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02
제702화
파아아앙!
부왕 로만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레이블 강의 거친 물살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크윽….”
라온이 죽은 피를 토하며 가람보법을 밟았다. 오러가 바닥났고,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입었기에 태화보를 운용할 수가 없었다.
“로만!”
목까지 잠긴 로만의 어깨를 잡아서 들어 올렸다. 어찌나 피가 많이 흘렀는지 주변 강물이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로만은 이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말했지.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한 사람이라고. 놓아라. 이미 살 수 없는 상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검은 장포를 들어 올렸다. 왼쪽 가슴에 아이의 머리만 한 구멍이 뚫려 뻘건 핏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라온이 로만의 상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베었으니까. 모를 수가 없지.’
나와 로만은 마지막 격돌에 서로의 삶을 걸었다.
봐줄 수도 없고, 봐줘서도 안 되는 싸움이었기에 산 자와 죽은 자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개벽이 남긴 상처는 넝마의 성자 페드릭이 온다고 해도 치유할 수 없었다.
“아직 당신을 따르는 수하들이 있지 않습니까. 부왕으로서 마지막 말 정도는 남기십시오.”
“크흐, 갑자기 왜 존댓말이냐. 거기다 네희들은 나를 부랄이라고 불렀지 않느냐.”
로만은 소름이 돋는다면서 키득거렸다.
“오늘 당신은 존중받아야 할 선배 무인이었으니까.”
라온은 색이 옅어지는 로만의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로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는 건지 수하들을 위해 마지막 힘을 아끼는 건지 모르겠다.
“후욱….”
라온이 결국 레이블 강을 벗어나 모래밭에 로만을 내려놓았다.
중간중간 힘이 빠져서 함께 쓰러질 뻔했는데, 혀를 씹어서 겨우 버텼다.
“라온 지그하르트.”
로만이 가느다란 숨을 내뱉으며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혹시라도 부맹주가 습격해온다면 강으로 떠나라.”
“강? 왜 강입니까?”
남북맹의 주무대가 강과 산인데, 강으로 도망치라고 하니 저절로 눈썹이 내려갔다.
“혹여나 네놈이 이긴다면 부맹주가 움직일 수도 있기에 미리 전함을 부숴놓았다.”
로만이 반파된 전함과 배들을 훑으며 픽 웃었다.
“전함을?”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로만이 검붉은 불길로 전함을 부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저게 목적이었던 것 같았다.
“네놈이라면 이미 배도 구해놓았겠지. 강물만 따라가도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로만은 옅은 웃음과 함께 손을 툭 떨궜다. 목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것을 보니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다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권능이 있으니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꽤 긴 시간 요양해야 될 것이다.
“로만 님!”
“제, 제발! 눈을 뜨십시오!”
“여기서 쓰러지시면 안 됩니다! 아직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흑랑채주, 백산채주, 무랑채주가 치료사를 잡아끌고 로만에게 달려갔다.
“음….”
부맹주 헬구룸과 그를 따르는 남북맹 무인들은 로만이 마지막에 보여준 패기에 당황한 듯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대주!”
“왜 이렇게 얻어맞은 거야! 좀 피하지!”
“존잘 라온 괜찮아?”
버렌, 마르타, 루난이 다가와서 어깨와 허리를 잡아주었다.
“대, 대주님! 일단 치료부터 하시죠!”
“으으, 무슨 상처가….”
도리안과 크레인은 허리가 뜯겨나간 상흔을 보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고생했다.”
리메르가 다가와서 어깨를 잡아주었다. 그도 긴장하고 있었는지 손아귀가 땀으로 흥건했다.
“입 벌려.”
“네?”
“시간 없어! 빨리 입부터 벌려!”
입을 벌리자, 셰릴이 손에 들고 있던 붉은색 단약을 넣어주었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복부의 상처에 손을 올렸다. 심장으로 따스한 오러가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전해지더니, 고통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후우….”
라온은 숨을 몰아쉬며 억지로 눈을 들어 올렸다. 고통이 가라앉으니, 긴장이 풀리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대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머리에 열이 과하게 찼어.’
본래 계획대로라면 끝까지 냉정을 유지해서 생사결 이후에도 싸울 수 있는 전력을 남겨두었어야 했지만, 로만과 싸우면서 흥이 올라 뒤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전투를 통해 성장한다는 건. 그것도 적과 함께 강해진다는 건 깨달음 이상의 희열이었으니까.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도 공격으로 돌릴 정도였으니, 생사결 이후는 아예 생각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계획이 조금 어지러워지겠지만 준비한 것들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라온이 눈가를 가린 핏물을 손등으로 지우며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로만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즐겁지 않았냐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즐거웠습니다.’
