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73
제773화
고오오오오!
라온은 당장 폭발할 것처럼 요동치던 혼마석의 마기가 가라앉은 것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의념으로 마기를 억누르신 건가?’
혼마석의 폭발이 멈춘 것을 보니, 렉타르가 초월에 오른 의념으로 마기를 짓눌러버린 것 같았다.
-저 혼마석 안에는 웬만한 초월자들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마기가 응집되어 있는데….
라스가 렉타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영감탱이도 꽤나 성장한 모양이로구나.
녀석은 노인네들이 잘도 큰다며 픽 웃었다.
‘성장?’
그러고 보니 렉타르의 기파가 훨씬 더 날카로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예전의 글렌을 보는 듯했다.
“뭐, 뭐야….”
쌍두귀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검귀!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폭발은 또 어떻게 멈췄고!”
그는 조롱 섞인 웃음을 지운 채로 렉타르에게 괴성을 질렀다.
“…….”
렉타르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서늘한 눈으로 쌍두귀를 노려보았다.
“끄으윽! 절대 안 돼! 너희는 여기서 죽어야 해!”
쌍두귀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걸레짝이 된 팔을 들어 올렸다. 투기를 이용해서 원격으로 혼마석을 터트리려는 것 같았다.
터어엉!
라온이 바닥을 드러낸 오러를 억지로 끌어 올리며 태화보를 밟았다. 쌍두귀에게 정면으로 나아가 역수로 들고 있던 진혼검을 내리찍었다.
퍼어어억!
요기로 일렁거리는 칼날이 쌍두귀의 투기를 가르고 놈의 목에 박혔다.
“커헉!”
쌍두귀는 본인이 죽더라도 혼마석을 터트리려고 했지만, 진혼검에서 피어나는 요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못했다.
“라, 라온 지그하르트. 끝까지 방해를….”
그는 핏발이 선 눈동자를 들어 올리며 바드득 이를 갈았다.
“죽을 때가 되니, 그 지랄맞은 웃음도 사라지는군.”
라온은 험악하게 구겨진 쌍두귀의 표정을 보며 턱을 까딱였다.
“나, 나를 죽인다면 바로 혼마석이 터질 거다! 칼을 뽑지 말고….”
“거짓말이 어색해.”
라온이 쌍두귀를 굽어보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죽는 것으로 저 보석이 터진다면 너는 조금 전에 자살을 했겠지.”
쌍두귀는 본인이 죽더라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기를 원하고 있다.
놈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원격으로 혼마석을 터트리려고 한 것을 보면 자살로 발동되는 폭발 역시 렉타르에 의해서 막힌 게 분명했다.
“자, 잠깐! 아니야!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이제는 네가 죽음에 희롱당할 차례다.”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서 쌍두귀의 목에 박힌 진혼검을 내리그었다.
쩌어어억!
길쭉하게 늘어난 요기의 칼날이 쌍두귀의 목을 거침없이 베어버렸다.
놈의 머리통이 목에서 떨어져 나간 채 바닥을 굴렀다.
“빌어먹을….”
인간의 삶과 운명을 조롱하던 악귀는 절망에 빠진 채 숨이 끊어졌다.
“후우….”
라온이 눈을 부릅뜬 채 죽어버린 쌍두귀를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타인의 인생을 농락하던 놈이 울부짖으며 죽는 꼴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이대로 쓰러지고 싶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려서 렉타르와 에드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 역시 말없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라고 했지?’
조금 전 에드가는 렉타르에게 아버지라고 했었다. 그 뜻은 렉타르가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의미였다.
-저 영감탱이가 네 친할배라니….
라스가 렉타르를 살피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네놈의 피도 평범하지 않았구나.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며 미간을 구겼다.
‘너 렉타르 님이 여기 계신 거 알고 있었지?’
-당연하지 않느냐.
라스는 물어볼 걸 물어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해준 거야?
-저 영감탱이가 널 지켜보고 있던 건 한두 번이 아니니라. 매번 나타나질 않아서 이번에도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니라.
