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28
제728화
글렌이 옥좌의 팔걸이에 올려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데루스 로베르트….’
데루스 로베르트는 육황오마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강자다.
성검련주에게도 밀리지 않는 무력을 지녔기에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데루스가 가문에 머물러 있는 건 체임버, 마탑주, 레크로스가 모두 확인했지.’
마탑주의 말에 의하면 데루스는 단 한 순간도 화상 마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가 분신이라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야.’
가끔 데루스 로베르트와 눈을 마주치면 기이하게도 오싹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누구보다도 선한 빛을 띠고 있었음에도 칼날을 목에 대는 듯한 섬찟함이 전해져왔었다.
눈은 마음의 통로이자, 영혼의 관문이기에 데루스의 진정한 기질은 선이 아니라, 악일지도 모른다고 홀로 생각했었다.
‘다만….’
이상하다고 해도 증거가 없어.
데루스는 무력, 인성 그리고 배경까지 모든 게 완벽한 인간이다.
라온 덕분에 지그하르트의 호감도가 많이 올라왔다고 해도, 대중적인 인기로는 로베르트 가문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섣부르게 건드렸다가는 남북맹 때와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라, 라온….”
셰릴이 라온의 말에 당황한 듯 눈을 부릅떴다.
“데루스 로베르트라니, 너 그 이름을 꺼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거야?”
그녀는 믿어지지가 않는다며 입술을 떨었다.
“라온 도련님. 진심이십니까?”
로엔 역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증거는 있느냐.”
글렌은 셰릴, 로엔과 달리 차분한 안색으로 턱을 까딱였다.
“있습니다.”
라온이 고요히 가라앉은 글렌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검련주와 백혈교주가 신주오령을 습격했던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잊을 수가 없지. 네가 실종되지 않았더냐.”
글렌은 데루스와 관계없는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답을 해주었다.
“저는 그곳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두 번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성검련주의 제자였고….”
“알고 있다. 암살자라고 했었지?”
“예. 다만 보통 암살자가 아니라, 몸을 던져서 자폭하는 암살자였습니다. 수화객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령술의 산물이었죠.”
“사령술…?”
그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란 듯 눈동자에 핏발을 세웠다.
“수화객을 조종하던 주인을 사로잡아서 그 괴물들을 만드는 공장에 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갈 수가 없었기에 광룡 카이바르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그 공장을 찾아갔죠.”
라온은 암시장의 도움을 받아서 수화객 공장을 무너뜨렸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공장의 진짜 주인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마을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제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설마 그게….”
글렌이 다리를 가늘게 떨며 물었다.
“예. 데루스 로베르트였습니다. 그는 공장이 망가진 것에 분노한 듯 수하들을 거침없이 죽인 후 피에 젖은 장갑을 벗었는데….”
라온이 마른침을 삼키고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손등에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와 같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몰라볼 수가 없는 상처였다고 말하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자, 잠깐만!”
셰릴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 장소에 암시장주의 수하들이 있었다며. 그런데 왜 그 정보를….”
“덴젤 님과 요원들은 그가 데루스 로베르트인지 몰랐습니다. 복면을 쓰고 있었고, 오러를 운용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너는 어떻게 안 거야?”
“저는 지닌 무력 이상으로 타인의 마나와 기질을 읽는 능력이 발달 되어 있습니다. 육황회의에서 데루스를 직접 만났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죠.”
라온이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 데루스의 정체를 밝힌다면 덴젤 님이나 암시장도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글렌과 셰릴, 로엔을 살폈다.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은 듯 흔들리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저거 다 거짓말이지 않느냐!
라스가 구라가 판친다고 외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맞아. 거짓말이지. 하지만 다 거짓말은 아니야.’
글렌에게 말했던 내용 중 절반은 거짓말이다.
데루스 수화객 공장을 찾아온 것은 맞지만, 놈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고 장갑을 벗지도 않았다.
데루스와 말을 맞춰본다면 금방 들키게 될 거짓말이지만, 상관없다. 놈의 정체를 밝힐 수 있다는 것만큼은 진실이었으니까.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는 트롤 이상의 재생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손등의 상처만큼은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 장소에 있던 모두가 보았으니, 그 상처만 드러내게 한다면 정체를 밝히는 건 쉬운 일일 겁니다.”
