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63
제663화
“…전주님?”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왜 광풍대주에게 임무를….”
발데르만 믿고 있던 직계 간부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너희 전부 안 하겠다고 손을 내렸지 않느냐.”
발데르가 퉁명스럽게 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 온 기회를 저 녀석에게 넘겨주려고 했을 뿐이다.”
그는 너희가 손을 내려놓고 왜 자신에게 따지냐며 눈매를 찌푸렸다.
“하, 하지만 저놈. 아니, 광풍대주는 방계입니다!”
“왜 광풍대주에게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는 건지….”
“전주님! 재고해주십시오!”
“사실 나도 방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하지만….”
발데르는 많은 간부들을 쭉 훑어내린 후 턱을 모로 틀었다.
“능력과 패기가 있는 놈은 좋아한다.”
발데르는 라온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시 한번 왼쪽 눈을 깜박였다.
“윽….”
라온이 발데르를 보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무식하게 생긴 발데르가 윙크를 하니 팔뚝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저 오우거 왜 저러는 것이냐?
라스가 비위가 상한다는 듯 콧잔등을 찌푸렸다.
‘나도 몰라….’
발데르는 카룬만큼은 아니어도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해도 아들인 레이든을 폐인이 되기 직전까지 패놓았으니, 서로 좋은 관계가 될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임무를 챙겨주려는 것을 보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저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예측이 안 돼.
몰래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있는 곳에서 지지해주니, 그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지그하르트에서 가장 단순한 발데르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지경이었다.
“크흠!”
채드가 가벼운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그럼 진무전주께서는 몬스터 토벌 임무를 광풍대에 넘기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그렇다.”
발데르는 딱 그거라면서 손바닥으로 원탁을 내리쳤다.
“광풍대주님.”
채드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라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무전주께서 넘기신 몬스터 토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그는 무조건 받으라는 듯 왼쪽 눈썹을 살짝 내렸다.
“음….”
라온은 바로 답을 하지 않고, 채드와 발데르의 눈동자를 차례로 훑었다.
‘괜찮을까?’
채드와 발데르 모두 의심스러운 인물이라, 정말 이 임무를 받아도 되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만 발데르라면 모를까 채드는 바보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뻔한 술수를 부릴 리 없다.
“임무를 받기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라온이 차분히 숨을 내쉰 후 발데르를 바라보았다.
“해보아라.”
발데르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턱을 끄덕였다.
“왜 제게 임무를 넘기시는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 말했지 않느냐. 나는 능력과 패기가 있는 놈을 좋아한다고.”
그가 손가락으로 원탁을 가볍게 두드리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답은 간단해. 네가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그 임무를 잘 처리할 것 같아서다.”
발데르가 또 왼쪽 눈을 깜박였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게 너무 어색했다.
“받아주겠지?”
발데르는 거절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라온이 발데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신이 생겼다.
‘술수를 부렸을 가능성은 극히 적어.’
발데르는 조잡한 술수를 부리다가 글렌에게 얻어터진 카룬을 눈앞에서 보았다.
그가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수작을 부릴 일은 없었다.
“받겠습니다.”
라온이 채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몬스터 토벌 임무는 광풍대가 맡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채드는 누가 반박을 하기 전에 얼른 임무 배정을 끝냈다.
“잘 하고 오거라.”
발데르가 믿겠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또 윙크를 했다.
-저 정도면 마그네슘이 부족한 거 아니냐?
라스는 저렇게 추한 윙크는 처음 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
라온은 시선을 돌리며 입술을 씹었다.
‘함정은 아닌데, 왜 불안하지?’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를 해야할 것 같았다.
* * *
“발데르.”
간부 회의가 끝난 후 발데르가 진무전으로 돌아가려 할 때 데니어가 그를 불렀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뭔데?”
발데르는 급한 일이 있는 듯 빨리 말하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바람이 분 거냐.”
데니어가 발데르에게 다가가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레이든의 일 때문에 라온을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왜 갑자기 도와주려는 거지?”
“옛날 일이잖아.”
발데르가 데니어를 마주 본 채 어깨를 으쓱였다.
“열을 빼고 보면, 레이든이 실비아에게 먼저 시비를 건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고 해도 도와줄 의리는 없을 텐데?”
