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35)
제635화
“어떻게. 대체 어떻게.”
리메르의 모습을 한 무언가는 손목이 으깨졌음에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어떻게라는 말을 반복하며 나뭇잎 색의 눈동자를 뒤틀었다.
라온이 그 모습을 보며 미간을 깊게 구겼다.
‘이놈. 인간이 아니야.’
아무리 고통 내성 훈련을 했다고 하더라도 손목의 뼈가 부러지면 팔꿈치와 어깨를 움찔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놈은 통각 자체를 지워버린 듯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결계로 만들어낸 환상이거나, 특별한 몬스터인 것 같았다.
“어떻게!”
리메르의 모습을 한 괴물이 악을 지르며 내 손에 잡혀 있는 손목을 빼려고 했다.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놈의 손목이 흐물거리는 액체처럼 변해서 더는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너, 뭐 하는 놈이냐.”
라온은 텅 비어버린 손아귀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놈?”
리메르의 모습을 한 괴물의 손이 진흙처럼 꾸덕하게 변형되더니, 두 자루의 검을 뽑아냈다.
“그 검은….”
몰라볼 수가 없었다. 너무도 익숙한 형태. 제천검과 진혼검이었다.
“나는 라온 지그하르트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바람을 흘리고 있을 때 놈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세운 채 돌진해왔다.
치이이잉!
리메르의 모습을 한 괴물이 쥐고 있는 제천검의 칼날 위로 시뻘건 열선이 피어난다.
“이게 무슨!”
라온이 두 눈을 부릅뜨며 뒤로 물러섰다.
‘적섬?’
내가 회피한 공간 위로 예리한 열선이 스쳐 지나간다. 부유하던 눈덩이가 순식간에 증발하여 물방울을 뿌렸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다. 지금 저 괴물이 운용한 검식은 내가 자주 사용했던 만화공의 검술 적섬이었다. 대륙에서 만화공을 익히고 있는 건 나 혼자이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터어엉!
괴물 놈은 내가 물러난 만큼 따라붙으려는 듯 왼발로 땅을 내디뎠다. 그 걸음도 눈에 익었다.
‘태화보….’
놈은 태화보를 사용하여 좌측으로 쇄도해 제천검을 내리찍었다. 맹수가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듯한 검격 광아검이었다.
쩌어어엉!
라온이 제천검을 발검하는 동시에 설풍검결을 찔러넣었다. 검격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차디찬 칼날이 광아검의 균형을 뒤틀었다.
“크흐흐.”
리메르의 모습을 한 채 내 검술을 펼친 괴물은 뒤로 밀려났음에도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렸다.
“너는 대체….”
“나는 라온 지그하르트다.”
놈이 비웃음을 그리며 가짜 제천검으로 하늘을 찔렀다.
은색의 칼날 위에서 붉은빛을 띤 꽃봉오리가 천천히 얼굴을 드러냈다. 바람을 탄 듯 퍼져나간 수천 개의 화염 조각들이 설원을 에워쌌다.
“화령….”
적섬과 태화보, 광아검에 이은 화령이다.
놈은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검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화령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위력과 형태 무엇 하나 모자란 게 없었다.
“미치겠… 음?”
라온이 헛웃음을 흘리다가 눈썹을 내렸다. 화령을 흩뿌리는 놈의 이마 위로 상어 지느러미를 닮은 탁한 회색의 뿔이 돋아났다.
‘뿔?’
잠깐만 저 색은….
저 뿔은 처음 보지만, 저 탁한 회색은 예전에 본 기억이 있다.
‘도플갱어.’
하분성에서 유아를 납치하려고 했던 도플갱어의 본래 피부색과 완전히 같았다.
‘내 검술을 따라하는 것을 보면 도플갱어가 확실해.’
그것도 로드.
사람을 먹어 치운 후 그 사람의 능력을 얻는 도플갱어와 다르게, 도플갱어 로드는 처음부터 만난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할 수 있다.
다만 로드라고 해도 능력 복사에는 한계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 공간의 특별함 덕분인지 놈은 나와 같은 수준의 무력을 내고 있었다.
-이제야 알았느냐?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저 복사쟁이 놈은 계속 네 기술을 따라 할 것이니라. 귀찮으니 빨리 처리하거라.
‘음….’
라온은 도플갱어 로드의 화령을 진짜 화령으로 지우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런데 좀 이상한데?’
본래 도플갱어는 타인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일대일의 대결을 벌인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속설이 바로 거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저 도플갱어 로드는 내 모습이 아니라, 리메르의 외형으로 나타나서 기습한 후에야 내 검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 이것도….’
데루스 로베르트의 조작이겠군.
“내가 라온 지그하르트다!”
