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83
제683화
-새로운 검계?
라스가 동그란 턱을 바짝 세웠다.
-네, 네놈 설마! 본왕의 설중화를 따라하려 것이냐!
“글쎄?”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 라스의 코를 밀어냈다.
-이노오옴! 안 되느니라! 본왕이 설중화를 구상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켈록!
라스는 설중화가 본인만의 기예라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솜사탕이 햇볕에 녹아서 동그랗게 말려 들어간 것 같았다.
“농담이야.”
라온이 옅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지금 내 경지로 설중화는 따라하고 싶어도 못 해.”
-커험! 당연하겠지. 설중화는 본왕의 경지를 그대로 담은….
“다만 네 덕분에 영감을 얻기는 했어.”
-영감을 얻었다고?
“그래.”
라온이 라스의 푸른 눈을 보며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내가 본 검계의 종류는 세 가지야. 첫 번째는 내 신마조화결이나, 부대주님의 폭풍의 눈처럼 길게 싸울 수 있는 지속형.”
중지를 세우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도괴 님의 검은 칼날처럼 본인의 공간에 적을 끌어들이는 설치형.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지를 앞으로 내밀어 라스를 가리켰다.
“네 설중화나, 가주님의 천의무봉처럼 단번에 적을 말살시키는 즉발형. 즉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라스의 설중화는 발동되자마자 눈앞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고, 글렌의 천의무봉은 인뢰, 지결, 천검의 세 줄기 검격으로 적을 찢어발긴다.
둘 다 자신의 전력을 끌어내 적을 압살하는 필살의 기예였다.
-그럼 네놈이 만든다는 건….
라스가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래.”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하나만을 남겼다.
“너와 가주님 같은 즉발형의 검계를 만들 생각이야.”
신마조화결에는 그 끝을 화려히 장식하는 청홍무적검이 있지만, 검계를 발동시킴과 동시에 자신의 모든 힘을 폭발시키는 즉발형의 위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리드를 압살한 라스처럼 적을 찍어누를 수 있는 새로운 검계를 만들고 싶었다.
-켈록. 그런 거라면 뭐….
라스가 설중화를 베끼지 않는다고 생각한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베낀다고는 안 했는데?”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켈록!
“따라 할 수 없다는 거지 안 베낀다고는 안 했잖아.”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뜬 라스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런 좋은 교보재가 눈앞에 있었는데, 어떻게 안 베끼겠냐고.”
-이 정신 빠진 놈이 진짜!
라스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며 이를 바득 갈았다.
다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흘렸다.
-하긴 상관없겠지. 네놈에게 쉬운 길이 아닐 테니까.
“쉬운 길이 아니라고? 왜?”
-네놈은 감추고 있는 게 많으니까. 켈록!
녀석이 비웃듯 고개를 저었다.
-이전에도 말했듯 초월에 오른 이후에는 감정 같은 사소한 요소가 중요해지느니라. 본왕의 설중화가 그리 강한 위력을 지닌 이유도 가진 모든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지.
라스가 설중화를 펼칠 때처럼 두 손을 모았다. 다만 그때와 달리 손가락이 없어서 두툼한 빵처럼 보였다.
-네놈은 나이에 맞지 않는 섬뜩한 살기와 분노를 지녔는데,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약해 보일 때가 있느니라. 솔직히 본왕은 아직도 네놈이 파악되질 않았어.
녀석이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아니, 네놈 본인도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모를 것이니라. 켈록!
“음….”
라온이 살짝 입술을 씹었다.
‘저 말대로야.’
데루스를 몰락시키겠다는 복수심 그리고 실비아와 별관 식구들, 광풍대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제외하면 나란 존재는 텅 비어 있었다.
라스의 말대로 나 스스로도 나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네놈이 칭한 즉발형 검계는 지닌 무력을 단번에 쏟아붓듯이 자신의 감정도 쏟아내어야 하느니라. 지금의 네놈에게는 쉽지 않을 것이야.
“그럴 것 같네. 하지만….”
라온이 담담한 웃음을 그렸다.
“아직 시간은 많아.”
부왕과의 생사결까지 세 달이 남아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동안 오롯이 수련에만 집중할 것이기에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은 충분했다.
-시, 시간이 많다고? 네놈 설마….
라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이 연공실에서 3달 동안 있을 생각인 것이냐? 켈록!
“아니, 열흘 전에는 나가야지. 아마 두 달 반 정도.
-그럼 밥은….
“이거.”
라온이 씩 웃으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오직 나딘빵만 들어 있는 큼지막한 보자기를 꺼냈다.
-끼아아아아악!
라스는 나딘빵 뭉치를 보자마자, 멀린을 만났을 때처럼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치우거라! 보기만 해도 켈록! 입맛이 사라지느니라! 켈록!