라온이 믿어달라고 말하며 무릎을 꿇었다.
“라온.”
글렌은 광풍대주가 아니라, 라온이라는 이름을 불렀다.
“예. 가주님.”
라온이 천천히 시선을 들며 떨리는 손목을 잡았다.
‘여기서부터가 진짜야.’
지금부터 글렌과 셰릴, 로엔이 칼날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저들의 의문을 모두 풀어내야 이번 일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글렌이 꺼낸 말은 라온의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힘들었겠구나….”
글렌은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든 채 입술을 씹었다.
“예?”
라온이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아예 예상을 벗어난 말이었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텅 빈 느낌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아니. 괜찮다.”
일단 사과라도 하려고 하는데, 글렌은 필요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일단 다른 녀석들에게도 전해야 하니, 저녁에 다시 부르마.”
글렌은 돌아가 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 네….”
라온이 셰릴과 로엔을 흘낏 보고서 어깨를 늘어뜨린 채 알현실을 나섰다.
쿠우웅.
알현실의 철문이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하아….”
셰릴이 두통이 온 듯 이마를 부여잡은 채 긴 한숨을 토했다.
“데루스가 드래곤 투구를 쓴 놈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저는 라온이 더 경악스럽네요.”
그녀가 라온이 서 있던 곳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듣기만 해도 두려운 사실을 지금까지 어떻게 숨기고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로엔이 안색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제 손이 다 떨리는데, 지금까지 혼자서 버텨내신 게 대단합니다.”
그는 자신보다 정신력이 뛰어난 것 같다며 시선을 내렸다.
“…….”
글렌이 옥좌의 팔걸이를 가루로 만들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 어린 녀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군.’
데루스는 이 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있다.
라온이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홀로 고민하며 끙끙 앓았을 손자를 떠올리자 가슴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이런 면은 실비아를 닮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이리 배려심이 깊단 말이냐.
멍청하게 바로 보고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온은 너무도 선하고 생각도 깊었다.
확실한 정보를 찾아낼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제야 꺼낸 것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거기다….’
글렌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못 미더웠겠지.’
매번 험악한 모습만 보여주며 밀어냈으니, 신뢰를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진즉에 다가가지 못했다는 후회에 심장이 철사로 꽉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정말 미안하다.’
이곳에 없는 라온에게 사과를 하며 머리를 숙였다.
‘대신 이번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주마.’
글렌은 마음을 굳게 다지고서 로엔에게 손을 뻗었다.
“체임버와 화상 마법을 연결하도록.”
“알겠습니다.”
로엔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알현실의 중앙에 푸른 창을 띄웠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막대 사탕을 핥고 있던 체임버가 큼지막한 마녀 모자를 들어 올렸다.
“주변에 누가 있나?”
[응. 애들 좀 있지?]체임버는 인사라도 하라는 듯 그녀의 방에 있는 마법사들을 가리켰다.
“너와 할 말이 있다.”
[뭐야? 고백이라도 하게?]그녀는 피식 웃으면서도 마법사들을 모두 내보냈다.
[다 나갔으니, 빨리 말해봐. 무슨 일인데?]체임버는 궁금하다는 듯 손을 뻗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글렌은 데루스만이 아니라, 로베르트 자체를 무너뜨리겠다고 다짐하며 피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라온. 나도 목숨을 거마.’
* * *
라온은 가주전을 나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뭐지?’
조금 전 글렌에게 말했던 내용에는 몇 가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일부러 만들어 놓은 허점이었고, 답까지 준비했는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가주님이 모르실 리가 없는데?’
글렌은 오마 셋과 싸우면서도 당황하지 않는 강심장이다.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사람이 데루스라고 해도 당황할 리가 없는데, 그냥 보내준 이유를 모르겠다.
-저 영감 왜 저러는 것이냐?
라스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나도 잘 모르겠어.’
라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일은 잘 풀렸는데, 더 걱정될 줄이야.’
아무래도 내가 봐왔던 글렌 지그하르트와 진짜 글렌 지그하르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라온은 어지러운 머리를 풀어내기 위해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글렌이 다시 찾을 때까지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안쪽에서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르타?’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사람은 마르타였다. 그녀는 한참 전부터 수련하고 있었는지 전신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휴가에도 수련하는 거야?”
