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32
제732화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온은 기대를 품은 눈빛을 연기하며 데루스 로베르트를 바라보았다.
‘너라면 당연히 허락할 수밖에 없겠지.’
육황 모두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분위기가 되었고, 데루스 역시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말을 꺼냈다.
힘을 키워야 한다고도 말했으니, 그가 거절하는 건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물론 정식으로 싸우면 제가 상대가 되지 않으니, 힘 조절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라온은 이미 허락을 받은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현묘하기로 이름 높은 로베르트 가문의 검술을 견식할 기회를 주십시오.”
정중하게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허리를 굽혔다.
“오오!”
“찬탈자와 천검성의 대련을 보게 되다니!”
“벌써부터 떨리는데….”
“이 대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연이겠어!”
중립 세력의 수장들도 이미 대련이 이루어진 듯 입맛을 다셨다.
“아, 아버지.”
레폰이 데루스를 보며 두 손을 모았다. 그도 대련해주기를 바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소원이라면….”
데루스가 은은한 미소를 그리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군요.”
그는 당연히 들어주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레폰도 기대가 되는지 들어 올린 주먹을 흔들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하지!”
오그람이 기다렸다는 듯 원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애들끼리 놀라고 대련장을 새로 다듬었는데, 첫 싸움으로는 나쁘지 않겠어.”
그는 어서 가자고 말하며 먼저 회의장을 나갔다.
“나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
레크로스 국왕은 대련 상대가 필요하면 말하라는 듯 웃으며 오그람의 뒤를 따라갔다.
“광풍대주. 괜찮겠느냐.”
글렌은 라온을 광풍대주라 부르며 가라앉은 시선을 던졌다.
“예. 조금 다친다고 하더라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라온은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네 소원이니, 내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지.”
글렌은 허가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데루스가 글렌의 뒤를 따라 나가며 손을 저었다.
“야. 넌 안 가?”
체임버가 마탑주를 보며 눈을 흘겼다.
“나 빼고 해….”
마탑주는 벌써 지쳤다는 듯 힘없이 손을 휘휘 흔들었다.
“웃기고 자빠졌네!”
체임버가 미간을 구기며 마탑주를 허리에 낀 채로 회의장에 나갔다.
키 차이가 많이 났기에 아이가 엄마를 끌고 나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우리도 가야지!”
“그래. 이러다가 좋은 자리 다 놓치겠어!”
“회의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이런 기연까지!”
중립 세력의 수장들도 너나 할 거 없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라온은 마지막으로 회의장을 나서며 칼날을 갈듯 손끝에 힘을 주었다.
‘첫 번째 계획은 이뤄졌어.’
당연하게도 이 대련은 내 계획이었다. 글렌과 육황의 수장들이 좋은 연기를 해준 덕분에 무리 없이 잘 먹혀들었다.
‘다만….’
데루스 로베르트는 이게 계획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거야.
그 눈치 빠른 뱀 새끼가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놈은 알면서도 대련을 받아들인 게 분명했다.
‘내가 네놈의 상처를 파헤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 자만. 스스로가 자만이라고조차 생각하지 않는 여유가 데루스의 심장을 찌를 검이 되어줄 것이다
라온은 제천검의 검병에 손을 얹은 채 회의장을 나섰다. 그의 눈빛이 밤을 두른 듯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이번 생은 전과 다를 거다.’
* * *
데루스는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 숙소에 들러서 장포를 벗었다.
“데루스 님.”
쿠바라가 장포를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저 즐거울 뿐이다.”
데루스가 두 손으로 깍지를 낀 채 웃었다.
“어떻게 접근해올지 궁금했는데, 대련이라니. 나쁘지 않은 수다.”
그는 재밌을 거 같다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낸 괴물입니다.”
쿠바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목소리를 낮췄다.
“그의 언행 때문에 저희의 계획이 무너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당연히 방심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만….”
데루스가 목을 풀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놈들에게는 방법이 없다. 죽음의 기운은 영혼의 밑바닥에 봉인했고, 이 손등의 상처를 여는 것도 불가능하지.”
그가 픽 웃으며 장갑을 낀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승패가 뻔히 갈리는 싸움이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지는구나. 늙은이들의 연기도 어색하고.”
“하지만….”