“요즘 라온 녀석이 좀 마음에 들거든.”
“뭐?”
데니어는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희극제가 찾아왔을 때 역으로 털어먹는 것도 재밌었고, 그 이후의 행보도 시원시원하잖아. 해검지는 존재만으로 멋들어지고.”
발데르는 라온이 해온 일들을 하나씩 읊으며 미소를 지었다.
“너는 방계를 싫어했을 텐데?”
“예전에 레이든과 라온이 검투를 치를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있어.”
그가 가주전을 올려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책임. 직계는 지그하르트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행동 하나, 단어 하나에 책임을 지녀야 한다고 하셨지. 지금의 라온은 지그하르트의 그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있잖아.”
발데르는 허리춤의 검병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드높이고, 적은 확실하게 짓밟았지. 지그하르트 검사라면 그렇게 살아야 해.”
그는 확실한 신념을 가진 듯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래서 임무를 몰아준 건가?”
데니어는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
발데르가 픽 웃으며 턱을 저었다.
“라온이 최상급 무학을 만들었다는 건 들었지?”
“광풍류 말인가?”
“그래. 그거.”
그는 별관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별관에는 휘광류, 광풍대에는 광풍류를 줬잖아. 강한 무학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 사람에게 맞는 무학은 흔치 않지.”
발데르가 탐이 난다는 듯 길게 입맛을 다셨다.
“저놈은 무학의 천재야! 그것도 그 사람에게 적합한 무학을 만들어내는 가장 드문 유형의 천재지.”
그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번들거렸다.
“그런 천재가 옆에 있는데, 가만히 놔둘 수는 없잖아. 내 무학도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해봐야지!”
발데르는 초월에 이르는 벽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그럼 넌 라온에게 붙는다는 건가?”
“그건 또 무슨 개소리래?”
그가 깊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 몸이 왜 라온에게 붙어! 그냥 상부상조하는 거지!”
발데르는 도와주었으니, 무학을 만들어달라 부탁할 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난 아직 가주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가 데니어를 마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댁은 라온이 가주가 되면 안 된다는 듯 말하는군.”
“딱히 그런 뜻은 아니었다만, 넌 아닌가?”
데니어가 고요한 눈빛으로 발데르의 눈을 마주했다.
“난 아닌데?
발데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가주가 되지 못해도 나보다 가문을 잘 이끌 수 있는 놈이 가주가 된다면 받아들일 거야. 그게 댁이든, 큰형이든, 라온이든 상관없이.”
그는 그 체구만큼이나 진중하면서도 곧은 눈빛으로 답했다.
“그래. 그렇군.”
데니어는 이제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어떤데? 착한 척만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가주 자리를 노리고 있잖아.”
“글쎄….”
데니어는 잔잔히 웃었다.
“나는 무조건 자기가 가주가 되어야 하는 형과도, 남에게 넘겨도 상관없는 너와도 조금은 달라.”
“그게 무슨 말이야. 알기 쉽게 설명해!”
발데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딱히 알 필요 없는 일이다.”
데니어는 그리 말하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혹시나 말하는데….”
그가 다시 발데르를 보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오늘 한번 도와준 걸로 라온에게 무학을 만들어달라는 소리는 하지 마라. 쫓겨날 거다.”
“어? 안 돼?”
발데르는 당장 별관에 찾아갈 생각이었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무학을 만드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너에 대한 라온의 호감도도 바닥일 텐데, 지금 가서 무얼 하겠다고.”
데니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한 번 정도 더 도와주면 되지?”
발데르는 그러면 괜찮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건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다섯 번을 해도 안 돼!”
데니어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겠어. 그럼 여섯 번!”
“허욱….”
그는 발데르의 상큼한 대답을 듣자마자, 다 포기한 듯 어깨를 축 내렸다.
“…네 마음대로 해라.”
“이러니까 예전 같네.”
발데르가 제풀에 지친 데니어를 보며 픽 웃었다.
“요즘 똥폼만 잡더니. 똑같구만.”
“후우….”
데니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단순함은 네 무기 중 하나다. 그대로 걸어가라.”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현무전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쉽게 말하라니까.”
발데르는 떠나는 데니어를 바라보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 * *
이튿날.
라온은 임무를 나설 준비를 마치고, 5연무장의 단상 위에 올라갔다.