눈을 깜빡이자, 그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그렸다.
“모두….”
라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리메르와 셰릴 그리고 광풍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부탁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야가 꺼뭇하게 물들었다.
* * *
굽이치는 레이블 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어둑한 구릉 위.
“저, 저게 말이 되는 겁니까?”
쿠바라가 라온을 내려보며 입술을 떨었다. 그녀는 드물게도 데루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무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다. 전투를 치르며 양쪽 모두가 성장하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으니까.
“…말이 안 되지.”
데루스가 떨리는 입술을 이빨로 내리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전투를 통해 성장하는 무인은 존재한다. 자신 역시 강자와의 싸움을 통해 성장해왔으니까.
‘하지만….’
저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강해지는 경우는 없었어.
라온과 로만은 각자가 지닌 무학을 성장시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무학을 진화시켰다.
라온은 부족했던 패기와 무거움을 배웠고, 로만은 가늘었던 현기에 두꺼운 뿌리를 세웠다.
두 무인 모두 전투를 통해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낸 것이다.
거기다 성장 속도 역시 이질적일 정도로 빨랐다. 라온과 로만이 동시에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느낌. 어처구니가 없어서 전투가 끝난 지금도 손끝이 떨렸다.
스으으.
데루스 로베르트가 가죽 장갑을 벗었다. 그저 라온의 전투를 보기만 했음에도 손등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저게 하루만 지나면 22살이 되는 애송이라고?’
라온 지그하르트의 위험도는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놈의 성장치는 예상을 한참 뛰어넘어 있었다.
놈이 다시 깨어난다면 최소 그랜드 마스터 상급 꼭대기 혹은 그랜드 마스터 최상급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나나 글렌도 저 정도는 아니었지.’
저건 정상적인 성장 속도가 아니다. 육황오마의 수장들 혹은 그와 비슷한 재능을 지닌 이들도 저 나이에는 마스터에 불과했으니까.
‘이대로 성장한다면…’.
데루스 로베르트가 입술을 질겅 씹었다.
‘서른 전에. 아니. 빠르면 스물다섯이 되기 전에 초월에 도달할지도….’
인간에게 불가능하다는 벽이 라온 지그하르트에 의해서 깨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라온 지그하르트가 정말 암살자 라온의 환생이라고 해도 저런 정신 나간 성장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래도 다른 무언가가 그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오기를 잘했군.’
데루스 로베르트가 피에 젖은 장갑을 불태우고서 새로운 장갑을 착용했다.
‘저놈은 살려두어서는 안 돼.’
대륙의 수많은 강자보다도 라온 제거하는 게 우선이다. 이대로 놈을 놔둔다면 자신의 계획에 가장 큰 방해를 저지를 게 분명했다.
“남북맹이 움직이지 않는군요.”
쿠바라가 부왕 로만의 곁을 떠나지 않는 채주들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감정에 매몰된 머저리들.”
데루스 로베르트가 아공간 속에서 푸른 드래곤의 투구를 꺼내 착용했다.
그의 존재감이 급격히 뒤틀린다.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듯한 죽음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 나왔다.
“…….”
쿠바라가 고개를 숙이고서 입술을 빠르게 달싹였다. 주변에 숨어 있던 그림자의 살수들이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변하는 건 없다. 오늘 가장 높이 오를 별이 지고, 곧 이어서….”
데루스가 라온과 광풍대를 굽어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가장 큰 별이 떨어질 테니까.”
* * *
“아, 안 됩니다. 이건….”
로만을 치유하던 치료사가 양손에 피를 가득 묻힌 채 입술을 떨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는 신이 와도 살릴 수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개소리 마!”
“끝까지 하라고!”
“이 새끼가! 뒈지고 싶어!”
“그만.”
채주들이 치료사에게 윽박지를 때 로만이 힘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말했지 않느냐. 이 삶에 후회는 없다고.”
로만은 채주들을 돌아보며 픽 웃었다.
“하지만 부왕님….”
“네놈들 무얼 하는 것이냐!”
부맹주 헬구름이 바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분명 지그하르트를 치라고 했을 텐데! 왜 거기에 있냔 말이다!”
그는 당장 지그하르트를 공격하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안 됩니다.”
흑랑채주가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부왕님의 명예를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이곳에서 살아돌아가야 합니다!”
백산채주와 무랑채주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켜서 길을 막았다.
“이런 멍청한 놈들!”
헬구름이 악을 지르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다시 돌아온다면 맹에 큰 위험이 된다! 그때는 나도 막는다고 장담할 수 없어!”
“그렇다고 해도 이번 생사결은 정당한 결투였습니다. 훗날 용살자에게 죽더라도 오늘은 보내주어야 합니다.”
