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61
제761화
“그게 뭐죠?”
라온이 붉고, 푸른 쇠구슬을 보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금결은 아닌데?’
모든 기운을 증폭시켜준다는 금속인 금결과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색이 달랐다.
“역시 모르나?”
발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키득거렸다.
“이 붉은 놈은 열기를 증폭시키는 홍화금이고, 이 푸른 녀석은 냉기를 끌어올리는 빙정이다.”
그는 쇠구슬을 들어 올리며 그 이름을 말해주었다.
“금결처럼 모든 기운을 증폭시키지는 못하지만, 불길과 냉기만큼은 그 이상으로 강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금속이지.”
발칸은 너에게 잘 어울리지 않겠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금결도 있고.”
그는 낡은 상자에서 예전에 본 것과 같은 금결을 꺼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다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라온은 발칸의 손에 들려 있는 금속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던전이라도 정복하신건가?’
돈을 주어도 구하기 힘든 보물들을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르겠다.
특히 홍화금과 빙정은 자신도 모르는 금속이다 보니, 더 신기했다.
“받았다.”
발칸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받았다구요? 그것들을?”
“그래. 익명의 후원자가 가끔 주고 가더구나.”
그는 공방 밖의 하늘을 올려보며 피식 웃었다.
“익명의 후원자….”
검을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금속을 기부하고 가다니, 뭐 하는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꼭 네가 오거나 오기 전에 들르는군.”
발칸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입술을 비틀었다.
“제가 오기 전에….”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발칸의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뭐, 이 이야기는 됐고.”
발칸이 제천검을 내려놓고서 라온에게 턱을 까딱였다.
“뭔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구나.”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검이 말해주고 있지 않느냐.”
발칸은 검사의 흔들림은 검에도 나타난다며 눈썹을 내렸다.
“내게 말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마음은 잡아 두거라.”
그는 용광로에 불을 지피며 혀를 찼다.
“네가 흔들린다면 네 검도 망가질 테니까.”
발칸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며 묵직하게 시선을 내렸다.
“후우….”
라온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테이블 앞에 놓인 낡은 의자에 앉았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수도 있으니, 앉으세요.”
“흠.”
발칸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라온의 맞은편에 앉았다.
“사실….”
라온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초월에 오를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고민했던 것들을 말해주었다.
“별것도 아닌 고민이구나.”
발칸은 어이가 없다며 코웃음을 쳤다.
“예?”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발칸은 본래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네가 어떤 검사가 되겠다고 했는지 기억하느냐?”
그는 숯가마에서 했던 말을 원하는 듯 턱을 까딱였다.
“저는….”
“너는 ‘그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검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기억을 되새기기 전에 발칸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는 자신이 숯가마에서 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 기억하고 있었다.
“애송이가 그런 맹세를 하는 건 처음이라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지.”
발칸이 옅게 웃으며 제천검의 검신을 어루만졌다.
“네 목표는 최고의 무인이 되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대단한 재능과 의지를 지닌 인재도 갑작스럽게 죽어버리는 게 이 바닥이니까. 하지만….”
그가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용광로의 화력을 높였다.
“너는 그 목표를 이뤄내고 있더구나. 부왕을 꺾고 찬탈자라는 이명을 얻었고, 북멸왕 글렌 지그하르트를 살려냈으며, 데루스 로베르트의 정체까지 밝혀냈지.”
발칸이 정말 시원했다는 듯 손을 크게 내리쳤다.
“너는 네가 정했던 목표대로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검사가 되어가고 있다. 천하의 데루스 로베르트를 그렇게 망가뜨린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그건….”
라온이 운이 좋았다고 말하려고 할 때 발칸의 말이 이어졌다.
“대륙을 놀라게 만든 라온 지그하르트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초월에 올라서야 되겠느냐.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으려면 네 모든 것을 가지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발칸은 글렌과 같은 말을 하면서 씩 웃었다. 다른 길이라고 해도 정상에 선 사람들은 비슷한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네요.”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꺾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
데루스 로베르트의 정체를 밝히고, 실비아를 직계에 올린다는 목표는 지금 들어도 비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 목표를 모두 이뤄냈고, 그랜드 마스터 최상급에 올랐다.
불가능에 한없이 가까운 목표를 달성했기에 초월에 오를 때도 못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꺾이지 않으려면 평범해서는 안 되겠죠.”
“이제야 눈빛이 좋아졌구나.”
발칸은 마음에 든다고 중얼거리며 크게 손뼉을 쳤다.
