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72
제672화
라온은 아래층에서 피어나는 강대한 울림을 느끼며 검게 물든 계단을 올랐다.
‘저 둘이면 이길 수 있겠지.’
성녀 올가는 본인이 숨기고 있을 뿐 이미 피른 신관의 무력을 한참 뛰어넘은 상태였고, 리메르의 검술은 근위 기사단장 다니에프를 가볍게 짓누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피른과 다니에프는 마음에 망설임과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기에 올가와 리메르가 패배하는 그림이 아예 그려지지 않았다.
-마기의 향이 짙어지고 있구나.
라스가 마기로 이루어진 천장을 올려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거의 다 왔다는 뜻이니라.
‘그래.’
라온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의 말대로 마기의 악취가 심해진다. 마족과 계약한 바우른 국왕이 바로 위에 있는 게 분명했다.
‘국왕과 계약한 마족의 무력 수준은 어느 정도지?’
-약하느니라.
라스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했다.
-본왕이 손가락을 까딱이면 팍 터져서 죽을 놈이니라.
녀석은 무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깝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라온이 라스의 솜사탕 머리를 두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말고, 내 수준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라스의 무력은 초월자 중에서도 발군이다.
같은 초월자인 창염마군을 일격으로 빈사 상태에 만들었을 정도이니, 이 녀석의 약하다는 말은 참고가 되지 않았다.
-네 수준이라면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니라.
라스가 라온을 내려보며 턱을 까딱였다.
-조금만 실수하면 바로 목이 날아가겠지.
녀석은 한심한 수준이라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런가.’
바우른 국왕이 드러냈던 마기 수준은 굉장히 높았으니, 마족의 무력이 강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내 생각대로라면 바우른 국왕보다 마족을 상대하는 게 훨씬 편할 테니까.
-그리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저 위에 있는 건 아직 마족이 아니라, 그 머저리 왕이니까.
라스는 착각을 한 듯 걱정하지 말라며 도톰한 손을 저었다.
‘알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라온은 픽 웃으며 핏줄이 선 듯한 괴기스러운 계단을 올라갔다.
마기로 이루어진 마지막 층에 올라가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오오오오오!
마기가 얇은 실처럼 꼬여서 만들어진 검은빛 고치가 허공에 떠 있었고, 네 명의 고위 신관이 동서남북 네 방위에 서서 고치 안에 신성력을 밀어 넣고 있었다.
단순히 신관들의 기운만이 아니라, 이 왕국 전체에 퍼져 있는 신성력과 마기가 고치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바우른은 저 안에 있군.’
살아있는 심장처럼 박동하는 거 검은색 고치 안에서 바우른의 기척이 느껴진다. 그는 저 안에서 힘을 축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뭐야!”
“왜 용살자가 여기에!”
“서, 설마 피른 신관과 다니에프 경이 당한 건가!”
고위 신관들은 라온이 이곳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지랄 났군.”
라온은 성녀 올가가 자주 쓰던 욕을 내뱉으며 바우른이 몸을 숨긴 마기의 고치를 향해 다가갔다.
“자, 잠깐!”
“멈춰라!”
“지금 공격하면 고치가 터질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왕국 자체가 날아가는….”
“그건 너희가 신경 쓸 게 아니야.”
저 고치에서 바우른이 아니라, 마족이 튀어나와도 감당할 수 있기에 거침없이 나아갔다.
츠르르륵!
라온이 제천검의 검병에 손을 얹었다. 베겠다는 의지를 세운 순간 제천검의 칼날은 사신의 낫이 되어 신관들의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마, 막아!”
“크으으윽!”
북쪽과 동쪽에 서 있던 신관들은 당황했음에도 마기를 밀어 넣은 방패를 세웠다.
촤아아아악!
하지만 만화공의 불길을 머금은 칼날은 마기의 벽을 부수고, 신관들의 목을 갈랐다.
“어억….”
“이 무슨….”
두 명의 신관은 마기를 조형시킨 방패가 이렇게 쉽게 갈라질 줄 몰랐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쓰러졌다.
“오, 오지 마!”
“정말 위험하단 말이다! 폭주하면 모두가 죽게 될 거라고!”
남쪽과 서쪽에 서 있던 고위 신관들이 손을 마구잡이로 저었다.
“왕국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그런 소리가 잘도 나오네.”
라온이 비웃음을 그리며 두 신관에게 제천검을 겨누었다.
