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24
제724화
“옷?”
라온은 고급스러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옷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은색과 황금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예복이었는데, 화려함 속에서 고풍스러운 우아함이 느껴졌다.
‘그럼 어머니 거는….’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실비아의 상자에는 하얀색 바탕에 금색 수실이 유려하게 이어진 드레스가 들어 있었다.
“아….”
그녀도 당황스러운 듯 멍한 눈으로 드레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라이!
라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동그란 주먹을 휘저었다.
-다 못 먹는 거잖느냐! 하긴 그 맛알못 영감탱이가 보내봐야 나딘빵이겠지!
녀석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말하고서 콧방귀를 뀌었다.
“흠….”
라스의 조잘거림을 무시하고, 예복과 드레스를 다시 살펴보았다.
‘왜 옷을 주신 거지?’
글렌이 생사결과 전쟁에 대한 보상을 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아티팩트도 아닌 평범한 옷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로엔 님.”
라온이 예복이 들어 있는 상자를 아래로 내리면서 로엔을 불렀다.
“정말 가주님이 이 옷들을 보내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열리는 연회에 그 예복과 드레스를 입고 참여하기를 원하시더군요.”
로엔은 어디서 거짓을 고하겠냐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
실비아가 드레스 밑단을 보고서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밑단에는 지그하르트의 문양인 불타는 검이 그려져 있었는데, 금패에 새겨진 문양보다도 찬란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내 것도 마찬가지야.’
자신의 예복 가슴에도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너무 생생하여 정말 검이 불길에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런 문양까지 박아놓는다는 건….’
라온이 지그하르트의 문양을 매만지며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 어머니를 직계에 올려주겠다는 뜻인가?’
아니, 맞아. 그것밖에 없어.
갑자기 화려한 예복과 드레스를 선물하고, 연회에 참여하라는 이유는 직계 승급밖에 없어 보였다.
특히 예복과 드레스에 새겨진 지그하르트의 문양이 그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라, 라온. 이건….”
실비아가 드레스를 소중하게 끌어안은 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도 글렌이 준 드레스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것 같았다.
“맞는 것 같아요.”
라온이 실비아와 눈을 마주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순간부터 끊어졌지만, 본래 지그하르트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의 첫 옷을 만들어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두 분의 예복과 드레스는 영루잠이라는 영물의 실로 만들었습니다.”
로엔은 글렌이 직접 영루잠을 잡아 왔다고 말하며 작은 미소를 그렸다. 그의 말은 글렌이 나와 실비아를 직계로 인정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아….”
실비아는 어느 순간부터 끊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숙였다. 당연하게도 첫 옷을 받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 연회에서 뵙겠습니다.”
로엔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후 가주전으로 향했다.
“알겠습니다.”
라온은 로엔에게 마주 인사를 하고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준비할 게 많아 보이네요. 돌아가요.”
“응.”
실비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입술을 떨었다. 요즘 그녀에게 ‘적안의 마검’이라는 이명이 붙었던데 어딜 봐서 마검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헬렌이랑 다른 시녀들도 데리고 가죠.”
“그래….”
라온은 떨리는 실비아의 손을 꼭 잡아준 채 별관으로 향했다.
* * *
“주고 왔나.”
글렌은 알현실에 들어오는 로엔을 향해 턱을 까딱였다.
“예.”
로엔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과 실비아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던가?”
“두 분 다 눈치가 빠르시니, 가주님의 뜻을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그는 라온과 실비아 모두 옷을 준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하며 단상 쪽으로 다가갔다.
“엥? 그럴 리가 없는데?”
리메르가 로엔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실비아는 몰라도, 라온 녀석은 눈치로 밥 말아먹은 놈이라구요! 넌씨눈 그 자체!”
그는 라온만큼 눈치 없는 놈은 본 적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는 하지.”
셰릴이 동의한다는 듯 턱을 주억였다.
“그 녀석 때문에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도 라온은 눈치가 더럽게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시죠.”
로엔이 참 의외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다.
“맞아요. 라온 녀석 전투에서는 저보다도 눈치가 빠르죠. 하지만….”
리메르가 픽 웃으며 손을 까딱였다.
“이상하게도 인간 관계에서는 거리감 자체를 못 잡더라구요.”
그가 단상 위를 올려보며 길게 혀를 찼다.
“누구 때문에 어릴 때부터 별관에만 박혀 있어서 그럴지도….”
“흠….”
“음….”
셰릴과 로엔도 리메르의 시선을 따라 글렌에게 눈을 흘겼다.
“커험!”
글렌이 헛기침을 내뱉고서 로엔에게 빠르게 손짓했다.
