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53)
제653화
글렌은 웃으며 쓰러진 실비아를 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손에 힘을 주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실비아….’
가장 사랑을 받아야 할 막내였지만, 반대로 남 이상으로 무시하고 방치했었다.
간신히 마를 벗어나서 실비아를 찾았지만, 그 아이는 단전을 폐한 후 가문을 떠나 있었다.
천검대를 보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은 상태였다.
마에 잠식되어 스스로를 통제할 여력이 없었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었다.
뱃속에 아이 하나를 가진 채 돌아온 실비아는 죽고 싶어 하는 눈으로 살려 달라 빌었다.
빌고 싶은 건 나였다. 이 모자란 아비를 용서해 달라 무릎을 꿇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슬픔을 누르고, 억지로 강함을 드러내는 실비아의 눈을 보자, 목이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내게는 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할 자격도 없었다. 대신 스스로에게 맹세를 했다.
눈앞에서 챙겨주지는 못해도, 뒤에서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한없이 여리고, 약하다고 생각했던 막내딸은 오늘 달라져 있었다.
실비아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에게 다가오는 악의를 물리치기 위해서 스스로를 불태웠다.
마스터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의념이 되어 검에 스며들었다.
본인도 알지 못하겠지만, 오늘 그녀는 그랜드 마스터의 벽에 균열을 일으켰었다.
‘그리도 후회하고 있었구나.’
실비아가 오늘 죽을힘을 다해서 싸운 건 단순히 부원주 때문이 아니다. 지키지 못했던 남편과 딸. 그 둘을 떠올렸기에 기절을 할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글렌이 잘게 입술을 씹었다.
‘내 죄악이다.’
사위는 얼굴조차 보지 않았고, 손녀는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충분히 지켜줄 수 있는 여력이 있음에도. 아니, 처음부터 실비아를 내쫓지 않을 수 있었지만, 나는 그 무엇 하나 지켜내지 못했다.
다만 오늘 실비아는 내 것이라 생각한 죄업을 스스로 짊어졌다.
다시는 같은 일을 겪지 않겠다는 듯 자기 자신의 힘으로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
지우지 못할 상처를 입어서 끝까지 지켜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막내는 어느새 나보다도 강한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건….’
글렌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실비아를 간호하는 라온을 보며 입술을 짓눌렀다.
‘네 덕분이겠지.’
아니, 둘 모두.
라온이 존재했기에 실비아가 강해질 수 있었고, 실비아가 중심을 잡아주었기에 라온이 강해질 수 있었다.
저 모자는 물과 나무처럼 서로의 성장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 이게 말이 돼?”
글렌이 라온과 실비아 모두에게 대견하다는 눈빛을 보낼 때 발데르가 손을 부르르 떨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어떻게 그랜드 마스터가 마스터에게 밀린 건데!”
발데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저 휘광류라는 무학.”
데니어가 실비아와 라온을 내려다보며 턱을 매만졌다.
“부원주가 익히고 있는 십종검결의 극상성이다.”
그는 무언가를 탐색하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극상성? 그러고 보니 휘광류가 대체 뭐야!”
발데르는 휘광류라는 무학을 들어본 사람이 있냐며 고개를 돌렸다.
“라온이 만들었겠지.”
아리스가 헝클어진 옆머리를 뒤로 넘기며 웃었다.
“만들었다고?”
“그래. 라온은 소원권으로 십종검결을 가져갔잖아. 그걸 바탕으로 극상성의 무학을 만든 거지.
“그, 그게 가능한 일이야?”
발데르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말을 연속으로 더듬었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지. 다만….”
셰릴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는. 라온은 가능해.”
“옳은 말씀입니다.”
로엔이 허허 웃으며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었다.
“라온 도련님은 저희와 다른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계시니까요.”
글렌이 셰릴과 로엔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라온은 할 수 있지.’
아리스의 말대로 라온은 십종검결을 잔인할 정도로 해체해서 극상성을 이루는 무학을 만들었다.
