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14
제714화
“음….”
라온은 광활한 레이블 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람이의 안내를 받아 지그하르트와 남북맹이 싸운다는 전장에 도착했는데, 보이는 건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뿐이었다.
“왜, 왜 없지?”
가람이도 당황한 듯 강을 이리저리 살피며 눈을 끔벅였다.
“분명 여기서 계속 싸웠는데? 진짜야!”
그는 직접 보았다고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알아. 여기서 싸운 건 맞아.”
라온이 강물 위에 떠 있는 나무판자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판자들은 전함의 갑판 조각이었기에 이곳에서 큰 전투가 일어났던 건 분명했다.
“나 물어보고 올게!”
가람이는 이곳에 사는 물고기들에게 정보를 얻어오겠다며 강물 속으로 내려갔다.
라온은 강 깊숙한 곳으로 잠수하는 가람이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지그하르트가 밀고 나간 건 확실한데.’
지그하르트의 전력은 육황오마 중에서도 상위에 위치해있다.
남북맹이 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살린다고 해도 정면에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다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데루스 로베르트는 이 불리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어디로 간 거지?’
기감을 펼쳐보았지만, 꽤 멀리 떨어졌는지 자그마한 마나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라스.’
라온이 강을 살피는 라스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어디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지 알겠어?’
-아주 희미하지만, 저 끝에서 느껴지고 있느니라.
라스가 동그란 손을 들어 레이블 강의 상류 쪽을 가리켰다.
녀석은 상황의 심각함을 알고 있는 듯 평소와 달리 바로 위치를 알려주었다.
‘꽤 먼데….’
라스가 아주 희미하다고 표현할 정도면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전쟁이 이어지는 게 분명했다.
위치를 보면 남북맹의 본부인 것 같았다.
‘바로 출발할 준비를 해야겠네.’
가람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감각을 가라앉힐 때 우측 강가에서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려보니, 수적 복장을 한 장발의 중년인이 자갈밭에서 몸을 뒤집고 있었다.
터어엉.
라온은 강물을 부드럽게 밀어내서 수적에게 다가갔다.
“흑랑채주?”
자갈밭에 쓰러진 중년인은 부왕 로만과의 생사결에서 보았던 흑랑채주였다.
그는 가슴에 심한 상처를 입어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라, 라온 지그하르트인가?”
흑랑채주가 눈동자를 들어 올리며 비린내 나는 숨결을 내뱉었다.
“살아 있었구나. 다행. 저, 정말 다행이다….”
그는 뚝뚝 끊어지는 음성을 흘리며 미소를 그렸다.
“내가 살아 있는 게 다행이라고?”
흑랑채주에게 저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에 눈썹이 저절로 내려갔다.
“부왕 님은 네가 살아서 돌아가기를 바라셨다. 죽었다고 해서 속이 허했는데, 이제야 그 공허함이 메워진 기분이다.”
그는 본인 가슴의 상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웃었다.
“내가 쓰러진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시, 시간이 없으니, 간략하게만 말해주마. 네가 죽었다고 알려진 이후 지그하르트가 남북맹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 이후에….”
그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간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설명해주었다.
“…리쿠아스의 보자기가 연결된 곳이 우리 본부이니, 지금쯤이면 남북맹 본부에서 전쟁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푸른 드래곤의 투구를 쓴 놈은 어디에 있지?”
“네가 죽은 이후에 사라졌다. 아예 연락이 끊어져서 맹주께서도 분노하셨다.”
흑랑채주는 타천과 달리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랬군.”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모든 상황을 알겠어.’
망혼귀가 도망칠까 봐 정보를 받지 않고 죽인 게 조금 아쉬웠는데, 흑랑채주 덕분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전쟁에 참여한 세력은 지그하르트와 남북맹뿐이고, 지금은 지그하르트가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태였다.
-에헤헤헤헤!
라스가 그럴 줄 알았다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왕의 수하들이 있는데, 이기는 게 당연한 일이니라!
