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64
제764화
우우우우우우!
쌍두귀는 몬스터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듯한 녹색의 왕을 보며 두 손을 매만졌다.
‘저거 진짜 물건이군.’
전대 녹색의 왕은 몬스터를 지배하는 쪽에 재능이 집중되어 있어서 언제나 뒤에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저 어린 계집은 달랐다.
‘재능 자체가 독보적이야.’
몬스터를 지배하는 능력도, 무력에 대한 재능도 역대급이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고금 제일의 재능을 지녔다고 하는데, 저 녀석도 크게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긴 저러니 그분의 눈에 들어갔겠지.’
본래 녹색의 왕은 타천의 손에서 놀아나야 했지만, 그녀의 재능을 본 천마가 직접 데리고 와 무학을 가르쳤다.
그것만으로도 저 아이의 재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
쌍두귀는 녹색의 왕이 들고 있는 사자의 검과 달빛을 형상화한 귀걸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아티팩트까지 얻었으니, 날개를 단 것이나 마찬가지지.’
조금 전 녹색의 왕과 자신 그리고 절혼검은 500년 전 초월에 올랐다는 대검호의 던전을 정복하고 나왔다.
함정과 전투를 연달아 치르고, 보물을 얻으며 모두의 무력이 크게 성장했기에 이 넷이라면 초월자라고 해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분이 어때? 대견하나?”
쌍두귀가 뒤에 서 있는 절혼검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하긴 지금의 너랑은 상관없겠지.”
“…….”
절혼검은 어떠한 답도, 반응도 하지 않은 채 녹색의 왕만을 바라보았다.
투구 속에서 일렁이는 눈빛은 기뻐하는 것 같기도, 슬퍼하는 것 같기도 혹은 절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
그는 쌍두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녹색의 왕을 보호하려는 듯 앞으로 나아갔다.
“혀를 자르지는 않았는데, 왜 말을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쌍두귀가 천천히 걸어가는 절혼검을 보며 혀를 찼다.
“타천 놈 뭘 건드린 거지?”
타천이 절혼검과 녹색의 왕의 몸에 ‘특별한 무언가’를 심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요즘 저 둘을 보면 정신적인 부분도 건드린 것 같았다.
“하여튼 상종하기 싫은 놈이라니까.”
쌍두귀는 절혼검의 검집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녹색의 왕은 몬스터들에 대한 지배를 더 강화한 후 쌍두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앞으로 어쩔 거냐는 듯 고요한 눈동자를 드러냈다.
“흐음…….”
쌍두귀는 본인의 기감으로도 다 파악할 수 없는 몬스터들의 대군을 훑어보다가 중앙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정도 군대를 그냥 버리고 가는 건 아깝지.”
그는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들을 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저 정도는 부수고 가도 될 거야.”
“…….”
녹색의 왕이 손을 들어 올리자, 몬스터 대군이 대지를 울리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번 죽음을 이겨냈던 아리안 가문을 향해서.
쿠우웅!
***
타닥타닥.
라온은 잔잔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연한 미소를 그렸다.
-불을 보고 웃는 것을 보니, 본왕과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로구나!
라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넌 무슨 생각을 했는데?’
-저 불길에 갓 잡은 생선을 구워 먹으면 그야말로 천국이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이니라! 네놈은 아니더냐?
녀석은 불맛이 떠오르지 않냐며 양손을 붕붕 휘저었다.
‘우리 밥 먹은 지 두 시간도 안 됐는데….’
-본왕은 이미 소화가 끝났느니라!
라스는 마왕의 식욕을 얕보지 말라며 턱을 치켜들었다.
‘너는 식탐의 마왕이 아니잖아….’
라온이 헛웃음을 흘렸다. 노숙하는 것 치고는 거하게 먹었는데, 취업 사기 마왕에게는 아직 부족한 것 같았다.
-식욕이 땡긴 게 아니라면 무슨 생각을 한 것이냐?
‘불을 어떻게 이용해야 강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었어.’
-불?
‘그래.’
무엇 하나 놓치지 않은 채 초월에 오르겠다고 다짐했으니, 불의 고리와 만화공도 최대로 끌어 올리고 싶었다.
-본왕의 식욕 이상으로 욕심이 많은 놈이니라.
라스는 그리드랑 친구 먹으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 놈은 싫어.’
슬로스나 글러트니처럼 호감 가는 마왕들과 달리 그리드와는 그다지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보는 눈은 있구나. 진정한 마왕은 오직 본왕뿐이니라! 다만, 프라이드 놈은 조금 인정을… 음.
라스는 오만을 싫어하면서도 인정은 하는 듯 짧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냐.’