“어쩔 수 없잖아.”
라온이 나딘빵을 던졌다가 받으며 웃었다.
“연공실에서 먹기에 나딘빵보다 좋은 음식은 없어.”
나딘빵은 냄새도 없고, 하나만 먹어도 폭식을 불러온다.
연공실에서는 물만큼이나 필수적인 요소였다.
-켈록, 켈록….
라스가 헛바람을 흘리며 연달아 기침을 내뱉었다.
“너 괜찮은 거야? 왜 이렇게 기침을….”
라온이 쪼그라든 라스를 보며 눈썹을 깊게 내렸다.
예전에도 라스가 기침을 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녀석의 강함을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걱정이 되었다.
-그것 때문에 할 말이 있느니라. 켈록.
라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강림했던 여파를 가져가면서 본왕에게 영적 손상이 일어났느니라. 아무래도 조금 자야 할 것 같구나.
“너 매일 자잖아.”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슬로스와 글러트니를 합친 듯 먹지 않을 때는 거의 자는 놈이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보다 긴 잠이니라.
라스는 영체를 안정시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축제도 즐겼고, 집밥과 간식도 먹을 만큼 먹어서 준비하려고 했는데, 지금이 딱 좋겠구나. 켈록!
녀석은 본인이 기절해있는 동안 나딘빵 많이 먹으라며 픽 웃었다.
“너 마왕강림의 여파를 얼마나 가져간 거야?”
-적당히 가져갔느니라. 켈록!
라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아무래도 녀석이 내 부담을 조금 더 덜어준 것 같았다.
-착각하지 말거라! 본왕이 인간 따위를 걱정할 듯 싶으냐! 아 물론 우리 착한 아이스크림 소녀와 파인애플 소녀, 소고기 소녀는 예외이니라!
“그래서 얼마나 잘 건데?”
라온이 히죽이는 라스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아마 네놈이 생사결을 치르기 전에는 일어날 것이니라. 네놈이 뒤지기 전에 그 몸을 차지해야 하니까. 켈록!
“그럼 됐어.”
아예 떠나는 게 아니라, 돌아온다면 상관없었다. 오히려 연공에 집중할 수 있으니 좋았다.
‘잠깐….’
그럼 됐다고?
처음에는 라스가 떠나길 그렇게 바랐었는데, 지금은 잠만 자고 돌아온다고 하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라스의 능력이나, 시스템의 보상 때문이 아니다. 옆에서 조잘거리는 저 솜사탕 자체에 깊은 정이 들어버렸다.
아무래도 내게 라스는 적도, 동료도 아닌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야.”
라온이 어지러운 생각을 털어내며 라스의 이마를 툭 쳤다.
“너 늦게 나오면 혼자서 맛집 탐방 다닐 거야.”
-흥! 걱정하지 말거라! 본왕은 식사 시간만큼은 지키… 켈록!
기침 소리를 들어보면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기대가 되는군. 어떻게 변할지.
“그래. 깨어나자마자 입을 떡 벌리게 해주지.”
-흥. 네놈 말고 하나 더 있느니라.
라스가 착각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네놈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어색하니, 이만 가보겠느니라.
녀석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팔찌 속으로 들어갔다. 얼음 꽃팔찌가 연한 은빛으로 반짝이다가 가라앉았다.
“라스.”
라온이 팔찌를 툭 치며 라스를 불렀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나 사실 아이스크림도 하나 챙겨왔는데.”
-…그건 진즉에 말했어야지! 켈록!
라스가 팔찌 위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너 아프다는 거 거짓말이지?”
-우, 웃기지마라! 본왕은 꾀병 따위 안 부리느니라!
“아닌 거 같은데.”
라온이 고개를 저으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실비아가 건네주었던 구슬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마지막 만찬이라고 생각해.”
-마지막은 무슨! 본왕은 평생 살면서 런칭되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전부 다 먹을 것이니라!
* * *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라스는 정말 잠에 빠졌다.
“민트초코 한 박스 더 있는데?”
민트초코를 말해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깊이 잠든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떠들던 녀석이 조용하니까. 기분이 묘하네.”
라온이 이유 없이 손목을 툭툭 턴 후에 성녀가 주고 갔던 성화와 호펜에게 받았던 성진환을 꺼냈다.
‘이 둘이면 충분하겠지.’
성화와 성진환 모두 신성력이 바탕이니, 따로 먹을 필요가 없었다.
폭식 효과까지 받는다면 잃었던 오러는 다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건 오러가 아니야.
새로운 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심상의 세계에 닿아야 한다.
성화와 성진환을 매개체 삼아서 시간 낭비 없이 바로 고요하면서도 어지러운 심상의 세계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후우….”
