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10
제710화
“…….”
지그하르트로 복귀한 글렌은 완전히 바스러진 성벽을 바라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다시 한번 저 성벽이 무너졌다는 것에 가슴이 쓰려왔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글렌은 차가운 숨을 내뱉고서 망가진 성벽을 넘었다.
“가, 가주님!”
“가주님을 뵙습니다!”
성벽 안쪽에서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비연회주 채드와 외총관 일리운이 글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는 됐다. 상황 보고부터 하도록.”
글렌이 일리운과 채드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본관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걸었다.
“미리 대비한 덕분에 외성 피해는 크지 않습니다. 민간인 사상자도 전무합니다.”
일리운은 습격해온 적의 숫자에 비해 피해가 적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성은?”
글렌이 채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부분 방어에 성공했지만, 본관을 지키던 원로원의 피해가 큽니다. 사망자의 다수가 그쪽에 몰려 있습니다.”
그는 죄송하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로원이?”
글렌이 멀리 비치는 본관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원로원은 지그하르트 무력 단체 중에서도 가장 강한 곳이다.
천검대 이상의 무력을 지닌 원로원의 피해가 가장 크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본관에는 데니어도 있었을 텐데?”
“맞습니다. 현무전과 원로원의 절반이 남아 있었죠.”
채드는 원로원의 반은 외성에, 반은 본관에 남아 있었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로브를 두른 사도급 혈귀와 가면을 쓴 에덴의 간부들이 동시에 습격해와서 막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검은 로브….”
검은 로브라고 말하니, 백혈교 본부에 들어갔을 때 끝까지 쫓아왔던 혈귀가 떠올랐다.
사도가 아님에도 사도에 필적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놈들이 습격해온 것 같았다.
“백혈교, 에덴 그리고 암살자들까지 꼭 원수를 본 것처럼 달려들었습니다. 광풍대주가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훨씬 피해가 컸을 겁니다.”
일리운은 라온 덕분에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다면서 웃었다.
“그런데 라온 님은 어디에….”
채드는 글렌의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이블 강의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어 그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회의를 열겠다. 남아 있는 간부를 모두 소집하라.”
글렌은 의문을 가진 채드와 일리운에게 답을 해주지 않고, 회의 소집 지시만을 내렸다.
“아, 알겠습니다….”
채드는 글렌의 발밑에서 피어나는 무거운 공기를 느낀 듯 그 자리에 선 채 입술을 떨었다.
글렌은 본관에 닿을 때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가주전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우측에서 아리스가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
아리스는 옆에 있던 실비아의 손목을 잡고 글렌에게 달려왔다.
“라온은 어디 있어요?”
그녀는 라온의 패배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그렸다.
“가주님. 라온이 이겼죠?”
실비아 역시 라온을 믿고 있다는 듯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를 드러냈다.
“…….”
글렌은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는 실비아를 바라보며 입술을 씹었다.
아들만을 생각하는 실비아의 다정한 눈빛을 마주하자, 심장이 그대로 뜯겨나갈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너희도….”
손끝에서 일어나는 떨림을 내리누르며 입을 뗐다.
“알현실로 오도록.”
“네? 갑자기 왜….”
“무슨 알현실이야! 라온 어디 있냐구요!”
“…….”
글렌은 답을 해주지 않은 채 가주전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전해져오는 의문과 걱정의 시선을 무시하고, 알현실로 걸어가는데 석상처럼 서 있는 카룬이 눈에 들어왔다.
“카룬?”
“죄송합니다.”
카룬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무릎을 꿇었다.
“가주께서 내리신 명령을 어겼습니다. 어떤 벌이라도 받겠습니다.”
그는 아무런 핑계도 대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저 녀석이 별관을 습격한 2사도를 막아줬어요.”
뒤를 따라온 아리스가 카룬을 보며 손을 휘휘 저었다.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놈이 보여준 영상을 통해 알고 있던 내용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카룬. 너도 들어오거라.”
글렌이 무릎 꿇은 카룬에게 턱짓을 하고서 직접 알현실의 문을 열었다.
원래 카룬을 칭찬해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라온….’
그는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한 채 실종되어버린 손자를 생각하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 * *
한밤 중에 지그하르트 간부들이 모두 알현실에 모였다.