“쳐!”
“크아아아아!”
신관들은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닫고 방어가 아닌 공격을 해왔다.
두 신관의 손아귀에서 응집된 마기가 창칼처럼 갈린 채 쏘아져 왔다.
마기의 칼날이 화살비처럼 날아들었지만, 라온은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나 있었다.
터어엉!
태화보로 땅을 거칠게 밀어내며 신관들의 뒤편에 이르렀다.
“뒤, 뒤다!”
“허억!”
신관들이 라온의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았지만, 한참 늦었다.
촤아아아아악!
서리가 이지러지는 은백색 칼날이 변질자들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
“끄으윽….”
신관들의 목에서 돋아난 붉은 실선이 두껍게 자라나며 시뻘건 피를 토했다.
쿠르르르륵!
하지만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신관들의 몸은 이미 마기에 먹힌 듯 목이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도 재생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 재생력이라니….’
마족과 직접 계약한 바우른의 힘을 받았기 때문인지 신관들에게 스며든 마기의 악취도 지독했다.
‘그래도 의미는 없지만.’
라온이 바닥에 제천검을 박아넣고, 만화공의 불길을 극성으로 끌어냈다.
쿠와아아아아아!
검날이 박힌 구명에서 옅은 황금빛 불길이 솟구치며 신관들의 육체와 마기의 조각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남은 건 새까만 연기와 아직도 허공에 떠 있는 마기의 고치뿐이었다.
트득.
라온은 뼈대만 남은 탑의 철골을 밟으며 점점 더 거세게 박동하는 마기의 고치를 향해 다가갔다.
만화공의 불길을 두른 제천검으로 고치의 중심을 내리쳤다.
쩌어어어어억!
검은빛 고치가 달걀 껍데기처럼 바스러지며 안쪽이 깊게 파여나갔다.
바우른 국왕은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이처럼 팔다리를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라온이 아래로 내려둔 제천검을 그대로 올려 치려고 할 때 바우른 국왕의 눈꺼풀이 들렸다.
쿠웅!
마기보다도 짙은 어둠을 간직한 검은 눈동자가 번득였다.
“너….”
“짐의 새로운 탄생을 축복해주기 위해서 온 건가.”
바우른 국왕의 입가에서 피어난 사이한 미소와 함께 어둠이 차올랐다.
쿠와아아아아아!
* * *
키아아아아!
사자의 머리에 황소의 몸을 가진 마물이 바닥을 뭉개며 돌진해온다.
“흐읍!”
호펜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뛰어들며 새하얗게 타오르는 검을 내리쳤다.
촤아아아악!
신성력의 칼날이 마기를 밀어내고, 마물의 몸통을 갈랐다.
끼이이이.
마수는 몸이 반 토막 났음에도 죽지 않고,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퍼어어억!
호펜이 검으로 머리를 으깨버리자, 마수는 구정물이 되어 녹아내렸다.
“안쪽에 다섯이 더 있다! 도망치기 전에 모두 처리해!”
그가 골목 안쪽을 가리키자, 뒤에서 대기하던 신관과 성기사들이 달려 들어가 내부에 있던 작은 마물들을 정화했다.
“후우….”
호펜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로로 걸어 나왔다.
‘지치네.’
키니어에게 받은 팔라딘의 문양을 이용해서 대부분의 마물은 처리했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았기에 이젠 지쳐서 서 있을 기운도 없었다.
다만 주저앉아서 쉴 시간은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지금 가장 위험한 건….’
광풍대.
키니어를 지키면서 마족과 싸워야 할 광풍대가 가장 걱정되었다.
규모가 큰 마물들은 모두 처리했기에 부관에게 뒷정리를 맡기고 첨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광풍대가 이뤄낸 하나의 바람이었다.
콰아아아아아!
푸른 바람의 칼날은 거대한 마기를 가르고 마족의 몸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마족은 마기의 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했다.
“허….”
호펜은 마족을 지워버린 광풍대의 뒷모습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정말 이기다니….’
마족은 인간의 영혼을 짓누르는 기질을 지니고 있다.
아직 청년이라 불러야 할 검사들이 상성을 깨부수고 마족을 쓰러뜨렸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가장 놀라운 건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점. 중상자는 있지만, 죽을 상처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광풍대는 마족을 꺾고도 완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마기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하나씩 주저앉았다.
‘너무 달라….’