“몇 달 동안 오러를 만들지 못해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던 소년 같아.”
그는 숯가마 시절을 떠올린 듯 연하게 웃었다.
“앞으로는 잊지 않겠습니다.”
라온은 고맙다고 말하며 발칸에게 고개를 숙였다.
“됐고. 이제 작업을….”
발칸이 일을 시작하자고 말하려 할 때 공방의 문이 열리고, 곰방대를 문 중년인이 들어왔다. 발칸의 아들 하랜이었다.
“라온? 네가 여긴 웬일이야?”
하랜이 곰방대를 거칠게 빼내며 다가왔다.
“발칸님이 돌아오셨다고 해서 제천검을 맡기려고 왔습니다.”
라온이 오랜만이라고 말하고서 하랜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럼 나도 도와줄게!”
하랜은 잘 됐다고 말하며 발칸의 옆으로 향했다.
“아버지! 저도 돕겠습니다.”
“됐다.”
발칸은 필요 없다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예? 저, 저도 그동안 계속 수련했잖아요! 칼을 팔아도 되겠다고 인정하셔놓고….”
하랜은 발칸이 거부할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필요 없다는 것이다. 잘 보아라. 네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발칸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아…!”
하랜은 발칸과 라온 그리고 공방을 둘러보다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알겠어요.”
그는 곰방대를 내려놓고, 진중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하랜 님?”
“라온. 기다리고 있어.”
하랜은 라온에게 한쪽 눈을 찡긋 하고서 공방을 나갔다.
그동안 망치를 얼마나 두드렸는지 그의 등은 발칸보다도 넓어져 있었다.
“지금 뭐가 어떻게….”
“저놈은 신경 쓰지 말고, 이 쇠에 네 기운을 넣어 보거라.”
발칸이 테이블 위에 놓아둔 홍화금과 빙정 그리고 금결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세 개의 금속을 한 번에 잡았다.
고오오오오!
불의 고리를 시작으로 만화공, 글래시아, 광풍류 그리고 도검존에게 얻었던 기운까지 모두 담아냈다.
‘조금 더 가볼까.’
카룬을 통해서 감정과 의념을 어떻게 끌어내는지를 보았기에 쌓인 감정과 의념까지 금속 안에 담아냈다.
“딱 좋구나.”
발칸은 홍화금과 빙정, 금결이 덜덜 떨며 움직이는 것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바로 시작해도 되겠어.”
그는 뜨겁게 달아오른 용광로 속에 금탄을 집어넣고 풀무를 밟았다.
화아아아악!
최강의 숯인 금탄의 열기에 거센 바람이 붙으며 어마어마한 화력이 뿜어져 나왔다. 용암으로 가득 찬 화산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너는 그날처럼 호흡하거라. 그거면 충분해.”
“알겠습니다.”
라온이 입술을 가늘게 씹으며 용광로의 앞에 섰다. 피부가 아려올 정도의 열기를 받으며 불의 고리와 만화공을 운용했다.
‘무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은 강해지는 것보다 방향을 정하는 게 우선이었다.
쩌어어엉!
발칸의 망치질에 공명하듯 만화공의 기운이 요동친다.
라온은 눈을 내리감은 채 초월을 넘어선 장인의 망치질에 정신을 집중했다.
‘내 근본을 돌아보자.’
수많은 기운과 검을 익혔지만, 자신의 근본은 불의 고리와 만화공이다.
두 기운이 바탕이 되어주었기에 글렌이 놀랄 정도의 그릇을 만들 수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지니고 초월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근본을 키워야 했다.
후우우.
라온과 발칸이 같은 불 앞에서 무아에 빠지며 둥그스름한 공방에서는 장인이 쇠를 두드리는 굉음과 검사의 호흡 소리만 들려왔다.
***
“아니이이이….”
리메르가 짙은 연기가 피어나오는 발칸의 공방을 보다가 등을 돌렸다.
“이럴 거면 그냥 대놓고 좀 줘요!”
뒤에 서 있는 글렌을 째려보며 미간을 구겼다.
“미르탄에 가라고 알려줘 놓고, 금결을 준 건 왜 비밀로 하는 건데!”
글렌은 라온이 초월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먼저 미르탄에 찾아와서 발칸에게 세 개의 금속을 던져주었다.
더 웃긴 건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오다가 주웠다고 하는 것이다.
라온을 위한 행동을 해놓고, 왜 비밀로 하는 건지 모르겠다.