휘광류라는 무학은 기본적으로도 약점이 없는 상승의 무학이지만, 십종검결 앞에서는 쥐 앞의 고양이처럼 배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실비아의 오러가 그랜드 마스터 급이라고 해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십종검결을 잡아먹는 휘광류의 흐름 덕분이었다.
“라온은 휘광류를 보여준 것으로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경고한 거야.”
아리스가 라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경고?”
발데르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관을 건드리면 어떤 꼴이 되는지를 실비아의 싸움을 통해서 보여주었지.”
아리스의 말대로 관객석은 아직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비아에게 너무도 놀라서 다들 넋을 놓은 듯 입만 벌리고 있었다.
“내, 내 무학도 만들어달라고 해볼까?”
발데르는 라온과의 관계도 잊어버린 듯 입맛을 다셨다.
“퍽이나 해주겠다!”
아리스가 손바닥으로 발데르의 머리를 후려쳤다.
글렌은 아리스와 발데르의 싸움을 무시하고 라온을 바라보았다.
‘아리스의 말대로군.’
라온은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경고를 보냈다. 별관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본인이 아니라, 실비아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피를 머금은 채 미친 듯이 날뛴 실비아 덕에 이제 별관을 건드릴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네가 다 해주는구나.’
글렌은 드물게도 잔잔한 미소를 그리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고맙다.’
* * *
관객석에 있던 사람들이 아주 천천히 눈을 끔벅였다.
“…저게 실비아라고?”
“사, 사람 자체가 달라졌는데”
“무, 무서웠어. 대련이 아니라, 죽고 죽이는 싸움을 본 듯한….”
사람들은 기절한 채 웃고 있는 실비아를 보며 눈동자를 떨었다.
“그런데 얼굴은 웃고 있었잖아. 그건 또 성녀 같았다고!”
“그게 더 무서운데…”
“앞으로 실비아의 눈을 못 볼 거 같아.”
“피와 자애로움과 그리고 광기. 광혈애검….”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실비아의 새로운 이명이 태어났다.
“휘광류. 별관의 무학이라고?”
“그럼 저 괴물 같은 무학을 별관에 있는 모두에게 가르치겠다는 건가?”
“그렇겠지.”
“어우, 난 앞으로 별관 근처에도 안 가야겠다.”
“오히려 친하게 지내야지! 치즈 가루라도 떨어질지 누가 알아!”
“어쨌든 적이 되는 건 싫네. 광풍대주보다 실비아가 더 무서워….”
관객들은 승자인 부원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실비아의 광기와 검술만을 떠들어댔다.
별관의 무학 휘광류의 이름이 공포의 대상이 되어 모두의 입에서 퍼져나갔다.
-이게 네놈이 바라던 결과로군.
라스가 실비아, 휘광류, 별관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라온은 옅게 웃으며 실비아의 머리카락에 묻은 핏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보여주기를 원했어. 별관이 어떤 곳인지.’
실비아는 부원주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아니라, 별관이 어떤 곳인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싸웠다.
그녀가 기절할 때까지 싸워준 덕분에 앞으로는 그 누구도 별관을 건드릴 생각을 못 할 것이다.
-몇 번이고 말리고 싶었다만….
라스가 실비아를 보며 담담한 눈빛을 드러냈다.
-끝까지 싸워야 하는 싸움이었고, 결과를 낸 전투였다. 좋은 것을 보았어.
녀석은 만족했다는 듯 미소를 그렸다.
-엄마! 잘했어!
라스는 오동통한 손으로 실비아의 머리를 매만지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너희 엄마 아니라고.’
라온이 라스를 밀어낼 때 별관의 시녀들이 관객석을 넘어서 달려왔다.
“마, 마님!”
“괜찮으세요!”
“어우, 어떻게 해!”
주디엘과 헬렌부터 유아까지 누구 하나 빠지지 않았다.
“괜찮아.”
