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512)
제512화
파지지직!
보랏빛 휘광의 중심을 헤집던 뇌기의 검이 시간을 되돌린 듯 뒤로 되돌아가 글렌 지그하르트의 굵직한 손아귀에 잡혔다.
다시 주인의 손에 닿은 진천검이 웅혼한 검명을 울리며 검붉은 벼락을 떨어뜨렸다.
수십 줄기의 뇌전은 그 하나하나가 초월자의 검세였다. 빛의 기둥처럼 뻗어나간 우악스러운 뇌전이 드래곤의 브레스와 초월자들의 오러를 모조리 쓸어버렸다.
쿠와아아아아앙!
응집된 힘이 한순간에 폭발하며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대지에 내리꽂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꺼먼 무저갱이 돋아났다.
적색 스파크가 터지는 대지 위로 글렌 지그하르트가 내려섰다. 그가 손을 휘젓자, 거센 바람이 일어나 꺼멓게 타오른 연기를 지웠다.
가라앉는 먼지 위로 한껏 물러난 초월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크윽!”
“하.”
백혈교주는 브레스와 검격에 직격당해 크게 충격을 받았는지 입술 위로 하얀 핏물을 뱉어내고 있었고, 성검련주는 오랜 친우를 만난 듯 눈동자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으으….”
사검마는 잘려 나간 어깨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처박혀 전신을 떨고 있었다. 곧 죽을 것처럼 입술이 퍼렜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또 방해를!”
백혈교주가 글렌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이거 귀하신 몸이 오셨군.”
성검련주가 양팔을 벌리며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그렸다.
“글렌 지그하르트! 그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당장 글렌과 검을 부딪치고 싶다는 듯 혀로 붉은 입술을 축였다.
“…….”
글렌은 성검련주와 백혈교주를 무시하고, 중앙에 파여나간 구멍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사라졌나?’
전장의 중심에 무시무시한 마기를 제 옷처럼 걸친 존재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었을 리가 없으니, 뇌기와 브레스가 쏟아지는 틈을 이용하여 내뺀 것 같았다.
“천검대주, 광풍대주.”
“예!”
글렌의 부름에 리메르와 셰릴이 안색을 굳힌 채 글렌의 뒤에 부복했다.
“상황을 보고하라.”
“광풍대가 민간인들을 이끌고 이곳에 왔을 때 흑탑의 오르고스가 나타났습니다. 광풍대가 일방적으로 당할 때 라온이….”
셰릴은 성검련과 백혈교 습격 이후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마왕의 말에 의하면 오르고스만 죽였을 뿐 라온을 건드리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결계 내부 혹은 이 주변에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을 듯합니다. 물론 무조건 그 말을 믿어서도 안 된다 생각합니다.”
“그렇군.”
글렌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겉과 달리 속은 타들어 가는 듯 아려왔다.
‘그 녀석은 정말….’
라온이 큰 부상을 입은 광풍대를 살리기 위해서 대규모 순간이동을 발동시켰다고 할 때 그 아이답다고 생각하면서도 안타까웠다.
항상 본인보다 남을 위하는 손자였기에 더욱더 마음이 쓰렸다.
‘살아만 있어라.’
내 어떻게 해서든 널 찾겠다.
우우우우웅!
글렌이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진천검을 고쳐 잡을 때 찬란한 금빛과 함께 고풍스러운 지팡이를 든 노인이 내려섰다. 인간의 틀을 벗어난 듯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휘감고 있었다.
“마왕은….”
노인은 다른 이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시꺼멓게 파여나간 구멍을 향해 다가갔다.
“어떻게 되었소?”
그는 마왕에게만 관심이 있는 듯 구멍을 굽어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어이, 늙은 드래곤.”
백혈교주가 노인을 향해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를 번득였다.
“이 지랄을 해놓고 사과 한마디 안 하는 거야?”
그녀는 브레스에 지져진 팔을 가리키며 이를 바득 갈았다.
“드래곤 로드라고 비늘이 더 질긴 건 아닐 텐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왕의 말살이오.”
드래곤 로드는 한 마디의 사과도 내뱉지 않은 채 손을 뻗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흘러내린 황금빛 조각이 시꺼먼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고오오오오.
여러 가지 기운이 난잡하게 폭발했지만, 구멍의 크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했다.
한참 동안 내려간 후에 간신히 그 끝이 드러났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기는 사라졌는데, 느낌은 좋지 않군.”
드래곤 로드가 텅 비어 있는 구멍을 노려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대륙에 강림한 마왕이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없지. 제대로 확인을 해보아야겠소.”
그가 두 손을 모으자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마나의 알갱이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마왕 따위는 관심 없고.”