도플갱어 로드가 괴성을 지르며 가짜 제천검을 찔러왔다. 화살처럼 날아드는 검극이 신기루처럼 번져 전신의 급소를 압박해왔다. 적섬삼십육결이었다.
우우우우웅!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으로 염주벽을 세우며 어금니를 지그시 씹었다.
‘머리 한번 잘 썼네.’
데루스는 도플갱어와 일대일 대결을 할 수 있게 만든 곳을 조작하여 도플갱어가 동료의 모습으로 기습을 할 수 있는 악독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1층에서 3층까지 동료와 함께 싸워서 더 깊은 우애를 쌓게 만든 후 4층에서 동료의 얼굴로 비수를 찌르다니, 악독한 쪽으로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놈이었다.
만약 도플갱어가 리메르를 더 잘 연기했다면 나도 속았을지 모른다.
-그럼 본왕의 수하들은!
라스는 이제 생각이 났다는 듯 폴짝 뛰었다.
-아이스크림 소녀! 소고기 소녀! 파인애플 소녀! 그리고 본왕의 지갑까지! 다 위험한 것 아니더냐!
‘아닐 거야.’
이놈처럼 연기가 서툴렀을 테니까.
도플갱어는 인간을 잡아먹어서 그 인간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4층에 있는 놈들은 기억의 파편만으로 동료의 모습을 따라 해야 하기에 연기가 조금 서툴 것이다.
도플갱어 로드가 리메르의 모습으로 광풍대를 걱정했던 게 그 증거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광풍대는 북망산 훈련에서부터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었기에 쉽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키아아아아!”
도플갱어가 뒤로 젖히고 있던 검을 전방으로 내뻗었다. 검극에서 거대한 불꽃이 소용돌이치더니 용의 형상을 갖췄다.
“이번에는 염룡결이냐?”
라온이 눈매를 찌푸리며 몸을 피하려고 할 때였다.
쿠구구구구!
회전하는 화염이 두 눈에 들어왔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불꽃이 이상하게도 느리게 느껴졌다.
조금 더 빠르게 불꽃을 움직이면 위력과 속도를 강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우우웅!
태화보로 염룡결을 피해내자, 도플갱어 로드가 우측으로 따라붙으며 서리연을 그어 내렸다. 서리의 칼날이 진검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서 목을 노려왔다.
‘너무 빠르게 따라붙는군.’
지금 보니, 두 번째로 날아오는 서리의 칼날이 진검의 뒤를 너무 빠르게 따라오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시간을 두는 게 더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내 검술을 이렇게 보는 건 처음 아닌가?
하분성에서 만났던 도플갱어는 내 검술을 따라 하지 않고, 그저 막강한 힘만으로 공격을 해왔기에 내 검술을 적의 입장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이거 괜찮은데?’
라온이 옅은 미소를 그리며 제천검과 진혼검을 가볍게 말아쥐었다.
‘새로운 훈련장을 찾았어.’
-뭔 훈련장이야!
라스가 그런 라온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빨리 처리하고 나가라고 이 또라이 천족 놈아!
* * *
“대체 왜….”
델프로스는 도플갱어 로드와 전투를 벌이는 라온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왜 저놈에게는 기습도 통하지 않는 거냐!”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외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죄, 죄송합니다.”
사비대주가 떨리는 고개를 숙였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
델프로스가 피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내가 직접 했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는 수정구 속 라온을 노려보며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모두 저놈이 문제다.”
1층을 놀이터 삼아서 검사들을 훈련시킨 건 웃어넘길 수 있었다. 2층에서 불사조를 어렵지 않게 제압한 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저놈은 불사조를 제멋대로 부활시키다가 수하로 삼았고, 3층에서는 미로의 비밀통로를 열었으며 그 끝에서는 설괴후를 죽였다.
‘그래. 설괴후….’
그건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아.
일격.
라온 지그하르트는 회피만 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설괴후의 숨통을 꿰뚫었다.
그 장면을 직접 보았을 때는 넋이 나가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실력은 설괴후가 위였으니까.’
라온도 그랜드 마스터지만, 오러와 경험이 압도적인 설괴후가 당연히 이기리라 생각했다.
그 괴물이 반격 한 번에 죽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질 않았다.
‘그리고 4층에서도….’
기습이 통하지 않았어.
4층의 계획은 완벽했다.
동료와 함께 지내다가 혼자 떨어진 상황. 시야가 탁 트여서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 때 믿을 만한 동료가 나타나면 누구라도 긴장을 풀 수밖에 없다.
하지만 라온은 도플갱어 로드의 기습을 알아차리고, 방어를 넘어선 반격을 해왔다.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였다.
‘운이 좋은 건가?’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한두 번은 운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저렇게 많은 일을 벌인다면 싫어도 실력을 인정해야 했다.