녀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과 반대로 거만한 미소를 그렸다.
‘처음부터 전쟁은 걱정하지 않았어. 진짜 문제는….’
데루스 로베르트니까.
푸른 드래곤 투구의 검사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흑랑채주의 증언 덕분에 데루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확실하게 깨달았다.
‘놈은 무조건 가주님을 노릴 거야.’
데루스는 남북맹주조차 속인 채 전쟁이 한창일 때 등 뒤에서 글렌을 찌를 게 분명했다.
‘그래야 놈이 원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테니까.’
데루스보다 확실하게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글렌 지그하르트뿐이다.
가주님만 사라진다면 놈의 세상이나 다름없기에 어떤 계략을 세웠는지 뻔히 보였다.
‘아무래도….’
라온이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계획을 바꿔야겠어.’
-무슨 계획을 바꾸겠다는 거냐?
‘처음에는 빠르게 전장에 참여해서 이 전쟁을 끝내려고 했는데, 더 앞을 봐야 할 것 같아.’
내가 전장에 나타난다면 데루스 로베르트는 글렌을 노린다는 계획을 중지하고, 로베르트 가문으로 돌아가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절대 아니다.
‘놈의 계획을 역으로 이용해서 가면을 벗겨야 해.’
데루스는 직접 글렌을 노리려고 할 테니, 이번 전쟁은 놈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라온 지그하르트.”
흑랑채주가 입술을 떨며 힘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살아남아라. 너는 부왕께서 이 세상에 살아있었다는 증거니까….”
그는 대륙 최강의 무인이 되라는 말을 남기고 손을 떨궜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더는 숨소리가 나지 않았다.
“…….”
라온은 조심스럽게 흑랑채주의 눈을 감겨주고서 몸을 일으켰다.
“라온! 어디로 갔는지 찾았어!”
가람이가 강가로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가람아.”
라온이 가람이에게 다가가서 손을 뻗었다.
“정말 위험할지도 모르는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어?”
“응!”
가람이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라온의 손을 잡았다.
“친구니까!”
* * *
쿠구구구구!
글렌이 베어낸 장벽의 틈을 향해 지그하르트 전함이 강물을 가르고 나아갔다.
물론 남북맹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물의 성벽 위에서 마법포를 쏘아내며 지그하르트의 접근을 막았다.
치이이잉!
수십 발의 마법포가 전함을 향해 떨어지려고 할 때 지그하르트의 간부들이 움직였다.
촤아아아악!
아리스, 카룬, 셰릴, 리메르가 그어 올린 참격이 쇄도해오는 포탄을 갈랐다.
쿠와아아아앙!
허공에서 강대한 폭발이 터지며 거센 파도가 솟구쳤지만, 지그하르트의 전함은 멈추지 않았다.
마법포의 뒤를 이어서 쏟아져 내리는 화살비 앞으로는 광풍대의 함선이 나섰다.
화아아아아!
진법을 이룬 검사들이 펼쳐낸 광풍류가 화살을 밀어내는 바람의 장벽을 세웠다.
바람 앞에 힘을 잃은 화살들이 힘없이 강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 뒤로도 마법포와 화살이 비처럼 내려왔지만, 셰릴과 리메르의 검격 앞에서 모두 사그라들었다.
“계속 가라.”
“절대 멈추지 마!”
리메르와 셰릴의 지시에 광풍대의 함선은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가장 먼저 남북맹의 성벽을 넘었다.
“네!”
도리안도 전쟁의 공포를 이겨내며 조종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쿠구구구구!
광풍대의 함선은 결국 항구를 부수고 누구보다 먼저 남북맹 본단을 파고들었다.
치이이이잉!
셰릴과 트레빈, 리메르가 항구를 밟고 나아가며 칼날을 세웠다.
촤아아아악!
세 사람이 일으킨 사나운 참격에 항구 앞에서 방어 태세를 갖추던 남북맹 무인들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천검대!”
