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74
제674화
실크렛의 다리가 관절이 빠진 것처럼 흔들렸다.
‘이건 말이 안 돼….’
지금 앞에 서 있는 금발의 어린 인간은 마족이 아니다.
평소 마계의 벌레보다도 하찮게 여기는 인간이건만, 어째서인지 저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영혼이 굴복한 듯 전신의 힘이 빠졌다.
쿠웅.
거부하고 싶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무릎이 땅에 내려앉았다. 굴욕보다 더 깊은 공포가 육체를 지배했다.
“으으!”
실크렛이 입술을 떨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어린 인간의 붉은 눈동자 속에서 푸른 분노가 일렁거렸다.
‘분노….’
마계 북방을 지배하는 왕이자, 분노의 군주. 라스의 감정이다.
마기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격이 전해져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하지만 저 인간이 일으키는 기운은 분노만이 아니었다.
‘왜 나태와 질투까지 있는 거지?’
어린 인간의 영혼 속에는 나태와 질투의 기운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돼….’
분노의 군주 라스는 아주 가끔 인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기행을 저지르기에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태의 군주 슬로스와 질투의 군주 엔비는 다르다.
슬로스는 잠을 자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고, 엔비는 인간 자체를 하찮게 보기에 본인의 힘을 거의 넘겨주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저 인간이 어떻게 세 마왕의 기질을 얻은 건지 떠오르지 않았다.
“네가 실크렛인가.”
어린 인간의 입술에서 위엄이 서린 음성이 흘러나오자, 영혼이 그의 손아귀에 꽉 잡혀 있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 그렇습니다.”
실크렛은 정말 마왕을 마주한 것처럼 냉큼 고개를 숙였다.
‘거부할 수 없어….’
아무리 자신이 모시는 군주가 아니라고 해도 라스와 슬로스, 엔비의 기운을 모두 지닌 존재에게 반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네 소속은?”
“저, 저는….”
“아니, 말할 필요 없다. 추한 돈 냄새가 여기까지 나니까.”
어린 인간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드. 그 잡것의 권속이겠군.”
“끄윽….”
실크렛이 턱을 내린 채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정체가 뭐야….’
마계의 군주끼리도 서로에게 나름의 예의를 갖춘다.
그리드에게 반말을 하다못해 잡것이라고 말하다니, 정말 분노의 군주 라스를 보는 것 같았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실크렛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시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너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어린 인간이 비릿한 웃음을 그리자,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통증이 일었다.
“끄읍….”
그 말에 실크렛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반항할 수 없어.’
저 어린 인간이 누구든, 어떻게 마왕의 감정을 얻었든 상관 없다.
그에게서 분노와 나태, 질투가 느껴지는 이상 자신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꼼짝도 할 수 없으니까.
실크렛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허리를 굽혀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 * *
라온은 머리와 손, 배를 모두 바닥에 붙인 실크렛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잘 통하는군.’
진짜 마족을 만나는 건 처음이었기에 라스의 분노만이 아니라, 슬로스의 나태와 엔비의 질투까지 끌어왔는데, 너무 과했는지 실크렛은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다른 마족을 만날 때는 적당히 해도 될 것 같았다.
-네, 네놈 뭐냐!
라스가 어깨에서 팔짝 뛰어오르며 눈을 떡 벌렸다.
-언제부터 그 세 기운을 동시에 쓰게 된 것이냐!
녀석은 분노만이 아니라, 나태와 질투마저 자유롭게 다루는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라온이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불의 고리 덕분이겠지.’
분노와 질투, 나태를 모두 끌어내는 건 확실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체력과 정신력, 오러가 밑 빠진 독처럼 빠져나가고 복부에 심한 고통까지 일어났으니까.
다만 여덟 개의 불의 고리가 공명하며 그 모든 고통을 가라앉혀 주었다. 오래 견디지는 못해도 실크렛을 처리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학을 익혔지만, 최고는 역시 불의 고리인 것 같았다.