현재 이곳에 없는 사람은 라온과 그를 찾기 위해서 레이블 강에 남은 천검대주, 광풍대주, 철전대주 뿐이었다.
“저 돼지도 왔으니까. 이제 말 좀 해보세요!”
아리스가 외부 정찰에서 복귀하자마자, 불려온 발데르를 가리키며 미간을 구겼다.
“대체 무슨 일인데, 사정도 말 안 하고 다 부른 건데요!”
그녀는 글렌에게서 피어나는 무거운 공기를 느끼고,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으음….”
실비아 역시 불길한 생각을 지우지 못한 듯 손을 부르르 떨었다.
“라온 놈이 졌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발데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라온은 이겼다.”
글렌이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가 뜬 후 입술을 달싹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아리스가 일그러진 표정을 풀며 손뼉을 쳤다.
“드디어 이모 소리 듣겠네! 그래서 라온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성자님이 부상 치료 중이죠?”
그녀는 라온이 부상을 입어서 복귀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글렌은 아리스가 아니라,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불안함에 떠는 막내딸을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문에 복귀한 이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로엔이 앞으로 나섰다.
“가주님의 말씀대로 라온 도련님은 부왕 로만과의 생사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부왕이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 이후에….”
로엔은 지그하르트의 간부들에게 생사결 이후에 일어난 일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아….”
“시, 실종이라고?”
“잠깐만 검에 찔린 상태에서 강환을 직격당했다면….”
“빌어먹을!”
오마가 움직일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라온의 실종은 상상하지 못한 바였기에 간부들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아아….”
실비아가 백지장처럼 창백한 안색으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전신의 힘이 빠져버린 듯 다리를 떨었다.
콰아아아앙!
아리스가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뒤에 세워진 기둥을 후려쳤다. 두터운 기둥이 하얀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이 비겁한 새끼들이!”
그녀는 당장 남북맹에 쳐들어갈 것처럼 사나운 기파를 일으켰다.
“지그하르트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카룬이 피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그는 라온의 죽음에 기뻐하기보다, 지그하르트가 무시당한 것에 짙은 분노를 드러냈다.
“당장 갑시다!”
발데르가 발을 구르며 앞으로 나왔다.
“그 도적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지 않고서는 잠도 못 잘 것 같으니까!”
그도 참을 수가 없다고 말하며 건조한 살기를 일으켰다.
“남북맹….”
“근본 없는 새끼들이 감히!”
“누가 도적들 아니랄까 봐 추잡한 짓만 골라서 하는군.”
공검대주 세레나를 비롯한 간부들도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검사들에게서 피어난 분노의 기파가 알현실 전체를 휘감으며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라앉혔다.
“아버지. 뭐해요!”
아리스의 눈동자가 탁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그 새끼들 죽이러 가야지! 그러려고 회의 연 거 아니에요?”
그녀는 당장 움직이자고 말하며 검병에 손을 올렸다.
“안 됩니다!”
데니어가 앞으로 오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로 지그하르트가 입은 피해도 큽니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일단 정비를 마치고 생각해보는 게….”
“어느 세월에!”
아리스가 데니어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이번 일로 피해를 입은 건 우리만이 아니야! 남북맹, 에덴, 백혈교 모두 정상이 아니라고! 지금 안 치면 언제 쳐!”
그녀는 지금이 가장 큰 기회라고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거기다 우리가 큰 피해를 입은 건 네 탓이기도 하잖아! 원로원 영감들이 왜 그렇게 많이 죽은 건데!”
“그건…죄송합니다.”
데니어가 말을 멈추고 낮은 숨을 내쉬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혈귀들의 무력이 전부 마스터 이상이라, 현무전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다 보니, 원로원을 돕는 게 늦어졌습니다.”
그는 면목 없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다만 이번 일은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피해만 커질 겁니다.”
데니어는 아리스의 살기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본인의 의견을 강조했다.
“저 말도 맞긴 한데….”
“또 오마가 끼어들면 문제가 커지니까.”
“하아, 복잡하군.”
몇몇 간부들도 데니어의 의견에 동조하며 턱을 주억거렸다.
“확실히 깊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다.”