“물론 인정해줄 구석이 없는 건 아니야.”
데루스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날 대놓고 의심하기 힘드니, 대련을 신청한 건 분명히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라온과 육황은 대련 상황을 이용하여 장갑을 벗기고 손등의 상처를 드러내게 만들 계획을 짰을 것이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대련이라는 핑계가 있으니, 손해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테고.
‘다만 그건 너희만의 생각이지.’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되는 법. 라온과 육황의 생각과는 반대로 움직여서 놈들의 평판을 깎고, 보상을 얻어낼 계획을 세웠다.
‘기대가 되는군.’
기분 좋게 장갑을 벗긴 후 도플갱어의 가죽 앞에서 무너질 라온과 늙은이들의 표정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흥분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가자.”
데루스는 참지 못하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
쿠바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 * *
라온은 먼저 대련장에 올라와서 몸을 풀었다.
-네놈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이기니라.
라스는 코끼리와 개미의 싸움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본왕에게 맡기거라!
녀석은 만년 빙하에 가둬서 평생 고통을 주겠다며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이건 내 전쟁이야.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어.’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중요한 건 무학이 아니야.’
데루스와의 대련은 검술 대결이 아니라, 심리전이다.
누가 더 많이 준비했고, 누가 더 상대를 잘 아는지가 오늘의 승패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라온.”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집중력을 끌어 올리고 있을 때 글렌이 다가왔다.
“나는 아직 이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기막을 친 채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라도 바꾸고, 내가 끝내는 것이….”
“그러면 데루스는 죽을 때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라온이 등을 돌리며 눈동자를 숙였다.
“놈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저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믿어달라고 말하고서 허리를 굽혔다.
“그래. 알겠다. 다만….”
글렌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며 열기가 차오른 눈빛을 드러냈다.
“네가 위험할 것 같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끼어들 것이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부탁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굳어졌던 표정을 풀었다.
라온이 다시 대련장을 돌아보며 미소를 그렸다.
‘나쁘지 않네.’
대륙 최강의 검사가 뒤를 받쳐준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 본왕도 있느니라!
라스가 갑자기 소리를 치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위험하면 본왕을 강림시키거라!
녀석은 지기 싫다는 듯 귀를 쫑긋거리며 팔을 휘둘렀다.
‘그래. 그래.’
라온이 픽 웃으며 라스의 머리를 두드릴 때 데루스가 연무장으로 들어왔다.
그는 준비운동도 필요 없다는 듯 바로 대련장에 올라섰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예. 저는 끝났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제천검을 뽑았다.
“그럼 시작하죠.”
데루스가 뒤로 손을 뻗자, 영검단주 바리안이 그에게 푸른빛을 띤 검을 내어주었다.
“두 분 다 준비되셨습니까?”
회의장에 있던 야수연맹의 부맹주가 어느새 대련장에 올라와서 사회를 보고 있었다.
“예.”
“네.”
라온과 데루스가 동시에 답하며 검을 중단에 세웠다.
“그럼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부맹주가 거칠게 손을 내리고서 대련장을 내려갔다.
“3수를 양보하겠습니다.”
데루스는 선배 무인으로서 3수를 먼저 공격하라며 한발 물러섰다.
“사양하지 않고 가겠습니다!”
라온이 대련장을 거침없이 박찼다. 공간을 꿰뚫듯이 나아가며 제천검을 내질렀다.
붉게 달아오른 칼끝이 아릿하게 흔들리더니, 수백 조각의 꽃잎을 피워냈다.
만화공 천화.
화령.
이전보다 더 많은 불꽃의 조각들이 배는 빠른 속도로 나아가 데루스의 전신을 휘감았다.
“화려함 속에 예리함이 담긴 검술이로군요. 운용 속도도 빠르니, 쉽게 감당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다만….”
데루스가 감탄하듯 헛바람을 흘리며 검을 그어 내렸다.
고요히 떨어지는 일검이 사위를 에워싼 화령의 꽃잎들을 모조리 가라앉혔다.
“아직 부족합니다. 고수를 단숨에 잡으려면 속도와 변화를 더 끌어올리십시오.”
그는 지도 대련을 하듯이 진중한 조언을 해주었다.
치이이이잉!