“결국 마지막 층에서 끝을 보는 수밖에….”
“아직입니다.”
사비대주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기대고 싶은 건 알지만, 도플갱어 로드라고 해도 그랜드 마스터를 이길 수는 없다.”
델프로스가 짧게 혀를 차고서 고개를 저었다.
“저 공간의 결계를 강화했습니다.”
사비대주가 수정구를 들여다 보며 손등을 꽉 움켜쥐었다. 갑자기 10년은 늙어버린 듯 그의 손등에 깊은 주름이 졌다.
“뭐?”
“도플갱어 로드가 지닌 힘 이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술식을 바꿨습니다.”
사비대주의 눈동자 위로 짙은 열기가 타올랐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점점 더 강해지는 자신을 상대해야 할 겁니다.”
* * *
태양 빛을 산란시키는 듯 붉게 젖은 제천검과 제천검이 정면에서 맞부딪쳤다.
쩌어어어어엉!
화산이 폭발한 듯 거대한 불길이 하늘과 땅을 뒤덮는다. 세상을 채우던 눈이 녹으며 회색 대지가 맨몸을 드러냈다.
라온이 눈이 사그라든 땅을 짓뭉개며 나아갔다. 리메르의 모습으로, 자신의 검술을 사용하는 도플갱어 로드를 향해 제천검을 내뻗었다.
투우웅!
도플갱어 로드는 기다렸다는 듯 라온과 같은 자세로 똑같은 검식을 펼쳐냈다.
쩌저저적!
검극과 검극 사이의 공간에서 돋아난 불길이 구슬처럼 작은 원을 이루다가 한순간에 폭발했다.
라온 지그하르트 검식 제2형 중천포였다.
거대한 충격파가 사위로 퍼지며 한순간 눈이 그쳐 버린 듯한 현상이 일어났다.
쩌저저적!
한 발씩 뒤로 물러섰던 라온과 도플갱어 로드가 태화이보를 밟으며 서로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서리연, 청우, 혈우, 은검몽에 창궁검까지. 라온과 도플갱어 로드는 똑같은 검술로 상대의 숨통을 노렸다.
어느새 파괴되지 않을 것 같았던 공간에 균열이 돋아나고, 대지가 움푹 파여나갔다.
라온은 도플갱어 로드가 보여주는 자신의 검술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점점 강해지고 있군.’
도플갱어 로드가 사용하는 검술의 위력이 점점 더 강하고 빨라진다. 지금에 와서는 힘에서 밀린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다만….’
변하는 건 없어.
저 검술들을 익히고, 만들었을 때와 지금의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이 달라졌으니까.
검술의 위력은 도플갱어 로드가 강하지만, 놈에게는 내가 최근에 알아차린 깨달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건 더 많은 오러를 쌓은 괴물이 아니라, 더 깊은 사고와 경험을 쌓아온 나였다.
‘저놈 덕분에 그걸 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지.’
도플갱어 로드의 검술을 보며 무학 경지는 높아졌는데,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검을 휘두르는 모자란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구결을 만들지 않고, 그때의 감각만으로 이뤄낸 검들이라 부족하게 느껴지는 거였어.’
지금까지의 나는 성장한 육체로 아동복을 걸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 또한 기연이군.’
아니, 필연인가.
네 번째 층은 도플갱어를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든 공간 같았다. 지그하르트의 선조가 만들어 놓은 수련장이니, 이건 우연도 기연도 아니었다.
“내가. 내가 라온 지그하르트다!”
도플갱어 로드가 포효를 내뱉으며 두 검을 땅에 꽂았다. 가짜 제천검과 진혼검이 강렬한 빛을 토해내며 하늘 위로 태양과 달을 그려졌다.
라온은 새하얀 하늘을 적시는 태양과 달 그리고 도플갱어 로드의 손에 들린 신검과 마검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검계현신…?”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도플갱어 로드라고 해도 검계현신을 쓰는 건 상상하지 못했다.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당황이라는 감정이 정신을 채웠다.
“끼에에에에!”
검계현신마저 이룬 도플갱어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신검과 마검의 기파가 흑룡포를 파고들었다.
멀리 있음에도 피부가 아려오는 통증이 일었다.
치이이이잉!
제천검과 진혼검에 냉기와 열기를 담아 염주벽과 서리연을 그었다.
쩌어어어어엉!
신검과 마검답게 어마어마한 충격이다. 어깨가 빠질 것만 같았다.
“키에에에에에!”
도플갱어는 한번 잡은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듯 연달아서 신검과 마검을 내리쳤다.
폭급하게 힘을 뿌리지 않고, 제대로 된 검결을 펼쳐낸다. 경지에 오른 무인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찌지지직!
