른 이들은 깨달음을 얻어야 하지. 아, 그러고 보니 빨리 끝내야겠군.’
녀석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중얼거리며 손을 펼쳤다.
“전력으로 죽여주마….”
백혈교주가 거친 숨을 토하며 손을 모았다. 그녀의 입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더니, 밤하늘 위로 새하얀 여명이 타올랐다.
고고한 여명 속에서 흐릿한 실루엣이 번지더니, 마흔여덟 개의 팔과 세 개의 눈이 박혀 있는 백혈교의 신이 내려섰다. 마라혈신관음의 현신이었다.
혈신이 눈을 뜨자, 핏줄이 선 눈동자에서 시뻘건 핏물이 넘쳐흘러 대지를 적셨다.
-저거….
라온이 혈신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팔이 늘었어!’
이전에 글렌이 상대할 때 혈신의 팔의 개수는 44개였는데, 지금은 46개가 되었다. 예상대로 그녀 역시 성장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백혈교주의 입술이 초고속으로 움직이자, 사이한 악의가 하늘을 뒤덮으며 마라혈신관음의 마흔여섯 개 손 위로 인간 세계의 무기들이 솟구쳤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두 번째 주술을 읊었다. 혈신이 들고 있던 마흔여섯 개의 무기에서 순백의 불꽃이 타올랐다. 마려혈식관음의 비의 혈화였다.
“나도 적당히 힘을 내야겠군.”
성검련주가 흑검을 띄웠다. 생명을 얻은 흑색의 검신 위로 밤보다 깊은 어둠이 타오른다. 그림자를 녹인 듯한 흑검의 검신에서 숨을 멎게 만드는 압력이 뿜어져 나왔다.
다만 그는 아직도 여력을 남겨두고 있는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구!
백혈교주의 혈령신무와 성검련주의 흑성참혼이 동시에 뻗어나가며 대지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꺼먼 빛으로 지워진다.
주변으로 막대한 규모의 폭풍이 치솟았는데, 물러났다간 바람에 찢겨 죽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나의 파동이 휘몰아쳤다.
“후….”
라스가 낮은 숨을 내뱉었다. 신비로움을 장포처럼 걸친 채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초월 그 이상으로 나아간 마계의 패자가 흐릿한 미소를 그렸다.
“꿰뚫려라.”
마왕의 손아귀 위로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황홀한 빛이 떠올랐다.
분노의 마왕 결전기.
은월마장.
언령과 함께 쏘아진 푸른 섬광이 백혈교주의 혈령신무와 성검련주의 흑성참혼과 맞부딪쳤다.
쿠와아아아아앙!
혈광과 어둠 그리고 푸른 광영이 힘을 겨루며 무시무시한 마나의 폭발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괴력난신의 현현. 세상 그 누가 와도 억누를 수 없는 초월성의 격돌이었다.
라스는 의념으로 밀어내는 힘을 가속 시켰다. 은월마장의 냉기가 적을 감싸려는 듯 넓게 퍼지자, 백혈교주가 그 틈을 막기 위해 혈기의 기운을 똑같이 주변으로 퍼뜨렸다.
‘지금이다!’
라스가 눈동자에 푸른 불길을 일으키며 은월마장의 기운을 한점으로 압축시켰다.
찌지지직!
서리의 기운이 찰나의 순간에 응집되며 백혈교주의 혈령신무를 꿰뚫고, 성검련주의 흑성참혼을 밀어냈다.
뿌드드득!
라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백혈교주의 눈앞으로 이동했다. 혈기가 사라진 그녀의 목을 잡고 힘을 주었다.
“끄으윽!”
백혈교주가 혈기를 운용하여 방어하려 했지만, 냉기로 막으며 그녀의 목을 비틀었다.
“가만히 있거라.”
“미안하지만, 저 여자가 죽는 건 내 계획이 아니라서.”
어느새 다가온 성검련주의 흑검이 라스의 어깨를 찍어 내렸다.
캬아아앙!
라스의 의복 위로 푸른빛의 철갑이 돋아나 검날을 막아냈다.
-설화의 마갑!
푸른 빛의 갑주가 완벽한 형태를 갖추어 성검련주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찌지지직!
하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았다. 성검련주의 어검에 실린 힘이 급속도로 증가하며 라스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뿌두두득!
마갑이 깨질 때 라스가 성검련주의 검을 손으로 잡았다. 왼손으로는 백혈교주의 목을 쥐고 있는 상태였다.
“꺼져….”
백혈교주가 혈기로 라스를 밀어내고, 성검련주의 어검이 섬뜩한 빛을 일으켰다.
‘역시 그랬군.’
라스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 하늘 위에서 어마어마한 마나의 파동이 일어났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수많은 별을 가리는 거대한 황금빛 드래곤이 주둥이를 쩍 벌리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오!
시꺼먼 아가리 속에서 샛노란 숨결이 번쩍인다. 라이트닝 브레스. 골드 드래곤의 최강의 무기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빠지지직!
그 순간 우측 하늘에서 붉은 벼락을 휘감은 검이 쇄도해왔다.
속도라는 개념을 초월한 검격. 드래곤 브레스에도 밀리지 않는 뇌전이 허공을 뒤덮었다.
‘이제야 왔군.’
라스는 기다렸다는 듯 백혈교주의 목을 놓고, 기도하듯이 양손을 모은 후 왼손을 반대로 비틀었다.
처음에 바닥에 깔아 두었던 냉기의 문양이 찬란한 빛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아앙!
브레스와 뇌기, 혈기 그리고 어검이 맞부딪치며 세상에 없는 빛의 폭풍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