성검련주의 어깨 뒤로 구름처럼 떠오른 흑검이 가느다란 검명을 울렸다.
“오랜만에 한 번 붙어봐야지?”
그는 글렌을 보며 흉흉한 눈동자를 굴렸다.
“천검대주, 광풍대주.”
글렌은 성검련주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뒤로 시선을 돌리며 리메르와 셰릴을 불렀다.
“주변을 수색하여 광풍대를 찾도록.”
광풍대는 라온이 안전한 곳으로 보냈을 게 분명하기에 명령과 달리 실제로 찾아야 하는 건 라온 한 사람이었다.
“명을 받듭니다.”
“반드시….”
셰릴과 리메르가 입술을 깨물고서 각자 동쪽과 서쪽으로 움직였다.
“로엔.”
“알겠습니다.”
뒤늦게 따라온 로엔이 소매를 걷고서 허리에 차고 있던 얇은 세검을 뽑았다. 그는 가볍게 걸음을 옮기는 듯하다가 어둠 속으로 존재를 감췄다.
콰드드득!
백혈교주의 시선을 받은 3사도와 10사도가 움직이려고 할 때 붉은 벼락이 바닥에서부터 솟구치며 길을 막아섰다.
“내가 허락할 때까지. 누구도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글렌이 진천검을 들어 올리며 성검련주와 백혈교주를 겨누었다. 그의 음성은 라스의 언령처럼 무형의 힘을 지닌 채 초월자들을 압박했다.
정점에 오른 검사의 살기에 노출된 이들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역시 북멸왕.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성검련주의 감정이 달아오르며 흑검이 귀가 따가울 정도의 검명을 터트렸다.
“어서 겨뤄보자고. 네 검과 내 검. 무엇이 더 위에 있는지.”
“….”
글렌은 대답없이 진천검을 세웠다. 검은 칼날 위로 살의를 두른 의념이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놈들은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그는 라스처럼 홀로 성검련주와 백혈교주를 감당하겠다는 듯 오연한 기파를 일으켰다.
“그만두시오!”
드래곤 로드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곳의 셋이 부딪친다면 대륙의 균형이 무너지게 될 것이오. 인과율이 망가져서….”
“그놈의 균형. 그놈의 인과율.”
성검련주가 짜증이 피어난 눈으로 드래곤 로드를 흘겼다.
“네놈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침을 뱉고 다니면서 왜 자꾸 인간의 싸움만 말리는 거지?”
“우리는 대륙의 균형을 위해서 움직일 뿐이오.”
“서쪽 바다에 있는 광룡이 대륙의 균형을 생각한다는 건가? 심심하면 해안 마을을 밀어버리는 미친 도마뱀이?”
“음….”
드래곤 로드는 반박하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마왕이오. 살아서 도망쳤을 게 뻔한데, 여기서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오!”
“그도 찾을 것이다.”
글렌이 드래곤 로드를 보며 입매를 단단하게 굳혔다.
“광풍대를 찾지 못한다면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귀찮게 하는군.”
드래곤 로드가 손짓을 하자, 밤하늘 위로 두 마리의 거대한 드래곤이 공간이동을 통해 나타났다.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오.”
“지금….”
글렌의 붉은 눈동자 위로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내게 협박을 하는 것인가.”
“음….”
심장을 짓누르는 듯한 기파에 드래곤 로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성검련주가 검을 어깨에 걸치며 턱을 틀었다.
“기껏 메인 디쉬가 나왔는데, 계속 방해하면 화가 나거든.”
그는 당장 글렌과의 싸움을 원하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찌지지직!
글렌과 성검련주가 서로를 노려보며 검을 세울 때였다. 허공이 사선으로 갈라지며 피로 칠한 듯한 붉은 공간이 나타났다.
“라온! 라온의 결계야!”
멀린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결계 속으로 몸을 던졌다.
글렌 역시 망설임 없이 검을 내리고 결계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에게 손주의 행방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라온은 우측 끝에서 아주 작게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그럼….
다시 시선을 돌려 절벽에 여유롭게 걸터앉은 라스를 살피며 눈매를 찡그렸다.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이었어?
“말했잖느냐. 본왕에게는 시간이 없다고. 바닥에 깔았던 냉기도 순간이동을 위한 준비였느니라.”
라스는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대지에 깔았던 기하학적인 문양이 마계의 이동 마법이었다며 손을 저었다.
-그럼 왜 시간을 낭비하면서 싸운 건데?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녀석은 손아귀에서 피어나는 새하얀 혈기를 매만지며 눈매를 좁혔다.
-혈기? 설마….
“그래. 그 기생충이 뿌리내린 육체의 내부를 확인했느니라. 그리고….”
라스가 혈기를 짓누르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그 육체의 주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지.”
-정말이야?