라온이 마르타에게 다가가며 손을 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거든.”
마르타가 검을 내린 채 탁한 숨을 내뱉었다.
“죽을 것 같다고?”
“그래. 엄마가 구해달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쉬고 있을 수가 없어.”
그녀는 검을 쥐고 있는 손을 떨며 이를 갈았다.
“…….”
라온은 다시 검을 휘두르는 마르타를 보며 눈썹을 깊게 내렸다.
‘나보다 더 고통스럽겠군.’
나는 데루스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이 고통이 끝나겠지만, 마르타는 백혈교주를 잡는 게 다가 아니라, 그녀에게 사로잡힌 엄마까지 구해내야 한다.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하늘이 마르타에게 준 고통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늘에 있는 것들은 추하고 더러운 놈들이니라!
라스는 천족과 신의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콧김을 내뿜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분노를 조절하고 있다는 점이겠지.
마르타는 예전처럼 폭주하듯 분노를 토해내지 않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지금도 그녀의 무력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마르타.”
라온이 흑룡포를 털어내고서 마르타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오랜만에 대련이나 할까?”
“언제 불러주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됐네.”
마르타가 미간을 좁힌 채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도 대련을 하는 게 더 빠른 성장과 연결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파도 참아라.”
라온은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제천검을 뽑았다. 죽음을 가르는 칼날을 운용하며 그 위로 만화공의 불길을 일으켰다.
“고통 따위는 평생 견뎌왔어!”
마르타가 얼마든지 오라는 듯 이를 악물 채로 달려들었다.
쿠우웅!
* * *
라온은 마르타와의 대련을 끝낸 후 로엔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가주전으로 돌아왔다.
알현실에 들어서자, 네 개의 푸른 창이 띄워져 있었고, 육황의 수장들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데루스 로베르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이 너무 늦네.]체임버가 오랜만이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라온. 정말… 고생했겠구나.]오그람이 눈살을 찌푸린 채 깊은 한숨을 토했다.
[그대는 기사라는 단어로도 담을 수가 없는 남자로군.]레크로스 국왕은 대견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 나라면 진작에 다 말하고 편해졌을 거야.]마탑주는 로브 속에서 눈만 드러낸 채 전신을 떨었다.
“…….”
글렌은 옥좌에서 일어선 채 눈을 내리감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글렌에게 사정을 들은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분위기가 혼란스럽지 않았다.
[라온.]체임버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얼굴과 몸이 푸른 창을 뚫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저 영감에게 듣기는 했는데, 네가 겪었던 일을 다시 말해줄래?]“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글렌에게 했던 이야기를 육황의 모두에게 설명해주었다.
[결국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뱀 새끼가 데루스 로베르트라는 거지?]체임버가 입매를 비틀며 물었다.
“예. 확실합니다.”
라온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이겠군.’
육황의 수장들은 글렌과 다르다. 지금부터 날카로운 질문들이 연달아 쏟아질 테니, 잘 생각해서 의심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
[사실 나도 그 자식이 좀 의심스럽기는 했어.]체임버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나 흑탑주가 얼굴을 가린 채 나타날 리가 없으니, 은거한 검황이나, 전왕이 아니면 데루스 정도라고 생각했지.]그녀가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의심스러운 인물들을 말했다.
[일부러 전장에 안 부르고 저 방구석 폐인이랑 붙여놓은 건데, 이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어.]체임버도 속으로만 삭히고 있었다며 혀를 찼다.
[나는 네 말을 믿는다.]오그람은 의문 자체가 없다는 듯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럽군.]레크로스 국왕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광풍대주의 증언에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지만, 그걸 떠나서 데루스 그 친구가 지독한 악행을 벌였다는 게 믿어 지지가 않아.]그는 힘들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상한 점을 말씀해주시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런 약속을 받는다면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레크로스 국왕은 의심스럽지만 믿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 난 싸우기 싫은데….]마탑주는 이 상황이 다 싫다는 듯 숙인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어…?”
라온이 육황의 수장들을 보며 눈꺼풀을 떨었다.