대체 어떤 수련과 실전을 겪었기에 저런 무력과 정신력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부럽다는 마음보다도 경외심이 들었다.
“음….”
호펜은 라온이 있을 첨탑을 올려보는 광풍대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들었다.
‘이제 저곳만 남았군.’
마족과 마물은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건 저 탑에 있는 피른 신관과 다니에프 경 그리고 아버지뿐이었다.
‘제발….’
더 이상 누구도 죽는 일 없이 끝나게 해달라고 두 손을 모아서 기도를 올릴 때였다.
쿠우우우우웅!
첨탑. 아니, 이 왕국 전체가 뒤틀리는 듯한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탑을 휘감은 마기가 솟구쳐 하늘을 뒤덮었다.
칠흑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꺼뭇한 밤하늘 위로 두 쌍의 날개를 펼친 남자가 떠올랐다.
군살 하나 없이 탄탄히 다져진 육체와 아이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각이 꽉 조여진 날카로운 콧대와 턱선을 지닌 미남자였다.
머리 위에 검은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마기로 인해 주변으로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서, 설마….”
호펜은 사이한 미소를 그리는 남성을 보며 턱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
닮았다. 저 청년의 얼굴은 20년 전. 아니, 자신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그려진 아버지의 초상화와 꼭 닮아 있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가 쓰고 있는 흑관은 슈페르의 국보이자, 왕의 상징인 백색의 성관과 똑같은 형태였다. 몰라볼 수가 없었다.
“크윽….”
호펜은 왕국 전체를 굽어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바우른의 모습에 오싹함을 느꼈다.
금기에 손을 댄 아버지는 마기에 잡아먹힌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인자함과 성스러움이 아니라, 악취 나는 마기와 사악함뿐이었다.
다만 그에게서 피어나는 지독한 마기는 대지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화아아아아!
탑의 정상에 선 라온의 불길이 마기를 모조리 태워버리고 있었다.
‘제발….’
호펜이 라온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입술을 짓씹은 채 무릎을 꿇었다.
‘제발 아버지를 막아주십시오!’
* * *
“자유롭군.”
바우른이 두 팔을 벌린 채 숨을 한껏 들이켰다. 그의 숨결에서 흘러내린 마기가 검은 하늘에 채도를 더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만능감이 느껴져.”
“회춘했네?”
라온이 하늘에 떠 있는 바우른을 보며 목을 가볍게 돌렸다.
마기를 받아들인 영향인지 바우른의 외모와 육체는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건장해졌다.
다만 푸른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리고 머리에 쓰고 있던 백관은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아예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물론 가장 큰 변화는 마기다. 왕국 전체에 퍼져 있던 신성력이 마기로 화한 듯 그에게서 상상을 벗어난 규모의 마기가 느껴졌다.
‘오러의 양으로는 이길 수 없겠군.’
동급의 무인이나, 마법사에 비해서 많은 오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바우른이 지닌 마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라온 지그하르트.”
바우른이 아래를 굽어보며 턱을 매만졌다. 저렇게 변했어도 버릇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짐은 진정한 왕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는 그 말을 하며 검게 물든 왕관을 가리켰다.
-짐? 저 잡것이 감히!
라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외치며 주먹을 흔들었다.
“건방져졌네. 이제 존대는 그만 둔 건가?”
“짐이 왕이거늘. 누구에게 말을 높이란 말이냐.”
숨기고 있던 본래의 성격인지, 아니면 마기를 받으며 인성이 반대로 바뀐 건지 바우른의 말투는 짜증이 날 정도로 건방져졌다.
“진정한 왕이 뭔데?”
라온이 바우른을 올려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힘. 바로 이 무력이다.”
바우른이 양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왕국을 지키고, 나아가 적을 말살할 수 있는 힘을 지니는 자만이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
“무력? 역시나네.”
비웃음을 그리며 손을 저었다.
“진정한 왕이 국민을 제물로 바쳐서 힘을 얻나? 그건 왕이 아니라, 학살자일 뿐이다. 남에게 퍼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바보 군주만도 못해.”
바우른은 이제야 진정한 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왕이 아니라, 학살자로 보였다.
-아낌없이 주는 군주? 그런 멍청한 놈도 있다니! 대체 누구냐!
‘….’
라스는 퍼주기만 하는 놈은 군주 자격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짐의 피와 살이 되는 건 축복이다. 죽어간 국민은 오히려 기뻐할 것이야.”
