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72
제772화
검계현신 개벽의 장점은 무력의 성장에 따라 위력이 강해지는 게 전부가 아니다.
전투 상황에 맞게 검계의 투로와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점이 개벽의 진정한 힘이었다.
콰아아아아!
라온은 두 명의 쌍두귀와 싸우며 파악한 빈틈을 향해서 개벽을 그었고, 그 찬란한 황금빛은 놈들이 피할 공간 자체를 지운 채 뻗어 나갔다.
뿌드드득!
노인 쌍두귀가 들고 있던 대검이 쪼개지고, 어린 쌍두귀의 나무 몽둥이가 가루조차 남지 않고 박살 났다.
하지만 아직 개벽의 빛은 저물지 않았다. 새벽을 지우는 태양처럼 점점 더 짙은 휘광을 일으키며 천지를 뒤덮었다.
그 고고한 빛무리는 두 명의 쌍두귀만이 아니라, 뒤에 있던 몬스터들까지 반으로 갈라버렸다.
스으으으.
라온이 제천검을 내리자, 광활한 빛이 사그라들고, 시간이 멎은 듯한 전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수천이 넘었던 몬스터들이 숨을 멈춘 채 기울어졌고, 푸른 평원 위로 붉은 핏물이 차올랐다.
“끄으으윽….”
“흐어어….”
두 명의 쌍두귀는 지니고 있던 투기를 모조리 폭발시킨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비, 빌어먹을….”
“으아아악!”
노인 쌍두귀는 대검을 쥐고 있던 양팔이 모두 잘려나간 채 무릎을 꿇고 있었고, 어린 쌍두귀는 도망치려다가 개벽에 적중당해서 오른쪽 하반신을 잃고, 바닥을 기고 있었다.
둘 다 고통이 심한 듯 전신을 떨며 검은 피를 토했다.
“하아….”
라온이 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핏물을 억지로 삼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죽겠군.’
검계를 연달아 사용했고, 심각한 내상을 입었으며, 그랜드 마스터 극에 오른 괴물 두 명과 싸웠기에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여기서 끝나서 다행이지 조금만 더 전투가 지속되었다면 자신이 먼저 쓰러졌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힘을 빼서는 안 돼.’
쌍두귀들은 에틴의 능력을 이어받았기에 트롤 수준의 재생력을 지니고 있다. 놈들이 무력화된 지금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놓아야 한다.
“크헉!”
라온이 힘겹게 다리를 움직이려고 할 때 뒤에서 격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에드가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투구 속에서 검은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몸을 돌려서 쓰러지려는 에드가를 부축했다. 그의 등에 길쭉한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조금 전 리메르와 실비아의 검격을 맨몸으로 받아냈던 상처 같았다.
“자, 잘했다. 라온.”
에드가는 피를 쏟아내면서도 믿어줘서 고맙다는 듯 구김 없이 웃어주었다.
“아니, 저는….”
라온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눈썹을 내렸다. 지금 에드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에드가!”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실비아가 달려와 무릎으로 에드가의 머리를 받쳤다.
“이 바보야! 정신을 차렸으면 차렸다고 말을 해줬어야지!”
실비아는 왜 몸으로 검격을 받았냐면서 악을 질렀다.
“그랬으면 저 두 놈이 속지 않았을 거야.”
에드가는 입가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음….”
리메르도 에드가가 걱정되는 듯 두 쌍두귀가 움직이지 못하게 견제하면서도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실비아는 이 상황 자체가 고통스러운 듯 입술을 깊게 깨물었다.
“마정검의 투로가 다 틀려서 네 검격은 아프지도 않았어. 두 번째 초식은 발목을 앞으로 내밀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또 틀렸고, 세 번째 초식에서는 손목으로 반원을 그려야 하는데, 각도가 잘못됐어. 그리고….”
에드가는 실비아의 손을 잡은 채로 마정검에 대한 지적을 쏟아냈다. 지금 여기서 전장인지, 훈련장인지 모를 정도였다.
“정말….”
실비아가 끝없이 주절거리는 에드가의 입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떻게 하나도 변하질 않은 거야….”
그녀는 에드가의 수다가 그리웠다는 듯 방울진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너도 여전히 눈물이 많네.”
에드가가 손을 들어 실비아의 눈물을 닦아주려다가 멈춰 섰다. 그는 피에 젖은 손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내렸다.
“그래도 다시 보니까. 정말… 크헉!”
에드가가 어색하게 웃다가 허리를 굽힌 채 다시 검은 피를 토했다.
“…괜찮으신 겁니까?”
리메르도 본인의 검격 때문에 에드가가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한 듯 미간을 구겼다.
“시,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건 육체의 상처 때문이 아니니까.”
에드가가 힘겹게 손을 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실비아가 에드가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후우….”