“그렇느니라. 기생충 때문에 짓눌려 있지만, 영혼 자체는 아직 살아 있다.”
녀석은 백혈교주의 목을 잡았을 때 그 안에 작은 영혼이 떨고 있는 것을 느꼈다고 말해주었다.
“다만 그런 상태이기에 본왕은 건드릴 수 없느니라. 그 기생충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육체도 같이 죽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너희들이 나서야지.”
라스가 진중한 눈빛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육체의 피붙이인 소고기 소녀와 기생충에게 강렬한 증오를 가진 미물의 주인인 네놈이라면 충분히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니라. 물론 무력으로 그 기생충을 이겨야 가능하겠지.”
녀석이 가볍게 손을 털었다. 하얀 기운이 둥실 떠오르더니, 허리춤으로 흘러 들어갔다. 백혈교주의 혈기를 진혼검에 먹인 것 같았다.
“가능하겠지?”
-가능하게 해야지.
라온이 라스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흥. 네놈 때문이 아니라, 본왕의 수하를 챙겼을 뿐이니라.”
녀석은 고개를 홱 돌인 후 헛소리하지 말라고 중얼거렸다.
“이제 본왕은 마지막으로 할 일을 해야….”
-잠깐만, 부탁이 있어.
라온이 일어서던 라스의 앞을 막아섰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느니라. 금방이라도 변할….”
-네 분노를 받을게.
의지를 굳힌 음성으로 턱을 들어 올렸다.
-나도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 * *
마르타는 팔에 꽂혀 있는 두꺼운 바늘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힘들 거라는 게 거짓말이 아니었어.’
이 바늘은 무인에게서 오러를 뽑아 환자의 기력을 채워주는 아티팩트였다. 격체전력이라 말하는 무학의 묘리를 장비로 이루어낸 방식이다 보니, 시전자의 부담이 상당했다.
단순히 고통스러운 게 다가 아니라, 꾸준히 기운이 빠져서 머리가 어지러운데다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마르타는 자그마한 신음도 흘리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 일을 참지 못한다면 끝까지 자신을 지켜준 광풍대에게 너무도 미안한 일이니까.
“좀 어떤가요?”
마르타는 도리안과 버렌, 루난, 마크 괴튼을 차례로 살피는 치료사에게 다가갔다.
“일단 저 둘은 살 수 있네.”
치료사가 버렌과 루난을 가리키며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 읊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그의 말이 이어졌다.
“다만 어깨의 뼈가 나가고, 내상이 너무 심해서 다시는 싸울 수 없을지도 모르네.”
“그런….”
마르타가 턱을 부르르 떨었다. 저 둘에게 무학은 목숨보다도 귀한 것이다.
다시는 검을 휘두를 수 없다고 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쪽은 팔을 자르면 괜찮을 테고. 빨리 결정을 내려야겠지.”
치료사는 마크 괴튼의 팔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가장 앞에 있는 도리안에게 향했다. 도리안의 팔과 다리는 여전히 찌그러져 있었고, 복부의 상처도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이 친구는 나도 모르겠네. 이렇게 당하고 살아 있는 건 처음 봐. 신관들이 와도 손을 쓸 수 없을 걸세.”
치료사는 고통 없이 빨리 보내주는 게 도리안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며 눈을 내리감았다.
“제, 제 생명과 오러를 더 뽑아도 됩니다. 제발….”
“이미 자네도 무리하고 있어. 그만하게.”
그는 이상하면 심한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며 손을 젓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아….”
치료사가 눈을 꿈벅이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그만이 아니다. 치료소에 있는 환자와 치료사가 모두 고개를 떨궜다.
“이, 이게 무슨… 아.”
마르타가 입술을 떨었다. 머릿속이 새까매지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 역시 졸음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화아아아!
모두가 쓰러진 치료소 내부로 푸른 서리가 흩뿌려지더니, 라스가 나타났다.
“후우….”
라스는 광풍대의 상태를 살피고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말하마. 네놈은 본왕을 강림시키느라 이미 많은 양의 분노가 축적되었고, 심상의 일부분을 잃었느니라. 이건 능력치나, 무학을 잃는 것보다 훨씬 큰 손해이니라.”
-알고 있어.
“그런데도 추가로 분노를 받겠다고?”
-그래.
“미치기라도 했느냐? 이리되면 네놈은 분노의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 것이니라. 훗날 본왕이 네놈의 육체에 강림하면 다시는 못 돌아올 수도 있다.”
-예전에 쓰레기 같은 놈이 해준 말이 있어.
라온이 일그러진 얼굴로 잠이 든 광풍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소중한 게 생기면 인간은 약해진다고 했었지.