옅게 웃으며 신성으로 치료한 실비아를 시녀들에게 넘겨주었다.
“하아….”
헬렌은 실비아의 호흡이 안정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 힘이 빠진 듯 주저앉았다.
“어머니와 기다리고 있어.”
라온은 시녀들과 차례로 눈을 마주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끝내고 내려올 테니까.”
손을 저어준 후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어머니는 마음이 약하셔서 너를 제대로 베지 못했지만….”
라온이 제천검을 뽑았다. 칼날에 어린 햇볕이 섬뜩하게 번쩍였다.
“나는 달라.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네놈….”
이를 가는 부원주를 보며 고요히 숨을 가라앉혔다. 본래라면 놈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겠지만, 이건 별관과 부원주실의 싸움이다.
실비아가 쌓아둔 공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주, 준비되셨습니까?”
사회자는 멍하니 서 있다가 손끝을 떨며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준비 안 됐다.”
부원주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련장이 망가졌지 않느냐! 수리를 마칠 때까지는 싸우지 않겠어!”
대련장이 엉망인 건 사실이지만, 못 싸울 정도는 아니다.
부원주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서 체력과 오러를 회복하려고 했다. 역시나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었다.
“어차피 오래 안 걸릴 텐데?”
“그건 가봐야 아는 법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대련장 수리를 끝마칠 때까지는 싸우지 않겠다!”
부원주는 대련장을 고치라고 말한 후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저러면 방법이 없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수리를….”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본인이 만든 도박장에 걸터앉아 있던 리메르가 폴짝 뛰어서 다가왔다.
“나와.”
그의 손짓에 우측 관객석에서 로브를 걸친 마법사가 걸어 나왔다.
“수리 좀 부탁해.”
“후우, 이거 때문에 부른 거군요.”
마법사가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지그하르트 내부 마탑의 부탑주이자, 리메르의 술친구 베르빈이었다.
“그럼 널 왜 불렀겠냐!”
리메르가 빨리 고치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도박꾼들은 참을성이 없다고!”
“정말 어렵고 귀찮은 부탁만 하네요. 전에 그 일로 저 시말서까지 썼는데….”
베르빈이 리메르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그는 시말서를 쓸 가치가 있었다며 웃었다. 지금 보니 리메르와 비슷한 성격인 것 같았다.
“그럼 빨리 고치기나 해.”
“그럼 오늘 술 사시는 겁니다.”
베르빈이 픽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우우우웅!
그의 손아귀에서 마나의 줄기가 뻗어나가더니, 시간을 돌린 것처럼 망가진 연무장을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멍한 눈으로 리메르와 베르빈에게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도움을 줄 줄은 몰랐다.
“신경 쓰지 마. 덕분에 좋은 싸움을 봤으니까.”
베르빈은 수리비는 리메르에게 청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기면 돼! 이기면!”
리메르가 손을 흔들고 다시 도박장으로 들어갔다.
-저 귀때기가 도움이 될 때가 다 있군.
라스가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빨리 돈을 따고 싶어서 저러는 거야.’
-아!
녀석은 이제 깨달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련장도 수리가 되었으니, 시작하지.”
라온은 어깨를 돌리며 원상복구 된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오러를 끌어모으던 부원주를 굽어보며 턱을 까딱였다.
“크윽….”
부원주는 핑곗거리가 사라졌기에 입술을 씹으며 대련장에 올라섰다.
“두 분 준비되셨습니까?”
사회자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됐습니다.”
“…됐다.”
부원주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들어 올린 손을 내리며 바로 대련장을 벗어났다.
“크아아아아!”
부원주는 사회자가 대련장을 내려가기도 전에 달려들었다. 처음부터 전력. 시간을 끌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시작부터 십종검결의 절기를 쏟아냈다.
우우우우웅!
날카롭게 갈린 열 개의 강환이 살아있는 것처럼 전신 급소를 향해 쇄도해왔다.
‘뻔하군.’
