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30
제730화
라온은 헬렌이 만들어준 샌드위치로 가볍게 식사를 끝내고, 떠날 채비를 갖췄다.
-으음….
라스가 비어버린 샌드위치 접시를 보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본왕은 조금 더 먹을 수 있는데….
녀석은 다른 음식으로 배를 채우자고 말하면서 슬쩍 눈동자를 굴렸다.
‘회의장에 가면 먹을 게 널려 있을… 음?’
라온이 라스를 보다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너 살찌지 않았어?’
현재 라스는 영체 상태이기에 살이 찐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녀석의 볼과 팔은 잘 구운 빵처럼 통통하게 부풀어 있었다.
-무, 무슨 말이냐! 본왕은 마계의 군주이니라! 살 따위는 찌지 않느니라!
라스는 절대 아니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확실히 요즘 많이 먹긴 했지.’
라온이 푸르르 떨리는 라스의 턱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마왕 녀석이 매일 같이 생명의 은인에게 공물을 바치라고 외쳐대는 통에 원하는 음식을 다 사줬더니, 행복감에 젖어서 저렇게 살이 찐 것 같았다.
-아니라니까! 본왕은 살이 안 찌는 체질이니라!
라스는 악을 지르며 머리를 흔들었다. 녀석의 뺨이 푸딩처럼 찰랑였다.
-살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본왕에 대한 모욕이니라!
‘됐고, 앞으로 식단 조절이야.’
라온은 매일 나딘빵이라고 중얼거리고서 방을 나섰다.
-저, 절대 안 되느니라! 본왕은 네 생명의 은인….
‘네. 약발 끝났어요.’
달라붙는 라스를 밀어버리고, 현관으로 향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로군.’
연한 햇살이 흩날리는 복도를 걸으며 데루스 로베르트를 떠올렸다.
놈이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대비할 수 있도록 심상을 두텁게 다지며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이제 가는 거니?”
현관 앞에서 기다리던 실비아가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네. 늦지 않게 출발해야죠.”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현관 앞에 섰다. 실비아가 걱정하지 않도록 잔잔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헬렌. 샌드위치 잘 먹었어.”
빈 접시를 헬렌에게 건네주면서 두 손을 모았다.
“잘 드셨다니,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헬렌이 접시를 받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라온.”
실비아가 미소를 보이다 말고, 차갑게 안색을 굳혔다.
“너 혹시 싸우러 가는 거니?”
“네…?”
라온이 실비아에게 눈을 돌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무슨….”
실비아는 오늘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전쟁 후에 열리는 육황회의로만 알고 있을 텐데, 무엇을 보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네 눈빛이 꼭 전장에 서는 듯 처절해 보여. 예전에 나를 위해서 검투에 나갈 때처럼.”
실비아가 불안하다는 듯 치마를 잡은 손을 떨었다.
“…….”
라온이 흔들리는 실비아의 눈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어떻게 아신 거지?’
오러는커녕 기세조차 끌어 올리지 않았다.
천천히 집중력만 일깨우며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는데 무얼 보고 알아차린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게 엄마의 위대함이니라!
라스가 턱을 치켜들며 흥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왜 저 녀석이 자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비아의 감각은 확실히 놀라운 면이 있었다.
“안 싸워요. 그저 꼬인 매듭을 풀고 싶을 뿐이에요.”
라온이 진심을 담은 말을 꺼내며 실비아의 손을 잡았다.
“거기다 가주님과 같이 가잖아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지.”
실비아도 글렌은 신뢰하는 듯 옅게 웃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가주님을. 아니, 할아버지를 찾아가렴.”
죽었다가 살아 돌아왔기 때문인지, 그녀는 아이를 대하듯이 글렌의 옆에 붙어 있으라고 당부했다.
“네.”
실비아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두말하지 않고 알겠다고 답했다.
“그럼 가볼게요.”
라온은 실비아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별관을 나섰다.
‘그래. 이건 싸움이 아니야.’
실비아에게 말했듯이 이번 일은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공격이다.