“큼! 다른 아이들이 질투를 할 수도 있지 않느냐.”
글렌이 짧게 헛기침을 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카룬이 변한 이상 그렇게 쪼잔한 놈은 없어요!”
리메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만약 있다고 해도 말도 못 꺼내죠. 카룬이나, 발데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는 지금의 지그하르트는 예전과 다르다며 발을 굴렀다.
“에휴! 북멸왕이 아니라, 핑계왕이라니까.”
리메르는 지친다며 길게 혀를 찼다.
“이러니까 라온한테 할아버지 소리를 못 듣지.”
“본 거냐?”
“뭘 봐요. 안 봐도 뻔하죠. 그냥 앞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면 다 해결되는데….”
“그건 아니다.”
글렌이 느릿하게 턱을 틀었다.
“그 호칭은 라온이 스스로 불러야 의미가 있다.”
북망산 아래에서 할아버지라 부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건 억지로 불리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진심에서 묻어나오는 호칭이었다.
“그럼 금속 준 걸 말하라고요!”
리메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음, 그건….”
“하아, 나 진짜. 답답해서 못 살겠네. 정신 좀 차립시다. 예?”
그는 생각 좀 하라고 말하며 본인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저러니까 뒷방 할배 소리를 듣….”
“입 좀 닥쳐!”
“허억!”
리메르가 주절거리다가 셰릴의 발차기를 맞고 허공으로 밀려났다.
“여, 여긴 진짜 죽어! 이 망할 여자… 끄아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
셰릴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 리메르를 바라보다가 글렌의 옆으로 물러섰다.
“저도 가주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억지로 불리는 호칭은 의미가 없죠. 다만….”
그녀가 절벽 끝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저 멍청이의 말처럼 금속을 주었다는 것 정도는 말하는 게 맞습니다.”
“…그럼 왜 그 놈을 민 거냐?”
“시끄러워서요.”
셰릴은 손을 탁탁 털며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턱을 틀었다.
“그렇군.”
글렌은 셰릴의 말에 공감하는 듯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라온은 어떤가요?”
셰릴이 아지랑이가 피어나오는 발칸의 공방을 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바로 강해지거나, 깨달음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글렌은 서로의 호흡이 맞아들어가는 라온과 발칸을 보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그 깨달음을 얻을 그릇은 만들어지고 있는 듯하구나.”
***
이틀 후.
발칸의 공방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던 열기가 멈췄다.
라온은 잔불처럼 끝없이 이어지던 망치 소리가 멈춘 순간 천천히 눈을 떴다.
‘맑다.’
연기와 먼지 그리고 독한 열기로 가득 찬 공방과 달리 자신의 머릿속은 정원의 호수처럼 잔잔하면서도 투명했다.
그동안 뇌리를 어지럽혔던 고민들이 빗물에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
-끄으, 이제야 끝난 것이냐?
라스가 기지개를 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느니라!
녀석은 어떻게 이틀 넘게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만히 서 있던 게 아니라….’
라온이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마음과 정신을 다듬었어.’
-확실히.
라스가 라온을 보며 콧잔등을 좁혔다.
-조금은 달라진 것 같구나.
녀석은 무력 이상의 변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의 인정을 받으며 시선을 내렸다.
발칸이 쉴 새 없이 두드렸던 모루 위에 은빛으로 명멸하는 검이 놓여 있었다.
그간 수없이 휘둘렀던 제천검이지만, 이전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붉고, 푸른 선?’
고고하면서도 유려한 칼날은 그대로였지만, 검신 위로 두 줄의 선이 새겨져 있었다.
홍화금과 빙정이 금결과 함께 녹아내린 것 같았다.
“끄으응!”
발칸이 굽히고 있던 허리를 곧게 폈다. 그는 십 년은 늙어 보였지만, 그 이상의 행복을 얻은 눈빛으로 제천검을 바라보았다.
“받거라.”
발칸이 깨끗한 천으로 제천검의 날을 닦고서 라온에게 건네주었다.
“네가 흔들려도 널 잡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제천이다.”
그는 어서 가져가라는 듯 검을 가볍게 흔들었다.
“아….”
라온이 아이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제천검을 받았다.
‘팔이 길어진 것 같아.’
검병을 말아 쥐자, 풀이 붙은 듯 손아귀가 꽉 물리는 게 느껴졌다.
검을 잡은 게 아니라, 자신의 육체가 더 길게 늘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고오오오오.
라온이 제천검을 중단에 세운 후 발칸의 망치 소리를 들으며 다듬은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화아아아아!