“철전대! 바로 진입한다!”
“모조리 쓸어버려!”
셰릴과 트레빈, 리메르의 지시에 함선에 타고 있던 검사들이 모두 항구 위로 올라왔다.
“개진!”
버렌이 남북맹 본부로 내달리자, 광풍대가 뒤로 따라붙으며 광풍진을 운용했다.
광풍류의 서늘한 바람이 그들을 등을 밀어주었다.
“막아!”
“이 뒤로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남북맹 무인들도 오러를 전력으로 끌어내며 필사적으로 길을 막았다.
“이 씨발 새끼들아!”
마르타가 악을 지르며 달려 나가 검을 내리찍었다.
광폭화로 인해 두 배 이상 부풀어 오른 타이탄의 오러가 항구의 축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와아아아앙!
항구의 외곽이 무너지고, 그 위에 서 있던 남북맹 무인들이 핏물을 토하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길을 뚫어!”
버렌은 마르타 이상의 분노를 두른 채 삭풍을 일으켰다. 그가 펼쳐낸 차디찬 바람이 안쪽에서 지원을 나오는 무인들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
루난의 보라빛 눈동자 위로 오싹할 정도의 살의를 일으켰다. 그녀가 설화를 그어 내리는 투로 위로 은빛 서리의 꽃잎이 흩날렸다.
촤아아악!
냉기의 꽃이 스쳐 지나간 수적들의 목에서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그대로 뚝 떨어졌다.
다만 핏물은 뿜어지지 않았다. 상처 자체가 시퍼런 서리로 얼어붙어 있었다.
콰르르르릉!
마크 괴튼의 도가 뇌성을 일으키며 건물을 무너뜨렸고, 유아의 목소리에 충격을 받은 산적들은 무기를 내려놓은 채 머리를 잡고 비명을 질렀다.
“비켜라.”
“한심한 것들!”
남북맹의 산채 중에서도 강자로 보이는 채주들이 수하들을 데리고 앞으로 나섰다.
“애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다 쓸어버려!”
하지만 광풍대 검사들은 강한 상대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두 배가 넘는 숫자도, 더 강한 무력을 지닌 채주도 신경 쓰지 않고 끝없이 검을 휘둘렀다.
광풍대는 분노와 슬픔, 절망이라는 감정을 무력으로 전환하여 남북맹의 수적들을 압도해나갔다.
지그하르트 최강이라는 천검대보다도 더 앞에서 길을 뚫을 정도였다.
“끝까지 가!”
리메르가 악귀 같은 표정을 드러내며 수적들의 목을 갈랐다. 그는 피에 젖어 더 짙어진 적발을 넘기며 포효를 내질렀다.
“이곳에서 라온의 원수를 갚는다!”
원수라는 말을 들은 광풍대 검사들의 눈동자 위로 건조한 살의가 돋아났다.
고오오오오!
광풍대 검사들이 더욱 날카로운 검격을 펼치며 남북맹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남북맹주 드라노스가 일어섰다. 그는 광풍대를 노리고 해령창을 찍어눌렀다.
쿠와아아아아!
창날에서 솟구친 수룡이 광풍대를 집어삼키려고 할 때 붉은 벼락의 쏟아지며 용의 목을 꺾어버렸다.
“드라노스. 나를 보아라.”
글렌이 드라노스를 굽어보며 진천검을 사선으로 그어 내렸다.
남아 있던 물의 장벽이 반으로 뜯겨나가며 남북맹 본관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쿠구구구구!
지그하르트 검사들이 넓게 퍼지며 남북맹 본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무력에서 차이가 났기에 남북맹의 무인들은 순식간에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다만 남북맹 우측 건물에서 노회한 무인들이 튀어나와 길을 막기 시작했다. 남북맹의 원로원이었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하나 같이 강자였기에 지그하르트의 검사들의 전진이 천천히 멎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드라노스가 입술을 씹으며 잘려 나간 성벽 위에 섰다.