사실 예전이 아니라 전생이다. 데루스 로베르트는 소중한 것을 가진 인간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절대 아끼는 것을 만들지 말라고 지시했었다.
-당시에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었어.
혼자서 수련을 했다면 절대 지금의 경지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라스가, 리메르가, 광풍대가 함께 해주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이들을 잃는 건 심상이 망가지는 것보다 훨씬 큰 손해였다.
-나는 저 녀석들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고, 저 녀석들 역시 내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지. 인연이라는 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야.
“인간들이란….”
라스가 혀를 차면서 손을 뻗었다. 광풍대 검사들의 상처를 헤집고 있던 오르고스의 마기가 모조리 뽑혀 나와 손아귀로 흡수되었다.
“이쪽은 이런 방식으로는 힘들겠군.”
녀석은 마크 괴튼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치료가 가능해?
“마기는 음의 기운이니라. 본인은 치료할 수 있어도 남을 고칠 수는 없지. 하지만 본왕은 그걸 어그러뜨릴 수 있느니라.”
라스의 왼손에는 푸른 기운이, 오른손에는 은빛의 기운이 타올랐다.
“음과 음이 응집되어 비틀어지면 양. 즉, 플러스의 기운이 되느니라.”
녀석이 합장하듯이 두 손을 모으자, 손아귀에서 짙푸른 광채가 떠올랐다.
“고맙게 여기거라. 다른 멍청한 마왕들은 할 수 없을 테니까.”
라스는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손아귀에서 타오른 광영을 마크 괴튼의 팔에 뿌렸다.
화아아아아!
푸른 기운이 닿자마자, 마크 괴튼의 다 타버린 팔에서 죽은 살이 뜯겨나가고, 새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팔은 다치기 전보다 더 깨끗하고 선명한 색으로 재생되었다.
“여긴 이쯤이면 되었고.”
라스가 마크 괴튼을 지나 루난의 앞에 섰다.
“우리 아이스크림 소녀. 본왕이 꼭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는데.”
녀석은 이를 바득 갈고서 루난에게도 치료의 빛을 뿌렸다.
화아아아!
채워지지 않았던 그녀의 복부 구멍에서 검은 피가 밀려 나오고 새싹처럼 하얀 살이 돋아났다.
라스는 루난의 얼굴과 몸에 가득한 상처까지 모두 지워주고, 옆으로 이동했다.
“눈깔이.”
버렌은 다른 상처도 심했지만, 눈이 뜯겨나간 게 가장 심했다.
우우우웅!
라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피에 젖은 버렌의 안구 속에서 푸른 눈동자가 떠올랐다. 본래의 색과는 달라졌지만, 그의 눈동자는 잠시 깜박이며 움직였다.
-이건….
“눈깔이가 눈깔이 없으면 안 되잖느냐.”
이건 치료가 아니라, 아티팩트 같았다. 라스는 이건 치지 않겠다고 말하며 버렌의 어깨와 복부의 상처까지 치료해주었다.
“후우….”
라스가 마지막으로 도리안의 앞에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멍청한 지갑 녀석. 적당히 하고 빠졌어야지.”
-나도 도리안이 이렇게 할 줄은 몰랐어.
“인간은 가끔 영혼의 격을 벗어난 멍청한 짓을 하느니라. 어찌 이런 상태로….”
녀석은 도리안의 상태를 살피고서 고재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계의 군주인 그도 이런 상처는 보지 못한 듯 보였다.
라스가 조금 더 많은 마기를 불태운 후 도리안의 상처에 가져갔다.
뿌드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젖은 빨래처럼 찌그러진 도리안의 팔과 다리가 제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고통이 심한지 도리안의 전신이 바들바들 떨리고, 머리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러내렸다. 대신 녀석의 팔과 다리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제 모습을 되찾았고, 복부에 뚫린 구멍에서도 새살이 차올랐다.
곧 죽을 것처럼 창백했던 도리안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들군.”
라스는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을 소매로 훔치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다.
“본왕이 반은 부담하마.”
-뭐?
“이놈들은 본왕의 수하들 아니더냐. 인과율 때문에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네 부담의 반은 가져가겠다.”
녀석은 본래 가져야 할 분노의 반만 먹으라며 차게 웃었다.
-너 진짜 마왕 맞냐?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 당당하고 공포를 두른 마계의 군주이니라!”
라스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린 채 고개를 저었다.
-공포라….
“오히려 네놈이 인간 같지 않은 것이니라!”
-그럴지도 모르겠네.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네 할 일을 해야지. 뭘 한 건데?
“그, 그래! 이제 진짜 시간이 없느니라!”
라스는 고개를 끄덕인 후 빠르게 기척을 감춘 후 문을 나갔다.
그가 떠난 치료소 내부에서는 잔잔한 숨소리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