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84
제684화
‘진천검만이 아니야.’
라온은 진천검을 스쳐 지나가는 다른 검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다른 초월자들의 검도 있어.’
아리스 지그하르트, 검귀 렉타르 같은 초월자들의 검도 자유롭게 허공을 노니고 있었다.
‘그리고 저건….’
라스의 설중화인가?
투명한 무언가가 얼어붙은 천공을 가르는 모습도 보인다. 무형의 검으로 공간을 찢어발기는 라스의 기예 같았다.
‘이제 알겠어.’
지금 하늘에 떠 있는 저 검들은 지금까지 내가 목격했던 초월자들의 검술이다.
무력과 불의 고리의 성취가 상승했고, 성진환과 성화의 각성 효과 덕분에 아예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검술들이 내 심상 속에 떠오른 것 같았다.
라온은 천천히 돌아가는 불의 고리를 보며 옅게 미소를 그렸다.
‘라스가 봤다면 또 난리를 쳤겠지.’
이건 너무 사기이지 않느냐면서 머리를 부여잡을 라스를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좀 살펴볼까.’
지금 저 초월자들의 검술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건 무리다. 검로라도 살펴보기로 마음먹고 불의 고리를 최대한 공명시켰다.
‘진천검이 그리는 건….’
하늘인가.
글렌의 진천검은 밤보다도 어두운 하늘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보여주었던 창궁검이었다.
‘어둡다고 하셨지.’
글렌은 본인의 창궁검이 어둡다고 말하며 나 자신만의 창궁검을 펼치라고 조언해 주었었다.
작은 미소를 지으며 난해하게 움직이는 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리스의 공령검이었다.
‘아리스 님의 검은 여전히 자유롭네.’
아리스의 공령검은 가문을 박차고 나간 주인처럼 자유로운 궤적을 그렸다. 자신만의 별자리를 피워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 검은….’
렉타르 님의 사환검이네.
검귀 렉타르의 사환검은 그저 곧았다. 수많은 검술을 응집시킨 만검을 담아내고 있음에도 그 바름을 잃지 않았다.
평생 한길만을 걸어온 장인의 숨결이 느껴졌다.
‘저런 사람이 배신했다는 게 믿기질 않아.’
아니, 분명 무언가가 있어.
렉타르는 날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스스로 물러났었다. 그와 실비아 사이에는 분명 내가 모르는 관계가 있었다.
라온이 답답한 숨을 내뱉을 때 흐릿한 검 한 자루가 검귀의 사환검 옆을 치고 나왔다.
‘저건….’
창성검?
데루스 로베르트의 창성검도 내 심상의 세계를 휘돌고 있었다.
‘하긴 저 검도 보기는 했으니까.’
전생에서도 불의 고리를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데루스의 검술이 심상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다른 이들처럼 많이 보지도 못했고, 불의 고리 경지가 낮았기 때문인지 검이 안개 속에 파묻힌 것처럼 흐릿했다.
‘그래도 봐 두어야겠지.’
흐릿한 검로라고 해도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눈에 익혀두기만 해도 훗날 데루스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온이 입맛을 다시며 푸른 서리를 가르는 무형의 검을 보았다.
‘저건 딱 한 번 봤는데도 진하네.’
라스의 육체를 직접 움직이는 듯한 감각을 느꼈기 때문인지 녀석이 만든 무형의 검은 진천검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진했다.
거기다 투로가 내 검술을 닮았기에 친숙하기도 해서 보기도 편했다.
‘아낌없이 주다 못해서 이젠 자면서도 도움을 주네.’
라스가 들으면 발작을 일으킬 생각을 하면서 연한 미소를 그렸다.
‘기연이로군.’
새로운 검계를 만들기 위해서 심상에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그 이상을 얻어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3달이라는 시간.’
라온이 제천검으로 진천검의 투로를 따라가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누구보다도 효율적으로 써주지.’
* * *
스르르릉.
용이 새겨진 도끼날 위로 자갈이 스치며 섬뜩한 소리를 울렸다.
붉은 도끼 적룡부의 주인이자, 부왕이라는 이명을 지닌 로만 레이칼은 여전히 강가에 앉아 도끼의 날을 갈고 있었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더 이상 그의 주변에는 자갈이 보이지 않았다.
작은 돌조각 하나 없이 고운 모래만 가득했다. 강가를 꽉 채우고 있던 수만 개의 자갈이 모두 모래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치이이익.
로만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갈 하나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도끼의 날을 갈았다. 그의 육체와 영혼도 도끼날과 함께 갈리는 듯 오싹할 정도의 기세를 피워냈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다시 해가 떠오르고 났을 때 로만의 손에 들려 있던 자갈이 고운 모래가 되어 가라앉았다.