라온이 차게 웃으며 휘광류를 운용했다. 제천검에 깃든 붉은 빛이 열 개의 강환을 모조리 갈라버리고, 부원주의 어깨에 찍어 눌렀다.
푸카아아악!
부원주의 어깨가 뼈째로 갈라진 채 짙은 핏물을 뿌렸다. 처음 실비아가 가격했던 바로 그 부위였다.
“크아아아악!”
부원주가 어깨를 부여잡은 채 미친 듯이 뒤로 물러섰다.
“마, 말도 안 돼! 같은 강환인데 이게 무슨!”
그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턱을 떨었다. 아직도 휘광류가 십종검결의 완전 상성인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같은 강환?”
라온이 부원주의 떨리는 눈을 보며 비웃음을 그렸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당하는 거다.”
“닥쳐!”
부원주가 신음을 흘리며 다시 열 자루의 강환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강환이 하나의 구체로 응집되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고오오오오!
라온이 휘광류를 더 진하게 불태웠다. 머리 위로 내려앉는 강환의 구체를 향해 예리하게 다듬은 칼날을 세웠다.
촤아아아악!
휘광류의 흐름이 담긴 광채가 부원주의 강환을 가르고 그의 허리를 베었다.
퍼어어어억!
부원주의 허리에서 섬뜩한 양의 핏물을 뿜어져 나왔다.
“아아아아악!”
“아직 멀었어.”
라온이 차게 웃으며 유랑보법을 밟았다. 빙판을 달리는 것처럼 부드럽게 나아가 부원주의 우측에 이르렀다.
“크윽!”
부원주가 다급하게 물러나려고 했지만, 그의 발을 밟고 그대로 허벅지를 베었다.
촤아아아아악!
부원주의 허벅지가 갈라지며 그의 상의와 하의 전체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끄어어억….”
라온은 턱을 덜덜 떨면서 뒷걸음질 치는 부원주를 보며 턱을 모로 틀었다.
“이제 팔뚝과 배가 남았네.”
* * *
“서, 설마….”
부원주 킬루안은 지금까지 상처 입을 곳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실비아가 베었던 곳만을 노리고 있던 건가!’
라온은 지금까지 실비아가 건드렸던 상처만을 베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놈은 일부러 실비아가 남겨둔 검흔에 깊은 검상을 새기고 있었다.
“나를 어디까지 능욕하는 것이냐!”
킬루안이 악을 지르며 단전의 오러를 모조리 폭발시켰다. 뒤가 없다는 생각으로 라온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
전력으로 십종검결의 절기를 펼치며 라온의 복부와 심장을 향해 빛의 강환을 찔러 넣었다.
“아직도 깨닫지 못했나?”
라온이 비웃듯이 진각을 밟았다. 그의 검날에서 피어난 물결 같은 오러가 강환을 가르고, 손목을 길게 스치고 지나갔다.
촤아아아아악!
인식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왼쪽 손이 깔끔하게 잘린 채 땅으로 툭 떨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악!”
킬루안이 피를 뿜어내는 왼쪽 손목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터트렸다.
‘이, 이게 어찌 된….’
팔을 노린다고 생각해서 방어를 두껍게 했는데, 저런 가벼운 검격에 뚫리다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파훼법을 익혔다고 해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잠깐….’
이런 일이 가능한 딱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서, 설마….”
킬루안이 팔을 지혈시키며 입술을 덜덜 떨었다.
“그 휘광류라는 게….”
“알아차리는 게 늦네.”
라온이 제천검을 아래로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휘광류는 네 십종검결을 작살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학이다.”
“아아….”
이제야 알겠다. 실비아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잘 버틴 이유도, 라온의 검격이 십종검결을 무시하듯 베어내는 것도 모두 그 휘광류 때문이었다.
라온은 십종검결을 파악하는 것으로 모자라 그에 극상성이 되는 무학을 만들어냈다. 처음부터 승산 자체가 없는 싸움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기습적으로 사용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마지막 수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검계현신 빛의 참쇄.