-끄으윽, 그럼 저놈이 그리드의 권속인 건 어떻게 안 것이냐!
라스는 완전히 굴복한 실크렛을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
‘뻔하잖아.’
라온이 가볍게 손가락을 저었다.
‘네가 마음에 안 드는 잡것이라고 할 마왕은 탐욕과 오만뿐이니까.’
라스는 탐욕과 오만을 제외한 나머지 군주들은 무시했고, 색욕은 신기하게도 무서워했다.
실크렛이 본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이 왕국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것을 보고 바로 탐욕의 권속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여튼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니라!
라스가 분한 듯 입술을 떨었다.
‘고마워.’
-칭찬 아니니라!
녀석은 화를 내는 거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으음….”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자, 실크렛이 의문을 담은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다만 겁을 먹은 듯 창백한 낯빛은 그대로였다. 바우른과 피른, 다니에프를 죽일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확실히….’
라온이 실크렛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그 셋은 죽어도 싸지.’
호펜은 바우른 국왕과 피른 신관, 근위 기사단장 다니에프를 살려서 평생 봉사시킬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 셋을 확실히 죽이는 게 이곳에서 학살당한 영혼을 위로하는 길이라 여겼다.
이 땅이 지그하르트가 아니라, 슈페르 왕국이었기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죽더라도 이렇게 마족에게 영육을 먹히며 죽는 건 원하지 않았다.
바우른 국왕이 죄를 고하고, 배신당한 국민들의 손으로 끝이 나길 바랐기에 속에서 열화와 같은 분노가 차올랐다.
라온이 진혼검을 역수로 잡은 채 실크렛의 오른팔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퍼어어어억!
요기와 분노로 타오르는 칼날은 실크렛의 마기를 가볍게 뚫고, 그의 어깨를 찢어버렸다.
“으아아아악!”
실크렛이 잘려 나간 채 떨어진 본인의 팔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분노와 요기 때문인지 놈의 어깨는 재생되지 않고 검은 핏물만 뿌렸다.
“입 다물어.”
“끄읍….”
실크렛은 고통보다 공포에 먹힌 듯 하얀 이빨로 입술을 씹었다.
“너와 바우른의 계약은 무엇이었지?”
라온이 진혼검에 묻은 검은 핏줄기를 털어내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 그에게 이 왕국을 지킬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을 주기로 했습니다. 신성력을 마기로 바꾸는 술식을 알려주어서 이 왕국에 있는 모든 인간의 신성력을 먹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잖아.”
“바, 바우른이 죽거나, 스스로 마기를 포기하게 되면 그들의 육체와 영혼을 제가 가지는 것으로….”
실크렛은 턱을 부르르 떨면서 바우른과 행했던 계약을 말해주었다. 왜 놈이 나타나자마자 바우른과 피른, 다니에프가 죽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저, 정당한 계약이었습니다! 계약대로 저는 바우른에게 초월을 넘어서는 마기를 주었….”
“개소리.”
라온이 실크렛을 굽어보며 비릿한 미소를 그렸다.
“초월을 넘어서는 마기를 얻었을 뿐 정작 초월자를 꺾는 건 불가능하고, 왕국도 지킬 수 없어. 조잡한 말장난이다.”
바우른에게 말해주었듯 마기와 육체만 강해져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높은 영역에 닿지 않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정기신의 균형만 어그러질 뿐이었다.
슈페르 왕국을 지키고, 아들의 복수를 부르짖던 바우른은 실크렛의 술수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가슴이 사포에 긁힌 것처럼 아려왔다.
‘야.’
-으응?
라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안 속인다며. 정당한 계약이라더니, 이게 뭔데.’
-저, 저놈은 그리드의 권속이지 않느냐. 예전부터 사기를 많이 치는 놈들인지라….
녀석은 눈 뜬 상태로 코를 베어가는 놈들이라며 손을 떨었다.
‘잘나신 분노의 군주의 장담도 별거 없네.’
라온이 비꼬듯이 코웃음을 쳤다.