에드가가 잠시 실비아와 라온을 바라보다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음, 이대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
그가 두 손을 들어 올려서 데스나이트의 투구를 잡았다.
“으아아아아악!”
에드가는 목이 뜯겨나갈 정도로 지독한 비명을 지르며 스스로의 힘으로 투구를 벗었다.
라온은 에드가의 맨얼굴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이 사람이 내 아버지인가.’
평생 햇볕을 보지 않은 듯 창백한 피부에 책을 좋아할 것 같은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였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지녔지만, 눈빛은 단단해서 고집이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나는 지금 타천에게 영혼이 붙잡힌 상태야.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언제 또 육체의 통제권을 잃을지 몰라.”
에드가는 지금 죽은 피를 토하는 것도 타천에게 통제권을 받은 쌍두귀의 명령을 거절했기 때문이라며 힘겨운 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괜찮아.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지금이 훨씬 나으니까.”
그는 행복을 전해주는 고통이라며 웃었다.
“에드가….”
실비아는 에드가의 얼굴을 매만지며 통곡을 하듯 눈물을 쏟아냈다.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 정도로 우는 건 혹한의 저주를 알게 된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너무 늦게 왔지? 미안해.”
에드가는 어색하게 웃으며 실비아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다만 이 와중에도 지독한 고통을 느끼는 듯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희에게는 정말 할 말이 없어. 시아를 지키지도 못했고, 너와 라온을 지켜주지도 못했어.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해놓고, 무엇 하나 이룬 게 없으니, 못난 인간이지. 내가 바란 건 네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거였는데,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었네. 그래도 너희가 잘 살아서….”
그는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끝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할 말이 없다면서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실비아가 눈물을 닦으며 피식 웃었다.
“라온. 내가 네 아빠 말 많다고 했지?”
그녀는 에드가와 인사를 나누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우리는 이미 마음을 나눴어.”
에드가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라온을 바라보았다.
“짧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지.”
그는 아들과 싸우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짧아? 말이 더럽게 많았으면서 뭐가 짧다는 것이냐!
라스는 헛소리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확실히 짧지는 않았지.’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에드가는 본인이 할 말을 쏟아낸 후에야 움직였다. 라스 수준으로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저기….”
“어머! 아버님!”
라온이 에드가를 부르려고 할 때 멀린이 먼저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멀린은 녹색의 왕을 중력 마법으로 짓누르며 방긋 웃었다.
“저, 저기 라온.”
실비아가 멀린을 힐끔 보고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아까 나한테도 어머님이라고 부르던데, 너 나 몰래 결혼했니?”
“머, 멀린이랑 결혼?”
에드가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저 아이의 집착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이라니!”
그가 피를 토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전혀.”
라온이 깊은숨을 내뱉고서 멀린과 녹색의 왕에게 다가갔다.
“끄아아아!”
녹색의 왕은 연달아 이어진 싸움에 지친 듯 악만 지를 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퍼어어억!
라온은 간신히 회복된 오러를 운용하여 녹색의 왕 뒤편으로 이동한 후 제천검으로 그녀의 후두부를 후려쳤다.
“크흑….”
녹색의 왕은 갑작스러운 충격에는 대비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라온! 아가씨를. 아니, 언니를. 어쨌든 너무 험해!”
멀린은 조심히 다루라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됐고. 잘 묶어둬.”
에드가와 달리 시아는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기에 제압을 해두어야 했다.
녹색의 왕인 시아가 쓰러지자, 성벽을 공격하던 몬스터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놈들은 본인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도 잊은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수많은 시체를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으로 도망쳤다.
“흐아아악!”
도리안이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긴 한숨을 흘렸다.
“이제야 끝났네요….”
그는 살아서 다행이라는 듯 바닥에 드러누운 채 훌쩍였다.
“다행히 저쪽도 잘 해결된 모양이네.”
버렌은 전쟁이 끝난 평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구해냈구나.”
마르타는 에드가를 안고 있는 실비아를 보며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그럼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라온이 아버지인 에드가를 구해냈듯이 자신도 백혈교주에게서 엄마를 구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떠오르는 듯했다.
육체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쳤지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루난이 라온의 등을 바라보며 입술을 깊게 깨물었다.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라온처럼 용기를 냈다면 오빠는 그런 꼴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엄마와 아빠도 고통을 받지 않으셨을 거라는 후회가 울대까지 차올랐다.
‘다만….’
언제까지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루난은 시리아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끊겠다고 다짐하며 설화를 꼭 말아쥐었다.
* * *
라온은 에드가와 실비아를 지나서 두 명의 쌍두귀의 앞에 섰다.
리메르가 견제를 해준 덕분에 놈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이만 갈고 있었다.
“이, 이놈….”