회의장은 데루스의 모든 것을 발가벗기는 처형장이 될 것이다.
‘어머니와 시녀들을 위해서라도 데루스의 정체를 드러내게 해야 해.’
라온은 정원 앞까지 나와준 실비아와 시녀들에게 손을 흔들어준 후 소집 장소인 본관으로 향했다.
본관 앞에는 육황 회의에 참가하는 광풍대와 천검대 검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주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버렌이 손을 들어 대주가 서야 할 자리를 알려주었다.
휴가 동안 수련만 했는지 그에게서 잘 갈린 칼처럼 예리한 바람이 느껴졌다.
“수련에는 제일 빨리 오더니, 출발할 때는 항상 느리시네요.”
마르타가 툴툴 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 역시 버렌 만큼이나 성장한 기파를 드러냈다.
“존잘 라온.”
루난이 빨리 오라는 듯 흐느적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맹한 눈빛 속에서 고고한 기질이 느껴졌다.
버렌이나 마르타만큼의 무력적 성장은 이루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 크게 성숙해진 것 같았다.
‘시리아와 부딪쳤다고 했었지.’
자신이 기절해 있을 때 루난이 시리아를 막아섰다고 들었다.
아직 두려움이 남아 있는 듯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쿠웅!
라온이 점점 발전해 나가는 버렌, 마르타, 루난을 보며 웃고 있을 때 뒤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대주님. 오셨어요?”
도리안이다. 그가 바보처럼 웃으며 고개를 숙여왔다.
“어…?”
라온이 도리안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너도 살 찐 거야?”
도리안은 라스에 못지 않을 정도로 포동포동한 얼굴이 되어 나타났다.
처음 인사를 나눴던 훈련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에헤헤! 긴장이 확 풀려서 그런가. 식욕이 터지더라구요!”
“식욕이 아니라, 네 배가 터지겠는데?”
마르타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도리안의 배를 두드렸다.
-식사 조절도 못 하다니, 한심한 놈이니라!
라스가 추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네가 딱 저 모습인데?’
-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본왕은 미의 화신이니라!
녀석은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턱살이 출렁이는 모습은 도리안과 똑같았지만, 귀찮아서 입을 다물었다.
“라온.”
셰릴이 우측에서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대주가 제일 늦으면 어떻게 하니. 먼저 와서 준비해야지.”
그녀는 늦게 왔다는 말과 달리 웃으며 반겨주었다.
“아직 저희 부대주님이 안 오셨는데….”
“걔가 사람이었어?”
셰릴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면서 손을 저었다.
“…….”
실제로 사람이 아니기는 해서 할 말이 없었다.
“진짜 너무 하네!”
리메르가 본관 안쪽에서 튀어나오며 이를 갈았다.
“나도 사람이야!”
그는 무시하지 말라며 셰릴에게 달려들었다.
“넌 사람 이전에 멍청이야!”
셰릴은 오히려 리메르를 걷어차 버리며 미간을 구겼다.
‘음?’
라온은 셰릴과 주먹질을 해대는 리메르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대주님도 수련하신 건가?’
리메르의 무력도 상승한 것 같았다. 버렌, 마르타처럼 큰 변화는 아니지만, 꾸준히 수련을 해왔다는 게 느껴졌다.
저벅.
셰릴과 리메르를 피해서 광풍대와 천검대가 물러설 때 가주전 안쪽에서 귀를 사로잡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글렌이다. 그가 로엔과 함께 걸어 나와 천검대와 광풍대 앞에 섰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리메르와 셰릴의 인사를 시작으로 광풍대와 천검대 검사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아침부터 과한 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
글렌은 자제하라는 듯 손을 젓고서 두 검대의 앞으로 나왔다.
“출발 준비를 하도록.”
“예!”
좌측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그하르트의 마법사들이 부리나케 움직이며 차원문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라온이 푸른빛이 스며드는 차원문을 보고 있을 때 글렌이 다가왔다.
“받거라.”