-끄응….
라스는 할 말이 없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퍼어어억!
라온은 짜증을 담은 채 진혼검을 실크렛의 가슴에 찔러넣었다.
“커헉….”
실크렛은 지독한 고통을 느끼는 듯 뒤로 넘어간 채 전신을 떨었다.
“제, 제발 용서를….”
“입 다물라고 했지.”
라온은 섬뜩한 안광으로 진혼검을 비틀었다.
“끄아아아악!”
실크렛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고, 그의 가슴에서 오싹할 수준의 핏물이 쏟아졌다.
우우우웅!
진혼검도 진심으로 분노한 듯 짙은 요기를 불태우며 실크렛의 마기를 최대한 빨아들였다.
“대, 대체 뭐야….”
성녀 올가가 무릎만 세운 채로 마른침을 삼켰다
“저건 진짜 마족인데?”
광풍대에게 쓰러진 마족과 달리 저 실크렛이라는 마족은 진짜다.
최상의 상태였어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마기를 지닌 괴물이 라온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말했잖아. 그냥 그러려니 하라니까.”
리메르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고개를 저었다.
“쟤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돼.”
“그 말이 맞습니다.”
버렌이 리메르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도 마족을 저렇게 제압할 줄은 몰랐지만….”
“제압이 아니라, 잘 조련한 개 수준 아니냐?”
마르타가 실크렛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손 달라고 하면 손 줄 거 같아.”
루난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꾸벅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실크렛이 눈동자를 굴리며 라온에게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네가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라온이 비웃음을 그리며 칼날을 더 깊게 박아버리려고 할 때였다.
-물러나라!
라스의 다급한 외침에 나도 모르게 발을 뒤로 뺐다.
투웅!
그 순간 실크렛의 머리 위로 커다란 입 하나가 돋아났다. 새하얀 입술에 뻘건 이빨이 박혀 있는 기괴한 입이었다.
“아, 안 돼!”
실크렛은 새하얀 입술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땅을 박찼다.
퍼어어억!
하지만 괴기스러운 입은 실크렛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여도 상관이 없다는 듯 천천히 입을 닫았다.
“어….”
먼 허공으로 도망쳤던 실크렛은 어느새 붉은 이빨 사이에 갇혀 있었다.
“제, 제바….”
실크렛이 제발이라고 외치기 전에 새하얀 입술이 닫혔다. 입 안쪽에서 살점이 찢어지고, 뼈가 으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오오오오!
충분히 즐겼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 사라지는 입술 뒤로 어린아이처럼 작은 인영이 드러났다.
너저분하게 풀어헤친 백발은 허리에 닿았고, 눈동자는 붉은 보석을 박아넣은 듯 요요롭게 빛났다.
실크렛과 달리 자그마한 마기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 존재감만으로 이 세계가 비틀어지는 듯 보였다.
“아아….”
“끄헉….”
실크렛의 마기에 지쳐있던 사람들의 호흡이 저 괴물의 존재감만으로 끊어진다. 신관과 성기사들만이 아니라, 성녀와 광풍대조차도 눈을 까뒤집은 채 머리를 당에 박았다.
라온이 점차 가까워지는 백발의 소녀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세 마왕의 기운을 운용하는 자신조차 숨이 멎을 지경이다. 불의 고리가 없었다면 저들처럼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또 만나게 되다니….’
저런 존재감을 지닌 이들은 딱 하나 밖에 없었다.
‘마왕.’
라스와 같은 마계의 군주가 분명했다.
하지만 실크렛의 주인인 그리드는 아니다. 하얀 머리카락과 백옥 같은 피부 그리고 작은 체구와 선명한 붉은 눈동자. 저 외형은 라스가 말했던 마왕 중 하나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탐식.’
-그래. 글러트니이니라.
라스가 글러트니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저놈이 왜 여기에 온 거지?’