글렌이 데니어와 시선을 마주하며 옥좌의 팔걸이에 손을 내렸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데니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아리스는 글렌의 멱살을 잡을 것처럼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아직 글렌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 생사결 전이었다면 저렇게 말했겠지.”
“가, 가주님?”
“이번만큼은 나도 참을 수가 없구나.”
글렌이 몸을 일으키자, 금빛 옥좌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고오오오오!
그의 발밑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장중한 분노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아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아….”
실비아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붉은 카펫을 적셨다.
“비연회주. 남북맹에 선전포고를 하도록.”
글렌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 채드에게 손짓했다.
“지그하르트가 남북맹을 멸망시켜주겠다고.”
그는 다른 세력이 끼어들 수 없게 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힘줄이 돋아나도록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알겠습니다.”
채드가 믿어달라는 듯 가슴을 치고서 알현실을 벗어났다.
“저도 가도 되겠습니까?”
카룬이 손을 들어 올렸다.
“징계를 얼마든지 늘려도 좋으니, 쓰레기들을 제 손으로 치우고 싶습니다.”
그는 평생 지그하르트 안에서 나올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저도….”
실비아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저도 데리고 가주세요.”
그녀의 눈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았다. 붉은 눈동자를 채우는 건 슬픔이 아니라, 짙은 원한의 불길이었다.
글렌은 실비아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절망과 분노를 동시에 드러내는 막내딸을 막을 자격이 없었다.
“…그리 하거라.”
* * *
다음날.
“매, 맹주님!”
옅은 조명이 내려오는 적색 대전 안으로 검은 안경을 쓴 중년인이 달려왔다.
그는 급히 뛰다가 넘어졌지만, 무릎으로 기어서 단상 앞에 섰다.
“매, 맹주님! 큰 문제가….”
“백상채주. 손님 앞이다. 자중하도록.”
붉은 단상 위에 걸터앉아서 담뱃대를 들어 올리던 남북맹주 드라노스가 가볍게 손을 저었다.
“흐억!”
백상채주라 불린 중년인의 시선이 드라노스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미청년 가면을 쓰고 있는 타천을 보고서 헛바람을 삼켰다.
“죄, 죄송합니다. 한시가 급한 일이라….”
“무슨 일인데?”
드라노스가 말을 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지그하르트가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바로 내일 쳐들어오겠다고 합니다!”
백상채주는 지금 당장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입술을 떨었다.
“소식이 늦네.”
드라노스가 픽 웃으며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이 친구가 먼저 말해줬거든.”
그는 타천을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전쟁 선포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군. 그 용머리 말대로 라온 지그하르트를 지극히 아끼고 있었던 모양이야.”
드라노스는 분노한 글렌의 눈빛을 떠올리며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지원을 해줄 거지? 쌍두귀나 절혼검 같은 애들도 움직여줬으면 좋겠는데?”
“그 둘은 천마에 붙어 있습니다. 제 말을 듣는다는 보장이 없죠. 다만 그런 것을 떠나서….”
타천이 드라노스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번에는 도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드라노스가 미간을 구긴 채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지그하르트는 라온 지그하르트의 죽음에 분노한 많은 집단의 도움을 거절하고, 오직 자신들의 이름만으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타천이 상처 하나 없는 손을 들어 올렸다.
“지그하르트가 다른 육황의 지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저희가 끼어드는 건 오마의 위신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실 더 큰 문제는 다른 육황입니다.”
그의 손가락 위로 푸른빛을 띤 대륙 전도가 떠올랐다.
“오마가 움직이면 오웬 왕국과 발카르도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하더군요. 체임버와 레크로스가 육황의 이름으로 선언했습니다.”
타천은 숲으로 가득 찬 곳을 가리키며 입매를 비틀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엘프와도 친분이 있으니, 세이피아까지 움직일지 모릅니다.”
“으….”
“성검련과 흑탑은 이번 일에 손을 떼겠다고 했기에 전력이든, 명분이든 저희 쪽이 많이 밀리는 상황입니다.”
그는 남북맹과 지그하르트 둘이 전쟁을 치르는 게 좋을 거라며 대륙 전도를 지워버렸다.
“그래도 승산이 없는 건 아닙니다. 글렌 지그하르트가 내상을 입었으니, 이전처럼 무적에 가까운 무력을 보이지는 못할 겁니다.”