그는 품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내밀었다. 레이블 강에서 잃어버렸던 진혼검이었다.
“어…?”
라온이 진혼검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가주님이 가지고 계셨습니까?”
“그래. 강바닥에서 주웠지.”
글렌이 진혼검을 흘깃 내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집을 새로 만드느라, 돌려주는 게 늦어졌구나.”
“아….”
그러고 보니 진혼검의 검집이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려한 외형을 보니 쿠베러드가 아니라, 발칸의 솜씨 같았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허리를 깊게 숙이고서 진혼검을 받았다.
“별일 아니다.”
글렌은 고개를 젓고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우우우웅!
손에 쥔 진혼검이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듯 청아한 검명을 일으켰다.
‘그래. 나도 반갑다.’
라온은 진동하는 진혼검을 꽉 잡으며 글렌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받았기 때문일까. 진혼검이 이전보다 더 무겁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 * *
우우우웅!
라온이 가을 하늘처럼 투명한 색을 띤 차원문을 벗어났다.
울렁거리는 속을 내리누르며 눈을 뜨자, 오그람을 구한 후 잠시 머물렀던 야수연맹 본부가 보였다.
본래라면 많은 경계와 관문을 통과한 후에야 이곳에 닿을 수 있지만, 체임버와 마탑주가 미리 좌표를 조절해놓았기에 단번에 야수연맹 본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온!”
세계수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느티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던 오그람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글렌보다도 라온의 이름을 먼저 외치며 달려왔다.
“맹주님.”
라온이 들소처럼 뛰어오는 오그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몸은 괜찮으냐!”
오그람은 본인이 더 힘들 텐데도, 먼저 라온을 걱정하며 팔을 뻗었다.
“어딜!”
글렌이 오그람의 앞을 막아서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달려들었다가는 이 아이의 뼈가 다 으스러질 것이다.”
그는 이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듯 손날을 세웠다.
“라온이 나보다 더 튼튼해!”
오그람이 라온의 몸은 강철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넌 안 된다.”
글렌은 절대 못 보내준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네 손자 안 잡아먹는다고!”
“안 되는 건 안 돼.”
“크윽! 이 꽉 막힌 영감이!”
오그람은 바드득 이를 갈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맹주님도 잘 모르시네.”
리메르가 아이처럼 다투는 두 초월자를 보며 키득 웃었다.
‘저건 라온을 보호하려는 게 아닌데.’
글렌은 라온을 한 번도 안아보지 못했기에 먼저 포옹을 하려는 오그람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유치한 싸움이었지만, 그렇기에 웃음이 나왔다.
“준비는?”
글렌이 물러서는 오그람에게 턱을 까딱였다.
“다 끝났다.”
오그람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끄덕였다.
“…….”
라온이 그 모습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저건 회의 준비가 끝났냐는 물음이 아니야.’
두 사람이 말한 ‘끝났다’는 데루스의 정체를 밝힌 준비가 끝났냐는 뜻이었다.
오그람과 야수연맹은 일주일 사이에 모든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형제여!”
라온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그릴 때 오그람의 뒤편에서 가로나가 튀어나왔다.
“상처는 다 나은 것 같군!”
그는 정말 다행이라며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졌어.”
라온이 상처가 났었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가로나도 이번 전쟁을 겪으며 느낀 게 많은지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서 있었다.
“라온.”
오그람이 글렌을 노려보다 말고, 라온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격해무의 경지가 오른 것이냐?”
그는 단숨에 라온의 격해무 수준을 파악하고서 눈을 부릅떴다.
“예. 운이 좋았습니다.”
“크하하하하!”
오그람이 이마를 잡은 채 귓가가 아려올 정도로 큰 웃음을 터트렸다.
“이러다가 정말 내 절기가 라온 지그하르트의 이름으로 알려지겠군. 너희가 분발해야겠구나!”
그는 야수연맹의 간부들을 돌아보며 키득거렸다.
“라온 님이라면 괜찮습니다.”
부맹주는 라온에게는 무얼 주어도 상관없다는 듯 은은하게 웃었다.