라온은 화령이 잘려나갈 거라 예상이라도 한 듯 태화보를 밟고 데루스의 등 뒤를 파고들었다. 적섬삼십육결. 서른여섯 방위를 단숨에 찌르는 만화공의 절기가 섬전처럼 쏘아졌다.
“아름다울 정도로 잘 닦인 검술입니다. 물론….”
데루스가 손목을 돌렸다. 그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돌아가자, 철 조각이 자석에 달라붙듯 적섬삼십육결의 검격이 허무하게 가라앉았다.
“아직은 힘과 속도가 부족합니다.”
그는 이번에도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웃었다.
“후우.”
라온이 숨을 고르며 은밀하게 데루스의 손등을 살폈다.
화령과 적섬삼십육결을 꺼냈음에도 그의 장갑에는 자그마한 흔적도 새겨지지 않았다.
‘새로운 검술인가? 더 강해진 것 같군.’
글렌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는 초월자답게 데루스는 만화공의 검술 앞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절대 부술 수 없는 벽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어.’
자신의 계획은 무엇 하나 꺾이지 않았다. 끝에 가서 웃는 자가 진짜 승자다.
쿠구구구!
라온이 데루스에게 돌진하며 뒤로 젖혀둔 제천검을 내뻗었다.
검극에서 불꽃의 소용돌이가 피어나더니, 거대한 화룡의 형상을 그려냈다.
만화공 천화.
염룡결.
위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화룡의 포효가 데루스의 눈앞에서 장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아앙!
대련장의 중심에서 뱀의 혓바닥처럼 시뻘건 화염과 매캐한 연기가 끝없이 피어났다.
후우우웅.
데루스는 전혀 충격을 입지 않은 듯 검으로 바람을 일으켜 연기를 밀어냈다.
하지만 그의 가죽 장갑은 조금 찢어져 있었다.
“음.”
라온은 살짝 찢겨나간 데루스의 장갑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다만 그의 가슴은 조금도 흥분하지 않은 듯 아주 느릿하게 박동했다.
“위력에 치중한 검격이군요. 일부러 접근해서 터트린 것도 좋아요. 세밀함이 모자란 부분만 고치면 훌륭한 검술이 될 겁니다.”
데루스가 방어 자세를 풀며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양보가 끝났으니, 이제 제대로 시작해볼까요?”
“얼마든지.”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대련장 바닥에 내리꽂았다.
“검계현신 신마조화결.”
그의 나지막한 음성이 세계를 뒤튼다. 하늘에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고, 그 반대편에 은색의 달이 차올랐다.
“검계현신이라….”
데루스가 기대된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의 눈동자가 요요롭게 번들거렸다.
“점점 즐겁게 해주시는군요.”
“네. 아주 즐거울 겁니다.”
라온이 신검과 마검을 말아쥔 채 데루스 로베르트를 향해 돌진했다.
* * *
쩌어어엉!
데루스는 라온의 검격을 막아내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강하군.’
자신의 기습을 막아냈을 때도 느꼈지만, 라온 지그하르트의 무력은 진짜다.
자신조차 따라갈 수 없는 절대의 재능. 저 나이에 저 경지에 도달한 인간은 대륙의 역사를 모두 뒤져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재능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라온이 얼마나 강하든,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지녔든 상관없다.
결국 그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땅으로 가라앉을 테니까.
치이이잉!
라온의 검이 물가에 이지러지는 햇살처럼 유려한 변화를 그렸다. 전신의 급소를 노리듯 휘어지던 불꽃의 검은 자신의 손등을 노리며 날카롭게 떨어져 내렸다.
‘역시 손등을 노리고 있군.’
데루스가 라온의 검격을 쳐내며 입매를 비틀었다.
그는 아까부터 급소를 노리는 척하면서 은근히 손 쪽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화려한 검술을 연달아 펼치는 것도 손등을 노리는 의도를 들키지 않으려는 계획 같았다.
‘연기가 나쁘지는 않았어.’
하지만 처음부터 네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자신의 비웃음을 듣기라도 한 듯 라온의 검에 웅대한 무게가 실렸다. 하늘을 담아낸 듯한 검격. 글렌이 직접 전수했다는 창궁검인 것 같았다.
‘이 정도라면 당해줘도 되겠군.’