녀석은 렉타르의 취미가 관음인 줄 알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버지가 어떻게 여기에….”
에드가는 렉타르가 찾아온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에덴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을 때 저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렉타르가 손가락을 들어서 멀린을 가리켰다.
“거짓말 같았지만,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어.”
그는 고맙다는 듯 멀린에게 턱을 끄덕였다.
“할아버님께 소녀가 인사 올려요.”
멀린이 낡은 우산처럼 찢어진 치마를 살포시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에게 당황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 할아버님…?”
렉타르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라온과 실비아를 돌아보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다른 쪽도 부르기는 했는데, 시간이 늦어서 조금 걸릴 거예요.”
멀린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방실거리며 웃었다.
“자, 잘했다….”
렉타르는 멀린과 더 대화하고 싶지 않은 듯 대충 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멀린은 할아버님께 칭찬받았다고 중얼거리며 방긋 웃었다.
“아버지. 저는….”
에드가는 렉타르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입 다물거라.”
렉타르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는 에드가의 왼쪽 가슴을 지혈해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에드가는 면목이 없다는 듯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외치면서 련을 나갔는데, 저는 가족도 지키지 못한 버러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슴의 상처보다 마음이 더 고통스러운 듯 어깨를 떨었다.
“정말 죄송….”
“아, 아니에요!”
실비아가 달려나가서 에드가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다.
“에덴은 이이가 아니라, 저를 보고 쫓아온 거였어요! 다 제 탓이에요!”
그녀는 에덴의 습격이 본인 때문이라고 외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음….”
렉타르는 뿌옇게 눈물이 차오른 실비아의 눈망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실비아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다시 인사드릴게요.”
실비아가 에드가의 손을 잡은 채로 렉타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실비아 지그하르트라고 합니다. 아버님.”
그녀는 렉타르를 아버님이라 부르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너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렉타르는 직접 실비아를 일으켜 세우며 턱을 저었다.
“도장을 찍은 것처럼 닮았는데 모를 수가 없었죠.”
실비아는 에드가와 렉타르의 외모가 너무 비슷했다며 옅게 웃었다.
‘확실히….’
라온이 에드가와 렉타르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아의 말대로 두 사람은 머리 색만 다를 뿐 굉장히 흡사한 분위기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라온.”
실비아가 고개를 돌리며 라온의 이름을 불렀다.
“할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그녀는 이쪽으로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아, 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힘이 없지만, 실비아의 말대로 제대로 된 인사는 해야 했다.
“음, 저기….”
다만 렉타르의 앞에 서자 갑자기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할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인사는 나중에. 일단 이것부터 처리하자꾸나.”
렉타르도 아직은 민망한 듯 낮은 숨을 내쉬고서 에드가의 심장과 연결되어있는 혼마석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참을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에드가는 지독한 고통을 느끼고 있음에도 실비아의 손이 잡은 채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래. 자식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렉타르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아직도 꿀렁거리는 혼마석을 살폈다. 잠시 후 그는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대로 혈관을 끊어버리면 마기가 터지거나, 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의원이 필요할 것 같아.”
렉타르는 뛰어난 실력의 신관과 의원이 필요하다며 탁한 숨을 내쉬었다.
“지금 지그하르트에 넝마의 성자님이 계십니다.”
라온이 지그하르트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넝마의 성자 페드릭은 신성력과 뛰어난 의술 실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라면 분명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마, 맞아요. 지그하르트로 가요.”
실비아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페드릭 님이라면 분명 도와주실 거예요!”
“지그하르트로 가는 건 힘들어.”
에드가가 실비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시선을 내렸다.
“뭐? 왜?”
“나는 에덴의 간부였고, 아버지는 성검련의 주인이 되셨지. 우리가 어떻게 지그하르트로 가겠어.”
그는 실비아와 라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며 입술을 씹었다.
“상관없다.”
렉타르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성검련주의 이름이 네 목숨보다 무겁지는 않으니까.”
“아, 아버지?”
“내가 성검련주가 된 이유는 오마에게서 라온과 실비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오직 그 이유뿐이라면서 굳건히 가라앉은 눈동자를 드러냈다.