노인 쌍두귀가 간신히 재생한 왼팔로 투기를 일으키려고 할 때 제천검을 그었다.
촤아아악!
노인 쌍두귀의 팔이 다시 잘려나간 채 땅으로 툭 떨어졌다.
“끄아아악!”
“시끄럽다.”
라온은 제천검을 거꾸로 들어서 노인 쌍두귀의 목에 박아넣었다.
“커헉….”
노인 쌍두귀는 이렇게 갑자기 죽일 줄은 몰랐다는 듯 손발을 허우적거리다가 숨이 끊어졌다.
“…바로 죽인다고?”
어린 쌍두귀는 이렇게 빨리 죽일 줄은 몰랐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입은 하나면 충분하니까.”
라온은 노인 쌍두귀의 목에서 제천검을 뽑은 채 어린 쌍두귀에게 다가갔다.
피이이잉!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제천검을 어린 쌍두귀의 어깨에 박아넣었다.
“끄아아아악!”
어린 쌍두귀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지만, 힘이 다 빠진 듯 움직이지 못했다.
“말해. 저 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라온은 에드가와 시아를 가리키며 턱을 까딱였다.
“크흐흐….”
쌍두귀는 고통을 느끼고 있음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너는 방금 참으로 좋은 선택을 했어.”
“뭐?”
“만약 저 영감탱이가 아니라, 날 먼저 죽였으면 여기 있던 인간 모두가 뒈졌을 테니까.”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비웃음을 그리며 턱을 들어 올렸다.
“아니, 어차피 곧 죽을 테니, 큰 의미는 없나?”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네 질문에 대한 답이다.”
쌍두귀가 라온을 올려보며 혀를 길게 내밀었다.
“저놈에게 무슨 짓을 했냐고 물었지? 타천은 말이야….”
그가 더 진한 미소를 그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네 애비를 실험용 쥐로 삼았다.”
“뭐?”
“데스나이트의 투구는 본래 죽은 자만이 쓸 수 있는 투구다. 시체로 만든 후에 투구를 씌워야 하지만, 타천은 네 애비가 살아 있을 때 씌운 후 영혼까지 보호해줬어. 왜 그랬을까?”
쌍두귀는 답을 원한 게 아니라는 듯 스스로 말을 이어갔다.
“네 애비의 영혼은 데스나이트의 마기와 스스로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점차 새까맣게 물들어갔지. 그리고 그 어둠의 기운이….”
그가 손가락을 들어서 에드가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심장 속에 박힌 보석에 응집되며 소멸 마법을 만들어냈다. 마계의 군주처럼 감정을 이용한 힘이지! 저놈은 지금 살아있는 폭탄 그 자체다!”
쌍두귀가 양팔을 펼친 채 입꼬리를 찢어 올렸다.
“넌 알고 있을 텐데? 타천이 완성되었다는 말을 했잖아.”
그는 기억해보라는 듯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아….”
에드가는 반박을 하지 못한 채 떨리는 입술을 벌렸다. 쌍두귀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가 툭 풀렸다.
퍼어억!
라온이 참지 못하고 쌍두귀의 뺨에 주먹을 날렸다.
“당장 멈춰!”
“미안하지만, 이미 늦었어.”
쌍두귀가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혀로 핥으며 고개를 저었다.
“타천은 지금 이 상황까지 계산했거든. 절혼검이 본인의 의지로 움직인 이상 폭발은 막을 수 없어.”
그는 이미 심지에 불이 붙은 상태라며 낄낄 웃었다.
“도망쳐도 소용없어. 완성된 소멸 마법은 이 지역 전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으니까.”
쌍두귀가 시선을 돌려 아리안 가문의 성을 바라보았다.
“너희만이 아니라, 저 성에 있는 것들도 모조리 사라질 거야.”
“입 닥치고 막을 방법이나 말하라고!”
라온이 쌍두귀의 얼굴과 몸을 사정없이 후려쳤지만, 놈은 비명만 토할 뿐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저놈의 말대로니라.
라스가 쌍두귀를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놈 아버지의 심장 부근에서 갑자기 거대한 마기가 들끓고 있느니라!
녀석은 곧 터질 것 같다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만하렴.”
에드가가 담담하게 손을 저으며 일어섰다.
“저놈은 아무것도 모를 거야. 모든 것은 타천이 계획한 일이니까.”
그는 의미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작게 웃었다.
“아니….”
라온이 떨리는 고개를 돌려서 에드가를 바라보았다.
라스의 말대로 그의 가슴 부근에서 지독할 정도의 마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아직 다 풀린 게 아님에도 자신이 펼쳤던 개벽 이상의 기운이었다.
“에, 에드가?”
실비아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떨었다. 에드가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일어나질 못했다.