-처음에 말했듯이 지금 이 공간은 일시적으로 마계와 같은 환경이 만들어졌느니라. 저놈에게는 뷔페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
그 말대로인지 글러트니가 작게 입맛을 다셨다. 실크렛의 맛이 나름 만족스러웠던 것 같았다.
-본왕에게 몸을 넘겨라.
라스가 빨리 움직이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저놈의 식욕에는 끝이 없다. 빠르게 결정하지 않으면 모조리 먹히게 될 것이니라!
녀석은 방법은 몸을 넘기는 것뿐이라며 은근히 미소를 그렸다.
‘빠져 있어.’
마왕 강림을 쓰게 되면 육체든, 정신이든 큰 손해를 입는다. 정말 중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라스의 말대로 글러트니는 다음 식사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저놈을 어떻게 해야… 아!’
라온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가 작게 손뼉을 쳤다.
실크렛이 죽어서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식탐의 군주에게도 빚을 만들 기회였다.
“무, 물러나!”
빠르게 계획을 잡고, 움직이려고 할 때 뒤에서 리메르가 내 목덜미를 잡고 끌어냈다.
“저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
리메르는 떨리는 다리로 마왕의 앞에 서서 입술을 씹었다.
그저 대치하고 있는 것만으로 한계에 달한 듯 그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부대주님?”
라온은 흔들리는 리메르의 등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뭐지?’
리메르가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고 해도 체력과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다.
그런 그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마왕을 마주했는데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으음?
라스조차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귀때기가 어떻게….
“오래 못 버틴다.”
리메르는 바람을 이용해서 광풍대를 데리고 가라며 검을 세웠다. 극한에 다다른 정신력. 그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라온. 애들 하나라도… 아.”
라온은 소리 없이 리메르의 뒤로 다가가서 목을 쳤다. 그는 설마 뒤에서 공격받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듯 바로 기절하며 쓰러졌다.
“그거 맛있을 거 같아.”
글러트니가 리메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허공이 길게 비틀어지며 실크렛을 집어삼켰던 새하얀 입술이 돋아났다.
“잡것.”
라온이 리메르를 뒤로 던지며 눈썹을 내렸다.
“본왕의 먹잇감에 손을 대다니, 그 혓바닥을 뽑아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불의 고리와 현재 지니고 있는 분노를 모조리 끌어 올리자, 글러트니 앞에서 솟구치던 하얀 입이 열리다 말고 멈춰 섰다.
“라스?”
글러트니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
라온은 답을 하지 않고, 매서운 눈빛으로 글러트니를 노려보았다.
‘토끼 같은 놈이라고 했었지.’
라스는 글러트니를 먹는 데만 관심 있는 단순한 토끼 같은 놈이라고 했었다. 그의 말대로 글러트니는 어딘가 맹한 부분이 있었다.
-이, 이런 미친놈이!
라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빽 소리를 질렀다.
-본왕의 신관이니, 그릇이니 하더니 이젠 아예 본왕을 사칭하는 것이냐!
녀석은 진짜 미쳤냐고 말하며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저놈은 왜 속아! 본왕은 이렇게 못 생기지 않았잖느냐! 지닌 기운 자체가 다르다고!
라스는 제발 알아달라고 외치며 글러트니에게 손을 휘저었다.
“너… 라스가 아니야.”
글러트니가 확신을 하듯 고개를 저었다.
우우우웅!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던 하얀 입술이 열리고, 붉은 이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라온은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물었다.
“머리 색도, 눈동자도 달라. 그리고… 약해.”
글러트니는 외형과 기세가 다르다며 라스가 아니라고 중얼거렸다.
-푸헤헤헤헤!
라스가 라온에게 삿대질을 하며 배를 잡았다.
-글러트니는 단순하기는 해도 슬로스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니라! 당연히 속지 않지!
‘으음….’
라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실크렛의 상태를 보고 연기를 해봤는데, 지금의 분노로 라스를 연기하기에는 일렀던 것 같다.
-이제 네놈에게 선택권은 없으니라!
라스가 키득이며 턱을 치켜들었다.