“어떠냐. 라온. 이참에 내 후계자를….”
오그람이 농담을 하듯 손을 뻗었다.
“미친 소리!”
글렌이 이마에 힘줄을 일으킨 채 오그람의 손을 쳐냈다. 그는 진심으로 화가 난 듯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농담이다. 농담!”
오그람은 글렌의 반응을 즐기듯 히죽 웃었다.
“큼, 다른 녀석들은 오지 않은 것이냐?”
글렌도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했는지 짧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너희가 제일 먼저 왔다.”
오그람은 지루하면 먼저 회의장에 가 있으라며 뒤에 세워진 원형 건물을 가리켰다.
“그런 것 치고는 사람이 많은데요?”
도리안이 연맹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저들은 육황이 아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중립 세력들이지.”
오그람은 이번 회의가 중요하기에 많은 세력들을 초청했다며 손가락을 내렸다.
라온이 야수연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을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군.’
중립 세력들을 부른 건 회의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다.
최대한 많은 이들 앞에서 데루스의 정체를 밝혀내서 놈과 로베르트를 대륙 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럼 먼저….”
글렌이 회의장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허공에 푸른 차원문이 열리더니, 체임버가 폴짝 뛰어내렸다.
“아, 멀다. 멀어.”
체임버는 마법 쓰기 귀찮다고 중얼거리며 이마로 내려간 마법 모자를 들어 올렸다.
“어, 직접 보니까….”
그녀가 오그람과 글렌 사이에 끼어들며 사탕을 꺼내 물었다.
“영감들 주름이 많이 늘었는데? 관리 좀 하라고.”
체임버는 두 초월자를 놀리며 낄낄 웃었다.
“나이는 네가 제일 많은… 허억!”
오그람이 나이 이야기를 꺼내다가 체임버의 눈동자가 빨갛게 물드는 것을 보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혼자 온 건가?”
“그럴 리가.”
체임버가 오그람의 옆구리를 꼬집고서 뒤를 가리키자, 아직 닫히지 않은 차원문에서 발카르의 마법사들이 걸어 나왔다. 마법사 중에는 왕녀 제이나도 끼어 있었다.
“헉!”
도리안이 제이나를 알아보고 낮은 신음을 흘렸다.
“싸가지 왕녀에요!”
“그러네.”
라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나의 곱상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향기는 많이 깊어졌다.
그녀 또한 못 본 사이에 많은 성장을 이룬 것 같았다.
“흥.”
제이나는 자신을 알아보자마자, 콧방귀를 뀌고서 고개를 홱 돌렸다.
“여전하네.”
라온이 제이나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목줄이 잡혀 있음에도 저리 건방을 떠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귀여울 지경이었다.
“대단한 사람이네요….”
도리안도 같은 생각을 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우우웅!
발카르에 이어서 차원문을 연 곳은 오웬이었다.
태양을 먹어 치우는 듯한 흑색 갑주를 두른 묵검존 레크로스가 그의 기사단과 함께 등장했다.
“저희가 조금 늦은 겁니까?”
레크로스 국왕이 투구를 벗으며 글렌에게 다가갔다.
“아니, 이 녀석들이 빨리 왔을 뿐이다.”
오그람이 글렌과 체임버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라온 님!”
기사단 사이에서 오웬의 삼왕자 그리어가 뛰어나와 손을 흔들었다.
“저도 마스터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덕분에 마스터의 벽을 부쉈다며 환하게 웃었다.
“네? 제가 무얼 했다고….”
라온이 삼왕자를 보며 손을 저었다.
“라온 님의 활약을 들을 때마다 저도 의지가 세워지더군요. 저와 대련했던 검사가 높은 곳에 오르는 것만 보아도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뇨. 그 모든 건 왕자님의 노력 덕분입니다. 전 한 게 없어요.”
라온이 웃으며 삼왕자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삼왕자가 미소를 그리고 마르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기 마르타 님. 저도 이제 마스터….”
“난 상급인데? 좁밥이네.”