‘이게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니고, 육황 데루스 로베르트다.
그가 대륙 공적이나 다름없는 악당으로 정해지고 있는데,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기….”
라온이 얼떨떨한 눈빛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의문이 있을 텐데, 왜 질문을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육황의 반응이 너무 이상해서 먼저 질문을 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안 해.]체임버가 고개를 저었다.
“대체 왜….”
[난 죽기 싫거든.]그녀가 어깨를 으쓱이고서 뒤로 물러섰다.
[저는 가주님의 의지를 보았기에 물러났습니다.]레크로스 국왕도 질문할 생각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라온이 체임버와 레크로스 국왕을 차례로 보면서 눈을 끔벅였다.
오그람이 글렌을 가리키며 입매를 비틀었다.
[저 냉정한 인간이 목숨을 걸겠다고 한 건 처음이니, 믿어줄 수밖에.]그는 당연한 결정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라온이 입술을 떨며 글렌을 돌아보았다.
“가, 가주님…?”
“네 눈을 보았다. 거짓 따위는 섞여 있지 않았어.”
글렌은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하고서 입술을 살짝 씹었다.
“고작 제 눈으로…?”
지금까지 봐온 글렌의 성향과는 너무 달랐기에 숨이 턱 막혀왔다.
아무리 직계가 되었다고 해도 이런 신뢰를 보여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물론 저 영감의 목숨만으로 믿어주는 건 아니야.]체임버가 다시 앞으로 나오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나는 너를 신뢰하거든.]그녀가 빙긋 웃으며 턱을 세웠다.
[지금까지 네가 쌓아 올린 업적과 이번 전쟁에서 보여준 활약을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안 믿겠어.] [마찬가지다.]오그람이 이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그 어떤 길을 간다고 해도 따라가 주마.]그는 지옥에 가서라도 목숨 빚을 갚겠다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요. 셋째를 도와주었을 때부터 당신을 믿고 있었소.]레크로스 국왕은 그리어의 목숨을 살려준 빚을 아직 갚지 못했다며 웃었다.
[데루스 불안해….]마탑주가 입술을 떨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분명 그 자리에 있는데, 다른 사람 같았어.] [뭐? 그럼 그걸 이야기했어야지!]체임버가 무슨 짓이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이론이나 결과가 아니라, 내 느낌일 뿐이라서….]마탑주는 마법사가 가장 멀리해야 할 감정이 느낌이라며 머리를 움츠렸다.
[어휴! 증말!]체임버가 가슴을 두드리고서 고개를 저었다.
[됐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데루스도 바보가 아니니까. 어떻게 해서든 손등의 상처를 지우고 올 거야. 그것도 나나, 다른 영감들이 찾을 수 없는 방식으로.]그녀는 상처를 드러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마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렸다.
“방법은 있습니다.”
라온이 푸른 창 앞으로 나섰다.
[정말?]“네. 놈은 제가 냈던 상처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만화공의 기운을 이용한다면 분명 손등의 상처를 드러내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분노와 불의 고리를 만화공으로 바꿔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에도 데루스의 스파이가 있을지 모르기에 진짜 계획은 끝까지 숨겨야 했다.
[아, 맞아!]체임버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손등에 난 상처 중 하나는 네 거였지!]그녀는 이제야 이해된다며 웃었다.
[좋네! 그럼 계획을 짜보자고. 그 지렁이 새끼의 가면을 벗길 계획을!] [육황 회의는 최대한 빨리 여는 게 좋겠지.]오그람이 최대한 빨리 데루스의 면상을 보고 싶다며 입술을 씹었다.
[너무 빠르면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겁니다.]레크로스 국왕이 다음주에 하자고 말하며 손가락을 두드렸다.
“위치는 야수연맹이 좋겠군. 오그람이 부상을 입었다는 핑계도 있고, 로베르트와도 가까우니, 놈이 도망쳐도 바로 찾아갈 수 있을 거다.”
글렌은 육황의 수장들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일주일 뒤 야수연맹에서 육황회의를 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고오오오.
라온은 세밀한 계획을 세우는 육황의 수장들을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심장 속에서 죽음을 가르는 칼날을 세우며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데루스 로베르트.’
지금부터가 내 복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