라스답다고 생각하며 다시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편에서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불멍 때리냐?”
리메르가 옅은 미소와 함께 라온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아직 시간 남았는데 왜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라온이 아직 어둑한 밤하늘을 올려보며 눈매를 좁혔다. 리메르가 다음 불침번은 맞지만, 아직은 일어날 때가 아니었다.
“잠이 안 와서 먼저 나왔어.”
리메르는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며 손을 저었다.
“하긴 실컷 주무셨을 테니까요.”
라온이 리메르를 보며 혀를 찼다. 그는 예상했던 대로 임무 출발 시간에 늦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 아니, 엘프였다.
“에이! 사람이 살다 보면 지각도 하고, 쉬기도 하는 거지!”
“그건 늦은 사람이 아니라, 기다린 사람이 용서해줄 때 하는 말입니다.”
“오, 생각해보니 그렇네.”
리메르는 바로 인정하며 낄낄 웃었다.
라온과 리메르는 잠시 농담을 던지다가 입들 다문 채 모닥불만을 바라보았다.
“라온.”
장작 하나가 다 타버린 채 가라앉았을 때 리메르가 라온을 불렀다.
“예.”
“너는 왜 가주 자리에 관심이 없는 거냐?”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의 너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랜드 마스터 최상급에 오른 직계야. 카룬이나, 데니어보다는 못해도, 발데르에게는 밀리지 않지. 그 정도 위치와 무력이면 가주 자리에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리메르가 왼손 검지와 오른손 검지를 검처럼 부딪치며 말을 이었다.
“오황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지그하르트의 가장 높은 옥좌. 고고하면서도 지엄한 왕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데, 넌 아예 관심이 없잖아. 그게 신기하다고.”
그는 답을 해달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전 지금의 삶에 만족하니까요.”
라온이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전생에 무엇 하나 가지지 못했고, 무엇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죽었기에 이번 삶에서 얻은 가치만으로도 행복했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를 가주 자리에는 별 욕심이 나지 않았다.
“가주 자리가 높고 대단하다고 해도 제게 맞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죠.”
“음, 그건 반박할 수가 없네.”
리메르가 인정한다며 손가락을 내렸다.
“그리고 지그하르트의 옥좌가 위대한 이유는 지금의 가주님이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글렌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가주가 된다면 지그하르트는 오황의 위치는 유지해도 대륙 최강의 세력이라는 이름은 반납하게 될 것이다.
글렌 지그하르트라는 이름은 그 정도로 압도적인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확실히 가주님이 계시기에 지금의 지그하르트가 있긴 하지.”
리메르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나는 네가 가주님 이상으로 지그하르트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절대 아닙…….”
“넌 모르겠지만, 가주님도 처음에 옥좌에 앉았을 때는 덜덜 떨었어.”
그는 눈동자를 들어 올리며 키득거렸다.
“정말로요?”
라온이 눈을 끔벅였다. 글렌이 떨었다는 게 믿어 지지가 않았다.
“명령도 제대로 못 내리고, 말까지 더듬었다니까. 나랑 셰릴, 로엔 님이 뒤에서 대본도 써주고, 옷도 다려주고. 고생했지.”
리메르는 글렌이 들으면 벼락을 내리칠 말을 꺼내며 손을 휘저었다.
“정말이면 보고 싶기는 하네요.”
라온이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사실이든 아니든 글렌의 어벙한 모습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본왕이 이겼느니라!
라스가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나딘빵 영감탱이와 달리 본왕은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잘했느니라!
녀석은 완벽한 군주였다며 콧대를 세웠다.
타악!
라온이 손가락을 튕겨서 라스의 코를 때렸다.
-꾸엑! 왜 때리는 것이냐!
난동을 부리는 라스를 밀어내고 리메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요.”
“뭐가?”
“용기를 주시려고 한 말이잖아요.”
“진심일 뿐이야.”
리메르는 웃음을 담은 표정 속에서 진중한 눈빛을 드러냈다.
“나는 네가 가주가 된다면 지그하르트가 이 이상의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가 씩 웃으며 검집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보는 게 내 새로운 목표기도 하고.”
“일단 진지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리메르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지그하르트 가주에 대한 목표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 그거면 됐어.”
“그런데 만약 제가 계속 가주 자리에 관심이 없고, 가문을 나간다고 하면요?”
“그럼 뭐, 따라가야지.”
리메르가 깍지 낀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며 웃었다.
“어딜 따라와요. 지그하르트에 있어야지!”
“부대주가 대주 놓고 어디에 가냐.”
그는 죽어서도 따라가겠다며 손을 들어 올렸다.
“후, 마음대로 하세요.”