뒷짐은 진 채로 광풍대 전원을 굽어보았다.
광풍류를 전수한 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건만, 검사들의 기세는 한층 더 높은 곳에 도달해 있었다. 그동안 밤낮없이 수련한 티가 났다.
대견함을 입가에 담은 채 단상의 끝자락에 섰다.
“이번 임무는 디바른 산에서 태어난 몬스터 왕을 토벌하는 일이다.”
라온은 긴장보다는 기대를 지닌 광풍대를 보며 다시 한번 임무를 설명해주었다.
“에틴 같은 강한 몬스터도 있고, 몬스터의 숫자도 끝없이 부풀고 있다고 하니, 광풍류를 시험하기에는 딱 적당한 상대다.”
“거, 거기서는 적당하다가 아니라, 조심하라는 게 일반적인 말 아닌가요?”
도리안이 어이가 없다는 듯 턱을 떨었다.
“우리 대주님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잖아. 미친. 아니, 조금 돌으신. 아니, 곱게 돌으신…?”
크레인은 라온에 관한 설명을 하다가 머리가 꼬인 듯 말을 더듬었다.
“왕과 친위대라면 모를까. 너희가 일반 몬스터를 겁낼 필요는 없다.”
“그건 그렇죠!”
“저희도 많이 컸으니까!”
“오마도 아닌, 몬스터 따위야 가볍죠!”
“그래. 몬스터한테 당하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광풍대는 매일같이 해온 수련을 자신감으로 바꾼 듯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 좋네. 그러니….”
라온이 마음에 든다는 듯 웃었다.
“몬스터 따위한테 자그마한 상처라도 입거나, 토벌 시간이 늦어진다면 혀 깨물고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의 벌이 있을 거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핏빛으로 번들거렸다.
“아….”
“이, 이런….”
“또 넘어갔어!”
“크레인! 제발 입 좀 다물어!”
광풍대는 라온의 낚싯대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짜악!
라온이 크게 손뼉을 쳐서 검사들의 입을 막았다.
“당연히 가는 길에도 수련이 있다.”
그 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발을 가리켰다.
“검술에 광풍류를 담아내는 건 익숙해졌지만, 아직 보법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던데….”
“서, 설마….”
“그 설마가 맞다. 이동하는 내내 보법에 광풍류를 담아내는 연습을 하도록. 초감각이 있어도, 의식적으로 불러낸다면 더 큰 효용을 낼 수 있으니까.”
라온의 지시에 광풍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 맨 뒤에서 뛰는 놈은 뒤통수를….”
뒤통수라는 말을 하자마자, 광풍대가 광풍류의 바람을 일으키며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
리메르가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 나는 안 해도 되지? 거의 다 익혀서.”
“…….”
라온은 대답 없이 검집을 들며 방긋 웃었다.
“아휴! 마족은 뭐 하는 거야! 저거 안 잡아가고!”
리메르는 스승을 협박하는 제자가 어디에 있냐며 울상으로 달려 나갔다.
-무슨 헛소리냐!
라스가 리메르의 등을 보며 악을 질렀다.
-이놈을 데리고 가면 마계도 망해!
* * *
“크으….”
슈페르 신성 왕국의 제5 성기사단장 호펜은 끝이 없는 몬스터들의 벽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닌데?’
기감을 뿌릴 필요도 없다. 몬스터들의 노린내와 투기가 산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왕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라니….’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잡스러운 코볼트나 고블린이 아니라, 중상급 몬스터들로 산이 가득 차 있었다.
‘이대로는 전멸이야.’
중대형 몬스터들이 이 정도 숫자와 무력을 지니고 있다면 왕과 친위대에게는 다가갈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후퇴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후퇴! 전원 후퇴하라!”
호펜이 앞으로 나서며 기사와 병사들이 뒤로 빠질 시간을 벌었다.
‘이 이상 죽어서는 안 돼.’
신주오령의 축제가 열렸던 바레네에서 기사단장이었던 바이튼과 많은 기사가 죽었다. 여기서 또 기사들을 잃을 수는 없었다.
“뒤, 뒤에도 몬스터들이 있습니다!”
“산 아래에서부터 포위를 해온 것 같습니다!”