-저 입에 먹히면 본왕도 구해줄 수 없으니, 빨리 몸을 본왕에게 넘기거라!
‘…….’
라온은 대답하지 않고, 살짝 눈을 내리감았다.
-아니, 그냥 몸을 넘기면 본왕이 폭주해서 애들까지 잡으니까. 그 검계현신으로 불러!
녀석은 이 와중에도 광풍대를 걱정하는 듯 검계현신 마왕강림을 운용하라고 떠들어댔다. 참으로 특색 있는 마왕이었다.
지금은 그 말대로 지금은 마왕 강림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다만 강림을 사용하면 손해가 막심하기에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외모, 외모라….’
그거라면 될지도.
라온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눈을 떴다.
고오오오!
글러트니가 소환한 하얀 입술이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너 맛있을 것 같아.”
“귀찮게 하는구나.”
라온은 글러트니가 입을 닫으려는 순간 진혼검을 가슴 중앙에 꽂아 넣었다.
퍼어어어억!
칼날이 피부를 파고드는 고통과 함께 핏물이 치솟아 제복을 붉게 물들였다.
“응?”
먹잇감이라고 생각한 인간이 갑자기 자살하려 했기 때문인지 글러트니의 입도 멈췄다.
라온은 그런 글러트니를 보며 작게 뇌까렸다.
검계현신 마왕강림.
-드디어!
라스가 길게 입맛을 다셨다.
-잘 생각했느니라! 본왕이 다 처리해주겠느니라.
‘으윽….’
라스의 말을 무시하며 흘러내리는 핏물로 검진을 그렸다.
허공에 떠 있던 라스가 내 영혼 속으로 빨려 들어오며 육체가 급변한다.
푸른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상처 없는 새하얀 피부가 돋아난다. 변화하는 라온의 영육 위로 글러트니를 압도하는 존귀한 기파가 드러났다.
“아….”
글러트니가 너울지는 푸른 머리카락과 그 뒤로 떠오르는 서리의 날개를 보며 턱을 떨었다.
“…라스?”
“잡것.”
현세에 강림한 청발의 마왕은 글러트니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본왕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다니.”
“나, 나는….”
글러트니가 입술을 떨며 뒤로 물러섰다.
“처음 말했던 대로 그 혓바닥을 뽑아야겠구나.”
고귀한 마왕이 오싹한 기운을 뿌릴 때 그의 내부에서 진짜 마왕의 외침이 울렸다.
-뭐, 뭐야! 왜 본왕의 육체만 저리로 간 건데!
라스는 본인의 육체 내부에서 꼼짝도 못한 채 입술을 떨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어떻게 되긴. 넌 육체만 넘긴 거지.’
푸른 마왕의 거죽을 휘감은 라온이 피식 웃었다.
-그니까 어떻게!
‘마왕강림은 내 육체와 영혼의 연결이 끊어지려는 순간 너를 받아들이는 억지 강림술이야. 그리고 거기에서 필수적인 건….’
라온이 옅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내가 죽음에 가까워야 해. 지금은 살짝만 영혼과 육체가 벌어진 상태니까. 네 기파와 외모만 가져오고 육체의 통제권은 여전히 나한테 있는 거지.’
-아아….
라스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노랗게 질린 입술을 떨었다.
물론 내게도 육체의 통제권만 있을 뿐 라스의 힘을 쓸 수는 없다.
녀석의 기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게 전부였다. 한 마디로 허세용에 불과했다.
다만 그 허세는 지금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되어 있었다.
“네놈은 본왕의 먹잇감을 가로채는 것으로 모자라서 본왕까지 먹으려고 했지….”
라온은 눈동자를 떠는 글러트니를 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 대가를 어떻게 받으면 좋을까?”
“으음….”
글러트니는 이제 와서 후회가 되는 듯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다.
-아, 안 돼!
라스가 그런 글러트니를 보며 빽 비명을 질렀다.
-이놈 가짜다! 본왕은 여기에 있다고! 아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