라온은 제천검으로 청우, 진혼검으로 은검몽을 일으키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내 적들은 저런 괴물과 싸웠던 건가.’
무시무시한 힘과 끝도 없이 타오르는 열기와 냉기를 현묘한 검술로 이어붙인다. 내 모습이지만, 질릴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다만….’
부족함은 사라지지 않았어.
나는 지금까지 내 검계현신이 완성형이라고 생각했다.
마스터 때와 달리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며 균형이 잡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랜드 마스터에서 한발 더 나아간 눈으로 살펴보니, 부족한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신검과 마검의 균형을 맞추지 않고 조금씩 차이를 내어도 좋을 것 같았고, 일대일의 상황에서는 검계의 범위를 집중시켜 위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도플갱어와 검을 맞댈수록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였다. 무엇 하나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쿠구구구구구!
도플갱어 로드가 한 발 뒤로 물러선다. 신검을 오른쪽 어깨 위로 마검을 오른쪽 허리 뒤로 젖힌다.
두 자루 검에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이 뿜어져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청홍무적검!’
신마조화결의 연계기이자, 현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검식이 도플갱어 로드의 손에서 솟구쳤다.
“키아아아아아아!”
도플갱어 로드가 지금까지 중 가장 큰 포효를 내질렀다.
마지막 일합 대결을 벌이자는 듯 뒤 없이 쇄도해왔다. 놈이 다가오는 것만으로 근육이 파열되고 피부가 녹아내리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내가 가진 최강의 검 청홍무적이 맞았다.
한계를 모르고 증폭된 불꽃과 서리의 칼날이 떨어진다. 붉은 태양과 푸른 달이 하늘을 먹어 치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해서도 막을 수 없어….’
예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겠지.
신마조화결을 만든 건 마스터 때다.
그랜드 마스터가 된 이후로 강화되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게 느껴졌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깨부숴야 한다는 거겠지.’
받아주마.
라온이 무겁게 발을 굴렀다. 발목에서부터 차오르는 충격을 전신으로 퍼뜨렸다.
부풀어 오른 마나 회로 위로 만화공의 열기와 글래시아의 냉기가 질주한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며 타오른 불꽃과 서리가 제천검과 진혼검의 칼날 위에서 벼락을 일으켰다.
변한다는 건 두렵지만 나아가지 않는다면 무엇도 이룰 수 없다.
라온은 불꽃과 서리 뒤에 있는 하늘을 보았다.
끝도 없이 높고, 그 무엇도 잫지 못한 고고한 하늘.
자신의 목표를 바라보며 지금의 최선을 그렸다.
창궁검 진무유화.
끝없이 변해가는 하늘에는 그 무엇도 닿지 못한다.
쩌어어어어억!
신검이 일으킨 불꽃의 파도도, 마검이 세운 빙하의 산도 갈라진다.
뒤에 남는 건 하늘. 변하며 변하지 않는 창공이었다.
“변. 했. 어?”
도플갱어 로드는 내가 본인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듯 기이한 웃음을 흘렸다. 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고서 불꽃과 서리의 빛 속으로 사라졌다.
후우우욱!
하늘에서 내려오던 눈이 멈춘다. 설원이 지워지고 검은 통로가 열렸다.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공간이었다.
‘이제 다 알겠어.’
라온은 떨리는 두 손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이곳은 지그하르트의 선조가 후인을 위해 만들어 둔 공간이야.’
단순한 한 명의 후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그하르트의 모두를 위해서 만든 훈련장이었다.
1층에서는 어둠 속에서 몬스터를 상대하고 함정을 피하는 것으로 체력과 정신력을 강화시켰고, 2층에서는 강대한 몬스터 하나를 상대하며 전략과 동료와의 우애를 키웠으며, 3층 미로는 빠르게 통과했지만, 아마 판단력과 통찰력 그리고 협동심을 키울 수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통과한 4층은 자기 자신과 겨루며 스스로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고, 검계를 이룬 무인은 심상을 성장시킬 수 있게 만들어진 곳이었다.
층 하나하나가 무인들을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게 설계된 다정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데루스는 선조의 배려가 담긴 이 땅을 죽음의 손길이 뻗어오는 지옥으로 만들었다. 사람의 인생을 조종하려는 버릇은 여전했다.
‘데루스 로베르트.’
라온이 입술을 씹으며 아마도 마지막 층으로 향하는 구멍을 바라보았다.
‘너는 이곳에 없겠지.’
누구보다 조심성이 강한 데루스 로베르트는 분명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놈이 설계한 계획은 이 무덤에서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많은 도움을 받은 지그하르트의 선조를 위해서라도 놈의 계획을 깨부숴야 했다.
라온이 검은 구멍 속으로 몸을 던지며 입술을 비틀었다.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걸고, 너의 모든 것을 부정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