마르타가 뭐 어쩌라는 듯이 턱을 치켜들었다.
“어억….”
삼왕자는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주저앉았다.
우우우우우!
삼왕자의 영혼이 안개처럼 흩어지려고 할 때 세 번째로 마탑의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발카르의 마법사들과 달리 로브로 전신을 가린 채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마탑주는?”
체임버가 마탑의 마법사들을 올려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이쪽에 계십니다.”
회백색 머리카락의 마법사가 뒤로 물러서자, 로브를 이불처럼 두른 채 쭈그려 앉아 있는 금발의 마법사가 드러났다.
“나, 나 왔어.”
마탑주가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다만 얼굴은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어휴! 누가 보면 뱀파이어인 줄 알겠네! 햇빛에 닿으면 죽냐고!”
체임버가 속이 터진다는 듯 다가가 마탑주를 끌어냈다.
마법사들은 익숙한 모습인지 당황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라, 라온 님!”
마탑주의 옆에서 키가 큰 거한이 걸어나와 로브를 벗었다.
“유리아 님?”
신주오령의 축제에서 만났던 신번 유리아였다.
본인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저,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는 담대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때와 달리 부끄러움을 타는 듯 목소리를 떨었다.
“라온 님의 활약은 책을 통해서 꾸준히 접하고 있었습니다.”
“책이라니요?”
“이겁니다.”
유리아가 라온 전기를 꺼냈다. 그는 사인을 해달라고 말하며 첫 페이지를 펼쳤다.
“…….”
라온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에서 저 책을 들이미는 사람을 보니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 그런데 이거 새 책 아닌가요?”
“물론 새 책입니다. 독서용, 배포용은 따로 있지요.”
유리아는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서 수십 권의 라온 전기를 보여주었다. 이쪽도 정상은 아니었다.
“어후….”
라온이 헛바람을 흘리며 라온 전기에 사인을 해주고 있을 때 마지막 차원을 문이 열렸다.
일순간 침묵이 차오르며 육황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우우우웅!
푸른 빛을 걷어내며 검은 장포를 두른 데루스 로베르트와 그의 막내아들 레폰 그리고 두 개의 검대가 걸어 나왔다.
“제가 제일 늦은 모양이군요.”
데루스가 실례했다는 듯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아직 시간이 안 됐으니, 사과할 필요 없네.”
오그람은 누구보다 데루스에게 분노하고 있을 텐데도, 감정을 죽인 채 웃었다.
“그래. 늙은 아재들이 너무 빨리 온 거야.”
체임버도 괜찮다며 마녀 모자를 좌우로 흔들었다.
“난 제일 늦게 오고 싶었어….”
마탑주는 벌써 지친다는 듯 헥헥 거렸다.
“그래도 제가 먼저 와서 준비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데루스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육황의 수장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됐으니, 회의장으로 가지.”
오그람은 준비를 끝내두었다며 회의장을 가리켰다.
“더러운 거 아니야?”
체임버가 입에 있던 사탕을 씹으며 눈을 흘겼다.
“걱정 마라. 다 새로 깔았으니까.”
오그람은 투정하는 체임버의 어깨를 밀어내며 먼저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아, 라온 님.”
데루스가 그 뒤를 따라가다 말고 라온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번 전쟁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하셨더군요. 제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게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는 전쟁을 홀로 끝낸 활약을 보고 싶었다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뇨. 뒤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한 일이죠.”
라온은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자연스럽게 웃었다.
“라온 님은 여러모로 다르시군요. 곧 초월의 벽도 넘으실 수 있을 겁니다.”
데루스가 악수를 하자는 듯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손등의 상처를 벌릴 수 있다면 벌리라는 듯 그의 입가에서 요사스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덤비라는 건가?’
데루스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자신감이 깃든 눈빛을 드러냈다.
놈의 손아귀가 지옥에서 올라온 듯 시꺼먼 색으로 번들거리는 것 같았다.
“아직 멀었습니다.”
라온이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데루스의 손아귀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