길을 열기 위해 움직이던 성기사들이 병력과 함께 돌아와 입술을 떨었다.
“빌어먹을….”
호펜이 뒤에서 전해져오는 몬스터의 살기를 느끼며 입술을 씹었다.
‘왕은 산 위에 있을 텐데, 다른 머리가 있는 건가?’
평범한 몬스터들이 이런 포위망을 펼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지시를 내리는 놈이 따로 있는 게 분명했다.
‘선두와 연락이 끊긴 이유가 있었군.’
모두 죽었던 거야.
정찰을 위해 먼저 올라갔던 수색대에는 마스터 초입에 오른 기사도 있었다.
연락이 되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전멸을 당한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군.’
전부 살리는 건 포기하고, 최대한 많은 인원을 살리는 방향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지금부터 내가 앞에 선다! 방진을 풀고, 돌파대형으로 전환하라!”
호펜이 가장 몬스터가 적은 길을 향해 강기를 뻗어냈다. 성스러운 빛에 휩싸인 칼날이 몬스터들의 벽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돌진!”
그는 길이 열리자마자, 명령을 내리며 산 아래로 내달렸다. 강기를 연달아 뻗어내서 몬스터들이 다시 자리를 채울 수 없게 만들었다.
키히히.
산 아래가 보일 정도로 내려갔을 때쯤,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리며 땅이 훅 꺼졌다.
쿠우우웅!
걸음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서 고개를 돌리자, 트롤 주술사가 인간의 뼈로 만든 지팡이를 흔들고 있었다.
“이놈!”
호펜이 주술사를 베기 위해 움직이는데, 다시 몬스터들이 길을 막기 시작했다.
쿠우웅!
트롤 주술사는 강기가 닿지 않는 거리를 아는 듯 멀리 떨어진 채 주술을 날려 기사와 병사들을 바위로 찍어버렸다.
“멈춰라!”
호펜이 강기를 날카롭게 갈아서 원거리 참격을 날렸지만, 트롤 주술사는 훌쩍 물러서서 주술로만 공격을 해왔다.
거리를 잘 재는 것을 보면 머리가 굉장히 좋은 놈이었다.
‘저놈이었군….’
몬스터로 포위망을 펼쳐서 압박해온 게 저놈이었던 것 같다. 지금 보니 피부색도 다르다. 평범한 트롤 주술사가 아니었다.
‘저놈에게 모든 힘을 쓰면 내려갈 수 없을 텐데….’
전력을 다 사용하면 트롤 주술사는 죽이겠지만, 나도 위험하다. 전투가 한참 동안 계속되었기에 남은 기운이 많지 않았다.
‘방법이 없어!’
호펜이 입술을 깨물었다. 성기사단의 단장답게 스스로를 죽여서라도 수하들을 살려야 했다. 남은 기운을 모조리 뽑아서 짙은 강기를 세웠다.
촤아아아앙!
단숨에 포위망을 박차고 나아가 트롤 주술사의 목을 베려고 할 때였다.
우우우웅.
트롤 주술사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환상을 담아낸 주술이었다. 완벽하게 속았다.
키히히히!
병사들의 옆에서 나타난 트롤 주술사가 키득거렸다. 놈의 손에서 솟구친 불타는 바위가 기사와 병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호펜이 턱을 떨었다.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제대로 된 판단이 되질 않았다.
“안 돼!”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었지만, 너무 거리가 멀었다.
수하들의 죽음을 느끼며 심장이 꽉 조여들 때였다.
후우우우웅!
산의 어둠을 지워내는 듯한 푸른 바람이 불어오며 인간을 비웃던 트롤 주술사의 목이 뚝 떨어졌다.
그 뒤로 청아한 기운을 휘감은 검사들이 튀어나와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죽어!”
“다 뒈져!”
다만 그들은 구원을 이루는 기사가 아니라, 복수를 행하는 악귀 같은 모습으로 칼을 휘둘렀다.
“뭐, 뭐야….”
호펜은 눈동자를 떨다가 마지막에 걸어 올라오는 검사를 보았다. 금발적안. 태양보다 더 짙은 휘광을 두른 남자였고, 한 번 보았음에도 잊을 수 없는 무인이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광견대.”
바레네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고귀한 자태를 두른 라온이 우아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다 물어뜯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