이어서 만화공을 운용하자, 검신에 돋아난 붉은 선에서 선명한 빛이 타오르며 검신 전체가 뻘겋게 물들었다.
‘이게 증폭인가?’
발칸이 자신했던 대로 홍화금이 깃든 제천검은 이전보다 더 진한 열기를 일으켰다. 검 자체가 불길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어떠냐.”
발칸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턱을 까딱였다.
“완벽합니다.”
라온이 제천검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
발칸의 말대로 자신의 의지가 흔들려도 이 검만큼은 꺾이지 않을 것 같았다. 완벽. 그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끙….
라스가 제천검을 이리저리 살피고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네놈이 쓰기에는 아까울 정도이니라.
녀석이 저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찬사나 다름없었다.
“그러냐.”
발칸은 기분이 좋은 듯 다 식은 술을 마시며 키득거렸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제천검을 아래로 내리고 발칸에게 허리를 굽혔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도움만 받고….”
“쇠가 오그라드는 소리는 그만 하거라.”
발칸이 이마를 구기며 손을 저었다.
“도움을 받은 건 너만이 아니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싸워서 이길 때마다 검을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는 놈들이 늘더구나. 얼마 전에는 그랜드 마스터도 왔었지.”
그는 검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며 혀를 찼다.
“그래서 만들어주셨습니까?”
“내가 그런 애송이들의 검을 왜 만들 것 같으냐?”
“아니죠.”
“그래.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발칸은 어림없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도움이 되었다는 겁니까?”
“여기는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지 않느냐.”
그가 손을 펼치며 공방 아래로 보이는 미르탄 마을을 가리켰다.
“내게 거절당한 애송이들은 다른 녀석들에게 검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지. 덕분에 마을에 활력이 돌고 있어.”
발칸이 손목을 돌리며 웃었다.
“네 활약이 이 마을의 번영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고맙다고 말할 수밖에.”
그는 그 이유로 검의 수리비는 받지 않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난 한 말은 무조건 지킨다. 알고 있지?”
발칸은 돈은 필요 없다며 다시 술병을 들이켰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옅게 웃으며 물러났다. 발칸은 어린 수련생이었던 자신과의 약속도 지킬 정도로 신의가 있는 사람이다.
저렇게 나온다면 방법이 없었다.
“그럼 감사하다는 인사는 거절하지 마십시오.”
정중하게 검례를 취하고서 제천검을 검집에 넣으려고 할 때였다.
쿠웅!
공방의 문이 거칠게 열리고 하랜이 들어왔다. 그는 검집 하나를 든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아, 아직 안 늦었지?”
“하랜님?”
“새 검집이다.”
하랜은 제천검의 검집을 만들어 왔다고 말하며 용의 머리가 조각되어있는 검집을 내밀었다.
“직접 만드신 겁니까?”
“그럼 누가 만들었겠어.”
그는 당연하다며 콧김을 내뿜었다.
“흥. 네놈 주제에 검집은 무슨.”
발칸이 어림없다는 듯 다가가서 먼저 검집을 살폈다.
“음…?”
다만 그는 무시할 때와 달리 검집을 보고 눈썹을 올렸다.
“어때요? 괜찮죠?”
하랜은 자신이 있다는 듯 상체가 뒤로 넘어가도록 허리를 폈다.
“썩 나쁘지 않구나.”
발칸은 간신히 합격점은 넘은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들이라고 봐주지 않기에 정말 잘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이야아아!”
하랜이 포효와 함께 손을 뻗었다. 아버지이자, 대륙 장인인 발칸에게 인정받은 게 기쁜 것 같았다.
“그럼 그게….”
라온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처음에 발칸이 하랜에게 따로 할 일 있다고 한 건 이 검집을 만드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넣어봐.”
하랜은 어서 제천검을 넣어보라는 듯 두 손을 비볐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검집에 제천검을 넣었다.
찰칵.
검날과 검집이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맞물려 들어갔다. 꼭 한 사람이 만든 것 같은 완성도였다.
“딱 맞네요. 모양도 좋습니다.”
라온이 하랜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용의 머리는 광룡 카이바르 같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
“그 검집의 진짜는 단단함도, 그 형태도 아니야.”
하랜이 흐흐 웃으며 고개를 쳐들었다.
“너 설마 또!”
“그 검집에는….”
발칸이 눈을 부릅뜰 때 하랜이 손가락을 위로 들어 올렸다.
“특수 능력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