“글렌이 내상을 입고, 남북맹이 천혜의 요새라고 해도 지그하르트를 막아내는 건 무리다!”
드라노스는 남북맹 만으로 지그하르트를 막을 수 없다며 담뱃대를 던져버렸다.
“그래요. 이기기는 힘들 겁니다. 다만….”
타천이 투명한 눈동자를 굴렸다.
“우리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자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그놈은 연락도 안 되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기를 읽어보니, 조만간 가장 큰 별이 추락하는 게 그려지더군요.”
그는 천장 위로 비치는 별들을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드라노스라는 이름 아래 글렌 지그하르트라는 거대한 별이 가라앉게 될 겁니다.”
“내 이름 아래….”
타천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은 드라노스의 눈동자 위로 욕망의 색이 떠올랐다.
* * *
레이블 강 상류.
수십 척의 전함이 포대를 앞에 세운 채 강물을 나아간다.
가장 앞에서 파도를 헤치는 남북맹 제1 전함 청랑의 뱃머리 위로 남북맹주 드라노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대편 강가에서는 열 척의 전함과 한 척의 해적선이 떠올랐다. 해적선의 갑판 위에 선 글렌 지그하르트가 진천검 위로 손을 얹었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드라노스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말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선을 넘은 건 네놈들이다.”
글렌이 진천검을 뽑아 들며 열기가 흐르는 숨을 내뱉었다.
“남북맹이라는 존재 자체를 지워주마.”
“잘못 걸렸네. 아주 더럽게 속았어.”
드라노스가 미간을 구기며 손을 뻗었다. 강물이 모여들어 만들어진 고대의 무구 해령창이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고오오오오!
글렌이 진천검을 내리그었다. 고요하게 가라앉는 하나의 선이 하늘과 강을 갈랐다.
단 하나의 검격으로 남북맹의 전함을 모조리 찢어버리려는 듯한 장대한 검격이었다.
치이이이잉!
드라노스가 창대의 끝을 잡고, 해령창을 쳐 올렸다. 붓으로 먹물을 끌어내는 듯 창극에 어린 기운이 거대한 해일을 불러왔다.
콰아아아아아앙!
글렌의 검격과 드라노스의 창격이 맞부딪치며 강과 대지가 뒤집힌 채 떠올랐다.
자연이 분노한 듯 사방에서 오러의 폭풍이 몰아쳤다.
“지그하르트의 위선자들을 죽여라!”
“접근할 수 없게 포와 활을 쏴!”
“이 강과 산의 주인은 남북맹이다!”
남북맹 무인들은 지그하르트 검사들을 향해 포와 화살, 작살을 날렸다.
“근본 없는 도적놈들을 죽여라!”
“절대 물러나지 마!”
“광풍대주의 원수를 갚아라!”
지그하르트 검사들은 포와 화살이 날아 와도 신경 쓰지 않고 돌진만을 강행했다. 놈들에게 유리한 수상 전투보다 백병전을 치르려는 의도였다.
검사들이 갑판과 강물을 박차고 남북맹의 전함으로 움직이려고 할 때 강물을 스치는 금빛 섬광이 돋아났다.
후우우웅!
바람조차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나아간 금발의 여검사가 가장 좌측에 있던 전함에 올라섰다.
촤아아아악!
그녀의 검에서 타오르는 바다색 오러가 파도처럼 퍼져나가더니, 갑판에 선 수적 십수 명의 목이 동시에 갈라버렸다.
“비켜라! 내가 처리한다!”
전함의 주인 강부채주 루칸이 도끼를 말아 쥐고 여검사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도끼 위로 시뻘건 강기가 용암처럼 솟구쳤다.
터엉!
여검사는 물러서지 않고, 강기의 불길 속으로 파고들어 검을 내질렀다. 검극에 깃든 강기가 강환으로 응집되더니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아앙!
전함의 갑판이 모조리 무너지고, 그 위에 타고 있던 수적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쿠구구구!
전함 자체도 반으로 갈라져 침몰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는 거냐….”
금발의 여검사, 실비아 지그하르트가 서늘한 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돌렸다.
“베오른!”
원수를 찾는 그녀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