“에덴이랑, 그림자도 관여했는데, 왜 우리한테만 지랄이냐!”
그는 최후의 보루인 원로원으로도 검사들을 막지 못하는 것을 보며 진심 어린 짜증을 드러냈다.
“걱정하지 마라.”
글렌이 드라노스를 향해 다가가며 고개를 저었다.
“에덴도, 그림자도, 백혈교도 차례대로 지워줄 테니까.”
그는 무엇 하나 놓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진천검을 세웠다.
쿠구구구구구!
글렌의 전신으로 붉은 뇌전이 줄기줄기 타오른다. 하늘과 땅 그리고 강마저 뒤덮은 벼락 줄기들이 다시 그의 육체로 스며들며 대륙 전체를 뒤흔들 듯한 장엄한 기파를 뿜어냈다.
“네놈이 시작이다.”
* * *
백경 본부. 희극제의 집무실.
백묘대의 대주 에리오가 희극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전장이 남북맹 본부로 옮겨졌습니다. 글렌 지그하르트와 드라노스가 정면에서 부딪쳤으니, 곧 끝이 날 듯합니다.”
그녀는 현재 진행 중인 지그하르트와 남북맹의 전황을 보고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세력들은?”
희극제 아리엘이 손가락을 펼치며 턱을 까딱였다.
“아직 반응 없습니다. 흑탑과 성검련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있고, 백혈교와 에덴도 움직일 기색이 없습니다. 그림자는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졌더군요. 이미 끝난 싸움입니다.”
에리오는 남북맹의 패배로 전쟁이 끝날 것 같다며 입맛을 다셨다.
“수고했어. 다른 일이 벌어지면 바로 알려줘.”
“예!”
그녀가 손을 젓자, 에리오가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섰다.
“남북맹의 패배로 끝이라….”
아리엘이 손끝을 매만지다가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허벅지에 끼워둔 예언서, 일월성서를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확실하게 확인해야 해.’
에리오의 말대로 지그하르트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예전에 찾아왔던 남자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스르륵.
아리엘이 천천히 책자를 펼쳤다. 노랫말 같은 글귀들이 적혀 있는 페이지를 넘기던 그녀의 손이 피에 젖어 찢어진 장에서 멈췄다.
‘라온 지그하르트.’
이 붉은 페이지는 라온의 천기를 읽을 때 튀어나왔던 악마 같은 기록이다. 지금 봐도 소름이 끼쳤다.
‘이놈이 죽었다고?’
솔직히 믿기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걸 보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아깝군.’
라온에게 당한 게 많았지만, 그를 이용할 구석이 많았기에 조금은 안타까웠다.
“후우.”
아리엘은 낮은 숨을 내쉬고서 텅 비어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그녀가 손가락을 깨물어서 일월성서 위에 핏물을 떨어뜨렸다.
뚜욱.
아리엘의 피부만큼이나, 새하얀 종이 위로 은은한 기류가 피어난다. 끈적한 핏방울이 백지를 천천히 붉은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그녀는 수많은 생각을 지우고, 오직 글렌 지그하르트와 드라노스, 그리고 두 세력의 전장만을 떠올렸다.
하늘의 문을 두드리는 아리엘의 영혼과 붉게 젖어가는 일월성서가 공명하며 새빨간 핏물이 스스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리엘은 심상의 세계에서 그렸던 전쟁의 모습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눈을 떴다. 책자를 확인한 그녀의 눈동자 깊게 가라앉았다.
[벼락의 신이 강물에 잠들고, 불타는 검이 수십 조각으로 깨져나간다. 북방의 바람은 여전히 차갑지만, 그 서늘함을 견디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라.]아리엘은 핏물로 새겨진 노랫말을 중얼거리며 의자 깊숙하게 등을 기댔다.
“북멸왕이 죽고, 지그하르트가 무너지는군.”
그녀가 먹구름이 차오르는 하늘을 올려보며 눈을 내리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