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55
제655화
“으윽….”
라온이 손끝을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뭘 그리 놀래?”
어린 고양이가. 아니, 멀린이 어깨 위로 내려오며 냐옹 울었다.
-마, 맞는 말이니라!
라스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광녀 따위로 놀라다니! 본왕의 그릇된 자로서 수치이니라!
‘야. 침이나 닦아.’
라온이 침을 질질 흘리는 라스에게 눈을 흘겼다.
-크흡!
라스는 팔뚝으로 침을 닦은 후 슬금슬금 팔찌 쪽으로 기어갔다.
-보, 본왕은 지금 좀 피곤해서 휴식을 취하겠느니라.
‘도망치냐?’
-도망이라니! 이 분노의 군주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그냥 피곤할 뿐이니라!
녀석은 손을 바르르 떨면서 얼음꽃 팔찌로 들어가 버렸다.
“너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야.”
라온이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멀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킬루안의 얼굴을 할퀴고 잘했냐고 묻는 것을 보면 지금 막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질문이 잘못됐어.”
멀린이 앞발을 휘휘 저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냐가 아니라, 언제부터 같이 있었냐고 물어봐야지!”
“그, 그러면….”
“응! 처음부터 너랑 같이 왔어!”
그녀는 가문에 복귀했을 때부터 함께 있었다며 웃었다.
“으….”
-히익!
어이가 없어서 신음을 흘리는데, 얼음꽃 팔찌 안쪽에서 라스의 비명이 들려왔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어도 기척조차 못 잡다니….’
저놈의 동물 빙의는 사기 중에서 사기 마법인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저 영감의 목을 따고 싶었는데, 널 방해하게 될 것 같아서 참았어.”
멀린이 아쉽다고 말하며 앞발을 들었다. 솜방망이 같은 앞발에서 날카로운 발톱이 쑥 튀어나왔다.
“그래. 고맙다….”
라온은 날카롭게 갈린 발톱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멀린이 조금이지만 참을성이 생긴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아, 대련 재밌었어.”
멀린이 방긋 웃으며 목을 길게 내밀었다.
“나야 항상 널 믿지만, 비슷한 무력을 지닌 영감을 상대로 그렇게 압도할 줄은 몰랐거든!”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상대의 무학을 모두 알고 있었을 뿐이니까.”
“파훼법을 알려줘도 못 써먹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녀는 잘했다면서 앞발에 달린 핑크빛 젤리로 어깨를 꾹꾹 눌러주었다. 시원하지는 않지만, 기묘하게도 기분은 좋았다.
라온이 어깨를 주무르는 멀린을 보다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잠깐….’
멀린은 거의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그녀라면 데루스를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혹시 도검존의 무덤에도 들어왔었어?”
“들어가기는 했었지.”
멀린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물어봐 놓고 소름이 끼쳤다.
“다만 바로 빙의가 풀렸어.”
“빙의가 풀렸다고?”
“응. 공간이 특이해. 분신을 담은 빙의체로는 들어갈 수 없나 봐.”
그녀는 본체로 오고 싶었지만,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해검지! 그 전설을 내 눈으로 꼭 봤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
멀린은 사죄의 의미로 눈을 뽑겠다며 앞발을 들었다.
“하지 마! 그거 네 몸도 아니잖아! 아니, 본체에서도 하지 마!”
라온이 당황하며 멀린의 손을 잡았다. 좀 정상이 되나 했는데, 여전했다.
“네가 그리 말한다면.”
멀린이 방긋 웃고서 허벅지로 내려왔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멀린이 찾아오지 못할 정도라면 꽤나 큰 일이었을 것 같아서 궁금증이 들었다.
“사냥.”
멀린이 담담하게 앞발을 들었다.
“사냥?”
“요즘 타천이 에덴의 병력을 마구잡이로 늘리고 있거든. 내 임무는 네임드 몬스터의 사냥이었어.”
그녀는 꽤 특별한 놈을 잡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잡아도 소용없지 않아? 마석이 만들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텐데?”
“맞아. 본래 에덴의 투구와 가면의 재료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마석이니까. 다만 타천은 인공적으로 마석을 생성하는 마법을 개발했어.”
“그게 된다고…?”
라온이 멀린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물론 본래의 마석과 같은 힘을 지니지는 못해. 가면과 투구를 만들어도 질이 떨어지지.”