“걱정하지마.”
에드가가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누구도 죽지 않을 테니까.”
그는 실비아, 라온, 시아를 차례로 바라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후욱….”
에드가가 숨을 몰아쉰 후 수도를 세운 손으로 본인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끄아아아악!”
그는 괴성을 지르며 심장 속에서 핏줄로 연결되어있는 검붉은 보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오각형의 보석 속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들끓고 있었다.
탁. 탁. 탁.
검붉은 보석은 시계의 초침 같은 소리를 흘리며 점점 더 짙은 마기를 뿜어냈다.
-혼마석이니라!
라스는 에드가가 쥐고 있는 보석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본래 마왕급의 마기를 저장해두는 마계의 보석인데, 왜 이곳에….
녀석은 혼마석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미간을 구겼다.
‘저게 터지면 어떻게 돼?”
-저 애새끼의 말대로 이곳 전체가 지워질 것이니라.
라스는 모든 것이 위험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에드가!”
“무, 물러나 있어!”
에드가는 간신히 일어난 실비아를 밀어내고서 숲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고통과 혼마석의 기운 때문인지 그의 걸음은 지팡이를 쥐고 있는 노인보다도 느렸다.
다만 에드가는 힘겹게 걸어가면서도 절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
라스도 에드가의 정신력이 놀랍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네놈의 인내심이 어디서 온 지 알겠구나.
녀석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미간을 좁혔다.
“크흐흐!”
쌍두귀가 비웃음을 흘리며 손을 저었다.
“다 늦었어. 너희는 나와 함께 가는 거다.”
“입 닫으라고!”
라온이 쌍두귀의 얼굴을 밟아버리고 에드가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독한 고통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환히 웃었다.
아버지라고 해도 고작 두 번 본 사람인데,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아려왔다.
‘방법은 있어.’
진혼검을 역수로 잡고 가슴 위로 들어 올렸다. 검계현신 마왕 강림. 이 상황을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정체가 들키겠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을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그 검계를 사용한다면 본왕이 도와줄 수 있느니라. 다만….
라스의 푸른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네놈은 초월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뭐?’
-두 번째 마왕강림에서 네게 전해질 충격을 본왕이 대신 받았기에, 세 번째 마왕강림을 사용한다면 네게 전해질 충격은 이전보다 한참 더 심각할 것이니라.
녀석은 잘 생각하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꿀꺽.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초월에 닿지 못한다면….’
복수도 할 수 없어.
데루스는 글렌 외에는 상대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강하다.
놈은 대천사의 지원까지 받고 있기에 초월에 오르지 못한다는 건 복수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에드가!”
라온이 손을 멈춘 사이 실비아는 이를 꽉 깨문 채 에드가에게 달려갔다.
“오지 마!”
에드가가 이마에 힘줄이 선 채로 손 들어 올렸다.
“절대 오지 마!”
그는 혼마석 안에 담긴 마기를 감당할 수 없는 듯 핏줄이 선 턱을 저었다.
“제발, 내 등 뒤에 있어줘.”
에드가는 부탁한다며 일그러진 미소를 그렸다. 그는 본인의 영혼이 소멸한다고 해도 괜찮다는 듯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아아….”
실비아는 간신히 만난 에드가와 이렇게 헤어지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모은 채 전신을 떨었다.
“라온.”
에드가가 라온의 굳은 표정을 보며 입술을 억지로 끌어 올렸다.
“원래 자식은 부모보다 먼저 죽어서는 안 되는 법이야. 이렇게 떠나서 미안하지만, 엄마를 부탁한다.”
그는 본인은 원래부터 없던 사람이니, 지금처럼 살면 될 거라며 씩 웃었다.
뿌득!
라온이 피가 나도록 어금니를 씹었다.
‘초월에 오르지 못해도 상관없어.’
실비아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에드가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복수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검계현신 마왕….
“네가 처음으로 맞는 말을 하는구나.”
라온이 진혼검으로 자신의 복부를 찌르려고 할 때 등 뒤에서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검귀 렉타르. 이제는 성검련주가 된 검사가 어느새 등 뒤에 다가와 있었다.
“어…?”
에드가는 렉타르를 보자마자, 걸음을 멈춘 채 손을 떨었다.
“아버지가 왜 여기에….”
“못난 놈.”
렉타르가 거침없이 에드가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십시오! 지금 저는….”
“네놈이 말했지 않느냐.”
그가 에드가의 심장과 연결되어있는 혼마석을 손아귀로 잡았다.
그 순간 점점 강해지던 마기가 가라앉고, 초침 소리가 뚝 끊어졌다.
“본래 아들이 아비보다 먼저 가는 일은 없다고.”
렉타르가 에드가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고요히 턱을 끄덕였다.
“살아라. 에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