라온은 길게 숨을 내쉬고서 성진환이 들어 있는 목갑을 열었다. 씁쓸한 약초 향이 아니라, 선선한 가을 나무 냄새가 솔솔 퍼져 나왔다.
이어서 성화가 담겨 있는 뚜껑을 열자, 입맛을 돌게 하는 듯한 달콤한 향이 흘러나왔다. 신성력 때문인지 두 영약 모두 향기가 좋았다.
‘그 솜사탕이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네.’
피식 웃고서 성진환과 성화를 입에 넣었다. 성진환은 혀에 닿는 순간 물처럼 녹아내려 성화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화아아아아!
신성이 깃든 두 영약은 서로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조화를 이룬 채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혈관과 마나 회로로 은은한 열기를 띤 성수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미세하게 남아 있던 마나 회로의 상처가 단숨에 아물고, 뼈와 근육의 손상이 지워진다. 어마어마한 치유력이었다.
신성의 기운은 치유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듯 머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퍼지며 육체와 감각을 활성화했다.
미세한 근육과 마나 회로가 손에 닿을 듯 느껴지고, 섬찟할 정도로 오감이 발달된다.
연공실 천장을 기어 다니는 개미의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스스로 육체의 껍질을 벗고 있다고 느껴질 때쯤 신성력이 가라앉고 그 안을 채우고 있던 마나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신성의 껍질을 벗고 튀어나온 대량의 마나를 만화공과 글래시아, 가루누아의 흐름에 따라 순환시켰다.
허했던 단전에 새로운 오러가 차올랐다.
먼저 육체를 정화한 후 오러 연공을 했기 때문인지 단전에 쌓이는 기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순도가 높았다.
단전을 가득 채운 마나는 중단전으로 길을 틀었고, 어느새 상단전의 문까지 두드렸다.
우우우우웅!
짙은 마나의 향기와 극한까지 다듬어진 육체의 감각이 심상의 세계의 문을 자연스럽게 열어젖혔다.
화아아아아아!
찬란한 빛과 함께 내가 쌓아 올린 검의 세계가 눈에 들어온다.
붉고, 푸른 대지에서 피어나는 검술의 새싹은 여전했고, 작게 자리 잡았던 바람이 조금이지만 자신의 땅을 넓혔다.
다만 세계의 중심에는 마왕강림의 여파로 인한 검은 구덩이가 일렁였고, 하늘에 떠오른 여덟 개의 불의 고리는 고장 난 시계추처럼 삐걱거렸다.
“일단….”
라온은 비틀린 불의 고리를 보며 옅게 웃었다.
“저곳부터 시작해볼까.”
* * *
“오늘은 여기까지.”
달이 은은한 웃음을 드러낼 때 리메르가 손뼉을 쳤다.
“시간이 늦었으니, 정리들 해.”
그는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말하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뱉었다.
“예.”
광풍대는 지속된 훈련에 힘이 빠진 듯 짧게 답하고서 고개를 숙였다.
“지치네.”
“그러게 낮에는 도괴 님. 오후에는 부대주님이 압박해서 죽을 지경이야.”
“물론 대주님만큼은 아니지만.”
“그런데 부대주님은 갑자기 왜 저렇게 열심이지?”
검사들이 잡담하며 연무장 정리를 시작할 때 오히려 더 힘차게 검을 뻗어내는 사람이 있었다.
루난이다. 그녀는 달빛이 스며든 검신을 느릿하게 세우며 한 송이의 얼음꽃을 피워냈다.
조금씩 속도를 더하는 검극이 화백의 붓처럼 유려하게 떨어지며 수십 송이의 설화를 그려냈다.
치이이잉!
루난이 검을 내리자, 아름다운 화단처럼 떠 있던 얼음의 꽃들이 단숨에 깨져나갔다.
만약 그녀가 저 안에 강기를 담았다면 서리의 폭풍이 일어나 이 주변을 초토화했을 것이다.
“야!”
마르타가 연무장에 가라앉는 서리 조각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건방 떨지 마. 어차피 내가 곧 따라잡을 테니까. 목 길게 빼고 있으라고.”
“풉.”
루난은 맹한 눈빛으로 마르타를 비웃었다.
“이익!”
마르타가 당장 달려들 듯이 콧김을 길게 뿜어냈다.
“경지는 네가 더 높아도! 싸우면 내가 이겨! 덤벼보든가!”
“좀 참아라. 너희는 어떻게 매일 같이 싸우는 거야!”
버렌이 마르타 앞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맹꽁이가 날 비웃었다고! 너도 봤잖아!”
“네가 먼저 시비 건 모습은 봤는데?”