멀린이 입매를 비틀며 시선을 내렸다.
“지금 타천은 그런 아쉬운 병력이라도 필요한 것 같아.”
“다른 오마는?”
“마찬가지야. 조용히 힘을 모으고 있어.”
“정말 전쟁인가?”
라온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에덴만이 아니라, 오마 모두가 조용히 힘을 모으고 있다면 이유는 전쟁밖에 없어 보였다.
“타천이 너한테 말한 건 없어?”
“임무만 던져주지. 계획에 대해서 말해주지는 않아. 직접 만난 지도 꽤 됐고.”
“그건….”
“응. 네 말대로 의심이 심해진 모양이야.”
멀린은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라.”
에덴의 주구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받은 도움이 많아서 그냥 두고 볼 수도 없었다.
“느낌이 좋지 않으면 지금 에덴을 떠나는 것도 방법이야.”
“으흐흐흐.”
“왜, 왜 웃어.”
라온은 괴이하게 웃는 멀린을 보며 등을 뒤로 젖혔다.
“네가 걱정해줄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려서 기분이 좋아.”
멀린은 뺨을 붉게 물들이며 냐- 하고 웃었다.
“어우….”
-히이익!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떡 벌릴 때 라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 들을 거면 왜 저기 처박혔는지 모르겠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멀린은 아는 정보는 모두 말해주었다며 손을 흔들었다. 간다고 말하지만, 다른 동물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너 나타날 때 제발 말 좀 하고 올 수 없어?”
“응? 말했잖아. ‘나 잘했지?’라고.”
“그게 아니라….”
미간을 찌푸렸다. 멀린하고 만나기만 하면 말려드는 기분이다. 다시 설명하려고 할 때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이 아이는 캣닢이라는 풀을 찾고 있어. 인간에게 키워지는 고양이에게 들었다는데, 향이 너무 좋다고 캣닢에서 뒹굴어보고 싶다네.”
“자, 잠깐! 캣닢이 뭔데!”
라온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멀린은 떠났고, 고양이의 까만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했다.
“냐아.”
멀린이 빠져나갔기 때문일까. 동그란 얼굴과 눈동자 그리고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선 털이 굉장히 귀여웠다.
“캣닢?”
“냐아.”
“그게 뭐니…?”
“냐아!”
고양이는 네가 알아서 찾으라는 듯 발톱을 세웠다.
“알겠다. 알겠어….”
고양이를 품에 안고 북망산을 뒤졌다. 다만 아무리 찾아도 캣닢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캣닢이 뭔지 모르기에 내가 놓쳤는지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냐아!
라온은 3시간 후 고양이에게 솜방망이 주먹을 연달아 얻어맞은 후 북망산을 내려가 별관으로 향했다.
“도련님?”
헬렌은 품에 안겨 있는 어린 고양이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고양이는….”
“헬렌. 혹시 캣닢이라고 알아?”
“캣닢이요? 혹시 개박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캣닢이 무언지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있어?”
“아뇨. 있을 리가 없죠.”
“냐아!”
헬렌이 없다고 말하자, 안고 있던 고양이가 또 솜방망이 주먹을 날렸다. 지 때문에 반나절 가까이 캣닢을 찾고 있는데 공격적으로 나오니, 서글펐다.
“개박하? 저 있어요!”
뒤편에서 도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녀석이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있다고?”
“네. 필수품이잖아요!”
도리안은 그 말도 안 되는 필수품을 주절거리면서 줄기는 사각형이고, 잎은 각이 둥근 삼각 형태의 식물을 꺼냈다.
“이리 와!”
그가 캣닢을 바닥에 깔자, 어린 고양이가 내 품을 벗어나서 도리안에게 폴짝 달려갔다.
“냐아!”
“그래. 그래. 너 참 순하구나!”
도리안은 배 주머니에서 낚싯대 같은 모양의 고양이 장난감을 꺼내서 어린 고양이와 놀아주었다.
고양이는 내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표정으로 도리안과 장난을 치며 캣닢 위에서 뒹굴었다. 속이 아려왔다.
“야.”
라온이 도리안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네?”
“넌 좋겠다.”
“에에…?”
도리안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겠다고.”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찌질한 놈.
* * *
“하아….”
실비아가 병실 침상에 누운 채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노크 없이 문이 열렸다.
“라온?”