“아버지….”
“아버님….”
에드가와 실비아는 렉타르의 진심을 느낀 듯 하얘진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네 녀석이 아비 노릇을 하지 못했으니, 나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렉타르는 아들을 잘못 둔 대가를 치렀을 뿐이라며 옅게 웃었다.
“아….”
라온이 렉타르의 고요한 눈동자를 보며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조금 전 그의 말 그리고 매번 지켜보았다는 라스의 증언을 떠올리자, 그간 쌓여 있던 의문들이 단숨에 해소되었다.
렉타르가 지금까지 해왔던 기이한 행동들은 전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 같았다.
그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에 심장이 가시넝쿨에 휘감긴 것처럼 아려왔다.
“죄송합니다.”
에드가 역시 렉타르의 마음을 느낀 듯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아버지께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은 됐다니까.”
렉타르가 차분히 손을 저었다.
“네놈의 아내와 아들, 딸 이전에 내 며느리이자, 손주들이다.”
그는 본인이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
라온이 조금 밝아진 듯한 렉타르의 얼굴을 보며 옅게 웃었다.
‘돌아오신 것 같아.’
지그하르트에 와서 글렌과 검술 교육으로 경쟁하던 렉타르를 보는 느낌이다. 그에서 당시의 부드러움이 피어나고 있었다.
“뭐, 어쨌든 적이 아니라는 거네.”
리메르는 이제야 안심이 되는 듯 검을 내렸다.
“그 부끄럼쟁이 영감 긴장해야겠는데?”
그는 재밌는 생각이 난 듯 어깨를 으쓱였다.
“지그하르트에서 지원이 올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이곳을 벗어나도록 하지.”
렉타르는 아리안 가문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며 에드가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렸다.
“죄, 죄송합니다.”
에드가는 렉타르의 부축을 받은 채로 낮은 숨을 내쉬었다.
“수십 년 만에 만나서 하는 말이 계속 죄송하다뿐이로구나.”
렉타르가 그만 말하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은 자식들 앞에서 하는 게 아니다.”
그는 라온을 흘낏 보고서 그만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 예.”
에드가가 라온과 실비아를 힐끔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는 제가 업을게요.”
실비아는 20여 년 만에 만난 딸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은 듯 직접 시아를 안아 들었다.
“뭔가 좋네요.”
그녀는 아직 눈물이 맺혀 있는 얼굴로 렉타르와 에드가에게 다가가며 환히 웃었다.
“좋다니, 너도 참으로 특이한….”
렉타르가 말을 하려다가 다급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왔느니라!
라스도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무슨….”
라온이 시선을 들자, 허공이 커튼처럼 펄럭이며 길쭉한 어둠을 일어났다.
쿠구구구구!
파도처럼 출렁이는 어둠 속에서 성스러운 빛이 솟구쳤다. 빛과 어둠을 한 몸에 두르고 있는 에덴의 수장, 타천이었다.
“…그리되었나.”
타천은 시선을 내린 것만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한 듯 담담하게 턱을 끄덕였다.
“타천….”
렉타르가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
“역시 다른 생각이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타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게 웃었다.
“네놈만큼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렉타르는 아들과 손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만든 새긴 타천을 죽이겠다는 듯 악귀와도 같은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십시오. 물론 제 실험이 끝난 후에.”
타천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렉타르의 손아귀에 잡혀서 꼼짝도 하지 못하던 혼마석이 격한 진동을 일으켰다.
쿠우우우웅!
가라앉았던 마기가 순식간에 차오르더니, 혼마석 위로 깊은 균열이 돋아났다.
“물러나!”
렉타르가 에드가의 심장에서 혼마석을 뽑은 채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뒤로 밀어버렸다.
“렉타르 님!”
라온이 렉타르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혼마석이 박살 나며 온 세상을 뒤덮을 듯한 어마어마한 마기가 폭발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앙!