“이제야 완성되었군.”
로만은 붉게 번들거리는 적룡부의 날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성이라는 말은 도끼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쥐새끼처럼 숨지 말고, 나와라.”
그는 적룡부를 들어 어깨에 걸친 후 뒤를 향해 턱을 까딱였다.
스으으으.
저걸로 길을 열어주는 듯한 수풀을 밟으며 적발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베오른이었다.
“결국 모든 자갈을 갈아 없애셨군요.”
베오른은 조약돌 하나 없는 강가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도끼날을 가는 것으로 그렇게 강해질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네가 할 소리는 아니로군.”
로만이 베오른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저놈은 무얼 하길래 볼 때마다 성장하는 거지?’
베오른은 이미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상태임에도 마주칠 때마다 강해져서 나타났다.
말이 안 되는 성장세. 라온 지그하르트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놈이 이 대륙의 유일한 진짜 천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 마음에 안 드는군.’
베오른의 붉은 눈동자는 라온 지그하르트와 흡사한 색을 지녔지만, 그 결이 달랐다.
라온의 눈을 보면 열의가 타오르는 반면 베오른의 눈을 보면 속이 거북해졌으니까.
“여기는 왜 온 것이냐.”
로만이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재미있는 소식이 있어서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재미있는 소식?”
“부왕님의 생사결 상대에 관한 소식입니다.”
베오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을 말함이냐?”
“예. 그가 슈페르 왕국에서….”
“됐다.”
로만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들어보지 않아도 알겠군. 슈페르 왕국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소리나 하겠지.”
“그걸 어떻게….”
“내가 본 라온 지그하르트는 사고를 치는 놈이 아니라, 사고를 해결하는 놈이니까. 그리고….”
그가 눈동자 위로 라온을 떠올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이 로만의 상대라면 그 정도는 해주어야지. 놈을 살려둔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과연 그럴까요.”
베오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라온 지그하르트의 성장은 이치를 벗어나 있습니다. 결전 당일에는 당신과 동급이 되어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그는 시간을 너무 많이 주었다며 짧게 혀를 찼다.
“그릇이 작구나.”
로만이 베오른을 굽어보며 미간을 좁혔다.
“강한 상대와 싸울수록 나 역시 강해질 수 있다. 언제나 그랬듯 목숨을 건 싸움은 이 둔재를 더 높은 곳으로 올려줄 것이야.”
그는 스스로를 둔재라 표현하며 이를 드러냈다.
“예. 저도 당신이 이기시길 바랍니다. 만약 패한다면 부맹주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을 테니까.”
베오른은 협박이라도 하듯 서늘한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개소리 말고 꺼져라. 그딴 짓을 한다면 죽어서라도 그 새끼의 목을 베어버릴 테니까.”
로만이 당장 베오른의 목을 칠 것처럼 서늘한 살기를 피워냈다.
“그리고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도록. 또 마주친다면 죽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베오른이 옅게 웃었다.
“렉터와의 결투는 정당한 대결이었습니다.”
“네놈은 렉터를 꺾는 것으로 모자라서 녀석의 정신을 뭉개버렸다. 그것도 일부러. 한때의 상사에게 그럴 필요가 있었나?”
“남북맹은 강자존. 강자가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까?”
그가 담담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강자로서 말하마.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꺼져라.”
로만이 마지막으로 참는다는 듯 도끼 자루를 매만졌다.
“…따르겠습니다.”
베오른은 평온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숲속으로 사라졌다.
로만이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그는 렉터가 묻힌 강물을 바라보며 입술을 씹었다.
“멍청한 놈….”
* * *
스란 부족의 연무장.
“대단하지 않느냐.”
야수연맹주 야왕 오그람이 술 항아리를 통째로 잡은 채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중상급 마족을 혼자서 압도했다니! 격해무를 알려준 보람이 있어!”
그는 라온의 활약이 만족스럽다는 듯 항아리에 들어 있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마족 따위는 당연히 밟아야죠!”
가로나도 라온이 자랑스럽다는 듯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형제이지 않습니까!”
“라온의 형제인 네 녀석은 왜 발전하지 않는 것이냐.”
오그람이 술 항아리를 내려놓으며 눈매를 찌푸렸다.
“아직도 격해무의 기초만 닦고 있으니 원….”
“윽!”
가로나가 찔끔하며 철골 같은 어깨를 좁혔다.
“너, 너무 어렵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한 것 같은데 몸이 잘 안 따라줘서….”
“한심하긴.”
오그람은 한심하다고 말하면서도 가로나가 귀엽다는 듯 옅게 웃었다.
“차분히 익히거라. 사람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는 법. 지금은 네가 밀려도 나중에는 누구보다 앞에 설 수 있으니까.”