라온이 고개를 돌린 채 낮은 숨을 내쉬었다. 민망했지만, 끝까지 따라간다고 말해주니, 그저 고마웠다.
-귀때기 놈이 다른 건 몰라도 의리는 있는 것 같으니라.
라스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리메르가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서 돈의 모양을 그렸다.
“월급은 주지? 너 돈 많잖아.”
그는 복지가 떨어질 테니, 급여는 높아져야 한다며 입맛을 다셨다.
“…….”
라온의 부드러웠던 눈동자가 짜게 식었다.
***
라온은 멀리 보이는 아리안 가문의 성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성벽 주변으로 수많은 시체가 불길에 타오르고 있었다.
타닥거리는 소리는 모닥불과 비슷했지만, 몬스터 특유의 역겨운 노린내가 이곳까지 풍겨오는 것 같았다.
“으어어억!”
도리안은 아리안 가문 뒤편에 쌓여 있는 몬스터들의 시체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저, 저게 다 몬스터 시체라고? 너무 많잖아요!”
그는 각오한 것 이상으로 많은 몬스터들의 시체를 보며 턱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언제 이렇게…….”
버렌은 돌탑처럼 쌓인 채 타오르고 있는 몬스터들의 시체를 살피며 입술을 씹었다.
“숫자도 많지만, 몬스터 하나하나가 굉장히 커.”
마르타는 일반적인 개체보다 훨씬 큰 오크들의 시체를 보며 손끝을 매만졌다.
“보통 놈들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사람도 많이 죽었어…….”
루난은 몬스터와 함께 죽은 듯한 검사와 병사들을 보며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을 봐라.”
리메르가 절벽의 끝에 서서 라온과 광풍대를 불렀다.
그곳으로 가니, 몬스터로 이루어진 녹색의 숲이 성을 덮치는 듯한 광경이 보였다.
“어마어마한 숫자야. 왕이든, 에덴이든 보통 놈이 아니다.”
그는 힘겨운 전투를 각오하라는 듯 입술을 씹었다.
고오오오!
라온이 아리안 가문의 성과 성벽을 살폈다.
검사와 레인저들의 격한 숨결과 몬스터들의 뒤틀린 울음소리, 그리고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굉음이 연달아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시간이 없군.’
숫자도 숫자지만, 몬스터 하나하나가 강했다. 이대로라면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아리안 가문이 무너질 것 같았다.
“우회는 없다. 바로 절벽을 내려가서 아리안 가문을 지원한다.”
한 명이라도 살리려면 직선으로 길을 뚫는 수밖에 없었기에 절벽을 가로지르라는 지시를 내렸다.
“예!”
광풍대는 깎아지른 절벽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서슬 퍼런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들의 발밑에서 광풍류의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광풍대. 돌격.”
라온의 외침을 따라 지그하르트 최강의 바람이 어둠을 갈랐다.
***
쿠구구구!
죽음의 늪이 사라진 이후에도 꾸준히 정비했던 아리안 가문의 성벽에 자그마한 균열이 돋아났다.
너무도 많은 몬스터들이 모여들며 무게만으로 성벽에 손상이 쌓이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성벽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오크와 몬스터들이 서로의 어깨를 밟고, 성벽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아리안 가주가 직접 훈련 시킨 정예 검사들이 길을 막고, 백전무퇴의 레인저들이 활과 쇠뇌를 쏘아내고 있었지만, 몬스터들의 해일은 그치지 않았다.
“우측에 트롤 셋!”
“오크도 올라왔습니다! 우측에 화살을 집중해주세요!”
“좌측도 마찬가지야! 오크 투사가 뛰어들었어!”
검사들은 몸이 두 개인 것처럼 달리며 성벽에 올라온 몬스터들을 베었지만, 숫자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명씩 쓰러졌다.
“트, 트롤이…… 커헉!”
좌측을 지원하러 달려간 젊은 검사가 트롤의 손에 잡혔다. 그는 고통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곤죽이 되어 절명했다.
촤아아아악!
트롤이 다음 먹잇감을 노리고 성 밑으로 뛰어내리려고 할 때 선명한 검광이 번뜩이며 놈의 머리를 쪼개버렸다.
“물러서지 마라!”
아리안 가문의 가주, 웬디 아리안이다. 그녀는 강기를 장대하게 뻗어내 성벽에 올라온 몬스터들을 모조리 갈라버렸다.
“이곳은 우리의 집이자, 우리의 땅이다! 목숨을 걸고 사수하라!”
웬디는 더 짙은 빛을 토해내는 검을 들어 올리며 검사와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였다.
“가주님을 따르라!”
“성벽을 사수해!”
“이곳이 마지막 벽이다!”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여!”