그녀가 활짝 웃으며 몸을 일으킬 때 열린 문에서 대충 정리한 듯한 꽃다발과 함께 아리스가 들어왔다.
“미안해서 어쩌나. 귀여운 아들이 아닌데.”
아리스가 실비아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웃었다.
“어, 언니. 아니, 아리스 님.”
“언니라고 불러.”
그녀는 살짝 미간을 구긴 채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없잖아. 아니, 누가 있어도 불러도 돼. 그걸로 지랄하면 대가리를 쪼개줄 테니까.”
아리스는 아버지라고 해도 싸울 거라며 이를 드러냈다.
“고마워요.”
실비아가 옅게 웃으며 꽃다발을 받았다.
“몸은 어때?”
아리스가 실비아의 상태를 훑으며 침상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아프진 않은데,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게 조금 답답하네요.”
실비아는 갇혀 있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내가 널 잘못 보고 있었던 모양이네.”
“네?”
“그저 유약하기만 한 아이라고 생각했거든. 사랑을 찾아서 가문을 박차고 나갈 줄은 몰랐고, 어제처럼 죽기 직전까지 칼을 휘두를 줄도 몰랐어.”
“그때 언니가 힘을 써주셨다고 들었어요. 고마워요.”
“힘을 못 써줬으니까 일이 이렇게 됐지. 난 한 거 없어.”
아리스는 본인이 한심하다는 듯 뒷머리를 헝클었다.
“제 단전을 만든 드래곤 하트도 언니가 넘겨주신 거잖아요. 아니, 저만이 아니라, 라온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셨죠.”
“라온은 도움을 줄 수밖에 없는 아이니까.”
그녀는 라온과 똑 닮은 듯한 실비아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망가진 지그하르트에서 태어났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선한 아이야. 그 나이에, 그런 무력을 지녔는데, 사람을 아끼고, 겸손함을 몸에 두르고 있지. 참 잘 컸어.”
아리스는 라온의 무력보다 심성이 기껍다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나는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성격인데, 자식 농사만큼은 네가 부럽네.”
“부러워할 필요가 뭐 있어요. 언니 조카잖아요.”
실비아가 꽃다발을 끌어안으며 웃었다.
“그렇지? 내 조카 맞지? 엄마에게 허락받으니까 마음이 편하네!”
아리스는 라온의 입에 이모라는 단어를 박아 버리겠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미안하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다가 다시 실비아와 눈을 마주치고 입술을 씹었다.
“언니?”
“사실 널 볼 용기가 없어서. 그간 찾아가질 않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갈 걸 그랬네.”
“아….”
실비아는 아리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저 내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도 나름의 무거움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언니.”
실비아가 아리스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도 않으신 일에 잘못을 빌 필요는 없어요. 저는 지금에 만족해요.”
“…고맙다.”
아리스는 실비아의 손을 꼭 잡아주고서 일어섰다.
“네 얼굴도 똑바로 봤으니, 이제 돌아가야겠네.”
“돌아간다면….”
“다시 해적 놀이하러 가야지. 그리고.”
그녀가 해가 저물어가는 창밖을 보며 옅게 웃었다.
“연락 안 되는 몹쓸 아들놈도 좀 찾아보려고.”
“아….”
“죽든 말든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라온을 보고 있으니, 괜히 그립더라고.”
아리스가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그 녀석 데리고 돌아오면 라온이랑 대련이나 시켜보자. 이긴 사람이 밥 사는 거 어때?”
“좋아요.”
실비아가 잔잔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금방 돌아오셔야 해요.”
아리스가 평소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시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 *
지그하르트 알현실.
본래 옥좌만이 세워져 있는 단상 위는 가지각색의 책들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건 너무 기초적이고, 이건 틀이 부족해, 이쪽은 너무 단순해서 재미가 없겠군.”
글렌은 책을 하나씩 훑어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깊게 구겼다.
“지금 가주님 뭐 하는 거예요?”
하품하며 알현실에 들어온 리메르가 로엔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라온 도련님께 하사하실 무학서를 고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로엔이 글렌을 보며 옅게 웃었다.
“무학서?”
“예. 라온 님이 이번에 새로운 무학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다음 창작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좋은 무학서를 고르시는 듯 합니다.”
그는 저리 즐거워 보이는 글렌은 오랜만이라며 허허허 웃었다.
“즐거울 수밖에요.”