바우른은 이미 정신이 나간 듯 젊어진 본인의 몸을 쓸어내리며 따스한 미소를 그렸다.
“넌 안 되겠다.”
라온이 바우른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 잘난 무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건지 보여주지.”
“좋다. 용살자라면 짐의 이름을 알리는 첫 번째 상대로 나쁘지 않겠지.”
바우른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타오른 마기가 검은 빛살이 되어 쏘아져 왔다.
지연 시간이 거의 없었다. 빛이 번쩍인 순간 마기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화아아아아!
라온이 자세를 깊게 낮췄다. 아래로 기울여둔 제천검으로 다가오는 마기의 구체를 향해 적섬을 그어 올렸다. 꽤 묵직했지만, 가르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촤아아아악!
시뻘건 열선이 마기를 가르고, 허공에 자욱한 궤적을 새겼다.
“이게 다인가?”
라온이 빨갛게 달아오른 칼날을 흔들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럴 리가.”
바우른이 옅게 웃으며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조금 전 적섬으로 그었던 마기의 구체가 무수히 떠올랐다.
“조금 놀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하늘에 가득 찬 마기의 구체가 소나기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화아아아!
라온이 제천검으로 너울지는 파도를 그렸다.
검의 궤적 위로 적빛을 머금은 꽃잎이 피어난다. 사계를 겪은 듯 흩날리는 꽃잎의 조각들이 허공을 자욱하게 메웠다.
만화공 천화.
화령.
강환의 조각들이 마기의 소나기를 막아서며 천공에서 무수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앙!
검은 연기가 하늘과 땅을 뒤덮을 때 우측에서 검은 그림자가 쇄도해왔다.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다만 그 움직임이 너무도 빨랐기에 방향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터엉!
살짝 구부러진 철근 위에서 태화삼보를 밟은 순간 바우른이 검게 물든 주먹을 뻗어왔다. 어찌나 강한 힘이 실렸는지 주변이 이지러지는 듯 보였다.
라온은 구름 속을 유영하는 듯한 태화삼보의 흐름을 이용하여 바우른의 권격을 흘려낸 후 제천검으로 서리연을 그었다.
촤아아아악!
진검과 서리의 검이 연달아 뻗어나갔다.
하지만 바우른은 반응 속도마저 빨라진 듯 허리를 젖혀 두 검격을 가볍게 피해낸 후 왼쪽 주먹으로 반격까지 해왔다.
라온은 목을 우측으로 젖혀서 바우른의 주먹을 피해냈다. 권풍 때문에 뺨에서 피가 터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 예측하고 있었으니까.’
입술을 살짝 깨물며 바우른의 마기에 분노하는 진혼검을 뽑아 들었다. 붉은 칼날에서 솟구친 샛노란 요기가 바우른이 흘려내는 마기를 찢어발겼다.
쩌어어어억!
바우른은 앞섬이 살짝 갈라졌지만, 그는 여유롭게 뒤로 물러섰다.
“역시 제법이로구나.”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진정한 왕이라고 했지?”
라온이 바우른을 보며 턱을 까딱였다.
“그렇다. 짐이야말로 슈페르 왕국을 수호할 수 있는 진정한 왕이다.”
“왕관 없는 왕도 있나?”
“그게 무슨….”
바우른이 미간을 찌푸리려고 할 때 그의 머리 위에서 번들거리던 검은 왕관이 반으로 갈라진 채 땅으로 떨어졌다.
“그거 거슬렸거든.”
라온이 진혼검을 던졌다가 받으며 옅게 웃었다.
“학살자에게 어울리는 건 목에 걸 밧줄이지. 왕관이 아니니까.”
“이놈!”
바우른의 목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날개가 길게 펼쳐지며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마기가 타올랐다.
“죽여주마!”
“할 수 있다면 해보든가.”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검계현신 신마조화결.”
청아한 울림이 세계를 뒤튼다. 마기로 가득 찬 꺼뭇한 밤하늘 위로 황금빛 태양과 은색의 달이 차올랐다.
끈적했던 마기는 고고한 빛에 겁을 먹은 듯 구석으로 밀려 나갔다.
“네게서….”
라온이 태양과 달로 빚은 듯한 신검과 마검을 세운 채 서슬 퍼런 눈빛을 드러냈다.
“왕의 칭호를 가져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