검사와 병사들은 웬디의 활약에 힘을 얻은 듯 악을 지르며 몬스터들을 막아섰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웬디의 기세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 불타는 시체를 밟으며 성벽을 올라왔다.
“끄으아악!”
“우측 성벽이 깨졌습니다! 오크가…… 크헉!”
“주, 중앙 성벽에 균열이 심합니다!”
검사들의 체력과 오러가 빠지며 성벽에 올라오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졌다.
웬디가 마스터라고 해도 모두를 보호할 수는 없었기에 검사와 병사들이 몬스터들의 손에 찌부러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레인저의 수장인 프리카가 활을 내던지고 검을 뽑아 들었다.
“1조와 2조는 나를 따라서 성벽으로 올라간다!”
레인저들은 성벽을 어떻게든 사수하기 위해서 활을 버리고 몬스터와 육탄전을 벌였다.
“조금만 버텨! 놈들도 한계가 있을…….”
프리카가 악을 지르며 수하들을 독려할 때 성벽 아래에서 땅을 뒤틀리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강철로 만든 성문이 몬스터들을 버티지 못하고 파열된 것이다.
쿠와아아앙!
오크와 트롤, 오우거가 도끼와 몽둥이를 내리치며 성문을 구멍을 더 크게 뚫어냈다.
크아아아아!
오크들은 성문의 구멍을 더 크게 벌리며 성안으로 들어왔다. 균열이 작아서 제살이 뜯겨나갔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들소처럼 달려들었다.
“미, 밑이 뚫렸다!”
“2조는 아래로 내려가! 오크를 막아!”
“아악!”
성벽을 막으려는 검사들과 성문을 지키려는 병사들 그리고 계속 모여드는 몬스터들로 인해서 아리안 가문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죽음의 냄새가 짙게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막는다!”
프리카가 병사들을 습격하려는 오크의 등에 올라타서 검으로 놈의 목을 찔렀다.
그는 다른 오크의 주먹에 맞으면서도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크윽….”
웬디는 사방에서 모여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가주가 된 이후 아리안을 지키기 위해서 끝없이 단련했지만, 이 상황을 이겨낼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고작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성문이 무너지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광풍대가 도착하려면 새벽은 되어야 할 텐데….’
지그하르트가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해도 다섯 시간은 더 버텨야 하는데, 그때까지 모두를 지킬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버텨야 해.’
라온과 광풍대가 바로 이 자리에서 불가능은 없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던가.
지금은 절망과 공포에 떨고 있을 때가 아니라,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할 때였다.
“싸워라! 우리의 가족이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웬디는 수하들을 믿고 성벽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성벽을 뚫고 들어오는 오크들이 너무 많아서 병사들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제기랄!’
결국 성벽 사수를 포기하고, 아래로 내려가 성문 뚫고 들어온 오크를 베었다.
콰아아아앙!
다만 그게 노림수였다는 듯 아래에서 기회를 엿보던 오우거들이 성벽을 뛰어 올라와 검사들을 향해 바위만 한 주먹을 휘둘렀다.
“아아…….”
웬디는 아직 남아 있는 오크를 다 잡지도 못한 채 다시 성벽 위로 달려갔지만, 발이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제발! 제발 늦지 마!’
억지로 다리를 움직이며 검을 뻗었지만 역시나 닿지 않았다.
‘아아….’
직접 키워서 수하보다는 제자 같은 검사들을 지킬 수 없다는 절망감이 심장을 꽉 움켜쥘 때였다.
후우우우웅!
등 뒤에서 따스하면서도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촤아아아악!
몬스터의 노린내를 지워내는 바람이 성 전체를 휘감은 순간 병사들을 죽이려던 오크들의 목이 모조리 떨어졌다.
쿠구구구구!
성안만이 아니다. 성벽 위에 올라가서 검사들을 죽이려던 오우거 역시 몸통이 반으로 갈라진 채 성 밑으로 추락했다.
“아…….”
웬디는 성벽 중앙에 나타난 검은 장포의 검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험난한 전투를 치르며 그리던 남자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라온 지그하르트. 용살자를 넘어 찬탈자의 이명을 지닌 절대의 검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할 게 할 테니, 쉬고 계세요.”
라온이 제천검을 들어 올려 성벽 아래에 있는 몬스터의 해일을 가리켰다.
“광풍대.”
그의 나지막한 부름에 광풍대 검사들이 그의 뒤에 섰다. 무력대 자체가 하나의 검이 된 듯한 섬뜩함이 피어올랐다.
“지워라.”
라온의 눈동자에 붉은 뇌전이 번뜩인 순간 지그하르트의 차디찬 바람이 몬스터들의 해일을 갈랐다.
쿠우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