라온이 걷어차인 돌멩이처럼 튕겨 나간 채 수없이 바닥을 굴렀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고, 귀에서는 삐 소리만 들려왔다. 팔다리에 힘이 없었고, 모든 감각이 지워진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커헉!”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복부에서 일어난 격한 통증에 피를 토했다.
고통 덕분에 천천히 정신이 돌아오며 시꺼먼 연기가 피어나는 평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아버지,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봤지만,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당장 터져나갈 것처럼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끄으으….”
라온이 연기를 향해 무릎으로 기어갔다. 팔과 다리가 모두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후우우웅!
간신히 새까만 연기 앞에 도착했을 때 허공에서 바람이 불어와 마기로 뒤덮인 먼지와 연기를 모조리 밀어냈다.
“아….”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 듯 리메르와 멀린이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시아를 감싼 채 축 늘어진 에드가와 실비아가 있었다.
라온이 떨리는 시선을 돌려서 그 앞을 바라보았다.
무저갱이 열린 듯 끝이 보이지 않는 대지의 균열 앞에 렉타르가 홀로 서 있었다.
그는 혼마석의 폭발을 막기 위해서 모든 기운을 쏟아부은 듯 텅 비어버린 존재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어….”
자신의 감각이 비틀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게 현실인지 모두의 호흡이 사라져 있었다.
쿠구구구.
피에 젖은 채 가라앉은 사람들을 보자, 머릿속이 일그러지며 영혼의 밑바닥에 가라앉혀둔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충동이 손끝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멈춰라! 정말 다 죽이고 싶은 것이냐!
라스가 양팔을 휘저으며 앞을 막았다.
-본왕이 네놈의 육체에 직접 강림하면 폭주한다고 몇 번을 말하느냐! 아직….
녀석이 뭐라고 하고 있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미 뇌리에 분노가 차오른 듯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쓸데없는 것들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 꼴은 아니었을 텐데.”
타천이 결국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 렉타르를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도 공들인 보람이 있는 화력이군.”
그는 실험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뚝!
그 순간 뇌리에서 선 하나가 끊어졌다.
라온은 더이상 저항하지 않고, 분노에 몸을 맡겼다. 검으로 가꿔나간 정신이 은빛으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라스가 라온의 뇌리로 빨려 들어가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간 육체를 지배하지 못한 영체로 살아왔기에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폭주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저 가면 새끼는 도망치고, 다른 사람들만 죽을 게 분명했다.
-이 멍청한 놈, 조금만 참으라니까!
악을 지르며 어떻게든 견디려고 할 때였다.
고오오오오!
주인의 통제를 잃었던 심장의 고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불꽃으로 타오르는 날개를 펼쳐냈다.
* * *
“망가졌나.”
타천이 그 자리에서 서서 굳어버린 라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생각보다 정신력이 약하군.”
그가 일으킨 어둠의 칼날이 라온의 심장과 목을 뚫으려고 하는 찰나였다.
쿠와아아아아앙!
갈라진 대지 위로 푸른 광망이 솟구치며 라온을 휘감았다. 타천이 일으킨 어둠의 칼날이 종잇장처럼 찢겨 진 채 녹아내렸다.
라온의 이마 위로 검은 뿔이 돋아나고, 그의 등 뒤로 은빛으로 명멸하는 거대한 달이 차올랐다.
그 고고한 달빛 아래에서 자라난 서리의 세계수가 타천의 빛과 어둠을 가라앉혔다.
하늘이 새하얗게 얼어붙고, 땅이 시꺼멓게 뒤틀어진다.
푸른 휘광 속에 선 라온은 온 세상을 발아래에 둔 것처럼 고고한 위상을 드러냈다.
인과율. 세상의 이치를 뒤트는 괴이가 인간의 육체 위에 강림해 있었다.
“이, 이건….”
타천의 눈빛이 의문과 두려움으로 출렁였다. 그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강렬한 빛과 어둠의 벽을 세웠다.
마왕의 기운을 휘감은 채 붉은 눈동자를 드러낸 라온이 제천검을 내리그었다.
빛과 어둠이 갈라지고, 타천의 복부에서 시뻘건 핏물이 솟구쳤다.
쩌어어어억!