“그냥 따라잡는다고 했을 뿐이야! 저거 치사하게 혼자 강해졌잖아!”
마르타가 야비하다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음, 그건 맞지….”
버렌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루난을 바라보았다.
“루난. 너 갑자기 성취가 크게 올랐던데. 슈페른에서 무슨 일 있었어?”
“잘 모르겠어.”
루난이 평온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거기서 깨어난 이후로 수련이 잘 돼.”
슈페르 왕국에서 기절했다가 깨어난 이후로 오러가 늘어났고, 육체가 강해졌으며, 검술 경지도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그저 자고 일어난 것밖에 없어서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훈련생 시절 라온에게서 피어나는 냉기를 맡으며 힘이 강해졌을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어쨌든! 너 내가 잡을 테니까. 거기 딱 기다려!”
“흥.”
“아오! 저 감정 없는 비웃음이 더 열 받어! 놔봐!”
“나찰녀. 내일 봐.”
루난은 버렌이 말리는 마르타에게 손을 흔들고서 5 연무장을 나섰다. 그녀는 숙소가 아니라, 슬리온 본가로 향했다.
번화가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가문으로 돌아갔는데,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음?”
뭐지?
자신이 돌아올 때 항상 켜져 있던 현관의 조명이 나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기감을 펼쳐보았는데, 저택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루난은 살짝 눈매를 찡그린 채 현관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아가씨!”
“언제 오셨어요?”
조명이 꺼져 있었기 때문인지 시녀들이 깜짝 놀란 채 고개를 숙였다.
“지금 왔어.”
“루난!”
루난의 목소리를 들은 듯 로칸과 클라라가 식당에서 나왔다.
“조금 늦었구나.”
“응. 근데 왜….”
루난이 불이 꺼져 있는 현관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미안하구나. 생각을 좀 하느라.”
“…….”
로칸이 뒷머리를 매만졌고, 클라라는 어색하게 웃었다.
“늦었으니, 일단 식사부터 하자꾸나.”
그는 루난의 어깨를 잡고 대식당으로 걸어갔다.
“…….”
루난은 로칸과 클라라의 등을 보며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평소라면 안아보자고 했을 아빠와 엄마의 어색한 모습을 보니 분명 어떤 일이 터진 것 같았다. 일단은 모른 척하며 식탁에 앉았다.
식사 중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좋아하는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까지 나왔다.
다만 로칸과 클라라의 표정은 여전히 어색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중간중간 눈빛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아빠.”
루난이 다 먹지 않은 구슬 아이스크림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 있지?”
“음….”
로칸은 바로 답을 못하고 미간을 구겼다.
“티가 좀 났니?”
클라라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너무.”
루난이 몰라볼 수가 없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도 이제는 애가 아니니까.”
로칸이 앞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대비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가 길게 숨을 내뱉고서 말을 이었다.
“남쪽에서 바포메트의 투구를 쓰고, 대검을 든 괴인이 목격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시리아가 살아 있는 것 같아.”
로칸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트라우마가 되었겠지.’
루난에게 있어서 시리아는 원수 그 이상이다.
그놈이 살아있다고 알린다면 루난이 무서워하겠지만, 아예 모르고 있다가 당하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그,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어”
로칸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 아빠가 네게는 손끝 하나 닿지 못하도록 할 테니….”
“그거였어?”
루난은 ‘별일 아니었네’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아이스크림을 잡았다.
“루, 루난?”
클라라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오빠가 살아 있을 줄 알았어.”
루난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으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포메트의 상징이 되는 염소는 예로부터 악마의 동물이라 불렸다.
목이 돌아가거나, 꺾여도 살아남기에 시리아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가 살아 있을 거라 예상했었다.
“아빠도, 엄마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루난의 입가에 연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의 연보랏빛 눈동자에는 더 이상 시리아에 대한 두려움이 비치지 않았다.
“오빠는 내가 부술 테니까.”
* * *
“후우….”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내렸다. 상단전을 피폐하게 만들던 검은 균열은 모두 막혔고, 검었던 땅에는 새로운 검술의 새싹이 피어났다.
천공에서 회전하는 불의 고리 역시 완전히 복구되어 여덟 개의 고리가 공명하며 진중한 울림을 흘려냈다.
‘생각보다 빨랐네.’
한 번 걸었던 길이었고, 라스가 많은 부분을 가져갔기에 예상보다 더 빠르게 상단전의 상처를 메울 수 있었다.
‘이제 새로운 검계를…음?’
손목을 돌리며 웃고 있을 때였다. 천천히 돌아가는 불의 고리 옆으로 지금까지 못 봤던 검 몇 자루가 떠올라 장대한 궤적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설마 저거….”
라온은 그중에서 익숙한 형태의 검을 보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진천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