셰릴이 기둥에서 등을 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주가 어린 나이에 그랜드 마스터가 된 것도 모자라서, 대종사의 재능까지 지녔는데, 누가 싫어하겠어요.”
그녀는 글렌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다며 웃었다.
“그래서 무학서가 저렇게 쌓여 있는 거로군.”
리메르가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에는 대단했죠.”
리메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십종검결을 그렇게 세세하게 해체해서 극상성의 무학을 만들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커험! 그런 게 아니라, 오랜만에 무학서를 살펴보고 싶었을 뿐이다.”
글렌은 로엔과 셰릴, 리메르가 라온을 칭찬한 게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래도 줄 거라면 라온에게 맞는 무학을 주는 게 좋잖아요.”
“그렇지! 그 아이는 무엇을 받아도 최고의 무학을 만들겠지만, 재료가 좋을수록 결과물이 뛰어날 테니까!”
그는 살짝 고개를 돌린 채 턱을 끄덕였다. 입꼬리가 귓불과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내 제자라니까!”
리메르가 글렌을 보며 주먹을 번쩍 들어 올렸다.
“으음!”
글렌이 리메르를 굽어보며 표정을 굳혔다.
“말이 잘못되었군. 네놈 제자이기 이전에 내 손주다.”
그는 헛소리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앞에서 손주라고 부르지도 못하면서 무슨.”
리메르가 그런 할아버지가 어디에 있냐며 히죽였다.
“크윽….”
글렌이 옥좌의 팔걸이를 움켜쥔 채 입술을 씹었다. 정곡을 찔렸지만, 평소처럼 벼락을 내리치지는 못했다.
“거기다….”
리메르가 글렌이 챙겨둔 책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른 무학서를 주려면 라온이 공을 세운 이후여야 할 거 아니에요.”
글렌은 라온에게 그냥 선물을 주지 않는다. 공을 세워야만 무언가를 주기에 저 무학서를 주는 건 한참 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스승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씀! 주고 싶으면 주고, 말고 싶으면 말고! 다 제 마음이죠!”
리메르가 능글맞은 웃음을 그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러면 부르지도 못하는 할아버지보다 스승이 훨씬 가깝지 않겠어요?”
“네, 네놈이….”
글렌이 리메르를 노려보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흐음….”
“허허허.”
평소라면 리메르를 말릴 셰릴과 로엔도 오늘은 가만히 있었다.
“그럼 전 라온에게 선물이나 주러 가보렵니다!”
리메르는 경쾌하게 손을 흔들고 가주전을 빠져나갔다.
뿌드드드득!
글렌이 주먹을 대고 있던 옥좌의 팔걸이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그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번쩍였다.
“이놈….”
할아버지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 * *
라온은 도리안에게 고양이를 맡긴 후 5연무장으로 향했다.
수련에 집중하는 검사들을 보며 검병을 매만졌다.
‘광풍대의 무학은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휘광류는 실비아와 시녀들을 위해서 만든 무학이었기에 광풍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검사들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무학을 만들어야 했다.
‘일단 휘광류처럼 실전성을 띄어야 하고, 공격 6, 방어 4 정도로 공방이 어우러지는 게 좋겠지. 광풍진과의 조화도 생각해야겠고.’
조건이 많았지만,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무학의 중심. 즉, 기둥을 세울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라온이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넘기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수련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도검존의 무덤에 다녀오며 나름의 성장을 이뤘지만, 무력 자체가 크게 강해지지는 않았다.
검투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스스로에 대한 발전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럼 무얼 해야 할까.’
라온이 고민을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뒤편으로 시원한 바람이 내려섰다.
“뭐하냐?”
리메르가 검게 그을린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웃었다. 이번 도박에서 많이도 먹었는지 때깔이 좋았다.
돈이 있으면 귀티가 나고, 없으면 바로 거지 같아 보이다니, 신기한 사람이었다.
“광풍대의 무학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광풍대의 무학?”
“네. 다만 고민해봐도 영감이 떠오르질 않네요.”
리메르에게 조금 전에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말해주었다.
“흐음, 본인의 성장과 광풍대의 무학이라….”
리메르가 매끈한 턱을 만지다가 시선을 들었다.
“너 이번에 대지 속성의 기운을 얻어서 사대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지?”
“그렇죠.”
“그럼 이제 바람을 키울 때네.”
그의 눈동자 위로 청아한 바람이 스쳤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본 적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