“옷은 좋아하던가?”
“예. 두 분 다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로엔이 기쁘게 받아갔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마음에 들어 해야지! 누가 만든 건데!”
지그하르트의 원로원주이자, 오화단의 단주였던 시란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가주님도 너무하세요. 원로원주 자리 좀 채워달라고 부탁할 때는 언제고, 다시 오화단으로 돌아가서 사흘 만에 최고의 옷을 만들라니 어이가 없어서.”
시란은 고아한 음성을 흘리며 검은 나비가 새겨진 부채로 입을 가렸다.
“저도 일정이라는 게 있는데 너무 막무가내였어요.”
“크흠, 미안하오. 하지만 현 오화단주보다 원로원주의 실력이 훨씬 더 좋지 않소.”
글렌은 갑작스럽게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두 아이에게는 최고의 옷을 주고 싶었소.”
“하긴 부모 마음이 다 똑같죠.”
시란은 조금 기분이 풀린 듯 옅은 미소를 그렸다.
“다만 제가 라온과 실비아의 예복을 만든 건 가주님 때문만은 아니에요. 두 아이가 더 잘되기를 바라며 실을 엮은 거니까.”
그녀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일만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며 웃었다.
“그럼 이만 가서 쉬는 게….”
“절대 안 되죠!”
시란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그하르트에서 얼굴로 제일가는 라온과 실비아가 제 걸작을 입었는데, 그걸 안 보고 어딜 가요!”
그녀는 쓰러져도 연회장에서 쓰러지겠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크흠! 뭐, 그렇지. 그 아이들이 조금 이쁘고 잘생기기는 했지.”
글렌은 라온과 실비아가 외모 칭찬을 들은 게 기쁘다는 듯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메르와 셰릴, 로엔은 진심 어린 미소를 드러낸 글렌을 보며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 * *
“음?”
라온은 로엔에게 받은 예복을 입고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예복치고는 움직이기 편하네.’
본래 예복은 공작새의 깃털처럼 화려함에 중점을 두어서 착용감이 불편하기 마련인데, 이 옷은 수련복처럼 편히 움직일 수 있었다.
화려함은 제일인데, 편하다니 신기한 옷이었다.
-신기하면 뭐하느냐! 맛이 없는데!
라스는 옷 따위는 필요 없다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옷이 있어야 연회에 가서 맛난 것들을 먹을 수 있는데?’
-오오! 그럼 필수품이로구나!
녀석을 도리안이 된 듯 필수품이라고 연달아 중얼거렸다.
‘단순하다니까.’
라온이 피식 웃으며 방을 나왔다.
“와아….”
“도, 도련님. 승천하셔도 되겠는데요?”
“옷이 얼굴을 죽이지도 않고, 얼굴이 옷을 죽이지도 않아요. 너무 잘 어울려요!”
“존잘 라온….”
사복을 입고 있는 시녀들이 눈부시다고 말하며 환히 웃었다. 엔시아 때문에 그녀들도 존잘이라는 단어가 입에 박혀 있었다.
“저기 도련님….”
헬렌이 멍하니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정말 저희도 가도 되나요?”
그녀는 연회에 참여하는 게 걱정된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가족이니까.”
라온이 헬렌의 떨리는 시선을 마주하며 웃었다.
시녀들은 지금까지 함께 고생한 가족들이었으니, 실비아가 직계에 오르는 순간도 함께하고 싶었다.
“도련님….”
헬렌과 시녀들이 눈시울을 붉힌 채 입술을 꾹 내리눌렀다.
“울지마. 화장 다 지워져.”
실비아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로엔에게 받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화려한 드레스보다 실비아의 얼굴에 더 시선이 갔다.
“마님!”
“정말 아름다우세요!”
“드레스가 얼굴을 못 따라가요!”
“존예! 존예!”
시녀들이 실비아의 옆으로 다가가 종달새처럼 지저귀었다.
“고마워. 너희도 예뻐.”
실비아는 시녀들을 하나씩 안아주면서 웃었다.
“준비되었으면 출발하자.”
“네.”
라온이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미리 준비해둔 마차에 시녀들과 실비아를 태운 후 본관으로 향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마차 내부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어지질 않았다.
실비아와 시녀들의 수다를 흘려듣다 보니 어느새 마차는 본관 앞에 닿아 있었다. 연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가주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들어가자.”
“네. 마님.”
실비아가 시녀들을 이끌고 가주전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연회장으로 가려 할 때 우측 복도에 서 있던 남자가 길을 막았다.
“흠….”