흑랑채주는 로만의 영혼이 깃든 것처럼 단호하게 눈을 내리감았다.
“크흐흐흐….”
로만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힘들어 보이는군. 부맹주.”
그는 몸속의 피가 모두 빠져나간 듯 창백한 안색으로 입매를 비틀었다.
“너….”
헬구룸이 로만을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회광반조.’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가장 찬란하게 타오르듯 로만은 죽기 전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고 있었다.
“남북맹은 본래 신의를 알고, 힘의 무게를 아는 산과 강의 호걸들이 만들어낸 땅이다. 허나….”
로만이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네놈처럼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들이 모여들어 지금은 시궁창보다도 못한 곳이 되었지.”
그가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킨다. 그대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발로 서서 헬구룸을 굽어보았다.
치료사의 눈동자가 바들바들 떨린다.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패하지 않는다고 강한 게 아니다.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안고, 걸어갈 수 있는 게 진정한 강함이다.”
로만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라온에게 향했다. 그는 앞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는 채주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싸움을 보았느냐.”
“보, 보았습니다.”
“그럼 되었다. 너희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로만이 무너졌다. 그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헬구름과 남북맹의 무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볼 거라는 것처럼.
“이 빌어먹을 놈이!”
헬구룸이 숨이 끊어진 로만을 노려보며 피나도록 주먹을 말아쥐었다.
“마지막 기회다! 지그하르트를 쳐라.”
그는 이게 끝이라는 듯 손가락을 세웠다.
“거절하겠습니다.”
“저희가 죽더라도 물러날 수 없습니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부왕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무조건 살려서 돌려보낼 겁니다.”
흑랑채주, 백산채주, 무랑채주가 길을 막고 무기를 들었다.
“하!”
헬구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그리 나온다면 너희까지 한꺼번에 죽여주마!”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올릴 때 리메르와 셰릴이 앞으로 나섰다.
“남북맹에도 신의 있는 것들이 남아 있었네.”
셰릴이 채주들을 보며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러게 말이야. 기대하지 않아서 그런가? 가슴이 아려오네.”
리메르가 검을 뽑으며 코를 훌쩍였다.
“근데 너 말이다.”
그가 헬구룸에게 검을 겨눈 채 턱을 치켜들었다.
“이곳을 벗어나는 건 우리의 의지야. 너 따위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거지.”
리메르는 얼마든지 덤벼보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베오른.”
헬구룸이 입술을 씹으며 베오른의 이름을 불렀다.
“모조리 죽여라.”
“예.”
베오른이 고개를 숙이고 검을 뽑았다.
고오오오오!
헬구룸도 직접 손을 쓰려 드는 듯 창을 다잡았다.
“후우
흑랑채주가 입술을 꾹 씹었다.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군.’
등 뒤에 지그하르트 검사들이 있다고 해도 상대는 부맹주다. 초월자인 그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걸 떠나서 베오른도 문제야.’
베오른은 젊은 나이에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고수. 그를 막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너희는 라온 지그하르트를 데리고 빠져나가!”
흑랑채주가 뒤를 돌아보며 셰릴과 리메르에게 소리쳤다.
“강이 생로다! 여기는 우리가 막을 테니, 벗어나는 것만 생각해!”
“그건 안 되지.”
그가 물길을 말하려고 할 때였다. 우측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장난감이 제멋대로 움직이면 쓰나.”
검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푸른 드래곤 투구의 검사가 비웃음을 흘리며 흑검을 내리그었다.
“아….”
흑랑채주가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막을 수 없어.’
방비하고 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궤적이다. 벌써 숨이 끊어진 듯 목이 따끔거렸다.
‘죄송합니다. 저는 약속을 지킬 수가….’
흑랑채주가 쓰러진 로만을 보며 눈을 내리감을 때였다.
콰르르르릉!
붉은 뇌전의 벽이 솟구치며 짓쳐 들던 죽음의 기운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파지지지직!
공간을 부숴버리는 벼락 줄기 속에서 금발적안의 노검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뇌신 글렌 지그하르트. 지그하르트에 머물러 있어야 할 그가 레이블 강에서 진천검을 들어 올렸다.
“역시나 왔군.”
푸른 드래곤 투구 속에서 사이한 빛이 요동쳤다, 데루스는 글렌의 등장을 예상이라도 한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는 누구냐.”
글렌이 데루스에게 진천검을 겨누며 눈매를 좁혔다.
“천마.”
데루스가 턱을 모로 세운 채 천마의 이름을 꺼냈다.
“에덴의 천마라고 한다.”
“그게 네놈의 유언이라면….”
글렌은 데루스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 서슬 퍼런 눈빛을 번뜩였다.
“그 이름으로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