라온과 육황의 늙은이들이 절망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창궁검을 막을 수 있음에도 자연스럽게 가죽 장갑이 베이도록 만들었다.
촤아아악!
라온의 검격에 닿은 두터운 가죽 장갑이 갈라지고, 자신의 손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글렌과 오그람, 체임버, 레크로스 그리고 마탑주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끼던 장갑이었는데.”
데루스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오히려 손등을 내밀었다.
당연하게도 자신의 손등에는 자그마한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음….”
“역시.”
“하아….”
육황의 수장들은 도플갱어의 가죽을 느끼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 신음을 흘렸다.
‘그래, 알 수가 없겠지.’
도플갱어의 가죽은 마나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초월자라고 그 존재를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실망의 기색을 띈 육황의 수장들과 달리 라온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 너는 알고 있었겠지.’
데루스가 키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잘 아는 놈이니, 이 정도 사태는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너도 이 가죽을 알아차리지는 못해.
손등에 집중할수록 라온은 끝이 없는 늪에 빠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떻게 움직일지도 보이는구나.’
데루스가 속으로 비웃음을 흘리며 다시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후우우웅!
라온이 들고 있던 붉은빛의 신검이 투창처럼 쏘아져 와 눈앞을 가렸다.
“음!”
데루스가 검을 내리찍어 쇄도해오는 신검을 쳐냈다. 그는 당황스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캬아아앙!
튕겨나감 신검이 땅에 박히려는 순간 라온이 튀어나와 데루스의 손목을 잡았다.
“이건 뭐죠?”
“너무 빠르셔서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라온은 근접전을 해보자는 듯 마검을 휘둘러왔다.
“젊어서 그런지 돌발적이시군요.”
데루스가 놀란 듯이 입을 벌렸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는 농락의 운율이 피어나고 있었다.
‘역시 알아서 와주는군.’
라온은 내 손등에 검흔을 새겼던 기운은 이용하여 다시 상처를 끄집어내려는 게 분명했다.
사실 놈에게 남은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도 했다.
‘눈동자가 떨리고 있군.’
조급해졌기 때문인지 라온의 눈동자가 파도를 맞은 듯 출렁인다. 여전히 저 버릇도 고치지 못한 것 같았다.
우우우웅!
예상했던 대로 라온은 내 손등의 상처를 벌리기 위해서 불길의 오러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네놈의 힘으로는 무리다.’
도플갱어의 가죽과 진짜 피부 사이에 오러를 응집시켜서 놈의 기운이 파고들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차단했다.
“잘 안 되는 모양이군요.”
데루스가 아주 은밀한 기막을 펼친 채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당신의 수준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절대 안 되는 것 따위는 없어.”
라온은 발악을 하듯이 더 많은 기운을 데루스의 손등으로 밀어 넣었다.
“안 된다니까.”
데루스가 비웃음을 그리며 방어를 더 두텁게 다졌다. 전신을 방비하던 그의 시선이 손등으로만 흘러갔다.
글렌도, 다른 초월자도, 데루스조차 오직 손등에만 집중할 때.
라온은 그 너머를 보았다.
고오오오!
데루스의 손등을 지키고 있는 단단한 방어를 무시하고, 심장 속에 숨겨두었던 무색의 칼날을 꺼냈다.
치이이이잉!
흐릿하게 타오르는 칼날은 데루스의 손등이 아니라, 그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치이이잉!
불의 고리가 어둠을 밝혔고, 분노의 감정이 길을 열었으며, 아리스의 차원검과 오그람의 격해무가 데루스의 영혼을 뚫어낸 힘을 전해주었다.
“잠깐….”
데루스가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손목을 빼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죽음을 가르는 칼날은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데루스의 영혼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죽음의 봉인을 갈라냈으니까.
쩌어어어억!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고, 데루스의 투명한 눈동자가 시꺼멓게 물들었다.
그의 어깨 위로 죽음의 기운이 춤을 추듯이 타올랐다.
“…지독한 놈! 모든 것이 속임수였나!”
데루스가 통제를 벗어난 죽음의 기운을 보며 턱을 부르르 떨었다.
“지독한 게 아니라….”
라온이 데루스의 전신에서 꿈틀거리는 죽음의 기운을 마주하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철저한 거다. 데루스 로베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