“그럼 제가 형제도 이길 수 있습니까?”
“그게 개소리인 건 너도 알지?”
“예….”
가로나가 푹 고개를 숙였다.
“라온. 그 아이는 누구와도 다르다. 내가 그 연배였어도 못 따라잡았을 것이야.”
오그람은 현 육황의 수장 중에서도 라온과 비견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코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한번 가보는 게 좋겠군.”
“예? 어딜….”
“한 달 남은 라온의 생사결 말이다. 아랫놈들 싸움에는 별 관심 없다만, 부왕과 라온의 대결은 놓치면 후회할 것 같구나.”
“저도 가고 싶습니다!”
가로나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격해무를 연속으로 운용한다면 생각해보마.”
“형제를 위해서 꼭 해내야겠군요!”
그는 라온의 생사결은 무조건 보겠다고 외치며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과연 될까?”
오그람이 픽 웃으며 새로운 술 항아리를 들려고 할 때였다.
“맹주!”
스란 부족장이 창백해진 얼굴로 달려왔다.
“뭐가 그리 급한 거냐. 좀 천천히….”
“백혈교가 치란 부족을 습격했다고 합니다!”
“뭐?”
오그람의 손에 잡혀 있던 항아리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지금 들어온 급보입니다! 백혈교주가 직접 나타나서 학살을 벌인다고 합니다!”
스란 부족장은 하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답했다.
“이런 빌어먹을….”
오그람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어깨 위로 술기운이 허옇게 뿜어져 나왔다.
“자, 잠시만!”
스란 부족장이 당장 달려 나가려던 오그람의 앞을 막아섰다.
“혼자 가시면 안 됩니다! 맹의 정예들을 기다려주십시오!”
그는 백혈교주가 직접 왔으니, 혼자선 위험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늦어!”
오그람이 이를 바득 갈았다.
“칼 왕국이 그년에게 습격당한 걸 벌써 잊은 것이냐! 지금 달려가도 구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야수 연맹과 인정해 있는 칼 왕국의 국왕과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왕국이 습격당했다는 것을 듣고 바로 달려갔지만 볼 수 있던 건 미라처럼 말라붙은 죽마고우의 시체뿐이었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한동안 스란 부족 내부에서 조용히 있었기 때문인지 백혈교는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빠르게 움직여서 그 흡혈귀 년의 목을 쳐야했다.
“그, 그러면 저희 전사와 주술사들이라도 데리고 가주십시오!”
“저도 가겠습니다!”
스란 부족장과 가로나는 함께 데려가 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난 기다리지 않는다.”
“예! 늦더라도 따라가겠습니다!”
오그람은 스란 부족장과 가로나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서 땅을 박찼다.
대지에 거대한 균열이 벌어지며 그의 육체가 갈색 섬광이 되어 뻗어나갔다.
* * *
쿠구구구구!
오그람이 멀리 보이는 치란 부족의 마을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밀림 속에 자리 잡은 마을 위로 화마가 타오른다. 부족민들의 비명 소리에 심장이 터져나갈 거처럼 빠르게 뛰었다.
“빌어먹을….”
치란은 야수연맹에서도 규모가 큰 부족인데, 내부에서 느껴지는 생기가 많지 않았다.
혈귀들이 이미 피의 축제를 벌인 것 같았다.
“후우….”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나와 스란 부족의 전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서 조심하라는 신호를 새겨놓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철퍽.
진흙을 밟은 듯 발이 푹푹 빠진다. 대지가 피와 시체로 붉게 젖어 있었다.
“크으으….”
오그람은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혀끝을 깊게 씹었다.
“왜 아직도 살아있는 놈이 있지?”
그를 발견한 혈귀가 비틀어진 미소를 그렸다.
“아프지 않게….”
퍼어어엉!
오그람에게 달려들던 혈귀가 묽은 핏물이 되어 터져나갔다.
“어?”
“저, 저건 뭐야….”
“설마….”
치란 부족민의 피를 마시던 백혈교의 교도들이 오그람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모기 년아! 당장 나와라!”
오그람은 백혈교주를 향해 포효를 터트렸다.
콰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오러가 폭발하며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던 불길이 가라앉고, 주변에 있던 혈귀들이 오공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나오지 않는다면 모조리….”
“성질이 급하네.”
혼을 빨아들이는 듯한 몽롱한 음성과 함께 흑발흑안의 여성이 걸어 나온다. 그녀가 발을 내딛은 붉은 핏물이 정화된 듯 새하얗게 녹아내렸다.
쿠우우웅!
오그람이 육중한 진각을 밟았다. 지진을 일으키며 뻗어나간 그의 주먹이 백혈교주의 머리를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