카룬을 따르는 직계 간부 스터릭이었다. 그는 실비아의 외모에 놀란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뒤에 있는 이들은 시녀들인가?”
“맞아요.”
실비아가 헬렌과 시녀들을 지키듯이 앞으로 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시녀복이 아니라, 연회용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거지?”
스터릭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매를 찌푸렸다.
“제가 함께 가자고 했어요.”
실비아가 한 발 더 앞으로 나가며 당당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어이가 없군. 아무리 참여에 제한이 없다고 해도 시녀들을 부르다니,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스터릭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실비아와 시녀들을 차례로 흘겼다.
“하.”
라온이 미간을 구기며 나서려고 할 때 실비아가 손을 뻗고 스터릭을 멱살을 잡을 듯 가까이 다가갔다.
“입 다무세요. 그 목이 날아가기 싫으면.”
그녀는 더 이상 모욕을 참지 않았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동자를 들이밀며 상대를 짓누르는 강대한 기세를 피워냈다. 적안의 마검. 별관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크윽! 여,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스터릭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뒤로 물러났다. 그가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검사들을 부르려고 할 때였다.
“들여보내도록.”
뒤에서 다가온 카룬이 스터릭을 밀어내고, 연회장의 문을 열었다.
“카, 카룬 님?”
“비연회주는 연회에 참여하라고 했지, 자격을 걸지 않았다.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니, 네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
카룬은 서늘한 시선으로 스터릭을 굽어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스터릭은 카룬의 말은 거절할 수 없다는 듯 벽에 등을 붙인 채 턱을 떨었다.
“고, 고마워요.”
“…….”
카룬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실비아와 라온을 한 번씩 쳐다보고서 그대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라온. 안에서 보자.”
그의 뒤에 서 있던 버렌이 손을 흔들고서 연회장으로 향했다.
‘저 인간 왜 저러지?’
라온이 멀어지는 카룬의 등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평소라면 바위를 가져와서 길을 막을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주니, 당황스러웠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
하지만 카룬에게는 딱히 음모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저 대나무처럼 고고한 기세만 느껴졌다.
“너희도 들었지. 처져 있을 필요 없어. 당당히 걸어!”
실비아가 시녀들의 등을 쳐주고서 먼저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네!”
시녀들도 실비아의 마음을 느끼고 거침없는 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라온은 옅은 미소를 그리며 마지막으로 연회장에 들어갔다.
“와아….”
“저, 저게 실비아라고?”
“과거 지그하르트 최고의 미녀라는 게 수식어가 헛소문이 아니었군.”
“저 드레스는 누구 작품이지? 미모를 완벽하게 살려주는데….”
연회를 즐기던 사람들은 실비아의 외모를 보고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라온도 실비아에 뒤지지 않네.”
“뒤지지 않는 게 아니라, 실비아 보다 더해!”
“존잘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던데, 괜히 나온 게 아니야.”
“어릴 때부터 얼굴로도 유명했으니까.”
지그하르트 검사들은 실비아의 뒤를 지키듯 걸어오는 라온에게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그저 헛바람만을 흘렸다.
라온은 사람들의 관심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연회장을 살폈다.
장례를 치른 이후라 연회장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따스한 색으로 가득 차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오오옥!
라스가 숨을 넘어가는 듯한 탄성을 흘렸다.
-지금까지 본 연회 중에서 음식이 가장 많으니라!
녀석의 말대로 연회장 외곽에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요리들이 뷔페처럼 깔려 있었다.
음식에서 전해져오는 색과 향기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라온. 맛나.”
루난이 양팔에 구슬 아이스크림을 가득 안은 채 손을 흔들었다.
드레스의 배 부분이 볼록한 것을 보니, 이미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았다.
“쯧. 왜 내가 여기에….”
마르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하얀 드레스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미간을 구겼다.
“…….”
버렌은 말없이 카룬의 뒤를 따라다니는데, 아주 조금이지만 둘 사이가 가까워진 것 같았다.
“대주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도리안은 이미 뷔페 음식을 한 번씩 다 먹어본 듯 볼을 빵빵하게 채운 채 환히 웃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우리도 가자꾸나!
라스가 침을 질질 흘리며 음식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뭐가 좋은데?’
-본왕은 저 끝에 있는 육회부터 시작하고 싶으니라!
녀석은 뷔페는 찬 음식부터 먹어야 한다며 입맛을 길게 다셨다.
‘이상한 지식은 많다니까.’
라온이 가늘게 웃고서 육회가 있는 곳으로 가려 할 때였다.
“북방의 하늘, 글렌 지그하르트 가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연회장 문이 동시에 열리며 글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라온이 다른 이들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모두 일어나라.”