의념의 외침이 오러와 이어지며 세계를 변화시킨다.
대련장이 압축된 것처럼 하얗게 쪼그라들고, 머리 위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빛의 검이 타올라 섬뜩한 살의를 드러냈다.
수백 개의 강환을 한 순에 쏟아부어 상대를 짓밟는 일격의 검계현신이었다.
“끝이다!”
킬루안이 합장을 하듯 손을 모으자,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던 광검이 소나가기 되어 쏟아져 내렸다. 하나하나가 강환. 필살의 검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신 검계는 처음 보지만….”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땅에 박으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결국 십종검결을 벗어나지는 못했군.”
두 자루 검이 꽂힌 대지에서부터 어둠이 차오른다. 빛이 가득했던 세계가 묵직하게 가라앉으며 붉은 태양과 푸른 달을 일으켰다.
어느새 라온의 손에 잡힌 적검과 청검이 빛의 소나기를 향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쿠와아아아아아!
포효하듯이 뻗어나간 신검과 마검의 참격은 광검의 폭풍을 뚫어버리고, 부원주의 검계 자체를 갈랐다.
촤아아아아아악!
부원주의 삶을 담았던 무학이 사정없이 찢겨 나갔다.
* * *
라온은 허물어지는 부원주의 검계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방식을 달리했어야지.’
부원주는 십종검결을 끝까지 믿은 듯 검계도 그와 같은 흐름을 가졌다.
본래라면 똑같이 검계가 사라질 정도로 싸워야겠지만, 휘광류의 효과 덕분에 그의 검계 자체를 베어버릴 수 있었다.
“커허허헉!”
부원주는 검계가 역소환된 충격에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하, 항….”
그는 이제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항복을 외치려고 했다.
“어딜.”
라온은 부원주가 항복이라고 말하기 전에 검집으로 그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뻐어어어어억!
호박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부원주의 정수리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아아아악!”
부원주가 하나 남은 손으로 머리를 마구 비비며 비명을 질렀다.
“항복 안 받아.”
라온이 부원주의 뒤통수를 연달아 후려쳤다. 그의 머리통에 셀 수 없는 혹을 만들고 나서야 검을 내렸다.
“으으….”
부원주는 고통에 질려 눈동자가 돌아간 채 신음만 흘렸다.
-이, 이거 차라리 죽이는 게….’
복수를 부르짖던 라스도 못 보겠다며 고개를 돌렸다.
‘아직 안 끝났어.’
라온은 부원주가 죽지 않도록 지혈만 해준 후 그의 얼굴에 글래시아의 냉기를 뿌렸다.
“끄으… 아아아악!”
부원주가 신음을 흘리며 일어났다가 전신에서 전해지는 악을 질렀다.
“이, 이제 그만! 항복하겠다! 내가 졌다고!”
그는 제발 그만하라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라, 라온 지그하르트 승리!”
사회자도 송장을 보고 싶지는 않은 듯 손을 떨면서 라온의 승리를 외쳤다.
“오늘 검투는 별관의 승리입니다!”
그는 별관의 승리를 말한 후 진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
“이, 이렇게 쉽게 이긴다고?”
“난 검계가 갈라진다는 건 처음 알았어….”
“말이 안 되는 수준차이다….”
실비아에게 공포를 느꼈던 관객들은 라온의 무력에 경악하며 목소리를 떨었다.
“우와아아아아!”
“별관! 별관!”
“광풍대! 광풍대!”
경악 뒤에서야 관객들의 함성이 이어졌다.
라온은 관객들의 함성에 호응하는 대신 대련장 아래로 기어 내려가려는 부원주의 발목 잡았다.
“왜, 왜 이러는 것이냐! 난 분명 졌다고 했는….”
“아직 계산이 안 끝났잖아.”
“아….”
부원주는 이제야 무슨 말인지 깨달은 듯 턱을 바들바들 떨었다.
라온은 그런 부원주의 당황을 즐기듯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