글렌은 연회장의 단상 위로 올라가 담담하게 시선을 내렸다.
“연회는 잘 즐기고 있나?”
“예!”
연회장에 있는 모두가 정해져 있는 답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영감 때문에 못 즐기고 있느니라!
라스가 유일하게 반항하며 동그란 주먹을 뻗었다.
“다행이군.”
글렌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연회는 전쟁의 노고를 풀어주기 위해서 열었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
그가 손가락을 들어서 라온과 실비아를 가리켰다.
“실비아 지그하르트 그리고 라온 지그하르트는 앞으로 나오도록.”
글렌은 길게 시간을 끌 생각이 없는 듯 바로 라온과 실비아를 호명했다.
“예.”
라온이 실비아와 눈동자를 마주친 후 단상 앞에 섰다.
“나는 이전에 광풍대주와 하나의 약속을 했다.”
글렌이 뒷짐을 진 채 어둑해진 창밖을 바라보았다.
“부왕 로만과의 생사결에서 살아남는다면 실비아를 직계에 올려주겠다고 했었지.”
그가 시선을 돌려 라온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광풍대주는 부왕 로만을 꺾고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드높였다.”
글렌은 라온이 장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거기다 남북맹의 더러운 기습에서 살아남은 후 내게 향하는 칼날마저 막아내 주었지. 그 이후에도….”
그는 직접 보고 겪었던 전투를 연회장에 있는 검사들에게 생생히 설명해주었다. 그 장소에 없던 사람들의 손에 땀이 차오를 정도였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나와의 약속을 넘어서는 위업을 쌓아 올렸다. 그에 따라….”
글렌이 라온과 실비아를 향해 그 어느 때보다도 대견한 눈빛을 드러냈다.
“실비아 지그하르트와 라온 지그하르트를 직계의 위에 올리고, 별관의 영토를 지금의 두 배로 확장하며. 라온 지그하르트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
그는 무엇이라도 이루어 줄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직계들이 지니는 황금색의 패를 라온과 실비아에게 건네주었다.
“감사드립니다.”
라온이 실비아가 떨리는 음성을 흘리며 글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우와아아아아아!”
“드디어 이뤄냈구나!”
“라온! 잘했어!”
“대주님!”
평소 친분이 있던 간부들과 광풍대 검사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왔다.
연회장을 울리던 음악도 흥이 차오르는 색으로 바뀌었다.
“마님!”
“도련님!”
시녀들도 라온과 실비아가 직계에 오르는 이 순간을 본 것만으로 소원을 이룬 듯 눈물을 흘렸다.
“이제 네놈도 내 조카구만!”
발데르가 잘했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축하한다. 라온. 실비아.”
데니어도 박수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평소라면 어떻게 해서든 방해를 했을 카룬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가 조용하니 다른 직계 간부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라온은 축제가 된 듯한 연회장의 분위기를 느끼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쿵쿵거리며 뛰었다.
‘드디어 하나를 이뤘어.’
직계라는 신분이 누군가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아주 사소한 부분이겠지만, 자신과 실비아에게는 꼭 이루어야 할 염원이었다. 그 목표를 모두의 축복 속에서 이뤄냈다는 게 너무도 기뻤다.
데루스를 죽이겠다는 복수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실비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실비아의 손을 잡아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영토와 소원으로 되겠어요? 어이! 조카! 돈은 내가 챙겨줄게!”
발데르는 금화를 좀 보내주겠다고 말하며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야. 입 닥쳐. 라온은 내 조카야!”
아리스가 펄쩍 뛰어올라서 라온의 옆에 붙었다.
“이제 정식으로 조카가 되었으니, 이모라고 불러보렴.”
그녀는 당장 부르라는 듯 눈동자를 붉혔다.
“커흠, 삼촌도 괜찮은데.”
발데르는 삼촌 소리가 먼저 듣고 싶은 듯 입맛을 다셨다.
“라, 라온.”
“저기, 저기!”
“허허허! 할아버지가 먼저 아니겠습니까.”
리메르와 셰릴, 로엔이 얼음장처럼 서늘한 눈빛을 드러내는 글렌을 가리켰다.
“오늘만 엄마라도 다시 해주면 안 될까?”
실비아도 직계가 되었으니, 제대로 엄마 소리를 듣고 싶다며 어깨를 들이밀었다.
“이모!”
“삼촌….”
“할아버지!”
“엄마.”
네 방향에서 본인들이 듣고 싶은 호칭과 함께 뜨거운 시선을 쏟아졌다.
“어….”
라온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